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7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5화
내가 본부장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틀 전이었다.
“또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래도 올해는 다 채우고 가실 줄 알았는데.”
알음알음 도는 소문으로는, 산업스파이 건이 T1 본사까지 들어가면서 결재봇과 윗선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슨 합의가 났는지, 결재봇은 퇴직하며 자회사로 떠났고 그 자리에 새 본부장이 부임해 왔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본부장님이 T1에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유명한 전문 CEO가 온대요!”
“기대되네요.”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지만, 뭐 맞장구야 못 쳐줄 것도 없었기 때문에 회사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참고로 이 자리는 콘서트 관련 회의였다.
“그럼 문대 씨 솔로곡 연출은 이렇게 확정인 걸로 올려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때만 해도 이틀 후 리얼리티 회의에서 예상도 못 한 미국행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미국이요?”
“저 좋아요! 미국 가요!”
“아, 유진아 잠깐만. 미국 좋죠~ 근데 비용도 그렇고 저희 스케줄 괜찮을까요? 투어 미국 쪽 거의 안 돌잖아요~”
‘이번 리얼리티는 미국행’ 발언을 듣자마자 큰세진이 바로 현실적인 문제를 부드럽게 꺼내왔다.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온다고 말한 것은 그야말로 KPOP 좋아하는 마니아층 사이에서 겨우 국내 1군 다운 인지도를 갖추었다는 말일 뿐이었다.
그 게임토크쇼 나가서 받은 관심으로 서브컬쳐 쪽 인지도도 좀 생기긴 했다만 어디까지나 소소한 수준이다.
투어 규모가 기대될 정도는 아니란 뜻이고, 당연히 미국 쪽 콘서트는 구색만 맞추는 수준이었다.
“아, 남미투어 일정하고 맞춰서 비행기 스케줄을 잘 짜보신다고 해요. 비용이야 뭐, Tnet에서 당연히 테스탄데 이 정도는 투자하겠다고~”
“오오~”
“감사한 일입니다만 혹시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아닌지….”
몇몇 순진한 놈들이 직원의 아부에 쑥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이상한데.’
뜬금없이 미국이라니 가성비가 너무 안 맞지 않는가.
나는 직원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굳이 미국인 이유가 있을까요. Tnet 쪽에서 먼저 제시한 건가요?”
“아, 음… 본부장님이 제안하신 거긴 한데요…….”
“…새로 오신 본부장님이요?”
“네.”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이틀 전인데 대체 언제 그런 제안을 한 건지 벌써 싸하군.
“말씀하시면서 무슨 이유를 이야기하셨을까요.”
“그, 일단 제가 그 자리에서 직접 들은 건 아니라서… 음, 글로벌 동시 공개를 염두에 두고 고르시다 보니까, 좀, 전 세계적으로 친숙한 배경을 골랐다고 하시더라구요.”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두고 추상적인 답변을 준다. 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소리다.
‘좀 더 캐볼까.’
내가 입 열기 전에 류청우가 먼저 다음 질문을 이었다.
“글로벌 동시 공개요?”
“네. 이번 리얼리티는 한국 외 국가에서는 위튜브로 바로 공개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에요!”
차유진이 끼어들었다.
“미국 사람들 많이 봐요??”
“…! 어, 네.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동요하는 직원을 보니 차유진이 졸지에 정답을 찌른 게 분명했다.
‘설마 영어권을 노렸다니.’
뭐 리얼리티 한 편 정도야 이런 시도를 해도 나쁠 건 없었다만, 문제는 여기서 새 본부장의 경향성이 보였다는 점이다.
해외투어 중에 국내 팬들을 달랠 컨텐츠를 뽑아서 이탈을 막을 생각보다, 어떻게든 해외 파이를 늘릴 생각을 하는 것 말이다.
그것도 이미 KPOP이 친숙한 나라가 아니라, ‘ 있어 보이는’ 미국을 대상으로.
‘일단 끊자.’
그룹이 썩 안 내켜 한다는 티를 냈을 때 조심스러워하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낫겠다.
나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해보고 다음 미팅 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게~ 그편이 좋을 것 같아요!”
큰세진이 지원사격을 했지만, 대답하는 직원의 말꼬리가 길어졌다.
“아, 그럼요! 그런데 물론 테스타 분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프로그램 제작진분들이 여러 현실적 요건을 고려해서 결정하시는 거라… 그 점은 정말 죄송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다음 미팅 때 미국 안 가고 싶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보내 버리겠다는 뜻이다.
‘X발.’
내부에서 어지간히 강하게 밀어서 이미 반쯤 결정이 난 건이었나 보다. 그래도 산업스파이 건 때문에 엄청나게 눈치 보는 티는 난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에는 적당히 리얼리티에서 하고 싶은 컨텐츠 이야기나 좀 하다가 회의실을 나왔다.
“어때? 미국.”
“가요! 저 집 가요! 맛있는 레스토랑 많아요! 엄마가 형들 보고 싶어요!”
“아, 그건 너무 좋지~”
“이, 인사드릴 수 있다면 좋겠어.”
차유진이야 극렬 찬성파였고, 다른 멤버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어쩔 수 없지.’
확실히 다른 멤버에 비해서 가족을 만날 기회가 적을 테니,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면 쓰고 싶을 것이다.
‘집이 그립기도 하겠고.’
어차피 가게 된다면 차유진의 집으로 가는 편이 컨텐츠상으로는 좋겠다 싶다.
‘그 전에 분위기는 한번 잡는 편이 좋겠지만.’
안 그래도 아까 눈치 보는 걸 봐서는 아마 다음 미팅 전에 회사에서 무슨 제스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날 오전 회사 연습실에서 매니저에게 새 일정을 받았다.
“얘들아, 새로 오신 본부장님이 너희 좀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아, 본부장님께서요.”
“…지금요?”
“한 1시간 후쯤? 오래 안 걸릴 거라고 하시네!”
되묻는 배세진의 얼굴이 음침했다. 그럴 만도 했다.
‘쉬는 시간이 날아갔군.’
바쁜 스케줄 중간에 간신히 난 짬을 살려서 연습실에서 막간의 휴식을 즐기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습니다….”
“음, 넵!”
대답들이 썩 열의가 있진 않았다.
그래도 한 시간 뒤, 테스타는 오랜만에 본부장실로 향했다.
최근 종목을 바꿔서 프랑스 자수인지 뭔지를 하던 선아현까지 아쉬운 눈으로 천 더미를 힐끗거리는 걸 보니, 일단 본부장이 첫인상을 조진 건 확실했다.
‘차라리 미팅 시간 중에 남는 시간을 쓰지.’
급하게 자리 만드느라 은은한 반감만 샀지 않은가.
나는 이번에도 일 더럽게 못 하는 놈이 온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본부장실에 입성했다.
그리고 의외의 광경에 약간 놀랐다.
“아, 테스타 분들. 갑자기 불러서 죄송합니다. 우선 앉으세요.”
본부장은 다과를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구색 맞추기용 가벼운 수준이 아니라, 아예 웬 치킨부터 와플까지 종류별로 가져다 놓은 게 무슨 행사용 차림 수준이었다.
애들 꼬시는 학원 설명회 수준이었으나, 최소한 의사표시는 충분했다.
‘너희랑 잘해보려고 만든 자리야’ 하고 말이다.
“제가 여러분 쉬시는 중에 부른 게 맞죠? 가뜩이나 요새 바쁘실 텐데 죄송해서 좀 차려 봤습니다, 하하!”
“어휴, 당연히 괜찮습니다, 본부장님!”
“가, 감사합니다.”
“좀 드시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리고 본부장은 먼저 치킨 하나를 들었다.
대충 입만 댔다가 내려놓는 걸 보니 먹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자기가 먼저 안 들면 다른 놈들이 편하게 먹기 불편하다는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오.’
그래도 실무진과 가까이 지낸 느낌이 좀 나는군. 나이도 전 본부장들보다 훨씬 젊은 놈이다.
본부장은 적당히 잡담이나 좀 나누다가, 애들이 먹는 걸 좀 기다린 후에야 일 이야기로 들어갔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건, 우선 얼굴 좀 보고 서로 인사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한 게 첫 번째 이유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악수가 오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미 이야기 들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 리얼리티 미국 로케 관련입니다.”
본부장은 진지한 얼굴로 두 손을 깍지 꼈다.
“저는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 시장을 공략할 로드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
아 망할.
“제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여러분의 앨범과 활동 내역을 다 확인했어요.”
본부장은 진지한 얼굴로 테스타의 활동에 대해 줄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분석을 떠들었다.
“…그리고 미국이 좋아하는 건 분명하거든요. 언더독, 사회적 메시지, 뿌리에 대한 자부심과 개성. 어떨까요 유진 님. 제 말이 맞나요?”
“오, 맞아요!”
“그렇죠. 그리고 테스타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스타일의 팀이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분명 더 큰 시장에서도 통할 것 같습니다.”
“오…!”
헛소리다.
일단 그 세 가지 조건부터가 과한 비약이고, 차유진은 그냥 맛있는 걸 먹어서 신났는데 그걸 사준 놈이 뭘 물어보니 맞장구쳐준 것뿐이다.
무엇보다 그 세 가지 조건을 다 충족해도 미국에 안 먹힌 놈들은 하늘에 별처럼 많을 것이다.
‘헛꿈이 들었네.’
문제는 이 새끼가 자기 나름대로 자료를 분석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자기 능력을 굉장히 신뢰하는 듯했다.
류청우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음, 좋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어떤 특정 국가나 계층을 노리는 것보단… 계속 좋은 앨범을 내는 데 집중하는 쪽으로 팀을 꾸려와서요.”
“물론이죠! 여러분은 계속 좋은 음악해 주시면 됩니다. 그 좋은 음악을 어떻게 잘 홍보하고 매니징할지를 회사가 더 열심히 고민하고 활동하겠다는 말이었어요.”
말은 청산유수다.
“솔직히 지금까지 이 T1 스타즈의 서포트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비전을 공유하긴커녕 따라가는 데 급급했어요.”
본부장의 눈은 진지했다.
“가령 이번 콘서트 일본 투어 규모도 그렇죠. 가 일본 방영 1화부터 대단히 반응이 좋았다고 하던데, 그럼 발 빠르게 투어 규모도 키우고 추가 스케줄도 잡고, 일본 니즈 분석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오, 그래도 이건 제법 새로운 소식이었다.
근래 바빠서 남의 나라 반응까지 더 찾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저 말대로 소속사에서 진작 알아봤어야 할 일이긴 하다.
‘그래도 괜히 했다가 어쭙잖게 이상한 방향으로 일 벌이는 것보단 아무것도 안 한 지금이 낫다.’
가령 지금 저놈이 결재봇 대신 있었으면 뜬금없이 일본 음악방송이나 돌고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본부장은 자신의 분석에 깊이 심취했는지, 거의 침을 튀길 만큼 열변 중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요. 가 일본에서도 대히트해서 테스타 여러분의 주가가 쭉 상승하는 동안 소속사에서는 일본 활동을 손 놓고 있었습니다.”
“음, 그런가요.”
“일본에서 그 정도로 상승세가 뚜렷합니까?”
떨떠름한 류청우와 호기심에 찬 김래빈의 발언에,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있게 되어 신난 본부장이 웬 패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마트한 동작으로 휙 화면을 넘겼다.
“혹시 이거 보셨습니까?”
거기엔 적당히 최근 감성 템플릿으로 만들어진 PPT의 슬라이드 하나가 떠 있었다.
그리고 내용물은… 웬 일본 옥션 상품 캡처였다. 가격대가 어마어마한 것 외에 유별난 점은 없었다.
다만 그 상품에 선아현의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
“헉.”
그건 연초에 무슨 방송사 공익 캠페인에서 극소량만 이벤트로 추첨 증정했던 포토카드였다.
아마 인이어 떨어져서 선아현이 공중제비로 커버한 그 무대 직후, 백스테이지에서 방송국 스텝의 요청으로 찍었던 것이다.
‘묘하게 상황 특수성이 있지.’
게다가 선아현이 직접 찍은 것 치고는 역대급으로 잘 나와서, 하도 요청이 빗발치는 통에 결국 원본 사진 데이터를 방송국 SNS에서 띄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처음 이벤트로 풀었던 몇 장에 제법 프리미엄이 붙었던 것 같은데, 그게 일본까지 넘어가서 저런 가격대를 형성할 줄은 몰랐다.
“지금 이거 거의 한화로 50만 원 선이에요. 일본에서 대단히 테스타 수요가 증가 중이라는, 굉장히 임펙트 있는 증거죠. 특히 선아현 님 굉장히 반응이 좋더라구요.”
“네, 네….”
선아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본부장이 열정적으로 외쳤다.
“그러니 좀 더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을 이렇게 쉽게 뚫었으니 분명 미국도 괜찮은 루트만 뚫어서 매진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
이제 알겠다.
‘이놈 상대하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이 A 등급으로 돌아왔던 거였나.’
이런 식으로 또 내 이론이 증명되는군.
나는 한숨을 참고, 입을 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5화
내가 본부장이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틀 전이었다.
“또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그래도 올해는 다 채우고 가실 줄 알았는데.”
알음알음 도는 소문으로는, 산업스파이 건이 T1 본사까지 들어가면서 결재봇과 윗선 사이에서 여러 이야기가 오간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슨 합의가 났는지, 결재봇은 퇴직하며 자회사로 떠났고 그 자리에 새 본부장이 부임해 왔다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본부장님이 T1에서 오시는 분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유명한 전문 CEO가 온대요!”
“기대되네요.”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지만, 뭐 맞장구야 못 쳐줄 것도 없었기 때문에 회사 직원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참고로 이 자리는 콘서트 관련 회의였다.
“그럼 문대 씨 솔로곡 연출은 이렇게 확정인 걸로 올려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때만 해도 이틀 후 리얼리티 회의에서 예상도 못 한 미국행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뜻이다.
“미국이요?”
“저 좋아요! 미국 가요!”
“아, 유진아 잠깐만. 미국 좋죠~ 근데 비용도 그렇고 저희 스케줄 괜찮을까요? 투어 미국 쪽 거의 안 돌잖아요~”
‘이번 리얼리티는 미국행’ 발언을 듣자마자 큰세진이 바로 현실적인 문제를 부드럽게 꺼내왔다.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온다고 말한 것은 그야말로 KPOP 좋아하는 마니아층 사이에서 겨우 국내 1군 다운 인지도를 갖추었다는 말일 뿐이었다.
그 게임토크쇼 나가서 받은 관심으로 서브컬쳐 쪽 인지도도 좀 생기긴 했다만 어디까지나 소소한 수준이다.
투어 규모가 기대될 정도는 아니란 뜻이고, 당연히 미국 쪽 콘서트는 구색만 맞추는 수준이었다.
“아, 남미투어 일정하고 맞춰서 비행기 스케줄을 잘 짜보신다고 해요. 비용이야 뭐, Tnet에서 당연히 테스탄데 이 정도는 투자하겠다고~”
“오오~”
“감사한 일입니다만 혹시 제작비를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아닌지….”
몇몇 순진한 놈들이 직원의 아부에 쑥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이상한데.’
뜬금없이 미국이라니 가성비가 너무 안 맞지 않는가.
나는 직원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일부러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굳이 미국인 이유가 있을까요. Tnet 쪽에서 먼저 제시한 건가요?”
“아, 음… 본부장님이 제안하신 거긴 한데요…….”
“…새로 오신 본부장님이요?”
“네.”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이틀 전인데 대체 언제 그런 제안을 한 건지 벌써 싸하군.
“말씀하시면서 무슨 이유를 이야기하셨을까요.”
“그, 일단 제가 그 자리에서 직접 들은 건 아니라서… 음, 글로벌 동시 공개를 염두에 두고 고르시다 보니까, 좀, 전 세계적으로 친숙한 배경을 골랐다고 하시더라구요.”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두고 추상적인 답변을 준다. 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는 소리다.
‘좀 더 캐볼까.’
내가 입 열기 전에 류청우가 먼저 다음 질문을 이었다.
“글로벌 동시 공개요?”
“네. 이번 리얼리티는 한국 외 국가에서는 위튜브로 바로 공개하는 쪽으로 논의 중이에요!”
차유진이 끼어들었다.
“미국 사람들 많이 봐요??”
“…! 어, 네.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지만…….”
동요하는 직원을 보니 차유진이 졸지에 정답을 찌른 게 분명했다.
‘설마 영어권을 노렸다니.’
뭐 리얼리티 한 편 정도야 이런 시도를 해도 나쁠 건 없었다만, 문제는 여기서 새 본부장의 경향성이 보였다는 점이다.
해외투어 중에 국내 팬들을 달랠 컨텐츠를 뽑아서 이탈을 막을 생각보다, 어떻게든 해외 파이를 늘릴 생각을 하는 것 말이다.
그것도 이미 KPOP이 친숙한 나라가 아니라, ‘ 있어 보이는’ 미국을 대상으로.
‘일단 끊자.’
그룹이 썩 안 내켜 한다는 티를 냈을 때 조심스러워하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낫겠다.
나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해보고 다음 미팅 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게~ 그편이 좋을 것 같아요!”
큰세진이 지원사격을 했지만, 대답하는 직원의 말꼬리가 길어졌다.
“아, 그럼요! 그런데 물론 테스타 분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는 프로그램 제작진분들이 여러 현실적 요건을 고려해서 결정하시는 거라… 그 점은 정말 죄송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다음 미팅 때 미국 안 가고 싶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보내 버리겠다는 뜻이다.
‘X발.’
내부에서 어지간히 강하게 밀어서 이미 반쯤 결정이 난 건이었나 보다. 그래도 산업스파이 건 때문에 엄청나게 눈치 보는 티는 난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에는 적당히 리얼리티에서 하고 싶은 컨텐츠 이야기나 좀 하다가 회의실을 나왔다.
“어때? 미국.”
“가요! 저 집 가요! 맛있는 레스토랑 많아요! 엄마가 형들 보고 싶어요!”
“아, 그건 너무 좋지~”
“이, 인사드릴 수 있다면 좋겠어.”
차유진이야 극렬 찬성파였고, 다른 멤버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어쩔 수 없지.’
확실히 다른 멤버에 비해서 가족을 만날 기회가 적을 테니,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면 쓰고 싶을 것이다.
‘집이 그립기도 하겠고.’
어차피 가게 된다면 차유진의 집으로 가는 편이 컨텐츠상으로는 좋겠다 싶다.
‘그 전에 분위기는 한번 잡는 편이 좋겠지만.’
안 그래도 아까 눈치 보는 걸 봐서는 아마 다음 미팅 전에 회사에서 무슨 제스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 날 오전 회사 연습실에서 매니저에게 새 일정을 받았다.
“얘들아, 새로 오신 본부장님이 너희 좀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
“아, 본부장님께서요.”
“…지금요?”
“한 1시간 후쯤? 오래 안 걸릴 거라고 하시네!”
되묻는 배세진의 얼굴이 음침했다. 그럴 만도 했다.
‘쉬는 시간이 날아갔군.’
바쁜 스케줄 중간에 간신히 난 짬을 살려서 연습실에서 막간의 휴식을 즐기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습니다….”
“음, 넵!”
대답들이 썩 열의가 있진 않았다.
그래도 한 시간 뒤, 테스타는 오랜만에 본부장실로 향했다.
최근 종목을 바꿔서 프랑스 자수인지 뭔지를 하던 선아현까지 아쉬운 눈으로 천 더미를 힐끗거리는 걸 보니, 일단 본부장이 첫인상을 조진 건 확실했다.
‘차라리 미팅 시간 중에 남는 시간을 쓰지.’
급하게 자리 만드느라 은은한 반감만 샀지 않은가.
나는 이번에도 일 더럽게 못 하는 놈이 온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본부장실에 입성했다.
그리고 의외의 광경에 약간 놀랐다.
“아, 테스타 분들. 갑자기 불러서 죄송합니다. 우선 앉으세요.”
본부장은 다과를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구색 맞추기용 가벼운 수준이 아니라, 아예 웬 치킨부터 와플까지 종류별로 가져다 놓은 게 무슨 행사용 차림 수준이었다.
애들 꼬시는 학원 설명회 수준이었으나, 최소한 의사표시는 충분했다.
‘너희랑 잘해보려고 만든 자리야’ 하고 말이다.
“제가 여러분 쉬시는 중에 부른 게 맞죠? 가뜩이나 요새 바쁘실 텐데 죄송해서 좀 차려 봤습니다, 하하!”
“어휴, 당연히 괜찮습니다, 본부장님!”
“가, 감사합니다.”
“좀 드시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리고 본부장은 먼저 치킨 하나를 들었다.
대충 입만 댔다가 내려놓는 걸 보니 먹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고, 자기가 먼저 안 들면 다른 놈들이 편하게 먹기 불편하다는 점을 아는 것 같았다.
‘오.’
그래도 실무진과 가까이 지낸 느낌이 좀 나는군. 나이도 전 본부장들보다 훨씬 젊은 놈이다.
본부장은 적당히 잡담이나 좀 나누다가, 애들이 먹는 걸 좀 기다린 후에야 일 이야기로 들어갔다.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건, 우선 얼굴 좀 보고 서로 인사하는 자리를 가지려고 한 게 첫 번째 이유예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저희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악수가 오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미 이야기 들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 리얼리티 미국 로케 관련입니다.”
본부장은 진지한 얼굴로 두 손을 깍지 꼈다.
“저는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 시장을 공략할 로드맵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
아 망할.
“제가 이 자리에 오기 전에 여러분의 앨범과 활동 내역을 다 확인했어요.”
본부장은 진지한 얼굴로 테스타의 활동에 대해 줄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분석을 떠들었다.
“…그리고 미국이 좋아하는 건 분명하거든요. 언더독, 사회적 메시지, 뿌리에 대한 자부심과 개성. 어떨까요 유진 님. 제 말이 맞나요?”
“오, 맞아요!”
“그렇죠. 그리고 테스타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스타일의 팀이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분명 더 큰 시장에서도 통할 것 같습니다.”
“오…!”
헛소리다.
일단 그 세 가지 조건부터가 과한 비약이고, 차유진은 그냥 맛있는 걸 먹어서 신났는데 그걸 사준 놈이 뭘 물어보니 맞장구쳐준 것뿐이다.
무엇보다 그 세 가지 조건을 다 충족해도 미국에 안 먹힌 놈들은 하늘에 별처럼 많을 것이다.
‘헛꿈이 들었네.’
문제는 이 새끼가 자기 나름대로 자료를 분석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자기 능력을 굉장히 신뢰하는 듯했다.
류청우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음, 좋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저희는 어떤 특정 국가나 계층을 노리는 것보단… 계속 좋은 앨범을 내는 데 집중하는 쪽으로 팀을 꾸려와서요.”
“물론이죠! 여러분은 계속 좋은 음악해 주시면 됩니다. 그 좋은 음악을 어떻게 잘 홍보하고 매니징할지를 회사가 더 열심히 고민하고 활동하겠다는 말이었어요.”
말은 청산유수다.
“솔직히 지금까지 이 T1 스타즈의 서포트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과 비전을 공유하긴커녕 따라가는 데 급급했어요.”
본부장의 눈은 진지했다.
“가령 이번 콘서트 일본 투어 규모도 그렇죠. 가 일본 방영 1화부터 대단히 반응이 좋았다고 하던데, 그럼 발 빠르게 투어 규모도 키우고 추가 스케줄도 잡고, 일본 니즈 분석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했어요.”
오, 그래도 이건 제법 새로운 소식이었다.
근래 바빠서 남의 나라 반응까지 더 찾아볼 기회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저 말대로 소속사에서 진작 알아봤어야 할 일이긴 하다.
‘그래도 괜히 했다가 어쭙잖게 이상한 방향으로 일 벌이는 것보단 아무것도 안 한 지금이 낫다.’
가령 지금 저놈이 결재봇 대신 있었으면 뜬금없이 일본 음악방송이나 돌고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본부장은 자신의 분석에 깊이 심취했는지, 거의 침을 튀길 만큼 열변 중이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떤가요. 가 일본에서도 대히트해서 테스타 여러분의 주가가 쭉 상승하는 동안 소속사에서는 일본 활동을 손 놓고 있었습니다.”
“음, 그런가요.”
“일본에서 그 정도로 상승세가 뚜렷합니까?”
떨떠름한 류청우와 호기심에 찬 김래빈의 발언에,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있게 되어 신난 본부장이 웬 패드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스마트한 동작으로 휙 화면을 넘겼다.
“혹시 이거 보셨습니까?”
거기엔 적당히 최근 감성 템플릿으로 만들어진 PPT의 슬라이드 하나가 떠 있었다.
그리고 내용물은… 웬 일본 옥션 상품 캡처였다. 가격대가 어마어마한 것 외에 유별난 점은 없었다.
다만 그 상품에 선아현의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
“헉.”
그건 연초에 무슨 방송사 공익 캠페인에서 극소량만 이벤트로 추첨 증정했던 포토카드였다.
아마 인이어 떨어져서 선아현이 공중제비로 커버한 그 무대 직후, 백스테이지에서 방송국 스텝의 요청으로 찍었던 것이다.
‘묘하게 상황 특수성이 있지.’
게다가 선아현이 직접 찍은 것 치고는 역대급으로 잘 나와서, 하도 요청이 빗발치는 통에 결국 원본 사진 데이터를 방송국 SNS에서 띄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처음 이벤트로 풀었던 몇 장에 제법 프리미엄이 붙었던 것 같은데, 그게 일본까지 넘어가서 저런 가격대를 형성할 줄은 몰랐다.
“지금 이거 거의 한화로 50만 원 선이에요. 일본에서 대단히 테스타 수요가 증가 중이라는, 굉장히 임펙트 있는 증거죠. 특히 선아현 님 굉장히 반응이 좋더라구요.”
“네, 네….”
선아현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본부장이 열정적으로 외쳤다.
“그러니 좀 더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을 이렇게 쉽게 뚫었으니 분명 미국도 괜찮은 루트만 뚫어서 매진하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
이제 알겠다.
‘이놈 상대하라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이 A 등급으로 돌아왔던 거였나.’
이런 식으로 또 내 이론이 증명되는군.
나는 한숨을 참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