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2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0화
솔직히 검정고시를 보는 것에 대단한 의도는 없었다.
그냥 살면서 만일의 경우에도 고졸 정도는 해두는 편이 손해가 없을 것 같았을 뿐이다.
‘예능에서 머리를 그렇게 썼는데도 중졸이라고 긁는 놈들이 겨우 검정고시 합격했다고 잠잠해질 리도 없고.’
그래서 그냥 때 되면 토익 갱신하는 것처럼, 크게 의식하지 않고 기출 문제집이나 한번 풀고 끝냈다.
대졸에 공시 준비까지 했는데 설마 검정고시를 못 붙겠냐 싶었지.
그리고 생각대로, 기출문제 점수를 보니 너끈히 합격권이었다.
“조용히 다녀오기만 하면 되겠어.”
채점된 문제집을 덮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활동도 어제로 끝났고, 아직 휴가를 받을 수준은 아니었으나 공식 스케줄이 하루 이틀 걸러서 나올 만큼 여유로웠다.
그래 봤자 2주쯤 쉬고 난 뒤엔 다시 다음 앨범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모레 검정고시 보는 데에는 문제없다는 뜻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괜히 떠들지 말자.’
여론에 내 검정고시 소식이 빠져나가서 좋을 게 없었다.
쓸데없는 동정 여론부터 스토커가 붙어서 고사장에 민폐가 될 최악의 케이스까지 돌발상황만 늘어날 뿐이다.
가뜩이나 모니터링도 제한이 걸린 마당에 귀찮기만 하지 않겠는가.
‘다른 놈들에게도 굳이 말할 것 없고.’
모처럼 쉬는 날이니, 각자 알아서 놀게 두자.
[이 망할 KPOP 밴드들 같으니!]
“와하하하!”
당장 문밖에서는 차유진이 폭소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를 4화부터 몰아보는 중인 것 같은데, 덕분에 소음 속 모의고사 훈련 한번 효과적으로 했다.
다만 차유진이 폭소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4화부터 분위기가 좀 바뀌던데.’
‘노답 관종들 KPOP 지옥 캠프로 골탕 먹이기’ 느낌이던 초반과 달리, 4화부터는 참가자들의 사연을 조명하며 슬쩍 공감대를 형성해 주더라.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로, 다른 사람들이 날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전 상금이 꼭 필요해요. 가족을 위해서요.]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의 태도 편집도 좀 변했다.
캠프에 고통스러워하고 KPOP 폭격에 엑스트라 악당처럼 나가떨어지던 전과 달리, 무대를 하나둘 완성하며 진짜 보람을 느끼는 걸 보여준 것이다.
[이렇게 100% 나 자신을 밀어붙이며 살아봤던 적이 없던 것 같아요.]
[그들은 진짜예요. 공장식 훈련? 다 X이나 먹으라고 해요! 이 노력은 진짜고, 그들은 스포츠 선수가 훈련하는 것처럼 훈련하는 거라구요!]
게다가 KPOP 멘토들과 공감대 형성까지.
가령 ‘박문대’의 가정사 같은 것도 참가자 사연과 엮어서 살짝 써먹더라고.
아, 마침 날 언급하는 장면이 지나가는지, 문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전 부모님 돌아가시고 X나 약이나 하는 쓰레기로 살았는데, 제 멘토는 오디션에 나가서 우승했잖아요.]
[이건 정말 제게 많은 걸 의미해요.]
그냥 공연 시 카메라 찾는 팁을 알려줬을 뿐인 장면이었는데 잘도 인터뷰와 짜 맞췄더라.
해외에선 아직 식상하다고 느끼지 않아서인지 은근히 감동 신파 코드 잘 통하는 것 같던데, 순조롭게 화제성 더 먹고 있겠군.
‘출연진도 좀 나눠 먹을 테니… 넘어가 줄까.’
그러고 보니 시즌2 제작 확정 소식도 이미 들었다.
‘다음 앨범에 유입만 많이 됐으면 좋겠군.’
나는 심드렁하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차유진이 단번에 고개를 돌리고 눈을 번쩍이며 외친다.
“형! 형은 대단해요, 멋진 사람이에요!”
“어, 고맙다.”
금방이라도 ‘Love yourself’를 외칠 기세다. 과연 미국놈이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물을 따르며 물었다.
“다들 외출했냐.”
“몰라요! 저 지금 일어났어요!”
지금이 오후 2시인데 정말 자랑스럽게도 말한다.
하긴 활동기엔 서너 시간 자면서 살았으니, 며칠 열두 시간쯤 자도 게으른 놈 취급하긴 그렇지.
“형, 게임해요!”
“좀 있다가.”
“지금 해요!”
“너 보던 거 있잖아. 그건 다 보고 해야지.”
“아하.”
한 텀 넘겼군. 저거 예능 보다가 게임 하자고 말했던 것도 까먹을 확률이 절반은 된다.
나는 식탁에 걸터앉아 천천히 물을 마셨다. 잠시 뒤, 옆 방에서 슬그머니 배세진이 나왔다.
“형 계속 잤어요? 저도 그랬어요!”
“아, 아니, 그냥… 책 읽었는데.”
“에이.”
배세진은 간만에 편한 얼굴이었다.
큰세진 놈과 같은 방이 된 뒤로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구석에 앉아 있는 걸 좀 봤는데, 아마 지금 놈이 방에 없나 보다.
‘그러고 보니 선아현도 방에 없었지.’
큰세진이나 류청우는 그렇다고 쳐도, 외출 잘 안 하는 김래빈과 선아현까지 나갔으니 과연 비활동기답다.
“…저기.”
“예. 물 드실 건가요.”
“어? 어어….”
주방에 걸어 온 배세진에게 물을 줬다.
배세진은 물컵을 손에 쥔 채로 얼떨떨한 얼굴로 있다가, 마시지도 않고 대뜸 물었다.
“…뭐, 할 말 없어?”
“…? 딱히요.”
설마 방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기대한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호의는 물로 끝이다.
“음, 그래.”
배세진은 어쩐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 같았으나, 별말 없이 얌전히 물을 마시고 도로 방에 들어갔다.
‘뭐냐.’
어째 할 말 있다는 뉘앙스긴 했으나, 분위기 보니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아서 넘겼다.
‘쫄리면 알아서 말하겠지.’
비활동기 초입이니, 나도 좀 쉬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물컵을 정리했다. 할 것도 없으니, 문제나 한 번 더 풀어볼 생각이었다.
“형! 저 다 봤어요!”
…그리고 잠시 후, 기어코 예능을 다 보고도 게임을 안 까먹은 차유진과 게임을 몇 판 해줬다.
솔직히, 딱히 할 게 없어서 심심했기 때문에 좀 귀찮아도 할 만했다.
[호버나이트 하는 게 어때요? 지난번에 친구가 재밌다고 했거든요!]
“맘대로 해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이렇게 대충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이틀 뒤 아침, 상상도 못 했던 걸 받았기 때문이다.
* * *
검정고시를 보는 날 아침.
나만 일어나기 위해 알람도 진동으로만 맞춰뒀었다.
‘다 자고 있겠지.’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세안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보니, 반대편 침대가 비어 있었다.
“…?”
선아현 어디 갔냐.
‘내가 여기 화장실을 써서 거실 쪽 쓰러 나갔나.’
제일 가능성 있는 추측을 하며, 외출복을 걸치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였다.
제일 먼저 느낀 건… 냄새다. 제법 고소한 음식 냄새.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박문대 나왔다!”
“…?!”
고개를 드니, 훤한 거실과 주방을 동거인 놈들이 다 채웠다.
‘이게 뭐야.’
오늘 무슨 날인가 고민하려던 찰나, 큰세진이 손바닥을 치며 다가왔다.
“아이고, 문대문대~ 오늘 시험 본다며!”
“…!!”
큰세진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다른 놈들도 다를 게 없다.
다 아는 게 기정사실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알았냐.”
큰세진이 과장되게 측은하단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문대야, 우리가 단체 생활을 한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하자… 네가 보는 스마트폰 화면… 옆 사람도 훤히 보인단다.”
“…!!”
“아니, 어떻게~ 그런 중대사를 치르면서 어? 멤버들한테 한마디 말도 없냐~ 너무 무정한 거 아니야??”
“무슨 수능도 아니고 굳이 말할 필요가….”
“흑흑, 그런 섭섭한 말씀을!”
“맞아요! 섭섭해요!”
“…….”
이놈들 일부러 서운한 척하고 있다. 재미 붙였냐.
그나마 이성적인 설명은 류청우에게서 나왔다.
“어차피 다들 시간 있고, 숙소에 있는 날이니까… 깜짝 배웅이라도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하하.”
“…네.”
이건… 좀 예상 못 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조용히 시험을 보시고 싶을 형님의 의사를 고려하여 시험장까지 배웅은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정확한 판단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그래서… 이거, 다 같이 만들어봤어.”
맨 뒤에 서 있던 선아현이 얼른 국자를 움직이더니, 이윽고 그릇을 식탁에 차렸다.
그 안에 든 것은… 닭죽이었다.
“…….”
“닭고기 스프 만들고 싶어요! 근데 다들 반대했어요!”
“시, 시험 전이니까, 익숙한 게 좋을 것 같아서.”
“닭고기 스프 맛있는데….”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몰골의 다 탄 치킨 스프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게 두 번의 과정을 거쳐 이렇게 멀쩡한 닭죽으로 진화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아현이가 열심히 했고… 세진이, 그러니까 배세진이가 많이 했지. 우리 중에 그나마 요리를 할 줄 아는 게 래빈이랑 세진이뿐이라서.”
“저보단 배세진 형께서 확실히 조예가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 그 정도는 아니고.”
배세진이 헛기침을 했다. 그래. 김래빈이나 너나 고만고만하다.
‘용케 만들었군.’
나는 제법 정성이 들어간 것 같은, 괜찮은 몰골의 닭죽을 들여다보다가 말문이 막혔다.
좀… 당황스러운데, 미안하기도 하고.
“어때, 문대야 너무 고마워서 막… 말이 안 나오지? 다 알아, 맛있게 먹어~”
훌륭하다. 미안함이 싹 가신다.
“넌 뭐 했는데.”
“에이, 다 같이 장 보러 갔다 왔지~ 배달시키면 들키잖아. 재료가 어디 허공에서 떨어졌겠어?”
그래서 어제 뜬금없이 다들 자리에 없던 거였군. 용케 안 들키고 냉장고까지 넣었구나 싶다.
“어때, 이해 가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가, 결국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고맙다.”
“…!”
“다들 감사합니다.”
“고맙긴.”
“얼른 먹어!”
어쨌든, 나는 그렇게 히죽거리는 놈들 사이에 앉아서 닭죽을 먹게 되었다.
“…맛은 있어?”
“예. 맛있네요.”
체하는 줄 알았다.
다만, 남기면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 깨끗이 비우긴 했다.
…고마운 일이기도 했고.
“한 그릇 더 먹을래?”
“괜찮습니다. 큰세진 너 사진 찍지 마라.”
“어어? 문대 팬분들께 이 중요한 순간을 공유하기 싫은 거야? 멤버들이 이렇게 열심히 요리를 했는데~”
“…….”
그래, 아주 마음대로 해라.
당장 검정고시 본다고 공지 때리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박문대가 아침 얻어먹었다고 올리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나, 남은 건 도시락으로 싸갈래?”
“음, 그래. 고마워.”
사실 어제, 점심으로 먹을만한 걸 대충 챙겨놓긴 했다만… 그건 돌아와서 먹어도 되겠지.
나는 닭죽이 든 보온 통을 들고, 다른 놈들의 배웅을 받으며 적당한 시간에 숙소에서 나왔다.
“만점 받아라~”
“저녁 맛있는 거 먹어요!”
기분이 희한했다.
‘수능 때도 내가 싼 도시락 들고 갔었는데.’
남의 몸으로 검정고시 보면서 이런 걸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시험이나 잘 보자.’
이러고 합격 못 하면 정말 웃긴 꼴이 될 것 같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좀 더 신경 써서 봐야겠다.
나는 마스크를 낀 뒤, 볼캡을 눌러쓰고 길을 나섰다.
시험장은 멀지 않았고 택시로 쉽고 조용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회사에 경호 인력 요청했으면 오히려 시험을 방해한다며 욕 좀 먹었을 것이다.
‘나랑 비슷한 차림이 한둘도 아니고.’
워낙 연령대도 다양해서 나 정도의 평범한 차림새는 묻혔지 않은가.
쓸데없이 소식을 유출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나는 책상에 앉아 펜을 꺼냈다.
오랜만의 시험이었다.
* * *
서울의 한 검정고시 고사장 안.
박문대의 말대로 다양한 연령대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만, 박문대가 미처 예상치 못한 점도 있었다.
하필이면 그중 어떤 아이돌을 뼈대만 보고도 식별할 수 있는 엄청난 팬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는 점이다.
‘바, 박문대??’
그렇다.
박문대의 책상 뒤 자리에 가방을 올리던 한 수험생은, 자신의 앞에 있는 낯익은 등을 보고 얼어붙었다.
저 골격, 저 목 뒤의 머리선.
수없이 찾아본 온갖 박문대의 직캠 뒷모습이 반사적으로 겹쳐졌다.
그리고 본능 수준의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했다!
‘잠깐, 이제 비활동기니까… 그리고 문대는 고등학교 중퇴했으니까! 시험 보러 올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폭격처럼 밀려들었다. 당연하지만, 수험생의 자아는 스스로 얼토당토않은 망상이라는 고함도 지르고 있었다.
“…….”
하지만 잠시 뒤, 온갖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수험생은 힘겹게 생각했다.
‘조심해야지!’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지만 박문대가 맞아도 실례고, 아니어도 실례다. 어쨌든 절대 시험에 방해가 되면 안 됐다!
굳게 다짐한 수험생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짜릿한 검정고시 시험이 시작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20화
솔직히 검정고시를 보는 것에 대단한 의도는 없었다.
그냥 살면서 만일의 경우에도 고졸 정도는 해두는 편이 손해가 없을 것 같았을 뿐이다.
‘예능에서 머리를 그렇게 썼는데도 중졸이라고 긁는 놈들이 겨우 검정고시 합격했다고 잠잠해질 리도 없고.’
그래서 그냥 때 되면 토익 갱신하는 것처럼, 크게 의식하지 않고 기출 문제집이나 한번 풀고 끝냈다.
대졸에 공시 준비까지 했는데 설마 검정고시를 못 붙겠냐 싶었지.
그리고 생각대로, 기출문제 점수를 보니 너끈히 합격권이었다.
“조용히 다녀오기만 하면 되겠어.”
채점된 문제집을 덮으며 내린 결론이었다.
활동도 어제로 끝났고, 아직 휴가를 받을 수준은 아니었으나 공식 스케줄이 하루 이틀 걸러서 나올 만큼 여유로웠다.
그래 봤자 2주쯤 쉬고 난 뒤엔 다시 다음 앨범 준비를 해야겠지만, 그래도 모레 검정고시 보는 데에는 문제없다는 뜻이다.
나는 팔짱을 꼈다.
‘괜히 떠들지 말자.’
여론에 내 검정고시 소식이 빠져나가서 좋을 게 없었다.
쓸데없는 동정 여론부터 스토커가 붙어서 고사장에 민폐가 될 최악의 케이스까지 돌발상황만 늘어날 뿐이다.
가뜩이나 모니터링도 제한이 걸린 마당에 귀찮기만 하지 않겠는가.
‘다른 놈들에게도 굳이 말할 것 없고.’
모처럼 쉬는 날이니, 각자 알아서 놀게 두자.
“와하하하!”
당장 문밖에서는 차유진이 폭소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를 4화부터 몰아보는 중인 것 같은데, 덕분에 소음 속 모의고사 훈련 한번 효과적으로 했다.
다만 차유진이 폭소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4화부터 분위기가 좀 바뀌던데.’
‘노답 관종들 KPOP 지옥 캠프로 골탕 먹이기’ 느낌이던 초반과 달리, 4화부터는 참가자들의 사연을 조명하며 슬쩍 공감대를 형성해 주더라.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의 태도 편집도 좀 변했다.
캠프에 고통스러워하고 KPOP 폭격에 엑스트라 악당처럼 나가떨어지던 전과 달리, 무대를 하나둘 완성하며 진짜 보람을 느끼는 걸 보여준 것이다.
게다가 KPOP 멘토들과 공감대 형성까지.
가령 ‘박문대’의 가정사 같은 것도 참가자 사연과 엮어서 살짝 써먹더라고.
아, 마침 날 언급하는 장면이 지나가는지, 문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그냥 공연 시 카메라 찾는 팁을 알려줬을 뿐인 장면이었는데 잘도 인터뷰와 짜 맞췄더라.
해외에선 아직 식상하다고 느끼지 않아서인지 은근히 감동 신파 코드 잘 통하는 것 같던데, 순조롭게 화제성 더 먹고 있겠군.
‘출연진도 좀 나눠 먹을 테니… 넘어가 줄까.’
그러고 보니 시즌2 제작 확정 소식도 이미 들었다.
‘다음 앨범에 유입만 많이 됐으면 좋겠군.’
나는 심드렁하게 방문을 열고 나왔다. 차유진이 단번에 고개를 돌리고 눈을 번쩍이며 외친다.
“형! 형은 대단해요, 멋진 사람이에요!”
“어, 고맙다.”
금방이라도 ‘Love yourself’를 외칠 기세다. 과연 미국놈이다.
나는 주방으로 가서 물을 따르며 물었다.
“다들 외출했냐.”
“몰라요! 저 지금 일어났어요!”
지금이 오후 2시인데 정말 자랑스럽게도 말한다.
하긴 활동기엔 서너 시간 자면서 살았으니, 며칠 열두 시간쯤 자도 게으른 놈 취급하긴 그렇지.
“형, 게임해요!”
“좀 있다가.”
“지금 해요!”
“너 보던 거 있잖아. 그건 다 보고 해야지.”
“아하.”
한 텀 넘겼군. 저거 예능 보다가 게임 하자고 말했던 것도 까먹을 확률이 절반은 된다.
나는 식탁에 걸터앉아 천천히 물을 마셨다. 잠시 뒤, 옆 방에서 슬그머니 배세진이 나왔다.
“형 계속 잤어요? 저도 그랬어요!”
“아, 아니, 그냥… 책 읽었는데.”
“에이.”
배세진은 간만에 편한 얼굴이었다.
큰세진 놈과 같은 방이 된 뒤로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구석에 앉아 있는 걸 좀 봤는데, 아마 지금 놈이 방에 없나 보다.
‘그러고 보니 선아현도 방에 없었지.’
큰세진이나 류청우는 그렇다고 쳐도, 외출 잘 안 하는 김래빈과 선아현까지 나갔으니 과연 비활동기답다.
“…저기.”
“예. 물 드실 건가요.”
“어? 어어….”
주방에 걸어 온 배세진에게 물을 줬다.
배세진은 물컵을 손에 쥔 채로 얼떨떨한 얼굴로 있다가, 마시지도 않고 대뜸 물었다.
“…뭐, 할 말 없어?”
“…? 딱히요.”
설마 방 바꿔주겠다는 제안을 기대한 건 아니겠지.
미안하지만 호의는 물로 끝이다.
“음, 그래.”
배세진은 어쩐지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 같았으나, 별말 없이 얌전히 물을 마시고 도로 방에 들어갔다.
‘뭐냐.’
어째 할 말 있다는 뉘앙스긴 했으나, 분위기 보니 심각한 건 아닌 것 같아서 넘겼다.
‘쫄리면 알아서 말하겠지.’
비활동기 초입이니, 나도 좀 쉬자.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물컵을 정리했다. 할 것도 없으니, 문제나 한 번 더 풀어볼 생각이었다.
“형! 저 다 봤어요!”
…그리고 잠시 후, 기어코 예능을 다 보고도 게임을 안 까먹은 차유진과 게임을 몇 판 해줬다.
솔직히, 딱히 할 게 없어서 심심했기 때문에 좀 귀찮아도 할 만했다.
“맘대로 해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이렇게 대충 넘기지 말았어야 했다.
이틀 뒤 아침, 상상도 못 했던 걸 받았기 때문이다.
* * *
검정고시를 보는 날 아침.
나만 일어나기 위해 알람도 진동으로만 맞춰뒀었다.
‘다 자고 있겠지.’
조용히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세안했다.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오며 보니, 반대편 침대가 비어 있었다.
“…?”
선아현 어디 갔냐.
‘내가 여기 화장실을 써서 거실 쪽 쓰러 나갔나.’
제일 가능성 있는 추측을 하며, 외출복을 걸치고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을 때였다.
제일 먼저 느낀 건… 냄새다. 제법 고소한 음식 냄새.
그리고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박문대 나왔다!”
“…?!”
고개를 드니, 훤한 거실과 주방을 동거인 놈들이 다 채웠다.
‘이게 뭐야.’
오늘 무슨 날인가 고민하려던 찰나, 큰세진이 손바닥을 치며 다가왔다.
“아이고, 문대문대~ 오늘 시험 본다며!”
“…!!”
큰세진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다른 놈들도 다를 게 없다.
다 아는 게 기정사실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알았냐.”
큰세진이 과장되게 측은하단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문대야, 우리가 단체 생활을 한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하자… 네가 보는 스마트폰 화면… 옆 사람도 훤히 보인단다.”
“…!!”
“아니, 어떻게~ 그런 중대사를 치르면서 어? 멤버들한테 한마디 말도 없냐~ 너무 무정한 거 아니야??”
“무슨 수능도 아니고 굳이 말할 필요가….”
“흑흑, 그런 섭섭한 말씀을!”
“맞아요! 섭섭해요!”
“…….”
이놈들 일부러 서운한 척하고 있다. 재미 붙였냐.
그나마 이성적인 설명은 류청우에게서 나왔다.
“어차피 다들 시간 있고, 숙소에 있는 날이니까… 깜짝 배웅이라도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하하.”
“…네.”
이건… 좀 예상 못 했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조용히 시험을 보시고 싶을 형님의 의사를 고려하여 시험장까지 배웅은 자제하기로 했습니다.”
그건 정확한 판단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그래서… 이거, 다 같이 만들어봤어.”
맨 뒤에 서 있던 선아현이 얼른 국자를 움직이더니, 이윽고 그릇을 식탁에 차렸다.
그 안에 든 것은… 닭죽이었다.
“…….”
“닭고기 스프 만들고 싶어요! 근데 다들 반대했어요!”
“시, 시험 전이니까, 익숙한 게 좋을 것 같아서.”
“닭고기 스프 맛있는데….”
지옥에서 올라온 것 같은 몰골의 다 탄 치킨 스프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게 두 번의 과정을 거쳐 이렇게 멀쩡한 닭죽으로 진화했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아현이가 열심히 했고… 세진이, 그러니까 배세진이가 많이 했지. 우리 중에 그나마 요리를 할 줄 아는 게 래빈이랑 세진이뿐이라서.”
“저보단 배세진 형께서 확실히 조예가 있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 그 정도는 아니고.”
배세진이 헛기침을 했다. 그래. 김래빈이나 너나 고만고만하다.
‘용케 만들었군.’
나는 제법 정성이 들어간 것 같은, 괜찮은 몰골의 닭죽을 들여다보다가 말문이 막혔다.
좀… 당황스러운데, 미안하기도 하고.
“어때, 문대야 너무 고마워서 막… 말이 안 나오지? 다 알아, 맛있게 먹어~”
훌륭하다. 미안함이 싹 가신다.
“넌 뭐 했는데.”
“에이, 다 같이 장 보러 갔다 왔지~ 배달시키면 들키잖아. 재료가 어디 허공에서 떨어졌겠어?”
그래서 어제 뜬금없이 다들 자리에 없던 거였군. 용케 안 들키고 냉장고까지 넣었구나 싶다.
“어때, 이해 가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가, 결국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고맙다.”
“…!”
“다들 감사합니다.”
“고맙긴.”
“얼른 먹어!”
어쨌든, 나는 그렇게 히죽거리는 놈들 사이에 앉아서 닭죽을 먹게 되었다.
“…맛은 있어?”
“예. 맛있네요.”
체하는 줄 알았다.
다만, 남기면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모르니 깨끗이 비우긴 했다.
…고마운 일이기도 했고.
“한 그릇 더 먹을래?”
“괜찮습니다. 큰세진 너 사진 찍지 마라.”
“어어? 문대 팬분들께 이 중요한 순간을 공유하기 싫은 거야? 멤버들이 이렇게 열심히 요리를 했는데~”
“…….”
그래, 아주 마음대로 해라.
당장 검정고시 본다고 공지 때리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박문대가 아침 얻어먹었다고 올리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나, 남은 건 도시락으로 싸갈래?”
“음, 그래. 고마워.”
사실 어제, 점심으로 먹을만한 걸 대충 챙겨놓긴 했다만… 그건 돌아와서 먹어도 되겠지.
나는 닭죽이 든 보온 통을 들고, 다른 놈들의 배웅을 받으며 적당한 시간에 숙소에서 나왔다.
“만점 받아라~”
“저녁 맛있는 거 먹어요!”
기분이 희한했다.
‘수능 때도 내가 싼 도시락 들고 갔었는데.’
남의 몸으로 검정고시 보면서 이런 걸 먹게 될 줄은 몰랐다.
‘…시험이나 잘 보자.’
이러고 합격 못 하면 정말 웃긴 꼴이 될 것 같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좀 더 신경 써서 봐야겠다.
나는 마스크를 낀 뒤, 볼캡을 눌러쓰고 길을 나섰다.
시험장은 멀지 않았고 택시로 쉽고 조용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회사에 경호 인력 요청했으면 오히려 시험을 방해한다며 욕 좀 먹었을 것이다.
‘나랑 비슷한 차림이 한둘도 아니고.’
워낙 연령대도 다양해서 나 정도의 평범한 차림새는 묻혔지 않은가.
쓸데없이 소식을 유출하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나는 책상에 앉아 펜을 꺼냈다.
오랜만의 시험이었다.
* * *
서울의 한 검정고시 고사장 안.
박문대의 말대로 다양한 연령대의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있었다.
다만, 박문대가 미처 예상치 못한 점도 있었다.
하필이면 그중 어떤 아이돌을 뼈대만 보고도 식별할 수 있는 엄청난 팬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는 점이다.
‘바, 박문대??’
그렇다.
박문대의 책상 뒤 자리에 가방을 올리던 한 수험생은, 자신의 앞에 있는 낯익은 등을 보고 얼어붙었다.
저 골격, 저 목 뒤의 머리선.
수없이 찾아본 온갖 박문대의 직캠 뒷모습이 반사적으로 겹쳐졌다.
그리고 본능 수준의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했다!
‘잠깐, 이제 비활동기니까… 그리고 문대는 고등학교 중퇴했으니까! 시험 보러 올 수도 있지 않나??’
생각이 폭격처럼 밀려들었다. 당연하지만, 수험생의 자아는 스스로 얼토당토않은 망상이라는 고함도 지르고 있었다.
“…….”
하지만 잠시 뒤, 온갖 생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 수험생은 힘겹게 생각했다.
‘조심해야지!’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지만 박문대가 맞아도 실례고, 아니어도 실례다. 어쨌든 절대 시험에 방해가 되면 안 됐다!
굳게 다짐한 수험생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그렇게 짜릿한 검정고시 시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