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2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3화
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니, 가끔 김래빈이 숨넘어갈 듯이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평상시라면 어떻게든 ‘괜찮으실 거야’ 같은 말로 위로했을 놈들도 묵묵히 운전을 하거나 등만 두드렸다.
위로가 더 불안할 상황이었으니까.
“네 형. …예, ‘이 새벽에’ 오셔야죠. 저희 지금 이동 중이니까 최대한 빨리 근처 대기 부탁드립니다.”
나는 겨우 연결된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전달 후,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지금 ‘이 새벽에?’ 같은 발언이 나올 상황이냐? 워라밸도 주장할 순간이 있는 거지 이 미친 새끼가.
“…….”
그 이후론 뭘 하고 있냐고?
X 같게도 아무것도 못 했다.
그러면서 생각만 하고 있다.
여기서 김래빈 본가가 있는 강원도까지는 어떤 짓을 해도 세 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것을.
‘만일의 경우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평소 휴가 직전 때처럼 서울에서 바로 출발했더라면 어땠을지 가정해 보자.
그 시간은 한 시간 반 이상 단축되었을 것이다.
한 시간 반의 차이.
그 계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X발.’
내 앞에 앉은 놈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래빈은 지금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다. 무의식중에 또 연락이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마 본인이 먼저 전화를 다시 걸진 못하는 게….
“…….”
숨이 찬다.
‘그만.’
웃기는 일이었다. 당사자도 아니고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몰입이나 하고 자빠졌군.
나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고개를 창문에 박고,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게 그나마 방해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졸도할 것 같은 세 시간 정도가 차 안에서 흐른 후.
목적지로 가는 마지막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막 지났을 때였다. 류청우가 최대한 차분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삼십 분이면 도착할 거야.”
“…….”
배세진이 힘겹게 김래빈에게 말을 걸었다.
“…옷 갈아입어.”
“…….”
지나치게 오래 긴장과 걱정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던 김래빈이 천천히 자신의 상의를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미 다 마르기 직전인 옷이 시트 아래로 떨어지며 염분도 떨어졌다.
그리고 새 옷을 걸친 김래빈은 넋 나간 듯이 움직임이 없더니, 곧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 시작했다.
“제가… 쓰, 쓸데없이 MT 가자고 해서…… 늦,”
“아니야.”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래서 사실 그럴싸한 이유를 지금부터 만들어내야 했으나, 설명을 덧붙일 틈은 없었다.
끼어든 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아요! 저 때문이에요.”
“…!”
“내가 먼저 가자고 말했어. 김래빈 탓 아니에요!”
차유진은 제법 씩씩하게 말했지만, 본인도 거의 울 것 같은 몰골이었다.
김래빈은 쉰 소리를 내질렀다.
“아, 아냐! MT는 가, 같이 기획한…… 자, 장소도 내가….”
“나중에 생각해.”
나는 놈의 말을 끊었다.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할머님 뵙고 와.”
“…….”
김래빈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생각을 하게 만들면 안 된다. 이게 맞았다.
경험상으로는.
곧 차의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했다.
“가자.”
“…예.”
그렇게 김래빈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머지 인원도 동행할 수 있는 곳까지는 따라갔다.
병실 복도 옆 대기 의자에 앉아 김래빈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
“아이고, 우리 엄마….”
병실 앞에서는 친인척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의료진이 오갔지만, 당연히 우리는 아는 척하거나 말 걸 것 없이 닥치고 앉아 있었다.
다만 분위기를 보니,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불러도 될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창밖에 어슴푸레 날이 밝는 것이 비칠 때쯤이었다.
“문대야.”
“…….”
“박문대, 너 차 가서 좀 누워 있는 게 어때.”
“나 말고 류청우… 형이 가야겠지.”
새벽 내내 잠 안 자고 운전한 사람이 아직 깨어 있는 게 말이 되나.
저놈이 자러 가는 게 도의상 맞았다.
그러나 류청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안 피곤해.”
“네. 저도 그렇습니다.”
“…….”
짧은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멤버들은 더는 서로에게 휴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조용히 더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김래빈은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나와서 상황을 전달했다.
“래빈아.”
“괜찮아?”
“예, 예…. 할머니, 이야기하고…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당장 고비는 넘겼다는 것이다.
‘하.’
우습게도 전신의 긴장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다.
김래빈은… 늦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김래빈의 표정과 뉘앙스에서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안심한 얼굴이 아니다.
‘…앞으로도 고비가 계속 오겠군.’
김래빈에겐 최악의 휴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발 늦게 도착한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돌아갈 집이 있는 멤버들은 일단 귀가했다.
뒤늦게 병실에서 나온 김래빈의 누나가 부드럽게 권유했기 때문이다.
-래빈이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데….
-휴가시라고 들었어요. 귀한 하루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시는 길 안전하시길 바라요.
미안하기도 했겠고, 이렇게 많은 외부인을 신경 쓸 상황도 못 되었을 테니 합리적인 발언이었다.
가족과 보낼 시간이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놈들이 여기까지 동행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리였지.
그러나 차유진은 어차피 숙소행이었겠다, 단호하게 거부했다.
-괜찮아요, 저 집 못 가요! 여기 있어요.
-유진아….
전 소속사 생활 덕에 김래빈 가족과도 제법 안면이 있는지, 이쪽은 어쨌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차유진만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이놈이 누굴 완전히 케어할 타입이 아닌데.’
자칫하면 김래빈의 누나가 이놈까지 챙기게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똑같이 숙소에 있을 두 놈 중에 하나만 여기 남겠다는 건, 심지어 빠지는 게 연장자인 꼴은 너무 우습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남기로 했다.
-저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휴가 때 숙소에 있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몇 번의 사양과 안도 끝에, 우리는 김래빈 누나와 할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김래빈의 본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래빈의 누나와 대화를 통해 적당히 사정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며칠 정도 더 상황 지켜보고, 여건이 되면 수술 들어갈 거라고 하시는데….
-…확률이 높진 않더라구요.
-그래도, 이번처럼 갑자기 말 듣는 것보다… 래빈이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무슨 질병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정신 나간 짓을 할 순 없었다.
단지 오가면서 친인척들이 나누는 대화를 주워듣자면, 무슨 뇌하수체 문제 같았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긴장이 풀린 김래빈이 울면서 한 이야기는 이랬다.
“지, 지난번에 입원하셨을 때 발견했는데… 저 서울에서 일하는데 신경 쓰게 하기 싫다시면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
“그, 그런 줄도 모르고… 신경도 안 쓰고, 제, 제가 너무 바보 같아서.”
“아니야! 너 바보 아니야.”
“아니, 바보 같았어! 오, 오늘도… 나 혼자 정신도 못 차리고, 제대로 못 해서….”
“너 충분히 잘했어.”
나는 김래빈의 말을 끊었다.
“침착하게 잘했어. 할머니도 뵙고, 다 했잖아. 이런 일에 능숙한 사람은 없는 거야.”
“…….”
김래빈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통했다는 것에 이상한 감회를 느꼈다.
‘맞아.’
이런 일에 어떤 당사자가 능숙할 수 있겠는가.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것이다.
나는 김래빈의 누나에게 사전에 허락받은 대로,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서 이온음료를 꺼냈다.
그리고 분명 수분 공급이 부족할 놈에게 따라 건네며, 마시는 것을 확인한 뒤에 천천히 말했다.
“차에서… 밀어붙여서 미안했다. 고생했어.”
“아, 아닙니다…! 덕분에, 늦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더 늦어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심리적인 문제겠지.
그리고 나는 이 심리적 문제가 계속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어렵게 됐어.’
휴가 이후에, 회사와 이놈이 나눌 대화까지 말이다.
“맛있는 거 먹어, 김래빈. 배달해!”
“배, 배달은… 시키는 거야.”
“알았어. 시켜!”
그나마 차유진에게 말대꾸하면서 평상시 기조를 되찾은 김래빈은 겨우 음식을 시켰지만, 많이 먹진 못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평상시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병원의 긴급호출에 대기하면서 휴가가 흘러갔다.
그리고… 그 어려운 순간이 왔다.
* * *
휴가 마지막 날 아침.
“할머니 수술하신다고 합니다.”
김래빈이 아침부터 자신의 누나에게 연락을 받더니, 제법 침착하게 말했다. 스마트폰을 거꾸로 들고 있긴 했지만.
“먹으면서 말해라.”
“김래빈 자리 여기야!”
“알아, 우리 집이거든! …예! 그, 할머니 상태가 호전되셔서 수술 처치를 받으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회복 확률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이 수술이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더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르겠다.
희망적으로 생각하려는 놈에게 초를 쳐야 할지, 맞장구를 쳐줘야 할지.
그래서 나는 대신 현실적인 문제를 꺼냈다.
휴가 첫날부터 생각했던, 그 ‘어려운’ 문제를.
“곁에서 간호할 생각이야?”
“예…?”
“알겠지만, 오늘로 휴가는 끝이다.”
나는 숟가락을 그릇 안에 놓았다.
“내일 아침 중에 복귀해야 돼.”
“…!!”
“서울 돌아가도 괜찮을지… 잘 생각해 봐야지.”
…활동 복귀해서 서울에 있다 보면, 할머님의 수술 경과가 갑자기 악화될 경우 임종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데뷔 초에, 할머님이 처음 쓰러지셨을 때 김래빈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그 경우에… 제가 공연 중에, 촬영 중에… 중단하고 가는 게 옳은 건지. 그런데 그러면… 직업적 소양이 부족한 것 같고.
가족이냐 일이냐.
그 망할 양자택일의 순간이다.
그것도 한순간이 아니라, 수술 경과를 볼 4주를 통째로 걸고 생각하는.
‘상황 한번 쓰레기 같군.’
물론 그때도 그랬지만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복귀 한동안 안 해도 괜찮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어.”
“…맞아요. 괜찮아!”
“회사 설득은 같이 들어갈 테니까 걱정 말고.”
차유진이 제법 지원사격을 할 줄 아는군. 요 며칠은 분위기 파악을 잘하더라니.
그리고 사실, 이쯤 말하면 김래빈이 눈을 질끈 감고 ‘정말 죄송하지만 그러겠다’고 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그렇게 해도,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
“주, 중요한 정규 앨범인데, 제, 제가 맡은 곡은 아직 한 곡도 전부 완성하지 못했고… 타이틀도, 작업 중이고….”
당연하지만, 김래빈에게도 꿈과 책임감이 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안무도, 무대도… 아,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심지어 김래빈은 프로듀싱을 전담하는 멤버였다. 그러니, 테스타라는 그룹의 음악성 자체이기도 했다.
김래빈은 자신이 완전히 빠지면 그룹 정체성에 손상이 온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할머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회복되시면… 제가 한 일은, 아니, 그, 그걸 바라는 건데.”
“그래, 알겠어.”
나는 놈의 말을 멈췄다.
그 말이 맞았다. 만일 할머님이 문제없이 회복되면, 김래빈은 괜히 쉬었다며 후회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후회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겠지.
‘…내가 편파적으로 치우쳤나.’
내 과거 상황과 지나치게 겹쳐봐서 좀 오인했다.
나는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최선은 역시 앨범 발매를 한두 달 미루는 건데.’
하지만 이건 내가 곤란했다.
이러면 투어 일정이 뒤틀릴 수 있는데, 그럼 상태이상 클리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돌아버리겠군.’
그때였다.
“둘 다 해!”
“…!!”
차유진이 소리쳤다.
“우리 좋은 방법 많아요! 전화랑…어엄.”
“영어로 해.”
[맞다! 저 영어 쓰죠?]
차유진이 눈을 빛내며 식탁을 두드렸다.
[메일도 있고, 영상 통화에 화상 채팅까지 되는 시대잖아요! 김래빈은 여기서 곡 작업하라고 해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요소들을 준비하죠!]
“…!”
놀랍도록 합리적이다.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차유진이 넌 여기서 곡 작업하면서 원격으로 재택근무하라는데.”
“재택근무요??”
“내가 듣기엔 괜찮은 것 같다만.”
아니나 다를까, 김래빈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나아졌다.
“제, 제가 듣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곡 외에 다른 것들은….”
나는 두 손을 깍지 꼈다.
머리가 며칠 만에 원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안무는 만일을 위해 두 버전을 만들 거야. 네가 있는 버전, 없는 버전.”
“예??”
“좋아요!”
“그리고 촬영도 마찬가지로, 일단 우리 개인 컷과 단체를 따고, 네 개인 촬영 날짜를 따로 최대한 미뤄서 잡아놓는다.”
“오우!”
“최대한 네 합류 시간을 뒤로 빼면서, 네가 합류 못 했을 경우의 버전도 완성해 두는 거지.”
김래빈이 입을 떡 벌렸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그냥 후반에 합류할수록 너 혼자 더럽게 힘들진다는 건데.”
나는 물었다.
“그래도 할래?”
“…예!”
좋아.
김래빈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법 씩씩해 보이더니, 곧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여러 연유로 북받쳐 오르는 게 있을 법했다.
“그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고.”
“네…….”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하다 안 되면 중간에 그만둬도 돼.”
“맞아! 김래빈 잘못 아니에요.”
그 말이 맞았다.
그렇게, 일과 가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보려는 4주가 시작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3화
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니, 가끔 김래빈이 숨넘어갈 듯이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평상시라면 어떻게든 ‘괜찮으실 거야’ 같은 말로 위로했을 놈들도 묵묵히 운전을 하거나 등만 두드렸다.
위로가 더 불안할 상황이었으니까.
“네 형. …예, ‘이 새벽에’ 오셔야죠. 저희 지금 이동 중이니까 최대한 빨리 근처 대기 부탁드립니다.”
나는 겨우 연결된 매니저에게 이야기를 전달 후,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지금 ‘이 새벽에?’ 같은 발언이 나올 상황이냐? 워라밸도 주장할 순간이 있는 거지 이 미친 새끼가.
“…….”
그 이후론 뭘 하고 있냐고?
X 같게도 아무것도 못 했다.
그러면서 생각만 하고 있다.
여기서 김래빈 본가가 있는 강원도까지는 어떤 짓을 해도 세 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것을.
‘만일의 경우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 평소 휴가 직전 때처럼 서울에서 바로 출발했더라면 어땠을지 가정해 보자.
그 시간은 한 시간 반 이상 단축되었을 것이다.
한 시간 반의 차이.
그 계산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X발.’
내 앞에 앉은 놈도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래빈은 지금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다. 무의식중에 또 연락이 오는 것을 기다리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차마 본인이 먼저 전화를 다시 걸진 못하는 게….
“…….”
숨이 찬다.
‘그만.’
웃기는 일이었다. 당사자도 아니고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면서 쓸데없이 몰입이나 하고 자빠졌군.
나는 스스로를 비웃으며 고개를 창문에 박고,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게 그나마 방해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졸도할 것 같은 세 시간 정도가 차 안에서 흐른 후.
목적지로 가는 마지막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막 지났을 때였다. 류청우가 최대한 차분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삼십 분이면 도착할 거야.”
“…….”
배세진이 힘겹게 김래빈에게 말을 걸었다.
“…옷 갈아입어.”
“…….”
지나치게 오래 긴장과 걱정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던 김래빈이 천천히 자신의 상의를 갈아입기 시작했다.
이미 다 마르기 직전인 옷이 시트 아래로 떨어지며 염분도 떨어졌다.
그리고 새 옷을 걸친 김래빈은 넋 나간 듯이 움직임이 없더니, 곧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 시작했다.
“제가… 쓰, 쓸데없이 MT 가자고 해서…… 늦,”
“아니야.”
나는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래서 사실 그럴싸한 이유를 지금부터 만들어내야 했으나, 설명을 덧붙일 틈은 없었다.
끼어든 놈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아요! 저 때문이에요.”
“…!”
“내가 먼저 가자고 말했어. 김래빈 탓 아니에요!”
차유진은 제법 씩씩하게 말했지만, 본인도 거의 울 것 같은 몰골이었다.
김래빈은 쉰 소리를 내질렀다.
“아, 아냐! MT는 가, 같이 기획한…… 자, 장소도 내가….”
“나중에 생각해.”
나는 놈의 말을 끊었다.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할머님 뵙고 와.”
“…….”
김래빈이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생각을 하게 만들면 안 된다. 이게 맞았다.
경험상으로는.
곧 차의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했다.
“가자.”
“…예.”
그렇게 김래빈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머지 인원도 동행할 수 있는 곳까지는 따라갔다.
병실 복도 옆 대기 의자에 앉아 김래빈이 나오는 것을 기다리게 되었다는 뜻이다.
“…….”
“아이고, 우리 엄마….”
병실 앞에서는 친인척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의료진이 오갔지만, 당연히 우리는 아는 척하거나 말 걸 것 없이 닥치고 앉아 있었다.
다만 분위기를 보니,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불러도 될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창밖에 어슴푸레 날이 밝는 것이 비칠 때쯤이었다.
“문대야.”
“…….”
“박문대, 너 차 가서 좀 누워 있는 게 어때.”
“나 말고 류청우… 형이 가야겠지.”
새벽 내내 잠 안 자고 운전한 사람이 아직 깨어 있는 게 말이 되나.
저놈이 자러 가는 게 도의상 맞았다.
그러나 류청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안 피곤해.”
“네. 저도 그렇습니다.”
“…….”
짧은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멤버들은 더는 서로에게 휴식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조용히 더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김래빈은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나와서 상황을 전달했다.
“래빈아.”
“괜찮아?”
“예, 예…. 할머니, 이야기하고… 지금, 주무시고 계십니다….”
당장 고비는 넘겼다는 것이다.
‘하.’
우습게도 전신의 긴장이 쭉 빠져나가는 것 같다.
김래빈은… 늦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김래빈의 표정과 뉘앙스에서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안심한 얼굴이 아니다.
‘…앞으로도 고비가 계속 오겠군.’
김래빈에겐 최악의 휴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한발 늦게 도착한 회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고, 돌아갈 집이 있는 멤버들은 일단 귀가했다.
뒤늦게 병실에서 나온 김래빈의 누나가 부드럽게 권유했기 때문이다.
-래빈이 데려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인데….
-휴가시라고 들었어요. 귀한 하루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시는 길 안전하시길 바라요.
미안하기도 했겠고, 이렇게 많은 외부인을 신경 쓸 상황도 못 되었을 테니 합리적인 발언이었다.
가족과 보낼 시간이 일 년에 한두 번밖에 없는 놈들이 여기까지 동행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의리였지.
그러나 차유진은 어차피 숙소행이었겠다, 단호하게 거부했다.
-괜찮아요, 저 집 못 가요! 여기 있어요.
-유진아….
전 소속사 생활 덕에 김래빈 가족과도 제법 안면이 있는지, 이쪽은 어쨌든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차유진만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이놈이 누굴 완전히 케어할 타입이 아닌데.’
자칫하면 김래빈의 누나가 이놈까지 챙기게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똑같이 숙소에 있을 두 놈 중에 하나만 여기 남겠다는 건, 심지어 빠지는 게 연장자인 꼴은 너무 우습지 않은가.
그래서 나도 남기로 했다.
-저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휴가 때 숙소에 있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몇 번의 사양과 안도 끝에, 우리는 김래빈 누나와 할아버지의 강권에 따라 김래빈의 본가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김래빈의 누나와 대화를 통해 적당히 사정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며칠 정도 더 상황 지켜보고, 여건이 되면 수술 들어갈 거라고 하시는데….
-…확률이 높진 않더라구요.
-그래도, 이번처럼 갑자기 말 듣는 것보다… 래빈이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무슨 질병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정신 나간 짓을 할 순 없었다.
단지 오가면서 친인척들이 나누는 대화를 주워듣자면, 무슨 뇌하수체 문제 같았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서 긴장이 풀린 김래빈이 울면서 한 이야기는 이랬다.
“지, 지난번에 입원하셨을 때 발견했는데… 저 서울에서 일하는데 신경 쓰게 하기 싫다시면서,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
“그, 그런 줄도 모르고… 신경도 안 쓰고, 제, 제가 너무 바보 같아서.”
“아니야! 너 바보 아니야.”
“아니, 바보 같았어! 오, 오늘도… 나 혼자 정신도 못 차리고, 제대로 못 해서….”
“너 충분히 잘했어.”
나는 김래빈의 말을 끊었다.
“침착하게 잘했어. 할머니도 뵙고, 다 했잖아. 이런 일에 능숙한 사람은 없는 거야.”
“…….”
김래빈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이 통했다는 것에 이상한 감회를 느꼈다.
‘맞아.’
이런 일에 어떤 당사자가 능숙할 수 있겠는가.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한 것이다.
나는 김래빈의 누나에게 사전에 허락받은 대로,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어서 이온음료를 꺼냈다.
그리고 분명 수분 공급이 부족할 놈에게 따라 건네며, 마시는 것을 확인한 뒤에 천천히 말했다.
“차에서… 밀어붙여서 미안했다. 고생했어.”
“아, 아닙니다…! 덕분에, 늦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더 늦어도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지만, 심리적인 문제겠지.
그리고 나는 이 심리적 문제가 계속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어렵게 됐어.’
휴가 이후에, 회사와 이놈이 나눌 대화까지 말이다.
“맛있는 거 먹어, 김래빈. 배달해!”
“배, 배달은… 시키는 거야.”
“알았어. 시켜!”
그나마 차유진에게 말대꾸하면서 평상시 기조를 되찾은 김래빈은 겨우 음식을 시켰지만, 많이 먹진 못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평상시의 분위기를 유지하며, 병원의 긴급호출에 대기하면서 휴가가 흘러갔다.
그리고… 그 어려운 순간이 왔다.
* * *
휴가 마지막 날 아침.
“할머니 수술하신다고 합니다.”
김래빈이 아침부터 자신의 누나에게 연락을 받더니, 제법 침착하게 말했다. 스마트폰을 거꾸로 들고 있긴 했지만.
“먹으면서 말해라.”
“김래빈 자리 여기야!”
“알아, 우리 집이거든! …예! 그, 할머니 상태가 호전되셔서 수술 처치를 받으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회복 확률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시 말하자면… 이 수술이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더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르겠다.
희망적으로 생각하려는 놈에게 초를 쳐야 할지, 맞장구를 쳐줘야 할지.
그래서 나는 대신 현실적인 문제를 꺼냈다.
휴가 첫날부터 생각했던, 그 ‘어려운’ 문제를.
“곁에서 간호할 생각이야?”
“예…?”
“알겠지만, 오늘로 휴가는 끝이다.”
나는 숟가락을 그릇 안에 놓았다.
“내일 아침 중에 복귀해야 돼.”
“…!!”
“서울 돌아가도 괜찮을지… 잘 생각해 봐야지.”
…활동 복귀해서 서울에 있다 보면, 할머님의 수술 경과가 갑자기 악화될 경우 임종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데뷔 초에, 할머님이 처음 쓰러지셨을 때 김래빈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 그 경우에… 제가 공연 중에, 촬영 중에… 중단하고 가는 게 옳은 건지. 그런데 그러면… 직업적 소양이 부족한 것 같고.
가족이냐 일이냐.
그 망할 양자택일의 순간이다.
그것도 한순간이 아니라, 수술 경과를 볼 4주를 통째로 걸고 생각하는.
‘상황 한번 쓰레기 같군.’
물론 그때도 그랬지만 할 말은 정해져 있다.
“미리 말해두지만, 복귀 한동안 안 해도 괜찮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짓인데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어.”
“…맞아요. 괜찮아!”
“회사 설득은 같이 들어갈 테니까 걱정 말고.”
차유진이 제법 지원사격을 할 줄 아는군. 요 며칠은 분위기 파악을 잘하더라니.
그리고 사실, 이쯤 말하면 김래빈이 눈을 질끈 감고 ‘정말 죄송하지만 그러겠다’고 외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그렇게 해도,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
“주, 중요한 정규 앨범인데, 제, 제가 맡은 곡은 아직 한 곡도 전부 완성하지 못했고… 타이틀도, 작업 중이고….”
당연하지만, 김래빈에게도 꿈과 책임감이 있던 것이다.
“뮤직비디오도, 안무도, 무대도… 아,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심지어 김래빈은 프로듀싱을 전담하는 멤버였다. 그러니, 테스타라는 그룹의 음악성 자체이기도 했다.
김래빈은 자신이 완전히 빠지면 그룹 정체성에 손상이 온다는 것을 기민하게 알아차린 것이다.
“할머님이 돌아가시지 않고 회복되시면… 제가 한 일은, 아니, 그, 그걸 바라는 건데.”
“그래, 알겠어.”
나는 놈의 말을 멈췄다.
그 말이 맞았다. 만일 할머님이 문제없이 회복되면, 김래빈은 괜히 쉬었다며 후회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후회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겠지.
‘…내가 편파적으로 치우쳤나.’
내 과거 상황과 지나치게 겹쳐봐서 좀 오인했다.
나는 식탁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최선은 역시 앨범 발매를 한두 달 미루는 건데.’
하지만 이건 내가 곤란했다.
이러면 투어 일정이 뒤틀릴 수 있는데, 그럼 상태이상 클리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돌아버리겠군.’
그때였다.
“둘 다 해!”
“…!!”
차유진이 소리쳤다.
“우리 좋은 방법 많아요! 전화랑…어엄.”
“영어로 해.”
차유진이 눈을 빛내며 식탁을 두드렸다.
“…!”
놀랍도록 합리적이다.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차유진이 넌 여기서 곡 작업하면서 원격으로 재택근무하라는데.”
“재택근무요??”
“내가 듣기엔 괜찮은 것 같다만.”
아니나 다를까, 김래빈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나아졌다.
“제, 제가 듣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곡 외에 다른 것들은….”
나는 두 손을 깍지 꼈다.
머리가 며칠 만에 원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안무는 만일을 위해 두 버전을 만들 거야. 네가 있는 버전, 없는 버전.”
“예??”
“좋아요!”
“그리고 촬영도 마찬가지로, 일단 우리 개인 컷과 단체를 따고, 네 개인 촬영 날짜를 따로 최대한 미뤄서 잡아놓는다.”
“오우!”
“최대한 네 합류 시간을 뒤로 빼면서, 네가 합류 못 했을 경우의 버전도 완성해 두는 거지.”
김래빈이 입을 떡 벌렸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 그냥 후반에 합류할수록 너 혼자 더럽게 힘들진다는 건데.”
나는 물었다.
“그래도 할래?”
“…예!”
좋아.
김래빈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법 씩씩해 보이더니, 곧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
여러 연유로 북받쳐 오르는 게 있을 법했다.
“그래,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자고.”
“네…….”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하다 안 되면 중간에 그만둬도 돼.”
“맞아! 김래빈 잘못 아니에요.”
그 말이 맞았다.
그렇게, 일과 가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 보려는 4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