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9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9화
심어놓은 ‘폭탄’이 터진 것은 얼마 후, 비하인드 카메라가 붙은 채로 앵콜 콘서트 연습을 하는 도중이었다.
“자, 오른쪽으로~ 발 차고, 다시 옆으로… 형, 조심하세요!”
“……큽.”
발이 꼬일 뻔한 배세진이 귀가 시뻘게진 채로 다시 안무를 재정비했다.
춤 스탯이 C까지 올라왔는데도 그만큼 더 괴악해진 안무 난이도에 고전 중인 것이다.
‘나도 남 말할 때가 아니지만.’
차유진과 유닛 무대를 하려면 스탯을 재정비해야겠다 생각한 찰나.
안무 연습실 문 뒤편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언성을 높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왔나.’
감이 왔다. 하지만 굳이 아는 척할 필요는 없다.
“뭐지?”
“음?”
일단 당장 카메라부터 눈치껏 촬영이 종료되었다. 무시하기엔 소리가 제법 컸기 때문이다.
안무는 마침 후렴을 지나 마무리되었고, 멤버들은 동작을 마무리하고 당황 반 걱정 반으로 연습실 문을 쳐다보았다.
“누, 누가 말씀 나누시는 걸까요…?”
“…지금 여기 다른 사람은 없을 텐데.”
“잠시만.”
눈짓을 남긴 류청우가 일어나서 상황을 파악하려던 순간, 한발 먼저 문이 열리더니 안면 없는 놈이 벌컥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 붉으락푸르락 안색이 처참한 첫 매니저가 황급히 따라 들어왔다.
놈은 첫 매니저를 무시하고 우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손에 든 테이크아웃 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 테스타 아티스트분들. 어휴, 반갑습니다! 아, 이거 하나 드시면서 연습 화이팅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누구세요??”
놈은 냉큼 음료부터 받아든 차유진의 말에 깔끔하게 대답했다.
“아, 저는 이번에 새로 온 매니저입니다.”
“예?”
당연하지만, 얼마 전 도넛 들고 온 실장의 사촌동생과 겹쳤다.
“음, 며칠 전에 뵌 분하고 다른 분이신데요~?”
“그 친구는 이제 여러분 따라다니면서 로드매니저로 일할 거고, 저는 총괄!”
총괄.
즉, 치프 매니저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전담 매니저이던 첫 매니저는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을 졸지에 상사로 모시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바쁜 스케줄이면 전담이 셋은 붙어야 제대로 돌아갔을 텐데… 아이고, 앞으로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처리할 테니까 불편한 건 바로바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아니…….”
음, 첫 매니저는 아직도 당황한 모양새다. 아무 언질도 못 받았나 보지?
치프 매니저가 된 놈은 그제야 첫 매니저를 보며 유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김 매니저, 혼자 하느라 지금까지 고생 많았겠어요.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아티스트 분들의 니즈를 관리해 봅시다. 부상이나 컨디션 체크도 매일 시간대별로 진행해 보고.”
첫 매니저가 그동안 그룹 케어를 제대로 못해서 승진 라인에서 밀려났다고 광고를 하는군.
그래, 저게 매니지먼트 실장이 새롭게 밀게 될 명분이다.
‘아티스트 중심 케어!’
만약에 내가 그놈에게 바람 불어넣는 것으로 끝이었다면, 실장과 본부장의 구도는 선배 그룹 대 후배 그룹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본부장이 후배 쪽을 미니까 본인은 남은 옵션인 선배-테스타 골라 버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 두 그룹이 소모적으로 정치질에 이용당한다는, 쓸데없이 피곤한 상황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변수를 하나 더 끼워 넣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후배 쪽도 실장에게 바람을 좀 불어넣는 거지.’
그렇다.
입국하자마자 둘째 매니저 통해서 후배 그룹 2위에게 연락해 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조언해 주셨는데 제가 제대로 못 해서….
-아뇨. 성과를 거두신 거죠. 설득하셨잖아요. 물론 회사가 양보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심적으로 힘드신 건 안타깝습니다.
-예…. 아,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저희가 도리어 선배님과 선배님 팬분들께 폐를 끼쳤습니다!
-서로 피해를 본 거죠. 음… 그래도 많이 힘드시면, 매니지먼트실 쪽에 한 번 이야기해 보시는 방법도 있긴 한데요.
-매니지먼트실이요??
-그룹 케어는 매니지먼트실 담당이니까요. 차근히 말씀드리면 대변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미 기획된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앞으로는 되도록 선배 그룹과 엮이지 않고 싶다’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럼 이미 한번 내 조언을 써 먹어본 후배는 시도해 볼 것이다.
-…감사합니다! 기회 봐서 해보겠습니다.
야무진 타입 같았으니 잘 챙겨 먹었겠지.
그럼 이제 매니지먼트실 실장에게는 갑자기 섬광 같은 공통 비전이 생기는 것이다.
‘본부장이 아티스트의 의지를 묵살하고 있다!’
‘자체 제작이 가능한 아티스트들에게 무능한 본부장이 숟가락을 얹으려 무리하고 있다!’
아주 본인 마음에 드는 표어였겠다.
이걸 좀 더 공식적인 언어로 순화하면 아까 본 말이 나온다.
‘(본부장 말고) 아티스트 중심으로 가자!’
물론 실장이 진짜 아티스트의 케어에 대단한 관심이 있을 리는 없다. 그냥 본부장을 이겨 먹기 위해 그런 명분을 잡았다는 게 중요했다.
아마 테스타에게 우호적인 AR팀이나, 다 나온 컨셉 새로 포장하느라 사정없이 갈리는 중인 제작 마케팅 쪽에서 슬쩍 여기 편승할 테니까.
‘그럼 정말 파벌이 되는 거지.’
그리고 제법 효과가 있었나 보다.
당장 ‘아티스트 케어’의 상징인 매니저 인력이 이렇게 구조적으로 개편된 것을 보니 말이다.
마침 그 상징인 치프 매니저가 첫 매니저를 툭 치며 말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매니저 셋이 전담팀 된 기념으로 오늘 간단하게 한잔하는 게 어때요, 이야기도 좀 하고.”
“…어, 예예. 그럼요.”
첫 매니저는 결국 떫은 표정으로 굴복했다.
물론, 머리가 식으니 지랄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겨우 인지한 모양이다.
‘자업자득이지.’
나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뒤로 현재 회사 상황에 눈에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서로 견제하고, 아득바득 물어 뜯어줬으면 좋겠는데.’
낙하산 실장이 본부장을 누르고 회사 잡은 뒤 마음대로 해먹을 걱정은 없냐고?
그래, 없다.
‘그 새끼 일 못해.’
그냥… 이 엔터 사업에서 자기 업적과 공을 세우고 싶은 윗대가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기력만 다 소모하게 만들면 된다.
그사이에 그룹이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하면서, 실무진들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연습 화이팅입니다~ 여러분 금방 또 뵙겠습니다!”
“네!”
“잘 들어가세요!”
치프 매니저는 자기 번호를 뿌리며 ‘언제든 편하게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그제야 첫 매니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저 사람 좀 불편하지 않냐? 갑자기 와서 무슨.”
편들어 달라는 뜻이다.
큰세진이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에이, 처음 뵙는 분인데 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저희 신경 많이 써주시는 것 같아서 좀 기대가 돼요! 감사하기도 하고.”
“쉐이크 맛있어요!”
차유진이 옆에서 음료를 흔들었다.
결국, 첫 매니저는 욕지거리를 삼키는 것 같은 표정으로 연습실을 떴다.
‘멍청한 놈.’
나는 혀를 찼다.
애들이 바보도 아니고, 너보다 류청우가 일을 더 많이 하는 건 진작 다 알았을 것이다.
그게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 못 한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
저기 감탄사를 지르는 김래빈 같은 놈은 아마도 몰랐을….
“이제 알겠습니다!”
“…?!”
절묘한 타이밍에 나온 말에, 나는 생각을 멈췄다.
김래빈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문대 형이 녹음실에서 하신 말씀 덕에 이런 상황이….”
“잠깐.”
스탭 일곱 명이 주변에 있는데 이 이야기를 대놓고 꺼내다니.
아니, 그것보다도….
‘이놈이 이 상황을 이해했다고?’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김래빈은 꿋꿋했다.
“아, 문대가 무슨 말 했어?”
“예! 문대 형께서 그룹이 겪은 고난과 심적 고통을 공개적으로 공유해주신 덕에 회사에서 좋은 피드백을 주신 것 같습니다!”
“…….”
“오오, 그래? 문대가 막~ 힘들다고 했어?”
“예! 제게도 물어봐 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을 확실히 표현해야만 상대의 반응도 변하는 것을 이번 기회로 느꼈습니다.”
“이야~”
“……음.”
하이고.
그러니까, 이놈은 굉장히 기본적인 구조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테스타가 힘든 티를 확실히 냈다. → 회사에서 그룹 케어에 더 신경 써줬다!’
이 알고리즘 말이다.
택도 없는 이론 수준이었으나, 대인관계 사고방식이 비슷한 수준인 놈들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내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쪽으로 말이다.
“무, 문대야…….”
“…그랬구나.”
안 그랬다.
“언제나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도 이걸로 뿌듯해할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큰세진은 실실 웃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그러게요, 와, 문대 덕분에 잘 풀렸네~ 멋지다~”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다. 은근히 열받네.
…그러나 그다음에는 제법 뼈 있는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자. 문대문대, 우리도 입 있다? 래빈이 말고 우리한테도 공유하자고~”
“…!”
“그래, 문대야.”
류청우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룹이잖아. 머리가 일곱인데, 상의해 보면 좋은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
전적이 있다 보니, 내가 일부러 말을 흘린 것까지는 눈치 있는 놈들은 다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리고 부정하진 않겠다.
제법 합리적인 발언이었다.
‘좀 성급했나.’
나 혼자 처리하는 게 워낙 편하고 빨라서, 이게 그룹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라는 걸 자꾸 간과한단 말이지.
이놈들도 다 영향을 받으니 분명 상의할 자격이 있었다.
‘앞으로는 좀… 이야기한 후에 진행해도 괜찮겠어.’
매일 얼굴 보는 처지에,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네요.”
“그래!”
류청우는 농담조로 한마디 덧붙였다.
“서로 보완할 부분이 있으니까 팬분들, 음, 그러니까… ‘주주님’들이 이렇게 뽑아주시지 않았겠어?”
“저는 머리 좋아요!”
“차유진은 공식적인 지능 측정 결과가 없습니다. 주관적인 의견….”
“김래빈보다 좋아요.”
“그래? 그럼 나중에 우리 컨텐츠로 심리 검사도 한번 해볼까? 그 뭐더라, MBTI도 정식으로 해보고.”
“좋아요!”
“아주 재밌는 컨텐츠가 될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말싸움이 불발로 끝났다.
‘괜히 리더가 아니긴 하군.’
나는 새삼스럽게 류청우를 훑었다.
이 그룹 구성원으로서 인식이 굳어질수록, 이놈에 대한 경험적 거부감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음, 괜찮은데.’
이젠 슬슬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나는 내심 인정했다.
옆에서 선아현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그럼 앞으로는… 힘들면 꼭, 서로 많이 의논하자…!”
“그래.”
연습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하필 이걸 카메라에 못 잡았다며, 소리죽여 통곡하는 스탭들을 뒤로한 채 곧 연습이 재개되었다.
또 며칠 뒤.
“오.”
드디어 공개된 미리내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서는 ‘마법소년’의 흔적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었다.
-가편집까지는 컷신으로 중간에 짧은 영상이 삽입되어 있었거든요!!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선배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를 통해 거의 세배라도 올릴 것 같은 후배의 일방적인 감사가 도착했다.
‘깔끔하군.’
소속사에서 은근히 부추기던, 미리내를 테스타와 굳이 엮는 기사들도 메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테스타의 팬들도 더 기분 나쁜 떡밥이 없자 ‘티원이 티원했다’면서 일단은 넘어 가줬다.
앵콜 콘서트 유닛 무대 소식이 터지며 관심이 그쪽으로 쭉 쏠렸기 때문이다.
-미친 차고영 문댕댕 유닛? 케이팝 기강 잡으러 오셨다 못 보면 죽음뿐
이런 반응을 보니, 더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와하하!”
나는 옆 침대에서 뒹구는 차유진을 보며, 오랜만에 속으로 불러봤다.
‘상태창.’
단, 우선 확인하는 건 내 것이 아니다.
차유진의 상태창이지.
‘유닛 무대 최종 확정 전에 한 번 더 확인해서 대응책을 완성한다.’
안 그래도 괴물 같던 저놈 스탯, 어떻게 변했는지 보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9화
심어놓은 ‘폭탄’이 터진 것은 얼마 후, 비하인드 카메라가 붙은 채로 앵콜 콘서트 연습을 하는 도중이었다.
“자, 오른쪽으로~ 발 차고, 다시 옆으로… 형, 조심하세요!”
“……큽.”
발이 꼬일 뻔한 배세진이 귀가 시뻘게진 채로 다시 안무를 재정비했다.
춤 스탯이 C까지 올라왔는데도 그만큼 더 괴악해진 안무 난이도에 고전 중인 것이다.
‘나도 남 말할 때가 아니지만.’
차유진과 유닛 무대를 하려면 스탯을 재정비해야겠다 생각한 찰나.
안무 연습실 문 뒤편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언성을 높이는 것 같은 소리였다.
‘왔나.’
감이 왔다. 하지만 굳이 아는 척할 필요는 없다.
“뭐지?”
“음?”
일단 당장 카메라부터 눈치껏 촬영이 종료되었다. 무시하기엔 소리가 제법 컸기 때문이다.
안무는 마침 후렴을 지나 마무리되었고, 멤버들은 동작을 마무리하고 당황 반 걱정 반으로 연습실 문을 쳐다보았다.
“누, 누가 말씀 나누시는 걸까요…?”
“…지금 여기 다른 사람은 없을 텐데.”
“잠시만.”
눈짓을 남긴 류청우가 일어나서 상황을 파악하려던 순간, 한발 먼저 문이 열리더니 안면 없는 놈이 벌컥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 붉으락푸르락 안색이 처참한 첫 매니저가 황급히 따라 들어왔다.
놈은 첫 매니저를 무시하고 우리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손에 든 테이크아웃 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 테스타 아티스트분들. 어휴, 반갑습니다! 아, 이거 하나 드시면서 연습 화이팅하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누구세요??”
놈은 냉큼 음료부터 받아든 차유진의 말에 깔끔하게 대답했다.
“아, 저는 이번에 새로 온 매니저입니다.”
“예?”
당연하지만, 얼마 전 도넛 들고 온 실장의 사촌동생과 겹쳤다.
“음, 며칠 전에 뵌 분하고 다른 분이신데요~?”
“그 친구는 이제 여러분 따라다니면서 로드매니저로 일할 거고, 저는 총괄!”
총괄.
즉, 치프 매니저라는 뜻이다.
지금까지 전담 매니저이던 첫 매니저는 갑자기 굴러들어온 돌을 졸지에 상사로 모시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렇게 바쁜 스케줄이면 전담이 셋은 붙어야 제대로 돌아갔을 텐데… 아이고, 앞으로는 걱정 마세요. 제가 다 처리할 테니까 불편한 건 바로바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아니…….”
음, 첫 매니저는 아직도 당황한 모양새다. 아무 언질도 못 받았나 보지?
치프 매니저가 된 놈은 그제야 첫 매니저를 보며 유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김 매니저, 혼자 하느라 지금까지 고생 많았겠어요. 앞으로는 좀 더 체계적으로 아티스트 분들의 니즈를 관리해 봅시다. 부상이나 컨디션 체크도 매일 시간대별로 진행해 보고.”
첫 매니저가 그동안 그룹 케어를 제대로 못해서 승진 라인에서 밀려났다고 광고를 하는군.
그래, 저게 매니지먼트 실장이 새롭게 밀게 될 명분이다.
‘아티스트 중심 케어!’
만약에 내가 그놈에게 바람 불어넣는 것으로 끝이었다면, 실장과 본부장의 구도는 선배 그룹 대 후배 그룹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본부장이 후배 쪽을 미니까 본인은 남은 옵션인 선배-테스타 골라 버렸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 두 그룹이 소모적으로 정치질에 이용당한다는, 쓸데없이 피곤한 상황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변수를 하나 더 끼워 넣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후배 쪽도 실장에게 바람을 좀 불어넣는 거지.’
그렇다.
입국하자마자 둘째 매니저 통해서 후배 그룹 2위에게 연락해 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조언해 주셨는데 제가 제대로 못 해서….
-아뇨. 성과를 거두신 거죠. 설득하셨잖아요. 물론 회사가 양보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심적으로 힘드신 건 안타깝습니다.
-예…. 아,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저희가 도리어 선배님과 선배님 팬분들께 폐를 끼쳤습니다!
-서로 피해를 본 거죠. 음… 그래도 많이 힘드시면, 매니지먼트실 쪽에 한 번 이야기해 보시는 방법도 있긴 한데요.
-매니지먼트실이요??
-그룹 케어는 매니지먼트실 담당이니까요. 차근히 말씀드리면 대변해주시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미 기획된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앞으로는 되도록 선배 그룹과 엮이지 않고 싶다’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그럼 이미 한번 내 조언을 써 먹어본 후배는 시도해 볼 것이다.
-…감사합니다! 기회 봐서 해보겠습니다.
야무진 타입 같았으니 잘 챙겨 먹었겠지.
그럼 이제 매니지먼트실 실장에게는 갑자기 섬광 같은 공통 비전이 생기는 것이다.
‘본부장이 아티스트의 의지를 묵살하고 있다!’
‘자체 제작이 가능한 아티스트들에게 무능한 본부장이 숟가락을 얹으려 무리하고 있다!’
아주 본인 마음에 드는 표어였겠다.
이걸 좀 더 공식적인 언어로 순화하면 아까 본 말이 나온다.
‘(본부장 말고) 아티스트 중심으로 가자!’
물론 실장이 진짜 아티스트의 케어에 대단한 관심이 있을 리는 없다. 그냥 본부장을 이겨 먹기 위해 그런 명분을 잡았다는 게 중요했다.
아마 테스타에게 우호적인 AR팀이나, 다 나온 컨셉 새로 포장하느라 사정없이 갈리는 중인 제작 마케팅 쪽에서 슬쩍 여기 편승할 테니까.
‘그럼 정말 파벌이 되는 거지.’
그리고 제법 효과가 있었나 보다.
당장 ‘아티스트 케어’의 상징인 매니저 인력이 이렇게 구조적으로 개편된 것을 보니 말이다.
마침 그 상징인 치프 매니저가 첫 매니저를 툭 치며 말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매니저 셋이 전담팀 된 기념으로 오늘 간단하게 한잔하는 게 어때요, 이야기도 좀 하고.”
“…어, 예예. 그럼요.”
첫 매니저는 결국 떫은 표정으로 굴복했다.
물론, 머리가 식으니 지랄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겨우 인지한 모양이다.
‘자업자득이지.’
나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 뒤로 현재 회사 상황에 눈에 보이는 것 같았으니까.
‘서로 견제하고, 아득바득 물어 뜯어줬으면 좋겠는데.’
낙하산 실장이 본부장을 누르고 회사 잡은 뒤 마음대로 해먹을 걱정은 없냐고?
그래, 없다.
‘그 새끼 일 못해.’
그냥… 이 엔터 사업에서 자기 업적과 공을 세우고 싶은 윗대가리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기력만 다 소모하게 만들면 된다.
그사이에 그룹이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하면서, 실무진들은 자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연습 화이팅입니다~ 여러분 금방 또 뵙겠습니다!”
“네!”
“잘 들어가세요!”
치프 매니저는 자기 번호를 뿌리며 ‘언제든 편하게 연락 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그제야 첫 매니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얘들아, 저 사람 좀 불편하지 않냐? 갑자기 와서 무슨.”
편들어 달라는 뜻이다.
큰세진이 밝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에이, 처음 뵙는 분인데 좀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저희 신경 많이 써주시는 것 같아서 좀 기대가 돼요! 감사하기도 하고.”
“쉐이크 맛있어요!”
차유진이 옆에서 음료를 흔들었다.
결국, 첫 매니저는 욕지거리를 삼키는 것 같은 표정으로 연습실을 떴다.
‘멍청한 놈.’
나는 혀를 찼다.
애들이 바보도 아니고, 너보다 류청우가 일을 더 많이 하는 건 진작 다 알았을 것이다.
그게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 못 한 녀석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
저기 감탄사를 지르는 김래빈 같은 놈은 아마도 몰랐을….
“이제 알겠습니다!”
“…?!”
절묘한 타이밍에 나온 말에, 나는 생각을 멈췄다.
김래빈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문대 형이 녹음실에서 하신 말씀 덕에 이런 상황이….”
“잠깐.”
스탭 일곱 명이 주변에 있는데 이 이야기를 대놓고 꺼내다니.
아니, 그것보다도….
‘이놈이 이 상황을 이해했다고?’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김래빈은 꿋꿋했다.
“아, 문대가 무슨 말 했어?”
“예! 문대 형께서 그룹이 겪은 고난과 심적 고통을 공개적으로 공유해주신 덕에 회사에서 좋은 피드백을 주신 것 같습니다!”
“…….”
“오오, 그래? 문대가 막~ 힘들다고 했어?”
“예! 제게도 물어봐 주셨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을 확실히 표현해야만 상대의 반응도 변하는 것을 이번 기회로 느꼈습니다.”
“이야~”
“……음.”
하이고.
그러니까, 이놈은 굉장히 기본적인 구조를 파악했다는 뜻이다.
‘테스타가 힘든 티를 확실히 냈다. → 회사에서 그룹 케어에 더 신경 써줬다!’
이 알고리즘 말이다.
택도 없는 이론 수준이었으나, 대인관계 사고방식이 비슷한 수준인 놈들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내가 많이 힘들어했다는 쪽으로 말이다.
“무, 문대야…….”
“…그랬구나.”
안 그랬다.
“언제나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도 이걸로 뿌듯해할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큰세진은 실실 웃으면서 박수를 보냈다.
“그러게요, 와, 문대 덕분에 잘 풀렸네~ 멋지다~”
이 새끼 일부러 이러는 거다. 은근히 열받네.
…그러나 그다음에는 제법 뼈 있는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자. 문대문대, 우리도 입 있다? 래빈이 말고 우리한테도 공유하자고~”
“…!”
“그래, 문대야.”
류청우가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룹이잖아. 머리가 일곱인데, 상의해 보면 좋은 방법이 나올 수도 있지.”
“…….”
전적이 있다 보니, 내가 일부러 말을 흘린 것까지는 눈치 있는 놈들은 다 알아차린 모양이다.
그리고 부정하진 않겠다.
제법 합리적인 발언이었다.
‘좀 성급했나.’
나 혼자 처리하는 게 워낙 편하고 빨라서, 이게 그룹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이라는 걸 자꾸 간과한단 말이지.
이놈들도 다 영향을 받으니 분명 상의할 자격이 있었다.
‘앞으로는 좀… 이야기한 후에 진행해도 괜찮겠어.’
매일 얼굴 보는 처지에, 그렇게 시간이 지체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네요.”
“그래!”
류청우는 농담조로 한마디 덧붙였다.
“서로 보완할 부분이 있으니까 팬분들, 음, 그러니까… ‘주주님’들이 이렇게 뽑아주시지 않았겠어?”
“저는 머리 좋아요!”
“차유진은 공식적인 지능 측정 결과가 없습니다. 주관적인 의견….”
“김래빈보다 좋아요.”
“그래? 그럼 나중에 우리 컨텐츠로 심리 검사도 한번 해볼까? 그 뭐더라, MBTI도 정식으로 해보고.”
“좋아요!”
“아주 재밌는 컨텐츠가 될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말싸움이 불발로 끝났다.
‘괜히 리더가 아니긴 하군.’
나는 새삼스럽게 류청우를 훑었다.
이 그룹 구성원으로서 인식이 굳어질수록, 이놈에 대한 경험적 거부감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음, 괜찮은데.’
이젠 슬슬 이전 수준으로 돌아온 것 같다. 나는 내심 인정했다.
옆에서 선아현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그럼 앞으로는… 힘들면 꼭, 서로 많이 의논하자…!”
“그래.”
연습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리고 하필 이걸 카메라에 못 잡았다며, 소리죽여 통곡하는 스탭들을 뒤로한 채 곧 연습이 재개되었다.
또 며칠 뒤.
“오.”
드디어 공개된 미리내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서는 ‘마법소년’의 흔적이 완전히 제거되어 있었다.
-가편집까지는 컷신으로 중간에 짧은 영상이 삽입되어 있었거든요!!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선배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매니저를 통해 거의 세배라도 올릴 것 같은 후배의 일방적인 감사가 도착했다.
‘깔끔하군.’
소속사에서 은근히 부추기던, 미리내를 테스타와 굳이 엮는 기사들도 메인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테스타의 팬들도 더 기분 나쁜 떡밥이 없자 ‘티원이 티원했다’면서 일단은 넘어 가줬다.
앵콜 콘서트 유닛 무대 소식이 터지며 관심이 그쪽으로 쭉 쏠렸기 때문이다.
-미친 차고영 문댕댕 유닛? 케이팝 기강 잡으러 오셨다 못 보면 죽음뿐
이런 반응을 보니, 더 제대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와하하!”
나는 옆 침대에서 뒹구는 차유진을 보며, 오랜만에 속으로 불러봤다.
‘상태창.’
단, 우선 확인하는 건 내 것이 아니다.
차유진의 상태창이지.
‘유닛 무대 최종 확정 전에 한 번 더 확인해서 대응책을 완성한다.’
안 그래도 괴물 같던 저놈 스탯, 어떻게 변했는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