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4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3화
모니터링 장비에서는 무대 위 VTIC이 어색해지는 일 없이 유창하게 토크를 이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실 오래 활동할수록 동료 아이돌분들 곡을 커버할 일이 점점 줄어들잖아요.]
[맞아, 맞아~ 콘서트도 우리 곡으로 전부 채울 수 있게 되거든요!]
[그게 참 멋진 일이죠. 그래도 오랜만에 커버 무대 준비하면서 참 재밌었습니다.]
안 봐도 댓글에 ‘그러게 계급장 떼고 붙어도 X바를 수 있는데 억울했을 듯ㅋㅋ’ 같은 소리가 우수수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려다가 참았다. 스텝이 내 마이크 위치를 조정해 주는 걸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저 두 놈, 전문 예능에선 영 힘을 못 쓰더니 자기들끼리는 제법 그럴싸하게 말할 줄 아는군.
“토, 토크… 잘하시는구나.”
“8년 넘게 했을 텐데 당연히 그래야지.”
“그, 그렇죠?”
선아현의 감탄에 배세진이 불퉁하게 대꾸했다. 아무래도 청려가 여기 온 게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뭐, 예상했던 일이다. 처음 말 꺼냈을 때도 경악하더라고.
-그 미친놈이 이런 행사는 왜…!!
-플랫폼이 그 소속사 거라서요. 아무래도 거절하긴 힘들 것 같은데.
-윽…!
-그래서… 그냥 그 그룹을 다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긴 한데.
그 후 ‘애초에 꼭 이 콘서트를 그 플랫폼에서 해야겠냐’로 치환되는 긴 논의가 이어졌으나, 배세진은 결국 다수결에서 패배했다.
참고로, 청려가 휴가 당시 나와 개싸움을 벌인 새끼라는 것을 아는 다른 놈은… 음, 마침 예스만 외치는 리액션 로봇 상태였었지.
-…그래? 알았어~ 열심히 해야겠네.
당시 큰세진의 리액션은 이걸로 끝이었다.
문제는 이제 와서 상당히 불손한 제스처를 하는 중이라는 건데… 야, 부채질하는 척 참수하는 시늉하지 마라.
이렇게 보면 다들 긴장과 경계 중인 것 같다만, 물론 그냥 신난 놈도 있다.
가령 김래빈.
“상당히 모험적이면서도 세련된 편곡이었습니다. 다음에 저희도 선배님들의 을 좀 더 현대적으로 편곡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
그거 아니다.
‘그렇게까지 가면 진짜 기 싸움이 된다….’
‘너희가 감히 행차를 이렇게 쓰냐? 나도 산군에 똑같이 해주겠다’로 보이겠지.
지금 기부 콘서트 명목으로 아슬아슬하게 물 위에선 훈훈한 분위기로 넘어갈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면 정말 답이 없다.
경연 프로그램도 아니고 이게 무슨 디스전이냐며 신난 이슈 위튜버들이 붙을 거고, 그러면 진정한 개판이 벌어진다.
다행히 내가 입 열기 전에 류청우가 먼저 김래빈의 말을 부드럽게 컷했다.
“기회 있으면 해보자.”
“예!”
그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곤 짐작도 못 하는 얼굴이군.
“…….”
그래도 뭐… 하나라도 행복하다니 됐나.
아니, 한 놈 더 있다.
“우리도 깃발 써요!! 깃발 멋있어요!!”
차유진은 노래라도 하나 새로 만들 기세다. 배세진이 떨떠름한 얼굴로 놈에게 묻는다.
“…긴장 안 돼?”
“왜 해요?”
“그… 앞 사람들이 잘했으니까.”
“괜찮아요. 나 잘해요! 음, 우리 잘해요!”
“…!”
배세진은 갑자기 얼굴에 비장감이 돌고 있다.
“그, 그렇지!”
“맞아요!”
그래, 기합이나 넣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얹었다.
“열심히 하고 옵시다.”
“으, 으응!”
“그래요, 이 콘서트를 강력히 주장하셨던 문대 씨~”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안무가를 섭외한 문대 씨.”
“…….”
류청우까지?
무대 제대로 해야겠군. 망하는 순간 이놈들이 날 거꾸로 매달고 아가리에 홍삼을 쏟을 것 같다.
물론 망할 생각은 없다.
‘준비한 대로만 하자.’
나는 웃으며 놈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다시 테스타의 차례다.
* * *
“우와!!”
컴퓨터 앞에 앉은 대학원생은 직전에 본 VTIC의 무대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정말 멋진 무대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래도 원곡 무대가 더 좋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테스타 원곡이니까!’
그녀는 이런 명곡을 타이틀로 멋지게 소화해 냈던 테스타에 자부심을 한 번 더 느끼며, VTIC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 아이돌들 진짜 멋있다~’
여기까지가 업계의 심연을 맛보지 않은 사람의 평이었다.
신나게 둘 모두를 칭찬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골수팬들은 머리를 쥐어 잡고 이걸 어쩌면 좋을지 떠드는 중이었다.
-X발 느그틱 새끼들은 숟가락을 주체를 못 하나 후배 콘서트까지 와서 주책이네
-그냥 애들끼리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진짜 갑질 역겹다
-기부 콘서트에 게스트로 오면서 저게 다 뭐야 댄서 다 끌고 오고… 와 피 확식
-인터넷 끊어야겠다
VTIC 쪽도 크게 다를 건 없었으나, 초반의 당혹과 분노가 가라앉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나왔다.
무대가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짓 할 시간에 예능이나 보내주는 편이 나았어 그래도 빅토리깅이들 이겼으니 됐다ㅋ
└ㅋㅋㅋㅋㅋ아 영업동영상으로 열심히 써야지^^
└산군 역주행 한 번 더 가자 하는 김에 행차도 해주자 VTIC 버전 내달라고 요청도 넣고ㅎㅎ
-애들 매번 자기들만 모르는 의문의 1승 하는 거 너무 재밌어 그래 이 맛에 티카 하지
-초동 기간에 이런 거 할 시간 있으면 팬싸나 잡아ㅠㅠ 아 ㅅㅂ개싸움 나겠네
SNS와 커뮤니티마다 깜짝 등장한 VTIC의 무대가 올라오던 그 시각.
[VTIC 들어가 보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VTIC은 짧은 토크를 마무리하고 친근히 인사한 뒤 들어갔다.
새로운 문구가 떠오른 전광판을 콕콕 찌르면서.
[다음 무대는]
1.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2.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직전과 비슷한 보기였다.
다만 원래 ‘VTIC이 커버하는 테스타다’가 적혀 있던 보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오묘한 부호가 붙은 문장이 채우고 있었다.
-?
-2번 머임
-물음표 왜 붙었엌ㅋㅋ
당연하지만, 도저히 뜻을 알 수 없는 느낌에 댓글이 다시 기세를 탔다.
VTIC 때문에 접속한 그들의 팬들도 다시 거론된 이름에 잠시 나가는 것을 보류했다.
-야 이건 또 2번임
-왜 물음표 붙은 건지 궁금해
-왠지 웃긴 거 나올 것 같다고 빠리 #2 쳐라
-ㅋㅋㅋㅋㅋㅋㅋ아 꿀잼
예측 불가의 보기에 즐거워하는 수많은 관객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보기에 투표가 붙었다.
2.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179557)
결과는 2번의 완전한 승리였다.
‘이거 괜찮을까?’
‘뭐든 VTIC 이야기 계속 나올 것 같아서 별론데.’
테스타의 팬들은 보기 자체에 불안해하면서도, 신난 관객들에게 괜한 소리를 할 순 없으니 조용히 테스타의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대로 스테이지가 바뀌는 것이,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무대 시작이었으나….
이번엔 그 대신, 어둠 속에서 소리부터 들렸다.
-산군
Their claws are hella sharp
Readily tear you apart
“…!”
직전에 VTIC이 공연했던… 산군의 노랫말이다.
-테스타도 산군해?
-미친 설마
-헐
당황한 댓글들 너머, 화면의 무대에는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왔다.
팟.
비추는 것은… 어느새 어두운 무대 한 편에 놓인 탁자였다. 카메라가 슬쩍 그것을 클로즈업했다.
탁자 위에는 안테나가 달린 빨간 레트로풍 라디오가 올라가 있었다.
정황상, 마치 노랫소리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연출이었다.
그러나 불쑥, 다부진 손이 탁자 위로 올라오더니 라디오의 버튼을 탁 눌렀다.
-No, you can’t…….
지직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노래가 꺼졌다.
그리고 탁자 위로 손의 주인의 머리가 쓱 들어왔다.
장난스러운 얼굴의 차유진이었다.
[hum, hum, hum~]
차유진은 신난 표정으로 열심히 산군의 멜로디를 따라 허밍하다가, 어깨를 리듬에 맞춰 흔들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팬의 흥겨움이었다.
하지만 관객마저 긴장이 풀릴 순간, 갑자기 허밍을 멈춘 차유진은 예고도 없이 탁자를 잡고 그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BBA-BAM!
경쾌한 브라스 소리가 터졌다.
그 브라스 음에 맞춰, 차유진 주변에서 무대조명이 터질 듯 밝아지며 환하게 주변을 반짝였다.
그리고 관객의 시야에 펼쳐진 무대 위는… 금색, 보라색, 붉은색 풍선과 LED 조명으로 가득한, 10대의 파티장이었다.
소파와 바석, 테이블마다 테스타의 멤버들이 음료를 들거나 앉아서 멈춰 있다.
테이프를 멈춘 듯 움직임 없는 짧은 정적, 그리고….
BBABAM, BAM, BBA-BAAAM!
브라스에 화려한 기교가 가득한 화음이 들어간다.
그리고 차유진의 주변으로, 마치 스며들 듯이 청바지의 류청우와 이세진이 달려와서 대형을 갖춘다.
그들이 스티커와 배너로 어지러운 기둥을 잡고 돌며 안무를 시작하는 순간, 빠른 비트의 일렉트로 스윙 반주가 터져 나왔다!
[Hey partner
내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 My Owner
우리의 교감이 갈 곳이]
차유진이 웃으며 쾌활히 부르는 이 가사.
모든 관객이 아는 곡이었다.
-나싸
-나이트사인!!!
-???? 이걸?
그렇다.
테스타가 선곡한 것은 VTIC의 불멸의 히트곡으로 남을 이었다.
초동 180만 장을 팔아치운 괴물 음반의 타이틀.
그리고 테스타가 데뷔하자마자 동시 발매로 K.O 판정을 당했던 곡이기도 했다.
이 곡은 섹시한 가사와 나른한 음률, 그와 대비되는 강렬한 Inst와 퍼포먼스로 대단히 어려운 무대 강도를 자랑했다.
다만 테스타는 ‘그렇게’ 부르진 않았다.
-와 눈치 못챔
-대박ㅋㅋㅋㅋ
-이렇게 신난 곡이었냐
테스타는 이걸 경쾌한 일렉 기타와 드럼, 디스코풍 전자음이 가득한 반주로 톤을 한껏 끌어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가사는 마치 치기 어린 플러팅처럼 들렸다.
[서로 잡힌 두 손이
섞이고 비틀릴 때
또 기억하는 거야
Night after night]
소파에서 바로, 바에서 테이블로.
테스타는 대형을 옮기며 자연스럽게 다음 파트의 멤버에게 센터를 넘겨줬다.
실물 관객이 없는 무대에는 정면이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퍼포먼스가 자유롭게 중심을 바꿨다.
소파에 누워 있던 박문대를 찍을 때는 천장에서 카메라가 내려오고, 바석에 앉은 선아현에겐 바텐더의 시점처럼 카메라가 들어왔다.
그리고 멤버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소파나 바 위에 서서 동작 큰 안무에 센터로 합류했다.
[이 밤의 끝까지
내 눈을 기억해
Like a night sign
drag you into a trap]
오색찬란한 야광 미러볼이 반짝이고 꽃가루가 터졌다.
멤버들은 딱딱 끊어지는 리듬으로 손과 발을 크게 쓰는 디스코 동작을 응용해 에너지 넘치는 안무를 카메라에 꽉 들어차게 선보였다.
완연한 80년대 초 레트로 하이틴의 분위기였다.
-아 개신나ㅋㅋㅋ
-귀여워ㅠㅠ
-앉은 자리에서 둠칫거리는 중
후배 호스트의 입장에서, 테스타는 다짜고짜 싸움 받아치듯 정면 대결을 고르지 않았다.
대신, 업계에서 연차가 찬 VTIC이 더는 테스타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방향을 고른 것이다.
바로 어린 시절의 열기와 풋풋함이었다.
[Whoo~
Whoo, whoo, whoo
Like a night sign]
멤버들은 볼이 빨개지도록 턴을 돌고, 뛰어다니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과격하지 않게, 깔끔하게, 리스펙트의 느낌으로 곡을 끌었다.
게다가 박문대가 소화하는 메인보컬 파트는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이젠 VTIC도 저 파트를 저렇게 부를 수는 없을 테니까.
-와 고음;
-진짜 노래는 일품임
-하필 메인보컬이 그래서ㅉㅉ
그것만으로도 VTIC의 무대로 부푼 관객의 마음이 살짝 꺼졌다. 압도된 머리가 식었기 때문이다.
테스타는 그 넘치는 에너지 그대로, 처지는 일 없이 깔끔하고 신나게 무대를 끌고 갔다.
그리고, 2번과 1번의 차이점은 마지막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나는 파티로 마무리되는 듯하던 그 무대 위에서, 색색의 옷을 입은 멤버들이 마무리 대형을 갖추어 선 순간.
갑자기 조명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멤버들은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움직임을 멈췄다.
검고 하얀 무대 위.
내레이션이 울렸다.
[Welcome, welcome
이건 너를 부르는 소리]
본인들의 곡, 악몽 컨셉인 의 후렴구였다.
음산한 목소리.
파티장 뒤, 거대한 배너가 갑자기 풀려 떨어지더니, 그 뒤로 고딕체의 거대한 문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To be continued…?]
콰과과광!!
천둥소리와 함께, 멤버들은 고개를 뚝 꺾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치 미국의 고전적인 하이틴 공포영화의 예고편처럼.
그리고… 무대는 뚝, 조명이 사라지며 끝났다.
[—-.]
그 대신 의자 7개가 놓인 평화로운 진행 세트가 천연덕스럽게 도로 화면을 차지했을 때.
-????
-야 여기서 끊으시면
-알았어 투표할게ㅋㅋㅋㅠㅠㅠ
-부름 보여줘!!!!
-기부금 쏴야 보여주는 거임?? 기준 금액 불러
당연하지만, 댓글은 잠시간의 당황 뒤에 자연스럽게 투표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비교하려는 호기심을 다음 무대를 기대하는 호기심으로 소화하는 것.
테스타는 VTIC을 감히 그렇게 써먹었고, 관객들의 관심을 계속 화면에 붙들어놓았다.
성공적인 기획이었다.
* * *
잠시 뒤. 광고가 편성된 쉬는 시간.
우리는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뒤 VTIC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와!!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춤 봐, 우리는 이제 그렇게 못 춘다니까. 여러분도 얼른 관절 영양제 챙겨 드세요. 이 직업은 무릎이 생명이라.”
“와 맞아! 제가 먹는 제품 있는데 추천해 줄까요??”
“……좋죠.”
이 새끼들 되게… 친한 척하네.
나는 겨우 예능에서 한 번 봤던 놈들이 개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꼴을 보며, 청려를 힐끔 돌아보았다.
“…….”
놈은 김래빈과 대화하다가, 이쪽을 보고 실실 웃었다. 그래, 어떤 놈들을 뽑아놓은 건지 알겠다.
“아, 지금 문자로 제품명 보냈는데 한번 보세요.”
“음, 예.”
나는 한숨을 참으며 내 스마트폰을 꺼냈다.
두 놈의 눈이 초롱해졌다.
“오~ 혹시 우리 이름은 어떻게 저장….”
[VTIC 신오 선배님]
[VTIC 채율 선배님]
“오…….”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분류했구나….”
뭘 기대했냐.
나는 대충 영양제 추천 고맙다는 말을 주억거린 다음 이 대화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형님들, 오랜만입니다~”
“오, 세진이!”
저놈이 백업해 줘서 편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리고 잠시 뒤, VTIC이 스케줄을 위해 떠나기 직전.
나는 아직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청려에게 작별 인사 대신 질문을 들었다.
아니, 질문의 탈을 쓴 확신을.
“원하는 건 얻었죠?”
“…….”
나는 상태창을 불러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3화
모니터링 장비에서는 무대 위 VTIC이 어색해지는 일 없이 유창하게 토크를 이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안 봐도 댓글에 ‘그러게 계급장 떼고 붙어도 X바를 수 있는데 억울했을 듯ㅋㅋ’ 같은 소리가 우수수 달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려다가 참았다. 스텝이 내 마이크 위치를 조정해 주는 걸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저 두 놈, 전문 예능에선 영 힘을 못 쓰더니 자기들끼리는 제법 그럴싸하게 말할 줄 아는군.
“토, 토크… 잘하시는구나.”
“8년 넘게 했을 텐데 당연히 그래야지.”
“그, 그렇죠?”
선아현의 감탄에 배세진이 불퉁하게 대꾸했다. 아무래도 청려가 여기 온 게 영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뭐, 예상했던 일이다. 처음 말 꺼냈을 때도 경악하더라고.
-그 미친놈이 이런 행사는 왜…!!
-플랫폼이 그 소속사 거라서요. 아무래도 거절하긴 힘들 것 같은데.
-윽…!
-그래서… 그냥 그 그룹을 다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긴 한데.
그 후 ‘애초에 꼭 이 콘서트를 그 플랫폼에서 해야겠냐’로 치환되는 긴 논의가 이어졌으나, 배세진은 결국 다수결에서 패배했다.
참고로, 청려가 휴가 당시 나와 개싸움을 벌인 새끼라는 것을 아는 다른 놈은… 음, 마침 예스만 외치는 리액션 로봇 상태였었지.
-…그래? 알았어~ 열심히 해야겠네.
당시 큰세진의 리액션은 이걸로 끝이었다.
문제는 이제 와서 상당히 불손한 제스처를 하는 중이라는 건데… 야, 부채질하는 척 참수하는 시늉하지 마라.
이렇게 보면 다들 긴장과 경계 중인 것 같다만, 물론 그냥 신난 놈도 있다.
가령 김래빈.
“상당히 모험적이면서도 세련된 편곡이었습니다. 다음에 저희도 선배님들의 을 좀 더 현대적으로 편곡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
그거 아니다.
‘그렇게까지 가면 진짜 기 싸움이 된다….’
‘너희가 감히 행차를 이렇게 쓰냐? 나도 산군에 똑같이 해주겠다’로 보이겠지.
지금 기부 콘서트 명목으로 아슬아슬하게 물 위에선 훈훈한 분위기로 넘어갈 것 같은데, 거기까지 가면 정말 답이 없다.
경연 프로그램도 아니고 이게 무슨 디스전이냐며 신난 이슈 위튜버들이 붙을 거고, 그러면 진정한 개판이 벌어진다.
다행히 내가 입 열기 전에 류청우가 먼저 김래빈의 말을 부드럽게 컷했다.
“기회 있으면 해보자.”
“예!”
그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라곤 짐작도 못 하는 얼굴이군.
“…….”
그래도 뭐… 하나라도 행복하다니 됐나.
아니, 한 놈 더 있다.
“우리도 깃발 써요!! 깃발 멋있어요!!”
차유진은 노래라도 하나 새로 만들 기세다. 배세진이 떨떠름한 얼굴로 놈에게 묻는다.
“…긴장 안 돼?”
“왜 해요?”
“그… 앞 사람들이 잘했으니까.”
“괜찮아요. 나 잘해요! 음, 우리 잘해요!”
“…!”
배세진은 갑자기 얼굴에 비장감이 돌고 있다.
“그, 그렇지!”
“맞아요!”
그래, 기합이나 넣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얹었다.
“열심히 하고 옵시다.”
“으, 으응!”
“그래요, 이 콘서트를 강력히 주장하셨던 문대 씨~”
“퇴원한 지 하루 만에 안무가를 섭외한 문대 씨.”
“…….”
류청우까지?
무대 제대로 해야겠군. 망하는 순간 이놈들이 날 거꾸로 매달고 아가리에 홍삼을 쏟을 것 같다.
물론 망할 생각은 없다.
‘준비한 대로만 하자.’
나는 웃으며 놈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다시 테스타의 차례다.
* * *
“우와!!”
컴퓨터 앞에 앉은 대학원생은 직전에 본 VTIC의 무대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정말 멋진 무대였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래도 원곡 무대가 더 좋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테스타 원곡이니까!’
그녀는 이런 명곡을 타이틀로 멋지게 소화해 냈던 테스타에 자부심을 한 번 더 느끼며, VTIC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 아이돌들 진짜 멋있다~’
여기까지가 업계의 심연을 맛보지 않은 사람의 평이었다.
신나게 둘 모두를 칭찬하는 일반인들과 달리, 골수팬들은 머리를 쥐어 잡고 이걸 어쩌면 좋을지 떠드는 중이었다.
-X발 느그틱 새끼들은 숟가락을 주체를 못 하나 후배 콘서트까지 와서 주책이네
-그냥 애들끼리만 해도 충분했을 텐데.. 진짜 갑질 역겹다
-기부 콘서트에 게스트로 오면서 저게 다 뭐야 댄서 다 끌고 오고… 와 피 확식
-인터넷 끊어야겠다
VTIC 쪽도 크게 다를 건 없었으나, 초반의 당혹과 분노가 가라앉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도 나왔다.
무대가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짓 할 시간에 예능이나 보내주는 편이 나았어 그래도 빅토리깅이들 이겼으니 됐다ㅋ
└ㅋㅋㅋㅋㅋ아 영업동영상으로 열심히 써야지^^
└산군 역주행 한 번 더 가자 하는 김에 행차도 해주자 VTIC 버전 내달라고 요청도 넣고ㅎㅎ
-애들 매번 자기들만 모르는 의문의 1승 하는 거 너무 재밌어 그래 이 맛에 티카 하지
-초동 기간에 이런 거 할 시간 있으면 팬싸나 잡아ㅠㅠ 아 ㅅㅂ개싸움 나겠네
SNS와 커뮤니티마다 깜짝 등장한 VTIC의 무대가 올라오던 그 시각.
VTIC은 짧은 토크를 마무리하고 친근히 인사한 뒤 들어갔다.
새로운 문구가 떠오른 전광판을 콕콕 찌르면서.
1.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2.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직전과 비슷한 보기였다.
다만 원래 ‘VTIC이 커버하는 테스타다’가 적혀 있던 보기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오묘한 부호가 붙은 문장이 채우고 있었다.
-?
-2번 머임
-물음표 왜 붙었엌ㅋㅋ
당연하지만, 도저히 뜻을 알 수 없는 느낌에 댓글이 다시 기세를 탔다.
VTIC 때문에 접속한 그들의 팬들도 다시 거론된 이름에 잠시 나가는 것을 보류했다.
-야 이건 또 2번임
-왜 물음표 붙은 건지 궁금해
-왠지 웃긴 거 나올 것 같다고 빠리 #2 쳐라
-ㅋㅋㅋㅋㅋㅋㅋ아 꿀잼
예측 불가의 보기에 즐거워하는 수많은 관객의 말과 함께, 순식간에 보기에 투표가 붙었다.
2. 테스타가 커버하는 VTIC이다…? (179557)
결과는 2번의 완전한 승리였다.
‘이거 괜찮을까?’
‘뭐든 VTIC 이야기 계속 나올 것 같아서 별론데.’
테스타의 팬들은 보기 자체에 불안해하면서도, 신난 관객들에게 괜한 소리를 할 순 없으니 조용히 테스타의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화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대로 스테이지가 바뀌는 것이, 지금까지의 보편적인 무대 시작이었으나….
이번엔 그 대신, 어둠 속에서 소리부터 들렸다.
-산군
Their claws are hella sharp
Readily tear you apart
“…!”
직전에 VTIC이 공연했던… 산군의 노랫말이다.
-테스타도 산군해?
-미친 설마
-헐
당황한 댓글들 너머, 화면의 무대에는 스포트라이트가 내려왔다.
팟.
비추는 것은… 어느새 어두운 무대 한 편에 놓인 탁자였다. 카메라가 슬쩍 그것을 클로즈업했다.
탁자 위에는 안테나가 달린 빨간 레트로풍 라디오가 올라가 있었다.
정황상, 마치 노랫소리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연출이었다.
그러나 불쑥, 다부진 손이 탁자 위로 올라오더니 라디오의 버튼을 탁 눌렀다.
-No, you can’t…….
지직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노래가 꺼졌다.
그리고 탁자 위로 손의 주인의 머리가 쓱 들어왔다.
장난스러운 얼굴의 차유진이었다.
차유진은 신난 표정으로 열심히 산군의 멜로디를 따라 허밍하다가, 어깨를 리듬에 맞춰 흔들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팬의 흥겨움이었다.
하지만 관객마저 긴장이 풀릴 순간, 갑자기 허밍을 멈춘 차유진은 예고도 없이 탁자를 잡고 그 뒤로 공중제비를 돌았다!
BBA-BAM!
경쾌한 브라스 소리가 터졌다.
그 브라스 음에 맞춰, 차유진 주변에서 무대조명이 터질 듯 밝아지며 환하게 주변을 반짝였다.
그리고 관객의 시야에 펼쳐진 무대 위는… 금색, 보라색, 붉은색 풍선과 LED 조명으로 가득한, 10대의 파티장이었다.
소파와 바석, 테이블마다 테스타의 멤버들이 음료를 들거나 앉아서 멈춰 있다.
테이프를 멈춘 듯 움직임 없는 짧은 정적, 그리고….
BBABAM, BAM, BBA-BAAAM!
브라스에 화려한 기교가 가득한 화음이 들어간다.
그리고 차유진의 주변으로, 마치 스며들 듯이 청바지의 류청우와 이세진이 달려와서 대형을 갖춘다.
그들이 스티커와 배너로 어지러운 기둥을 잡고 돌며 안무를 시작하는 순간, 빠른 비트의 일렉트로 스윙 반주가 터져 나왔다!
내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 My Owner
우리의 교감이 갈 곳이]
차유진이 웃으며 쾌활히 부르는 이 가사.
모든 관객이 아는 곡이었다.
-나싸
-나이트사인!!!
-???? 이걸?
그렇다.
테스타가 선곡한 것은 VTIC의 불멸의 히트곡으로 남을 이었다.
초동 180만 장을 팔아치운 괴물 음반의 타이틀.
그리고 테스타가 데뷔하자마자 동시 발매로 K.O 판정을 당했던 곡이기도 했다.
이 곡은 섹시한 가사와 나른한 음률, 그와 대비되는 강렬한 Inst와 퍼포먼스로 대단히 어려운 무대 강도를 자랑했다.
다만 테스타는 ‘그렇게’ 부르진 않았다.
-와 눈치 못챔
-대박ㅋㅋㅋㅋ
-이렇게 신난 곡이었냐
테스타는 이걸 경쾌한 일렉 기타와 드럼, 디스코풍 전자음이 가득한 반주로 톤을 한껏 끌어올려 버렸기 때문이다.
가사는 마치 치기 어린 플러팅처럼 들렸다.
섞이고 비틀릴 때
또 기억하는 거야
Night after night]
소파에서 바로, 바에서 테이블로.
테스타는 대형을 옮기며 자연스럽게 다음 파트의 멤버에게 센터를 넘겨줬다.
실물 관객이 없는 무대에는 정면이 없었다. 그래서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퍼포먼스가 자유롭게 중심을 바꿨다.
소파에 누워 있던 박문대를 찍을 때는 천장에서 카메라가 내려오고, 바석에 앉은 선아현에겐 바텐더의 시점처럼 카메라가 들어왔다.
그리고 멤버들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소파나 바 위에 서서 동작 큰 안무에 센터로 합류했다.
내 눈을 기억해
Like a night sign
drag you into a trap]
오색찬란한 야광 미러볼이 반짝이고 꽃가루가 터졌다.
멤버들은 딱딱 끊어지는 리듬으로 손과 발을 크게 쓰는 디스코 동작을 응용해 에너지 넘치는 안무를 카메라에 꽉 들어차게 선보였다.
완연한 80년대 초 레트로 하이틴의 분위기였다.
-아 개신나ㅋㅋㅋ
-귀여워ㅠㅠ
-앉은 자리에서 둠칫거리는 중
후배 호스트의 입장에서, 테스타는 다짜고짜 싸움 받아치듯 정면 대결을 고르지 않았다.
대신, 업계에서 연차가 찬 VTIC이 더는 테스타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없는 방향을 고른 것이다.
바로 어린 시절의 열기와 풋풋함이었다.
Whoo, whoo, whoo
Like a night sign]
멤버들은 볼이 빨개지도록 턴을 돌고, 뛰어다니고,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과격하지 않게, 깔끔하게, 리스펙트의 느낌으로 곡을 끌었다.
게다가 박문대가 소화하는 메인보컬 파트는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이젠 VTIC도 저 파트를 저렇게 부를 수는 없을 테니까.
-와 고음;
-진짜 노래는 일품임
-하필 메인보컬이 그래서ㅉㅉ
그것만으로도 VTIC의 무대로 부푼 관객의 마음이 살짝 꺼졌다. 압도된 머리가 식었기 때문이다.
테스타는 그 넘치는 에너지 그대로, 처지는 일 없이 깔끔하고 신나게 무대를 끌고 갔다.
그리고, 2번과 1번의 차이점은 마지막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신나는 파티로 마무리되는 듯하던 그 무대 위에서, 색색의 옷을 입은 멤버들이 마무리 대형을 갖추어 선 순간.
갑자기 조명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끼이이이익.
그리고 멤버들은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움직임을 멈췄다.
검고 하얀 무대 위.
내레이션이 울렸다.
이건 너를 부르는 소리]
본인들의 곡, 악몽 컨셉인 의 후렴구였다.
음산한 목소리.
파티장 뒤, 거대한 배너가 갑자기 풀려 떨어지더니, 그 뒤로 고딕체의 거대한 문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콰과과광!!
천둥소리와 함께, 멤버들은 고개를 뚝 꺾어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치 미국의 고전적인 하이틴 공포영화의 예고편처럼.
그리고… 무대는 뚝, 조명이 사라지며 끝났다.
그 대신 의자 7개가 놓인 평화로운 진행 세트가 천연덕스럽게 도로 화면을 차지했을 때.
-????
-야 여기서 끊으시면
-알았어 투표할게ㅋㅋㅋㅠㅠㅠ
-부름 보여줘!!!!
-기부금 쏴야 보여주는 거임?? 기준 금액 불러
당연하지만, 댓글은 잠시간의 당황 뒤에 자연스럽게 투표창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비교하려는 호기심을 다음 무대를 기대하는 호기심으로 소화하는 것.
테스타는 VTIC을 감히 그렇게 써먹었고, 관객들의 관심을 계속 화면에 붙들어놓았다.
성공적인 기획이었다.
* * *
잠시 뒤. 광고가 편성된 쉬는 시간.
우리는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뒤 VTIC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와!! 정말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춤 봐, 우리는 이제 그렇게 못 춘다니까. 여러분도 얼른 관절 영양제 챙겨 드세요. 이 직업은 무릎이 생명이라.”
“와 맞아! 제가 먹는 제품 있는데 추천해 줄까요??”
“……좋죠.”
이 새끼들 되게… 친한 척하네.
나는 겨우 예능에서 한 번 봤던 놈들이 개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 꼴을 보며, 청려를 힐끔 돌아보았다.
“…….”
놈은 김래빈과 대화하다가, 이쪽을 보고 실실 웃었다. 그래, 어떤 놈들을 뽑아놓은 건지 알겠다.
“아, 지금 문자로 제품명 보냈는데 한번 보세요.”
“음, 예.”
나는 한숨을 참으며 내 스마트폰을 꺼냈다.
두 놈의 눈이 초롱해졌다.
“오~ 혹시 우리 이름은 어떻게 저장….”
“오…….”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분류했구나….”
뭘 기대했냐.
나는 대충 영양제 추천 고맙다는 말을 주억거린 다음 이 대화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형님들, 오랜만입니다~”
“오, 세진이!”
저놈이 백업해 줘서 편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리고 잠시 뒤, VTIC이 스케줄을 위해 떠나기 직전.
나는 아직 무대 의상을 입고 있는 청려에게 작별 인사 대신 질문을 들었다.
아니, 질문의 탈을 쓴 확신을.
“원하는 건 얻었죠?”
“…….”
나는 상태창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