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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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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1화
응급실은 아직 본 목적으로만 분주했다. 기자들한테까지 소식이 들어가지 않은 덕이다.
이세진은 바닥을 보며 묵묵히 생각했다.
‘회사에 연락했으니 그것도 이젠 끝이겠지.’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하지 못할망정 자신도 소리를 질렀으니, 곧 상황 파악한 관계자들로 온갖 말이 다 나올 것이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
의식을 잃은 류청우를 제외하면 회사에 연락할 만한 사람은 자신뿐이었는데,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
“……후읍.”
이세진은 스마트폰을 쥐고 숨을 골랐다.
손이 떨렸다.
대부분의 멤버는 괜찮았다. 관절을 접질리거나, 골절상을 입은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후유증은 확인해야겠지만, 지금의 이세진도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당사자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탓에 튕겨 나와 기절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누군가에 비하면 자비로울 지경이었다.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세진은 전 매니저에 대한 분노보다 압도적인 감정에 숨을 참았다.
공포였다.
-다들 괜찮……!
그가 사고 직후에 상태를 체크하고 멤버들을 확인할 때.
맨 뒤, 류청우 옆에서 본 건….
‘…아냐, 괜찮을 거야.’
자신이… 너무 당황한 탓에 상처를 현실보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게 틀림없었다…….
다들 가벼운 부상인데, 뒤 차가 박은 곳과 제일 가깝던 류청우도 다리에 금만 가고 끝인데, 박문대만… 그럴 리가 없다.
출혈 때문에 그랬던 거지. 수혈받고, 수술도 들어갔으니 괜찮아질 것이다.
이세진은 답지 않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를 지레짐작하며 머리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직전에 박문대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뻔했기 때문이다.
-현재 환자분 상태가… …래서 위험…… 당장 관 삽입 들어가야…….
최대한 들어보려 애썼지만, 도저히 집중되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우리… 방금까지, 2주년 공연했는데.’
아무리 사고가 예고 없이 찾아온다지만, 이렇게 대비할 수도 없이 온단 말인가?
이렇게 무력하게?
그래,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참 잘되는 중이었잖아.’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박문대가 뭘 잘못했다고….
재능도 있고, 성실하고, 기를 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한 업계도 아닌 곳인데 왜 하필 박문대란 말인가.
사는 것도 순탄치 않았던 놈이.
-보호자 동의 필요합니다.
-보호자가…….
없었다. 이세진은 피가 식었다.
-저, 제가 그냥 사인할 수 없을까요? 그냥….
-잠시만요.
빠르게 사인이 오가는 것 같더니, 의료진은 이세진의 사인을 받는 대신 환자 재확인 후 회의를 진행해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응급상황이라 가능한 일이었으나, 어쨌든 이세진은 망연히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안 그래도 패닉 상태던 다른 멤버들도 처치를 다 받았을 테니, 상황을 알았을 것이라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그 꼴을 이세진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곧 목격담이 뜨고… 기사가 뜨면 루머가….’
아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단 멤버가 다 멀쩡해야지.
이세진은 이를 악물고 손을 쥐었다.
‘괜찮겠지.’
그래도 수술이 된다는 건 회복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박문대가 곧 정신을 차리면…….
-그러다 30대에 돌연사하는 거야!
‘X발, 괜히 그런 소리를 해서….’
이세진은 무릎을 주먹으로 쳤다. 눈앞이 허옇다.
‘깨어나겠지.’
그래야 했다.
* * *
“…류건우입니다.”
“아~ 넵.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세진입니다.”
나는 싹싹하게 인사하는 놈을 오묘한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코마 속에서 봐도 여전히 뺀질뺀질한 놈이었으나, 하나가 달랐다.
‘이 새끼 눈이….’
맛이 갔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겠답시고 싱글벙글 웃으며 넉살 좋게 구는데, 눈에 의심과 경계를 못 지운다.
‘…루머로 하차한 게 치명타였나.’
게다가 학폭 루머로 하차한 자기를 굳이 LeTi가 데려온 이유도 모르겠고, 해명까지 세심히 가능했던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다 이거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전 21살인데~”
“저도 21살입니다.”
“오, 저희 동갑이네요.”
일단 고참인 내가 서열이 더 위라고 판단했는지 함부로 말 놓자는 이야기도 안 한다.
로 쌓은 인지도를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루머 때문에 멘탈이 박살 났단 뜻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말 놓을까요.”
“아, 그럴까? 좋지~”
이후 이세진은 정보를 캐기 위한 형식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에 소속사 관계자를 만나러 떠났다.
“…….”
이게 맞나.
전에 긁어모을 수 있는 놈들을 데려오려고 한 짓인데, 이상하게 입맛이 썼다.
게다가 선아현 측은… 소속사에 응답도 아직 주지 않는 상태다.
… 방송분을 보니, 왜 그러는지 알겠다.
‘X발.’
머리가 지근거렸다.
…무슨 억지를 써서라도 에 참가할 걸 그랬나.
사실 LeTi 정도면 이딴 망한 프로그램, 참가자 하나 튕겨내고 자기 연습생 꽂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소속사가 강경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 거길 왜….
‘…이득 될 게 전혀 없다 이거지.’
두세 놈 연습생으로 추가해 주는 정도는 데뷔도 아니니 청려 입김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이 소속사의 이름표 달고 검증도 안 된 연습생이 저질 프로그램에 나갈 순 없다는 것이다.
이땐 다들 아주사 시즌 3도 화려하게 망할 줄 알았으니까.
‘설득이 안 먹혔어.’
미래지식 미끼로 청려를 좀 더 부추겨볼 순 있을 것 같았으나, 아주사 첫 촬영이 코앞이라 시간상 도저히 불가능했다.
‘X 같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볼 점은, 이 소속사에서 내 대우를 상당히 잘해준다는 점이다.
-건우 씨 따로 레슨받아 본 적 정말 없어요? 정말?
지난 두세 달 연습생 생활을 했는데, 초반 보름쯤 내 기량을 파악하더니 태도가 더없이 사근사근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데뷔 3년 차 메인보컬 짬이 어디 가진 않았더라고.
‘데뷔 조에 합류시킬 계획까지 짜는 중인 것 같던데.’
그 데뷔 조, 3년 뒤에도 데뷔 소식 없으니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군.
“……후.”
나는 연습실 거울을 보고 앉았다. 29년간 본 익숙한 내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솔직히 말하겠다, 진행 자체는 훨씬 편하다.
이미 내 능력치는 거의 완성형이고, 회사가 영리하며 대우가 좋다. 게다가 난 어떤 곡, 어떤 컨셉으로 데뷔해야 할지도 이미 알고 있다.
능력치가 검증된 멤버만 모으면 분명 데뷔 후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리고 상태창을 못 보는 이상, 기존에 합 맞춰본 놈들 데려오는 게 가장 좋을 것이고.
‘…선아현이 연락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로 몇 놈 더 잡아와서 데뷔하면 딱일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기존 연습생 하나 정도는 넣어도 된다.
그러니 원래 로 별 지랄 맞은 일 다 겪은 현실보다 훨씬 수월한데도….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라 그렇지.”
깨어나는 게 목적이라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나는 생각을 끝냈다.
“현실이 아니라니?”
“…!”
고개를 돌리자, 연습실 뒤편 문을 열고 걸어들어오는 청려가 보였다.
‘저 새끼는 노크도 못 배워 먹었나.’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음, 슬슬 그런 생각할 때도 되긴 했지.”
“…….”
“근데 현실이니까, 그런 생각 마요. 시간 낭비라서.”
안 됐지만 꿈 맞다, 새끼야.
나는 말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청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따라올 거라면서요. 그거 사흘 뒤 촬영이던데.”
“…….”
“방송에 출연은 안 돼요. 그냥 내가 데려가는 거라.”
“그거면 됐습니다.”
설마 출연하고 싶었겠냐.
어쨌든 미래지식이 몇 번 검증된 이후로 소름 끼치게 친절해진 놈은 흔쾌히 조작까지 승낙했다.
“음… 이 문항이 나온다는 거죠?”
“예.”
‘주어진 문항에 대한 답변이 제일 비슷한 소속사에게 이적 제안을 받는다’는 방식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김래빈은 어차피 그대로 가도 LeTi에게 권유를 받을 걸 안다.
그리고 차유진과 류청우는… 무슨 짓을 해도 이런 작업 때문에 넘어올 만한 놈들이 아니란 것도 알고.
그러니 남은 한 놈을 잡아 올 생각이다.
“알려줬으니 아마 그대로 할 겁니다.”
배세진.
제대로만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제일 낚기 쉬운 놈이다.
* * *
그리고 며칠 뒤 촬영장.
“이거부터 옮겨요!”
나는 스탭 사이에서 비슷한 복장으로 LeTi 쪽 심부름을 하며 상황을 확인했다.
‘…확률은 높다.’
일단 소속사에서 전에 두 멤버와 접촉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확인했다.
‘김래빈과 배세진.’
내 사주를 받은 청려의 조언을 통해서였다.
가 워낙 흥행한 타이밍이라 이 정도 꼼수는 기껍게 해주더라.
둘 다 가장 혹할 만한 방향으로 딜을 조언했다.
‘김래빈에게는 작업 지원 중심.’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중 프로듀싱 관련 설비에 예산을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소속사 AR 작업이 대단히 체계적이더라고. 게다가 김래빈은 VTIC이 쓰는 녹음 프로그램을 궁금해하던 놈이니 제법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놈의 도덕적인 성향을 고려해서 문항 유출 이야기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 모든 게 ‘공식적인 방법’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프로그램에서의 공식적인 이적 방식을 통해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대단히 기쁜 일이겠습니다.
다만 여차하면 차유진도 설득해서 함께 와도 좋다는 정도는 덧붙였고.
‘차유진은 필요할 땐 눈치를 보는 놈이다.’
본인이 이 제안이 내킨다면, 지금 돌아가는 판을 눈치채고 알아서 눈치껏 김래빈이 할 법한 답변을 찍을 것이다. 가능성은 몹시 낮지만.
‘그리고 배세진은… 안전.’
-법무팀 인력이 완비되어 있으며, 아티스트 보호를 위한 대형 로펌과의 작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속사 분쟁 등에 강하다는 은근한 뉘앙스를 담아, 대놓고 문항 답안과 함께 컨택했다.
안 그래도 혹할 놈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려는 의외로 나 대신 대외적으로 소속사에게 바람 넣는 역할을 제법 성실히 수행했다.
‘작곡가를 미끼로 거래하길 잘했군.’
그래서 이제 결과를 볼 순간이다.
나는 스탭 행세를 계속하며 촬영장을 확인했다.
일단… 김래빈.
[그… 음, 죄송합니다. 출연한 이상 최선을 다하여 제 일에 임하고 싶습니다.]
현실에서보다 더 고민하긴 했으나, 결국 거절은 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이후다.
[여기요.]
[아, 예! 감사합니다.]
명함을 받아 갔거든.
즉, 불우한 사고로… 이 프로그램이 풍비박산 나거나 본인이 하차할 시 LeTi와 컨택하겠단 뜻이다.
그리고 세상사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이 정도면 됐다.’
나름대로 3년 동안 이 제작진을 봐왔는데, 박살 나는 방법이야 지금부터 짜내도 서너 가지는 나올 것이다.
게다가 촬영이 끝난 후에 류청우까지 혼란을 틈타 슬쩍 접근한 LeTi 관계자의 명함을 받아 갔다.
상상 이상으로 성과가 좋았다.
‘차유진만 어떻게 하면… 전원 다 모아서 그대로 데뷔할 수도 있겠는데.’
갑자기 머리끝이 짜릿했다.
나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예상대로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
배세진이… 거절했다.
심지어 명함도 받지 않았다.
‘미쳤나.’
왜 동아줄을 걷어차고 있단 말인가. 현실에서도 이때 더럽게 고민했던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예.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배세진은 에 잔류가 확정되었다.
* * *
“…….”
나는 입 다문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뺨이라도 후려 맞은 것 같군.’
어차피 대충 안 되는 놈은 거르고 갈 생각이었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벌컥.
나는 냉수라도 끼얹을 생각으로 거칠게 관계자용 화장실에 들어갔다.
“…!!”
“…!”
그리고 배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물 틀어놓고 질질 짜고 있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거절해.’
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말을 걸었다.
“지금이라도 승낙하는 게 어떨까요.”
“뭐?”
배세진은 멍하니 대꾸했다.
“LeTi 괜찮은 소속사거든요.”
“…….”
배세진은 얼굴이 시퍼레졌다가, 다시 시뻘게졌다가, 마지막으로 허옇게 질렸다.
‘너무 직접적으로 찔렀나.’
“뭐… 너, LeTi….”
“네. 거기 스탭입니다.”
배세진은 망연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갑자기 극도로 방어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대꾸했다.
“너희는… 연예인 빼가려고 이런 짓까지 해?”
“…!”
“나한테, 미리 연락하고… 문항 빼돌리고.”
‘X발.’
여기서 뒤틀렸나.
이놈은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문항을 보내고, 사전에 법무팀 이야기까지 꺼낸 것.
배세진이 느끼기에 원래 본인 소속사에서 하는 짓과 비슷하게 느껴졌을 법도 했다.
“…….”
쾅.
배세진은 도망치듯이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나는 실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돌아가는 차 안.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팔짱을 꼈다.
‘없던 일 치자.’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다.
맞은편의 청려가 옆자리의 멤버가 숙면 중인 것을 체크하더니, 입을 열었다.
“후배님?”
“예.”
“아니, 나는 이해가 안 가서. 어차피 합류 안 했으니 물어보는 건데요.”
“…….”
“마지막 그 배우 출신은 잘하는 참가자도 아니던데, 왜 굳이 데려가려고 했어요? 나라면 이 기회에 잘랐을 텐데.”
“……뭐?”
“협조적인 것도 아니고, 별 쓸모 없어 보여서요.”
“…!!”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왜 데려오려고 했냐고?
‘그거야….’
내가 무의식중에 의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대로 데뷔하면, 배세진은 마약 루머를 쓰고 커리어가 끝장난다는 것을.
‘그놈 인생이…, X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나도 안다.
현실도 아닌데 여기서 배세진이 마약 루머를 덮어쓰든 죽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대체 왜 내가 이 지랄을 하며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망할.
“괜히 지난 관계 신경 쓰지 마요. 손해니까.”
“…….”
“어차피 다 명함만 받아가서 인원도 확정 아닌데, 그러지 말고 이런 건 어때요.”
“뭐요.”
청려가 미소 지었다.
“음, VTIC에 합류하는 것?”
“…!!”
이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함정인가.’
재계약 시즌까지 지난 탑티어 그룹에 새 멤버 합류라니, 자살하라는 걸 색다르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아니, 잘 들어봐요.”
그리고 놈은, 놀랍게도 제법 그럴싸한 루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31화

응급실은 아직 본 목적으로만 분주했다. 기자들한테까지 소식이 들어가지 않은 덕이다.

이세진은 바닥을 보며 묵묵히 생각했다.

‘회사에 연락했으니 그것도 이젠 끝이겠지.’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하지 못할망정 자신도 소리를 질렀으니, 곧 상황 파악한 관계자들로 온갖 말이 다 나올 것이다.

그래도 안 할 수는 없었다. …이 상황에.

의식을 잃은 류청우를 제외하면 회사에 연락할 만한 사람은 자신뿐이었는데, 도저히 침착할 수가 없었다.

“……후읍.”

이세진은 스마트폰을 쥐고 숨을 골랐다.

손이 떨렸다.

대부분의 멤버는 괜찮았다. 관절을 접질리거나, 골절상을 입은 정도.

시간이 지난 뒤 후유증은 확인해야겠지만, 지금의 이세진도 가벼운 찰과상만 입은 상태였다.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당사자는 안전벨트를 하지 않은 탓에 튕겨 나와 기절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누군가에 비하면 자비로울 지경이었다.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이세진은 전 매니저에 대한 분노보다 압도적인 감정에 숨을 참았다.

공포였다.

-다들 괜찮……!

그가 사고 직후에 상태를 체크하고 멤버들을 확인할 때.

맨 뒤, 류청우 옆에서 본 건….

‘…아냐, 괜찮을 거야.’

자신이… 너무 당황한 탓에 상처를 현실보다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게 틀림없었다…….

다들 가벼운 부상인데, 뒤 차가 박은 곳과 제일 가깝던 류청우도 다리에 금만 가고 끝인데, 박문대만… 그럴 리가 없다.

출혈 때문에 그랬던 거지. 수혈받고, 수술도 들어갔으니 괜찮아질 것이다.

이세진은 답지 않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를 지레짐작하며 머리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직전에 박문대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할 뻔했기 때문이다.

-현재 환자분 상태가… …래서 위험…… 당장 관 삽입 들어가야…….

최대한 들어보려 애썼지만, 도저히 집중되지 않았다.

현실감이 없었다.

‘우리… 방금까지, 2주년 공연했는데.’

아무리 사고가 예고 없이 찾아온다지만, 이렇게 대비할 수도 없이 온단 말인가?

이렇게 무력하게?

그래,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참 잘되는 중이었잖아.’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박문대가 뭘 잘못했다고….

재능도 있고, 성실하고, 기를 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렇게 흔한 업계도 아닌 곳인데 왜 하필 박문대란 말인가.

사는 것도 순탄치 않았던 놈이.

-보호자 동의 필요합니다.

-보호자가…….

없었다. 이세진은 피가 식었다.

-저, 제가 그냥 사인할 수 없을까요? 그냥….

-잠시만요.

빠르게 사인이 오가는 것 같더니, 의료진은 이세진의 사인을 받는 대신 환자 재확인 후 회의를 진행해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응급상황이라 가능한 일이었으나, 어쨌든 이세진은 망연히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게 되었다.

“…….”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안 그래도 패닉 상태던 다른 멤버들도 처치를 다 받았을 테니, 상황을 알았을 것이라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그 꼴을 이세진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곧 목격담이 뜨고… 기사가 뜨면 루머가….’

아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단 멤버가 다 멀쩡해야지.

이세진은 이를 악물고 손을 쥐었다.

‘괜찮겠지.’

그래도 수술이 된다는 건 회복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박문대가 곧 정신을 차리면…….

-그러다 30대에 돌연사하는 거야!

‘X발, 괜히 그런 소리를 해서….’

이세진은 무릎을 주먹으로 쳤다. 눈앞이 허옇다.

‘깨어나겠지.’

그래야 했다.

* * *

“…류건우입니다.”

“아~ 넵. 반갑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이세진입니다.”

나는 싹싹하게 인사하는 놈을 오묘한 기분으로 쳐다보았다.

코마 속에서 봐도 여전히 뺀질뺀질한 놈이었으나, 하나가 달랐다.

‘이 새끼 눈이….’

맛이 갔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보겠답시고 싱글벙글 웃으며 넉살 좋게 구는데, 눈에 의심과 경계를 못 지운다.

‘…루머로 하차한 게 치명타였나.’

게다가 학폭 루머로 하차한 자기를 굳이 LeTi가 데려온 이유도 모르겠고, 해명까지 세심히 가능했던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다 이거지.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전 21살인데~”

“저도 21살입니다.”

“오, 저희 동갑이네요.”

일단 고참인 내가 서열이 더 위라고 판단했는지 함부로 말 놓자는 이야기도 안 한다.

로 쌓은 인지도를 고려하지 못할 정도로 루머 때문에 멘탈이 박살 났단 뜻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말했다.

“말 놓을까요.”

“아, 그럴까? 좋지~”

이후 이세진은 정보를 캐기 위한 형식적인 이야기를 나눈 뒤에 소속사 관계자를 만나러 떠났다.

“…….”

이게 맞나.

전에 긁어모을 수 있는 놈들을 데려오려고 한 짓인데, 이상하게 입맛이 썼다.

게다가 선아현 측은… 소속사에 응답도 아직 주지 않는 상태다.

… 방송분을 보니, 왜 그러는지 알겠다.

‘X발.’

머리가 지근거렸다.

…무슨 억지를 써서라도 에 참가할 걸 그랬나.

사실 LeTi 정도면 이딴 망한 프로그램, 참가자 하나 튕겨내고 자기 연습생 꽂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소속사가 강경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 거길 왜….

‘…이득 될 게 전혀 없다 이거지.’

두세 놈 연습생으로 추가해 주는 정도는 데뷔도 아니니 청려 입김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이 소속사의 이름표 달고 검증도 안 된 연습생이 저질 프로그램에 나갈 순 없다는 것이다.

이땐 다들 아주사 시즌 3도 화려하게 망할 줄 알았으니까.

‘설득이 안 먹혔어.’

미래지식 미끼로 청려를 좀 더 부추겨볼 순 있을 것 같았으나, 아주사 첫 촬영이 코앞이라 시간상 도저히 불가능했다.

‘X 같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볼 점은, 이 소속사에서 내 대우를 상당히 잘해준다는 점이다.

-건우 씨 따로 레슨받아 본 적 정말 없어요? 정말?

지난 두세 달 연습생 생활을 했는데, 초반 보름쯤 내 기량을 파악하더니 태도가 더없이 사근사근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데뷔 3년 차 메인보컬 짬이 어디 가진 않았더라고.

‘데뷔 조에 합류시킬 계획까지 짜는 중인 것 같던데.’

그 데뷔 조, 3년 뒤에도 데뷔 소식 없으니 집어치우라고 하고 싶군.

“……후.”

나는 연습실 거울을 보고 앉았다. 29년간 본 익숙한 내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

…솔직히 말하겠다, 진행 자체는 훨씬 편하다.

이미 내 능력치는 거의 완성형이고, 회사가 영리하며 대우가 좋다. 게다가 난 어떤 곡, 어떤 컨셉으로 데뷔해야 할지도 이미 알고 있다.

능력치가 검증된 멤버만 모으면 분명 데뷔 후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리고 상태창을 못 보는 이상, 기존에 합 맞춰본 놈들 데려오는 게 가장 좋을 것이고.

‘…선아현이 연락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로 몇 놈 더 잡아와서 데뷔하면 딱일 것이다. 여의치 않으면 기존 연습생 하나 정도는 넣어도 된다.

그러니 원래 로 별 지랄 맞은 일 다 겪은 현실보다 훨씬 수월한데도….

이상하게, 내키지 않았다.

“…현실이 아니라 그렇지.”

깨어나는 게 목적이라 어쩔 수 없는 거라며, 나는 생각을 끝냈다.

“현실이 아니라니?”

“…!”

고개를 돌리자, 연습실 뒤편 문을 열고 걸어들어오는 청려가 보였다.

‘저 새끼는 노크도 못 배워 먹었나.’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그냥 해본 말입니다.”

“음, 슬슬 그런 생각할 때도 되긴 했지.”

“…….”

“근데 현실이니까, 그런 생각 마요. 시간 낭비라서.”

안 됐지만 꿈 맞다, 새끼야.

나는 말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청려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 따라올 거라면서요. 그거 사흘 뒤 촬영이던데.”

“…….”

“방송에 출연은 안 돼요. 그냥 내가 데려가는 거라.”

“그거면 됐습니다.”

설마 출연하고 싶었겠냐.

어쨌든 미래지식이 몇 번 검증된 이후로 소름 끼치게 친절해진 놈은 흔쾌히 조작까지 승낙했다.

“음… 이 문항이 나온다는 거죠?”

“예.”

‘주어진 문항에 대한 답변이 제일 비슷한 소속사에게 이적 제안을 받는다’는 방식을 역이용하는 것이다.

김래빈은 어차피 그대로 가도 LeTi에게 권유를 받을 걸 안다.

그리고 차유진과 류청우는… 무슨 짓을 해도 이런 작업 때문에 넘어올 만한 놈들이 아니란 것도 알고.

그러니 남은 한 놈을 잡아 올 생각이다.

“알려줬으니 아마 그대로 할 겁니다.”

배세진.

제대로만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제일 낚기 쉬운 놈이다.

* * *

그리고 며칠 뒤 촬영장.

“이거부터 옮겨요!”

나는 스탭 사이에서 비슷한 복장으로 LeTi 쪽 심부름을 하며 상황을 확인했다.

‘…확률은 높다.’

일단 소속사에서 전에 두 멤버와 접촉해서 이야기를 나눴던 것을 확인했다.

‘김래빈과 배세진.’

내 사주를 받은 청려의 조언을 통해서였다.

가 워낙 흥행한 타이밍이라 이 정도 꼼수는 기껍게 해주더라.

둘 다 가장 혹할 만한 방향으로 딜을 조언했다.

‘김래빈에게는 작업 지원 중심.’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중 프로듀싱 관련 설비에 예산을 가장 많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 소속사 AR 작업이 대단히 체계적이더라고. 게다가 김래빈은 VTIC이 쓰는 녹음 프로그램을 궁금해하던 놈이니 제법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놈의 도덕적인 성향을 고려해서 문항 유출 이야기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단지 이 모든 게 ‘공식적인 방법’이라는 점만 강조했다.

-프로그램에서의 공식적인 이적 방식을 통해 만남을 가질 수 있다면 대단히 기쁜 일이겠습니다.

다만 여차하면 차유진도 설득해서 함께 와도 좋다는 정도는 덧붙였고.

‘차유진은 필요할 땐 눈치를 보는 놈이다.’

본인이 이 제안이 내킨다면, 지금 돌아가는 판을 눈치채고 알아서 눈치껏 김래빈이 할 법한 답변을 찍을 것이다. 가능성은 몹시 낮지만.

‘그리고 배세진은… 안전.’

-법무팀 인력이 완비되어 있으며, 아티스트 보호를 위한 대형 로펌과의 작업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속사 분쟁 등에 강하다는 은근한 뉘앙스를 담아, 대놓고 문항 답안과 함께 컨택했다.

안 그래도 혹할 놈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청려는 의외로 나 대신 대외적으로 소속사에게 바람 넣는 역할을 제법 성실히 수행했다.

‘작곡가를 미끼로 거래하길 잘했군.’

그래서 이제 결과를 볼 순간이다.

나는 스탭 행세를 계속하며 촬영장을 확인했다.

일단… 김래빈.

현실에서보다 더 고민하긴 했으나, 결국 거절은 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이후다.

명함을 받아 갔거든.

즉, 불우한 사고로… 이 프로그램이 풍비박산 나거나 본인이 하차할 시 LeTi와 컨택하겠단 뜻이다.

그리고 세상사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이 정도면 됐다.’

나름대로 3년 동안 이 제작진을 봐왔는데, 박살 나는 방법이야 지금부터 짜내도 서너 가지는 나올 것이다.

게다가 촬영이 끝난 후에 류청우까지 혼란을 틈타 슬쩍 접근한 LeTi 관계자의 명함을 받아 갔다.

상상 이상으로 성과가 좋았다.

‘차유진만 어떻게 하면… 전원 다 모아서 그대로 데뷔할 수도 있겠는데.’

갑자기 머리끝이 짜릿했다.

나는 침을 삼켰다.

하지만, 모든 일이 예상대로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

배세진이… 거절했다.

심지어 명함도 받지 않았다.

‘미쳤나.’

왜 동아줄을 걷어차고 있단 말인가. 현실에서도 이때 더럽게 고민했던 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러나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배세진은 에 잔류가 확정되었다.

* * *

“…….”

나는 입 다문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뺨이라도 후려 맞은 것 같군.’

어차피 대충 안 되는 놈은 거르고 갈 생각이었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벌컥.

나는 냉수라도 끼얹을 생각으로 거칠게 관계자용 화장실에 들어갔다.

“…!!”

“…!”

그리고 배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물 틀어놓고 질질 짜고 있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럴 거면 뭐 하러 거절해.’

나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말을 걸었다.

“지금이라도 승낙하는 게 어떨까요.”

“뭐?”

배세진은 멍하니 대꾸했다.

“LeTi 괜찮은 소속사거든요.”

“…….”

배세진은 얼굴이 시퍼레졌다가, 다시 시뻘게졌다가, 마지막으로 허옇게 질렸다.

‘너무 직접적으로 찔렀나.’

“뭐… 너, LeTi….”

“네. 거기 스탭입니다.”

배세진은 망연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갑자기 극도로 방어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대꾸했다.

“너희는… 연예인 빼가려고 이런 짓까지 해?”

“…!”

“나한테, 미리 연락하고… 문항 빼돌리고.”

‘X발.’

여기서 뒤틀렸나.

이놈은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문항을 보내고, 사전에 법무팀 이야기까지 꺼낸 것.

배세진이 느끼기에 원래 본인 소속사에서 하는 짓과 비슷하게 느껴졌을 법도 했다.

“…….”

쾅.

배세진은 도망치듯이 화장실을 나갔다.

그리고 나는 실책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 *

돌아가는 차 안.

나는 머릿속을 정리하려 애쓰며 팔짱을 꼈다.

‘없던 일 치자.’

그래도 기분이 더러웠다.

맞은편의 청려가 옆자리의 멤버가 숙면 중인 것을 체크하더니, 입을 열었다.

“후배님?”

“예.”

“아니, 나는 이해가 안 가서. 어차피 합류 안 했으니 물어보는 건데요.”

“…….”

“마지막 그 배우 출신은 잘하는 참가자도 아니던데, 왜 굳이 데려가려고 했어요? 나라면 이 기회에 잘랐을 텐데.”

“……뭐?”

“협조적인 것도 아니고, 별 쓸모 없어 보여서요.”

“…!!”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왜 데려오려고 했냐고?

‘그거야….’

내가 무의식중에 의식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대로 데뷔하면, 배세진은 마약 루머를 쓰고 커리어가 끝장난다는 것을.

‘그놈 인생이…, X발.’

나는 이를 악물었다.

사실 나도 안다.

현실도 아닌데 여기서 배세진이 마약 루머를 덮어쓰든 죽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대체 왜 내가 이 지랄을 하며 신경을 쓰는 건지 모르겠다, 망할.

“괜히 지난 관계 신경 쓰지 마요. 손해니까.”

“…….”

“어차피 다 명함만 받아가서 인원도 확정 아닌데, 그러지 말고 이런 건 어때요.”

“뭐요.”

청려가 미소 지었다.

“음, VTIC에 합류하는 것?”

“…!!”

이건 또 무슨 정신 나간 소리냐.

‘함정인가.’

재계약 시즌까지 지난 탑티어 그룹에 새 멤버 합류라니, 자살하라는 걸 색다르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아니, 잘 들어봐요.”

그리고 놈은, 놀랍게도 제법 그럴싸한 루트를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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