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1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0화
류청우는 특별히 무겁지 않은 투로 말을 계속했다.
“처음에 후유증 알았을 때는 관리가 가능할 줄 알았거든. 다들 재활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기도 했고.”
“…….”
“의사도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서 꾸준히 했는데… 별 효과 없더라.”
류청우가 버릇처럼 자신의 한 손을 주먹 쥐었다가 폈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고… 벗어나거나, 복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
“아무튼, 그래서 괜히 회사에 화낸 거야. 누가 다치면 어떻게 될 줄 알고 저러나 싶은데, 음, 또 내가 쓸데없는 짓 하나 싶기도 해서.”
저게 탈력감의 원인이었나.
성과 없던 재활 시절과 겹쳐지니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따위의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럴 만했겠어.’
워낙 업무가 과중하던 놈이니 더 허탈함이 심했을 것이다.
나는 약간 갈등하다가, 음료를 다 비우고서야 대답했다.
“형 쓸데없는 짓 하신 적 없는데요.”
“그래?”
“예. 다들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저도 그렇고.”
“…! 그래? 하하, 내가 뭐 특별히 너한테 해준 건 없는 것 같은데.”
아니, 넌 내가 X 같이 굴었을 때 같이 화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인성이다.
그때 상황이 더 악화되었으면… 지금쯤 상태이상 걸려서 돌연사했을 수도 있겠군.
“아, 설마 그때? 음, 아냐. 너 정도면 양호하지. 그때도 말했잖아. 나도 회복 불가로 확정 났을 때 그랬다니까.”
류청우는 피식피식 웃었다.
“진짜 장난 아니었어. 의사한테 화내고… 선발전 날에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창피하네.”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누가 봐도 물어볼 타이밍이니 말은 해주자.
“뭘 하셨는데요.”
“활을 부러뜨렸어.”
“…!!”
와 이 새끼… 성질은 보통이 아니군.
보통 양궁용 활이 부러지는 물건이 아닐 텐데, 정말 어지간히 지랄하긴 했나 보다.
물론 그렇다고 느낀 대로 대답하는 건 바보짓이고.
“뭐, 사람 안 쳤으니 된 거죠.”
“그런가? 하하! 그래, 뭐 연습용 하나 부러트린 거니까.”
류청우는 한결 시원한 얼굴로 웃었다.
이런 걸로 시원해하는 게 괜찮은지 모르겠다만… 내버려 두자.
그래도 정신 차렸는지 사회성 넘치는 말을 덧붙인다.
“아, 미안하다. 네가 듣긴 좀 불편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는데….”
괜히 류청우에게 지랄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만들지 않냐는 뜻 같군.
“괜찮습니다. 이젠 별로 신경 안 써서. 저야말로 죄송했습니다.”
“괜찮다니까.”
걱정은 더 큰 걱정으로 잡으라고 했던가.
맛 간 상태창을 본 뒤로는 이미 지나간 ‘진실’ 확인 정도야 삼삼하다.
그러나 류청우는 자신의 페트병을 만지작거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온 것처럼 툭 말을 던졌다.
“음, 문대야.”
“예.”
“사실, 내가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게 있는데….”
“…? 예.”
류청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기억은 괜찮아?”
“…!!”
“아무래도 그쪽 관련해서는 전문가를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과거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서서히 떠오르는 중이다’라는 설정을 쓰고 있다는 것도 거의 까먹고 있었다.
워낙 사건이 많아야 말이지.
‘…이렇게 보니 무슨 막장드라마 설정 놀음이 따로 없군.’
어쨌든, 전에 아무렇게나 뱉었던 변명이 갑자기 훅 치고 올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리를 줄줄 뱉었다.
“네가 부모님 뵈러 간 적도 없고, 사진을 보거나…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던 것 같아서.”
“…….”
“우리 숙소 생활도 벌써 1년 반이 넘었는데, 무심코라도 들었을 만하잖아.”
“…음.”
나는 빠르게 뇌를 굴렸다.
“가족에 관련된 기억이 거의 없긴 합니다. 특별히 급하게 꼭 찾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구나.”
“예. 그냥 전 지금에 만족합니다.”
“음, 그래.”
류청우가 페트병을 구겨서 깔끔히 정리하더니, 길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맞아. 나도 지금이 좋다.”
나는 류청우가 본인 입으로 반박하는 그림을 그리며 물었다.
“지치신다면서요?”
“무슨 일이든 안 지칠 수는 없는 것 같아. 잘 관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
그래. 그 말이 맞다.
“솔직히 나올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상상보다 훨씬 잘돼서 감사한 일이야.”
“그렇긴 하죠.”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테스타의 행보가 놀라운 성공이긴 했다.
물론, 난 가 잘될 줄 알고 있긴 했다만.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려고.”
“…….”
거참. 사고방식 한번 건강하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일은 이 며칠처럼 원래 아이돌이 해야 할 일만 하시죠. 회사가 할 일까지 해줄 필요도 없고요.”
“하하, 뭐… 기왕 리더 맡았으니까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
그 순간, 저편에서 마침내 최고점을 갱신한 차유진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WOOOOOW!!”
“조용히 해 바보야! 벌써 심야에 가까운 시간인데 소음 공해를….”
“소음 아니야! 여기 우리만 있어!”
“건물 근처 거주자분이….”
“없어!”
“있어!”
나는 얼결에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솔직히 저놈들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리더 역할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으음.”
부정 못 하는군.
“그냥 그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면 매니저 형이 월급 받는 이유를 잊어버리시겠는데요.”
갑질하는 연예인처럼 한마디 덧붙이자 류청우가 빵 터졌다.
“하하! 그래, 알았어.”
그리고 주먹 쥔 손을 옆으로 슬쩍 내밀었다.
“우리 앞으로도 잘해보자.”
“예.”
주먹을 가볍게 손등으로 부딪쳤다.
좀 오그라들긴 하지만, 뽕맛이 있긴 하다.
“저희 정리 끝났습니다~”
“넵! 테스타 차로 이동할게요!”
그날 류청우는 적당히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은 채로 숙소에 귀가했다.
“유진아, 들어가 자라. 내일 음방이야.”
“네!”
차유진까지 감격해서 말을 잘 듣더라.
멤버들은 하나같이 ‘사격장은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써놓은 얼굴로 엄지를 치켜드는 등의 행동을 하며 자축했다.
“역시 문대야. 티벳여우라 모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그 눈이 그냥…….”
“자라.”
그리고 다들 짧은 시간이나마 푹 잘 잤다는 이야기다.
최고는 다음 날 나왔다.
류청우의 분위기가 확 풀어진 것을 감지한 첫 매니저가 바로 발을 뻗었기 때문이다.
“청우야, 뭐 따로 전달사항 있는 애들 없어?”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글쎄요?”
“…!?”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멤버들한테 직접 물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끝이었다.
류청우는 기지개를 켜며 차에 올라탔고, 매니저는 한 대 맞은 얼굴로 주춤주춤 따라 탔다.
치프 매니저한테 깨진 게 바로 며칠 전이니 괜히 류청우에게 볼멘소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걸로 됐나.’
일 잘하는 놈 구하기까지 시간은 벌 수 있겠다.
그리고 간만에 열어본 인터넷에서는 류청우가 사람 때렸다는 개소리는 싹 들어가고 대신 사격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전환되어 있었다.
-역시 태릉이 키운 남돌
-이게 되냐
-양궁 국대들은 역시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와 씨 사격도 이렇게 하는데 진짜 양궁 그만둘 때 피눈물 났겠다;
-새 진로를 아이돌로 잡아줘서 감읍할 따름
“오오~ 청우 형 사격 멋지다고 난리네요!”
고개를 빼서 화면을 훔쳐본 큰세진이 일부러 류청우를 추켜세웠다. 류청우가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그냥 재미 삼아 했던 건데 뭐.”
“아닙니다! 어제 사격을 지켜보며 당연히 청우 형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만, 역시군요.”
“괴, 굉장히 멋있었어요…!”
류청우의 분위기가 풀어진 것에 안도한 놈들이 칭찬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그리고 큰세진은 반응 중 몇몇 댓글에 주목한 모양이다. 질문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형님은 어쩌다 아이돌을 진로 잡으셨습니까~?”
“아, 나?”
류청우가 애매하게 웃었다.
“음, 사실 부모님이 추천하셨어.”
“우와!”
“부모님이요?”
“응, 그분들 보시기엔 어릴 때부터 춤이나 노래를 괜찮게 했다고 자꾸 그러시니까… 그냥 취미 겸 시작했어.”
양궁 그만두고 집에 처박혀 우울했을 놈을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부추긴 게 새 진로가 된 모양이다.
“너희는? 특히 유진이는 어쩌다 아이돌 하게 된 건지 궁금한데.”
“모르는 사람이 말 걸었어요!”
“공모전에 제출했던 비트가 채택되어 서울에 올라가자 계약서가….”
차 안의 화제는 어느새 ‘왜 아이돌을 하게 되었는가’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한테까지 질문이 돌아왔다.
“그러면 문대는?”
나?
이건 솔직히 대답해도 상관은 없다만… 좀 민망하긴 하군.
“…노래방에서, 작가님한테 캐스팅당해서요.”
“진짜??”
“와, 그거 썰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구나~!”
차 안이 잠시 시끄러워졌다. ‘박문대는 대체 얼마나 재능충인 것이냐’가 주제인 것 같다.
“그럼 문대는 지망생도 아니고 그냥 생일반인으로 시작해서 저렇게까지 된 거네?”
“재, 재능이 굉장한 것 같아…! 무, 물론 문대는 열심히 노력도 했고!”
“…대단하네.”
“음, 감사합니다.”
상태창 이야기 꺼냈다가는 몰매라도 맞을 것 같다.
어쨌든, 처음 이 몸에 들어왔던 그 순간을 떠올리니 어쩐지 감회가 새롭군.
사실 상태창이 주는 스탯 증가나 특성 뽑기가 없었다면, 그걸 기초로 이만큼 직업군에 맞게 성장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상태이상 못 해제하면 뒈지는 것만 없었어도 꽤 보람찬 몇 년이었을 텐데.’
…아니, 정정하겠다.
상태이상을 포함해도 제법 보람찼다.
내가 남의 몸으로 과거에 돌아온 이 몇 년이 너무 밀도가 높아서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까닥하면 시한부 선고니 살려고 기를 써서 그런가.’
음, 제법 설득력이 있다.
“…그럼 넌 꼭 이걸 하려던 건 아니었던 거네. 괜찮아?”
“예?”
“활동… 괜찮냐고.”
배세진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예. 재밌네요.”
“그렇지~”
“후, 후회 없지?”
나는 씩 웃었다.
“없어.”
“오오~”
멤버들이 요란하게 호응하며 박수를 쳤다.
김래빈은 슬그머니 음원까지 재생시켰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와서 마법소년 EDM 버전을 만들….”
“가자!”
그리고 차 안은 열정적인 아이돌 뽕으로 찬 놈들이 고개를 까닥거리는 꼴로 가득 찼다.
‘가관이다.’
나는 의리상 그룹 SNS에 해당 장면은 올리지 않기로 해줬다.
* * *
이후 국내에서의 활동은 다른 잡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테스타 스탠바이!”
2주 차 음악방송 사전녹화도 깔끔히 진행되었고, 컴백 전주와 첫 주에 촬영한 예능들은 하나둘 전파를 탔다.
그리고 물론 스케줄이 전부 음악방송과 예능만으로 채워져 있던 것은 아니다.
“여기 보시고~ 턱은 조금 더 들고!”
행사도 몇 번 뛰었으나, 1군에 올라간 관계로 이동 거리가 멀어 비효율적인 행사보다는 더 단가가 좋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로 광고다.
“옷깃 한번 만져주세요!”
데뷔 때부터 꾸준히 광고를 찍긴 했지만, 요새는 아예 규모가 달라졌다.
쏟아지는 광고 요청 속에서 소속사는 알짜배기를 제법 잘 골라왔는데, 이미지 소비가 심하지 않고 단가 센 걸 용케 잡아 온다고 생각했다.
‘그놈의 인공지능 큐리어스 같은 무리수도 없고.’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회사 이득도 알차게 챙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모기업인 T1이 아니라, 소속사인 T1 스타즈의 이득 말이다.
당장 오늘 촬영하는 광고를 보자.
“헉,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같은 소속사의 후배 아이돌, ‘미리내’를 스마트폰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오.’
소속사의 이름값에 대한 야망이 느껴지는 묶어팔기였다.
그리고 그건 이용해 볼 여지가 충분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10화
류청우는 특별히 무겁지 않은 투로 말을 계속했다.
“처음에 후유증 알았을 때는 관리가 가능할 줄 알았거든. 다들 재활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기도 했고.”
“…….”
“의사도 가능성이 보인다고 해서 꾸준히 했는데… 별 효과 없더라.”
류청우가 버릇처럼 자신의 한 손을 주먹 쥐었다가 폈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이고… 벗어나거나, 복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지….”
“…….”
“아무튼, 그래서 괜히 회사에 화낸 거야. 누가 다치면 어떻게 될 줄 알고 저러나 싶은데, 음, 또 내가 쓸데없는 짓 하나 싶기도 해서.”
저게 탈력감의 원인이었나.
성과 없던 재활 시절과 겹쳐지니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따위의 생각이 들었나 보다.
‘…그럴 만했겠어.’
워낙 업무가 과중하던 놈이니 더 허탈함이 심했을 것이다.
나는 약간 갈등하다가, 음료를 다 비우고서야 대답했다.
“형 쓸데없는 짓 하신 적 없는데요.”
“그래?”
“예. 다들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저도 그렇고.”
“…! 그래? 하하, 내가 뭐 특별히 너한테 해준 건 없는 것 같은데.”
아니, 넌 내가 X 같이 굴었을 때 같이 화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놀라운 인성이다.
그때 상황이 더 악화되었으면… 지금쯤 상태이상 걸려서 돌연사했을 수도 있겠군.
“아, 설마 그때? 음, 아냐. 너 정도면 양호하지. 그때도 말했잖아. 나도 회복 불가로 확정 났을 때 그랬다니까.”
류청우는 피식피식 웃었다.
“진짜 장난 아니었어. 의사한테 화내고… 선발전 날에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창피하네.”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누가 봐도 물어볼 타이밍이니 말은 해주자.
“뭘 하셨는데요.”
“활을 부러뜨렸어.”
“…!!”
와 이 새끼… 성질은 보통이 아니군.
보통 양궁용 활이 부러지는 물건이 아닐 텐데, 정말 어지간히 지랄하긴 했나 보다.
물론 그렇다고 느낀 대로 대답하는 건 바보짓이고.
“뭐, 사람 안 쳤으니 된 거죠.”
“그런가? 하하! 그래, 뭐 연습용 하나 부러트린 거니까.”
류청우는 한결 시원한 얼굴로 웃었다.
이런 걸로 시원해하는 게 괜찮은지 모르겠다만… 내버려 두자.
그래도 정신 차렸는지 사회성 넘치는 말을 덧붙인다.
“아, 미안하다. 네가 듣긴 좀 불편한 이야기였을 수도 있겠는데….”
괜히 류청우에게 지랄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만들지 않냐는 뜻 같군.
“괜찮습니다. 이젠 별로 신경 안 써서. 저야말로 죄송했습니다.”
“괜찮다니까.”
걱정은 더 큰 걱정으로 잡으라고 했던가.
맛 간 상태창을 본 뒤로는 이미 지나간 ‘진실’ 확인 정도야 삼삼하다.
그러나 류청우는 자신의 페트병을 만지작거리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온 것처럼 툭 말을 던졌다.
“음, 문대야.”
“예.”
“사실, 내가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게 있는데….”
“…? 예.”
류청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너 기억은 괜찮아?”
“…!!”
“아무래도 그쪽 관련해서는 전문가를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과거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서서히 떠오르는 중이다’라는 설정을 쓰고 있다는 것도 거의 까먹고 있었다.
워낙 사건이 많아야 말이지.
‘…이렇게 보니 무슨 막장드라마 설정 놀음이 따로 없군.’
어쨌든, 전에 아무렇게나 뱉었던 변명이 갑자기 훅 치고 올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리를 줄줄 뱉었다.
“네가 부모님 뵈러 간 적도 없고, 사진을 보거나… 이야기를 꺼낸 적도 없던 것 같아서.”
“…….”
“우리 숙소 생활도 벌써 1년 반이 넘었는데, 무심코라도 들었을 만하잖아.”
“…음.”
나는 빠르게 뇌를 굴렸다.
“가족에 관련된 기억이 거의 없긴 합니다. 특별히 급하게 꼭 찾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구나.”
“예. 그냥 전 지금에 만족합니다.”
“음, 그래.”
류청우가 페트병을 구겨서 깔끔히 정리하더니, 길게 숨을 들이켰다 내쉬었다.
“맞아. 나도 지금이 좋다.”
나는 류청우가 본인 입으로 반박하는 그림을 그리며 물었다.
“지치신다면서요?”
“무슨 일이든 안 지칠 수는 없는 것 같아. 잘 관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지.”
그래. 그 말이 맞다.
“솔직히 나올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는데, 상상보다 훨씬 잘돼서 감사한 일이야.”
“그렇긴 하죠.”
스트레스와는 별개로 테스타의 행보가 놀라운 성공이긴 했다.
물론, 난 가 잘될 줄 알고 있긴 했다만.
“익숙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려고.”
“…….”
거참. 사고방식 한번 건강하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일은 이 며칠처럼 원래 아이돌이 해야 할 일만 하시죠. 회사가 할 일까지 해줄 필요도 없고요.”
“하하, 뭐… 기왕 리더 맡았으니까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
그 순간, 저편에서 마침내 최고점을 갱신한 차유진이 함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WOOOOOW!!”
“조용히 해 바보야! 벌써 심야에 가까운 시간인데 소음 공해를….”
“소음 아니야! 여기 우리만 있어!”
“건물 근처 거주자분이….”
“없어!”
“있어!”
나는 얼결에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솔직히 저놈들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리더 역할 하고 계신 것 같은데.”
“으음.”
부정 못 하는군.
“그냥 그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대로면 매니저 형이 월급 받는 이유를 잊어버리시겠는데요.”
갑질하는 연예인처럼 한마디 덧붙이자 류청우가 빵 터졌다.
“하하! 그래, 알았어.”
그리고 주먹 쥔 손을 옆으로 슬쩍 내밀었다.
“우리 앞으로도 잘해보자.”
“예.”
주먹을 가볍게 손등으로 부딪쳤다.
좀 오그라들긴 하지만, 뽕맛이 있긴 하다.
“저희 정리 끝났습니다~”
“넵! 테스타 차로 이동할게요!”
그날 류청우는 적당히 평상시의 모습을 되찾은 채로 숙소에 귀가했다.
“유진아, 들어가 자라. 내일 음방이야.”
“네!”
차유진까지 감격해서 말을 잘 듣더라.
멤버들은 하나같이 ‘사격장은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써놓은 얼굴로 엄지를 치켜드는 등의 행동을 하며 자축했다.
“역시 문대야. 티벳여우라 모든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그 눈이 그냥…….”
“자라.”
그리고 다들 짧은 시간이나마 푹 잘 잤다는 이야기다.
최고는 다음 날 나왔다.
류청우의 분위기가 확 풀어진 것을 감지한 첫 매니저가 바로 발을 뻗었기 때문이다.
“청우야, 뭐 따로 전달사항 있는 애들 없어?”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글쎄요?”
“…!?”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멤버들한테 직접 물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끝이었다.
류청우는 기지개를 켜며 차에 올라탔고, 매니저는 한 대 맞은 얼굴로 주춤주춤 따라 탔다.
치프 매니저한테 깨진 게 바로 며칠 전이니 괜히 류청우에게 볼멘소리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걸로 됐나.’
일 잘하는 놈 구하기까지 시간은 벌 수 있겠다.
그리고 간만에 열어본 인터넷에서는 류청우가 사람 때렸다는 개소리는 싹 들어가고 대신 사격하는 장면으로 화제가 전환되어 있었다.
-역시 태릉이 키운 남돌
-이게 되냐
-양궁 국대들은 역시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와 씨 사격도 이렇게 하는데 진짜 양궁 그만둘 때 피눈물 났겠다;
-새 진로를 아이돌로 잡아줘서 감읍할 따름
“오오~ 청우 형 사격 멋지다고 난리네요!”
고개를 빼서 화면을 훔쳐본 큰세진이 일부러 류청우를 추켜세웠다. 류청우가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그냥 재미 삼아 했던 건데 뭐.”
“아닙니다! 어제 사격을 지켜보며 당연히 청우 형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 예상했습니다만, 역시군요.”
“괴, 굉장히 멋있었어요…!”
류청우의 분위기가 풀어진 것에 안도한 놈들이 칭찬을 폭포수처럼 쏟아낸다.
그리고 큰세진은 반응 중 몇몇 댓글에 주목한 모양이다. 질문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형님은 어쩌다 아이돌을 진로 잡으셨습니까~?”
“아, 나?”
류청우가 애매하게 웃었다.
“음, 사실 부모님이 추천하셨어.”
“우와!”
“부모님이요?”
“응, 그분들 보시기엔 어릴 때부터 춤이나 노래를 괜찮게 했다고 자꾸 그러시니까… 그냥 취미 겸 시작했어.”
양궁 그만두고 집에 처박혀 우울했을 놈을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부추긴 게 새 진로가 된 모양이다.
“너희는? 특히 유진이는 어쩌다 아이돌 하게 된 건지 궁금한데.”
“모르는 사람이 말 걸었어요!”
“공모전에 제출했던 비트가 채택되어 서울에 올라가자 계약서가….”
차 안의 화제는 어느새 ‘왜 아이돌을 하게 되었는가’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나한테까지 질문이 돌아왔다.
“그러면 문대는?”
나?
이건 솔직히 대답해도 상관은 없다만… 좀 민망하긴 하군.
“…노래방에서, 작가님한테 캐스팅당해서요.”
“진짜??”
“와, 그거 썰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구나~!”
차 안이 잠시 시끄러워졌다. ‘박문대는 대체 얼마나 재능충인 것이냐’가 주제인 것 같다.
“그럼 문대는 지망생도 아니고 그냥 생일반인으로 시작해서 저렇게까지 된 거네?”
“재, 재능이 굉장한 것 같아…! 무, 물론 문대는 열심히 노력도 했고!”
“…대단하네.”
“음, 감사합니다.”
상태창 이야기 꺼냈다가는 몰매라도 맞을 것 같다.
어쨌든, 처음 이 몸에 들어왔던 그 순간을 떠올리니 어쩐지 감회가 새롭군.
사실 상태창이 주는 스탯 증가나 특성 뽑기가 없었다면, 그걸 기초로 이만큼 직업군에 맞게 성장하지 못했을 테니까 말이다.
‘상태이상 못 해제하면 뒈지는 것만 없었어도 꽤 보람찬 몇 년이었을 텐데.’
…아니, 정정하겠다.
상태이상을 포함해도 제법 보람찼다.
내가 남의 몸으로 과거에 돌아온 이 몇 년이 너무 밀도가 높아서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까닥하면 시한부 선고니 살려고 기를 써서 그런가.’
음, 제법 설득력이 있다.
“…그럼 넌 꼭 이걸 하려던 건 아니었던 거네. 괜찮아?”
“예?”
“활동… 괜찮냐고.”
배세진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고민 없이 대답했다.
“예. 재밌네요.”
“그렇지~”
“후, 후회 없지?”
나는 씩 웃었다.
“없어.”
“오오~”
멤버들이 요란하게 호응하며 박수를 쳤다.
김래빈은 슬그머니 음원까지 재생시켰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 갑자기 영감이 와서 마법소년 EDM 버전을 만들….”
“가자!”
그리고 차 안은 열정적인 아이돌 뽕으로 찬 놈들이 고개를 까닥거리는 꼴로 가득 찼다.
‘가관이다.’
나는 의리상 그룹 SNS에 해당 장면은 올리지 않기로 해줬다.
* * *
이후 국내에서의 활동은 다른 잡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테스타 스탠바이!”
2주 차 음악방송 사전녹화도 깔끔히 진행되었고, 컴백 전주와 첫 주에 촬영한 예능들은 하나둘 전파를 탔다.
그리고 물론 스케줄이 전부 음악방송과 예능만으로 채워져 있던 것은 아니다.
“여기 보시고~ 턱은 조금 더 들고!”
행사도 몇 번 뛰었으나, 1군에 올라간 관계로 이동 거리가 멀어 비효율적인 행사보다는 더 단가가 좋은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로 광고다.
“옷깃 한번 만져주세요!”
데뷔 때부터 꾸준히 광고를 찍긴 했지만, 요새는 아예 규모가 달라졌다.
쏟아지는 광고 요청 속에서 소속사는 알짜배기를 제법 잘 골라왔는데, 이미지 소비가 심하지 않고 단가 센 걸 용케 잡아 온다고 생각했다.
‘그놈의 인공지능 큐리어스 같은 무리수도 없고.’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회사 이득도 알차게 챙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모기업인 T1이 아니라, 소속사인 T1 스타즈의 이득 말이다.
당장 오늘 촬영하는 광고를 보자.
“헉,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같은 소속사의 후배 아이돌, ‘미리내’를 스마트폰 광고 촬영 현장에서 만났다.
‘오.’
소속사의 이름값에 대한 야망이 느껴지는 묶어팔기였다.
그리고 그건 이용해 볼 여지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