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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219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9화
영상은 소나무 아래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류청우로 시작했다.
[…….]
배경의 소나무 숲은 완연한 밤이었다. 그 속에서 새파랗게 빛나던 안광이 눈꺼풀 아래로 사라지는 순간.
피잉-
화면이 깜박거리며, 마치 회상하듯이 과거와 미래를 접붙였다.
눈부신 낮. 화살을 쏘아 보낸 류청우가 미소와 함께 궁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컷이 검은 머스킷 총기를 든 표정 없는 류청우로 바뀌더니, 총구에서 탄이 튀어나왔다.
탕!
그리고 쏘아진 탄을 느릿하게 비추던 장면은 어느새 비슷한 크기의 금화가 이세진의 얼굴 앞으로 튕기는 컷으로 바뀌었다.
티딩-
그리고 금화를 튕기던 이세진의 손은 어느새 대궐에서 춤사위를 벌이던 화려한 손동작의 컷으로 전환되었다.
휙.
그다음은 허공에 휘날리던 오색 천이 빛바랜 끈으로 바뀌더니, 그 끈을 팔찌처럼 동여맨 박문대가 비추어졌다.
그렇게 조각조각, 뮤직비디오에 나올 법한 컷들이 의식의 흐름처럼 짜 맞추어져 화면을 지나갔다.
느릿하게, 클래식풍으로 편곡된 행차의 멜로디를 BGM 삼아서.
-??? 뭐지
-행차랑 스아웃 때 찍어둔 것 같은데
-해석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뜬금없는 영상에 당황하면서도 훌륭한 영상미와 멤버들의 새로운 컷을 일차적으로 즐겼다.
마치 B컷 모음처럼 보여야 마땅했으나, 절묘한 컷의 배치로 상징성의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 더 진행되자 구성을 눈치챈 사람도 있었다.
-이거 행차 티저 순서 거꾸로 올라오네
└헐
└미친 소오름
그렇다.
멤버들의 컷은 행차 티저에서 각 솔로곡이 등장했던 순서를 역행으로 거슬러 올라 등장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었다.
티저 맨 처음에 등장했던 선아현의 수면 위로 손을 뻗는 컷이 등장하자, 그것이 머스킷을 돌렸다가 잡아채는 류청우의 컷으로 변한 것이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었다.
그렇게, 마치 회상을 계속하는 것처럼 컷은 이어졌다.
휘이익!
계속, 반복적으로.
더 빠르게, 엄청난 속도감과 함께.
그렇게 쫓기듯, 내달리듯 교차하던 예술적인 컷들은 시작할 때처럼 갑작스럽게 멈추었다.
찰칵.
차유진이 포박된 류청우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며, 그 손에 쥐어진 시민권 신청서가 클로즈업되던 순간.
[딩-.]
갑자기 컷이 고정된 것이다.
그리고 대신, 뜬금없이 차유진의 뒤에 서 있던 배세진의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 영화처럼 느긋하게 고정된 클로즈업과 함께.
[…….]
상념이 드러나는 그 얼굴은, 마치 직전 수많은 컷으로 표현된 회상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와하하하!]
이윽고 배세진은 신나게 시민권 신청서를 들고 뛰어다니는 멤버들을 뒤로한 채, 슬그머니 발을 옮겼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타다닥!
그리고 곧 배세진이 서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
바로 지난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보던 거대한 창이었다.
광활하고 이국적인 도시는 여전했다.
그러나 창에는 전 뮤직비디오에서 굳이 자세히 비추어주지 않았던 서류가 하나 붙어 있었다.
-시민권 증서 요청 대응 지침 (요괴)
구겨진 서류 위에는, ‘유사시 적극적 거부’에 수많은 붉은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시민권 증서는 무용한 미끼였다는 것을 뜻하는.
[후.]
배세진은 한숨을 내쉬며, 그 서류를 뜯었다.
그리고 몹시 주저하듯이, 서류와 창밖을 번갈아 보았다. 창밖 한구석에서 아직도 신이 난 멤버들의 모습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
현악기 하나로 ‘Spring out’의 테마 멜로디가 연주되었다.
배세진은 천천히,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낡은 천을 꺼내서 눈 위를 덮기 시작했다.
행차 때처럼.
그 위로 자연스럽고, 또렷한 음성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다시 태어난다면,]
[너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화면의 배세진은 머뭇거림도 없이, 눈을 감은 그대로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느릿한 클로즈업과 점점 고조되는 음악.
그리고 손이 닿는 순간.
툭.
음악이 일그러지며, 시야가 반전되었다.
쉬잇.
암전과 화이트 노이즈.
그리고 다시 살아난 화면.
배세진이 아닌 흑발의 박문대가, 교복 차림으로 서서 창문에서 손을 떼었다.
학교였다.
그는 뒤를 돌아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
아주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아주 친숙한,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 ♬♪♬♪- ♪♩-
마법소년의 멜로디.
그와 함께, 화면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Still enchanted]
[See you in that dream]
문구만을 남긴 채.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
-지금 내가 뭘 본 거냐
당연하지만, 그 후 테스타의 팬덤은 사흘쯤 거대한 세계관 연결 떡밥에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 * *
“훌륭하네.”
개인 일상과 공식 세계관 영상을 연달아 공개하는 건 역시 효과가 탁월했다. 나는 온갖 이론이 판치는 SNS 글을 쓱 훑었다.
어디 보자, 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군.
-평행세계 존맛
-일종의 인셉션 같은 구조라고 생각함 꿈속의 꿈? 아마 행차>마법소년>배러미>비행기 같은데
-생각해보면 피크닉 때도 묘하게 전 뮤비 장면 다 겹쳐 나오지 않았냐 설마 그것도 떡밥이었냐…?
-ㅠㅠㅠㅠ우리 애들 요괴가 아니라 사람 되고 싶었구나 근데 원래는 요괴였으니까 자꾸 초능력으로 능력 나오는 거고
-다음 앨범 마법소년으로 세계관 돌아오는 것 같지? (김칫국 드링킹
워낙 의미심장하게 만들어둔 탓인지, 배세진의 역할부터 시작해서 세계관 순서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사람들을 더 흥분시킨 것 같았다.
‘재미는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다만….’
물론 세계관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요 며칠 좀 시큰둥했겠지.
-얘들아 뇌절은 하지 말자
-너무 나갔는데 대체 어디까지 엮을 생각인 거임
-그냥 수트 입고 섹시 컨셉이나 한번 해주라 티원 새끼들 세계관 놀음 오냐오냐해주면 끝도 없이 감
-셤별 컨셉충 그룹인 건 알았는데 스케일 너무 커지니까 좀 피곤함
-문대가 양치하는 거나 한 번 더 보고 와야겠다 ㅅㄱ
그래서 이쪽을 위해 곧 이사와 룸메이트 게임 컨텐츠도 공개될 예정이다. 그럼 며칠 내로 팬 커뮤니티가 더없이 쾌적하게 돌아가겠지.
‘선아현 이야기는 더 나올 건덕지도 없는 것 같고.’
이만하면 일석이조는 될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차 안을 확인한 뒤 곧바로 스마트폰에서 해당 탭을 내렸다.
‘음, 슬슬 그만 봐야겠지.’
말을 해둔 게 있으니, 한동안은 물 밑에서 지껄이는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아예 보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 세계관 컨텐츠를 약간 빨리 풀려고 짧게 회의를 진행했을 때 관련 이야기가 나왔기도 하고.
-그, 그래서… 문대가, 앞으로는 인터넷 많이 안 보기로 했어요…!
-잘했어!
-그래. 안 그래도 문대가 너무 자주 찾아보는 것 같아서 좀 걱정했거든.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절제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들었습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김래빈은 좀 잘못 이해한 것 같긴 했다만… 어쨌든 이렇게 되니 큰세진마저도 ‘난들 어쩌겠음’ 같은 표정으로 어깨나 으쓱하더라.
이놈들이 이렇게까지 만장일치로 내 정신건강을 우려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누가 보면 무슨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수준으로 인터넷에 빠진 놈인 줄 알겠어.’
어쨌든, 그래서 나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며칠 위튜브로 동물 동영상이나 보면서 살면 되겠지.’
나는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위튜브로 접속했다.
시청 기록을 남기지 않고 관련 정보 수집을 거부해 둔 탓에 알고리즘 같은 건 안 나왔다. 그냥 인기순 정렬해서 개나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동영상이 실시간 인기 5위더라.
[테스타의 큰 그림? 미국인들을 케이팝 개미지옥에 빠뜨리는 루트 발견!]
…썸네일에는 ‘아주사?’, ‘세계관은 또 뭐야!’라는 말풍선을 달고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서양인들이 보였다.
국뽕 어그로가 흘러넘치다 못해 질식할 지경이었다.
다만, 위튜버 이름을 보니 몇 번 본 놈이다.
‘내용 자체는 제법 알차게 구성하는 놈이었지.’
대충 해외 인터넷을 편향적으로 요약하는 놈이라고 보면 됐다.
“…….”
그럼 실시간 인기 동영상 정도는… 사실 봐도 상관없지 않나? 관심 없는 놈들도 한 번씩은 볼 썸네일이지 않은가.
‘척 보니 칭찬이나 줄줄 늘어놨을 것 같은데.’
타격 입을 일이 없다. 나는 곧바로 타당한 결론을 내리고 동영상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위튜브 시청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뻔한 분량 채우기용 이야기는 넘어가고.
본론부터 1.5배속 재생하자.
[여러분, 지난 동영상에서 제가 테스타의 영미권 인지도가 상승한 이유를 말씀드렸었죠.]
[바로 서바이벌 오디션 밈에서 로 이어진 관심이, ‘Spring out’ 뮤직비디오 조회수로 연결된 흐름인데요.]
그 ‘옛날 생각난다’ 발언이 동아시아 밈하고 맞물려서 화제 좀 탄 걸로 호들갑 떠는 것이다.
[이 동양의 스팀펑크 세계관이 많은 양덕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투척된 것이 바로 새 케이팝 예능 입니다.]
[ 제작진이 만들었다는데, 심지어 접근성 좋은 넷플러스 자체 제작 예능이었죠. 당연히 테스타-아주사 라인에 관심이 생긴 미국인들은 이 프로그램을 우르르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우르르’까진 아니다. 그냥 까지 볼 정도로 KPOP에 흥미 생긴 놈들이 좀 유입된 거지.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순간, 제법 쓸 만한 다음 말이 나왔다.
[다만 여기서 끝이 아닌데요. 가 예상보다 현지에서 대박을 친 것입니다!]
오, 이건 맞다.
제작진의 지옥 케이팝 캠프는 미국에서 꽤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 봤자 넷플러스 자체 제작치고 잘됐다는 거라 진짜배기 인기 채널급은 아니었다만, 인터넷에서 일반인들에게 화자는 좀 됐다는 뜻이다.
물론 이 위튜버는 그 이야기는 싹 생략했다.
그래도 다음 말은 제법 날카로웠다.
[대박 예능은 다양한 대중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는데요, 여기서 바로 밈을 계기로 테스타-아주사 라인을 탔던 올드비들이 활약하게 됩니다!]
[그들이 이 미국 일반인, 대중 시청자들에게 와 테스타를 적극 추천했기 때문입니다.]
“…!”
오, 이건 좀 새롭다.
‘이런 분석이 있었나.’
그냥 예능빨로 해외 인지도 수혜 좀 받은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그 안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나 보다.
[를 감명 깊게 시청한 시청자들이 결국 테스타의 뮤직비디오나 를 시청하며, KPOP에 새롭게 유입된 것이죠!]
[기존 KPOP 팬들의 관심뿐만 아니라, KPOP 파이 자체를 키우는 영리하고 파급력 강한 행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작진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으며 회사도 여기까진 고려 못 했다는데 이번 분기 정산을 걸겠다.
왜냐하면 우리도 여기까진 그림 안 그렸거든.
그러나 위튜버는 완전히 자신의 이론에 확신이 찬 모양이다.
[그렇다면 테스타의 큰 그림은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심지어 바로 어제, 테스타의 세계관 영상이 새롭게 업로드되었습니다. 해당 영상은 테스타의 지금까지 활동 연대기를 연결해주는데요.]
[결국, 그들의 데뷔곡인 ‘마법소년’까지 유입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표까지 나왔습니다!]
[※영상 제작일 기준※]
…그러냐?
영상에 첨부된 그래프는 좀 과장되긴 했지만 맞는 소리였다.
[그리고 지난 월요일, 테스타는 이번 활동을 마무리하고 휴식기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앨범에서는 또 어떤 행보로 우리를 놀라게 해줄까요?]
[오늘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흐음.
나는 턱을 문질렀다.
과장과 호들갑이 많긴 한데, 다 걷어내고 살펴봐도 꽤 고려할 만한 담론이 있긴 하다.
‘다음 앨범이 또 중요하겠군.’
언제는 안 그랬냐만, 이번에도 관심을 팬층으로 잘 소화할 만한… 국내외에서 다 잘 먹힐 곡을 타이틀로 뽑아야겠지.
정체기 없이 쭉쭉 커지는 게 좋긴 한데, 숨 돌릴 틈도 없다.
‘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하나.’
새 팬 만들겠다고 기존 팬들의 니즈를 벗어나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자료는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인터넷 탭을 열어 세부 검색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저, 무, 문대야. 검색해?”
“…! 그냥 좀.”
선아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아, 안 보기로… 아, 아니야. 문대가 보고 싶으면 보는 거지만. 그래도 많이 보지는 않았으면 해서….”
“…….”
“야, 약속했으니까….”
오냐.
“그래.”
“으, 으응!”
나는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내심 한숨을 쉬었다.
‘뭐, 할 거 없나.’
곧 비활동기라 스케줄 파악할 것도 없다. 어째 손발이 근질거린다.
그때였다.
드르륵!
대뜸 스마트폰이 진동하더니, 문자가 왔다.
“…?”
[202X년도 제1회 검정고시 응시자 유의사항 안내]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비활동기에 맞춰서 이걸 신청해 뒀었지.
‘대충 보고 오는 걸로 할까.’
나는 심드렁하게 도로 스마트폰를 내렸다.
참고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놈들도 얼결에 이 문자를 봤다는 것은 이때까진 모르고 있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9화

영상은 소나무 아래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있는 류청우로 시작했다.

배경의 소나무 숲은 완연한 밤이었다. 그 속에서 새파랗게 빛나던 안광이 눈꺼풀 아래로 사라지는 순간.

피잉-

화면이 깜박거리며, 마치 회상하듯이 과거와 미래를 접붙였다.

눈부신 낮. 화살을 쏘아 보낸 류청우가 미소와 함께 궁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컷이 검은 머스킷 총기를 든 표정 없는 류청우로 바뀌더니, 총구에서 탄이 튀어나왔다.

탕!

그리고 쏘아진 탄을 느릿하게 비추던 장면은 어느새 비슷한 크기의 금화가 이세진의 얼굴 앞으로 튕기는 컷으로 바뀌었다.

티딩-

그리고 금화를 튕기던 이세진의 손은 어느새 대궐에서 춤사위를 벌이던 화려한 손동작의 컷으로 전환되었다.

휙.

그다음은 허공에 휘날리던 오색 천이 빛바랜 끈으로 바뀌더니, 그 끈을 팔찌처럼 동여맨 박문대가 비추어졌다.

그렇게 조각조각, 뮤직비디오에 나올 법한 컷들이 의식의 흐름처럼 짜 맞추어져 화면을 지나갔다.

느릿하게, 클래식풍으로 편곡된 행차의 멜로디를 BGM 삼아서.

-??? 뭐지

-행차랑 스아웃 때 찍어둔 것 같은데

-해석을 기다립니다

사람들은 뜬금없는 영상에 당황하면서도 훌륭한 영상미와 멤버들의 새로운 컷을 일차적으로 즐겼다.

마치 B컷 모음처럼 보여야 마땅했으나, 절묘한 컷의 배치로 상징성의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 더 진행되자 구성을 눈치챈 사람도 있었다.

-이거 행차 티저 순서 거꾸로 올라오네

└헐

└미친 소오름

그렇다.

멤버들의 컷은 행차 티저에서 각 솔로곡이 등장했던 순서를 역행으로 거슬러 올라 등장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었다.

티저 맨 처음에 등장했던 선아현의 수면 위로 손을 뻗는 컷이 등장하자, 그것이 머스킷을 돌렸다가 잡아채는 류청우의 컷으로 변한 것이다.

처음과 끝이 연결되었다.

그렇게, 마치 회상을 계속하는 것처럼 컷은 이어졌다.

휘이익!

계속, 반복적으로.

더 빠르게, 엄청난 속도감과 함께.

그렇게 쫓기듯, 내달리듯 교차하던 예술적인 컷들은 시작할 때처럼 갑작스럽게 멈추었다.

찰칵.

차유진이 포박된 류청우의 손을 붙잡아 일으켜주며, 그 손에 쥐어진 시민권 신청서가 클로즈업되던 순간.

갑자기 컷이 고정된 것이다.

그리고 대신, 뜬금없이 차유진의 뒤에 서 있던 배세진의 얼굴을 비추었다.

마치 영화처럼 느긋하게 고정된 클로즈업과 함께.

상념이 드러나는 그 얼굴은, 마치 직전 수많은 컷으로 표현된 회상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배세진은 신나게 시민권 신청서를 들고 뛰어다니는 멤버들을 뒤로한 채, 슬그머니 발을 옮겼다.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타다닥!

그리고 곧 배세진이 서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

바로 지난 뮤직비디오에서 그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보던 거대한 창이었다.

광활하고 이국적인 도시는 여전했다.

그러나 창에는 전 뮤직비디오에서 굳이 자세히 비추어주지 않았던 서류가 하나 붙어 있었다.

-시민권 증서 요청 대응 지침 (요괴)

구겨진 서류 위에는, ‘유사시 적극적 거부’에 수많은 붉은 동그라미가 처져 있었다….

시민권 증서는 무용한 미끼였다는 것을 뜻하는.

배세진은 한숨을 내쉬며, 그 서류를 뜯었다.

그리고 몹시 주저하듯이, 서류와 창밖을 번갈아 보았다. 창밖 한구석에서 아직도 신이 난 멤버들의 모습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그의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악기 하나로 ‘Spring out’의 테마 멜로디가 연주되었다.

배세진은 천천히, 서류를 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낡은 천을 꺼내서 눈 위를 덮기 시작했다.

행차 때처럼.

그 위로 자연스럽고, 또렷한 음성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화면의 배세진은 머뭇거림도 없이, 눈을 감은 그대로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느릿한 클로즈업과 점점 고조되는 음악.

그리고 손이 닿는 순간.

툭.

음악이 일그러지며, 시야가 반전되었다.

쉬잇.

암전과 화이트 노이즈.

그리고 다시 살아난 화면.

배세진이 아닌 흑발의 박문대가, 교복 차림으로 서서 창문에서 손을 떼었다.

학교였다.

그는 뒤를 돌아 카메라를 응시하며, 미소를 지었다.

석양이 지고 있었다.

아주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아주 친숙한, 차임벨 소리가 들렸다.

♬♪♩♪- ♬♪♬♪- ♪♩-

마법소년의 멜로디.

그와 함께, 화면이 녹아내리듯 사라졌다.

문구만을 남긴 채.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

-지금 내가 뭘 본 거냐

당연하지만, 그 후 테스타의 팬덤은 사흘쯤 거대한 세계관 연결 떡밥에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 * *

“훌륭하네.”

개인 일상과 공식 세계관 영상을 연달아 공개하는 건 역시 효과가 탁월했다. 나는 온갖 이론이 판치는 SNS 글을 쓱 훑었다.

어디 보자, 별 이야기가 다 나오는군.

-평행세계 존맛

-일종의 인셉션 같은 구조라고 생각함 꿈속의 꿈? 아마 행차>마법소년>배러미>비행기 같은데

-생각해보면 피크닉 때도 묘하게 전 뮤비 장면 다 겹쳐 나오지 않았냐 설마 그것도 떡밥이었냐…?

-ㅠㅠㅠㅠ우리 애들 요괴가 아니라 사람 되고 싶었구나 근데 원래는 요괴였으니까 자꾸 초능력으로 능력 나오는 거고

-다음 앨범 마법소년으로 세계관 돌아오는 것 같지? (김칫국 드링킹

워낙 의미심장하게 만들어둔 탓인지, 배세진의 역할부터 시작해서 세계관 순서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사람들을 더 흥분시킨 것 같았다.

‘재미는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하다만….’

물론 세계관 자체를 별로 안 좋아하는 팬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요 며칠 좀 시큰둥했겠지.

-얘들아 뇌절은 하지 말자

-너무 나갔는데 대체 어디까지 엮을 생각인 거임

-그냥 수트 입고 섹시 컨셉이나 한번 해주라 티원 새끼들 세계관 놀음 오냐오냐해주면 끝도 없이 감

-셤별 컨셉충 그룹인 건 알았는데 스케일 너무 커지니까 좀 피곤함

-문대가 양치하는 거나 한 번 더 보고 와야겠다 ㅅㄱ

그래서 이쪽을 위해 곧 이사와 룸메이트 게임 컨텐츠도 공개될 예정이다. 그럼 며칠 내로 팬 커뮤니티가 더없이 쾌적하게 돌아가겠지.

‘선아현 이야기는 더 나올 건덕지도 없는 것 같고.’

이만하면 일석이조는 될 것 같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차 안을 확인한 뒤 곧바로 스마트폰에서 해당 탭을 내렸다.

‘음, 슬슬 그만 봐야겠지.’

말을 해둔 게 있으니, 한동안은 물 밑에서 지껄이는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아예 보지 않을 생각이다.

…사실, 이 세계관 컨텐츠를 약간 빨리 풀려고 짧게 회의를 진행했을 때 관련 이야기가 나왔기도 하고.

-그, 그래서… 문대가, 앞으로는 인터넷 많이 안 보기로 했어요…!

-잘했어!

-그래. 안 그래도 문대가 너무 자주 찾아보는 것 같아서 좀 걱정했거든.

-전자기기 사용 시간을 절제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들었습니다. 훌륭한 선택입니다!

김래빈은 좀 잘못 이해한 것 같긴 했다만… 어쨌든 이렇게 되니 큰세진마저도 ‘난들 어쩌겠음’ 같은 표정으로 어깨나 으쓱하더라.

이놈들이 이렇게까지 만장일치로 내 정신건강을 우려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누가 보면 무슨 은둔형 외톨이 위험군 수준으로 인터넷에 빠진 놈인 줄 알겠어.’

어쨌든, 그래서 나도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며칠 위튜브로 동물 동영상이나 보면서 살면 되겠지.’

나는 심드렁하게 생각하며, 위튜브로 접속했다.

시청 기록을 남기지 않고 관련 정보 수집을 거부해 둔 탓에 알고리즘 같은 건 안 나왔다. 그냥 인기순 정렬해서 개나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런 동영상이 실시간 인기 5위더라.

…썸네일에는 ‘아주사?’, ‘세계관은 또 뭐야!’라는 말풍선을 달고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서양인들이 보였다.

국뽕 어그로가 흘러넘치다 못해 질식할 지경이었다.

다만, 위튜버 이름을 보니 몇 번 본 놈이다.

‘내용 자체는 제법 알차게 구성하는 놈이었지.’

대충 해외 인터넷을 편향적으로 요약하는 놈이라고 보면 됐다.

“…….”

그럼 실시간 인기 동영상 정도는… 사실 봐도 상관없지 않나? 관심 없는 놈들도 한 번씩은 볼 썸네일이지 않은가.

‘척 보니 칭찬이나 줄줄 늘어놨을 것 같은데.’

타격 입을 일이 없다. 나는 곧바로 타당한 결론을 내리고 동영상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위튜브 시청자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뻔한 분량 채우기용 이야기는 넘어가고.

본론부터 1.5배속 재생하자.

그 ‘옛날 생각난다’ 발언이 동아시아 밈하고 맞물려서 화제 좀 탄 걸로 호들갑 떠는 것이다.

‘우르르’까진 아니다. 그냥 까지 볼 정도로 KPOP에 흥미 생긴 놈들이 좀 유입된 거지.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한 순간, 제법 쓸 만한 다음 말이 나왔다.

오, 이건 맞다.

제작진의 지옥 케이팝 캠프는 미국에서 꽤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래 봤자 넷플러스 자체 제작치고 잘됐다는 거라 진짜배기 인기 채널급은 아니었다만, 인터넷에서 일반인들에게 화자는 좀 됐다는 뜻이다.

물론 이 위튜버는 그 이야기는 싹 생략했다.

그래도 다음 말은 제법 날카로웠다.

“…!”

오, 이건 좀 새롭다.

‘이런 분석이 있었나.’

그냥 예능빨로 해외 인지도 수혜 좀 받은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그 안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나 보다.

제작진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으며 회사도 여기까진 고려 못 했다는데 이번 분기 정산을 걸겠다.

왜냐하면 우리도 여기까진 그림 안 그렸거든.

그러나 위튜버는 완전히 자신의 이론에 확신이 찬 모양이다.

…그러냐?

영상에 첨부된 그래프는 좀 과장되긴 했지만 맞는 소리였다.

흐음.

나는 턱을 문질렀다.

과장과 호들갑이 많긴 한데, 다 걷어내고 살펴봐도 꽤 고려할 만한 담론이 있긴 하다.

‘다음 앨범이 또 중요하겠군.’

언제는 안 그랬냐만, 이번에도 관심을 팬층으로 잘 소화할 만한… 국내외에서 다 잘 먹힐 곡을 타이틀로 뽑아야겠지.

정체기 없이 쭉쭉 커지는 게 좋긴 한데, 숨 돌릴 틈도 없다.

‘좀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하나.’

새 팬 만들겠다고 기존 팬들의 니즈를 벗어나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자료는 많을수록 좋았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인터넷 탭을 열어 세부 검색을 시작하려던 순간이었다.

“저, 무, 문대야. 검색해?”

“…! 그냥 좀.”

선아현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아, 안 보기로… 아, 아니야. 문대가 보고 싶으면 보는 거지만. 그래도 많이 보지는 않았으면 해서….”

“…….”

“야, 약속했으니까….”

오냐.

“그래.”

“으, 으응!”

나는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내심 한숨을 쉬었다.

‘뭐, 할 거 없나.’

곧 비활동기라 스케줄 파악할 것도 없다. 어째 손발이 근질거린다.

그때였다.

드르륵!

대뜸 스마트폰이 진동하더니, 문자가 왔다.

“…?”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비활동기에 맞춰서 이걸 신청해 뒀었지.

‘대충 보고 오는 걸로 할까.’

나는 심드렁하게 도로 스마트폰를 내렸다.

참고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놈들도 얼결에 이 문자를 봤다는 것은 이때까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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