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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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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1화
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배부하는 중에도 수험생의 머릿속은 서너 가지 문장이 동시에 튀어 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문대 지금 은발일 텐데, 흑발? 뭐지? 가발인가? 역시 문대가 아닌가?’
‘문대가 아니라도 이렇게 느낌 닮은 사람을 보니까 왠지 계 탄 느낌이다.’
‘잠깐! 신분 확인할 때 얼굴 보이지 않을까!?’
‘어어어! 그렇지! 시험지 돌릴 때 뒤돌아볼… 아니구나. 감독관님이 나눠주시겠구나.’
몇 가지는 맞는 말이었으나, 몇 가지는 틀린 가정이었다.
가령 박문대는 은발을 가리기 위해 컬러 스프레이를 썼으며, 신분 확인할 때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감독관에게 얼굴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뒤에 앉은 수험생에게까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며, 감독관은 나이 지긋한 남성이었기에 박문대를 바로 알아보진 못해 그저 태연했다.
‘으으윽!’
그래서 뒷자리의 수험생은 그저 답답함과 궁금증에 괴로워하며 내적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다만, 직후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자, 시험지 돌려주세요.”
“…!”
시험지를 앞사람에게서 배부받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험생은… 마침내 보았다.
‘허억.’
앞자리의 남자는 아주 살짝만 뒤로 돌아 순식간에 시험지를 건넨 후 자세를 바로 했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썼지만, 수험생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가로로 크고 선이 깨끗한 눈!
‘바바박문대!’
박문대가 맞았다!
수험생은 거의 졸도할 것 같은 심정으로 시험지를 받았다.
지금 팬사인회에서 앨범을 받는 건지 검정고시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니, 팬사인회에 당첨된 적도 없지만!
“종이 친 후에 문제 풀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사, 살려줘.’
수험생은 주어 없는 고함을 속으로 질렀으나, 다량의 모의고사 경험 덕에 시험지를 펴고 문제를 풀기 시작하긴 했다.
하지만 충격으로 머리가 새하얗게 떠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잠시 뒤.
‘…빨리 풀면 그만큼 일찍 문대의 등을 볼 수 있는 거잖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험지에 코를 박고 있던 수험생에게 이상한 발상이 잘못된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수험생은 맹렬히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검정고시 불합격이 한 발짝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으아아!’
그리고 박문대에게만 놀랍게도, 이 교실에서 그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이 뒷자리의 수험생뿐만이 아니었다.
* * *
‘괜찮네.’
나는 마지막 선택과목인 ‘도덕’ 문제를 다 풀고 연필을 내려놓았다.
시험은 별문제 없이 평탄히 진행되었다.
점심시간에는 약간 위험할 뻔했으나, 적당히 사람 없는 먼 계단 복도 쪽에서 창가 보고 먹었다.
‘애초에 죽이라 먹기도 편해서 쉬웠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시험 자체도 기출에서 보았던 평년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사회나 과학 쪽은 다 잊어버린 파트에서만 출제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못 본 것 같진 않군.’
나는 너끈한 합격을 거의 확신하며 살짝 스트레칭을 했다.
“흡.”
뒤에서 어딘지 편찮은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좀 거슬렸나 보다. 나는 그냥 팔을 내렸다.
‘남은 시간은… 10분인가.’
그리고 얌전히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가는 길은 이미 시간에 맞춰서 택시를 불러 뒀으니 얼른 내려가서 타기만 하면 됐다.
‘됐네.’
그러나 막상 10분 뒤 맞이한 현실이 썩 예상대로는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챙긴 뒤, 다들 나갈 때까지 기다리던 중 같은 교실의 누군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저기 학생!”
“…….”
“학생 혹시… 그 문대 아니야? 그 호떡 만드는 문대?”
여기서 짧게 고민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라고 외치고 뛰어나갈지 말이다.
그러나 목격자가 한둘이 아닐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게다가 이… 여사분도 나름대로 작게 속삭이신답시고 작게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네. 시험 보러 왔습니다.”
“아이고! 그렇구나. 장해라… 그, 괜찮으면 사인 한 장만 되나요? 우리 딸이 너무 팬이야!”
“그럼요.”
나는 수험표에 짧게 사인을 해드린 뒤, 얼른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허어업, 괜찮으시면 저도 좀….”
“아, 예.”
“저기! 정말 죄송한데 저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직 교실에 남았던 몇몇 사람들이 즉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질서정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 하나 현 사태에 기겁하지 않았다.
강렬한 가설이 하나 떠올랐다.
‘설마 이 사람들 진작 다 의심하고 있었나?’
어쩐지 예닐곱 명이나 교실 안 나가고 미적거리더니, 나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군.
아무래도 테스타 대중 인지도를 내가 너무 안일하게 후려쳤나 보다.
‘식은땀이 다 나는데.’
무엇보다 이 많은 사람이 시험 중에는 아무 제스처도 안 했다는 게 제일 놀랍다.
한 사람이라도 호들갑 떨며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면 민폐 논란으로 번질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럼 난 점심시간쯤 벌써 각 봐서 탈주했겠지.
‘…덕분에 잘 봤네.’
뭐 빠져나갈 구석이 없군. 내 예측 실패를 커버해 준 셈이니 말이다.
나는 군말 없이 사인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와, 감사해요….”
그렇게 몰려든 몇 명에게 사인을 마치고 얼른 나가려던 참이었다.
‘사진 요청 들어오기 전에 정신없을 때 얼른 빠져나가자.’
그런데 가방을 들면서 보니, 뒷자리의 사람이 아직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
게다가 미동도 없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니 입을 벌린다.
저거 팬사인회에서 많이 보던 표정인데.
“혹시 사인 필요하신가요.”
“…?! 네! 네네넵!”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군. 다행이었다.
“사,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뒷자리 사람의 수험표에도 황급히 사인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잘 들어가세요!”
“활동 파이팅!”
이 고사장 교실이 끝 쪽이라 다른 고사장의 사람이 이걸 보지 못한 게 다행일 뿐이었다.
나는 사람이 많이 빠진 복도를 가로질러 빠르게 달렸다.
‘후기 올라오려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니, 그냥 날 좀 동정하거나 긁다가 끝나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운동장으로 나가 곧바로 택시에 탑승했다.
숙소까진 올 때처럼 금방이었다.
“웰컴~”
“자, 잘 다녀왔어?”
“응.”
“죽은 점심으로 드시기 어떠셨습니까?”
“잘 먹었어. 고맙다.”
그리고 내 시험을 핑계로 삼은 차유진의 강력한 주장 하에 족발을 시켜 먹었다.
덕분에 무알콜로 건배사를 듣는 오묘한 짓을 또 했다.
“문대 오늘 시험 보느라 수고했고… 우리 다음 활동까지 잘 회복해서 또 멋진 모습 보여드리자.”
“그럼요~”
“예압!”
“충실한 준비 기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자, 잠깐. 박문대 스마트폰 내려놔!”
“…개가 고기 먹는 영상인데요.”
뭐, 비활동기다운 하루였다.
저녁도… 맛있었다.
* * *
박문대의 검정고시 소식은 그의 생각보다는 느리게 퍼졌다.
사인을 받아 간 사람 중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없었기에 반신반의하는 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너 명이 사인을 받은 수험표 인증을 한 후에야 정설로 인정받았다.
결정타는 이 후기였다.
========================
[어제 시험 보러 가서 최애 봤어]
지금 누구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들 많을 것 같은데ㅎㅎ
응 내 최애 박문대 맞아!
(사인 인증 사진)
나 심지어 문대 바로 뒷자리에 앉았는데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진짜등만 봐도 잘생겼더라 뼈까지 잘생겨서 고개를 못 들겠더라ㅠㅠ
자세도 너무 바르고 어깨도 딱 예쁘게 넓고ㅠㅠ
(……)
========================
박문대의 뒷자리에 앉은 수험생의 인증이었다.
그리고 그 인증 뒤에는 친절한 어그로 방지까지 붙어 있었다.
========================
문대 진짜 조용히 시험만 봤고 끝나고 나갈 때 사람들이 아는 척하니까 일일이 다 사인도 해줬어
심지어 나 굳어서 말도 못 하고 앉아서 보기만 했는데 혹시 사인 필요한지 물어봐서 해준 거야ㅠㅠ
괜히 피해 갈까 봐 안 올릴까 했는데 이미 다들 알길래… 문대가 얼마나 잘해줬는지도 알아줬으면 해서 올린다…
수험표는 나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가기로 했어ㅋㅋㅠㅠ
========================
귀엽고 훈훈한 후기였다. 박문대의 검정고시 응시 소식에 다소 아련해 하던 팬들까지도 이 후기는 즐겁게 확인했다.
사생활 침해로 볼 정도는 아니고, 저절로 어떤 상황이었을지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댕댕이 사람 좋아해서 사인도 다 해주고 왔냐고 아이고ㅠㅠㅠ
-사인을 물어봐서 해줬다니 박문대 진짜 파워 유죄.. 저분 집 가서 잠 못 잤을 것
-ㅠㅠ내가 셤 볼 때 곰머 봤으면 다 때려 치고 등만 보고 있었을 듯 ㅅㅂ부럽다
아슬아슬하게 인성 영업까진 되지 않는 선에서 귀여운 일화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지도 돌았다.
하지만 박문대가 예상했던 대로, ‘긁는’ 리액션도 당연히 따라왔다.
다만 박문대의 추측보다도 약간 더 심했다.
-박문대 솔직히 검정고시 볼 필요 없잖아 그냥 자기 욕심이지
-학벌 콤플렉스 진짜 있나 봨ㅋㅋ
-같은 고사장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다행이었지 정신나간 빠순이 끼어있었으면 어쩌려구 저런 짓을;
-명예욕 못 참지 근데 그래봤자 고졸이라 어떻게 하냐ㅠ
-먼저 사인해줄까 물어봤대 숙연..
일부러였다.
박문대가 계속 절묘한 타이밍으로 논란을 끊거나 방지하다 보니,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진성 안티들이 벼르고 있던 것이다.
물론 박문대의 대처는 덜 노골적인 경우가 많았기에, ‘정말로 박문대가 과하게 여론을 신경 쓰는지’에 대해서는 별 신빙성이 없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욕할 때 맛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박문대가 과한 물밑 반응을 보고 역으로 몸을 사리며 눈치 보는 티를 내길 바라는 심리였다.
-곰1머 써치 X나 하잖아 백퍼 이것도 보고 있을걸ㅋㅋㅋ
-아 검고로 떡밥 삼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X나 팰거야~ㅋㅋㅋㅋ
-응응 곰머야 이거 다 긁어부스럼인 거 알지? 조용히 넘어갈 거지?
-이런데 올리면 진짜 개웃기겠다 기싸움 멍청 인증ㅋㅋㅋㅋㅋ
그러나 그들에겐 안타깝게도, 박문대는 인터넷과 거리두기 중이었다.
그나마 보는 건 팬 커뮤니티나 위튜브가 전부였다. 그 이상 보려고 하면 귀신같이 멤버들이 끼어드는 통에 박문대로서도 별수 없었다.
즉, 어그로는 그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아예 안티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는 멤버가 대신 대응하게 된다.
“형! 닭죽 러뷰어 보여줘요!”
“그래라.”
어차피 소문 다 났다고 생각한 박문대는 쿨하게 허락했고, 차유진은 화끈하게 당시 사진들을 바로 업로드했다.
[문대형 시험 있어서 닭죽 먹어요. 모두 열심히 만들어요. 최고의 Teamwork! (호랑이 이모티콘) (사진 묶음)]
장을 보고 요리하는 다양한 멤버들의 사진부터, 닭죽을 보고 당황하거나 먹으며 미소 짓는 박문대의 사진들까지.
스토리가 있는 일상컷들이었다.
-?
-아 뭐야
-진짜 올림?
그리고 어그로들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음? 유진이 사진 올렸어?”
“네!”
“오~ 그렇구나.”
상황을 본 큰세진은 본인이 찍은 동영상까지 올려 버렸다.
[문대문대의 이런 스마일은 오랜만… 역시 잘 먹는 게 최고죠?ㅋㅋ 러뷰어도 맛점♡ (동영상)]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 서로 잘 지내고 친한 것을 보며 싫어할 팬은 드물었다.
당연히 팬들은 마음 따듯해지는 뜻밖의 추가 훈훈함에 불타올랐다.
-우리 애들은 테스타에 진심이야 영원히 이대로 가자 답은 디너쇼다
-다시는 아이돌의 가족 영업에 속지 않으려 했건만… 닥쳐 테스타는 가족이다
-ㅠㅠ마음이 정말 따뜻해졌어 얘들아 좋은 소식 고마워
사진과 동영상까지 물량 공세가 대단한 데다가, 박문대 본인이 찍거나 올린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어그로는 나 홀로 주먹질을 하다가 나가떨어졌다.
-ㅋㅋ곰머 기싸움 오졌다
-다른 애들한테 올려달라고 부탁했겠지 현타 안 왔어?
-이 악물고 올리는 느낌인데 나만 그런가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발언이 이어졌으나, 어쨌든 정신승리일 뿐이었다.
결국 그 애매한 머쓱함에 ‘박문대는 서치충’ 이야기는 시들시들해져 버렸다.
참고로 당사자인 박문대는 방구석에서 레서판다 동영상이나 보던 중이었다.
“…음.”
그는 간헐적인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특별히 할 게 없었다.
다만 기대하는 건 하나 있었다.
‘모레부터 휴가지.’
바로 사흘의 휴가가 코앞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적 없던 박문대에겐 대단히 의미 있는 시기였다.
‘이번에야말로 끝내주는 휴가를 보낸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러니까, 계획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1화

종이 울리고, 시험지를 배부하는 중에도 수험생의 머릿속은 서너 가지 문장이 동시에 튀어 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문대 지금 은발일 텐데, 흑발? 뭐지? 가발인가? 역시 문대가 아닌가?’

‘문대가 아니라도 이렇게 느낌 닮은 사람을 보니까 왠지 계 탄 느낌이다.’

‘잠깐! 신분 확인할 때 얼굴 보이지 않을까!?’

‘어어어! 그렇지! 시험지 돌릴 때 뒤돌아볼… 아니구나. 감독관님이 나눠주시겠구나.’

몇 가지는 맞는 말이었으나, 몇 가지는 틀린 가정이었다.

가령 박문대는 은발을 가리기 위해 컬러 스프레이를 썼으며, 신분 확인할 때 살짝 마스크를 내리고 감독관에게 얼굴을 보이긴 했다.

그러나 뒤에 앉은 수험생에게까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으며, 감독관은 나이 지긋한 남성이었기에 박문대를 바로 알아보진 못해 그저 태연했다.

‘으으윽!’

그래서 뒷자리의 수험생은 그저 답답함과 궁금증에 괴로워하며 내적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던 것이다.

다만, 직후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자, 시험지 돌려주세요.”

“…!”

시험지를 앞사람에게서 배부받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험생은… 마침내 보았다.

‘허억.’

앞자리의 남자는 아주 살짝만 뒤로 돌아 순식간에 시험지를 건넨 후 자세를 바로 했다.

게다가 마스크까지 썼지만, 수험생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가로로 크고 선이 깨끗한 눈!

‘바바박문대!’

박문대가 맞았다!

수험생은 거의 졸도할 것 같은 심정으로 시험지를 받았다.

지금 팬사인회에서 앨범을 받는 건지 검정고시를 보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니, 팬사인회에 당첨된 적도 없지만!

“종이 친 후에 문제 풀기 시작하시면 됩니다.”

‘사, 살려줘.’

수험생은 주어 없는 고함을 속으로 질렀으나, 다량의 모의고사 경험 덕에 시험지를 펴고 문제를 풀기 시작하긴 했다.

하지만 충격으로 머리가 새하얗게 떠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잠시 뒤.

‘…빨리 풀면 그만큼 일찍 문대의 등을 볼 수 있는 거잖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시험지에 코를 박고 있던 수험생에게 이상한 발상이 잘못된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게 수험생은 맹렬히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검정고시 불합격이 한 발짝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으아아!’

그리고 박문대에게만 놀랍게도, 이 교실에서 그를 의식하고 있는 것은 비단 이 뒷자리의 수험생뿐만이 아니었다.

* * *

‘괜찮네.’

나는 마지막 선택과목인 ‘도덕’ 문제를 다 풀고 연필을 내려놓았다.

시험은 별문제 없이 평탄히 진행되었다.

점심시간에는 약간 위험할 뻔했으나, 적당히 사람 없는 먼 계단 복도 쪽에서 창가 보고 먹었다.

‘애초에 죽이라 먹기도 편해서 쉬웠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시험 자체도 기출에서 보았던 평년보다 쉬웠다는 점이다.

사회나 과학 쪽은 다 잊어버린 파트에서만 출제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못 본 것 같진 않군.’

나는 너끈한 합격을 거의 확신하며 살짝 스트레칭을 했다.

“흡.”

뒤에서 어딘지 편찮은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좀 거슬렸나 보다. 나는 그냥 팔을 내렸다.

‘남은 시간은… 10분인가.’

그리고 얌전히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돌아가는 길은 이미 시간에 맞춰서 택시를 불러 뒀으니 얼른 내려가서 타기만 하면 됐다.

‘됐네.’

그러나 막상 10분 뒤 맞이한 현실이 썩 예상대로는 아니었다.

스마트폰을 챙긴 뒤, 다들 나갈 때까지 기다리던 중 같은 교실의 누군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저기 학생!”

“…….”

“학생 혹시… 그 문대 아니야? 그 호떡 만드는 문대?”

여기서 짧게 고민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라고 외치고 뛰어나갈지 말이다.

그러나 목격자가 한둘이 아닐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게다가 이… 여사분도 나름대로 작게 속삭이신답시고 작게 이야기하시는 걸 보니, 빨리 끝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네. 시험 보러 왔습니다.”

“아이고! 그렇구나. 장해라… 그, 괜찮으면 사인 한 장만 되나요? 우리 딸이 너무 팬이야!”

“그럼요.”

나는 수험표에 짧게 사인을 해드린 뒤, 얼른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은 후였다.

“허어업, 괜찮으시면 저도 좀….”

“아, 예.”

“저기! 정말 죄송한데 저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직 교실에 남았던 몇몇 사람들이 즉시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질서정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 하나 현 사태에 기겁하지 않았다.

강렬한 가설이 하나 떠올랐다.

‘설마 이 사람들 진작 다 의심하고 있었나?’

어쩐지 예닐곱 명이나 교실 안 나가고 미적거리더니, 나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군.

아무래도 테스타 대중 인지도를 내가 너무 안일하게 후려쳤나 보다.

‘식은땀이 다 나는데.’

무엇보다 이 많은 사람이 시험 중에는 아무 제스처도 안 했다는 게 제일 놀랍다.

한 사람이라도 호들갑 떨며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면 민폐 논란으로 번질 확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럼 난 점심시간쯤 벌써 각 봐서 탈주했겠지.

‘…덕분에 잘 봤네.’

뭐 빠져나갈 구석이 없군. 내 예측 실패를 커버해 준 셈이니 말이다.

나는 군말 없이 사인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와, 감사해요….”

그렇게 몰려든 몇 명에게 사인을 마치고 얼른 나가려던 참이었다.

‘사진 요청 들어오기 전에 정신없을 때 얼른 빠져나가자.’

그런데 가방을 들면서 보니, 뒷자리의 사람이 아직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 있었다.

“…?”

게다가 미동도 없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니 입을 벌린다.

저거 팬사인회에서 많이 보던 표정인데.

“혹시 사인 필요하신가요.”

“…?! 네! 네네넵!”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군. 다행이었다.

“사,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뒷자리 사람의 수험표에도 황급히 사인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잘 들어가세요!”

“활동 파이팅!”

이 고사장 교실이 끝 쪽이라 다른 고사장의 사람이 이걸 보지 못한 게 다행일 뿐이었다.

나는 사람이 많이 빠진 복도를 가로질러 빠르게 달렸다.

‘후기 올라오려나.’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으니, 그냥 날 좀 동정하거나 긁다가 끝나겠지.

나는 어깨를 으쓱한 뒤, 운동장으로 나가 곧바로 택시에 탑승했다.

숙소까진 올 때처럼 금방이었다.

“웰컴~”

“자, 잘 다녀왔어?”

“응.”

“죽은 점심으로 드시기 어떠셨습니까?”

“잘 먹었어. 고맙다.”

그리고 내 시험을 핑계로 삼은 차유진의 강력한 주장 하에 족발을 시켜 먹었다.

덕분에 무알콜로 건배사를 듣는 오묘한 짓을 또 했다.

“문대 오늘 시험 보느라 수고했고… 우리 다음 활동까지 잘 회복해서 또 멋진 모습 보여드리자.”

“그럼요~”

“예압!”

“충실한 준비 기간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자, 잠깐. 박문대 스마트폰 내려놔!”

“…개가 고기 먹는 영상인데요.”

뭐, 비활동기다운 하루였다.

저녁도… 맛있었다.

* * *

박문대의 검정고시 소식은 그의 생각보다는 느리게 퍼졌다.

사인을 받아 간 사람 중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없었기에 반신반의하는 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너 명이 사인을 받은 수험표 인증을 한 후에야 정설로 인정받았다.

결정타는 이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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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구 생각하고 들어온 사람들 많을 것 같은데ㅎㅎ

응 내 최애 박문대 맞아!

(사인 인증 사진)

나 심지어 문대 바로 뒷자리에 앉았는데 심장 터지는 줄 알았어 진짜등만 봐도 잘생겼더라 뼈까지 잘생겨서 고개를 못 들겠더라ㅠㅠ

자세도 너무 바르고 어깨도 딱 예쁘게 넓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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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대의 뒷자리에 앉은 수험생의 인증이었다.

그리고 그 인증 뒤에는 친절한 어그로 방지까지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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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 진짜 조용히 시험만 봤고 끝나고 나갈 때 사람들이 아는 척하니까 일일이 다 사인도 해줬어

심지어 나 굳어서 말도 못 하고 앉아서 보기만 했는데 혹시 사인 필요한지 물어봐서 해준 거야ㅠㅠ

괜히 피해 갈까 봐 안 올릴까 했는데 이미 다들 알길래… 문대가 얼마나 잘해줬는지도 알아줬으면 해서 올린다…

수험표는 나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가기로 했어ㅋㅋ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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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 훈훈한 후기였다. 박문대의 검정고시 응시 소식에 다소 아련해 하던 팬들까지도 이 후기는 즐겁게 확인했다.

사생활 침해로 볼 정도는 아니고, 저절로 어떤 상황이었을지 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댕댕이 사람 좋아해서 사인도 다 해주고 왔냐고 아이고ㅠㅠㅠ

-사인을 물어봐서 해줬다니 박문대 진짜 파워 유죄.. 저분 집 가서 잠 못 잤을 것

-ㅠㅠ내가 셤 볼 때 곰머 봤으면 다 때려 치고 등만 보고 있었을 듯 ㅅㅂ부럽다

아슬아슬하게 인성 영업까진 되지 않는 선에서 귀여운 일화로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 등지도 돌았다.

하지만 박문대가 예상했던 대로, ‘긁는’ 리액션도 당연히 따라왔다.

다만 박문대의 추측보다도 약간 더 심했다.

-박문대 솔직히 검정고시 볼 필요 없잖아 그냥 자기 욕심이지

-학벌 콤플렉스 진짜 있나 봨ㅋㅋ

-같은 고사장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다행이었지 정신나간 빠순이 끼어있었으면 어쩌려구 저런 짓을;

-명예욕 못 참지 근데 그래봤자 고졸이라 어떻게 하냐ㅠ

-먼저 사인해줄까 물어봤대 숙연..

일부러였다.

박문대가 계속 절묘한 타이밍으로 논란을 끊거나 방지하다 보니,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진성 안티들이 벼르고 있던 것이다.

물론 박문대의 대처는 덜 노골적인 경우가 많았기에, ‘정말로 박문대가 과하게 여론을 신경 쓰는지’에 대해서는 별 신빙성이 없었다.

단지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욕할 때 맛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박문대가 과한 물밑 반응을 보고 역으로 몸을 사리며 눈치 보는 티를 내길 바라는 심리였다.

-곰1머 써치 X나 하잖아 백퍼 이것도 보고 있을걸ㅋㅋㅋ

-아 검고로 떡밥 삼을 생각도 하지 말라고~ X나 팰거야~ㅋㅋㅋㅋ

-응응 곰머야 이거 다 긁어부스럼인 거 알지? 조용히 넘어갈 거지?

-이런데 올리면 진짜 개웃기겠다 기싸움 멍청 인증ㅋㅋㅋㅋㅋ

그러나 그들에겐 안타깝게도, 박문대는 인터넷과 거리두기 중이었다.

그나마 보는 건 팬 커뮤니티나 위튜브가 전부였다. 그 이상 보려고 하면 귀신같이 멤버들이 끼어드는 통에 박문대로서도 별수 없었다.

즉, 어그로는 그저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덕분에 아예 안티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쓰는 멤버가 대신 대응하게 된다.

“형! 닭죽 러뷰어 보여줘요!”

“그래라.”

어차피 소문 다 났다고 생각한 박문대는 쿨하게 허락했고, 차유진은 화끈하게 당시 사진들을 바로 업로드했다.

장을 보고 요리하는 다양한 멤버들의 사진부터, 닭죽을 보고 당황하거나 먹으며 미소 짓는 박문대의 사진들까지.

스토리가 있는 일상컷들이었다.

-?

-아 뭐야

-진짜 올림?

그리고 어그로들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음? 유진이 사진 올렸어?”

“네!”

“오~ 그렇구나.”

상황을 본 큰세진은 본인이 찍은 동영상까지 올려 버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 서로 잘 지내고 친한 것을 보며 싫어할 팬은 드물었다.

당연히 팬들은 마음 따듯해지는 뜻밖의 추가 훈훈함에 불타올랐다.

-우리 애들은 테스타에 진심이야 영원히 이대로 가자 답은 디너쇼다

-다시는 아이돌의 가족 영업에 속지 않으려 했건만… 닥쳐 테스타는 가족이다

-ㅠㅠ마음이 정말 따뜻해졌어 얘들아 좋은 소식 고마워

사진과 동영상까지 물량 공세가 대단한 데다가, 박문대 본인이 찍거나 올린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어그로는 나 홀로 주먹질을 하다가 나가떨어졌다.

-ㅋㅋ곰머 기싸움 오졌다

-다른 애들한테 올려달라고 부탁했겠지 현타 안 왔어?

-이 악물고 올리는 느낌인데 나만 그런가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발언이 이어졌으나, 어쨌든 정신승리일 뿐이었다.

결국 그 애매한 머쓱함에 ‘박문대는 서치충’ 이야기는 시들시들해져 버렸다.

참고로 당사자인 박문대는 방구석에서 레서판다 동영상이나 보던 중이었다.

“…음.”

그는 간헐적인 무료함에 시달리고 있었으나, 특별히 할 게 없었다.

다만 기대하는 건 하나 있었다.

‘모레부터 휴가지.’

바로 사흘의 휴가가 코앞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낸 적 없던 박문대에겐 대단히 의미 있는 시기였다.

‘이번에야말로 끝내주는 휴가를 보낸다.’

계획은 완벽했다. 그러니까, 계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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