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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209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09화
차 안은 냉동창고가 따로 없었다.
온도가 아니라, 분위기가.
‘X 됐네.’
류청우가 특별히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부당하게 굴지 않았으나, 절대 평상시 같은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 전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자.
-형 저 과자 또 먹어요! 많이 먹어요!
-그래.
끝이었다.
류청우는 아무 제스처 없이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손에 쥔 스트레스 볼만 움직였다.
그 후로 아무도 류청우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중이다.
내일 새벽부터는 촬영이 있지만, 간만에 숙소에 저녁 식사 전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 분명 기분 좋을 놈들이 눈치껏 입을 다물고 있다.
나? 나야 원래 떠드는 놈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스마트폰으로 여론이나 보는 중이다.
‘대충 정리는 다 됐군.’
[류청우 다른 각도 직캠]
[류청우 때린 거 아님XXX]
해명이 다 퍼지고 나니 그제야 ‘그러면 그렇지’ 같은 말이 나오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래도 부득불 ‘깬다’고 주장하는 놈들은 튀어나오지만… 이건 어쩔 수 없고.
애당초 류청우 상태가 저 모양이 된 건 꼭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 테니까.
참고로 이 분위기는 숙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들어간다.”
“네!”
식사를 마치자마자 류청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취침해 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탁.
문이 닫히고 류청우가 사라지자마자 여기저기서 걱정의 한숨을 쉬거나 쓴웃음 짓는 놈들이 속출했다.
배세진이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쟤가 화날 만했어.”
“맞아요!”
“처, 청우 형 많이 기분 상하셨을까요? 메, 멤버들이 다치지 않게, 좋은 일 하신 건데….”
선아현이 걱정스럽게 외쳤다.
그래봤자 자러 들어간 류청우 때문에 다들 목소리를 있는 대로 낮춘 상태지만.
“음, 회사 입장에서는 알아서 그냥 피하지 왜 굳이 밀쳤을까, 이거 아닐까? 말 나오니까 많이 부담스러우셨나 봐~”
큰세진이 안타까운 척 빈정거렸다. 넌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내 밥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가며 말했다.
“청우 형이 그동안 회사에 지나치게 잘해줬지.”
지랄맞게 굴었으면 아마 얌전히 ‘죄송하다’만 반복했을 텐데, 성격이 좋고 책임감 있는 놈이 잘 받아주니 선을 넘은 것이다.
“그냥 이 기회에 청우 형 좀 쉬게 두는 게 어때. 필요한 거나 이상 있으면 회사에 바로 이야기하고.”
대부분 공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합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래!”
배세진은 류청우가 빠지면 본인이 최연장자라는 것을 대단히 의식하는 표정이다. 괜한 체력 소모라고 말해주고 싶군.
“쉬, 쉬고 나면, 괜찮아지시지 않을까…?”
“맞습니다. 원래 휴식을 취하면서 기력을 회복하는 법입니다. 이번 활동기 동안 청우 형을 많이 보조해야겠습니다.”
“그래.”
“자, 우리도 얼른 들어갑시다~”
짧은 토의는 ‘앞으로 류청우에게 부담 주지 말자’로 결론이 났다.
상식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팀워크이긴 했으나, 사실 근본 원인을 제거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가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동안 류청우가 하던 일을 매니저 중 누구도 깔끔히 해낼 거란 기대가 안 든다.
치프 매니저는 로드 따리나 하는 일을 왜 자신에게 말하는지 당혹스러워하며 첫 매니저에게 넘길 테고, 그놈이야 뭐… 뻔하다.
분명 어느 순간 류청우에게 또 슬쩍 떠넘길 각을 볼 텐데, 그때 잘못하면 진짜 지뢰 터진다.
‘류청우가 빡쳐서 한 대 갈기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그러니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 매니저를 갈아치우든, 정신 차리게 만들든.
‘류청우 멘탈이 얼마나 회복되는 지도 체크해야겠고.’
활동하다가 혹시라도 커다란 돌발 사고가 나면 곤란했다. 40만 명 동원 상태이상은 잘 살아 있으니까.
그러니 일단… 내일 류청우 상태부터 유심히 봐두자. 괜찮아 보이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잠들었으나, 다음 날 굳이 결론까지 내릴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오늘 예능 촬영 전에 샵 들릴 건데, 혹시 따로 전달사항 있어?”
“아뇨.”
류청우 상태는 어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 매니저 면상을 무슨 물건 보는 눈으로 보고 지나쳤다.
‘무서워요!’
‘조용.’
이놈은 목소리를 낮춰도 볼륨이 이러냐.
나는 남의 귀에 대고 외치는 차유진을 떼어내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일부러 류청우와 가까이 앉았다.
‘간 좀 보자.’
류청우는 특별히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답변을 X같이 하진 않았다. 워낙 평소에 서글서글했기 때문에 대조적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 평상시 나랑 별다를 게 없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생각하니 좀 떨떠름하군.
어쨌든, 나는 기회를 봐서 내릴 때쯤 자연스럽게 류청우에게 말을 걸었다.
“음료 살 건데, 형은 뭐 드실래요.”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만, 뭐 알겠다.
“COKE! COKE!”
나는 강력하게 탄산음료를 주장하는 차유진의 지지만 받았다.
그리고 팀원 놈들의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따위의 시선도 받긴 했으나… 뭐, 애초에 이건 도전도 아니다. 빌드업일 뿐이지.
그리고 다음 날.
“청우 형.”
나는 가타부타 말없이 놈에게 생과일주스를 내밀었다.
“괜찮아.”
“포도당 공급한다고 생각하시죠. 저희 3시간도 못 잤으니까요.”
“…….”
류청우는 언쟁할 기력도 없는지 그냥 음료를 들어서 마셨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 너무 단데.”
그럴 것이다. 설탕과 시럽을 있는 대로 많이 넣어달라고 했거든.
차유진에게 당시 썼던 슈가하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써봤다. 단순하고 자극적이라 허들이 낮지.
“그래서 맛있던데요.”
“…음.”
류청우는 결국 음료를 다 비웠다.
아마 뭐라 더 말하기도 귀찮고, 식이를 조절할 자제력을 굳이 발휘할 의욕도 없는 모양이다.
다만, 마시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니 노림수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나는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컨디션 어떠세요. 전 이번에 유독 좀 피곤한 것 같은데.”
“그래. 좀… 피로회복이 덜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렇죠.”
역시 번아웃 탈력감 때문이었나.
류청우에게서 요 며칠 중에 처음으로 말이 술술 나온다. 설탕의 위력인지 기력이 순간 올라온 것 같다.
“그래도 확실히 액상과당이 효과가 있나 봅니다! 활력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음, 그러게.”
김래빈이 참지 못하고 안도한 얼굴로 끼어들어도 평소처럼 온화한 반응이 나왔다.
예상보다도 효과가 좋은데?
나는 턱을 만졌다.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를 신체 작용으로 풀어야 하는 타입 같군.’
단순히 쉬는 게 아니라, 몸이 좋은 자극을 받아서 개운해지면 머리도 깨끗해지는 타입 같다.
“흠.”
귀찮지만, 별수 없지.
‘류청우에게는 빚이 있기도 하고.’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장소를 하나 검색했다.
* * *
다음 날 오후에는 추억의 히트곡 가사를 틀리면 풀장에 자동 다이빙되는 주말 예능을 잘 촬영했다.
몸 안 사리고 입수했다는 뜻이다.
“우악!”
“너 내가 가만 안 둔다!”
“아니, 우리 테스타 불러놓고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MC통통!”
결국 누구 하나 거를 것 없이 물에 쫄딱 젖은 꼴이 되어 타올과 드라이기 세례를 받은 후에야 겨우 차에 올라탔다.
녹초가 따로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서 반신욕이라도 하고 싶군…….’
하지만 직후에도 스케줄이 있었다.
고정된 스케줄이 아니라 임의로 텀을 정해 잡은 거라 비교적 자유롭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W라이브다.
그나마 빈 시간에 욱여넣은 거라 너무 피곤하면 분량과 컨텐츠를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일정.
그러나 이번에는 숙소에서 편하게 진행하는 대신 각 잡고 찍자고 멤버들과 합의했다.
물론, 류청우 빼고.
“한 시간 뒤죠?”
“넵, 이동하겠습니다~”
테스타는 사전에 섭외한 장소로 이동하며 짧게 눈을 붙였다.
평소라면 어디로 가냐고 확인했을 류청우도 마찬가지로 말없이 잠이나 잤다.
그래서 놈은 잠시 후 도착한 촬영장에서 더 당황하게 된다.
“여긴….”
멤버들은 놀란 류청우를 둘러싸고 히죽히죽 웃으며 팔 벌려 장소를 소개했다.
“오늘의 W라이브 장소, 사격장입니다~”
“짠짠짠!”
“…!!”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규모 설비의 에어건 사격장.
바로 내가 전날에 검색한 장소다.
“형 사격 재밌어하시는 것 같았는데, 요새 저희가 그렇게 본격적인 취미 활동할 시간이 없잖아요~ 이렇게라도 즐기셨으면 해서!”
“즐겨요! 놀아요!”
“…….”
류청우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 안면에 은은히 감동한 것 같은 기색이 역력해졌다.
“…고맙다, 얘들아. 재밌겠네.”
“히히.”
좀 감격한 것 같군.
예상대로 잘 통했나 보다.
며칠 동안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배려심이 드디어 류청우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많이 피곤할 텐데, 괜찮겠어? 이 밤에 이렇게 활동량 많은 걸 또 하긴 힘들 텐데….”
배세진이 시선을 피했다.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 보니까 재밌어 보여서 찬성한 거야. 다들 해보고 싶었던 거니까 오해하진 마.”
“마, 맞아요. 재밌을 것 같아요…!”
“하하, 그래. 알았어.”
“흠, 흠.”
좋은 생각이라며 흥분해서 제일 먼저 동의했던 놈치고는 제법 이성적인 척 말하는군.
“그럼 저희 둘씩 짝지어서~ 류청우를 이겨라! 이 주제로 W라이브 가시죠!”
“봐주는 거 안 돼요! No mercy!! 저 이겨요!”
류청우가 간 만에 씩 웃었다.
“괜찮겠어? 3명이 한팀 해도 돼.”
“와, 형 우리 너무 무시하신다.”
참고로 무시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직시였다는 것이 단 한 시간 만에 드러난다.
“으억!”
일단 배세진과 김래빈 팀이 류청우와 더블스코어가 벌어지며 침몰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아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못 본 척 해주자
-ㅋㅋㅋㅋ귀여웤ㅋㅋㅋㅋㅋ
다른 팀 구경하면서 확인한 실시간 댓글은 이꼴이었다.
그리고 류청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펄펄 날아다녔다.
“헐.”
“…저게 되네.”
미필 일반인들 사이에서 전 양궁 금메달리스트가 날뛰는 광경은 팬들에게 두고두고 웃음 소재로 남을 것 같다….
“청우 형께서는 뮤직비디오에서 한번 총기를 사용해 보셨기 때문에 다소 어드벤티지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주셔야 합니다!”
“…그건 머스킷이고 이건 라이플이라 종류가 다르다는데.”
“헉.”
“머, 머스킷이 개량을 거쳐서 라이플이란 총기가 탄생했다고, 직원분이 그러셨어…!”
“역시! 이건 절대 배세진 형과 저의 패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전한 결과….”
“오~ 또 더블스코어!”
“세상에.”
이런 만담 같은 소리가 이어지든 말든, 나는 묵묵히 총이나 쐈다.
타탕!
류청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선아현과 내가 가장 류청우 점수를 많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오 여긴 좀 멋있는데?ㅋㅋㅋ
-좀 치네
-테스타 군대 언제가? 빨리 좀 가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분위기 봐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군대 어그로가 좀 끼긴 했지만, 어쨌든 W라이브도 폭소와 스릴을 동시에 잡으며 제법 성공적으로 끝났다.
“또 만나요~”
“자주 오겠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인 클로징 멘트를 마지막으로 관계자를 비롯한 모두가 도로 녹초 상태로 돌아갔다.
“하.”
“후회는 없다….”
“재밌어요! 저 한 번 더 해요!”
아, 차유진 빼고.
어쨌든 스탭들이 현장을 정리하는 막간에, 아이돌들에게는 잠시 여유시간이 주어졌다.
류청우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이거 좀 마셔.”
“감사합니다.”
사격도 즐기고 경쟁도 이겨서 그런지 좀 상태가 좋아진 놈은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를 인원수대로 사 왔다.
그리고 캔을 받아가는 내 옆에 서더니, 넌지시 말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현이가 그러는데 문대 네가 여기 오자고 말 꺼냈다며.”
그걸 또 굳이 말한 놈이 있었군.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류청우가 간결히 말을 끝마쳤다.
“고마워. …훨씬 낫다.”
“…….”
나는 놈이 내민 음료를 땄다. 탄산이 올라오는 소리가 시원했다.
“속은 좀 시원하신가요.”
“그래.”
그럼 됐다.
나는 말없이 제로 칼로리 음료를 들이켰다. 류청우는 자신의 페트병을 열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별일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지치더라고.”
“…….”
“양궁 그만둘 때가 생각나서 그런가.”
이런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내 생각보다 액티비티 약발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09화

차 안은 냉동창고가 따로 없었다.

온도가 아니라, 분위기가.

‘X 됐네.’

류청우가 특별히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부당하게 굴지 않았으나, 절대 평상시 같은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 전 음악방송 대기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자.

-형 저 과자 또 먹어요! 많이 먹어요!

-그래.

끝이었다.

류청우는 아무 제스처 없이 그대로 소파에 앉아서 손에 쥔 스트레스 볼만 움직였다.

그 후로 아무도 류청우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중이다.

내일 새벽부터는 촬영이 있지만, 간만에 숙소에 저녁 식사 전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라 분명 기분 좋을 놈들이 눈치껏 입을 다물고 있다.

나? 나야 원래 떠드는 놈도 아니지 않은가. 그냥 스마트폰으로 여론이나 보는 중이다.

‘대충 정리는 다 됐군.’

해명이 다 퍼지고 나니 그제야 ‘그러면 그렇지’ 같은 말이 나오며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래도 부득불 ‘깬다’고 주장하는 놈들은 튀어나오지만… 이건 어쩔 수 없고.

애당초 류청우 상태가 저 모양이 된 건 꼭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되었기 때문은 아닐 테니까.

참고로 이 분위기는 숙소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들어간다.”

“네!”

식사를 마치자마자 류청우는 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취침해 버릴 생각인 것 같았다.

탁.

문이 닫히고 류청우가 사라지자마자 여기저기서 걱정의 한숨을 쉬거나 쓴웃음 짓는 놈들이 속출했다.

배세진이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솔직히 쟤가 화날 만했어.”

“맞아요!”

“처, 청우 형 많이 기분 상하셨을까요? 메, 멤버들이 다치지 않게, 좋은 일 하신 건데….”

선아현이 걱정스럽게 외쳤다.

그래봤자 자러 들어간 류청우 때문에 다들 목소리를 있는 대로 낮춘 상태지만.

“음, 회사 입장에서는 알아서 그냥 피하지 왜 굳이 밀쳤을까, 이거 아닐까? 말 나오니까 많이 부담스러우셨나 봐~”

큰세진이 안타까운 척 빈정거렸다. 넌 그럴 줄 알았다.

나는 내 밥그릇을 싱크대로 가져가며 말했다.

“청우 형이 그동안 회사에 지나치게 잘해줬지.”

지랄맞게 굴었으면 아마 얌전히 ‘죄송하다’만 반복했을 텐데, 성격이 좋고 책임감 있는 놈이 잘 받아주니 선을 넘은 것이다.

“그냥 이 기회에 청우 형 좀 쉬게 두는 게 어때. 필요한 거나 이상 있으면 회사에 바로 이야기하고.”

대부분 공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합당한 말씀이십니다.”

“…그래!”

배세진은 류청우가 빠지면 본인이 최연장자라는 것을 대단히 의식하는 표정이다. 괜한 체력 소모라고 말해주고 싶군.

“쉬, 쉬고 나면, 괜찮아지시지 않을까…?”

“맞습니다. 원래 휴식을 취하면서 기력을 회복하는 법입니다. 이번 활동기 동안 청우 형을 많이 보조해야겠습니다.”

“그래.”

“자, 우리도 얼른 들어갑시다~”

짧은 토의는 ‘앞으로 류청우에게 부담 주지 말자’로 결론이 났다.

상식적이고 배려심 넘치는 팀워크이긴 했으나, 사실 근본 원인을 제거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가는 것도 한계가 있지.’

그동안 류청우가 하던 일을 매니저 중 누구도 깔끔히 해낼 거란 기대가 안 든다.

치프 매니저는 로드 따리나 하는 일을 왜 자신에게 말하는지 당혹스러워하며 첫 매니저에게 넘길 테고, 그놈이야 뭐… 뻔하다.

분명 어느 순간 류청우에게 또 슬쩍 떠넘길 각을 볼 텐데, 그때 잘못하면 진짜 지뢰 터진다.

‘류청우가 빡쳐서 한 대 갈기는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그러니 그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 매니저를 갈아치우든, 정신 차리게 만들든.

‘류청우 멘탈이 얼마나 회복되는 지도 체크해야겠고.’

활동하다가 혹시라도 커다란 돌발 사고가 나면 곤란했다. 40만 명 동원 상태이상은 잘 살아 있으니까.

그러니 일단… 내일 류청우 상태부터 유심히 봐두자. 괜찮아 보이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잠들었으나, 다음 날 굳이 결론까지 내릴 필요도 없었다는 것을 바로 알았다.

“오늘 예능 촬영 전에 샵 들릴 건데, 혹시 따로 전달사항 있어?”

“아뇨.”

류청우 상태는 어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 매니저 면상을 무슨 물건 보는 눈으로 보고 지나쳤다.

‘무서워요!’

‘조용.’

이놈은 목소리를 낮춰도 볼륨이 이러냐.

나는 남의 귀에 대고 외치는 차유진을 떼어내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일부러 류청우와 가까이 앉았다.

‘간 좀 보자.’

류청우는 특별히 비협조적으로 나오거나 답변을 X같이 하진 않았다. 워낙 평소에 서글서글했기 때문에 대조적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 평상시 나랑 별다를 게 없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게 생각하니 좀 떨떠름하군.

어쨌든, 나는 기회를 봐서 내릴 때쯤 자연스럽게 류청우에게 말을 걸었다.

“음료 살 건데, 형은 뭐 드실래요.”

“괜찮아.”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만, 뭐 알겠다.

“COKE! COKE!”

나는 강력하게 탄산음료를 주장하는 차유진의 지지만 받았다.

그리고 팀원 놈들의 ‘용기 있는 도전이었다!’ 따위의 시선도 받긴 했으나… 뭐, 애초에 이건 도전도 아니다. 빌드업일 뿐이지.

그리고 다음 날.

“청우 형.”

나는 가타부타 말없이 놈에게 생과일주스를 내밀었다.

“괜찮아.”

“포도당 공급한다고 생각하시죠. 저희 3시간도 못 잤으니까요.”

“…….”

류청우는 언쟁할 기력도 없는지 그냥 음료를 들어서 마셨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 너무 단데.”

그럴 것이다. 설탕과 시럽을 있는 대로 많이 넣어달라고 했거든.

차유진에게 당시 썼던 슈가하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써봤다. 단순하고 자극적이라 허들이 낮지.

“그래서 맛있던데요.”

“…음.”

류청우는 결국 음료를 다 비웠다.

아마 뭐라 더 말하기도 귀찮고, 식이를 조절할 자제력을 굳이 발휘할 의욕도 없는 모양이다.

다만, 마시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니 노림수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나는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

“컨디션 어떠세요. 전 이번에 유독 좀 피곤한 것 같은데.”

“그래. 좀… 피로회복이 덜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그렇죠.”

역시 번아웃 탈력감 때문이었나.

류청우에게서 요 며칠 중에 처음으로 말이 술술 나온다. 설탕의 위력인지 기력이 순간 올라온 것 같다.

“그래도 확실히 액상과당이 효과가 있나 봅니다! 활력이 생기는 기분입니다!”

“음, 그러게.”

김래빈이 참지 못하고 안도한 얼굴로 끼어들어도 평소처럼 온화한 반응이 나왔다.

예상보다도 효과가 좋은데?

나는 턱을 만졌다.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를 신체 작용으로 풀어야 하는 타입 같군.’

단순히 쉬는 게 아니라, 몸이 좋은 자극을 받아서 개운해지면 머리도 깨끗해지는 타입 같다.

“흠.”

귀찮지만, 별수 없지.

‘류청우에게는 빚이 있기도 하고.’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장소를 하나 검색했다.

* * *

다음 날 오후에는 추억의 히트곡 가사를 틀리면 풀장에 자동 다이빙되는 주말 예능을 잘 촬영했다.

몸 안 사리고 입수했다는 뜻이다.

“우악!”

“너 내가 가만 안 둔다!”

“아니, 우리 테스타 불러놓고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MC통통!”

결국 누구 하나 거를 것 없이 물에 쫄딱 젖은 꼴이 되어 타올과 드라이기 세례를 받은 후에야 겨우 차에 올라탔다.

녹초가 따로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서 반신욕이라도 하고 싶군…….’

하지만 직후에도 스케줄이 있었다.

고정된 스케줄이 아니라 임의로 텀을 정해 잡은 거라 비교적 자유롭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W라이브다.

그나마 빈 시간에 욱여넣은 거라 너무 피곤하면 분량과 컨텐츠를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일정.

그러나 이번에는 숙소에서 편하게 진행하는 대신 각 잡고 찍자고 멤버들과 합의했다.

물론, 류청우 빼고.

“한 시간 뒤죠?”

“넵, 이동하겠습니다~”

테스타는 사전에 섭외한 장소로 이동하며 짧게 눈을 붙였다.

평소라면 어디로 가냐고 확인했을 류청우도 마찬가지로 말없이 잠이나 잤다.

그래서 놈은 잠시 후 도착한 촬영장에서 더 당황하게 된다.

“여긴….”

멤버들은 놀란 류청우를 둘러싸고 히죽히죽 웃으며 팔 벌려 장소를 소개했다.

“오늘의 W라이브 장소, 사격장입니다~”

“짠짠짠!”

“…!!”

서울 한복판에 있는 대규모 설비의 에어건 사격장.

바로 내가 전날에 검색한 장소다.

“형 사격 재밌어하시는 것 같았는데, 요새 저희가 그렇게 본격적인 취미 활동할 시간이 없잖아요~ 이렇게라도 즐기셨으면 해서!”

“즐겨요! 놀아요!”

“…….”

류청우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 안면에 은은히 감동한 것 같은 기색이 역력해졌다.

“…고맙다, 얘들아. 재밌겠네.”

“히히.”

좀 감격한 것 같군.

예상대로 잘 통했나 보다.

며칠 동안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배려심이 드디어 류청우 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많이 피곤할 텐데, 괜찮겠어? 이 밤에 이렇게 활동량 많은 걸 또 하긴 힘들 텐데….”

배세진이 시선을 피했다.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 보니까 재밌어 보여서 찬성한 거야. 다들 해보고 싶었던 거니까 오해하진 마.”

“마, 맞아요. 재밌을 것 같아요…!”

“하하, 그래. 알았어.”

“흠, 흠.”

좋은 생각이라며 흥분해서 제일 먼저 동의했던 놈치고는 제법 이성적인 척 말하는군.

“그럼 저희 둘씩 짝지어서~ 류청우를 이겨라! 이 주제로 W라이브 가시죠!”

“봐주는 거 안 돼요! No mercy!! 저 이겨요!”

류청우가 간 만에 씩 웃었다.

“괜찮겠어? 3명이 한팀 해도 돼.”

“와, 형 우리 너무 무시하신다.”

참고로 무시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 직시였다는 것이 단 한 시간 만에 드러난다.

“으억!”

일단 배세진과 김래빈 팀이 류청우와 더블스코어가 벌어지며 침몰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들아 왜 이런 무모한 도전을

-못 본 척 해주자

-ㅋㅋㅋㅋ귀여웤ㅋㅋㅋㅋㅋ

다른 팀 구경하면서 확인한 실시간 댓글은 이꼴이었다.

그리고 류청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펄펄 날아다녔다.

“헐.”

“…저게 되네.”

미필 일반인들 사이에서 전 양궁 금메달리스트가 날뛰는 광경은 팬들에게 두고두고 웃음 소재로 남을 것 같다….

“청우 형께서는 뮤직비디오에서 한번 총기를 사용해 보셨기 때문에 다소 어드벤티지가 있다는 점도 고려해주셔야 합니다!”

“…그건 머스킷이고 이건 라이플이라 종류가 다르다는데.”

“헉.”

“머, 머스킷이 개량을 거쳐서 라이플이란 총기가 탄생했다고, 직원분이 그러셨어…!”

“역시! 이건 절대 배세진 형과 저의 패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선전한 결과….”

“오~ 또 더블스코어!”

“세상에.”

이런 만담 같은 소리가 이어지든 말든, 나는 묵묵히 총이나 쐈다.

타탕!

류청우까지는 아니더라도 선전했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로, 선아현과 내가 가장 류청우 점수를 많이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오 여긴 좀 멋있는데?ㅋㅋㅋ

-좀 치네

-테스타 군대 언제가? 빨리 좀 가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분위기 봐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군대 어그로가 좀 끼긴 했지만, 어쨌든 W라이브도 폭소와 스릴을 동시에 잡으며 제법 성공적으로 끝났다.

“또 만나요~”

“자주 오겠습니다!”

그리고 통상적인 클로징 멘트를 마지막으로 관계자를 비롯한 모두가 도로 녹초 상태로 돌아갔다.

“하.”

“후회는 없다….”

“재밌어요! 저 한 번 더 해요!”

아, 차유진 빼고.

어쨌든 스탭들이 현장을 정리하는 막간에, 아이돌들에게는 잠시 여유시간이 주어졌다.

류청우가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이거 좀 마셔.”

“감사합니다.”

사격도 즐기고 경쟁도 이겨서 그런지 좀 상태가 좋아진 놈은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를 인원수대로 사 왔다.

그리고 캔을 받아가는 내 옆에 서더니, 넌지시 말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현이가 그러는데 문대 네가 여기 오자고 말 꺼냈다며.”

그걸 또 굳이 말한 놈이 있었군.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류청우가 간결히 말을 끝마쳤다.

“고마워. …훨씬 낫다.”

“…….”

나는 놈이 내민 음료를 땄다. 탄산이 올라오는 소리가 시원했다.

“속은 좀 시원하신가요.”

“그래.”

그럼 됐다.

나는 말없이 제로 칼로리 음료를 들이켰다. 류청우는 자신의 페트병을 열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별일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지치더라고.”

“…….”

“양궁 그만둘 때가 생각나서 그런가.”

이런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내 생각보다 액티비티 약발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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