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4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2화
몇 시간 전. 테스타의 비대면 기부 콘서트를 위해 세팅된 무대 그 뒤편.
“물 필요하세요?”
“괜찮습니다.”
청려는 백스테이지가 익숙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당시의 조촐한 지방 축제부터 온전히 VTIC의 스텝으로만 꽉 채워진 스타디움까지.
그는 모든 단계의 업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했고, 익숙함은 겹겹이 쌓여 그의 내면에 깊은 지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VTIC의 멤버들도 리더의 담담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서툰 대응 한번 보이지 않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그 모습에.
그래서 그들도 데뷔 후 전염되듯 빠르게 태연해졌다.
“와 이거 은근히 떨리는 것 같다.”
“그러게요. 이게 게스트의 부담감인가 봐요.”
“맞아. 원래 남의 잔칫집에서 더 잘해야 하는 거야!”
VTIC은 자신들의 위튜브 업로드용 카메라 앞에서 능청스럽게 떠들어대며 평소처럼 청려가 적당한 시점에 치고 들어와 주기를 기다렸다.
적절한 판단이었다.
“뜻깊은 기획이니, 테스타 후배님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맞아요~ 좋은 자리에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테스타 후배님!”
멤버들은 웃으며 카메라에 손을 흔들었고, 청려는 웃는 얼굴로 생각했다.
‘아니, 손해지.’
저런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진심으로 하다니.
사고 발생률과 무대 질만 고려해서 멤버를 선별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기민하게 눈치챈 놈이 없었다.
이대로면 남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십상이란 것을.
‘잘하면 호구, 못하면 퇴물.’
새파란 후배 콘서트에 전원 게스트, 게다가 후배들의 곡을 해주는 동종업계 1군 선배라니.
물론 멤버들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함정이 워낙 보기 좋아서 어쩔 수 없나.’
청려는 이 출연이 이루어진 계기, 박문대의 병문안 당시의 대화를 떠올렸다.
기부 콘서트에 대한 박문대의 첫 제안을.
-공동 주최로 하는 건 어때.
-글쎄요.
이때, VTIC의 스케줄은 곧 살인적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완전체 컴백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려의 솔로 앨범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후, VTIC의 운신 범위는 크게 자유로워졌다.
VTIC 하락세가 가시화되는 것을 염려해 국내 앨범 발매를 미적거리던 이사진의 태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덕분에 청려가 따로 손질할 것도 없이 앨범 준비는 탄력을 받았다.
그리고 보통 VTIC 정도의 위치였던 모든 아이돌이 그렇듯이, 그들도 명목을 위한 한 주간의 국내 음악방송 출연 후 해외를 돌 예정이었다.
그런데 스타디움 투어 리허설과 새 콘서트 준비의 병행이라니.
‘불가능해.’
잠잘 시간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박문대의 병실에 방문한 것만으로도 청려의 수면시간이 줄어들었다.
준비기간 중에도 이런데, 컴백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예측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결정된 미래였다.
청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활동기라 시간이 안 될 텐데.
박문대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게스트로는?
-음.
-어차피 잘될 싹이 보이면 플랫폼에서도 한 발 걸치고 싶을 테고.
박문대의 설명은 명료했다.
이 기부 콘서트의 포맷을 LeTi의 플랫폼과 독점 계약하겠다.
그러면 LeTi가 우호와 홍보의 제스처로, 마침 박문대와 친목이 있는 청려를 출연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 무대나 하나 해주고 숟가락이나 얹으면 된다는 거지.
청려는 그 순간 알았다.
‘이미 알았구나?’
VTIC의 현 스케줄상 공동 기획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박문대는 이 구도로 논의를 끌고 간 것이다.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게스트로 쓴다… 라.’
그리고 아무 무대나 하나 해달라는 말.
언뜻 듣기엔 선배의 바쁜 스케줄을 배려해 준 것 같으나, 사실 차 떼고 포 떼고 와도 된다는 뜻이다.
테스타는 따로 훈련한 콘서트 특별 무대를 하는 사이, 청려 혼자 일반 공연을 하는 것.
체급의 문제였다.
여차하면 청려의 위상에 타격이 생긴다.
박문대가 VTIC의 투어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위험한 행위였다.
-어때.
그러나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다.
그는 잊지 않았다.
‘녹음본.’
납치 당시 대화 녹음본이 박문대의 클라우드에 있을 것이다.
이미 메인보컬이 한차례 사회면을 장식했었다. 이게 터지는 순간 VTIC의 커리어는 끝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청려는 박문대가 녹음본을 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진흙탕 싸움이 될 텐데.’
박문대도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미션이 남은 입장에선 절대 쓸 수 없는 패다.
하지만… 박문대는 당장 생존이 걸려있으니, 여차하면 블러핑으로 녹음본을 거론하며 청려를 협박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우호 관계는 파국이었다.
청려는 그것도 원하진 않았다.
그래서 빠른 판단 후, 빙긋 웃었다.
-좋아요. 게스트 출연.
-그럼….
-아, VTIC 전원 다 나가려고 하는데.
-…!
-괜찮죠? 관객도 더 많아질 것 같고.
미친 짓이었다.
청려 혼자 출연하면 만일의 경우에도 ‘친목 덕에 섭외된 게스트’ 이미지로 타격을 최소화한 채 끝날 수 있었다.
아마 박문대도 청려에게 돌아갈 최악의 경우를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려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살을 떼어줄 생각은 없었다.
-…….
박문대는 잠시 말이 없었으나, 곧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승부수였다.
VTIC이 나오는 건 청려 혼자 나오는 것보다 훨씬 큰 타격을 입을 위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득을 얻는다면 더 크다. 직접적으로 두 그룹이 비교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청려는 VTIC의 무대 질을 알았기에, 승률을 깔끔히 판단했다.
‘7할 이상.’
그리고 판을 더 키웠다.
-서로 곡을 바꿔서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겸사겸사, 박문대의 인원수도 확실히 채워주지 않겠는가.
“…….”
회상을 마친 청려는 빙그레 웃었다.
결국 자신이 손을 얹은 판이었다.
‘취지가 좋고 재밌어 보인다’는 생각에 멤버들이 넘어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멤버를 골랐으니까. 다루기 쉬운 것들로.
그러나 그들의 힘은 온전히 본업에 있었다.
청려는 박문대의 조건을 다시 떠올린다.
‘40만 명이라.’
그들의 작년 온라인 콘서트의 하루 관객 수치가 얼마인지 아는가?
61만 명이었다.
오로지 이 플랫폼에서 유료로 카운트된 명수다.
그러니 VTIC의 그룹 출연이 결정된 이상, 박문대의 생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테스타의 팬덤 유출은 좀 감수해야 할 테지만.’
그것은 본인이 자초한 일 아닌가.
그가 박문대의 후회까지 책임져 줄 순 없었다.
‘음, 콩이를 만나게 해줘야 할까.’
청려는 그의 개를 떠올리며, 위로의 방법이나 짧게 고민했다.
“갑시다.”
“오늘도 이기는 브이틱! 아 빅토리어스~”
데뷔 당시 이사가 정해준 촌스러운 응원 구호가 농담처럼 멤버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 많은 재시작을 거쳐도, 어째 저것만은 변하지가 않았다. 굳이 그가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이기고 싶었기 때문에.
“VCR 종료 10초!”
청려는 눈앞에서 열리는 무대 구조물을 보며, 이상한 찌릿함이 등을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불확실한 결과를 향해 달려 나가는 감각.
도전심이었다.
[아.]
인이어로 들리는 짧은 시험음.
그리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무대로 걸어 나온 VTIC이 여유롭게 대형을 갖춘 순간.
댓글들은 온갖 물음표와 느낌표, 감탄사로 도배되며 읽을 새도 없이 교체되었다.
이곳의 댓글뿐만 아니었다.
-야 브이틱
-진짜 브이틱 나와
-티카들 어캄ㅋㅋㅋㅋ
-미친
SNS 등의 실시간 감상을 보고 기겁해서 테스타 콘서트에 접속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때맞춰 VTIC을 구독한 사람들에게 보낸 팝업 알림은 수많은 사람을 당황해 클릭하도록 만들었다.
[VTIC이 등장했습니다!]
팝업 알림 앞에는 이모티콘으로까지 제작된 VTIC의 로고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순간, VTIC은 무대를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낮은 드럼이 격식 있는 박수처럼 울리기 시작한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거칠고 빠른, 강렬한 타악기와 금관악기.
그리고 깔리는 상징적인 리프 멜로디.
-행차
-ㅅㅂ행차해?
테스타의 대표곡, 행차였다.
다만 행차가 가진 고아한 동양풍의 느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테크니컬한 전자음과 오케스트라가 강렬한 트랩 비트 위를 질주한다.
그리고 달라붙는 정장 위, 검은 하네스와 장갑을 덧댄 차림의 VTIC이 행차의 안무를 더 빠르고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행차, 하신다. 오늘-.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도록
납신다. 행차, 하신다.
그리고 랩은 더 느리고 그루브해지며, 퍼포먼스를 능란하게 받친다.
거대한 짐승을 형상화한 듯한 안무가 들어갈 자리는 사라졌다. 대신 포메이션을 갖춘 특공대 같은, 권위적 느낌의 각 잡힌 군무로 덮인다.
짐승을 포획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어지는 경례하는 듯한 제스처와 고조되는 베이스.
-지금, 나타나셨다 경고 또 경고
팔자로 접근하는 느릿한 짜릿한
나, 나, 나, 나
-Take off
랩은 박자가 바뀌었다. 달려가듯 쏟아져 공격성을 부추긴다. 그리고 후렴.
-마침내 찾아온 날 행차!
Oh, Oh, Oh…….
원곡과 다른 순간에 갑자기 반주가 드랍되었다.
-Never get away from me Yeah
위압감이 넘치는 나른한 웨이브 안무. 그리고 다시 각 잡힌 빠른 군무.
기수처럼 움직이는 깃발 든 댄서들 앞, VTIC은 무대 동선을 한계까지 끌어쓰며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들에겐 더는 메인보컬이 없다.
그러나 보컬의 부재를 랩과 퍼포먼스로 밀어버렸다.
부재고 나발이고, 보는 사람들이 숨을 참고 압도당하도록.
-와
댓글 창이 어느새 느려졌다. 극한의 집중 상태가 박수에 해당하는 행위를 잊게 만든다.
붉은 레이저와 푸른 레이저, 그리고 더 낮고 웅장해진 리프 멜로디 속에서 VTIC이 날뛰었다.
그리고 2절 도입은 퍼포먼스와 함께 생략. 바로 행차의 브릿지가 들어가야 할 부분으로 반주가 튀었다.
멤버들은 일시 멈춰서 뒤로 돌아 대형을 잡는다.
그런데, 약속된 멜로디 대신 익숙한 랩 후렴구가 들어온다.
-산군
Their claws are hella sharp
Readily tear you apart
넌 못 잡아 그렇겐
No, you can’t.
그리고 손과 허리를 쓰는 아이코닉한 안무.
-??
-산군
-와 여기서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 이다.
멜로디와 베이스가 맥락에 맞게 엮이며, 산군이 점점 커진다.
이 곡의 가장 상징적인 전통 취악기 레퍼런스가 추가되면서.
-Make me a Boss
옳지, 그렇지
VTIC은 ‘짐승’을 키워드로 두 곡을 엮고, ‘전통풍’의 키워드는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버린 것이다.
누가 먼저 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를 완전히 편곡해 아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듯이.
그리고 그 시도는 몹시 그럴싸했다.
-X나 멋있어
-산군! 산군! 산군!
-마 대상곡 품격 좀 봐라
대형 히트곡의 등장에 신난 대중과 VTIC의 팬들이, 산군이 행차를 잡아먹고 후반부를 장악하는 것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무대는 재밌는 순간, 모든 설득력을 가졌다.
-산군
Their claws are hella sharp
Let me prove it
폭발적인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
그리고 거대한 깃발 사이에서 4인 대형을 갖추는 VTIC으로, 무대는 끝났다.
그러나 댓글은 끝없이 감상을 토했다.
-찢었다
-미쳤다 역시 브이틱
-애들 여기 왜 나와요?ㅠㅠ
-소름
-와 진짜 쩔어
VTIC은 숨을 몰아쉰 뒤, 들어가는 댄서들에게 손을 흔들고 카메라에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스탭이 스르륵 가져다 둔 의자에 앉아서 몇 마디 토크까지 진행했다.
[좋은 선택지 골라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재밌었어요~]
1번을 골라도 어쨌든 나올 예정이었지만, 능청스럽게 그들은 박수를 보내고, 콘서트 기획 의도를 칭찬했다.
물론 농담도 잊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저희도 콘서트 중인데~]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보러와 주세요! 하하!]
사람들은 댓글에서 울부짖었다.
-얘들아 표가 없어…
-이런 기만 너무한데여
-테스타랑 왜 친해진지 알겠음
그리고 표가 있는 몇몇 팬들도 물 밑에서 울부짖었다.
-ㅠㅠㅠ미친놈들아 이런 거 할 거면 예고를 해줘 ㅅㅂ
-잘하긴 오지게 잘해 진짜 탈덕 말려도 탈덕 불가… 천년만년 1군 해먹어라 머글들아ㅠㅠ
-리셀 티켓 사고 옴 내가 이런 걸 사다니 X발ㅋㅋㅋ
-레티 이 배때지부른 X새끼들 지들 사업 확장에 애들 이용해먹는 건 언제까지 할 생각이야 애들이 잘하니까 매번 이러네
-ㅋㅋㅋㅋㅋ아 근데 좀 속시원하긴 하다 셤별빠들 이 갈고 있을 듯ㅋㅋㅋ 물론 실시간 놓친 티카들도 개빡치겠지만 난 실시간 봐서^^
분위기는 완전히 넘어갔다.
‘후배 이기려고 이 악무네ㅋ’ 같은 소리 외에는 VTIC을 깎아내리는 글을 당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티도 정신 승리하지 않고는 이 무대를 끌어 내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박문대는 백스테이지에서 이 꼴을 다 보고 있었다.
* * *
실제 공연이었으면 비명이 난무했을 것이다.
나는 생수병을 입에 꽂아 넣었다.
무서운 새끼.
‘진짜 호랑이 부른 꼴이 됐는데.’
물론, 가죽 잘 벗겨서 말려 쓸 생각이다만.
‘이대로 흐름이 넘어가게는 못 하지.’
테스타의 다음 무대도 코앞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2화
몇 시간 전. 테스타의 비대면 기부 콘서트를 위해 세팅된 무대 그 뒤편.
“물 필요하세요?”
“괜찮습니다.”
청려는 백스테이지가 익숙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던’ 당시의 조촐한 지방 축제부터 온전히 VTIC의 스텝으로만 꽉 채워진 스타디움까지.
그는 모든 단계의 업계를 반복적으로 경험했고, 익숙함은 겹겹이 쌓여 그의 내면에 깊은 지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VTIC의 멤버들도 리더의 담담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하거나 서툰 대응 한번 보이지 않는,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그 모습에.
그래서 그들도 데뷔 후 전염되듯 빠르게 태연해졌다.
“와 이거 은근히 떨리는 것 같다.”
“그러게요. 이게 게스트의 부담감인가 봐요.”
“맞아. 원래 남의 잔칫집에서 더 잘해야 하는 거야!”
VTIC은 자신들의 위튜브 업로드용 카메라 앞에서 능청스럽게 떠들어대며 평소처럼 청려가 적당한 시점에 치고 들어와 주기를 기다렸다.
적절한 판단이었다.
“뜻깊은 기획이니, 테스타 후배님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맞아요~ 좋은 자리에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테스타 후배님!”
멤버들은 웃으며 카메라에 손을 흔들었고, 청려는 웃는 얼굴로 생각했다.
‘아니, 손해지.’
저런 가당치도 않은 소리를 진심으로 하다니.
사고 발생률과 무대 질만 고려해서 멤버를 선별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지만, 기민하게 눈치챈 놈이 없었다.
이대로면 남의 배만 불려주는 꼴이 십상이란 것을.
‘잘하면 호구, 못하면 퇴물.’
새파란 후배 콘서트에 전원 게스트, 게다가 후배들의 곡을 해주는 동종업계 1군 선배라니.
물론 멤버들만을 탓할 수는 없었다.
‘함정이 워낙 보기 좋아서 어쩔 수 없나.’
청려는 이 출연이 이루어진 계기, 박문대의 병문안 당시의 대화를 떠올렸다.
기부 콘서트에 대한 박문대의 첫 제안을.
-공동 주최로 하는 건 어때.
-글쎄요.
이때, VTIC의 스케줄은 곧 살인적으로 변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완전체 컴백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려의 솔로 앨범이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후, VTIC의 운신 범위는 크게 자유로워졌다.
VTIC 하락세가 가시화되는 것을 염려해 국내 앨범 발매를 미적거리던 이사진의 태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덕분에 청려가 따로 손질할 것도 없이 앨범 준비는 탄력을 받았다.
그리고 보통 VTIC 정도의 위치였던 모든 아이돌이 그렇듯이, 그들도 명목을 위한 한 주간의 국내 음악방송 출연 후 해외를 돌 예정이었다.
그런데 스타디움 투어 리허설과 새 콘서트 준비의 병행이라니.
‘불가능해.’
잠잘 시간도 없을 것이다. 지금도 박문대의 병실에 방문한 것만으로도 청려의 수면시간이 줄어들었다.
준비기간 중에도 이런데, 컴백 이후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예측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결정된 미래였다.
청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활동기라 시간이 안 될 텐데.
박문대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게스트로는?
-음.
-어차피 잘될 싹이 보이면 플랫폼에서도 한 발 걸치고 싶을 테고.
박문대의 설명은 명료했다.
이 기부 콘서트의 포맷을 LeTi의 플랫폼과 독점 계약하겠다.
그러면 LeTi가 우호와 홍보의 제스처로, 마침 박문대와 친목이 있는 청려를 출연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아무 무대나 하나 해주고 숟가락이나 얹으면 된다는 거지.
청려는 그 순간 알았다.
‘이미 알았구나?’
VTIC의 현 스케줄상 공동 기획이 불가능한 것을 알고, 박문대는 이 구도로 논의를 끌고 간 것이다.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게스트로 쓴다… 라.’
그리고 아무 무대나 하나 해달라는 말.
언뜻 듣기엔 선배의 바쁜 스케줄을 배려해 준 것 같으나, 사실 차 떼고 포 떼고 와도 된다는 뜻이다.
테스타는 따로 훈련한 콘서트 특별 무대를 하는 사이, 청려 혼자 일반 공연을 하는 것.
체급의 문제였다.
여차하면 청려의 위상에 타격이 생긴다.
박문대가 VTIC의 투어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위험한 행위였다.
-어때.
그러나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다.
그는 잊지 않았다.
‘녹음본.’
납치 당시 대화 녹음본이 박문대의 클라우드에 있을 것이다.
이미 메인보컬이 한차례 사회면을 장식했었다. 이게 터지는 순간 VTIC의 커리어는 끝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청려는 박문대가 녹음본을 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진흙탕 싸움이 될 텐데.’
박문대도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길 것이다. 그러니 미션이 남은 입장에선 절대 쓸 수 없는 패다.
하지만… 박문대는 당장 생존이 걸려있으니, 여차하면 블러핑으로 녹음본을 거론하며 청려를 협박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우호 관계는 파국이었다.
청려는 그것도 원하진 않았다.
그래서 빠른 판단 후, 빙긋 웃었다.
-좋아요. 게스트 출연.
-그럼….
-아, VTIC 전원 다 나가려고 하는데.
-…!
-괜찮죠? 관객도 더 많아질 것 같고.
미친 짓이었다.
청려 혼자 출연하면 만일의 경우에도 ‘친목 덕에 섭외된 게스트’ 이미지로 타격을 최소화한 채 끝날 수 있었다.
아마 박문대도 청려에게 돌아갈 최악의 경우를 그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청려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살을 떼어줄 생각은 없었다.
-…….
박문대는 잠시 말이 없었으나, 곧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승부수였다.
VTIC이 나오는 건 청려 혼자 나오는 것보다 훨씬 큰 타격을 입을 위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득을 얻는다면 더 크다. 직접적으로 두 그룹이 비교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청려는 VTIC의 무대 질을 알았기에, 승률을 깔끔히 판단했다.
‘7할 이상.’
그리고 판을 더 키웠다.
-서로 곡을 바꿔서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은데요.
겸사겸사, 박문대의 인원수도 확실히 채워주지 않겠는가.
“…….”
회상을 마친 청려는 빙그레 웃었다.
결국 자신이 손을 얹은 판이었다.
‘취지가 좋고 재밌어 보인다’는 생각에 멤버들이 넘어간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가 그렇게 멤버를 골랐으니까. 다루기 쉬운 것들로.
그러나 그들의 힘은 온전히 본업에 있었다.
청려는 박문대의 조건을 다시 떠올린다.
‘40만 명이라.’
그들의 작년 온라인 콘서트의 하루 관객 수치가 얼마인지 아는가?
61만 명이었다.
오로지 이 플랫폼에서 유료로 카운트된 명수다.
그러니 VTIC의 그룹 출연이 결정된 이상, 박문대의 생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테스타의 팬덤 유출은 좀 감수해야 할 테지만.’
그것은 본인이 자초한 일 아닌가.
그가 박문대의 후회까지 책임져 줄 순 없었다.
‘음, 콩이를 만나게 해줘야 할까.’
청려는 그의 개를 떠올리며, 위로의 방법이나 짧게 고민했다.
“갑시다.”
“오늘도 이기는 브이틱! 아 빅토리어스~”
데뷔 당시 이사가 정해준 촌스러운 응원 구호가 농담처럼 멤버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왔다.
그 많은 재시작을 거쳐도, 어째 저것만은 변하지가 않았다. 굳이 그가 바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언제나 이기고 싶었기 때문에.
“VCR 종료 10초!”
청려는 눈앞에서 열리는 무대 구조물을 보며, 이상한 찌릿함이 등을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다.
위험을 감수하며, 불확실한 결과를 향해 달려 나가는 감각.
도전심이었다.
인이어로 들리는 짧은 시험음.
그리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 * *
무대로 걸어 나온 VTIC이 여유롭게 대형을 갖춘 순간.
댓글들은 온갖 물음표와 느낌표, 감탄사로 도배되며 읽을 새도 없이 교체되었다.
이곳의 댓글뿐만 아니었다.
-야 브이틱
-진짜 브이틱 나와
-티카들 어캄ㅋㅋㅋㅋ
-미친
SNS 등의 실시간 감상을 보고 기겁해서 테스타 콘서트에 접속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리고 플랫폼에서 때맞춰 VTIC을 구독한 사람들에게 보낸 팝업 알림은 수많은 사람을 당황해 클릭하도록 만들었다.
팝업 알림 앞에는 이모티콘으로까지 제작된 VTIC의 로고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혼란의 순간, VTIC은 무대를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와 함께 낮은 드럼이 격식 있는 박수처럼 울리기 시작한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거칠고 빠른, 강렬한 타악기와 금관악기.
그리고 깔리는 상징적인 리프 멜로디.
-행차
-ㅅㅂ행차해?
테스타의 대표곡, 행차였다.
다만 행차가 가진 고아한 동양풍의 느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테크니컬한 전자음과 오케스트라가 강렬한 트랩 비트 위를 질주한다.
그리고 달라붙는 정장 위, 검은 하네스와 장갑을 덧댄 차림의 VTIC이 행차의 안무를 더 빠르고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행차, 하신다. 오늘-.
발버둥 쳐도 피할 수 없도록
납신다. 행차, 하신다.
그리고 랩은 더 느리고 그루브해지며, 퍼포먼스를 능란하게 받친다.
거대한 짐승을 형상화한 듯한 안무가 들어갈 자리는 사라졌다. 대신 포메이션을 갖춘 특공대 같은, 권위적 느낌의 각 잡힌 군무로 덮인다.
짐승을 포획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어지는 경례하는 듯한 제스처와 고조되는 베이스.
-지금, 나타나셨다 경고 또 경고
팔자로 접근하는 느릿한 짜릿한
나, 나, 나, 나
-Take off
랩은 박자가 바뀌었다. 달려가듯 쏟아져 공격성을 부추긴다. 그리고 후렴.
-마침내 찾아온 날 행차!
Oh, Oh, Oh…….
원곡과 다른 순간에 갑자기 반주가 드랍되었다.
-Never get away from me Yeah
위압감이 넘치는 나른한 웨이브 안무. 그리고 다시 각 잡힌 빠른 군무.
기수처럼 움직이는 깃발 든 댄서들 앞, VTIC은 무대 동선을 한계까지 끌어쓰며 미친 듯이 몰아쳤다.
그들에겐 더는 메인보컬이 없다.
그러나 보컬의 부재를 랩과 퍼포먼스로 밀어버렸다.
부재고 나발이고, 보는 사람들이 숨을 참고 압도당하도록.
-와
댓글 창이 어느새 느려졌다. 극한의 집중 상태가 박수에 해당하는 행위를 잊게 만든다.
붉은 레이저와 푸른 레이저, 그리고 더 낮고 웅장해진 리프 멜로디 속에서 VTIC이 날뛰었다.
그리고 2절 도입은 퍼포먼스와 함께 생략. 바로 행차의 브릿지가 들어가야 할 부분으로 반주가 튀었다.
멤버들은 일시 멈춰서 뒤로 돌아 대형을 잡는다.
그런데, 약속된 멜로디 대신 익숙한 랩 후렴구가 들어온다.
-산군
Their claws are hella sharp
Readily tear you apart
넌 못 잡아 그렇겐
No, you can’t.
그리고 손과 허리를 쓰는 아이코닉한 안무.
-??
-산군
-와 여기서
그들의 대표곡 중 하나. 이다.
멜로디와 베이스가 맥락에 맞게 엮이며, 산군이 점점 커진다.
이 곡의 가장 상징적인 전통 취악기 레퍼런스가 추가되면서.
-Make me a Boss
옳지, 그렇지
VTIC은 ‘짐승’을 키워드로 두 곡을 엮고, ‘전통풍’의 키워드는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버린 것이다.
누가 먼저 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를 완전히 편곡해 아류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듯이.
그리고 그 시도는 몹시 그럴싸했다.
-X나 멋있어
-산군! 산군! 산군!
-마 대상곡 품격 좀 봐라
대형 히트곡의 등장에 신난 대중과 VTIC의 팬들이, 산군이 행차를 잡아먹고 후반부를 장악하는 것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무대는 재밌는 순간, 모든 설득력을 가졌다.
-산군
Their claws are hella sharp
Let me prove it
폭발적인 마지막 댄스 브레이크.
그리고 거대한 깃발 사이에서 4인 대형을 갖추는 VTIC으로, 무대는 끝났다.
그러나 댓글은 끝없이 감상을 토했다.
-찢었다
-미쳤다 역시 브이틱
-애들 여기 왜 나와요?ㅠㅠ
-소름
-와 진짜 쩔어
VTIC은 숨을 몰아쉰 뒤, 들어가는 댄서들에게 손을 흔들고 카메라에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스탭이 스르륵 가져다 둔 의자에 앉아서 몇 마디 토크까지 진행했다.
1번을 골라도 어쨌든 나올 예정이었지만, 능청스럽게 그들은 박수를 보내고, 콘서트 기획 의도를 칭찬했다.
물론 농담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댓글에서 울부짖었다.
-얘들아 표가 없어…
-이런 기만 너무한데여
-테스타랑 왜 친해진지 알겠음
그리고 표가 있는 몇몇 팬들도 물 밑에서 울부짖었다.
-ㅠㅠㅠ미친놈들아 이런 거 할 거면 예고를 해줘 ㅅㅂ
-잘하긴 오지게 잘해 진짜 탈덕 말려도 탈덕 불가… 천년만년 1군 해먹어라 머글들아ㅠㅠ
-리셀 티켓 사고 옴 내가 이런 걸 사다니 X발ㅋㅋㅋ
-레티 이 배때지부른 X새끼들 지들 사업 확장에 애들 이용해먹는 건 언제까지 할 생각이야 애들이 잘하니까 매번 이러네
-ㅋㅋㅋㅋㅋ아 근데 좀 속시원하긴 하다 셤별빠들 이 갈고 있을 듯ㅋㅋㅋ 물론 실시간 놓친 티카들도 개빡치겠지만 난 실시간 봐서^^
분위기는 완전히 넘어갔다.
‘후배 이기려고 이 악무네ㅋ’ 같은 소리 외에는 VTIC을 깎아내리는 글을 당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티도 정신 승리하지 않고는 이 무대를 끌어 내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박문대는 백스테이지에서 이 꼴을 다 보고 있었다.
* * *
실제 공연이었으면 비명이 난무했을 것이다.
나는 생수병을 입에 꽂아 넣었다.
무서운 새끼.
‘진짜 호랑이 부른 꼴이 됐는데.’
물론, 가죽 잘 벗겨서 말려 쓸 생각이다만.
‘이대로 흐름이 넘어가게는 못 하지.’
테스타의 다음 무대도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