Ra Mắt Hay Ra Đi Raw - C24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7화
무인도 조난 1일째.
콰과광!!
별장 밖에서는 여전히 미친 듯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이걸 지은 놈이 자기 안전에 아주 투철한 정신을 소유해서 다행이지.’
그래도 별장은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거실에 드러누웠다.
옆에 차유진이 똑같이 드러눕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좋아요. 밖이 좀비 아포칼립스로 망한 거죠! 그래서 우리끼리 이 안락한 쉘터에서 지내는 거예요.]
“그래. 대단히 위로가 된다.”
“히히!”
웃지 마라, 이놈아.
헛웃음이 나긴 한다만, 그래도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촬영 어쩌냐.’
이대로 며칠 분량이 날아가면 정말로 망한 것 같……….
[형, 어차피 지금은 촬영 못 하잖아요. 릴렉스~ 하고 편하게 지내요.]
“…!”
[원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로 고민할 필요 없어요.]
…아주 단정적으로 말하는군.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비가 몰아치는 밖을 보고 인정했다.
‘뭐 날씨를 내가 어쩌겠냐.’
어차피 땜빵 편성이었는데 예능 하나 말아먹는다고 큰일 나진 않겠지. 다음 걸 잘하면 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아요!”
나는 거실에 누워서 비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식사 시간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
일곱이 다 같은 보존 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자니 정말로 무슨 재난 영화에 들어온 기분이 들긴 한다.
“으음, 우리 축사 가서 계란이라도 있나 보고 올까요?”
“세진아, 쓸려 간다.”
“넹.”
그렇게 감흥 없는 식사를 두 번쯤 마치고 나니 시간이 붕 뜬다.
게다가 안 그래도 느리던 스마트폰 데이터 서비스는 한층 더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고립된 느낌 나는데….’
덕분에 정말로 할 게 없다.
오늘 식사 준비를 담당해서 뒷정리를 면제받은 나는, 기상 상황이 제일 잘 보이는 거실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보드게임도 할 게 다 떨어졌고, 뭐 밖에 나가서 식량을 구할 수도 없으니….
지이잉. 툭.
“…!!”
그때.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졌다.
“어어??”
“다들 괜찮으십니까?”
정전이었다.
무인도라 밤에는 밖에 다른 광원이라곤 없다. 완전히 칠흑 같은 암전.
나는 바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 순간, 누군가 어깨를 덥석 잡았다.
“…!”
“형!”
“그래.”
…차유진이군. 거실에 빨래를 가져오던 중이었지.
나는 목소리를 확인한 뒤, 다른 놈들의 목소리를 파악했다.
“얘들아, 일단 움직이지 말고 암적응부터 하자.”
이건 류청우고.
“네, 네…!”
“와, 5초만 빨랐으면 설거지 중에 멈출 뻔했다니까요.”
이건 선아현이랑 큰세진.
차유진은 옆에 있고, 김래빈은 소파에.
남은 건…….
‘배세진은?’
그 순간, 밑에서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읍!
“…!”
“형!”
다행히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멀쩡했다.
“…괜찮아!”
다만 약간 떨리고 있긴 했다.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 있어요?”
“이, 이상한 걸 봤는데… 아니, 오지 마! 내가 갈게.”
“아뇨. 계세요.”
너야말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손에든 스마트폰에서 손전등 기능을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요!”
같이 가는 건 괜찮다만 남의 목을 조르진 말고.
나는 차유진을 달고서, 불빛을 보고 달려온 다른 놈들과 합류해 빠르게 이동했다.
“세진 형, 거기 있어요?”
배세진은 애매한 자세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스마트폰 손전등 불빛이 들어오자 화색이 되는 게 아무래도 암전이 무섭긴 했나 보다.
“다리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배세진은 그 말대로 류청우의 손을 붙잡고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약간 긴장한 기색이다.
“저기… 넘어지면서 내가 뭘 민 것 같은데.”
배세진이 침을 삼켰다.
“저런 게… 나와서.”
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즉시 스마트폰 불빛을 움직였다.
반쯤 밀린 캐비닛.
그리고 그 뒤에, …문?
불빛에 드러난 것은, 칙칙한 색의 방화문이 맞았다.
“헐.”
“이게 뭐야.”
배세진이 저걸 발견할 수 있던 건 바닥에 은은하게 야광 빛이 도는 탓인 것 같다. 아무래도 야광 도료 따위를 쓴 것 같다.
“와, 이거 무슨 비밀 방 같은 건가?”
“제 생각에는 대피 용도로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싸한데.”
숙덕거리던 놈들은, 곧 ‘사유지니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매우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지하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구조상 저 문 너머 근처가 들꽃길이었던 것 같다.
큰세진이 으스스하게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거 꼭 그거 같지 않냐? 왜 눈 오는 산장에서 고립됐는데, 숨겨진 문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억!”
“아니다.”
끔찍한…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나는 큰세진의 등짝을 갈기고 도로 거실로 돌아왔다.
다른 놈들도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며, 각자 방에 들러서 스마트폰을 찾았다.
“휴.”
“이걸로 손전등을 찾을까요?”
“현관 옆 팬트리에 있었어. 가져올게.”
“오오~”
류청우의 활약으로 손전등을 확보하고 나자, 좀 살 만해졌다.
문제는 이대론 스마트폰을 다시 충전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아껴 써야겠는데.’
전기가 나갔으니 별수 없지. 나는 혀를 찼다.
“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모여서 잘까?”
“대찬성이요~”
“무서운 이야기 말해요!”
그날은 거실에 모여서 취침했다.
차유진이 자신이 영어로 무서운 이야기를 할 테니 번역해달라는 것을 넘기느라 기력을 추가 소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상황은 더 환장하게 흘러갔다.
“다, 닭장이…!”
“어어? 떠내려가는데??”
이틀 내내 내린 비 때문에 물이 앞마당까지 들어찬 것이다.
덕분에 강풍에 열린 축사 문 사이로 흘러나온 병아리들이 둥둥 떠서 마당 아래로 쓸려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흐르는 흙탕물 위, 노란 덩어리가 점점이 멀어진다….
꼬고고꼭!!
닭이 애처롭게 운다.
“안 돼요!!”
“구, 구해줘야 해…!”
결국 다급함에 우산도 우비도 안 걸치고 잠옷 차림 맨몸으로 다 같이 축사까지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환장하겠네.’
“잡아! 잡아!”
“얘들아, 안 넘어지게 조심해! 몸 낮추고!”
다행인 건 운동을 꾸준히 하던 놈들이라 흙탕물 속에 머리 박는 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병아리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 구출은 되었다.
차유진과 류청우가 활약했다는 점만 말해두겠다.
“다행이다!”
“휴우우….”
양손에 다 젖은 노란 덩어리들을 든 놈들은 뒤뚱뒤뚱 축사로 걸어가서 원상복구를 시도했다.
“휴, 다행이다.”
“온 김에 계란도 가져가죠!”
비를 온몸으로 다 맞고 있는데 옷에서 물기를 짜내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만, 어쨌든 간에 놈들은 몰골을 정리하며 뿌듯해했다.
그리고… 계란이라.
‘음.’
나는 머리를 털며 말했다.
“한 마리 먹을까.”
“예?”
“어어어??”
“암탉이 다섯 마리니까 하나는 잡아도 될 것 같아서.”
“…!!”
성인 7명인데 닭 한 마리 못 잡진 않겠지.
김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보존 식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좋지 않…….”
“No!! No! 안 돼요!!”
“으아아니 세상에 문대야 방금 구출한 이 조그만 병아리들을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걔네 말 못 알아들어. 그리고 원래 다 먹으려고 키우는 거 아니냐.”
그리고 막상 닭 잡으면 제일 좋아할 놈들이 제일 반대하는 게 웃기긴 하는군.
차유진이 제일 반대가 극렬했다.
“먹는 거 아니에요!! 잘 키우는 거예요!”
이놈은 영어까지 섞어가며 ‘어린 왕자와 장미’ 비유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어린 왕자의 장미가 특별하듯이, 이 닭들은 우리한테 특별한 닭인 거라니까요?!]
오냐, 알았다.
“하하, 그래. 달걀이나 가져가자.”
류청우의 정리를 끝으로, 김래빈이 나에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닭을 잡으면 차유진에게 분배해 주지 않는 건을 강력히 건의합니다.”
“…….”
아무튼 그 난리를 겪고 계란을 쥐고 실내로 복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또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물이 차갑더라.”
“그러게요.”
정전 탓인지 온수가 안 나와서 졸지에 냉수마찰을 했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한다는 배세진은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을 한 모양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주방이 인덕션이 아니라 가스로 돌아가서 그나마 밥은 따뜻하게 해 먹어서 다행이었다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식사 후, 흰 쌀밥에 반숙 프라이와 고추참치로 배를 채운 놈들에게 말을 꺼냈다.
“일단 전기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그렇지.”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특별히 전문 지식이 없습니다만.”
그래. 다들 직업군이 겹쳐서 문제다. 예체능에 일생을 바친 놈들 사이에 애매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배세진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발언했다.
“두꺼비집, 같은 거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
“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 분전반 차단기가 내려간 류의 문제일 확률도 있다.
나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수급해 왔는데, 요 며칠 해가 안 나서 전기까지 끊겼다…’는 상당히 비관적인 추론을 하던 중에 일단 멈췄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될지도 모르지.’
류청우가 팔짱을 꼈다.
“음, 어디쯤 있을까. 현관 밑이나 외벽에는 안 보이던데.”
“여, 여쭤볼까요…?”
그 말대로 PD에게 문자를 넣어보려고 했으나, 빈번히 실패가 떴다.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것 같다.
“강풍 때문에 장치가 망가졌나?”
“워낙 외진 곳이라 그럴 수도 있죠. 지금까지도 몇 번 잘 안 잡혔잖아요.”
“으음.”
잠시 고민했으나, 곧 의견은 하나로 결론 났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두꺼비집이나 찾아볼까요.”
“그렇게 하시죠~”
그리하여 대충 둘 셋으로 나뉜 놈들은 손전등을 하나씩 지참하고 집 구석구석을 탐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뭐, 해 떨어지기 전에는 찾겠지.
* * *
“음, 없는데?”
“…….”
왜 안 보이냐.
-아무래도 우리가 발견할 확률이 높지?
-그래.
나는 큰세진, 김래빈과 함께 1층 수색을 맡았다.
그리고 이런 건 보통 1층 구석에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제법 긴 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분전반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층에 있을 가능성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만….”
주택이라면 보통은 저층에 있지 않나?
그때, 김래빈이 손을 번쩍 들었다.
“혹시 지난번에 배세진 형께서 발견하신 비밀 문 안에 있는 건 아닐까요?”
“…!”
“오~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캐비닛 뒤에 숨겨진, 칙칙한 색의 방화문을 떠올렸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다.’
지하로 이어지는 것 같았으니, 보일러실이 있고 거기에 분전반도 설치되었을 수 있다.
“가볼까?”
“…그래.”
나는 놈들과 함께 캐비닛이 있던 복도 구석으로 향했다.
그 방향으로 갈수록 창문이 없어 어두워졌다. 낮인데도 손전등을 켜야 했다.
“잘 가져왔네~ 하마터면 무서울 뻔!”
“시야 확보는 역시 중요합니다.”
캐비닛 앞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반쯤 밀린 캐비닛을 마저 밀어버리자, 제법 커다란 방화문이 손전등 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보일러실 입구라기엔 좀 과하긴 한데.’
“내가 열까?”
“…괜찮아.”
손전등 잡고 있는 사람이 여는 게 낫겠지.
나는 방화문 손잡이를 잡아서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진 않았다.
끼이이익.
자주 열지 않는 듯, 꺼림칙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 안은 시커멓게 불 없이 조용했다.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어슴푸레 보였다.
“…….”
“…….”
“…좀 무섭네?”
아니, 기분 탓이다.
“가자.”
“잠깐!”
“다, 다른 곳을 수색 중인 분들과 합류하여 같이 이동하는 건 어떻습니까??”
“문대 너도 무섭잖아~ 표정에 다 보이는데?”
전적으로 쫄보 두 놈이 적극적으로 주장한 탓에, 잠시 기다려서 2층 수색팀과 합류했다.
“아, 여기.”
“WOW, 캄캄해요!”
배세진과 차유진이다.
저 조합이 2층 수색도 다 끝냈을지 의심스럽긴 하다만… 어쨌든 합류했으니 들어가기나 하자.
다섯이 된 우리는 방화문이 열려있도록 고정하고, 손전등의 불빛에 의존해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지하라 그런지 온도가 낮고, 어딘가 녹슨 비린내가 났다.
뚜벅.
“여긴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주인분 취향이겠죠.”
“그렇긴 하지.”
뚜벅.
“…좀 생각했던 건데.”
“예.”
배세진이 발을 멈췄다.
“이 사람은 왜 굳이, 무인도에다가 이런 별장을 지은 거지…?”
“…….”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 조용한 게 좋으셨겠죠~”
“근데 그걸 예능용으로 제공했잖아.”
배세진이 식은땀이라도 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용한 게 좋았던 거면, 나라면 그렇게 안 해.”
“…….”
다시 일동이 조용해졌으나, 곧 여기저기서 필사적인 변호가 튀어나왔다.
“예능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방송국에 사이가 아주 가까운 지인분이 계셨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미안.”
배세진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약간 뻣뻣해진 목을 돌려서 앞을 가리켰다.
“다 내려온 것 같은데요”
“아.”
어느새 계단이 끝나고 바닥이 나왔다.
거대한 공동은… 사방에 나무 박스 같은 게 쌓여있는 것 같았다.
“오, 창고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약간 안심했는지 다른 놈들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분전반….’
그리고 나는 계속 벽을 찾아 손전등을 돌리다가,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다.
“…!”
“어어?”
또 다른 문이었다. 심지어 양문.
특이할 건 없었다. 그러나, 그 문 밑에 흘러나온 것은….
큰세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 피 아냐?”
피?
정말로, 검붉은 액체가 진득하게 문 아래 바닥에 질질 흘러내려 있었다.
“…….”
인지하고 나자, 지금까지 녹슨 냄새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철분.’
피다.
“…!!”
“으아아악!!”
“으하악!!”
기겁한 비명이 공동을 꽉 채웠다.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신고….’
X발 어디다 신고한단 말인가? 이게 뭐야?
[맙소사 이게 대체 뭐야 XX! 피잖아!!]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악!!”
“올라가, 당장 올라…!”
그때.
달칵.
갑자기 불이 돌아왔다.
순식간에 시야가 훤해졌다.
“…??”
“어?”
아주 그윽한 조명등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음산한 창고라고 생각했던 곳은… 제법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셀러였다.
“…?!”
아까 본 나무 박스도 순 분위기용으로 쌓아둔 모양새다.
누가 봐도 인테리어 좋은 보관고.
그리고 내가 본 문은…….
“…냉동고잖아?”
그렇다.
문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모던한 회색으로 반질거리는 냉동고였다.
“…….”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냉동고 문을 열었다.
아직 냉기가 남아 있는지, 코가 시원해졌다.
그리고 각종 소시지나 고기들이 녹으며 핏물이 빠져서 아래로 흘러나온 게 보였다.
비린내의 근원지였다.
“…….”
“…….”
길고 긴 침묵이 흘렀다.
“아, 여기 있던 게 맞았구나.”
“무, 문대야. 나 두꺼비집, 찾았어…!”
“…얘들아?”
“저, 저기…?”
분전반을 찾은 3층 탐사대 놈들이 여기까지 내려올 때까지, 나머지 놈들은 허망하게 서서 자신들의 바보짓을 곱씹었다.
그 나머지 놈들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
* * *
“그래도 고기는 많다.”
“그러게, 사람 고기로 착각해서 문제였지.”
조용히 해라.
정신을 차린 뒤, 나는 냉동고에서 아직 녹지 않아 먹을 수 있는 고기를 꺼냈다.
이 별장 주인에게 나중에 양해를 구해야겠지만, 자연재해 탓이니 어느 정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봐봐요! 안 잡길 잘했어요!”
“……그러게.”
나는 차유진이 번쩍 들어 올리는 냉동 토종닭을 보고 묵묵히 긍정했다.
“위에 냉장고 다시 가동되니까, 먹을 거 몇 가지는 옮기자.”
“넵~”
‘그래도 그 얼간이 같은 모습이 안 남아서 다행이지….’
나는 내심 안도했으나, 헛된 안심이었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요새 카메라들이, 생각보다 배터리가 길게 가더라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7화
무인도 조난 1일째.
콰과광!!
별장 밖에서는 여전히 미친 듯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이걸 지은 놈이 자기 안전에 아주 투철한 정신을 소유해서 다행이지.’
그래도 별장은 멀쩡해서 다행이었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거실에 드러누웠다.
옆에 차유진이 똑같이 드러눕는다.
“그래. 대단히 위로가 된다.”
“히히!”
웃지 마라, 이놈아.
헛웃음이 나긴 한다만, 그래도 머릿속이 좀 복잡했다.
‘촬영 어쩌냐.’
이대로 며칠 분량이 날아가면 정말로 망한 것 같……….
“…!”
…아주 단정적으로 말하는군.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비가 몰아치는 밖을 보고 인정했다.
‘뭐 날씨를 내가 어쩌겠냐.’
어차피 땜빵 편성이었는데 예능 하나 말아먹는다고 큰일 나진 않겠지. 다음 걸 잘하면 된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맞아요!”
나는 거실에 누워서 비를 보며, 아무 생각 없이 식사 시간까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점심시간.
일곱이 다 같은 보존 식으로 식사를 하고 있자니 정말로 무슨 재난 영화에 들어온 기분이 들긴 한다.
“으음, 우리 축사 가서 계란이라도 있나 보고 올까요?”
“세진아, 쓸려 간다.”
“넹.”
그렇게 감흥 없는 식사를 두 번쯤 마치고 나니 시간이 붕 뜬다.
게다가 안 그래도 느리던 스마트폰 데이터 서비스는 한층 더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고립된 느낌 나는데….’
덕분에 정말로 할 게 없다.
오늘 식사 준비를 담당해서 뒷정리를 면제받은 나는, 기상 상황이 제일 잘 보이는 거실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보드게임도 할 게 다 떨어졌고, 뭐 밖에 나가서 식량을 구할 수도 없으니….
지이잉. 툭.
“…!!”
그때.
갑자기, 주변이 캄캄해졌다.
“어어??”
“다들 괜찮으십니까?”
정전이었다.
무인도라 밤에는 밖에 다른 광원이라곤 없다. 완전히 칠흑 같은 암전.
나는 바로 상체를 일으켰다.
그 순간, 누군가 어깨를 덥석 잡았다.
“…!”
“형!”
“그래.”
…차유진이군. 거실에 빨래를 가져오던 중이었지.
나는 목소리를 확인한 뒤, 다른 놈들의 목소리를 파악했다.
“얘들아, 일단 움직이지 말고 암적응부터 하자.”
이건 류청우고.
“네, 네…!”
“와, 5초만 빨랐으면 설거지 중에 멈출 뻔했다니까요.”
이건 선아현이랑 큰세진.
차유진은 옆에 있고, 김래빈은 소파에.
남은 건…….
‘배세진은?’
그 순간, 밑에서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읍!
“…!”
“형!”
다행히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멀쩡했다.
“…괜찮아!”
다만 약간 떨리고 있긴 했다. 나는 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외쳤다.
“무슨 일 있어요?”
“이, 이상한 걸 봤는데… 아니, 오지 마! 내가 갈게.”
“아뇨. 계세요.”
너야말로 움직이지 마라.
나는 손에든 스마트폰에서 손전등 기능을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가요!”
같이 가는 건 괜찮다만 남의 목을 조르진 말고.
나는 차유진을 달고서, 불빛을 보고 달려온 다른 놈들과 합류해 빠르게 이동했다.
“세진 형, 거기 있어요?”
배세진은 애매한 자세로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스마트폰 손전등 불빛이 들어오자 화색이 되는 게 아무래도 암전이 무섭긴 했나 보다.
“다리 괜찮아?”
“…괜찮아. 문제없어.”
배세진은 그 말대로 류청우의 손을 붙잡고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약간 긴장한 기색이다.
“저기… 넘어지면서 내가 뭘 민 것 같은데.”
배세진이 침을 삼켰다.
“저런 게… 나와서.”
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즉시 스마트폰 불빛을 움직였다.
반쯤 밀린 캐비닛.
그리고 그 뒤에, …문?
불빛에 드러난 것은, 칙칙한 색의 방화문이 맞았다.
“헐.”
“이게 뭐야.”
배세진이 저걸 발견할 수 있던 건 바닥에 은은하게 야광 빛이 도는 탓인 것 같다. 아무래도 야광 도료 따위를 쓴 것 같다.
“와, 이거 무슨 비밀 방 같은 건가?”
“제 생각에는 대피 용도로 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럴싸한데.”
숙덕거리던 놈들은, 곧 ‘사유지니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매우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지하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
구조상 저 문 너머 근처가 들꽃길이었던 것 같다.
큰세진이 으스스하게 뒤에서 중얼거렸다.
“이거 꼭 그거 같지 않냐? 왜 눈 오는 산장에서 고립됐는데, 숨겨진 문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억!”
“아니다.”
끔찍한…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나는 큰세진의 등짝을 갈기고 도로 거실로 돌아왔다.
다른 놈들도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며, 각자 방에 들러서 스마트폰을 찾았다.
“휴.”
“이걸로 손전등을 찾을까요?”
“현관 옆 팬트리에 있었어. 가져올게.”
“오오~”
류청우의 활약으로 손전등을 확보하고 나자, 좀 살 만해졌다.
문제는 이대론 스마트폰을 다시 충전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아껴 써야겠는데.’
전기가 나갔으니 별수 없지. 나는 혀를 찼다.
“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 모여서 잘까?”
“대찬성이요~”
“무서운 이야기 말해요!”
그날은 거실에 모여서 취침했다.
차유진이 자신이 영어로 무서운 이야기를 할 테니 번역해달라는 것을 넘기느라 기력을 추가 소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상황은 더 환장하게 흘러갔다.
“다, 닭장이…!”
“어어? 떠내려가는데??”
이틀 내내 내린 비 때문에 물이 앞마당까지 들어찬 것이다.
덕분에 강풍에 열린 축사 문 사이로 흘러나온 병아리들이 둥둥 떠서 마당 아래로 쓸려 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흐르는 흙탕물 위, 노란 덩어리가 점점이 멀어진다….
꼬고고꼭!!
닭이 애처롭게 운다.
“안 돼요!!”
“구, 구해줘야 해…!”
결국 다급함에 우산도 우비도 안 걸치고 잠옷 차림 맨몸으로 다 같이 축사까지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환장하겠네.’
“잡아! 잡아!”
“얘들아, 안 넘어지게 조심해! 몸 낮추고!”
다행인 건 운동을 꾸준히 하던 놈들이라 흙탕물 속에 머리 박는 놈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병아리들은 우여곡절 끝에 다 구출은 되었다.
차유진과 류청우가 활약했다는 점만 말해두겠다.
“다행이다!”
“휴우우….”
양손에 다 젖은 노란 덩어리들을 든 놈들은 뒤뚱뒤뚱 축사로 걸어가서 원상복구를 시도했다.
“휴, 다행이다.”
“온 김에 계란도 가져가죠!”
비를 온몸으로 다 맞고 있는데 옷에서 물기를 짜내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만, 어쨌든 간에 놈들은 몰골을 정리하며 뿌듯해했다.
그리고… 계란이라.
‘음.’
나는 머리를 털며 말했다.
“한 마리 먹을까.”
“예?”
“어어어??”
“암탉이 다섯 마리니까 하나는 잡아도 될 것 같아서.”
“…!!”
성인 7명인데 닭 한 마리 못 잡진 않겠지.
김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보존 식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좋지 않…….”
“No!! No! 안 돼요!!”
“으아아니 세상에 문대야 방금 구출한 이 조그만 병아리들을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걔네 말 못 알아들어. 그리고 원래 다 먹으려고 키우는 거 아니냐.”
그리고 막상 닭 잡으면 제일 좋아할 놈들이 제일 반대하는 게 웃기긴 하는군.
차유진이 제일 반대가 극렬했다.
“먹는 거 아니에요!! 잘 키우는 거예요!”
이놈은 영어까지 섞어가며 ‘어린 왕자와 장미’ 비유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오냐, 알았다.
“하하, 그래. 달걀이나 가져가자.”
류청우의 정리를 끝으로, 김래빈이 나에게 은밀하게 속삭였다.
“닭을 잡으면 차유진에게 분배해 주지 않는 건을 강력히 건의합니다.”
“…….”
아무튼 그 난리를 겪고 계란을 쥐고 실내로 복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또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물이 차갑더라.”
“그러게요.”
정전 탓인지 온수가 안 나와서 졸지에 냉수마찰을 했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한다는 배세진은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을 한 모양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주방이 인덕션이 아니라 가스로 돌아가서 그나마 밥은 따뜻하게 해 먹어서 다행이었다만, 이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식사 후, 흰 쌀밥에 반숙 프라이와 고추참치로 배를 채운 놈들에게 말을 꺼냈다.
“일단 전기부터 어떻게 해야겠어.”
“…그렇지.”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특별히 전문 지식이 없습니다만.”
그래. 다들 직업군이 겹쳐서 문제다. 예체능에 일생을 바친 놈들 사이에 애매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배세진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발언했다.
“두꺼비집, 같은 거 올리면 되는 거 아닌가.”
“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 분전반 차단기가 내려간 류의 문제일 확률도 있다.
나는 ‘태양광으로 전기를 수급해 왔는데, 요 며칠 해가 안 나서 전기까지 끊겼다…’는 상당히 비관적인 추론을 하던 중에 일단 멈췄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될지도 모르지.’
류청우가 팔짱을 꼈다.
“음, 어디쯤 있을까. 현관 밑이나 외벽에는 안 보이던데.”
“여, 여쭤볼까요…?”
그 말대로 PD에게 문자를 넣어보려고 했으나, 빈번히 실패가 떴다. 신호가 잘 안 잡히는 것 같다.
“강풍 때문에 장치가 망가졌나?”
“워낙 외진 곳이라 그럴 수도 있죠. 지금까지도 몇 번 잘 안 잡혔잖아요.”
“으음.”
잠시 고민했으나, 곧 의견은 하나로 결론 났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두꺼비집이나 찾아볼까요.”
“그렇게 하시죠~”
그리하여 대충 둘 셋으로 나뉜 놈들은 손전등을 하나씩 지참하고 집 구석구석을 탐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뭐, 해 떨어지기 전에는 찾겠지.
* * *
“음, 없는데?”
“…….”
왜 안 보이냐.
-아무래도 우리가 발견할 확률이 높지?
-그래.
나는 큰세진, 김래빈과 함께 1층 수색을 맡았다.
그리고 이런 건 보통 1층 구석에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제법 긴 시간을 돌아다녔는데도 분전반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층에 있을 가능성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만….”
주택이라면 보통은 저층에 있지 않나?
그때, 김래빈이 손을 번쩍 들었다.
“혹시 지난번에 배세진 형께서 발견하신 비밀 문 안에 있는 건 아닐까요?”
“…!”
“오~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캐비닛 뒤에 숨겨진, 칙칙한 색의 방화문을 떠올렸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다.’
지하로 이어지는 것 같았으니, 보일러실이 있고 거기에 분전반도 설치되었을 수 있다.
“가볼까?”
“…그래.”
나는 놈들과 함께 캐비닛이 있던 복도 구석으로 향했다.
그 방향으로 갈수록 창문이 없어 어두워졌다. 낮인데도 손전등을 켜야 했다.
“잘 가져왔네~ 하마터면 무서울 뻔!”
“시야 확보는 역시 중요합니다.”
캐비닛 앞까지는 금방 도착했다. 반쯤 밀린 캐비닛을 마저 밀어버리자, 제법 커다란 방화문이 손전등 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보일러실 입구라기엔 좀 과하긴 한데.’
“내가 열까?”
“…괜찮아.”
손전등 잡고 있는 사람이 여는 게 낫겠지.
나는 방화문 손잡이를 잡아서 돌렸다.
문은 잠겨 있진 않았다.
끼이이익.
자주 열지 않는 듯, 꺼림칙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 안은 시커멓게 불 없이 조용했다.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어슴푸레 보였다.
“…….”
“…….”
“…좀 무섭네?”
아니, 기분 탓이다.
“가자.”
“잠깐!”
“다, 다른 곳을 수색 중인 분들과 합류하여 같이 이동하는 건 어떻습니까??”
“문대 너도 무섭잖아~ 표정에 다 보이는데?”
전적으로 쫄보 두 놈이 적극적으로 주장한 탓에, 잠시 기다려서 2층 수색팀과 합류했다.
“아, 여기.”
“WOW, 캄캄해요!”
배세진과 차유진이다.
저 조합이 2층 수색도 다 끝냈을지 의심스럽긴 하다만… 어쨌든 합류했으니 들어가기나 하자.
다섯이 된 우리는 방화문이 열려있도록 고정하고, 손전등의 불빛에 의존해서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지하라 그런지 온도가 낮고, 어딘가 녹슨 비린내가 났다.
뚜벅.
“여긴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주인분 취향이겠죠.”
“그렇긴 하지.”
뚜벅.
“…좀 생각했던 건데.”
“예.”
배세진이 발을 멈췄다.
“이 사람은 왜 굳이, 무인도에다가 이런 별장을 지은 거지…?”
“…….”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 조용한 게 좋으셨겠죠~”
“근데 그걸 예능용으로 제공했잖아.”
배세진이 식은땀이라도 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용한 게 좋았던 거면, 나라면 그렇게 안 해.”
“…….”
다시 일동이 조용해졌으나, 곧 여기저기서 필사적인 변호가 튀어나왔다.
“예능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방송국에 사이가 아주 가까운 지인분이 계셨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미안.”
배세진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약간 뻣뻣해진 목을 돌려서 앞을 가리켰다.
“다 내려온 것 같은데요”
“아.”
어느새 계단이 끝나고 바닥이 나왔다.
거대한 공동은… 사방에 나무 박스 같은 게 쌓여있는 것 같았다.
“오, 창고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약간 안심했는지 다른 놈들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분전반….’
그리고 나는 계속 벽을 찾아 손전등을 돌리다가, 예상치 못한 것을 발견했다.
“…!”
“어어?”
또 다른 문이었다. 심지어 양문.
특이할 건 없었다. 그러나, 그 문 밑에 흘러나온 것은….
큰세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거 피 아냐?”
피?
정말로, 검붉은 액체가 진득하게 문 아래 바닥에 질질 흘러내려 있었다.
“…….”
인지하고 나자, 지금까지 녹슨 냄새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철분.’
피다.
“…!!”
“으아아악!!”
“으하악!!”
기겁한 비명이 공동을 꽉 채웠다.
나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신고….’
X발 어디다 신고한단 말인가? 이게 뭐야?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악!!”
“올라가, 당장 올라…!”
그때.
달칵.
갑자기 불이 돌아왔다.
순식간에 시야가 훤해졌다.
“…??”
“어?”
아주 그윽한 조명등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음산한 창고라고 생각했던 곳은… 제법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셀러였다.
“…?!”
아까 본 나무 박스도 순 분위기용으로 쌓아둔 모양새다.
누가 봐도 인테리어 좋은 보관고.
그리고 내가 본 문은…….
“…냉동고잖아?”
그렇다.
문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모던한 회색으로 반질거리는 냉동고였다.
“…….”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냉동고 문을 열었다.
아직 냉기가 남아 있는지, 코가 시원해졌다.
그리고 각종 소시지나 고기들이 녹으며 핏물이 빠져서 아래로 흘러나온 게 보였다.
비린내의 근원지였다.
“…….”
“…….”
길고 긴 침묵이 흘렀다.
“아, 여기 있던 게 맞았구나.”
“무, 문대야. 나 두꺼비집, 찾았어…!”
“…얘들아?”
“저, 저기…?”
분전반을 찾은 3층 탐사대 놈들이 여기까지 내려올 때까지, 나머지 놈들은 허망하게 서서 자신들의 바보짓을 곱씹었다.
그 나머지 놈들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굳이 부정하진 않겠다….
* * *
“그래도 고기는 많다.”
“그러게, 사람 고기로 착각해서 문제였지.”
조용히 해라.
정신을 차린 뒤, 나는 냉동고에서 아직 녹지 않아 먹을 수 있는 고기를 꺼냈다.
이 별장 주인에게 나중에 양해를 구해야겠지만, 자연재해 탓이니 어느 정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봐봐요! 안 잡길 잘했어요!”
“……그러게.”
나는 차유진이 번쩍 들어 올리는 냉동 토종닭을 보고 묵묵히 긍정했다.
“위에 냉장고 다시 가동되니까, 먹을 거 몇 가지는 옮기자.”
“넵~”
‘그래도 그 얼간이 같은 모습이 안 남아서 다행이지….’
나는 내심 안도했으나, 헛된 안심이었다는 걸 곧 깨닫게 되었다.
…요새 카메라들이, 생각보다 배터리가 길게 가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