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8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9화
생일 축하는 생각보다도 더 길게 이어졌다.
솔직히 노래 부르고 나서 끝날 줄 알았는데, 대기실에서 굳이 케이크까지 다 먹더라.
“케, 케이크 입에 맞아?”
“어. 깔끔하네.”
“투표를 통해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선정한 것은 유익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딸기가 제철이라 통통합니다.”
생일자라고 큼직하게 한 조각 받은 걸 다 해치울 때까지 관련 대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메라도 없었다. 그냥… 정말 컨텐츠적 의도 없이 이 짓을 했다는 뜻이다.
“…….”
나는 차유진이 남은 크림까지 싹싹 긁어먹은 케이크 판을 앞에 두고, 결국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좋네요.”
“…!”
“아~ 문대야 형 눈물 나려 그래! 세상에 티벳문대 무슨 일이야?”
“케이크 맛있기 때문이에요!”
“문대 씨 축하해요~”
우는 척하는 놈부터 마지막 짐을 정리하다 말고 박수 치는 스탭까지 별 반응이 다 돌아온다.
‘참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어서 카메라 어플을 켰다.
“사진? 좋지!”
“아, 케이크 먹기 전에 찍었으면 더 좋았겠다.”
“저 여기요!”
나는 빈 케이크 판을 끼고, 여섯 놈과 같이 단체 셀카를 몇 장 연속으로 찍었다.
“얘들아 이제 이동해야지!”
“넵!”
그리고 매니저의 재촉에 따라 차로 이동하면서, 아까 쓰던 글을 완성했다.
========================
안녕하세요 러뷰어
저는 테스타 (강아지 이모티콘)
콘서트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깜짝 생일 축하까지 받아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 이모티콘)♡
========================
하단에 내 개인 사진과 방금 찍은 단체 사진까지 넣어서 업로드를 완료하고 나니, 어쩐지 홀가분했다.
반응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미친 박문대 왔어
-ㅠㅠㅠ문대야 생일 축하 뭐야 무슨 일이야 제발 썰 풀어죠
-아아 생축 콘서트에서 같이 하지ㅠㅠ 테스타 멈춰! 러뷰어 따돌림 멈춰!
-사랑해 문대야 콘서트 너무 좋았어 언제나 응원해 건강하고 행복한 투어가 되길
-나도 문대 생일 직접 축하하고 싶었다 이것만은 진심이다 (울망거리는 이모티콘)
콘서트의 여운에 젖은, 흥분과 애정 어린 표현들.
외국어와 이모티콘들에서도 호의가 느껴졌다.
“…….”
직전에 직접적으로 공유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댓글 내용에서 더 읽을거리가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살피며 천천히 새로고침을 계속했다.
간혹 개소리가 달리기도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소리는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댓글도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역시 문대도 빠르네ㅋㅋ
‘…문대‘도’ 빠르다고?’
어쩐지 뉘앙스가 이상하다.
나는 내 게시글에서 뒤로 가기를 눌러서, 테스타의 SNS 계정 첫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글 아래에 뜬 글을 봤다.
“…!”
‘러뷰어 사랑해’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길게 여러 묶음으로 이미 올라가 있었다.
무려 20분이나 전에.
게다가 글마다 자신의 단독 사진과 지난 콘서트에서 찍었던 비하인드의 단체 샷 첨부까지.
…큰세진이다.
놈이 뺀질뺀질한 얼굴로 내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확인했다.
“아~ 문대도 올렸구나?”
“…….”
역시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다.
‘혹시 깜짝 생일 파티가 이놈이 선수 치기 위한 수작이었던 건 아니냐.’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짧게 의심까지 했다.
* * *
“내~ 친구는~ 정말 정말 귀여워요!”
“으하하!”
차유진이 동요를 열창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자지러졌다.
뒤풀이를 시작한 지 딱 한 시간 만의 풍경이다.
스탭들은 방금 매니저를 비롯한 몇 명만 남고 쓱 귀가했다. 아마 흉흉한 회사 분위기를 다소 의식한 것 같다.
그리고 남은 놈들은…….
‘좀 취했군.’
원래 취한 놈들 사이에선 조금이라도 취해 있는 편이 편하나, 나는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 손에 들린 건 무알콜 샴페인이기 때문이다.
“…….”
“너, 너! 안 돼!”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귀신같이 내 주변에서 술병을 치우는 배세진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참고로 저 술병 이미 비었다.
“…졸린데.”
그래 보인다. 술병을 베고 잘 기세다.
‘슬슬 말에 맥락이 없어지는군.’
나는 과하지 않게 취한 분위기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디 가 문대~”
“화장실.”
사실 화장실은 아니고 그냥 바람이나 쐬러 나가는 거지만, 뭐든 상관없지 않나.
테라스가 옵션에 포함된 식당을 통째로 빌려놨더니 남 시선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했다.
‘그래도 얼굴만 내밀면 사진 찍으려고 근처에서 대기 중인 새끼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상관없다. 조용히 앉아만 있을 거니까.
나는 테라스로 나오며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꽉 찬 공간을 잠시 벗어났다.
탁.
문을 닫자마자 찬 겨울 공기가 볼을 때렸으나, 주변에 캠핑용 난로가 있어서 그리 춥진 않았다.
‘비싼 값 하는 집이군.’
나는 그냥 앉아서, 조용히 밤하늘을 보았다.
“……음.”
서울 밤하늘이 다 그렇듯이 별은 거의 안 보이긴 했으나, 그게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게 해줬다.
고마움과 즐거움이 가라앉은 곳을 채우는 건…….
드르륵.
“저, 무, 문대야?”
“…선아현.”
얘는 왜 여기 있냐.
닫은 지 얼마나 됐다고, 도로 열린 문 너머로 선아현이 머리를 내밀었다.
“나, 나도 나가도 돼…?”
“그렇겠지.”
애초에 나 혼자 전세 낸 것도 아니니 말이다.
“으응!”
어쨌든, 선아현은 이걸 허락으로 알아들은 건지 냉큼 문밖으로 나왔다.
탁.
다시 문이 닫히고 테라스가 조용해졌다.
선아현은 조용히 그렇게 가깝지 않은 근처에 앉았다.
“…….”
묘하게, 생각나는 일이 있다.
선아현에게 핫초코 받았을 때 딱 이 구도였지 않았나.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바람 쐬러 나왔어?”
“어, 어, 나?”
“응.”
“그… 그것도 있고. 음,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한테?”
“으응.”
선아현은 무릎을 만지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불쑥 말을 이었다.
예상 못 한 질문이었다.
“저기… 문대는 호, 혹시. 5년 끝나면, 아이돌 안 할 거야…?”
“뭐?”
얼마 전에 무대 장치를 포기할 때 큰세진에게 들었던 말이 선아현 입에서 다시 나왔다.
다만 뉘앙스는 좀 달랐다.
…선아현은 진심으로 저걸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 나한테 전에 그랬었잖아.”
선아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위,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무대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게 좋다고.”
“…!”
“그, 내, 내가 작년에, 연말 무대에서 즉흥으로 백플립 했을 때!”
선아현은 내가 기억을 못 한다고 생각했는지 상세히 당시 상황을 설명까지 해줬다.
그럴 필요 없었다. 기억 잘 난다.
‘내가 그랬었지.’
무대에서 큰 부상 입을 수도 있는 짓을 무심코 하는 선아현을 보고, ‘압박감이 들면 좀 자기 파괴적으로 무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서 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선아현은 특별히 고집을 피운 적이 없었다.
…그래.
어쩌면, 도리어 내가 그랬다.
“그, 근데 문대는… 무리하잖아. 아직 안 나았는데, 막, 와이어 쓰고…….”
알콜 의존을 한번 깨닫고 나니, 이것도 인정하게 되는군.
혹시 비난인가 했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거,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게 좋다고 했었는데… 혹시 문대는, 오래 할 생각이 아닌 건가, 해서….”
“…….”
선아현은, 의외로 날카롭게 진실을 짚어낸 모양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말을 맞춰볼까.
‘그때는 즉흥적이라 더 위험해 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내 퍼포먼스는 부상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다’, ‘이미 다 나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대답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어쩌면 선아현은 대강 납득 해 줄 수도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숨과 함께 나온 답은 이것이었다.
“…잘 모르겠다.”
한숨이 허공에 하얗게 퍼졌다.
“하고 싶은 것 같긴 한데, 그때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왜, 왜?”
이건 구체적으로 대답해주긴 힘들겠지.
나는 상황을 뭉뚱그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막상 돌아가는 판을 보니… 이 일이 장기적으로 하긴 힘든 일인 것 같아서.”
“…….”
선아현은 잠시 침묵했으나, 곧 고개를 번쩍 치들었다.
“사, 사실 나도 꼭, 오, 오래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
“그, 근데 그렇다는 건… 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
“…!”
“우, 우리가 무사히 5년을 잘 보내서… 계속 같이할 수도 있잖아. 그, 그렇게 됐는데, 혹시 문대가 지금 무리해서 그때 힘들면, 안 되잖아….”
“…….”
“그, 그러니까, 우리 건강하게, 오래 하는 걸로 생각하면… 안 될까.”
머리를 후려맞은 기분이다.
저쪽이… 더 합리적인 발상 같아서.
‘…당연히 계속 이 몸에 있는 쪽도 염두에 두고 행동했어야 하는데.’
끝날 수도 있다는 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당연히 안 끝날 경우도 대비해서 장기 계획을 세웠어야하지 않나.
‘애초에 확실한 미래가 보이는 분야도 아니니 말이지.’
당장 내일이라도 사건 터저서 은퇴할 수 있는 판에서 쓸데없는 상념에 잠겨 있었군.
최근 내 태도의 비합리성이 그제야 돌출되었다. 전염병이 돈다고 노후 계획을 때려치우는 거나 다름 없는 멍청한 짓 아닌가.
‘분류가 딱 되는데.’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만약에 상태이상을 다 끝내고도 이 몸으로 살게 된다면, 장기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무병장수의 꿈이 실현될 만큼 욕하고 있을 게 뻔하다.
나는 결국 피식 웃었다.
“왜 안 되겠어. 되지.”
“…! 그, 그치!”
“그래.”
선아현은 그제야 헤헤 웃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밤하늘을 보았다.
‘5년 후라…….’
그럼 재계약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루트를 짜봐야 하나.
드륵, 쿵!
“와우! 추워요!!”
“유진아 너 지금 반팔이야!”
“헐, 문대문대 여깄네! 화장실 간다더니 도망쳤던 거야?? 정말 서운하다~”
“…….”
잠깐 그려보려던 청사진은 곧 테라스에 난입한 차유진과 다른 취객들에 의해 박살 났으나,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다음 날, 장기 계획의 변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 * *
“너희 그 식당 테라스에서 난리 치는 사진 찍혔더라. 얘들아, 형이 조심하랬지!”
“흐억!”
“근데 다들 귀엽다고 그러긴 한다. 회사랑 다 이야기해서 기사 내용도 좋긴 해!”
“휴우.”
매니저에게 인트로로 제법 살 떨리는 첫 소식을 전해 듣고 난 다음, 슬쩍 흘러나온 회사 내부 상황이 중요했다.
“그래도 회사가 좀 괜찮아져서 대응이 빨랐으니까 다행이지, 앞으론 더 조심하자!”
“네!”
안 그래도 아침에 올린 입장문 보긴 했다.
본부장이 직접 자기 이름으로 냈더라.
‘거의 항복 선언문이던데.’
요악하자면 이거다.
-30석 증발은 저희가 정말 실수했습니다. 근데 Tnet이 깡패라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ㅠㅠ 빨리 걔네를 욕하십쇼. 저희 앞으로 개짓거리 안하고 테스타 케어나 열심히 할게요.
이 맥락에서 팬들을 철저히 고객으로 설정해 작성한 것이 괜한 감성팔이보다 오히려 먹혔나 보더라.
‘그나마 숨 좀 돌렸겠군.’
다만 매니저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금 인력 부족하다고 난린데, 여자애들 들어오면 그쪽으로 좀 차출한다는 말도 있고… 아, 얘들아 그래도 형은 우리 테스타 매니저 계속하고 싶다!”
‘오.’
이건… 구도가 좀 재밌게 잡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89화
생일 축하는 생각보다도 더 길게 이어졌다.
솔직히 노래 부르고 나서 끝날 줄 알았는데, 대기실에서 굳이 케이크까지 다 먹더라.
“케, 케이크 입에 맞아?”
“어. 깔끔하네.”
“투표를 통해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선정한 것은 유익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딸기가 제철이라 통통합니다.”
생일자라고 큼직하게 한 조각 받은 걸 다 해치울 때까지 관련 대화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메라도 없었다. 그냥… 정말 컨텐츠적 의도 없이 이 짓을 했다는 뜻이다.
“…….”
나는 차유진이 남은 크림까지 싹싹 긁어먹은 케이크 판을 앞에 두고, 결국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좋네요.”
“…!”
“아~ 문대야 형 눈물 나려 그래! 세상에 티벳문대 무슨 일이야?”
“케이크 맛있기 때문이에요!”
“문대 씨 축하해요~”
우는 척하는 놈부터 마지막 짐을 정리하다 말고 박수 치는 스탭까지 별 반응이 다 돌아온다.
‘참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들어서 카메라 어플을 켰다.
“사진? 좋지!”
“아, 케이크 먹기 전에 찍었으면 더 좋았겠다.”
“저 여기요!”
나는 빈 케이크 판을 끼고, 여섯 놈과 같이 단체 셀카를 몇 장 연속으로 찍었다.
“얘들아 이제 이동해야지!”
“넵!”
그리고 매니저의 재촉에 따라 차로 이동하면서, 아까 쓰던 글을 완성했다.
========================
안녕하세요 러뷰어
저는 테스타 (강아지 이모티콘)
콘서트는 정말 즐거웠습니다. 사흘이 어떻게 지나간 건지 모를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깜짝 생일 축하까지 받아서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밤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아지 이모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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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에 내 개인 사진과 방금 찍은 단체 사진까지 넣어서 업로드를 완료하고 나니, 어쩐지 홀가분했다.
반응은 순식간에 돌아왔다.
-미친 박문대 왔어
-ㅠㅠㅠ문대야 생일 축하 뭐야 무슨 일이야 제발 썰 풀어죠
-아아 생축 콘서트에서 같이 하지ㅠㅠ 테스타 멈춰! 러뷰어 따돌림 멈춰!
-사랑해 문대야 콘서트 너무 좋았어 언제나 응원해 건강하고 행복한 투어가 되길
-나도 문대 생일 직접 축하하고 싶었다 이것만은 진심이다 (울망거리는 이모티콘)
콘서트의 여운에 젖은, 흥분과 애정 어린 표현들.
외국어와 이모티콘들에서도 호의가 느껴졌다.
“…….”
직전에 직접적으로 공유한 시간이 있어서인지 댓글 내용에서 더 읽을거리가 많았다. 나는 그것들을 살피며 천천히 새로고침을 계속했다.
간혹 개소리가 달리기도 했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개소리는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댓글도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역시 문대도 빠르네ㅋㅋ
‘…문대‘도’ 빠르다고?’
어쩐지 뉘앙스가 이상하다.
나는 내 게시글에서 뒤로 가기를 눌러서, 테스타의 SNS 계정 첫 화면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내 글 아래에 뜬 글을 봤다.
“…!”
‘러뷰어 사랑해’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이 길게 여러 묶음으로 이미 올라가 있었다.
무려 20분이나 전에.
게다가 글마다 자신의 단독 사진과 지난 콘서트에서 찍었던 비하인드의 단체 샷 첨부까지.
…큰세진이다.
놈이 뺀질뺀질한 얼굴로 내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확인했다.
“아~ 문대도 올렸구나?”
“…….”
역시 이 새끼… 보통 놈이 아니다.
‘혹시 깜짝 생일 파티가 이놈이 선수 치기 위한 수작이었던 건 아니냐.’
그럴 리가 없는데도, 나는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동안 짧게 의심까지 했다.
* * *
“내~ 친구는~ 정말 정말 귀여워요!”
“으하하!”
차유진이 동요를 열창하는 동안 다른 멤버들이 자지러졌다.
뒤풀이를 시작한 지 딱 한 시간 만의 풍경이다.
스탭들은 방금 매니저를 비롯한 몇 명만 남고 쓱 귀가했다. 아마 흉흉한 회사 분위기를 다소 의식한 것 같다.
그리고 남은 놈들은…….
‘좀 취했군.’
원래 취한 놈들 사이에선 조금이라도 취해 있는 편이 편하나, 나는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내 손에 들린 건 무알콜 샴페인이기 때문이다.
“…….”
“너, 너! 안 돼!”
아무 말도 안 했다. 나는 귀신같이 내 주변에서 술병을 치우는 배세진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참고로 저 술병 이미 비었다.
“…졸린데.”
그래 보인다. 술병을 베고 잘 기세다.
‘슬슬 말에 맥락이 없어지는군.’
나는 과하지 않게 취한 분위기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 어디 가 문대~”
“화장실.”
사실 화장실은 아니고 그냥 바람이나 쐬러 나가는 거지만, 뭐든 상관없지 않나.
테라스가 옵션에 포함된 식당을 통째로 빌려놨더니 남 시선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했다.
‘그래도 얼굴만 내밀면 사진 찍으려고 근처에서 대기 중인 새끼도 있을 것 같긴 한데.’
상관없다. 조용히 앉아만 있을 거니까.
나는 테라스로 나오며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로 꽉 찬 공간을 잠시 벗어났다.
탁.
문을 닫자마자 찬 겨울 공기가 볼을 때렸으나, 주변에 캠핑용 난로가 있어서 그리 춥진 않았다.
‘비싼 값 하는 집이군.’
나는 그냥 앉아서, 조용히 밤하늘을 보았다.
“……음.”
서울 밤하늘이 다 그렇듯이 별은 거의 안 보이긴 했으나, 그게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게 해줬다.
고마움과 즐거움이 가라앉은 곳을 채우는 건…….
드르륵.
“저, 무, 문대야?”
“…선아현.”
얘는 왜 여기 있냐.
닫은 지 얼마나 됐다고, 도로 열린 문 너머로 선아현이 머리를 내밀었다.
“나, 나도 나가도 돼…?”
“그렇겠지.”
애초에 나 혼자 전세 낸 것도 아니니 말이다.
“으응!”
어쨌든, 선아현은 이걸 허락으로 알아들은 건지 냉큼 문밖으로 나왔다.
탁.
다시 문이 닫히고 테라스가 조용해졌다.
선아현은 조용히 그렇게 가깝지 않은 근처에 앉았다.
“…….”
묘하게, 생각나는 일이 있다.
선아현에게 핫초코 받았을 때 딱 이 구도였지 않았나.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바람 쐬러 나왔어?”
“어, 어, 나?”
“응.”
“그… 그것도 있고. 음, 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한테?”
“으응.”
선아현은 무릎을 만지며 잠시 머뭇거리다가, 불쑥 말을 이었다.
예상 못 한 질문이었다.
“저기… 문대는 호, 혹시. 5년 끝나면, 아이돌 안 할 거야…?”
“뭐?”
얼마 전에 무대 장치를 포기할 때 큰세진에게 들었던 말이 선아현 입에서 다시 나왔다.
다만 뉘앙스는 좀 달랐다.
…선아현은 진심으로 저걸 걱정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나, 나한테 전에 그랬었잖아.”
선아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위,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무대에서 무리하지 말라고.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게 좋다고.”
“…!”
“그, 내, 내가 작년에, 연말 무대에서 즉흥으로 백플립 했을 때!”
선아현은 내가 기억을 못 한다고 생각했는지 상세히 당시 상황을 설명까지 해줬다.
그럴 필요 없었다. 기억 잘 난다.
‘내가 그랬었지.’
무대에서 큰 부상 입을 수도 있는 짓을 무심코 하는 선아현을 보고, ‘압박감이 들면 좀 자기 파괴적으로 무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서 한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 후로 선아현은 특별히 고집을 피운 적이 없었다.
…그래.
어쩌면, 도리어 내가 그랬다.
“그, 근데 문대는… 무리하잖아. 아직 안 나았는데, 막, 와이어 쓰고…….”
알콜 의존을 한번 깨닫고 나니, 이것도 인정하게 되는군.
혹시 비난인가 했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거, 건강하게 오래 하는 게 좋다고 했었는데… 혹시 문대는, 오래 할 생각이 아닌 건가, 해서….”
“…….”
선아현은, 의외로 날카롭게 진실을 짚어낸 모양이다.
이 모순을 어떻게 말을 맞춰볼까.
‘그때는 즉흥적이라 더 위험해 보여서 그렇게 말했다’, ‘내 퍼포먼스는 부상 위험이 그렇게 크지 않다’, ‘이미 다 나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대답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그리고 어쩌면 선아현은 대강 납득 해 줄 수도 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한숨과 함께 나온 답은 이것이었다.
“…잘 모르겠다.”
한숨이 허공에 하얗게 퍼졌다.
“하고 싶은 것 같긴 한데, 그때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왜, 왜?”
이건 구체적으로 대답해주긴 힘들겠지.
나는 상황을 뭉뚱그렸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막상 돌아가는 판을 보니… 이 일이 장기적으로 하긴 힘든 일인 것 같아서.”
“…….”
선아현은 잠시 침묵했으나, 곧 고개를 번쩍 치들었다.
“사, 사실 나도 꼭, 오, 오래오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
“그, 근데 그렇다는 건… 할 수도 있다는 뜻 아닐까?”
“…!”
“우, 우리가 무사히 5년을 잘 보내서… 계속 같이할 수도 있잖아. 그, 그렇게 됐는데, 혹시 문대가 지금 무리해서 그때 힘들면, 안 되잖아….”
“…….”
“그, 그러니까, 우리 건강하게, 오래 하는 걸로 생각하면… 안 될까.”
머리를 후려맞은 기분이다.
저쪽이… 더 합리적인 발상 같아서.
‘…당연히 계속 이 몸에 있는 쪽도 염두에 두고 행동했어야 하는데.’
끝날 수도 있다는 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 당연히 안 끝날 경우도 대비해서 장기 계획을 세웠어야하지 않나.
‘애초에 확실한 미래가 보이는 분야도 아니니 말이지.’
당장 내일이라도 사건 터저서 은퇴할 수 있는 판에서 쓸데없는 상념에 잠겨 있었군.
최근 내 태도의 비합리성이 그제야 돌출되었다. 전염병이 돈다고 노후 계획을 때려치우는 거나 다름 없는 멍청한 짓 아닌가.
‘분류가 딱 되는데.’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만약에 상태이상을 다 끝내고도 이 몸으로 살게 된다면, 장기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과거의 나를 무병장수의 꿈이 실현될 만큼 욕하고 있을 게 뻔하다.
나는 결국 피식 웃었다.
“왜 안 되겠어. 되지.”
“…! 그, 그치!”
“그래.”
선아현은 그제야 헤헤 웃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밤하늘을 보았다.
‘5년 후라…….’
그럼 재계약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루트를 짜봐야 하나.
드륵, 쿵!
“와우! 추워요!!”
“유진아 너 지금 반팔이야!”
“헐, 문대문대 여깄네! 화장실 간다더니 도망쳤던 거야?? 정말 서운하다~”
“…….”
잠깐 그려보려던 청사진은 곧 테라스에 난입한 차유진과 다른 취객들에 의해 박살 났으나,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다음 날, 장기 계획의 변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 * *
“너희 그 식당 테라스에서 난리 치는 사진 찍혔더라. 얘들아, 형이 조심하랬지!”
“흐억!”
“근데 다들 귀엽다고 그러긴 한다. 회사랑 다 이야기해서 기사 내용도 좋긴 해!”
“휴우.”
매니저에게 인트로로 제법 살 떨리는 첫 소식을 전해 듣고 난 다음, 슬쩍 흘러나온 회사 내부 상황이 중요했다.
“그래도 회사가 좀 괜찮아져서 대응이 빨랐으니까 다행이지, 앞으론 더 조심하자!”
“네!”
안 그래도 아침에 올린 입장문 보긴 했다.
본부장이 직접 자기 이름으로 냈더라.
‘거의 항복 선언문이던데.’
요악하자면 이거다.
-30석 증발은 저희가 정말 실수했습니다. 근데 Tnet이 깡패라 저희도 어쩔 수 없었어요ㅠㅠ 빨리 걔네를 욕하십쇼. 저희 앞으로 개짓거리 안하고 테스타 케어나 열심히 할게요.
이 맥락에서 팬들을 철저히 고객으로 설정해 작성한 것이 괜한 감성팔이보다 오히려 먹혔나 보더라.
‘그나마 숨 좀 돌렸겠군.’
다만 매니저의 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지금 인력 부족하다고 난린데, 여자애들 들어오면 그쪽으로 좀 차출한다는 말도 있고… 아, 얘들아 그래도 형은 우리 테스타 매니저 계속하고 싶다!”
‘오.’
이건… 구도가 좀 재밌게 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