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9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4화
VTIC의 청려.
‘휴가 이후로 처음인가.’
사실 예상대로 별 감흥은 없다. 그동안 조용했던 걸 보니 이제 쓸데없는 개짓거리 할 확률도 낮겠고.
‘대충 묻어가면 되겠군.’
아니나 다를까, 다른 놈들이 떠드는 소리만 들린다. 떠들썩한 시상식장을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키운 것 같다.
“리얼리티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컴백이 연기됐으니 아마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동안 온갖 영상물을 섭렵한 모양이다.
그러나 VTIC 놈은 내 동요 없음을 자기 말이 빈말처럼 들린 탓이라 오해했는지, 굳이 또 말을 잇는다.
“아니, 우리 다 같이 봤는데 진짜 재밌더라고요!”
“맞아, 형도 재밌었죠?”
“…!”
한 놈이 맞장구를 유도하며 청려를 대화로 끌어들였다.
‘그냥 가라 좀.’
방금까진 적당한 친목이라고 쳐도 이제 분위기 X 되게 생겼는데 직캠에라도 잡히면 루머 생성기다.
‘이 새끼들 진짜 귀찮네.’
탄식하는 순간, 청려와 눈이 마주쳤다.
“…….”
놈은 살짝 고갯짓했다.
그게 전부였다.
‘오.’
정말 상황에 맞는 적절한 태도라 약간 놀랍군.
머리를 얻어맞고서야 저놈 대가리에도 드디어 상식이 돌아왔나 싶은 순간이었다.
“아~ 선배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선배님들 무대 요새 너무 많이 챙겨보잖아요~”
“오~ 좀 쑥스럽네!”
“그러게!”
“그래서 오늘 진짜 경건한 자세로 집중하려고 방석까지 챙겨왔죠!”
“와하하! 그래서 가져온 거였어요?”
“그럼요~ 선배님 파이팅!”
“예, 후배님도 파이팅!”
큰세진이 알아서 대화를 진행시켜 끝냈다.
진짜 소라도 사야 하나.
‘밥값 하는군.’
저기 배세진도 VTIC 쪽을 노려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밥값은 한다고 쳐주겠다.
그리고 VTIC이 자기 자리로 가는 순간, 큰세진이 곧바로 관객석에선 보이지 않도록 입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어딜 많이 때렸다는 거야? 흔적도 안 보이는데.”
“뒷머리. 목.”
청려는 검은 목티를 입고 있었다. 아직 흉을 못 지운 게 분명했다.
큰세진은 순간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기색을 지웠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한 해의 시작, 지난해의 활약을 돌아보는….]
그리고 그 순간, 무대에서 MC의 인사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방송 송출이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지루하겠군.’
나는 표 나지 않게 등받이에 체중을 실었다.
리액션 기계를 운영할 시간이었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바쁜 스케줄 중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타임이 있다는 건 편한 일이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대만 보며 집중하는 기색을 보여야 한다는 건 상당한 불편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사 첫 녹화 때보단 낫지.’
최소한 지금 무대 퍼포먼스를 하는 놈들은 다 수상 실적이 있을 예정인 놈들이니 말이다.
와아아아아!
나는 방금 끝난 모 그룹의 무대에 함성에 맞춰 박수를 보냈다.
현대 무용을 적당히 접목한 댄스 퍼포먼스를 추가했던데, 솔직히 중앙에 선 한 명을 제외하곤 썩 재미 볼 정도는 아니었다.
인지도 있는 아이돌 전체를 아주사 등급으로 치환하자면… 골드와 실버 사이 정도인가.
음, 전공자의 고견을 한번 들어보자.
“무대 어때.”
“나, 나?”
“응.”
“음… 여, 열심히 하셔서 멋진 것 같아. 음, 익스텐션이, 예쁘고.”
잘한다는 소리는 못 하는군. 잘 알겠다.
그렇게 적당히 직캠에 무례하게 비치지 않을 정도의 리액션을 유지하며 버틴 결과.
[러뷰어 사랑해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올 한 해 정말 행복한 활동이었습니다.]
한 시간 반 만에 본상 수상 소감을 말한 직후, 슬슬 우리 무대를 준비할 타임이 왔다.
“이동, 이동.”
“오케이.”
그리고 이번 무대는 그냥 시상식 시즌의 여러 특별 무대 중 하나로 흘려보낼 것은 아니었다.
성공적인 리얼리티 방영 이후 첫 무대였으니까.
예능으로 받은 대중적 관심을 다시 한번 무대로 끌어와야 아이돌 그룹으로서 호감을 소화할 수 있었다.
‘결국 본업을 잘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이번엔 힘을 좀 줘봤다.
-마침내 찾아온 날
행차
그르르르- 워!
무대에서 수많은 댄서를 대동하고 두 갈래로 나뉜 안무가 부딪히는 순간, 산수화와 짐승 그림이 그려진 색색의 깃발이 나부꼈다.
그리고 흡사 공처럼 보이는 레이저 효과를 이용한 날렵한 댄스 브레이크.
화려한 색채와 움직임이 공격적인 편곡과 맞물린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무관들이 했다는 전통 놀이인 ‘기마 격구’를 응용한 퍼포먼스였다.
환호가 인이어를 뚫었다.
우와아아아악!!!
아악!
콘서트에서 선보인 댄스 브레이크 파트를 더 짧고 간단히 변형한 형태에 추가했는데 반응이 썩 괜찮았다.
지난번에도 생각했던가? 웃기지만, 이젠 무대 위에서 분위기만으로도 대충 구분이 가능했다.
적당히 받아들여 줄 만한 무대였는지, 아니면 정말 볼 만한 무대였는지.
이번엔 확실한 후자였다.
“후우.”
“바닥 미끄러웠는데 다들 잘했어.”
“훌륭했죠~”
큰세진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쉬운지 슬쩍 위를 쳐다보았다. 계획보다 더 과격한 움직임을 못 보여준 모양이었다.
“그래, 고생했다. 오랜만의 국내 무대였지?”
“그렇죠.”
“재밌어요!”
실수 없이 깔끔한 무대에, 카메라 불 들어오는 걸 보니 퍼포먼스도 그럭저럭 리허설대로 잘 잡힌 것 같았다.
다들 제법 뿌듯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마침 VTIC은 근처에 없었다.
‘무대가 다다음쯤이던가.’
이제 생방송도 거의 끝나가는 마당이니 마지막 무대 순서가 준비하러 갔을 법도 했다.
남은 시상도 인기상과 대상뿐이다.
‘이 타이밍에 수상하면 백스테이지에서 튀어나오겠군.’
몇 번 본 적 있는 그림이긴 한데, 솔직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오는 것보다 임팩트는 떨어진단 말이지.
올해 이 동네 시상식 구성이 다소 어설프다고 생각하며, 나는 화면의 VCR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골드디스크 인기상 수상자는… 축하드립니다. 테스타!]
인기상 시상자가 테스타를 호명했다.
“…!!”
“어?? 어어?!”
무대가 끝나고 약간 늘어지게 앉아있던 놈들이 벌떡 몸을 추켜세웠다.
그럴 만했다.
이건… 솔직히 예상 못 한 상황이다.
얼마 전 ‘불건전한 경쟁을 부추긴다’며 제재를 받은 후, 인기상 투표 현황은 총투표수만 표기되는 비공개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보통 감이라는 게 있지.’
인기상은 음반 대상 수상자가 함께 수상하는 경우가 잦단 말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가 된 시대다. 굳이 음반 사주는 사람이 많은 가수? 곡 하나가 아니라 그 가수 자체가 인기 많은 놈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전문가 심사’라는 명목의 주최 측 개입 없이, 100% 투표로 받는 상을 VTIC이 아니라 테스타가 받았다.
‘아무리 VTIC 팬들이 덜 참여했어도 그렇지.’
이번 시상식도 불참이라고 짐작한 VTIC 팬들이 투표에 거의 막판까지 그리 열성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는 건 안다.
그걸 고려해도 놀라운 결과다.
‘참석 기사 난 뒤에는 분명 후반 러쉬가 있었을 텐데.’
이건 소위 말해… ‘비벼볼 만한’ 상태가 됐다는 뜻 아닌가.
이상한 희열 같은 게 슬쩍 등을 치고 지나갔다.
‘침착하자.’
어쨌든, 순식간에 지나간 이 생각과 별개로 몸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꾸벅 조아리고 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우와!”
어리벙벙한 얼굴로 일어서는 놈부터 신나서 뛰쳐나가는 놈까지 다양하다만, 어쨌든 다들 딱히 기대는 안 한 모양새다. 당연했다.
‘주최 측에서도 말 없었는데.’
아마 놀라는 컷을 제대로 뽑고 싶었나 보다. 음흉한 놈들.
우리는 클로즈업을 열심히 따는 카메라를 대동한 채 삐걱거리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다만 손 흔드는 팬들에게 인사하느라 자연스럽게 대열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스태프가 내미는 핸드 마이크가 리더가 아닌 엉뚱한 놈에게 가버렸다.
김래빈이다.
“어… 그.”
당황했군. 역시 즉석 소감은 이놈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과제였나.
‘하지만 일단 운을 뗐으니 뭐라도 말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만이라도 해라.
“감사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김래빈은 한 번 운을 떼니 탄력을 받은 모양이다. 계속 마이크를 잡고 와다다다 긴말을 뱉었다.
“착호갑사 앨범을 준비하며 과연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잦은 우려가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많은 분께서 투표해 주셔서 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마치 그룹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발 문장을 끊자.
그래도 이 정도라면 장황하긴 해도 합격점이었다.
이대로 잘 마무리되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개인 곡이라는 모험적 선택… 으어어억, 죄송합니다!”
그러나 김래빈은 결국 앞에서 스태프의 사인을 발견하고서야, 기겁하며 정중히 자신의 마이크를 나에게 상납했다.
“…??”
왜 날 주냐. 옆에 리더가 있는데.
관객석에서 폭소가 나왔다. 김래빈은 얼굴이 가리고 공손히 뒤로 물러났다.
‘차라리 다행인가.’
지금 그라운드를 꽉 채운 관객 중 절반 이상이 VTIC 팬인데, 그나마 그쪽 분위기가 좀 풀어졌거든.
2년도 못 채운 햇병아리들이 수상하고 당황하는 꼴을 보니 ‘이번만 봐준다’는 정신승리가 가능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마이크를 류청우에게 넘기려 했으나, 류청우가 웃으며 내가 하라는 시늉을 했다.
아마 본상 소감도 본인이 했으니 양보하는 것 같다.
‘괜찮은데.’
나는 떨떠름해하면서도 마이크를 들었다.
“래빈이가 참 똑똑해요. 저도 래빈이 말에 다 공감합니다.”
다시 터진 작은 웃음소리 뒤, 나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서 저희에게 투표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더 투표할 가치가 있는 앨범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러뷰어 사랑해요! 저 완전 좋아요!”
엄지 손을 치켜드는 차유진을 마지막으로 수상 시간이 끝났다.
백스테이지를 거치는 짧은 시간에도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화는 아직 나눌 수 없었으나, 다들 체감한 것 같았다.
이제 테스타 체급이 1군 수문장이 아니라 너끈히 그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이다.
‘동기 부여 확실하군.’
혹시 내년쯤 되면 순조롭게 VTIC과 라이벌 구도까지 만들 수 있는 건 아닌지, 회사 사람들이 헛꿈을 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잠시 뒤.
VTIC의 컴백 무대를 보니, 회사도 짧은 꿈을 접었겠구나 싶다.
아아아아악!!
관객석의 환성이 귀를 찢을 것 같이 컸다. 그럴 만했다.
‘더럽게 잘하긴 한다.’
4명으로 인원이 줄었는데도 댄서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빈 곳이 없다. 그리고 곡빨이 끝내준다.
‘회사가 일을 잘하면 저게 되는군.’
도저히 수습 안 되는 놈은 빠르게 잘라내고, 나머지는 휴식 기간 내내 기사 하나 안 나게 철저히 케어했다.
심지어 청려 부상도 대외적으로 한 번도 뜬 적 없다. 이번 대처 하나로도 회사의 연륜과 능력, 비전까지 한 번에 느껴졌다.
그 결과. 잘 다듬어진 여론 속에서 저 완벽한 무대 하나로 VTIC은 순조롭게 하락세 위기를 벗어날 게 눈에 보였다.
한마디로, 어떤 소속사와 매우 비교된다.
‘음, 퇴사하고 싶다.’
모든 직장인의 꿈을 읊조리고 있자니 곧 VTIC의 긴 무대가 마무리되고 대상이 발표된다.
뭐, 뻔하다.
[대상은… VTIC의 !]
태도 논란 만들기 싫으면 열심히 일어나서 박수나 치자.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가… 흐읍, 저희 정말 더 잘할게요.]
저쪽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울음바다다. 훌쩍이는 소리가 소감뿐만 아니라 관객석에서까지 들려온다.
‘음.’
다만 청려의 얼굴은 깨끗했다.
놈은 다른 놈들을 버릇처럼 몇 번 달래는 시늉을 하고, 맨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여상스러운 어조로 소감을 시작했다.
[잘 모르겠네요.]
미친놈인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94화
VTIC의 청려.
‘휴가 이후로 처음인가.’
사실 예상대로 별 감흥은 없다. 그동안 조용했던 걸 보니 이제 쓸데없는 개짓거리 할 확률도 낮겠고.
‘대충 묻어가면 되겠군.’
아니나 다를까, 다른 놈들이 떠드는 소리만 들린다. 떠들썩한 시상식장을 의식했는지 목소리를 키운 것 같다.
“리얼리티 잘 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컴백이 연기됐으니 아마 집에서 조용히 지내는 동안 온갖 영상물을 섭렵한 모양이다.
그러나 VTIC 놈은 내 동요 없음을 자기 말이 빈말처럼 들린 탓이라 오해했는지, 굳이 또 말을 잇는다.
“아니, 우리 다 같이 봤는데 진짜 재밌더라고요!”
“맞아, 형도 재밌었죠?”
“…!”
한 놈이 맞장구를 유도하며 청려를 대화로 끌어들였다.
‘그냥 가라 좀.’
방금까진 적당한 친목이라고 쳐도 이제 분위기 X 되게 생겼는데 직캠에라도 잡히면 루머 생성기다.
‘이 새끼들 진짜 귀찮네.’
탄식하는 순간, 청려와 눈이 마주쳤다.
“…….”
놈은 살짝 고갯짓했다.
그게 전부였다.
‘오.’
정말 상황에 맞는 적절한 태도라 약간 놀랍군.
머리를 얻어맞고서야 저놈 대가리에도 드디어 상식이 돌아왔나 싶은 순간이었다.
“아~ 선배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도 선배님들 무대 요새 너무 많이 챙겨보잖아요~”
“오~ 좀 쑥스럽네!”
“그러게!”
“그래서 오늘 진짜 경건한 자세로 집중하려고 방석까지 챙겨왔죠!”
“와하하! 그래서 가져온 거였어요?”
“그럼요~ 선배님 파이팅!”
“예, 후배님도 파이팅!”
큰세진이 알아서 대화를 진행시켜 끝냈다.
진짜 소라도 사야 하나.
‘밥값 하는군.’
저기 배세진도 VTIC 쪽을 노려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밥값은 한다고 쳐주겠다.
그리고 VTIC이 자기 자리로 가는 순간, 큰세진이 곧바로 관객석에선 보이지 않도록 입을 가리고 작게 말했다.
“…어딜 많이 때렸다는 거야? 흔적도 안 보이는데.”
“뒷머리. 목.”
청려는 검은 목티를 입고 있었다. 아직 흉을 못 지운 게 분명했다.
큰세진은 순간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얼른 기색을 지웠다.
그리고 그 순간, 무대에서 MC의 인사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본방송 송출이 시작된 것이다.
‘한동안 지루하겠군.’
나는 표 나지 않게 등받이에 체중을 실었다.
리액션 기계를 운영할 시간이었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바쁜 스케줄 중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타임이 있다는 건 편한 일이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대만 보며 집중하는 기색을 보여야 한다는 건 상당한 불편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아주사 첫 녹화 때보단 낫지.’
최소한 지금 무대 퍼포먼스를 하는 놈들은 다 수상 실적이 있을 예정인 놈들이니 말이다.
와아아아아!
나는 방금 끝난 모 그룹의 무대에 함성에 맞춰 박수를 보냈다.
현대 무용을 적당히 접목한 댄스 퍼포먼스를 추가했던데, 솔직히 중앙에 선 한 명을 제외하곤 썩 재미 볼 정도는 아니었다.
인지도 있는 아이돌 전체를 아주사 등급으로 치환하자면… 골드와 실버 사이 정도인가.
음, 전공자의 고견을 한번 들어보자.
“무대 어때.”
“나, 나?”
“응.”
“음… 여, 열심히 하셔서 멋진 것 같아. 음, 익스텐션이, 예쁘고.”
잘한다는 소리는 못 하는군. 잘 알겠다.
그렇게 적당히 직캠에 무례하게 비치지 않을 정도의 리액션을 유지하며 버틴 결과.
한 시간 반 만에 본상 수상 소감을 말한 직후, 슬슬 우리 무대를 준비할 타임이 왔다.
“이동, 이동.”
“오케이.”
그리고 이번 무대는 그냥 시상식 시즌의 여러 특별 무대 중 하나로 흘려보낼 것은 아니었다.
성공적인 리얼리티 방영 이후 첫 무대였으니까.
예능으로 받은 대중적 관심을 다시 한번 무대로 끌어와야 아이돌 그룹으로서 호감을 소화할 수 있었다.
‘결국 본업을 잘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이번엔 힘을 좀 줘봤다.
-마침내 찾아온 날
행차
그르르르- 워!
무대에서 수많은 댄서를 대동하고 두 갈래로 나뉜 안무가 부딪히는 순간, 산수화와 짐승 그림이 그려진 색색의 깃발이 나부꼈다.
그리고 흡사 공처럼 보이는 레이저 효과를 이용한 날렵한 댄스 브레이크.
화려한 색채와 움직임이 공격적인 편곡과 맞물린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무관들이 했다는 전통 놀이인 ‘기마 격구’를 응용한 퍼포먼스였다.
환호가 인이어를 뚫었다.
우와아아아악!!!
아악!
콘서트에서 선보인 댄스 브레이크 파트를 더 짧고 간단히 변형한 형태에 추가했는데 반응이 썩 괜찮았다.
지난번에도 생각했던가? 웃기지만, 이젠 무대 위에서 분위기만으로도 대충 구분이 가능했다.
적당히 받아들여 줄 만한 무대였는지, 아니면 정말 볼 만한 무대였는지.
이번엔 확실한 후자였다.
“후우.”
“바닥 미끄러웠는데 다들 잘했어.”
“훌륭했죠~”
큰세진이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쉬운지 슬쩍 위를 쳐다보았다. 계획보다 더 과격한 움직임을 못 보여준 모양이었다.
“그래, 고생했다. 오랜만의 국내 무대였지?”
“그렇죠.”
“재밌어요!”
실수 없이 깔끔한 무대에, 카메라 불 들어오는 걸 보니 퍼포먼스도 그럭저럭 리허설대로 잘 잡힌 것 같았다.
다들 제법 뿌듯한 얼굴로 숨을 고르고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마침 VTIC은 근처에 없었다.
‘무대가 다다음쯤이던가.’
이제 생방송도 거의 끝나가는 마당이니 마지막 무대 순서가 준비하러 갔을 법도 했다.
남은 시상도 인기상과 대상뿐이다.
‘이 타이밍에 수상하면 백스테이지에서 튀어나오겠군.’
몇 번 본 적 있는 그림이긴 한데, 솔직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오는 것보다 임팩트는 떨어진단 말이지.
올해 이 동네 시상식 구성이 다소 어설프다고 생각하며, 나는 화면의 VCR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인기상 시상자가 테스타를 호명했다.
“…!!”
“어?? 어어?!”
무대가 끝나고 약간 늘어지게 앉아있던 놈들이 벌떡 몸을 추켜세웠다.
그럴 만했다.
이건… 솔직히 예상 못 한 상황이다.
얼마 전 ‘불건전한 경쟁을 부추긴다’며 제재를 받은 후, 인기상 투표 현황은 총투표수만 표기되는 비공개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보통 감이라는 게 있지.’
인기상은 음반 대상 수상자가 함께 수상하는 경우가 잦단 말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가 된 시대다. 굳이 음반 사주는 사람이 많은 가수? 곡 하나가 아니라 그 가수 자체가 인기 많은 놈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전문가 심사’라는 명목의 주최 측 개입 없이, 100% 투표로 받는 상을 VTIC이 아니라 테스타가 받았다.
‘아무리 VTIC 팬들이 덜 참여했어도 그렇지.’
이번 시상식도 불참이라고 짐작한 VTIC 팬들이 투표에 거의 막판까지 그리 열성적으로 달려들지 않았다는 건 안다.
그걸 고려해도 놀라운 결과다.
‘참석 기사 난 뒤에는 분명 후반 러쉬가 있었을 텐데.’
이건 소위 말해… ‘비벼볼 만한’ 상태가 됐다는 뜻 아닌가.
이상한 희열 같은 게 슬쩍 등을 치고 지나갔다.
‘침착하자.’
어쨌든, 순식간에 지나간 이 생각과 별개로 몸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꾸벅 조아리고 있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우와!”
어리벙벙한 얼굴로 일어서는 놈부터 신나서 뛰쳐나가는 놈까지 다양하다만, 어쨌든 다들 딱히 기대는 안 한 모양새다. 당연했다.
‘주최 측에서도 말 없었는데.’
아마 놀라는 컷을 제대로 뽑고 싶었나 보다. 음흉한 놈들.
우리는 클로즈업을 열심히 따는 카메라를 대동한 채 삐걱거리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다만 손 흔드는 팬들에게 인사하느라 자연스럽게 대열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스태프가 내미는 핸드 마이크가 리더가 아닌 엉뚱한 놈에게 가버렸다.
김래빈이다.
“어… 그.”
당황했군. 역시 즉석 소감은 이놈에게 너무 부담스러운 과제였나.
‘하지만 일단 운을 뗐으니 뭐라도 말해야 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해요’만이라도 해라.
“감사합니다.”
그렇지.
하지만 김래빈은 한 번 운을 떼니 탄력을 받은 모양이다. 계속 마이크를 잡고 와다다다 긴말을 뱉었다.
“착호갑사 앨범을 준비하며 과연 대중적으로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잦은 우려가 있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많은 분께서 투표해 주셔서 상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마치 그룹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발 문장을 끊자.
그래도 이 정도라면 장황하긴 해도 합격점이었다.
이대로 잘 마무리되었다면 말이다.
“그리고 개인 곡이라는 모험적 선택… 으어어억, 죄송합니다!”
그러나 김래빈은 결국 앞에서 스태프의 사인을 발견하고서야, 기겁하며 정중히 자신의 마이크를 나에게 상납했다.
“…??”
왜 날 주냐. 옆에 리더가 있는데.
관객석에서 폭소가 나왔다. 김래빈은 얼굴이 가리고 공손히 뒤로 물러났다.
‘차라리 다행인가.’
지금 그라운드를 꽉 채운 관객 중 절반 이상이 VTIC 팬인데, 그나마 그쪽 분위기가 좀 풀어졌거든.
2년도 못 채운 햇병아리들이 수상하고 당황하는 꼴을 보니 ‘이번만 봐준다’는 정신승리가 가능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마이크를 류청우에게 넘기려 했으나, 류청우가 웃으며 내가 하라는 시늉을 했다.
아마 본상 소감도 본인이 했으니 양보하는 것 같다.
‘괜찮은데.’
나는 떨떠름해하면서도 마이크를 들었다.
“래빈이가 참 똑똑해요. 저도 래빈이 말에 다 공감합니다.”
다시 터진 작은 웃음소리 뒤, 나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시간을 내서 저희에게 투표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더 투표할 가치가 있는 앨범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러뷰어 사랑해요! 저 완전 좋아요!”
엄지 손을 치켜드는 차유진을 마지막으로 수상 시간이 끝났다.
백스테이지를 거치는 짧은 시간에도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화는 아직 나눌 수 없었으나, 다들 체감한 것 같았다.
이제 테스타 체급이 1군 수문장이 아니라 너끈히 그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말이다.
‘동기 부여 확실하군.’
혹시 내년쯤 되면 순조롭게 VTIC과 라이벌 구도까지 만들 수 있는 건 아닌지, 회사 사람들이 헛꿈을 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잠시 뒤.
VTIC의 컴백 무대를 보니, 회사도 짧은 꿈을 접었겠구나 싶다.
아아아아악!!
관객석의 환성이 귀를 찢을 것 같이 컸다. 그럴 만했다.
‘더럽게 잘하긴 한다.’
4명으로 인원이 줄었는데도 댄서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빈 곳이 없다. 그리고 곡빨이 끝내준다.
‘회사가 일을 잘하면 저게 되는군.’
도저히 수습 안 되는 놈은 빠르게 잘라내고, 나머지는 휴식 기간 내내 기사 하나 안 나게 철저히 케어했다.
심지어 청려 부상도 대외적으로 한 번도 뜬 적 없다. 이번 대처 하나로도 회사의 연륜과 능력, 비전까지 한 번에 느껴졌다.
그 결과. 잘 다듬어진 여론 속에서 저 완벽한 무대 하나로 VTIC은 순조롭게 하락세 위기를 벗어날 게 눈에 보였다.
한마디로, 어떤 소속사와 매우 비교된다.
‘음, 퇴사하고 싶다.’
모든 직장인의 꿈을 읊조리고 있자니 곧 VTIC의 긴 무대가 마무리되고 대상이 발표된다.
뭐, 뻔하다.
태도 논란 만들기 싫으면 열심히 일어나서 박수나 치자.
저쪽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울음바다다. 훌쩍이는 소리가 소감뿐만 아니라 관객석에서까지 들려온다.
‘음.’
다만 청려의 얼굴은 깨끗했다.
놈은 다른 놈들을 버릇처럼 몇 번 달래는 시늉을 하고, 맨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여상스러운 어조로 소감을 시작했다.
미친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