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0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07화
파란만장한 한 달이었다.
-선생님~ 저희 안무 시안 컨펌부터!
-죄송하지만 가사가 이렇게 수정이 들어가면 리듬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발생…….
-컨셉 포토용… 의상 나왔다는데.
활동까지 카운트다운이 들어가는데 수정할 건 한도 끝도 없이 많으니 나중엔 실무진들 모두가 거의 정신 나간 듯이 일했다.
물론 최고조는 뮤직비디오였다.
무슨 지랄을 해도 날짜까지 편집을 다 못 끝낸다는 결론이 나왔거든.
‘섬뜩했지.’
그래서 컴백 날짜인 화요일에 음원을 먼저 공개한 뒤, 목요일 자정에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식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당시에는 손해를 볼 것 같아서 입맛이 썼으나… 의외로 이 방법은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음원부터 공개된 덕에 오히려 편견 없이 차트에 자리 잡았어.’
뮤직비디오에서 스팀펑크 조선이 나오는 건 재밌는 요소지만, 친근한 요소는 아니지 않은가.
이 특수함이 음원의 인상에까지 영향을 주면 괜히 대중성에 하자가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냥 신기한 티저로 화제성을 끈 뒤에 음원은 따로 들으니, 곡이 가진 대중성이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덕분에 현재 가장 큰 음원 차트에서 4, 5위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4위 Spring out / 테스타] ▲1
솔직히 10위권 예상했는데, 놀랍도록 순조롭다.
‘전처럼 무대랑 예능 좀 돌고 나면 이용자가 더 늘려나.’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국내 메이저 예능에 팀 단위로 스케줄을 꽤 잡았다. 리얼리티로 만든 화제성도 활용할 겸.
‘기대해 볼 법하겠군.’
물론 앞으로의 순조로운 회사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글로벌 반응이지만 말이다.
참고로 빌보드 메인 차트에 드는 건 기대도 안 한다.
‘아직 그럴 정도의 해외 인지도는 아니야.’
애초에 빌보드를 각 잡고 노리려면 그 차트에 맞춰서 컴백 직후 1주일 치 성적이 완전히 반영되도록 금요일에 미국 동시 발매했어야 한다.
그 인프라를 도저히 3주 내로 구축할 수 없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 가능할 것이다.
‘망할.’
게다가 그것도 앨범 차트를 노려야 그나마 승산이 있는 거지, 그냥 곡 차트는 VTIC 수준의 해외 팬덤이 아니고서는 답 없다.
고로 곡 하나로 활동하는 이번엔, 테스타의 글로벌 성장세를 빌보드 차트 인으로 측정할 순 없다는 말이다.
‘테스타 글로벌 인지도를 높였다는 걸 증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글로벌 검색엔진에서의 테스타 검색량과 플랫폼 국가별 조회수, 투어 규모 증가 정도가 답이다.
그리고 지금 하는 뮤직비디오 리액션도 그걸 견인하는 좋은 위튜브 컨텐츠가 되어줄 것이다.
“오, 시작한다.”
“두근두근~”
멤버들이 피곤으로 찌든 눈을 하고서도 열심히 떠드는 게 참 훌륭한 자세였다.
‘정산 덕인가.’
며칠 전에 들어온 올해 1분기 정산액이 데뷔 때 반년 넘게 묵혀서 받은 첫 정산액을 넘겼더라.
배세진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다 갚았다며 기함했었다.
어쨌든, 나도 최대한 성의 있게 손바닥을 치며 모니터를 보았다.
뮤직비디오는 티저의 끝, 그러니까 전복된 열차에서부터 시작했다.
-I…
fancy messy sneaky collapsing
콰쾅!
내레이션 같은 저음의 랩이 끝나자. 열차가 터졌다.
그리고 그 폭발에서 멀쩡히 튀어나온 차유진은 허공에 날리던 신문을 낚아채며 씩 웃었다.
티저에서 ‘박문대’가 보던 그 낡은 신문이다.
“오~”
“멋진데?”
“맞아요!”
이 옆의 차유진이 신나게 자신의 멋짐을 주장하는 동안, 화면의 차유진은 신나게 도시로 달려 나가며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라인을 전개했다.
그리고 리드미컬하고 느릿한 도입부 멜로디.
-나른히 손 놓고 즐겨 난
안락한 Driving Mode
다분히 겪었지 Fame, Pain
SF와 근대, 조선을 섞은 기묘한 도시에서의 탐험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예전 미국 서부 스타일의 모험 활극에 가까웠다.
다만 너무 스토리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어디까지나 뮤직비디오니까.’
비현실적인 양식의 건물 실내나 빛이 번뜩이는 황야를 배경으로 하는 멋진 안무 장면을 잘 챙겨 넣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스토리 분량에서도 배분에 신경을 써달라고 명시했었다.
차유진이 첫 스타트를 끊었지만, 이후 멤버들이 자신의 파트마다 한 명씩 등장하면서 바통을 잇도록.
“왜, 왜 세진이는 외알 안경을 쓰고 있나요…?”
“아~ 제가 전에 구미호였잖아요? 왜, 눈을 보면 홀린다~ 그런 걸 좀 보여주는 거죠?”
“멋지네요.”
“어어? 문대문대, 좀 더 영혼을 넣어서!”
“와 정말 멋지다.”
이미 정해놓은 멘트도 이렇게 중간중간 채운다. 감탄사만 넣어선 재미없으니까.
물론 감탄사도 챙기긴 했다.
“와우, 배세진 형!”
“어, 언제나 연기가 대단하세요…!”
“큼, 그 정도는 아니고.”
배세진이 아날로그 계기판을 누르자 기차가 톱니바퀴를 굴리며 복구되는 장면에서 쏟아진 칭찬이다.
“저 앞에 어떤 사물도 없었는데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맞아. 세진이가 연기할 때 저기 그냥 초록색만 가득했어요, 여러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초점용 막대기만 두고 연기했다는 뜻이다.
마치 기술력을 돌려서 자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게 아니다.
도저히 세트를 다 지을 시간이 없어서 예산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CG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 업체도 분명 일 지옥이었겠군.’
그리고 그 상황에도 동요 없이 연기할 놈에게 화려한 CG 장면을 몰아주었고, 그게 배세진이었다.
“…잘 나와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와!”
배세진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카메라에 고개를 꾸벅거렸다.
뭐, 저놈에게 최근 여론이 호의적이니 한결 편해진 모양이다.
뮤직비디오 리액션은 그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저거 봐요! 김래빈 못 움직여요!”
“아닙니다! 전 도깨비 역할이라 신비함을 위해 감독님께서 저런 정도로 정적인 동작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윽고 탄광에서 나, 그러니까 박문대와 김래빈이 접선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지나가며 곡과 화면이 모두 고조된다.
나른한 레게에서 강렬하고 깊은 뭄바톤으로.
-사실 알아 부족한걸
내게 필요한 건 감각
애타는 목 타는
갈증의 시간
후반으로 가면서 스토리에 구체적인 목적의식이 약간 드러났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티저의 열차 탈선은 ‘시민권 증서’를 받기 위해 도시에 올라온 요괴들을 노린 것이었다.
그래서 멤버들은 여러 연유로 시민권을 받기 위해 이 테러리스트를 잡으려 한다.
그리고 티저 본 사람은 다 짐작했겠지만, 테러리스트는 류청우다.
-no oh, no-oh no-oh
목말라 갈증의 시간
곧 화면 속 멤버들은 고압적인 얼굴로 쏘아 내려보는 류청우와 한밤중 대치하게 되었다.
“오오!”
근사하게 CG를 입혀놓은 장면은 과하지 않게 그럴싸했다.
자칫하면 어디 저예산 B급 영화 같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역시 돈은 쓴 만큼 값을 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여러 해석이 나뉘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참고로, 강력한 주류는 이거였다.
-차별에 대한 은유입니다!
근거는 이렇다.
-‘행차’에서 더없이 강력하고 신비한 존재처럼 나왔던 멤버들은, 인간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뛰어야 합니다.
-아직 인권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의식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근대라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차별에 대한 담론입니다.
-‘행차’와 유사하게 스토리라인을 배치하여 더욱 주제 의식이 돋보입니다.
-게다가 ‘행차’에서 결국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깨달은 ‘류청우’ 님은 이번에는 요괴의 시민권을 부정하며 테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기혐오로부터 비롯된 차별의 정서죠.
-즉, 테스타의 이번 뮤직비디오는 차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로까지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고려했던 것을 바로 알아차려 주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결국 이렇게 활용된 것 같긴 했지만.
[요괴를 이렇게 비유하다니? 놀라운 테스타의 뮤직비디오에 경악한 외국인들!]
[미국에서 당했던 동양인 인종차별에 대한 반격? 테스타의 신곡 리뷰]
워낙 이 비디오를 늦게 찍는 중이라 이미 대중 반응과 분석을 한 번씩 쭉 훑어놓은 상태여서… 저절로 생각이 나는군.
어쨌든, 곡의 절정에서 멤버들과 류청우의 전투가 암시되며 강렬한 클라이맥스 안무가 들어간다.
아, 마침 내 파트군.
-스며드는 오늘의 감각
즐겨 이 순간, 시선, 예감
지금, 예고 없이
Spring out
흑단 장총을 한 바퀴 돌려 들어 쏘는 류청우의 컷이 연달아 적당한 파트에 들어갔다.
“우와아아!”
“형님~ 너무 멋진데요??”
“진짜 진짜 Boss 같아요! What a badass!”
“음, 그런가? 하하.”
류청우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촬영 당시 본인도 꽤 마음에 들었는지 사격 취미를 알아보는 것 같았으나… 일단은 말하지 말자.
“이야~ 근데 우리 6:1 그림이라 조금 그렇긴 하다. 그쵸?”
“아니요! 이기는 게 좋아요! 이기면 돼요!”
“…….”
이건 편집해달라고 하고.
뮤직비디오는 지난 활동 곡들보다 웨이브와 젖히기가 많이 들어가 극적인 안무를 잘 잡아주며, 결국 요괴들이 류청우를 제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씩 웃은 차유진이 앞으로 나오며 잠시 음원에 없는 간주가 들어간다.
[…….]
차유진은 시민권 증서 신청증을 류청우의 손에 끼워준다.
-물어, 뜯어, 즐겨
Now, Spring out
따가운 널
마음껏 삼켜
음악이 돌아오며, 엔딩은 그렇게 끝났다.
멤버들은 제법 천연덕스럽게 처음 본 것처럼 코멘트를 추가했다.
“오~”
“머, 멋있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콘티대로 훌륭히 구현되어 감탄만 했습니다!”
“감독님 감사해요~ 뮤직비디오 봐주신 러뷰어 사랑해요~”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뮤직비디오 조회수 테스타 자체 기록 갱신한 건 뻔히 알지만, 예의상 이런 멘트도 좀 붙여주자.
[우와앙!]
[와하하!]
쿠키영상으로 시민권 얻은 놈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는 게 몇 초 나오는 것까지 보고 나니 분량을 적당히 뽑은 것 같다.
“그럼 여러분, 저희 이번에도 열심히, 멋지게 활동할 테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금방 봐요~”
인사말과 함께 카메라가 꺼졌다.
그리고 스탭들이 장비를 챙기는 순간, 멤버 모두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후…….”
“우리 내일… 깨어 있을 수 있겠죠?”
현재 시각 새벽 1시 반.
내일 샵에 새벽 4시 출발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당장 자야 했으나, 안무 최종 연습을 생각하면 밤샘 확정이다.
“힘내자.”
“넵.”
뭐, 다른 방법은 없으니 그냥 하는 수밖에 없다만… 하다못해 이동시간을 줄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슬슬 숙소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서울 중심으로 숙소를 옮겨 버리고 싶단 말이지.
정산 액수를 보니 그 정도 투자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번 활동 성적 보고 딜 걸까.’
최대한 괜찮은 입지와 조건을 받기 위해, 나는 타이밍을 잘 고려하기로 정한 뒤, 해당 생각을 일단 치웠다. 너무 바빴으니까.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이 화제가 곧바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 테스타님들, 혹시 숙소 더 좋은 곳으로 옮기는 건 어떠세요?”
“네?”
물론 피곤해 보이는 소속가수를 걱정하여 소속사에서 자발적으로 비용을 댄다는, 자선사업 같은 발상은 아니었다.
치프 매니저가 일부러인 듯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 아파트에 자꾸 민원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
“그 정신 나간 애들 있잖아요, 자꾸 단지 내 침입하려고 해서 관리실에서 더는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 왜 이 문제가 안 나오나 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07화
파란만장한 한 달이었다.
-선생님~ 저희 안무 시안 컨펌부터!
-죄송하지만 가사가 이렇게 수정이 들어가면 리듬과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발생…….
-컨셉 포토용… 의상 나왔다는데.
활동까지 카운트다운이 들어가는데 수정할 건 한도 끝도 없이 많으니 나중엔 실무진들 모두가 거의 정신 나간 듯이 일했다.
물론 최고조는 뮤직비디오였다.
무슨 지랄을 해도 날짜까지 편집을 다 못 끝낸다는 결론이 나왔거든.
‘섬뜩했지.’
그래서 컴백 날짜인 화요일에 음원을 먼저 공개한 뒤, 목요일 자정에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는 식으로 일정을 수정했다.
당시에는 손해를 볼 것 같아서 입맛이 썼으나… 의외로 이 방법은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음원부터 공개된 덕에 오히려 편견 없이 차트에 자리 잡았어.’
뮤직비디오에서 스팀펑크 조선이 나오는 건 재밌는 요소지만, 친근한 요소는 아니지 않은가.
이 특수함이 음원의 인상에까지 영향을 주면 괜히 대중성에 하자가 생겼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그냥 신기한 티저로 화제성을 끈 뒤에 음원은 따로 들으니, 곡이 가진 대중성이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덕분에 현재 가장 큰 음원 차트에서 4, 5위를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솔직히 10위권 예상했는데, 놀랍도록 순조롭다.
‘전처럼 무대랑 예능 좀 돌고 나면 이용자가 더 늘려나.’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작정하고 국내 메이저 예능에 팀 단위로 스케줄을 꽤 잡았다. 리얼리티로 만든 화제성도 활용할 겸.
‘기대해 볼 법하겠군.’
물론 앞으로의 순조로운 회사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글로벌 반응이지만 말이다.
참고로 빌보드 메인 차트에 드는 건 기대도 안 한다.
‘아직 그럴 정도의 해외 인지도는 아니야.’
애초에 빌보드를 각 잡고 노리려면 그 차트에 맞춰서 컴백 직후 1주일 치 성적이 완전히 반영되도록 금요일에 미국 동시 발매했어야 한다.
그 인프라를 도저히 3주 내로 구축할 수 없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 가능할 것이다.
‘망할.’
게다가 그것도 앨범 차트를 노려야 그나마 승산이 있는 거지, 그냥 곡 차트는 VTIC 수준의 해외 팬덤이 아니고서는 답 없다.
고로 곡 하나로 활동하는 이번엔, 테스타의 글로벌 성장세를 빌보드 차트 인으로 측정할 순 없다는 말이다.
‘테스타 글로벌 인지도를 높였다는 걸 증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글로벌 검색엔진에서의 테스타 검색량과 플랫폼 국가별 조회수, 투어 규모 증가 정도가 답이다.
그리고 지금 하는 뮤직비디오 리액션도 그걸 견인하는 좋은 위튜브 컨텐츠가 되어줄 것이다.
“오, 시작한다.”
“두근두근~”
멤버들이 피곤으로 찌든 눈을 하고서도 열심히 떠드는 게 참 훌륭한 자세였다.
‘정산 덕인가.’
며칠 전에 들어온 올해 1분기 정산액이 데뷔 때 반년 넘게 묵혀서 받은 첫 정산액을 넘겼더라.
배세진이 부동산 담보 대출을 다 갚았다며 기함했었다.
어쨌든, 나도 최대한 성의 있게 손바닥을 치며 모니터를 보았다.
뮤직비디오는 티저의 끝, 그러니까 전복된 열차에서부터 시작했다.
-I…
fancy messy sneaky collapsing
콰쾅!
내레이션 같은 저음의 랩이 끝나자. 열차가 터졌다.
그리고 그 폭발에서 멀쩡히 튀어나온 차유진은 허공에 날리던 신문을 낚아채며 씩 웃었다.
티저에서 ‘박문대’가 보던 그 낡은 신문이다.
“오~”
“멋진데?”
“맞아요!”
이 옆의 차유진이 신나게 자신의 멋짐을 주장하는 동안, 화면의 차유진은 신나게 도시로 달려 나가며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라인을 전개했다.
그리고 리드미컬하고 느릿한 도입부 멜로디.
-나른히 손 놓고 즐겨 난
안락한 Driving Mode
다분히 겪었지 Fame, Pain
SF와 근대, 조선을 섞은 기묘한 도시에서의 탐험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예전 미국 서부 스타일의 모험 활극에 가까웠다.
다만 너무 스토리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어디까지나 뮤직비디오니까.’
비현실적인 양식의 건물 실내나 빛이 번뜩이는 황야를 배경으로 하는 멋진 안무 장면을 잘 챙겨 넣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스토리 분량에서도 배분에 신경을 써달라고 명시했었다.
차유진이 첫 스타트를 끊었지만, 이후 멤버들이 자신의 파트마다 한 명씩 등장하면서 바통을 잇도록.
“왜, 왜 세진이는 외알 안경을 쓰고 있나요…?”
“아~ 제가 전에 구미호였잖아요? 왜, 눈을 보면 홀린다~ 그런 걸 좀 보여주는 거죠?”
“멋지네요.”
“어어? 문대문대, 좀 더 영혼을 넣어서!”
“와 정말 멋지다.”
이미 정해놓은 멘트도 이렇게 중간중간 채운다. 감탄사만 넣어선 재미없으니까.
물론 감탄사도 챙기긴 했다.
“와우, 배세진 형!”
“어, 언제나 연기가 대단하세요…!”
“큼, 그 정도는 아니고.”
배세진이 아날로그 계기판을 누르자 기차가 톱니바퀴를 굴리며 복구되는 장면에서 쏟아진 칭찬이다.
“저 앞에 어떤 사물도 없었는데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맞아. 세진이가 연기할 때 저기 그냥 초록색만 가득했어요, 여러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초점용 막대기만 두고 연기했다는 뜻이다.
마치 기술력을 돌려서 자랑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게 아니다.
도저히 세트를 다 지을 시간이 없어서 예산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CG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 업체도 분명 일 지옥이었겠군.’
그리고 그 상황에도 동요 없이 연기할 놈에게 화려한 CG 장면을 몰아주었고, 그게 배세진이었다.
“…잘 나와서 다행이고,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와!”
배세진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카메라에 고개를 꾸벅거렸다.
뭐, 저놈에게 최근 여론이 호의적이니 한결 편해진 모양이다.
뮤직비디오 리액션은 그런 식으로 계속되었다.
“저거 봐요! 김래빈 못 움직여요!”
“아닙니다! 전 도깨비 역할이라 신비함을 위해 감독님께서 저런 정도로 정적인 동작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윽고 탄광에서 나, 그러니까 박문대와 김래빈이 접선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지나가며 곡과 화면이 모두 고조된다.
나른한 레게에서 강렬하고 깊은 뭄바톤으로.
-사실 알아 부족한걸
내게 필요한 건 감각
애타는 목 타는
갈증의 시간
후반으로 가면서 스토리에 구체적인 목적의식이 약간 드러났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티저의 열차 탈선은 ‘시민권 증서’를 받기 위해 도시에 올라온 요괴들을 노린 것이었다.
그래서 멤버들은 여러 연유로 시민권을 받기 위해 이 테러리스트를 잡으려 한다.
그리고 티저 본 사람은 다 짐작했겠지만, 테러리스트는 류청우다.
-no oh, no-oh no-oh
목말라 갈증의 시간
곧 화면 속 멤버들은 고압적인 얼굴로 쏘아 내려보는 류청우와 한밤중 대치하게 되었다.
“오오!”
근사하게 CG를 입혀놓은 장면은 과하지 않게 그럴싸했다.
자칫하면 어디 저예산 B급 영화 같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역시 돈은 쓴 만큼 값을 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여러 해석이 나뉘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참고로, 강력한 주류는 이거였다.
-차별에 대한 은유입니다!
근거는 이렇다.
-‘행차’에서 더없이 강력하고 신비한 존재처럼 나왔던 멤버들은, 인간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뛰어야 합니다.
-아직 인권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의식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근대라는 시대상을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든 차별에 대한 담론입니다.
-‘행차’와 유사하게 스토리라인을 배치하여 더욱 주제 의식이 돋보입니다.
-게다가 ‘행차’에서 결국 자신이 요괴라는 것을 깨달은 ‘류청우’ 님은 이번에는 요괴의 시민권을 부정하며 테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기혐오로부터 비롯된 차별의 정서죠.
-즉, 테스타의 이번 뮤직비디오는 차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정도로까지 거창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어쨌든 고려했던 것을 바로 알아차려 주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결국 이렇게 활용된 것 같긴 했지만.
워낙 이 비디오를 늦게 찍는 중이라 이미 대중 반응과 분석을 한 번씩 쭉 훑어놓은 상태여서… 저절로 생각이 나는군.
어쨌든, 곡의 절정에서 멤버들과 류청우의 전투가 암시되며 강렬한 클라이맥스 안무가 들어간다.
아, 마침 내 파트군.
-스며드는 오늘의 감각
즐겨 이 순간, 시선, 예감
지금, 예고 없이
Spring out
흑단 장총을 한 바퀴 돌려 들어 쏘는 류청우의 컷이 연달아 적당한 파트에 들어갔다.
“우와아아!”
“형님~ 너무 멋진데요??”
“진짜 진짜 Boss 같아요! What a badass!”
“음, 그런가? 하하.”
류청우가 멋쩍게 웃었다. 사실 촬영 당시 본인도 꽤 마음에 들었는지 사격 취미를 알아보는 것 같았으나… 일단은 말하지 말자.
“이야~ 근데 우리 6:1 그림이라 조금 그렇긴 하다. 그쵸?”
“아니요! 이기는 게 좋아요! 이기면 돼요!”
“…….”
이건 편집해달라고 하고.
뮤직비디오는 지난 활동 곡들보다 웨이브와 젖히기가 많이 들어가 극적인 안무를 잘 잡아주며, 결국 요괴들이 류청우를 제압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만, 씩 웃은 차유진이 앞으로 나오며 잠시 음원에 없는 간주가 들어간다.
차유진은 시민권 증서 신청증을 류청우의 손에 끼워준다.
-물어, 뜯어, 즐겨
Now, Spring out
따가운 널
마음껏 삼켜
음악이 돌아오며, 엔딩은 그렇게 끝났다.
멤버들은 제법 천연덕스럽게 처음 본 것처럼 코멘트를 추가했다.
“오~”
“머, 멋있게 잘 나온 것 같아요…!”
“콘티대로 훌륭히 구현되어 감탄만 했습니다!”
“감독님 감사해요~ 뮤직비디오 봐주신 러뷰어 사랑해요~”
“대박 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뮤직비디오 조회수 테스타 자체 기록 갱신한 건 뻔히 알지만, 예의상 이런 멘트도 좀 붙여주자.
쿠키영상으로 시민권 얻은 놈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는 게 몇 초 나오는 것까지 보고 나니 분량을 적당히 뽑은 것 같다.
“그럼 여러분, 저희 이번에도 열심히, 멋지게 활동할 테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금방 봐요~”
인사말과 함께 카메라가 꺼졌다.
그리고 스탭들이 장비를 챙기는 순간, 멤버 모두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순식간에 돌아왔다.
“후…….”
“우리 내일… 깨어 있을 수 있겠죠?”
현재 시각 새벽 1시 반.
내일 샵에 새벽 4시 출발이라는 걸 고려했을 때 당장 자야 했으나, 안무 최종 연습을 생각하면 밤샘 확정이다.
“힘내자.”
“넵.”
뭐, 다른 방법은 없으니 그냥 하는 수밖에 없다만… 하다못해 이동시간을 줄이면 좋겠는데 말이다.
‘슬슬 숙소 바꿀 때가 되지 않았나.’
서울 중심으로 숙소를 옮겨 버리고 싶단 말이지.
정산 액수를 보니 그 정도 투자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번 활동 성적 보고 딜 걸까.’
최대한 괜찮은 입지와 조건을 받기 위해, 나는 타이밍을 잘 고려하기로 정한 뒤, 해당 생각을 일단 치웠다. 너무 바빴으니까.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이 화제가 곧바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우리 테스타님들, 혹시 숙소 더 좋은 곳으로 옮기는 건 어떠세요?”
“네?”
물론 피곤해 보이는 소속가수를 걱정하여 소속사에서 자발적으로 비용을 댄다는, 자선사업 같은 발상은 아니었다.
치프 매니저가 일부러인 듯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 아파트에 자꾸 민원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
“그 정신 나간 애들 있잖아요, 자꾸 단지 내 침입하려고 해서 관리실에서 더는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 왜 이 문제가 안 나오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