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7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7화
청려를 동종업계 탑티어 경쟁자 선배로 보든 리셋 증후군에 걸린 미친놈으로 보든, 휴가 첫날부터 연락하고 싶은 부류는 절대 아니다.
‘무시할까.’
유혹이 강렬했다.
…다만 평소와 달리 문자가 아니라는 점이 신경을 건드렸다.
‘웬만하면 문자가 왔을 텐데 전화라.’
혹시라도 비상사태면 안 받는 게 더 귀찮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가령… 작곡가 관련 문제라든가.
‘X발 좀 쉬자.’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쉰 뒤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후배님. 미안한데 지금 휴가 중 맞죠?
이 새끼 상태 메시지도 봤는데 굳이 전화했네.
“…예. 휴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숙소겠네요.
왠지 그렇다고 하면 굉장히 짜증 나는 상황을 직면할 것 같은 직감이 든다.
나는 말을 바꿨다.
“이제 나가보려고 합니다. 지방으로 쉬러 내려갈까 해서요.”
-그렇구나. 그럼 지금은 잠깐 시간 될까요?
“예?”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 순간, 바로 설명이 붙었다.
-아, 지금 촬영 중이에요.
“…!”
-음… KBC 인데, ‘친한 후배’가 장소 추천인 키워드로 나와서요.
. 시청자 리퀘스트로 채운 제비뽑기를 통해 복불복으로 반나절 동안 국내 여기저기를 다니는 기획이다.
한마디로 복불복 여행기.
그리고 컴백을 앞에 둔 VTIC이 고를 만큼 꾸준히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컨텐츠 중에 즉석으로 지인을 참여시키는 게 있다고 하던데, 그건가.’
아마 시간 될 것 같은 놈 중에 내가 제일 인지도가 괜찮은가 본데, 난 휴가 첫날부터 일할 생각 없다. 그것도 이놈이랑은.
물론 촬영 테이프가 돌아가는 판에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완곡히 말을 돌렸다.
“어… 정말 감사한데요, 선배님. 제가 정말 금방 내려갈 거라…… 시간이 거의 없어서요. 이거 어쩌죠.”
적당히 아쉬운 투로 말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곤란해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문대 씨가 딱 근처라서 연락해 봤는데… 아주 잠깐만도 안 될까요? 제비뽑기 한 번만 하면 돼요.
“…….”
-많이 불편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
‘X나 불편하다 새끼야.’
하지만 여기서 거절했다가 편집이 제대로 안 되면 나만 손해다.
마침 휴가인 데다 숙소에 있는 놈이 그 잠깐도 시간을 못 내서 대선배를 물 먹였다는 뉘앙스로 해석하려는 놈들 분명 튀어나올 테니까.
그리고 이놈이 저자세로 나온 것도 분명 그걸 노렸을 것이다.
‘선 넘네.’
이번 건 반드시 돌려주겠다.
“그럴 리가요. 선배님 말씀이신데 어떻게든 시간 만들어보겠습니다.”
-정말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나중에 내가 맛있는 거 살게요.
곤란해하는 후배한테 갑질하는 쪽으로 슬쩍 밀어보려고 했는데 이런 건 안 걸리는군. 망할 새끼.
“지금 오시는 겁니까?”
-네. 그럴 거예요. 음… 5분 내로 도착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조금 있다 봐요.
전화 너머에서 청려의 웃음소리가 들리다가, 전화가 끊겼다.
‘귀찮군.’
나는 한숨을 참고, 마스크와 후드 티를 챙겨 쓴 뒤 밖으로 나왔다.
‘다른 놈들이 부를 때 같이 갈 걸 그랬나.’
차라리 배세진 말대로 서울 브랜드 아파트 매물이나 보러 다니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그쪽은 시세라도 남지.’
이건 뭐, 열만 받았다.
출근 시간대가 막 지난 아침이라 단지는 한산했다. 나는 정문 앞에서 이미 대기 중인 검은 승용차 한 대를 확인했다.
나를 확인했는지 누군가 창문 밖으로 손을 살짝 흔들었다.
‘저건가.’
가까이 다가가자 보조석 문이 바로 열렸다.
“…!”
그 건너편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청려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문대 씨.”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빨리 내려왔네요. 정말 고마워요. 일단… 여기 카메라 보고 인사부터 할까요?”
아직 스탭이 붙지 않는 구간인지, 차 안에는 청려 혼자였다. 그리고 운전석 중심으로 온갖 각도에 카메라가 보였다.
청려가 찍은 것은 보조석 앞에 달린 카메라였다.
나는 보조석에 적당히 몸을 넣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테스타의 박문대입니다……. 선배님 저, 제비뽑기는?”
“이동하면서 PD님이 알려주신다고 하네요. 짧게 이 주변 한 바퀴 돌 테니까, 연락 오면 받아 줄 수 있을까요?”
더 귀찮아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뭐 카메라 앞에서 토 달 수도 없다.
“예. 그럼요.”
나는 일단 보조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청려가 오디오를 채웠다.
“안전벨트 잊지 말아요.”
“네.”
안 말해도 설마 안 차겠냐, 새끼야.
나는 벨트를 차려 몸을 돌리다가, 문득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의식했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 연락하는 편이 낫지 않나.’
휴가 첫날에 갑자기 불러내서 굳이 그 생각까진 안 들었다만, 일단 카메오로 잠깐 나오더라도 보고는 해두는 게 서로 이로웠다.
‘내리자마자 해야겠군.’
일단 촬영 중이니 스마트폰은 최대한 안 만지는 게 좋으니까.
그때였다.
‘……?’
묘한 위화감 같은 것이 들었다.
…촬영 중.
나는 다시 카메라를 보았다.
‘불이 안 들어왔어.’
온에어 사인을 보통 빨간 불로 처리하는데, 이 카메라는 표시가 없었다.
아니, 이 카메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촬영 형태의 문제인가?’
그래도 혹시 오류나 이상으로 꺼졌나 해서, 나는 카메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후욱.
갑자기 뭔가가 얼굴로 날아와 우악스럽게 붙었다.
“…!”
“됐다.”
흰 천 같은 것이 눈코입을 틀어막았다. 갑자기 숨이 틀어막히며 이상한 휘발성 냄새가 뇌를 찔렀다.
“웁,”
생각이고 나발이고 당장 양손부터 들어 올려 천을 떼어내려 했으나, 순식간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X발….’
혀를 깨물려고 했으나 늦었다.
암전이었다.
* * *
“…허억!”
“아, 깼어요?”
머리가 X같이 아팠다.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통증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누르려 했으나, 두 손이 모두 달려 올라왔다.
철컹.
은색… 수갑이다.
‘…수갑?’
머리가 박살 날 것 같은 와중에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력했다.
“좀 마셔요.”
눈앞에 실리콘 재질의 컵이 불쑥 나타났다.
들고 있는 손의 주인은… X발, 청려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음, 일단 물 좀 마시고….”
“너 같으면 지금 물이 목구멍에 넘어가겠냐 X발 새끼야.”
“…….”
머리가 좀 더 깨끗한 상태였으면 좀 더 차분하게 대응하겠는데,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서 더 빡쳤다.
나는 되는 대로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며 사태를 분석하려 시도했다.
이 새끼가 방송이라고 차에 타게 했는데, 무슨 천 같은 게…….
‘마취제였나.’
그러면 당연히, 방송은 날 낚으려는 낚시였던 것이다.
카메라도 당연히 안 켜져 있었을 것이고.
‘X발…!’
이딴 것에 걸려들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일단 무슨 범죄 영화도 아니고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긴 한다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는 아니야.’
천장이나 바닥을 보니 연식이 오래된 주택인 것 같다. 즉, 어디 외진 곳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비명부터 질러봤자 이 새끼가 그런 것도 염두에 안 뒀을 리가 없고.’
즉, 사람 하나 죽여도 당장 방해 안 받을 법한 곳… 인 것 같단 말이다.
‘미치겠네.’
왜 갑자기 이 지랄이란 말인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하게 사고했다.
일단 질문부터.
“…대체 왜 사람을 기절시켜서 끌고 온 겁니까. 여긴 어디고요.”
“제안할 게 있어서. 별로 안 내켜 할 것 같으니 장기적으로 해볼까 하고 준비해 봤어요.”
청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컵을 적당히 내 근처에 두었다. 그리고 나는 내 발도 적당히 제압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저하네 X발.
“무슨 제안인데요.”
“음… 좀 식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다시 시작하는 거 말이에요.”
이 미친 새끼가 들먹일 이유라면 이럴 쪽일 줄은 알았다.
다만 타이밍이 뜬금없었다.
“현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리고 선배님도 적응해 본다고 하셨잖습니까.”
“아, 그거요.”
청려가 미동도 없이 물끄러미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문제가 생겨서.”
“…예?”
“멤버 중 하나가 형사 사건에 기소당할 예정이라.”
“…!!”
“좀 더럽게 엮였어요. 수습이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룹에서 제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여파상 컴백이 예정대로는 힘들 것 같네요.”
X발.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래도, 그 사람만 탈퇴하면 그룹에는 문제없는 것 아닙니까?”
“네? 하하. 후배님. 왜 모른 척하고 그래요.”
청려가 미소를 지었다.
“VTIC이 한 10인조쯤 되는 다인원 그룹도 아니고, 하나 탈퇴하면 영향이 크죠. 이미지 문제도 생길 테니 이번이 하락세의 신호탄이 될 건 거의 확정이잖아요.”
청려가 의자를 끌어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회사에서도 차기 그룹 이야기부터 꺼내던데, 음, 끝이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대론 안 된다. 틀어야 한다.
“…제가 있던 미래에서, VTIC 관련해서 큰 소식은 들은 적 없습니다. 아마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고 넘어갈…….”
“공시생이라 잘 모른다며.”
“VTIC은 워낙 큰 그룹이라 그 정도 사건이면 분명 뉴스나 어디서 봤을….”
“하하, 너무 애쓰지 마요.”
“…….”
뭘 들어먹을 상태가 아니다. 당장 내 대가리를 내리쳐도 이상하지 않을…….
‘흉기.’
나는 당장 놈의 손이 닿을 만한 주변을 살폈다. 흉기로 쓸 만한 도구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뭐 해.”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서.”
“아, 시간 충분하니까 그건 천천히 궁금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물론 후배님의 선택에 달린 문제긴 한데… 음, 내 제안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네.”
청려가 웃으며 질문했다.
“자살하지 않을래요?”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미친 새끼가.
“미쳤습니까?”
“그럴 줄 알았어요. 거부감이 있을 시점이긴 하지.”
놈은 여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직접 죽는 건 그렇죠? 그런데 내가 죽이는 것도 되도록 피하고 싶어서요.”
‘꺼림칙해서’ 같은 상식적인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살해당했을 때도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괜한 변수를 넣고 싶지 않단 말이지.”
“…….”
“후배님도 그렇죠? 혹시라도 처음으로 못 돌아가는 끔찍한 사태는 피해야죠.”
“전 죽었을 때 안 돌아갈 것 같다고 충분히 말…….”
“돌아간다니까.”
청려가 눈을 마주쳤다.
“안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테니까 걱정 마요.”
“…….”
“아, 그리고 이야기해 두려고 했는데… 후배님, 아까 같은 섭외는 믿으면 안 돼요. 당연히 지인 부르는 건 사전에 다 이야기하고 촬영하죠. 혹시 다음에 사기나 공수표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기억해 둬요.”
청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시 시작할 때 어떤 방향으로 설계해야 후배님에게 더 좋을지에 대한 계획도 우리 천천히 세워 봐요.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고.”
“…….”
“좀 쉬고 있어요. 휴가라면서.”
청려는 낮게 허밍하면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탁.
예의 바른 작은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이 닫혔다.
“…후.”
긴장이 돋아났던 등골에 찬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수갑 아래 팔목에서도 땀이 찼다.
‘당장 변사체행은 피했다.’
그러나 저놈이 언제 머리가 더 돌아서 ‘그냥 죽이는 게 편하겠다’는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뭐 이런 개같은 상황이…….
여기 내가 걸렸다고?
‘휴가라고 뇌가 녹았나, X발.’
나는 끓어오르는 격분에 수갑째 손을 바닥에 내리쳤다. 바닥만 파이고, 수갑은 멀쩡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X발 어떻게든 여기서 멀쩡히 기어나간다.’
내가 기절했을 때 머리를 오함마로 갈기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개새끼야.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7화
청려를 동종업계 탑티어 경쟁자 선배로 보든 리셋 증후군에 걸린 미친놈으로 보든, 휴가 첫날부터 연락하고 싶은 부류는 절대 아니다.
‘무시할까.’
유혹이 강렬했다.
…다만 평소와 달리 문자가 아니라는 점이 신경을 건드렸다.
‘웬만하면 문자가 왔을 텐데 전화라.’
혹시라도 비상사태면 안 받는 게 더 귀찮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가령… 작곡가 관련 문제라든가.
‘X발 좀 쉬자.’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쉰 뒤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후배님. 미안한데 지금 휴가 중 맞죠?
이 새끼 상태 메시지도 봤는데 굳이 전화했네.
“…예. 휴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숙소겠네요.
왠지 그렇다고 하면 굉장히 짜증 나는 상황을 직면할 것 같은 직감이 든다.
나는 말을 바꿨다.
“이제 나가보려고 합니다. 지방으로 쉬러 내려갈까 해서요.”
-그렇구나. 그럼 지금은 잠깐 시간 될까요?
“예?”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 순간, 바로 설명이 붙었다.
-아, 지금 촬영 중이에요.
“…!”
-음… KBC 인데, ‘친한 후배’가 장소 추천인 키워드로 나와서요.
. 시청자 리퀘스트로 채운 제비뽑기를 통해 복불복으로 반나절 동안 국내 여기저기를 다니는 기획이다.
한마디로 복불복 여행기.
그리고 컴백을 앞에 둔 VTIC이 고를 만큼 꾸준히 잘 나가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컨텐츠 중에 즉석으로 지인을 참여시키는 게 있다고 하던데, 그건가.’
아마 시간 될 것 같은 놈 중에 내가 제일 인지도가 괜찮은가 본데, 난 휴가 첫날부터 일할 생각 없다. 그것도 이놈이랑은.
물론 촬영 테이프가 돌아가는 판에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기에, 나는 완곡히 말을 돌렸다.
“어… 정말 감사한데요, 선배님. 제가 정말 금방 내려갈 거라…… 시간이 거의 없어서요. 이거 어쩌죠.”
적당히 아쉬운 투로 말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곤란해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문대 씨가 딱 근처라서 연락해 봤는데… 아주 잠깐만도 안 될까요? 제비뽑기 한 번만 하면 돼요.
“…….”
-많이 불편하면 어쩔 수 없지만요.
‘X나 불편하다 새끼야.’
하지만 여기서 거절했다가 편집이 제대로 안 되면 나만 손해다.
마침 휴가인 데다 숙소에 있는 놈이 그 잠깐도 시간을 못 내서 대선배를 물 먹였다는 뉘앙스로 해석하려는 놈들 분명 튀어나올 테니까.
그리고 이놈이 저자세로 나온 것도 분명 그걸 노렸을 것이다.
‘선 넘네.’
이번 건 반드시 돌려주겠다.
“그럴 리가요. 선배님 말씀이신데 어떻게든 시간 만들어보겠습니다.”
-정말요? 미안하고 고마워요. 나중에 내가 맛있는 거 살게요.
곤란해하는 후배한테 갑질하는 쪽으로 슬쩍 밀어보려고 했는데 이런 건 안 걸리는군. 망할 새끼.
“지금 오시는 겁니까?”
-네. 그럴 거예요. 음… 5분 내로 도착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조금 있다 봐요.
전화 너머에서 청려의 웃음소리가 들리다가, 전화가 끊겼다.
‘귀찮군.’
나는 한숨을 참고, 마스크와 후드 티를 챙겨 쓴 뒤 밖으로 나왔다.
‘다른 놈들이 부를 때 같이 갈 걸 그랬나.’
차라리 배세진 말대로 서울 브랜드 아파트 매물이나 보러 다니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다.
‘그쪽은 시세라도 남지.’
이건 뭐, 열만 받았다.
출근 시간대가 막 지난 아침이라 단지는 한산했다. 나는 정문 앞에서 이미 대기 중인 검은 승용차 한 대를 확인했다.
나를 확인했는지 누군가 창문 밖으로 손을 살짝 흔들었다.
‘저건가.’
가까이 다가가자 보조석 문이 바로 열렸다.
“…!”
그 건너편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청려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문대 씨.”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빨리 내려왔네요. 정말 고마워요. 일단… 여기 카메라 보고 인사부터 할까요?”
아직 스탭이 붙지 않는 구간인지, 차 안에는 청려 혼자였다. 그리고 운전석 중심으로 온갖 각도에 카메라가 보였다.
청려가 찍은 것은 보조석 앞에 달린 카메라였다.
나는 보조석에 적당히 몸을 넣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테스타의 박문대입니다……. 선배님 저, 제비뽑기는?”
“이동하면서 PD님이 알려주신다고 하네요. 짧게 이 주변 한 바퀴 돌 테니까, 연락 오면 받아 줄 수 있을까요?”
더 귀찮아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뭐 카메라 앞에서 토 달 수도 없다.
“예. 그럼요.”
나는 일단 보조석에 올라탔다. 문이 닫히자마자 청려가 오디오를 채웠다.
“안전벨트 잊지 말아요.”
“네.”
안 말해도 설마 안 차겠냐, 새끼야.
나는 벨트를 차려 몸을 돌리다가, 문득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의식했다.
‘그러고 보니 회사에 연락하는 편이 낫지 않나.’
휴가 첫날에 갑자기 불러내서 굳이 그 생각까진 안 들었다만, 일단 카메오로 잠깐 나오더라도 보고는 해두는 게 서로 이로웠다.
‘내리자마자 해야겠군.’
일단 촬영 중이니 스마트폰은 최대한 안 만지는 게 좋으니까.
그때였다.
‘……?’
묘한 위화감 같은 것이 들었다.
…촬영 중.
나는 다시 카메라를 보았다.
‘불이 안 들어왔어.’
온에어 사인을 보통 빨간 불로 처리하는데, 이 카메라는 표시가 없었다.
아니, 이 카메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촬영 형태의 문제인가?’
그래도 혹시 오류나 이상으로 꺼졌나 해서, 나는 카메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후욱.
갑자기 뭔가가 얼굴로 날아와 우악스럽게 붙었다.
“…!”
“됐다.”
흰 천 같은 것이 눈코입을 틀어막았다. 갑자기 숨이 틀어막히며 이상한 휘발성 냄새가 뇌를 찔렀다.
“웁,”
생각이고 나발이고 당장 양손부터 들어 올려 천을 떼어내려 했으나, 순식간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X발….’
혀를 깨물려고 했으나 늦었다.
암전이었다.
* * *
“…허억!”
“아, 깼어요?”
머리가 X같이 아팠다.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통증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누르려 했으나, 두 손이 모두 달려 올라왔다.
철컹.
은색… 수갑이다.
‘…수갑?’
머리가 박살 날 것 같은 와중에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강력했다.
“좀 마셔요.”
눈앞에 실리콘 재질의 컵이 불쑥 나타났다.
들고 있는 손의 주인은… X발, 청려다.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음, 일단 물 좀 마시고….”
“너 같으면 지금 물이 목구멍에 넘어가겠냐 X발 새끼야.”
“…….”
머리가 좀 더 깨끗한 상태였으면 좀 더 차분하게 대응하겠는데, 대충 무슨 상황인지 짐작이 가서 더 빡쳤다.
나는 되는 대로 머리를 양손으로 누르며 사태를 분석하려 시도했다.
이 새끼가 방송이라고 차에 타게 했는데, 무슨 천 같은 게…….
‘마취제였나.’
그러면 당연히, 방송은 날 낚으려는 낚시였던 것이다.
카메라도 당연히 안 켜져 있었을 것이고.
‘X발…!’
이딴 것에 걸려들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아니, 일단 무슨 범죄 영화도 아니고 이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긴 한다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는 아니야.’
천장이나 바닥을 보니 연식이 오래된 주택인 것 같다. 즉, 어디 외진 곳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비명부터 질러봤자 이 새끼가 그런 것도 염두에 안 뒀을 리가 없고.’
즉, 사람 하나 죽여도 당장 방해 안 받을 법한 곳… 인 것 같단 말이다.
‘미치겠네.’
왜 갑자기 이 지랄이란 말인가.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최대한 침착하게 사고했다.
일단 질문부터.
“…대체 왜 사람을 기절시켜서 끌고 온 겁니까. 여긴 어디고요.”
“제안할 게 있어서. 별로 안 내켜 할 것 같으니 장기적으로 해볼까 하고 준비해 봤어요.”
청려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컵을 적당히 내 근처에 두었다. 그리고 나는 내 발도 적당히 제압되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저하네 X발.
“무슨 제안인데요.”
“음… 좀 식상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데. 다시 시작하는 거 말이에요.”
이 미친 새끼가 들먹일 이유라면 이럴 쪽일 줄은 알았다.
다만 타이밍이 뜬금없었다.
“현 상태에 만족한다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리고 선배님도 적응해 본다고 하셨잖습니까.”
“아, 그거요.”
청려가 미동도 없이 물끄러미 이쪽을 내려다보았다.
“문제가 생겨서.”
“…예?”
“멤버 중 하나가 형사 사건에 기소당할 예정이라.”
“…!!”
“좀 더럽게 엮였어요. 수습이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룹에서 제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여파상 컴백이 예정대로는 힘들 것 같네요.”
X발.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는 침을 삼켰다.
“……그래도, 그 사람만 탈퇴하면 그룹에는 문제없는 것 아닙니까?”
“네? 하하. 후배님. 왜 모른 척하고 그래요.”
청려가 미소를 지었다.
“VTIC이 한 10인조쯤 되는 다인원 그룹도 아니고, 하나 탈퇴하면 영향이 크죠. 이미지 문제도 생길 테니 이번이 하락세의 신호탄이 될 건 거의 확정이잖아요.”
청려가 의자를 끌어와서 맞은편에 앉았다.
“회사에서도 차기 그룹 이야기부터 꺼내던데, 음, 끝이라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대론 안 된다. 틀어야 한다.
“…제가 있던 미래에서, VTIC 관련해서 큰 소식은 들은 적 없습니다. 아마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고 넘어갈…….”
“공시생이라 잘 모른다며.”
“VTIC은 워낙 큰 그룹이라 그 정도 사건이면 분명 뉴스나 어디서 봤을….”
“하하, 너무 애쓰지 마요.”
“…….”
뭘 들어먹을 상태가 아니다. 당장 내 대가리를 내리쳐도 이상하지 않을…….
‘흉기.’
나는 당장 놈의 손이 닿을 만한 주변을 살폈다. 흉기로 쓸 만한 도구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뭐 해.”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서.”
“아, 시간 충분하니까 그건 천천히 궁금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물론 후배님의 선택에 달린 문제긴 한데… 음, 내 제안 이야기로 돌아가야겠네.”
청려가 웃으며 질문했다.
“자살하지 않을래요?”
등골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미친 새끼가.
“미쳤습니까?”
“그럴 줄 알았어요. 거부감이 있을 시점이긴 하지.”
놈은 여상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직접 죽는 건 그렇죠? 그런데 내가 죽이는 것도 되도록 피하고 싶어서요.”
‘꺼림칙해서’ 같은 상식적인 이유는 나오지 않았다.
“살해당했을 때도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괜한 변수를 넣고 싶지 않단 말이지.”
“…….”
“후배님도 그렇죠? 혹시라도 처음으로 못 돌아가는 끔찍한 사태는 피해야죠.”
“전 죽었을 때 안 돌아갈 것 같다고 충분히 말…….”
“돌아간다니까.”
청려가 눈을 마주쳤다.
“안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테니까 걱정 마요.”
“…….”
“아, 그리고 이야기해 두려고 했는데… 후배님, 아까 같은 섭외는 믿으면 안 돼요. 당연히 지인 부르는 건 사전에 다 이야기하고 촬영하죠. 혹시 다음에 사기나 공수표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기억해 둬요.”
청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시 시작할 때 어떤 방향으로 설계해야 후배님에게 더 좋을지에 대한 계획도 우리 천천히 세워 봐요.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지 물어보고.”
“…….”
“좀 쉬고 있어요. 휴가라면서.”
청려는 낮게 허밍하면서 방문을 열고 나갔다.
탁.
예의 바른 작은 소리와 함께 다시 문이 닫혔다.
“…후.”
긴장이 돋아났던 등골에 찬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수갑 아래 팔목에서도 땀이 찼다.
‘당장 변사체행은 피했다.’
그러나 저놈이 언제 머리가 더 돌아서 ‘그냥 죽이는 게 편하겠다’는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뭐 이런 개같은 상황이…….
여기 내가 걸렸다고?
‘휴가라고 뇌가 녹았나, X발.’
나는 끓어오르는 격분에 수갑째 손을 바닥에 내리쳤다. 바닥만 파이고, 수갑은 멀쩡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내가 X발 어떻게든 여기서 멀쩡히 기어나간다.’
내가 기절했을 때 머리를 오함마로 갈기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