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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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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8화
얼마 뒤. 암막 커튼 때문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시점.
“여기서부터 정리해 볼까요. 후배님의 참가는 훌륭한 선택이었는가.”
다시 맞은편에 앉은 청려가 웬 노트에 키워드를 적으며 차분히 설명했다.
“당장 초기 미션을 넘기는 데엔 효율이 높죠. 후배님은 다음 미션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에서 골랐을 테니… 훌륭한 판단이네요.”
하나도 안 고맙군.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아쉬운 선택인데. 5년 단기에 이미지 소모가 너무 심해서… 회사도 체계가 없고 재계약 여부도 불투명하고.”
청려가 약한 미소를 지었다.
“초기를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거르는 편이 낫죠.”
“…….”
“재시작하면 LeTi로 찾아와요. 바로 데뷔 가능한 자리에 넣어줄 테니까.”
‘내 팀이 또 말아먹으면 바로 리셋할 수 있게 근처에 두겠다’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코웃음을 참았다.
‘입만 산 놈.’
이 새끼의 상태창에서 리셋을 유발하는 상태이상, ‘교정’은 비활성화 상태다.
즉, 본인이 죽는 것으로 재시작하는 방법은 이미 막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미션이 실패하면 죽어서 돌아간다’는 개념은 파악하고 있던 이 새끼는 이제 미션이 다 끝났으니 본인이 죽어봤자 못 돌아간다는 건 짐작했겠지.
그래서 날 써먹겠다는 건데… 여기서 좀 막히긴 한다.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내가 죽으면 다시 시작한다고 왜 확신하냐는 말이다.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이런 걸 광신하나?
이걸 파고들어서 좀 털어보고 싶긴 한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까닥하면 오함마 각이다.’
당장 이 새끼를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자진 하차하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그럼 오함마 맛 좀 보세요’ 하고 뭘 후려갈길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나는 다른 구석을 믿어야 한다.
이놈은 모르고 나만 아는 내 유리한 지점.
나의 상태창. 특성들 말이다.
‘생각을 하자.’
그 전에, 열 받아서 이가 갈리니 이 정도는 대꾸해 주고.
“그래서 LeTi에서 데뷔하다 선배님 커리어에 또 문제 생기면 다시 리셋이나 해라, 이게 목적입니까?”
“아뇨. 그럴 리가.”
…청려는 약간 민망한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미안해요. 후배님도 들었다시피 워낙 정답이 없는 상황이라서. 원한다면 다음에는 미션을 지금보다 빠르게 다 끝낼 수 있도록 꼭 도와줄게요.”
“…….”
“물론 지금보다 편하고 유익하게 그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플랜도 같이 잘 짜보죠.”
이게 당장은 진심인 것 같다는 점이 제일 골 아팠다.
‘이 새끼 이러고 또 비슷한 일 터지면 도로 리셋 종용한다.’
물론 내가 죽는다고 도로 재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만, 아무튼 뻔하지 않은가. 한번 해봤으니 계속 시키겠지.
그런데 이 미친놈의 사고회로에서 현 상황이 예외적, 일회성일 것이며 내게 보상안을 충분히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문제였다.
‘별로 큰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거야.’
기준점이 다르다 보니 리셋 한 번 강요하는 정도는 그냥 좀 민망하고 미안한 일로 생각한다. 당연히 말이 더 안 들어 먹힌다.
나는 한숨을 쉬었고, 청려는 의자에서 도로 일어났다.
“피곤한 것 같으니 일단 여기까지 하고… 저녁으로 먹고 싶은 음식 있어요? 가능한 선이면 줄 테니까.”
일단 현재 시간대는 저녁이군. 겨우 하나 건졌다.
“없습니다. 알아서 챙겨 먹도록 그냥 절 보내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건 힘들겠네요. 음, 잠시만.”
그리고 청려는 도로 방을 나갔다. 기대도 안 했지만, 저 천연덕스러운 반응을 보니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은 안 되겠다.
…빌드업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뜻이다.
‘이게 통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쓸데없는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골라낸 내 특성 하나를 확인했다.
[특성 : 바쿠스500(B)]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
: 모든 피로 누적 속도 ?50%
바쿠스500.
내 컨디션 유지용 특성이다. 이것 덕분에 컴백 주 며칠 정도는 한두 시간만 자도 견딜 수 있다.
물론 이걸 이용해서 저 새끼가 잠든 사이 탐색을 개시해보겠다는 꿈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더럽게 꼼꼼히도 치워놨네.’
애초에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아까 불편하고 웃긴 동작으로 확인한 화장실도 민둥한 시설물만 남아 있었다.
‘이미 몇 번 해본 느낌인데.’
리셋 중에 대체 어떤 관계자 뚝배기를 위협해서 정보를 얻어낸 건지는 모르겠다만, 상당히 그럴싸한 추측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이 특성을 활용할 상황은 ‘모두가 잠든 사이’ 따위가 아니라 다른 타이밍에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좀 기다린다.’
저놈이 내가 체념했다고 생각할 때까지, 적응했다고 생각할 때까지 신중히 상황을 본다.
나는 수갑을 내려다보고, 혀를 찼다.
힘든 휴가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 며칠.
자는 간격과 식사 타이밍으로 볼 때 사나흘 정도로 추측한다.
자살 권유가 더 과격해지지 않도록, 나는 그동안 ‘뉴라이프 플랜’에 천천히 동조해 가는 것처럼 발언을 조절했다.
이런 식이다.
“LeTi도 연습생 비용 다 청구한 뒤에 정산 시작하나요.”
“아뇨. 데뷔 시점에 수익이 발생하면 바로 시작해요. 괜찮죠?”
“좋은 곳이네요. …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하하.”
이 패턴을 몇 번 반복한 뒤, 정보 수집을 위해 약간 민감한 소재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휴가 중이라도 제가 연락이 없으면 분명 의심할 텐데. 따로 연락 없습니까?”
“글쎄요.”
“…연락이 왔나 보군요.”
“하하, 티 나요? 적당히 답장했으니까 걱정 마요. 후배님 말투로.”
“…….”
이 새끼 내 화면 잠금 패턴도 알고 있나.
‘그 보험 광고 때냐.’
당시 강아지 찍으며 스마트폰 잠금을 풀었던 것이 기억났다.
‘망할.’
휴가 다 끝날 때까지 외부의 도움은 기대 못 하겠군.
그래도 이놈이 계속 내 스마트폰을 확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 집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그것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그 후로도 의미 없을 설득과 변명, 기분 나쁘게도 의외로 제법 질이 좋은 청려의 아이돌 관련 팁 브리핑이 쏟아지는 며칠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그때가 왔다.
“오늘은… 후배님?”
“…선배님.”
세 번째 기상. 아마도 아침이나 새벽.
나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한숨을 쉬었다. 숨이 통과하는 코와 목이 후끈했다.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느릿느릿 말했다.
“혹시 몸살약 있으십니까?”
바로 쉬는 타이밍마다 찾아오는, 지독한 몸살이었다.
이번에도 휴가 타이밍에 맞춰서 어마어마한 열과 부담이 몸에 쏟아졌다.
굳이 내가 정신적으로 긴장이 풀릴 타이밍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상대로다.’
내 추측이 맞았다는 뜻이다.
‘이 몸살, 컨디션 특성에 대한 반동이 맞나 본데.’
바쿠스뿐만 아니라 일회성 특성이었던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그런 특성들을 풀로 사용한 뒤 ‘활동 스케줄’이 없을 때만 아프니 아무리 그래도 좀 기묘하게 보였거든.
그래서 가설을 세워 본 거였는데, 이번 걸로 거의 확신이 온다.
‘상태창이 개입된 것 같은 기계적인 분류야.’
꼭 연예인 활동을 쉴 때만 몸의 부담이 몰려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 아픈 타이밍은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다.
“…약?”
이 새끼를 당황하게 만드는데 말이지.
내가 사나흘 만에 외상도 아니고 몸살로 드러누울 거라고 상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잠시만.”
들어오던 청려가 다시 방문을 닫고 나갔다.
‘좋아.’
일단 곧바로 ‘마침 아프니 죽으면 되겠다’ 같은 발언은 안 나왔으니 진행 방향이 썩 괜찮았다.
‘방심했군.’
상황을 다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놈이 반사적으로 안심해 버린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며칠 내로 리셋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중이겠지.
다시 들어온 청려의 손에는 약과 물이 들려 있었다.
처방전 없이 사놓을 수 있을 법한 약이다.
‘…상비약을 준비했군.’
이건 좀 아쉽다. 치밀한 정신병자 새끼.
“진통제랑 해열제니까. 좀 먹어둬요.”
포장 안에 들어 있다. 굳이 다른 물약을 섞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 복용은 한다.
그리고 슬쩍 운을 뗐다.
“…혹시, 병원은.”
“우리 둘이면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미안해요. 음… 재시작하면 몸은 바로 나을 텐데.”
결국, 이 말로 돌아왔군. 권유긴 하지만.
‘지금 찌른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쉰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실 전 지금 팀이 좋습니다. 다시 시작해서 똑같은 팀을 꾸려도 절대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죠. 공유한 사건과 이야기가 달라질 테니까.”
“…….”
“그냥 제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게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뭐, 성격에 안 맞는 발언이긴 했다만, 아프면 좀 감성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때맞춰서 특성도 터져줬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A)’ 발동!]
훌륭해.
물론 상대의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는 것이니, 설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봐라.
“…미안해요.”
청려는 약간 표정 없는 얼굴로 짧게 중얼거렸다.
딱 ‘미안한 감정’ 정도만 생겼나 보군. 알겠다 개새끼야.
정확히 계획대로다.
“…….”
나는 일부러 한동안 침묵하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머리가 아파서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그런데, 화장실… 앞까지만 좀 부축해 주시죠.”
“그래요.”
거절 안 할 줄 알았다.
청려가 적당히 다리 불편한 사람 부축하는 것처럼 내 어깨 밑을 받쳐 들었다.
생각이 흔들리며 주의가 분산된 순간.
그러니까… 내 동작보다 본인 생각을 더 의식할 순간.
‘지금이다.’
나는 양팔을 돌려서, 청려의 머리에 걸쳤다.
“…!”
그리고 수갑째로 놈의 목에 걸어 당기기 시작했다.
“…이!”
수갑 사이 금속이 놈의 목을 꾹 누르는데, 당연하지만 저항이 거셌다. 체중째로 눌러서 자세를 불안하게 바꿔도 계속 가격이 들어온다.
‘X발.’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군. 하지만 절대 놓을 순 없다.
나는 억지로 팔을 비틀어서, 놈의 목을 그대로 꺾었다.
“…!!”
“크읍.”
어차피 이 컨디션에 두 손이 부자유스러운 판에 어지간해서는 건장한 성인의 목을 부러트릴 수 없다.
그냥 이 새끼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누른다…!
“….”
산소가 차단되어 창백해지면서도 눈깔을 돌려서 이쪽을 노려보는 게 X발, 더럽게 소름 끼치는…….
상관없다.
‘시뮬레이션하던 대로만!’
나는 마지막으로 수갑을 뒤틀어 놈의 머리 뒤를 후려갈겼다.
퍽.
짧고 과격한 소리와 함께, 압력이 사라졌다.
“…….”
제압했다.
“허억.”
나는 후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X발, 진짜.”
팔목 다 작살났다. 개 같네 진짜.
그래도 희열 때문에 통증은 모르겠다.
나는 되는 대로 꿈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가서, 다행히 쓸 만한 날붙이를 찾았다.
바로… 전구다.
파바박!
집어던진 책에 조명이 박살 나며 날카로운 조각이 바닥에 쏟아졌다.
옛날 제품이라 더 심했다.
“좋아.”
몇 번 손이 베이긴 했지만, 다리를 묶은 케이블 타이 뭉치는 풀었다.
이제 만일의 상황에 도주가 용이해졌으니, 예정대로 움직인다.
나는 뻐근한 목을 움직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
“정신 차리셨네요.”
맞은편 의자에 케이블 타이로 꽁꽁 묶여 있던 청려가 신음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
“케이블 타이 여분을 많이도 사두셨던데.”
“…….”
“공구도 넉넉히 준비해 두셔서, 수갑도 잘 풀었습니다.”
나는 자유로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준비성 철저하시네요, 선배님. 덕분에 편했습니다.”
그리고 씩 웃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8화

얼마 뒤. 암막 커튼 때문에 시간을 가늠할 수 없는 시점.

“여기서부터 정리해 볼까요. 후배님의 참가는 훌륭한 선택이었는가.”

다시 맞은편에 앉은 청려가 웬 노트에 키워드를 적으며 차분히 설명했다.

“당장 초기 미션을 넘기는 데엔 효율이 높죠. 후배님은 다음 미션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에서 골랐을 테니… 훌륭한 판단이네요.”

하나도 안 고맙군.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아쉬운 선택인데. 5년 단기에 이미지 소모가 너무 심해서… 회사도 체계가 없고 재계약 여부도 불투명하고.”

청려가 약한 미소를 지었다.

“초기를 넘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거르는 편이 낫죠.”

“…….”

“재시작하면 LeTi로 찾아와요. 바로 데뷔 가능한 자리에 넣어줄 테니까.”

‘내 팀이 또 말아먹으면 바로 리셋할 수 있게 근처에 두겠다’는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코웃음을 참았다.

‘입만 산 놈.’

이 새끼의 상태창에서 리셋을 유발하는 상태이상, ‘교정’은 비활성화 상태다.

즉, 본인이 죽는 것으로 재시작하는 방법은 이미 막혔다는 뜻이다.

그리고 ‘미션이 실패하면 죽어서 돌아간다’는 개념은 파악하고 있던 이 새끼는 이제 미션이 다 끝났으니 본인이 죽어봤자 못 돌아간다는 건 짐작했겠지.

그래서 날 써먹겠다는 건데… 여기서 좀 막히긴 한다.

‘어떻게 확신하는 거지.’

내가 죽으면 다시 시작한다고 왜 확신하냐는 말이다.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이런 걸 광신하나?

이걸 파고들어서 좀 털어보고 싶긴 한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까닥하면 오함마 각이다.’

당장 이 새끼를 자극하는 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자진 하차하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그럼 오함마 맛 좀 보세요’ 하고 뭘 후려갈길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나는 다른 구석을 믿어야 한다.

이놈은 모르고 나만 아는 내 유리한 지점.

나의 상태창. 특성들 말이다.

‘생각을 하자.’

그 전에, 열 받아서 이가 갈리니 이 정도는 대꾸해 주고.

“그래서 LeTi에서 데뷔하다 선배님 커리어에 또 문제 생기면 다시 리셋이나 해라, 이게 목적입니까?”

“아뇨. 그럴 리가.”

…청려는 약간 민망한 얼굴이었다.

“이번에는 미안해요. 후배님도 들었다시피 워낙 정답이 없는 상황이라서. 원한다면 다음에는 미션을 지금보다 빠르게 다 끝낼 수 있도록 꼭 도와줄게요.”

“…….”

“물론 지금보다 편하고 유익하게 그룹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플랜도 같이 잘 짜보죠.”

이게 당장은 진심인 것 같다는 점이 제일 골 아팠다.

‘이 새끼 이러고 또 비슷한 일 터지면 도로 리셋 종용한다.’

물론 내가 죽는다고 도로 재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만, 아무튼 뻔하지 않은가. 한번 해봤으니 계속 시키겠지.

그런데 이 미친놈의 사고회로에서 현 상황이 예외적, 일회성일 것이며 내게 보상안을 충분히 마련했다고 생각하는 게 더 문제였다.

‘별로 큰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거야.’

기준점이 다르다 보니 리셋 한 번 강요하는 정도는 그냥 좀 민망하고 미안한 일로 생각한다. 당연히 말이 더 안 들어 먹힌다.

나는 한숨을 쉬었고, 청려는 의자에서 도로 일어났다.

“피곤한 것 같으니 일단 여기까지 하고… 저녁으로 먹고 싶은 음식 있어요? 가능한 선이면 줄 테니까.”

일단 현재 시간대는 저녁이군. 겨우 하나 건졌다.

“없습니다. 알아서 챙겨 먹도록 그냥 절 보내주시는 게 어떨까요.”

“그건 힘들겠네요. 음, 잠시만.”

그리고 청려는 도로 방을 나갔다. 기대도 안 했지만, 저 천연덕스러운 반응을 보니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은 안 되겠다.

…빌드업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뜻이다.

‘이게 통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쓸데없는 대화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골라낸 내 특성 하나를 확인했다.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

: 모든 피로 누적 속도 ?50%

바쿠스500.

내 컨디션 유지용 특성이다. 이것 덕분에 컴백 주 며칠 정도는 한두 시간만 자도 견딜 수 있다.

물론 이걸 이용해서 저 새끼가 잠든 사이 탐색을 개시해보겠다는 꿈 같은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더럽게 꼼꼼히도 치워놨네.’

애초에 이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아까 불편하고 웃긴 동작으로 확인한 화장실도 민둥한 시설물만 남아 있었다.

‘이미 몇 번 해본 느낌인데.’

리셋 중에 대체 어떤 관계자 뚝배기를 위협해서 정보를 얻어낸 건지는 모르겠다만, 상당히 그럴싸한 추측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내가 이 특성을 활용할 상황은 ‘모두가 잠든 사이’ 따위가 아니라 다른 타이밍에 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좀 기다린다.’

저놈이 내가 체념했다고 생각할 때까지, 적응했다고 생각할 때까지 신중히 상황을 본다.

나는 수갑을 내려다보고, 혀를 찼다.

힘든 휴가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후 며칠.

자는 간격과 식사 타이밍으로 볼 때 사나흘 정도로 추측한다.

자살 권유가 더 과격해지지 않도록, 나는 그동안 ‘뉴라이프 플랜’에 천천히 동조해 가는 것처럼 발언을 조절했다.

이런 식이다.

“LeTi도 연습생 비용 다 청구한 뒤에 정산 시작하나요.”

“아뇨. 데뷔 시점에 수익이 발생하면 바로 시작해요. 괜찮죠?”

“좋은 곳이네요. …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하하.”

이 패턴을 몇 번 반복한 뒤, 정보 수집을 위해 약간 민감한 소재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휴가 중이라도 제가 연락이 없으면 분명 의심할 텐데. 따로 연락 없습니까?”

“글쎄요.”

“…연락이 왔나 보군요.”

“하하, 티 나요? 적당히 답장했으니까 걱정 마요. 후배님 말투로.”

“…….”

이 새끼 내 화면 잠금 패턴도 알고 있나.

‘그 보험 광고 때냐.’

당시 강아지 찍으며 스마트폰 잠금을 풀었던 것이 기억났다.

‘망할.’

휴가 다 끝날 때까지 외부의 도움은 기대 못 하겠군.

그래도 이놈이 계속 내 스마트폰을 확인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 집 안에 있을 확률이 높다. 나는 그것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그 후로도 의미 없을 설득과 변명, 기분 나쁘게도 의외로 제법 질이 좋은 청려의 아이돌 관련 팁 브리핑이 쏟아지는 며칠이 계속되었고.

마침내 그때가 왔다.

“오늘은… 후배님?”

“…선배님.”

세 번째 기상. 아마도 아침이나 새벽.

나는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한숨을 쉬었다. 숨이 통과하는 코와 목이 후끈했다.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느릿느릿 말했다.

“혹시 몸살약 있으십니까?”

바로 쉬는 타이밍마다 찾아오는, 지독한 몸살이었다.

이번에도 휴가 타이밍에 맞춰서 어마어마한 열과 부담이 몸에 쏟아졌다.

굳이 내가 정신적으로 긴장이 풀릴 타이밍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상대로다.’

내 추측이 맞았다는 뜻이다.

‘이 몸살, 컨디션 특성에 대한 반동이 맞나 본데.’

바쿠스뿐만 아니라 일회성 특성이었던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그런 특성들을 풀로 사용한 뒤 ‘활동 스케줄’이 없을 때만 아프니 아무리 그래도 좀 기묘하게 보였거든.

그래서 가설을 세워 본 거였는데, 이번 걸로 거의 확신이 온다.

‘상태창이 개입된 것 같은 기계적인 분류야.’

꼭 연예인 활동을 쉴 때만 몸의 부담이 몰려오는 것 말이다.

그리고 이 아픈 타이밍은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다.

“…약?”

이 새끼를 당황하게 만드는데 말이지.

내가 사나흘 만에 외상도 아니고 몸살로 드러누울 거라고 상상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잠시만.”

들어오던 청려가 다시 방문을 닫고 나갔다.

‘좋아.’

일단 곧바로 ‘마침 아프니 죽으면 되겠다’ 같은 발언은 안 나왔으니 진행 방향이 썩 괜찮았다.

‘방심했군.’

상황을 다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에 저놈이 반사적으로 안심해 버린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며칠 내로 리셋을 기정사실로 생각하는 중이겠지.

다시 들어온 청려의 손에는 약과 물이 들려 있었다.

처방전 없이 사놓을 수 있을 법한 약이다.

‘…상비약을 준비했군.’

이건 좀 아쉽다. 치밀한 정신병자 새끼.

“진통제랑 해열제니까. 좀 먹어둬요.”

포장 안에 들어 있다. 굳이 다른 물약을 섞을 필요는 없었을 테니, 복용은 한다.

그리고 슬쩍 운을 뗐다.

“…혹시, 병원은.”

“우리 둘이면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미안해요. 음… 재시작하면 몸은 바로 나을 텐데.”

결국, 이 말로 돌아왔군. 권유긴 하지만.

‘지금 찌른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쉰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실 전 지금 팀이 좋습니다. 다시 시작해서 똑같은 팀을 꾸려도 절대 지금과 같을 수는 없겠죠. 공유한 사건과 이야기가 달라질 테니까.”

“…….”

“그냥 제가… 여기서 계속 살 수 있게 보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뭐, 성격에 안 맞는 발언이긴 했다만, 아프면 좀 감성적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때맞춰서 특성도 터져줬다.

훌륭해.

물론 상대의 ‘감정적 동요’를 이끌어내는 것이니, 설득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봐라.

“…미안해요.”

청려는 약간 표정 없는 얼굴로 짧게 중얼거렸다.

딱 ‘미안한 감정’ 정도만 생겼나 보군. 알겠다 개새끼야.

정확히 계획대로다.

“…….”

나는 일부러 한동안 침묵하다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머리가 아파서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그런데, 화장실… 앞까지만 좀 부축해 주시죠.”

“그래요.”

거절 안 할 줄 알았다.

청려가 적당히 다리 불편한 사람 부축하는 것처럼 내 어깨 밑을 받쳐 들었다.

생각이 흔들리며 주의가 분산된 순간.

그러니까… 내 동작보다 본인 생각을 더 의식할 순간.

‘지금이다.’

나는 양팔을 돌려서, 청려의 머리에 걸쳤다.

“…!”

그리고 수갑째로 놈의 목에 걸어 당기기 시작했다.

“…이!”

수갑 사이 금속이 놈의 목을 꾹 누르는데, 당연하지만 저항이 거셌다. 체중째로 눌러서 자세를 불안하게 바꿔도 계속 가격이 들어온다.

‘X발.’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군. 하지만 절대 놓을 순 없다.

나는 억지로 팔을 비틀어서, 놈의 목을 그대로 꺾었다.

“…!!”

“크읍.”

어차피 이 컨디션에 두 손이 부자유스러운 판에 어지간해서는 건장한 성인의 목을 부러트릴 수 없다.

그냥 이 새끼 정신이 몽롱해질 때까지 누른다…!

“….”

산소가 차단되어 창백해지면서도 눈깔을 돌려서 이쪽을 노려보는 게 X발, 더럽게 소름 끼치는…….

상관없다.

‘시뮬레이션하던 대로만!’

나는 마지막으로 수갑을 뒤틀어 놈의 머리 뒤를 후려갈겼다.

퍽.

짧고 과격한 소리와 함께, 압력이 사라졌다.

“…….”

제압했다.

“허억.”

나는 후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X발, 진짜.”

팔목 다 작살났다. 개 같네 진짜.

그래도 희열 때문에 통증은 모르겠다.

나는 되는 대로 꿈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가서, 다행히 쓸 만한 날붙이를 찾았다.

바로… 전구다.

파바박!

집어던진 책에 조명이 박살 나며 날카로운 조각이 바닥에 쏟아졌다.

옛날 제품이라 더 심했다.

“좋아.”

몇 번 손이 베이긴 했지만, 다리를 묶은 케이블 타이 뭉치는 풀었다.

이제 만일의 상황에 도주가 용이해졌으니, 예정대로 움직인다.

나는 뻐근한 목을 움직였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 * *

“…….”

“정신 차리셨네요.”

맞은편 의자에 케이블 타이로 꽁꽁 묶여 있던 청려가 신음도 없이 고개를 들었다.

“케이블 타이 여분을 많이도 사두셨던데.”

“…….”

“공구도 넉넉히 준비해 두셔서, 수갑도 잘 풀었습니다.”

나는 자유로운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준비성 철저하시네요, 선배님. 덕분에 편했습니다.”

그리고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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