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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2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화
‘아이돌 주식회사’.
이맘때 한참 흥행몰이하던 서바이벌 예능 시리즈다.
몇십, 몇백 명의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다가 투표로 떨어뜨리는 오디션 이 유행한 뒤, 그 포맷을 답습한 프로그램도 여럿 나왔다.
이 ‘아이돌 주식회사’도 그 양산형 프로 중 하나였으나, 이게 특히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더 악랄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시즌 1 때 광고문구를 보자.
[매수하는 만큼 자라는 당신의 아이돌 주식!]
그렇다. 돈 쓴 만큼 ‘주식’이라는 이름으로 투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프로가 올해로 시즌3였다.
모종의 이유로 시즌2가 폭삭 망해 버린 다음, 그 시즌을 없던 취급하며 ‘재상장’이라는 포부 넘치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덕분에 시즌3가 택도 없는 뇌절이며 망할 거라고 비웃던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어땠냐고? 시험 준비하느라 아무 생각 없었지.
아무튼,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시즌3는 공전의 히트를 친다.
엄청난 논란과 비난이 난무하지만, 화제성과 시청률을 꽉 잡으며 음원 사이트 진입 8만 명, 초동 60만 장을 팔아치우는 남자 아이돌을 배출한다.
그래서 나도 이 프로에 나가 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단계를 위해 외출했다.
“네, 다 됐습니다! 머리 주문하신 대로 옆은 많이 안 쳤어요.”
“예. 감사합니다.”
이제야 좀 생김새에 어울리는 몰골이 됐군. 잘 다듬어진 머리를 미용실 거울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요 며칠 잘 먹고 잘 잔 게 영향을 줬는지 우울에 찌든 퀭한 느낌은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덕분에 덥수룩한 앞머리를 쳐내고 이마를 드러내도 괜찮았다.
때마침 옆에 앉아 파마를 받던 아주머니께서 립서비스를 해주신다.
“어머, 학생 너무 잘 어울린다~ 훤칠해졌어!”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카운터에서 현금으로 계산을 진행했다.
‘은행 가서 조회하니 통장에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서 다행이었지.’
내역을 보니 부모님 보험금이라 못 쓴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내가 좀 써야겠다.
‘…돈 벌면 원금 채워서 아동복지단체에라도 기부할까.’
약간 씁쓸했다. 등본을 떼고 휴대폰 개통하면서 이것저것 조사해 봤는데, 이 ‘박문대’의 자살은 충동적인 행동도 아니었던 것 같다.
방도 빼고(월세가 밀려서 보증금도 거의 못 받았다), 폰도 해지한 상태였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생일날에.
어지간히 죽고 싶었나 보다.
…뭐, 이해는 간다. 나도 그랬으니까.
‘좋은 곳에 있기를.’
나는 짧게 묵념하고 감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미용실 문을 열고 나왔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햇살이 눈을 찔렀다.
외출 목적 달성까지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일단 확실히 하자.’
난 이미 이 프로그램의 미션, 데뷔 멤버, 반전에 테마곡까지 다 알고 있다.
물론, 떨어질 공시 준비하느라 디테일은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당장 이보다 더 적합한 등용문을 찾기는 힘들었다.
대충 2차만 통과해도 어디 중소기획사라도 잡아 볼 수 있을 만큼 판이 커질 프로니까.
다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미 이번 시즌의 참가자 모집 공개 오디션이 끝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힌트를 알고 있었다. 그걸 되는 데까지 활용해 볼 생각이다.
내 목표는 이미 참가자 모집 오디션이 끝난 그 서바이벌 프로의 참가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 내로.
방송국이 아니라, 이 주변 노래방에서.
* * *
-아주사? 아, 아이돌 주식회사. 거기 작가 하나가 완전 또라이잖아.
이건 사진 동아리 뒤풀이에서 어떤 놈이 킥킥거리며 말했던 개소리다.
방송국에 다니는 친척으로부터 들었다며, 이런저런 루머를 떠드는 놈이라 그다지 마음에 드는 종자는 아니었다.
-무슨 노래방 같은 데서 참가자 섭외한다더라. 방송국 있는 그… 있잖아. 성X동? 거기 노래방 돌면서 일반인 섭외해서 PD한테 깨졌대. 짬도 안 되는 게 설쳤다 이거지. 완전 얼빠진 년 아니냐?
그놈은 이후에도 섭외에 관해 중구난방으로 가열 차게 떠들어댔다.
술자리에서 헛소리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라지만, 단체모임 뒤풀이에서 이 정도까지 재미없게 지 말만 떠드는 놈은 또 드물었다.
‘이 자식 부른 사람 누구냐’
‘다신 부르지 말자.’
‘그래.’
사람들이 떨떠름하게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나도 이 개소리를 믿지는 않았다. 그냥 공짜 술에 집중하고 있었지.
하지만 놀랍게도 교차검증 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 섭외한 일반인이 이고윤이야.
-…어?
이고윤은 시즌1로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다. 청초한 외양으로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명랑, 쾌활, 엉뚱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었다.
주변에서 적당한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데뷔한 애 맞지?
-응.
-오… 어떻게 아셨어요?
졸업을 앞둔 신문방송학과 선배였던 그녀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 ‘얼빠진 년’이 우리 언니거든.
순간 떠들던 놈의 말이 어눌해졌다. 주변에서 흥미 본위의 경멸이 놈에게 쏟아졌다.
-…아, 하하, 아니 그 표현은…….
-근데 PD한테 깨진 적은 없어. 대신 돈은 더 받네.
-…….
이후 그놈은 입 닥치고 조용히 앉아 있게 됐다.
덕분에 편하게 술을 즐길 수 있어 썩 고마웠다. 그 선배가 해당 섭외 썰을 대신 푸는 걸 들으면서 소맥을 마셨던 것 같은데.
아무튼, 제법 재밌는 상황이었던 터라 기억에 잘 남아 있었다.
서바이벌 참가자 모집 오디션에서 맘에 차는 인물이 정원미달일 때, 오디션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방송사 근처 노래방을 돌며 체크한다고 했던가.
-거리 노래방 같은 거 하는 애들이 더 낫지 않나? 섭외하기도 편하고.
-거긴 이미 가수 지망생들이 많아서 오히려 피한다더라. 굳이 일반인을 섭외하려는 건 서바이벌 참가자답지 않게 신선한 캐릭터가 필요해서라던데.
반드시 데뷔할 만한 참가자를 뽑으려는 게 아니라, 방송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뭣 모르는 완전 일반인을 섭외한다는 말이었다.
요새 아이돌 지망생들이야 다 함부로 떠들지 말라고 기획사에서 교육을 받을 테니까.
결국, 이 일반인 참가자는 방송의 재미를 위해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중요한 건 시즌3에서도 그 작가가 아직 이 방법을 계속 쓰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일단 성공해 본 건 놓기 힘들다.’
어쩌면 시즌2가 망했으니, 오히려 예선 오디션 풀이 안 좋아져서 더 열심히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이 ‘박문대’의 몸은 비쩍 마르긴 했지만, 얼굴도 준수하고, 키도 괜찮다.
게다가 노래도 괜찮으니, 일단 만나면 한번 찔러보기라도 할 가능성이 분명 있다.
게다가…….
‘레벨을 올려야 된다.’
연습 업적을 달성해서 스탯에 투자해야 했다. 뭐라도 특출난 게 있어야 뽑아달라고 비벼라도 볼 것 아닌가.
나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선곡했다. 그리고 슬쩍, 내가 들어온 노래방 문을 돌아보았다.
문은 통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0~20대를 겨냥해 밝고 탁 트인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겠지만, 동시에 밖에서 들여다보기 좋은 인테리어.
이 노래방을 고른 이유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방송일에 종사하는 작가였다.
안 그래도 프로그램 준비로 바쁠 시기에 외출까지 해서 일반인을 살펴봐야 한다면, 웬만하면 방송국 근처에 있고 살펴보기 쉬운 곳부터 올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지금은 이 노래방이 최적의 선택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열 곡을 미리 예약한 뒤, 전주 점프를 누르며 노래를 시작했다.
* * *
[업적 달성! ]
Level 1 -> 2
1 포인트 획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업적을 하나 달성했다. 10곡 부르는 업적이다. 물론 제일 만만해서 금방 달성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포인트는 가창에 투자했다. 그러니 C+이 B-로 바뀌었다.
전처럼 시험 삼아 같은 곡을 한 번 더 부르니 이번에는 아예 기본 베이스가 좋아진 느낌이었다.
음색이 더 깊어지고 성량이 늘었다. 아마 알파벳 단위가 바뀌는 성장은 이런 식인가 보다.
이 속도라면 초반에는 말도 안 되도록 빠르게 능력치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보다 먼저 집중할 일이 있었다.
“아, 전 이런 사람이고요.”
이렇게 바로 걸릴 줄이야.
대충 시기를 계산해 봤을 때 좀 이르다 싶게 시작했는데, 의외의 선 득점이다.
나는 안경 쓴 여성이 내미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여성은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게 괜찮은 인상을 주려는 것 같은데, 예상대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는 성공한 모양이다.
명함에는 기대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류서린]
신문방송학과였던 그 선배의 이름이 ‘류서진’이었다.
‘그냥 봐도 자매 이름이군’
“학생은 이름이 어떻게 돼요?”
“박문대라고 합니다.”
“이름도 개성 있네. 진짜 한번 잘 생각해봐요. 학생한테 스타성이 있는 것 같아. 우리 프로 진짜 스타성 있는 사람 잘 발굴하거든요.”
“…감사합니다.”
나는 굳이 반색하지는 않았다. 너무 흥미 있는 듯 보이면 이 상황을 노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보통 예선 프로필에서 다 걸리겠지만, 혹시라도 노리고 온 놈들은 거르고 싶겠지.
괜찮은 접근이었는지, 여성이 더 말을 붙였다.
“학생 얼굴도 잘생겼고, 노래도 잘하고. 우리 프로 나오기만 하면 정말 잘 될 것 같은데. …흠, 오늘 가서 테스트 영상 한번 찍어볼래요?”
“예?”
한 번에 검증을 끝내려는지, 여성이 약간 밀어붙이듯 말했다.
“그렇네. 부모님께 연락해 봐요. 아들 방송에 섭외됐다고, 방송국 간다고 하면 좋아하실 텐데”
“…제가 부모님이 안 계셔서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작가로 추정되는 이 여자의 눈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자극적인 소재로 판단한 모양이다.
하긴, 서바이벌에서 사연팔이는 필수요소다. 즙 짠다고 욕까지 먹으니 오히려 더 좋다.
혹시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더 놓치기 아깝겠지.
하지만 작가는 얼른 그 기색을 감췄다. 그리고 더 부드럽게, 안됐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괜찮습니다.”
“그냥 방송국 구경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한번 보러오라고 한 말이에요. 이런 경험 흔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음.”
슬슬 승낙할까.
나는 머뭇거리는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성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환해진다.
“아, 잘 생각했어요! 방송국 바로 요 앞이야!”
그렇게 첫 번째 목적을 달성했다.
예상 이상으로 순탄한 시작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화

‘아이돌 주식회사’.

이맘때 한참 흥행몰이하던 서바이벌 예능 시리즈다.

몇십, 몇백 명의 아이돌 지망생들을 모아다가 투표로 떨어뜨리는 오디션 이 유행한 뒤, 그 포맷을 답습한 프로그램도 여럿 나왔다.

이 ‘아이돌 주식회사’도 그 양산형 프로 중 하나였으나, 이게 특히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더 악랄해졌기 때문이다.

우선 시즌 1 때 광고문구를 보자.

그렇다. 돈 쓴 만큼 ‘주식’이라는 이름으로 투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프로가 올해로 시즌3였다.

모종의 이유로 시즌2가 폭삭 망해 버린 다음, 그 시즌을 없던 취급하며 ‘재상장’이라는 포부 넘치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덕분에 시즌3가 택도 없는 뇌절이며 망할 거라고 비웃던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어땠냐고? 시험 준비하느라 아무 생각 없었지.

아무튼,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시즌3는 공전의 히트를 친다.

엄청난 논란과 비난이 난무하지만, 화제성과 시청률을 꽉 잡으며 음원 사이트 진입 8만 명, 초동 60만 장을 팔아치우는 남자 아이돌을 배출한다.

그래서 나도 이 프로에 나가 보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단계를 위해 외출했다.

“네, 다 됐습니다! 머리 주문하신 대로 옆은 많이 안 쳤어요.”

“예. 감사합니다.”

이제야 좀 생김새에 어울리는 몰골이 됐군. 잘 다듬어진 머리를 미용실 거울로 바라보며 생각했다.

요 며칠 잘 먹고 잘 잔 게 영향을 줬는지 우울에 찌든 퀭한 느낌은 이미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덕분에 덥수룩한 앞머리를 쳐내고 이마를 드러내도 괜찮았다.

때마침 옆에 앉아 파마를 받던 아주머니께서 립서비스를 해주신다.

“어머, 학생 너무 잘 어울린다~ 훤칠해졌어!”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카운터에서 현금으로 계산을 진행했다.

‘은행 가서 조회하니 통장에 돈이 어느 정도는 있어서 다행이었지.’

내역을 보니 부모님 보험금이라 못 쓴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내가 좀 써야겠다.

‘…돈 벌면 원금 채워서 아동복지단체에라도 기부할까.’

약간 씁쓸했다. 등본을 떼고 휴대폰 개통하면서 이것저것 조사해 봤는데, 이 ‘박문대’의 자살은 충동적인 행동도 아니었던 것 같다.

방도 빼고(월세가 밀려서 보증금도 거의 못 받았다), 폰도 해지한 상태였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생일날에.

어지간히 죽고 싶었나 보다.

…뭐, 이해는 간다. 나도 그랬으니까.

‘좋은 곳에 있기를.’

나는 짧게 묵념하고 감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바로 미용실 문을 열고 나왔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햇살이 눈을 찔렀다.

외출 목적 달성까지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일단 확실히 하자.’

난 이미 이 프로그램의 미션, 데뷔 멤버, 반전에 테마곡까지 다 알고 있다.

물론, 떨어질 공시 준비하느라 디테일은 좀 떨어졌지만, 그래도 당장 이보다 더 적합한 등용문을 찾기는 힘들었다.

대충 2차만 통과해도 어디 중소기획사라도 잡아 볼 수 있을 만큼 판이 커질 프로니까.

다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미 이번 시즌의 참가자 모집 공개 오디션이 끝났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는 약간의 힌트를 알고 있었다. 그걸 되는 데까지 활용해 볼 생각이다.

내 목표는 이미 참가자 모집 오디션이 끝난 그 서바이벌 프로의 참가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일주일 내로.

방송국이 아니라, 이 주변 노래방에서.

* * *

-아주사? 아, 아이돌 주식회사. 거기 작가 하나가 완전 또라이잖아.

이건 사진 동아리 뒤풀이에서 어떤 놈이 킥킥거리며 말했던 개소리다.

방송국에 다니는 친척으로부터 들었다며, 이런저런 루머를 떠드는 놈이라 그다지 마음에 드는 종자는 아니었다.

-무슨 노래방 같은 데서 참가자 섭외한다더라. 방송국 있는 그… 있잖아. 성X동? 거기 노래방 돌면서 일반인 섭외해서 PD한테 깨졌대. 짬도 안 되는 게 설쳤다 이거지. 완전 얼빠진 년 아니냐?

그놈은 이후에도 섭외에 관해 중구난방으로 가열 차게 떠들어댔다.

술자리에서 헛소리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라지만, 단체모임 뒤풀이에서 이 정도까지 재미없게 지 말만 떠드는 놈은 또 드물었다.

‘이 자식 부른 사람 누구냐’

‘다신 부르지 말자.’

‘그래.’

사람들이 떨떠름하게 눈으로 대화를 나눴다.

당연히 나도 이 개소리를 믿지는 않았다. 그냥 공짜 술에 집중하고 있었지.

하지만 놀랍게도 교차검증 해준 사람이 있었다.

-그 섭외한 일반인이 이고윤이야.

-…어?

이고윤은 시즌1로 데뷔한 여자 아이돌이다. 청초한 외양으로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명랑, 쾌활, 엉뚱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었다.

주변에서 적당한 감탄사가 나왔다.

-우와, 데뷔한 애 맞지?

-응.

-오… 어떻게 아셨어요?

졸업을 앞둔 신문방송학과 선배였던 그녀는 덤덤히 말을 이었다.

-그 ‘얼빠진 년’이 우리 언니거든.

순간 떠들던 놈의 말이 어눌해졌다. 주변에서 흥미 본위의 경멸이 놈에게 쏟아졌다.

-…아, 하하, 아니 그 표현은…….

-근데 PD한테 깨진 적은 없어. 대신 돈은 더 받네.

-…….

이후 그놈은 입 닥치고 조용히 앉아 있게 됐다.

덕분에 편하게 술을 즐길 수 있어 썩 고마웠다. 그 선배가 해당 섭외 썰을 대신 푸는 걸 들으면서 소맥을 마셨던 것 같은데.

아무튼, 제법 재밌는 상황이었던 터라 기억에 잘 남아 있었다.

서바이벌 참가자 모집 오디션에서 맘에 차는 인물이 정원미달일 때, 오디션이 끝나고 일주일 정도 방송사 근처 노래방을 돌며 체크한다고 했던가.

-거리 노래방 같은 거 하는 애들이 더 낫지 않나? 섭외하기도 편하고.

-거긴 이미 가수 지망생들이 많아서 오히려 피한다더라. 굳이 일반인을 섭외하려는 건 서바이벌 참가자답지 않게 신선한 캐릭터가 필요해서라던데.

반드시 데뷔할 만한 참가자를 뽑으려는 게 아니라, 방송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뭣 모르는 완전 일반인을 섭외한다는 말이었다.

요새 아이돌 지망생들이야 다 함부로 떠들지 말라고 기획사에서 교육을 받을 테니까.

결국, 이 일반인 참가자는 방송의 재미를 위해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중요한 건 시즌3에서도 그 작가가 아직 이 방법을 계속 쓰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일단 성공해 본 건 놓기 힘들다.’

어쩌면 시즌2가 망했으니, 오히려 예선 오디션 풀이 안 좋아져서 더 열심히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자.

이 ‘박문대’의 몸은 비쩍 마르긴 했지만, 얼굴도 준수하고, 키도 괜찮다.

게다가 노래도 괜찮으니, 일단 만나면 한번 찔러보기라도 할 가능성이 분명 있다.

게다가…….

‘레벨을 올려야 된다.’

연습 업적을 달성해서 스탯에 투자해야 했다. 뭐라도 특출난 게 있어야 뽑아달라고 비벼라도 볼 것 아닌가.

나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선곡했다. 그리고 슬쩍, 내가 들어온 노래방 문을 돌아보았다.

문은 통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10~20대를 겨냥해 밝고 탁 트인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겠지만, 동시에 밖에서 들여다보기 좋은 인테리어.

이 노래방을 고른 이유다.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방송일에 종사하는 작가였다.

안 그래도 프로그램 준비로 바쁠 시기에 외출까지 해서 일반인을 살펴봐야 한다면, 웬만하면 방송국 근처에 있고 살펴보기 쉬운 곳부터 올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지금은 이 노래방이 최적의 선택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열 곡을 미리 예약한 뒤, 전주 점프를 누르며 노래를 시작했다.

* * *

Level 1 -> 2

1 포인트 획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업적을 하나 달성했다. 10곡 부르는 업적이다. 물론 제일 만만해서 금방 달성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포인트는 가창에 투자했다. 그러니 C+이 B-로 바뀌었다.

전처럼 시험 삼아 같은 곡을 한 번 더 부르니 이번에는 아예 기본 베이스가 좋아진 느낌이었다.

음색이 더 깊어지고 성량이 늘었다. 아마 알파벳 단위가 바뀌는 성장은 이런 식인가 보다.

이 속도라면 초반에는 말도 안 되도록 빠르게 능력치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보다 먼저 집중할 일이 있었다.

“아, 전 이런 사람이고요.”

이렇게 바로 걸릴 줄이야.

대충 시기를 계산해 봤을 때 좀 이르다 싶게 시작했는데, 의외의 선 득점이다.

나는 안경 쓴 여성이 내미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여성은 피곤한 안색이었지만,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게 괜찮은 인상을 주려는 것 같은데, 예상대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에는 성공한 모양이다.

명함에는 기대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신문방송학과였던 그 선배의 이름이 ‘류서진’이었다.

‘그냥 봐도 자매 이름이군’

“학생은 이름이 어떻게 돼요?”

“박문대라고 합니다.”

“이름도 개성 있네. 진짜 한번 잘 생각해봐요. 학생한테 스타성이 있는 것 같아. 우리 프로 진짜 스타성 있는 사람 잘 발굴하거든요.”

“…감사합니다.”

나는 굳이 반색하지는 않았다. 너무 흥미 있는 듯 보이면 이 상황을 노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보통 예선 프로필에서 다 걸리겠지만, 혹시라도 노리고 온 놈들은 거르고 싶겠지.

괜찮은 접근이었는지, 여성이 더 말을 붙였다.

“학생 얼굴도 잘생겼고, 노래도 잘하고. 우리 프로 나오기만 하면 정말 잘 될 것 같은데. …흠, 오늘 가서 테스트 영상 한번 찍어볼래요?”

“예?”

한 번에 검증을 끝내려는지, 여성이 약간 밀어붙이듯 말했다.

“그렇네. 부모님께 연락해 봐요. 아들 방송에 섭외됐다고, 방송국 간다고 하면 좋아하실 텐데”

“…제가 부모님이 안 계셔서요.”

그 말을 하는 순간, 작가로 추정되는 이 여자의 눈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자극적인 소재로 판단한 모양이다.

하긴, 서바이벌에서 사연팔이는 필수요소다. 즙 짠다고 욕까지 먹으니 오히려 더 좋다.

혹시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니 더 놓치기 아깝겠지.

하지만 작가는 얼른 그 기색을 감췄다. 그리고 더 부드럽게, 안됐다는 듯 말했다.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

“괜찮습니다.”

“그냥 방송국 구경한다 생각하고 편하게 한번 보러오라고 한 말이에요. 이런 경험 흔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음.”

슬슬 승낙할까.

나는 머뭇거리는 것처럼 잠시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성의 얼굴이 노골적으로 환해진다.

“아, 잘 생각했어요! 방송국 바로 요 앞이야!”

그렇게 첫 번째 목적을 달성했다.

예상 이상으로 순탄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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