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1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7화
커버 무대.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그룹이나 가수의 곡을 퍼포먼스 하는 무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것에도 암묵적인 선이 있었다.
‘후배의 곡은 굳이 하지 않는다.’
후배보다 못하면 그림이 굉장히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하더라도 ‘상도덕 없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보통 커버 무대가 단 며칠만의 연습으로 타인의 곡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리스크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제작진들의 이 예능에 멘토로 나오는 아이돌들은 이미 뜰 대로 뜬 팀도 많았다.
‘아니, 연말에 커버 무대 할 급이 아닌 놈들도 수두룩하잖아!’
그들이 신인의 최근 히트곡을 커버하는 뜻밖의 짓을 하는 걸 영상으로 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뜻이다.
‘헐.’
참고로, 비슷한 시간대의 관련 SNS들 역시 ‘??’ 따위로 도배되어있었다.
그러나 청려의 팬은 즉시 깨달음을 얻었다.
‘하긴, 재현이 선배 곡으로 추리면 너무 가짓수가 줄어드나?’
VTIC보다 선배면서 근 5년 내 히트곡을 가진 아이돌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과거 곡을 커버하는 것도 재미없었다.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신인 여돌 곡… 재미는 확실한데!’
그러고 보니 청려가 여자 아이돌 곡을 소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정말 데뷔 연도 이후 처음이었다!
갑자기 터진 희귀한 떡밥이란 생각에 팬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청려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기에 가능한 반사작용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이 이삼 초 남짓에 휙 지나갈 무렵.
-We gonna fly high
화면이 클로즈업을 멈추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둥둥둥둥-
베이스, 드럼 위로 까랑까랑한 현악기 우드가 신시사이저의 전자음처럼 변형되어 깔렸다.
그리고 핏 좋은 가죽 하네스 의상을 입고 있던 아이돌들이 대형을 가르고 보랏빛 무대에서 안무를 시작했다.
각기 다른 그룹 출신에서 오는 위화감은 부드럽게 녹아 가려졌다.
다년간의 활동으로 잘 다듬어진 능숙함도 한몫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센터가 유별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려였다.
-넌 외쳐 high up
날아가, 저 위로
속박의 shoot up
벗어나, Paradox
‘으악!’
강렬한 후렴이 다짜고짜 도입부터 치고 나왔다. 청려의 팬은 자동으로 침음했다.
“하, 개좋아….”
화면의 청려는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몇십 초의 안무를 물 흐르듯 연결해 끌어 도입을 끝내버렸다.
원곡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마치 순식간처럼 느껴지도록.
엄청난 역량이었다.
‘그아아악!’
알 수 없는 괴성과 멤버 이름을 부르짖는 것을 제외하면, 팬 커뮤니티에서도 뜨문뜨문 비슷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려 개잘해 X발
-월드 클라스 오졌다
-오 키만 바꿨는데 분위기가 달라짐
키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다.
미리내의 데뷔곡, ‘high up’은 거미줄에 걸린 애벌레가 고치로 붙잡혀 굳어가나 결국 나비로 탈출한다는 메타포를 담은 곡이었다.
부분적으론 약간 복고풍의 애절한 맛이 있는 듯하면서도 세련되며 리드미컬한 맛이 최근 유행에 딱 맞아 흥행에 성공했다.
신인다운 칼각이 돋보이는 곡에 군데군데 의도된 감성이 들어간, 나무랄 곳 없는 데뷔곡이었으나… 그만큼 색이 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애초에 메타포 자체가 시즌 4로 인한 논란과 잡음의 여론을 떨쳐내고 비상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이런 짓에 이력이 난 기성 아이돌들은 이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 커버 무대에 괜히 어설프게 그 고유의 감성을 따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허물을 찢어, 버려
Take off, take off, take off
난 이륙해 지금 바로
단지 박력만을 살렸다.
“와, 씨.”
신인의 데뷔곡이 으레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경직이 없었다. 대신 여유에서 나오는 표현력이 극대화되었다.
게다가 청려가 잡아둔 안무 각은 이 여유가 방자함으로 보이지 않도록 원천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잡아먹을 듯이 몰아치는 무대가 되며 원곡과 또 다른 느낌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글로벌 KPOP 팬덤에서 환장하는 ‘세고 끼 넘치는 컨셉’의 좋은 표본이 되었다.
게다가 원래 같은 그룹이 아닌 탓에,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그것을 극대화했다.
특히 후렴.
-넌 외쳐 high up
(high-up, up, up, up)
멀리 가, 더 위로
“이야!”
몰아쳤다.
청려가 이끄는 대형은 유려하고 강약조절이 절묘해 시선을 잡아당겼다.
가운데 선 놈이 조절을 잘하면, 전체적인 퀄리티가 올라가 보이는 안무의 법칙은 충실히 지켜지고 있었다.
아마 3화가 올라오자마자 쭉 훑어서 공연 장면부터 뽑아낸 일부 사람들은, 벌써 GIF 파일을 끝없이 뽑아내는 중일 것이다.
‘아, 상도덕 없단 이야기 확정이네!’
청려의 팬은 어그로 꼬이는 미래가 그려지는데도 어째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대의 마력이었다.
거기엔 ‘날아오르겠다’는 가사가 있는 대로 모두 부숴서 받침판으로 삼겠다는 식으로 들릴 정도로 기가 넘쳤다.
-high up!
그리고 2절 벌스.
갑자기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들어오며 보컬 역량이 강조되는 부분이었다.
당연하지만 박문대가 맡았다.
그리고 여기는 본래 미리내의 센터, 1위가 소화하는 파트기도 했다.
‘걔는 춤도 잘 추던데.’
청려의 팬은 엄청난 만능 육각형 캐릭터인 시즌 4의 1위를 잠시 떠올렸다가, 화면의 박문대를 보고 반사적으로 오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박문대도 이제 제법 춤을 잘 추었지만, 팬이 아닌 사람 중엔 아직도 그의 춤에 의구심을 가진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 첫 등장 때의 ‘POP☆CON’이 워낙 강렬해서였다.
“으음.”
그러나 그 걱정은 지레짐작으로 끝났다.
-아픔도 상처도
절대 멈출 수 없어
Can’t let us down
“오.”
박문대의 춤이 쫀득했기 때문이다.
몸을 굽혔다 필 때의 느낌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잘하네?’
평소 테스타의 타이틀곡 대형에서 이런 본격적인 안무 중에 센터인 경우가 별로 없었기에 그 신선함이 더 컸다.
워낙 댄스가 특기인 놈들이 많은 그룹에 있는 비애일까, 청려의 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여기 춤 선이 어째 좀….’
우리 애랑 닮지 않았나?
하지만 청려의 팬이 그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 전에, 노래가 먼저 귀를 잡았다.
-We gonna fly high!
이 사슬에 맞서
Say goodbye
분명 후보정이 들어갔겠지만, 원곡보다 드라마틱한 전개였다.
“워우.”
밸런스 멤버와 보컬 특화 멤버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진짜 잘하네.’
청려의 팬은 새삼스럽게 화면을 보다가, 문득 반질거리는 박문대의 어린 얼굴을 보며 묘한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연상되는 뺀질한 놈 때문이었다.
‘그 무능력자 새끼 메보랍시고 엉덩이 뭉개고 있어서 애들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그 새끼는 끼도 X나게 없어서 수납하기 바빴지 않은가!
‘올팬 기조 때려치워! 진작 욕을 바가지로 쏟아서 그 대가리를 고쳐줬어야 했는데!’
아직도 ‘브이틱은 5명ㅠ’ 같은 댓글을 달아대는 해외 팬들을 떠올리며, 청려의 팬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쨌든, 보던 무대가 홀릴 듯 좋아서 분노는 금방 가라앉았다.
“휴.”
이런 전형적인 컨셉추얼 신인 아이돌 곡을 하는 청려가 너무 오랜만이라 행복했다.
-We gonna find
그녀의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거의 날아다닌 뒤, 마지막 후렴은 박문대가 센터를 잠시 차지하며 곡이 끝났다.
“흠.”
능력치 분배를 따지면 청려를 줬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박문대가 제법 인상적이었기에 팬은 불만을 토로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청려 분량이 충분해서 가능한 감상이었다.
“재밌다….”
청려의 팬은 침대에 누워, 올라온 청려의 사진과 움짤들을 저장하며 흡족해했다. 이런 거리감 없는 떡밥이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슬쩍 박문대의 것도 몇 개 저장했다.
‘뭐, 귀엽잖아.’
‘애들이랑 친한 것 같던데, 테스타 끝나면 LeTi랑 계약하지 않을까’ 따위의 짐작을 하며, 팬은 하루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비하인드 영상이 올라왔을 때, 박문대에게 동작을 알려주는 청려를 확인하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며 뿌듯해하게 된다.
* * *
-문대야 너 언제 누나 몰래 댄스라인 됐니 역시 아이큐 300 천재 강아지
-최고의 허스키, 추천합니다 (후렴 안무 장면 박문대 GIF 파일)
-박문대의 컨셉 소화력은 실로 독보적이다. 어디에 붙여도 정확한 표현력을 보여줄 줄 아는 퍼포머는 드물다. 그리고 박문대는 분명 그 소수 중 하나일 것이다. (사진)
-야 괜히 시즌3 1등이 아니네 프로그램 전성기 우승자는 때깔이 달라요ㅋㅋㅋㅋ
‘반응 괜찮네.’
나는 첫 공개된 무대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T1에서 밀어주는 신인 그룹의 곡이었기에 ‘왜 하필 후배 곡 골랐냐’ 등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제작진 입김이니까.’
게다가 반대로 ‘티원이 너무 미리내를 밀어준다’는 이야기도 예상보단 많이 나오지 않았다.
‘무대 평이 워낙 좋으니까.’
일단 결과가 좋아서 만족스러우면 세부적인 과정들이야 정당화되는 경향성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워낙 관계없는 놈들끼리 묶어서 무대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은근히 누가 더 잘했다는 기 싸움이 심했다.
물론 보통은 제일 인기 많은 놈이 이긴다, 이런 식으로.
-신청려 얼굴 봐 어딜 봐서 곧 10년차이신지 어제 데뷔라고 해도 믿겠음
-청려는 아직도 갓기다
└그 나이면 아재잖아ㅠ
└느그 돌은 면상이 아재잖아ㅠ 늙은 아이돌이라니… 마음이 안 좋다 화이팅!
-청려야말로 천년돌
‘천 년은 모르겠고, 한 오십 년은 아이돌 해 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떨떠름하게 SNS 페이지를 쓱 내렸다.
이번에는… 인정하긴 싫다만, 저 ‘제일 인기 많은 놈’이 무대에서 역할이 제일 크기도 했으니 특별히 코멘트할 건 없다.
‘어쨌든, 성공은 했고.’
국내뿐만 아니라 따로 올라온 위튜브 동영상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조회 수가 붙고 있다고 한다.
예능도 띄우고 미리내 인지도도 키우고, 회사에서는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도 손해 본 건 없지.’
이 예능의 해외 인지도가 쭉쭉 올라가면서, 초반에 멘토로 조명 잘 받은 테스타 멤버들의 해외 인지도 상승에도 제법 도움이 됐다.
‘이번에 내가 나온 특별 무대도 워낙 반응이 좋았고.’
그리고 다음은 선아현이니까, 웬만하면 이 기세를 이어갈 것이다.
거기 라인업에 영린도 끼어 있었거든.
청려만큼은 아니지만, 해외 인지도가 좋은 사람이니 선아현도 시너지로 득을 볼 것이다.
게다가 둘이 연차도 워낙 차이 나서 쓸데없는 연애설 위험도 없다.
‘혼성그룹 노래였지.’
듣기로는 해외에서 제법 인기 있던 모 인기 기획사의 혼성 유닛 곡을 커버했다고 한다.
투어 중에 즉석 무대에서 한번 해봤어서 나도 안다. 명곡인 데다가 선아현에게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 잘 나올 것이다.
마침 옆에서 내 무대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당사자가 영상이 끝났는지 말을 건다.
“무, 문대야. 정말 멋있게 잘했어…!”
“춤 괜찮아?”
“으응! 히, 힘이 좋아!”
오, 확실한가 보군.
“고맙다. 너도 잘 나올 것 같은데.”
“그, 그럴까?”
선아현은 헤헤 웃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생각해도 제법 잘한 모양이지.
‘역시 안 바꾸는 게 정답이었군.’
안 봐도 잘했을 건 같다만, 다음 주에 한번 모니터링은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보던 스마트폰를 껐다.
다만 예상과 달리, 거기까지의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며칠 뒤, 두 번째 특별 무대 예고편이 올라온 후.
[쿨릿 최기운 인하트 비공개 계정에 올라온 글.jpg]
[최기운 비계 다 털림ㄷㄷㄷ]
선아현과 같이 이 혼성 유닛 곡의 무대를 했던 이름도 모를 새끼의 비밀 계정이 만천하에 털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라인업 중 영린만 고려해서 생각도 안 했던 놈이었는데.’
여기까진 솔직히 우리 알 바는 아니었다. 그놈이 논란 때문에 카메라 분량을 덜 받으면 차라리 이득이 됐으면 모를까.
문제는 어김없이 관심법 쓰는 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 이거 선아현 이야기 아니야? (캡처)
-시기 딱 맞지 않나 촬영날 같은데
‘…슬슬 쿨타임 돌아올 때가 되긴 했지.’
해충박멸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7화
커버 무대.
자신의 곡이 아닌, 다른 그룹이나 가수의 곡을 퍼포먼스 하는 무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그것에도 암묵적인 선이 있었다.
‘후배의 곡은 굳이 하지 않는다.’
후배보다 못하면 그림이 굉장히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하더라도 ‘상도덕 없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다.
보통 커버 무대가 단 며칠만의 연습으로 타인의 곡을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리스크는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게다가 제작진들의 이 예능에 멘토로 나오는 아이돌들은 이미 뜰 대로 뜬 팀도 많았다.
‘아니, 연말에 커버 무대 할 급이 아닌 놈들도 수두룩하잖아!’
그들이 신인의 최근 히트곡을 커버하는 뜻밖의 짓을 하는 걸 영상으로 보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뜻이다.
‘헐.’
참고로, 비슷한 시간대의 관련 SNS들 역시 ‘??’ 따위로 도배되어있었다.
그러나 청려의 팬은 즉시 깨달음을 얻었다.
‘하긴, 재현이 선배 곡으로 추리면 너무 가짓수가 줄어드나?’
VTIC보다 선배면서 근 5년 내 히트곡을 가진 아이돌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과거 곡을 커버하는 것도 재미없었다. 이미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신인 여돌 곡… 재미는 확실한데!’
그러고 보니 청려가 여자 아이돌 곡을 소화하는 것을 보는 것도 정말 데뷔 연도 이후 처음이었다!
갑자기 터진 희귀한 떡밥이란 생각에 팬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청려가 못할 것이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기에 가능한 반사작용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이 이삼 초 남짓에 휙 지나갈 무렵.
-We gonna fly high
화면이 클로즈업을 멈추고, 무대가 시작되었다.
둥둥둥둥-
베이스, 드럼 위로 까랑까랑한 현악기 우드가 신시사이저의 전자음처럼 변형되어 깔렸다.
그리고 핏 좋은 가죽 하네스 의상을 입고 있던 아이돌들이 대형을 가르고 보랏빛 무대에서 안무를 시작했다.
각기 다른 그룹 출신에서 오는 위화감은 부드럽게 녹아 가려졌다.
다년간의 활동으로 잘 다듬어진 능숙함도 한몫했지만, 결정적으로는… 센터가 유별났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려였다.
-넌 외쳐 high up
날아가, 저 위로
속박의 shoot up
벗어나, Paradox
‘으악!’
강렬한 후렴이 다짜고짜 도입부터 치고 나왔다. 청려의 팬은 자동으로 침음했다.
“하, 개좋아….”
화면의 청려는 마치 하나의 동작처럼 몇십 초의 안무를 물 흐르듯 연결해 끌어 도입을 끝내버렸다.
원곡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마치 순식간처럼 느껴지도록.
엄청난 역량이었다.
‘그아아악!’
알 수 없는 괴성과 멤버 이름을 부르짖는 것을 제외하면, 팬 커뮤니티에서도 뜨문뜨문 비슷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려 개잘해 X발
-월드 클라스 오졌다
-오 키만 바꿨는데 분위기가 달라짐
키만 바꾼 것은 아니었다.
뉘앙스가 달라진 것이다.
미리내의 데뷔곡, ‘high up’은 거미줄에 걸린 애벌레가 고치로 붙잡혀 굳어가나 결국 나비로 탈출한다는 메타포를 담은 곡이었다.
부분적으론 약간 복고풍의 애절한 맛이 있는 듯하면서도 세련되며 리드미컬한 맛이 최근 유행에 딱 맞아 흥행에 성공했다.
신인다운 칼각이 돋보이는 곡에 군데군데 의도된 감성이 들어간, 나무랄 곳 없는 데뷔곡이었으나… 그만큼 색이 강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애초에 메타포 자체가 시즌 4로 인한 논란과 잡음의 여론을 떨쳐내고 비상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이런 짓에 이력이 난 기성 아이돌들은 이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
이번 커버 무대에 괜히 어설프게 그 고유의 감성을 따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허물을 찢어, 버려
Take off, take off, take off
난 이륙해 지금 바로
단지 박력만을 살렸다.
“와, 씨.”
신인의 데뷔곡이 으레 그렇듯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경직이 없었다. 대신 여유에서 나오는 표현력이 극대화되었다.
게다가 청려가 잡아둔 안무 각은 이 여유가 방자함으로 보이지 않도록 원천 차단했다.
결과적으로, 잡아먹을 듯이 몰아치는 무대가 되며 원곡과 또 다른 느낌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글로벌 KPOP 팬덤에서 환장하는 ‘세고 끼 넘치는 컨셉’의 좋은 표본이 되었다.
게다가 원래 같은 그룹이 아닌 탓에,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그것을 극대화했다.
특히 후렴.
-넌 외쳐 high up
(high-up, up, up, up)
멀리 가, 더 위로
“이야!”
몰아쳤다.
청려가 이끄는 대형은 유려하고 강약조절이 절묘해 시선을 잡아당겼다.
가운데 선 놈이 조절을 잘하면, 전체적인 퀄리티가 올라가 보이는 안무의 법칙은 충실히 지켜지고 있었다.
아마 3화가 올라오자마자 쭉 훑어서 공연 장면부터 뽑아낸 일부 사람들은, 벌써 GIF 파일을 끝없이 뽑아내는 중일 것이다.
‘아, 상도덕 없단 이야기 확정이네!’
청려의 팬은 어그로 꼬이는 미래가 그려지는데도 어째 입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대의 마력이었다.
거기엔 ‘날아오르겠다’는 가사가 있는 대로 모두 부숴서 받침판으로 삼겠다는 식으로 들릴 정도로 기가 넘쳤다.
-high up!
그리고 2절 벌스.
갑자기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들어오며 보컬 역량이 강조되는 부분이었다.
당연하지만 박문대가 맡았다.
그리고 여기는 본래 미리내의 센터, 1위가 소화하는 파트기도 했다.
‘걔는 춤도 잘 추던데.’
청려의 팬은 엄청난 만능 육각형 캐릭터인 시즌 4의 1위를 잠시 떠올렸다가, 화면의 박문대를 보고 반사적으로 오묘한 불안감이 들었다.
박문대도 이제 제법 춤을 잘 추었지만, 팬이 아닌 사람 중엔 아직도 그의 춤에 의구심을 가진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 첫 등장 때의 ‘POP☆CON’이 워낙 강렬해서였다.
“으음.”
그러나 그 걱정은 지레짐작으로 끝났다.
-아픔도 상처도
절대 멈출 수 없어
Can’t let us down
“오.”
박문대의 춤이 쫀득했기 때문이다.
몸을 굽혔다 필 때의 느낌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잘하네?’
평소 테스타의 타이틀곡 대형에서 이런 본격적인 안무 중에 센터인 경우가 별로 없었기에 그 신선함이 더 컸다.
워낙 댄스가 특기인 놈들이 많은 그룹에 있는 비애일까, 청려의 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여기 춤 선이 어째 좀….’
우리 애랑 닮지 않았나?
하지만 청려의 팬이 그 묘한 기시감을 느끼기 전에, 노래가 먼저 귀를 잡았다.
-We gonna fly high!
이 사슬에 맞서
Say goodbye
분명 후보정이 들어갔겠지만, 원곡보다 드라마틱한 전개였다.
“워우.”
밸런스 멤버와 보컬 특화 멤버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느껴졌다.
‘진짜 잘하네.’
청려의 팬은 새삼스럽게 화면을 보다가, 문득 반질거리는 박문대의 어린 얼굴을 보며 묘한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연상되는 뺀질한 놈 때문이었다.
‘그 무능력자 새끼 메보랍시고 엉덩이 뭉개고 있어서 애들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그 새끼는 끼도 X나게 없어서 수납하기 바빴지 않은가!
‘올팬 기조 때려치워! 진작 욕을 바가지로 쏟아서 그 대가리를 고쳐줬어야 했는데!’
아직도 ‘브이틱은 5명ㅠ’ 같은 댓글을 달아대는 해외 팬들을 떠올리며, 청려의 팬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쨌든, 보던 무대가 홀릴 듯 좋아서 분노는 금방 가라앉았다.
“휴.”
이런 전형적인 컨셉추얼 신인 아이돌 곡을 하는 청려가 너무 오랜만이라 행복했다.
-We gonna find
그녀의 아이돌이 무대 위에서 거의 날아다닌 뒤, 마지막 후렴은 박문대가 센터를 잠시 차지하며 곡이 끝났다.
“흠.”
능력치 분배를 따지면 청려를 줬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박문대가 제법 인상적이었기에 팬은 불만을 토로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청려 분량이 충분해서 가능한 감상이었다.
“재밌다….”
청려의 팬은 침대에 누워, 올라온 청려의 사진과 움짤들을 저장하며 흡족해했다. 이런 거리감 없는 떡밥이 오랜만이었다.
그리고 슬쩍 박문대의 것도 몇 개 저장했다.
‘뭐, 귀엽잖아.’
‘애들이랑 친한 것 같던데, 테스타 끝나면 LeTi랑 계약하지 않을까’ 따위의 짐작을 하며, 팬은 하루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 비하인드 영상이 올라왔을 때, 박문대에게 동작을 알려주는 청려를 확인하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며 뿌듯해하게 된다.
* * *
-문대야 너 언제 누나 몰래 댄스라인 됐니 역시 아이큐 300 천재 강아지
-최고의 허스키, 추천합니다 (후렴 안무 장면 박문대 GIF 파일)
-박문대의 컨셉 소화력은 실로 독보적이다. 어디에 붙여도 정확한 표현력을 보여줄 줄 아는 퍼포머는 드물다. 그리고 박문대는 분명 그 소수 중 하나일 것이다. (사진)
-야 괜히 시즌3 1등이 아니네 프로그램 전성기 우승자는 때깔이 달라요ㅋㅋㅋㅋ
‘반응 괜찮네.’
나는 첫 공개된 무대의 반응을 모니터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T1에서 밀어주는 신인 그룹의 곡이었기에 ‘왜 하필 후배 곡 골랐냐’ 등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제작진 입김이니까.’
게다가 반대로 ‘티원이 너무 미리내를 밀어준다’는 이야기도 예상보단 많이 나오지 않았다.
‘무대 평이 워낙 좋으니까.’
일단 결과가 좋아서 만족스러우면 세부적인 과정들이야 정당화되는 경향성은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워낙 관계없는 놈들끼리 묶어서 무대를 시켜놓았기 때문에, 은근히 누가 더 잘했다는 기 싸움이 심했다.
물론 보통은 제일 인기 많은 놈이 이긴다, 이런 식으로.
-신청려 얼굴 봐 어딜 봐서 곧 10년차이신지 어제 데뷔라고 해도 믿겠음
-청려는 아직도 갓기다
└그 나이면 아재잖아ㅠ
└느그 돌은 면상이 아재잖아ㅠ 늙은 아이돌이라니… 마음이 안 좋다 화이팅!
-청려야말로 천년돌
‘천 년은 모르겠고, 한 오십 년은 아이돌 해 먹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떨떠름하게 SNS 페이지를 쓱 내렸다.
이번에는… 인정하긴 싫다만, 저 ‘제일 인기 많은 놈’이 무대에서 역할이 제일 크기도 했으니 특별히 코멘트할 건 없다.
‘어쨌든, 성공은 했고.’
국내뿐만 아니라 따로 올라온 위튜브 동영상도 무시무시한 속도로 조회 수가 붙고 있다고 한다.
예능도 띄우고 미리내 인지도도 키우고, 회사에서는 쾌재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도 손해 본 건 없지.’
이 예능의 해외 인지도가 쭉쭉 올라가면서, 초반에 멘토로 조명 잘 받은 테스타 멤버들의 해외 인지도 상승에도 제법 도움이 됐다.
‘이번에 내가 나온 특별 무대도 워낙 반응이 좋았고.’
그리고 다음은 선아현이니까, 웬만하면 이 기세를 이어갈 것이다.
거기 라인업에 영린도 끼어 있었거든.
청려만큼은 아니지만, 해외 인지도가 좋은 사람이니 선아현도 시너지로 득을 볼 것이다.
게다가 둘이 연차도 워낙 차이 나서 쓸데없는 연애설 위험도 없다.
‘혼성그룹 노래였지.’
듣기로는 해외에서 제법 인기 있던 모 인기 기획사의 혼성 유닛 곡을 커버했다고 한다.
투어 중에 즉석 무대에서 한번 해봤어서 나도 안다. 명곡인 데다가 선아현에게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 잘 나올 것이다.
마침 옆에서 내 무대를 모니터링하고 있던 당사자가 영상이 끝났는지 말을 건다.
“무, 문대야. 정말 멋있게 잘했어…!”
“춤 괜찮아?”
“으응! 히, 힘이 좋아!”
오, 확실한가 보군.
“고맙다. 너도 잘 나올 것 같은데.”
“그, 그럴까?”
선아현은 헤헤 웃었다. 아무래도 본인이 생각해도 제법 잘한 모양이지.
‘역시 안 바꾸는 게 정답이었군.’
안 봐도 잘했을 건 같다만, 다음 주에 한번 모니터링은 해야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보던 스마트폰를 껐다.
다만 예상과 달리, 거기까지의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며칠 뒤, 두 번째 특별 무대 예고편이 올라온 후.
선아현과 같이 이 혼성 유닛 곡의 무대를 했던 이름도 모를 새끼의 비밀 계정이 만천하에 털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라인업 중 영린만 고려해서 생각도 안 했던 놈이었는데.’
여기까진 솔직히 우리 알 바는 아니었다. 그놈이 논란 때문에 카메라 분량을 덜 받으면 차라리 이득이 됐으면 모를까.
문제는 어김없이 관심법 쓰는 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여기 이거 선아현 이야기 아니야? (캡처)
-시기 딱 맞지 않나 촬영날 같은데
‘…슬슬 쿨타임 돌아올 때가 되긴 했지.’
해충박멸의 시기가 도래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