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7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3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차유진과 같이 유닛 무대를?’
확실히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긴 했지만, 거의 픽스된 다른 세트 리스트와 달리 유닛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솔로곡이 있으니 굳이 필요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거든.’
대신 그 자리에 단체로 발라드나 한두 곡 하자는 건데, 난 사실 유닛 쪽에 더 마음이 기울긴 했다.
그쪽이 더 기대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답을 기다리는 차유진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안 돼.”
“예?? 왜요??”
차유진은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이놈 웃기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나랑 유닛 무대를 하고 싶은 이유가 뭔데.”
“형이 잘해요! 같이하면 멋져요!”
“모르지. 넌 춤을 잘 추고 난 노래를 잘하니까 오히려 안 맞을 것 같은데?”
“연습해요!”
아무렇지도 않게 노력 이야기부터 나오는군. 너도 한국인 다 됐다.
차유진은 드물게도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너 애초에 유닛 무대 생각하고 날 룸메이트로 골랐지.”
“네!”
특별히 숨길 생각도 없었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번에 룸메이트끼리 유닛 무대를 했던 걸 떠올리고 골랐나.’
나는 대답 없이 차유진을 쳐다보았고, 차유진은 살짝 풀이 죽었다.
“형 무대 재밌어요… 나도 그거 할래요.”
음. 그래도 여전히 말은 꿋꿋하군.
“내 무대가 재밌다고?”
“네…. 영어 말해도 돼요?”
지금까지 실컷 써놓고는 뭘 묻고 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차유진은 영어로 상황을 주르륵 설명했다.
[우리가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에 출연할 때부터 생각했는데, 형이 생각하는 무대 아이디어들이 정말 멋져요. 그래서 이번 콘서트에선 저도 거기에 100%를 쏟아서 한번 해보고 싶어요!]
차유진은 눈을 번쩍이며 손가락으로 자신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최고의 댄스, 최고의 보컬! 장담하는데 연습만 조금 더하면 끝내주는 무대가 될 거예요!]
오, 예상 이상의 호평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사 때도 계속 다음에 같이하자고 했었나.’
그땐 다음이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장기적 안목으로 생각했었나 보다.
이거 참.
‘좀 잘 설명해 줄까.’
팀에 댄스라인이 셋이나 되는 데도 본인이 제일 춤을 잘 춘다고 당당히 말하는 저 당당함을 봐라.
그냥 거절했다간 자기가 납득이 안 되니 계속 유닛 하자고 조를 게 분명했다.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유닛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알지?”
“하지만 유닛 좋아요! 그냥 한다고 말해요!”
“안 돼.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잘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들 의견도 다 고려해서 정해야지. 우린 팀이니까.”
“…….”
차유진은 부루퉁한 얼굴이었으나, 나름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포지션이 너무 달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확실히 다른 상태에서 이도 저도 아닌 유닛을 했다가 혹시 기대치에 못 미치면 상황이 애매해질 수 있어.”
“걱정 안 해요. 우리 실력 좋아요! 도전해요!”
넌 걱정 안 해도 내가 걱정이 된다 새끼야.
가뜩이나 1, 2위가 자기들끼리 짜고 유닛하면 관심 쏠릴 텐데, 거기서 이미 다른 멤버 개인 팬 중엔 빈정 상하는 사람이 나온단 말이다.
그런데 그 판에 기대보다 못해 버리면 기껏 무대 해놓고선 얻는 거 하나 없이 손해만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굳이 차유진과 유닛 할 이유가 없다.
“도전 좋지. 하지만 우린 일하는 중이야. 여긴 학교가 아니니까 무조건 도전할 수는 없어. 신중해져야지.”
“…….”
차유진은 완전히 축 처졌다. 저렇게 낙담하는 모습은 또 아주사 이후 처음이다.
‘원대한 포부가 있었나 본데.’
나는 결국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뭐, 콘서트 무대가 유닛으로 결정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
“…!”
기각이 아니라 보류라는 뜻이었다.
‘너무 눌러두는 것도 안 좋지.’
차유진을 좀 현실로 끄집어내리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찍어누를 필요는 없었다.
뭐, 정말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유진은 도로 신이 났다.
“좋아요! 저 영감님 많아요! 많이 말해요!”
영감을 주겠다는 뜻이겠지.
“하루에 세 번만 받는다.”
“Umm… Got it!”
차유진이 손가락을 튕기는 제스처를 하며 대화가 끝나는 듯했으나….
[그렇지! 수중 공연 어때요??]
“…….”
우리 콘서트 예산을 생각해라.
‘그냥 낙담하게 놔둘 걸 그랬나.’
나는 내 선택을 짧게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콘서트 유닛보다도 더 사소한 것에서 도화선에 불이 붙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 *
며칠 뒤, 테스타의 룸메이트 재배정 컨텐츠가 위튜브에 업로드되었다.
해당 계정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만 일주일 일찍 볼 수 있게 풀어줬지만, 당연히 불법 해적판이 온갖 곳에 판쳤다.
테스타의 유명세 덕분이었으나, 그 불법 업로드 영상마다 조회수가 붙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친 개웃곀ㅋㅋㅋㅋㅋㅋ
엄청나게 웃겼기 때문이다.
보통 팬을 겨냥한 아이돌의 자체 컨텐츠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테스타의 최근 위튜브 컨텐츠들도 적당히 훈훈하고 덜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룸메이트 컨텐츠부터는 제작 PD가 바뀌며, 테스타의 데뷔 리얼리티 당시의 자극적인 맛이 살아났다.
T1이 테스타의 자체 컨텐츠를 개편하면서, 데뷔 리얼리티를 찍었던 제작팀도 섭외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캐릭터성을 붙이고, 몰아가고, 편집의 반전도 잘 살렸다.
[배세진(투자중독자) : (전부 투자하고 남은 건 2코인…! 이젠 정말 코인뿐이야!)]
[선아현(건물주) : 아, 그… 세진 형께 3코인 징수하라고 떴어….]
[배세진(방금 파산) : !!!!]
게다가 워낙 이 게임에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덕분에 온갖 영상의 댓글마다 외국어와 한글로 웃는 의성어가 도배되었다.
-여러분 이 영상은 찐입니다 방금 웃다 토할 뻔했어요
-계속 서로 파산시켜 미쳤냐곸ㅋㅋㅋ얘들아 땅을 지켜 왜 자꾸 팔아서 투기햌ㅋㅋ큐ㅠㅠㅠㅠ
-(19:41) 차유진 1/216 확률 뚫고 최고액 받는 순간 애들 반응ㅋㅋㅋㅋ
-아이 류청우 배세진 개모탴ㅋㅋㅋㅋ
└어릴 때부터 진짜 돈 버느라 가짜 돈 버는 게임은 못 해본 듯..(측은한 이모티콘)
└ㅋㅋㅋㅋㅋㅋ아니 국가대표랑 아역배우를 불법 아동노동처럼 말하기 있냐고요!!
팬들은 불법 영상들을 신고하자고 글로는 독려하면서도, 내심 영상이 너무 재밌어서 그냥 좋아했다.
-머글 영업용으로 좋을 듯… 돌덕의 망상인가? (턱을 괸 이모티콘)
-어차피 자컨은 홍보용인데 괜히 멤버십으로 당장 푼돈에 눈멀지 말고 바로 풀지ㅠㅠ
-아 꿀잼… 얘들아 사랑한다
-이런 존잼 그룹을 당장 파지않으면 인생의 낭비 최고의 가성비 당신의 웃음을 되찾아줄 테스타를 지금 위튜브에서 만나보세요
-파산한 배세의 영혼을 잡아채는 이세진의 깜찍한 손동작.. (GIF)
그리고 PD는 이 게임 이후의 룸메이트 결성까지도 제법 재밌게 살렸다.
[차유진 : 와우!! 문대 형! 우리 룸메이트예요!]
[박문대 : …와? (영문은 모르겠으나 일단 고마움)]
룸메이트 배정으로 각각의 멤버들이 살짝 표현한 감정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대화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데뷔 후 거의 보지 못했던 차유진과 박문대의 조합은 제법 재밌어서 반응이 좋았다.
-차유진 그냥 박문대가 옆에 있어서 고르고 본 듯ㅋㅋㅋㅋㅋㅋㅋ
-문대 당연히 유진이가 래빈이 고를 줄 알았나 봐 표정 봨ㅋㅋㅋㅋ
-문댕댕 차고영 조합 얼마 만이냐 아 더 보여줘라~~(쩌렁쩌렁
-ㅅㅂ박문대 X나 내향인간 주제에 차유진 말 다 받아주네 X발 스윗한 사과떡 개조아
-이건 핵인싸 캘리보이의 직사광선에 짜게 마르는 인천 티벳여우 (캡처)
테스타를 두루두루 좋아하는 팬들이나 박문대의 팬들은 대부분 이 구도를 좋아했다. 캐릭터가 강렬하고 훈훈해서 재밌었기 때문이다.
다만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없진 않았다.
차유진의 개인 팬 중, ‘아주사’ 방영 극 초기부터 자리 잡고 있던 고인물 중 몇몇이었다.
-아 가만히 있는데 모두가 좋아하는 최애 밀고 싶어서 정병난 어떤 빠들 보면 우에에엑
-감성팔이로 선동질하던 버릇은 역시 못 버리는구나 어쩔 수 없지 그냥 죽어ㅠ
-곰머 X나 띠꺼운 티 다 내던데 곰머 빠들 어떻게든 훈훈으로 몰아가려고 기를 쓰네 썸머패키지 국데 다음은 윾진이야?ㅋㅋ
박문대가 차유진을 홀대하는 걸 억지로 훈훈하게 연출했다는 게 그들의 논지였다.
물론 이것이 차유진 팬덤의 전반적인 여론은 아니었다.
그들은 차유진의 성공적인 데뷔에 공격성이 많이 누그러들었고, 새롭게 팬이 된 사람과 섞이며 배타성이 많이 줄었다.
다만 여전히 박문대의 1위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에 의문을 느끼는 팬들이 은연중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감성은 박문대의 개인적 활약을 썩 좋지 않게 보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기에, 수면 아래 익명 사이트나 비밀 계정뿐만 아니라 공개된 곳에서도 이런 혐오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나왔던 것이다.
언제나와 비슷한 날이었다.
-이 새끼들 뭐야?
다만 전과의 차이점은, 박문대의 팬들도 더 참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캡처) 2위 악개들 아직도 이러고 계시네 느그가 못나서 투표에서 밀린 걸 어쩌라구ㅠㅠ
-응 열폭으로 넹글 돈 정병~
-윾진이도 너 같은 정병이 자기 프로필 쓰는 거 보면 토나올 듯ㅎ
-머갈텅텅이라 주둥이 간수 못 해서 단독 예능 못 나오는 걸 어떡해ㅜ 1위가 책임져줘야 하는 거야?ㅜ
아주사 때야 극 초반부터 부동의 상위권이었던 차유진 팬덤의 선점 효과에 밀려 꾹꾹 참고 뒷공작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박문대의 데뷔 후 활약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외양과 무대가 계속 계단식으로 좋아지며 팬 유입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데다가, 예능도 출연마다 홈런을 날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이번 앨범에서는 포토 카드 시세도 차유진과 엇비슷해졌다.
그러니 박문대의 과격한 개인팬들이 슬그머니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쟤네 정도는 이제 대놓고 패도 상관없지 않나?’
그리고 한번 반박하기 시작하니, 둑 깨진 저수지처럼 욕과 비난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차유진의 악성 개인팬들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몇몇 사람은 글을 삭제하고 사라졌으나, 남은 사람들은 물 밑으로 들어가며 더 과격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 내 계정에서 내 맘대로 떠드는 것도 안 되냐고 꼬우면 지들이 안 보면 될 걸 어디서 완장질이야ㅋㅋㅋㅋ
-올팬인 척 아가리 털면서 뒤에서는 솔로곡 스트리밍 배척하는 게 와우임 정말 돌이랑 빠가 똑같이 음습 그자체
-으으 X나 인기멤된 줄 알고 패악질 오졌다 그래 돈 안 쓰는 할배할매 픽 되신 거 축하드려요~(박수 이모티콘)
바야흐로 개판이 따로 없었다.
-쟤네 차유진 후렴 센터 아닐 때마다 별 추잡한 방법으로 까면서 팩스 총공까지 기획했던 새끼들임 이번 기회에 다 뿌리 뽑아야 돼요
-박문대 악개들 오픈메시지방 있잖아 왜 모른 척해ㅋㅋ 루머 제작 즐거웠어?(캡처)
폭로와 폭로가 이어지며, 루머와 가짜 증언문까지 슬금슬금 나오고 있었다.
-행복한 덕질 좀 하자 얘들아
-관련 내용 다 차단합니다 애들 떡밥만 즐길게요~
-다 탈덕해 제발
여기에 발 담그지 않은 팬 중 상황을 눈치챈 사람들은 많이들 진절머리를 내거나 무시했으나, 의견을 내는 사람도 심상치 않게 있었다.
-솔직히 차 악개들이 너무 심하긴 했지 미친 새끼들이 따로 없었음
-곰머 빠들도 똑같이 윾진이 까던데 그냥 다 병신들임 돌이 무슨 죄가 있냐
-걍 차유진이 1위 했어야 됐어 애초에 거기서부터 꼬인 거야 억울할 기회를 줬으니 뭐ㅋㅋㅋ
조금만 더 일이 번지면 SNS나 커뮤니티 인기글 진출까지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X발.’
그리고 박문대가 이 꼴을 본 것도 딱 그 시점이었다.
“…유진아.”
“네!”
“덥앱 좀 하자.”
회사와의 짧은 통화 후, 박문대는 차유진과 함께 개인 라이브 방송을 켜버렸다.
상황 확인 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3화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차유진과 같이 유닛 무대를?’
확실히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긴 했지만, 거의 픽스된 다른 세트 리스트와 달리 유닛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솔로곡이 있으니 굳이 필요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거든.’
대신 그 자리에 단체로 발라드나 한두 곡 하자는 건데, 난 사실 유닛 쪽에 더 마음이 기울긴 했다.
그쪽이 더 기대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답을 기다리는 차유진을 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대답했다.
“안 돼.”
“예?? 왜요??”
차유진은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이놈 웃기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너 나랑 유닛 무대를 하고 싶은 이유가 뭔데.”
“형이 잘해요! 같이하면 멋져요!”
“모르지. 넌 춤을 잘 추고 난 노래를 잘하니까 오히려 안 맞을 것 같은데?”
“연습해요!”
아무렇지도 않게 노력 이야기부터 나오는군. 너도 한국인 다 됐다.
차유진은 드물게도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너 애초에 유닛 무대 생각하고 날 룸메이트로 골랐지.”
“네!”
특별히 숨길 생각도 없었는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번에 룸메이트끼리 유닛 무대를 했던 걸 떠올리고 골랐나.’
나는 대답 없이 차유진을 쳐다보았고, 차유진은 살짝 풀이 죽었다.
“형 무대 재밌어요… 나도 그거 할래요.”
음. 그래도 여전히 말은 꿋꿋하군.
“내 무대가 재밌다고?”
“네…. 영어 말해도 돼요?”
지금까지 실컷 써놓고는 뭘 묻고 있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차유진은 영어로 상황을 주르륵 설명했다.
차유진은 눈을 번쩍이며 손가락으로 자신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오, 예상 이상의 호평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사 때도 계속 다음에 같이하자고 했었나.’
그땐 다음이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생각했는데, 나름대로 장기적 안목으로 생각했었나 보다.
이거 참.
‘좀 잘 설명해 줄까.’
팀에 댄스라인이 셋이나 되는 데도 본인이 제일 춤을 잘 춘다고 당당히 말하는 저 당당함을 봐라.
그냥 거절했다간 자기가 납득이 안 되니 계속 유닛 하자고 조를 게 분명했다.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유닛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야. 알지?”
“하지만 유닛 좋아요! 그냥 한다고 말해요!”
“안 돼.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잘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들 의견도 다 고려해서 정해야지. 우린 팀이니까.”
“…….”
차유진은 부루퉁한 얼굴이었으나, 나름대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나는 설명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포지션이 너무 달라.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이 확실히 다른 상태에서 이도 저도 아닌 유닛을 했다가 혹시 기대치에 못 미치면 상황이 애매해질 수 있어.”
“걱정 안 해요. 우리 실력 좋아요! 도전해요!”
넌 걱정 안 해도 내가 걱정이 된다 새끼야.
가뜩이나 1, 2위가 자기들끼리 짜고 유닛하면 관심 쏠릴 텐데, 거기서 이미 다른 멤버 개인 팬 중엔 빈정 상하는 사람이 나온단 말이다.
그런데 그 판에 기대보다 못해 버리면 기껏 무대 해놓고선 얻는 거 하나 없이 손해만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굳이 차유진과 유닛 할 이유가 없다.
“도전 좋지. 하지만 우린 일하는 중이야. 여긴 학교가 아니니까 무조건 도전할 수는 없어. 신중해져야지.”
“…….”
차유진은 완전히 축 처졌다. 저렇게 낙담하는 모습은 또 아주사 이후 처음이다.
‘원대한 포부가 있었나 본데.’
나는 결국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뭐, 콘서트 무대가 유닛으로 결정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
“…!”
기각이 아니라 보류라는 뜻이었다.
‘너무 눌러두는 것도 안 좋지.’
차유진을 좀 현실로 끄집어내리는 건 괜찮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찍어누를 필요는 없었다.
뭐, 정말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유진은 도로 신이 났다.
“좋아요! 저 영감님 많아요! 많이 말해요!”
영감을 주겠다는 뜻이겠지.
“하루에 세 번만 받는다.”
“Umm… Got it!”
차유진이 손가락을 튕기는 제스처를 하며 대화가 끝나는 듯했으나….
“…….”
우리 콘서트 예산을 생각해라.
‘그냥 낙담하게 놔둘 걸 그랬나.’
나는 내 선택을 짧게 후회했다.
그러나 이런 콘서트 유닛보다도 더 사소한 것에서 도화선에 불이 붙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 * *
며칠 뒤, 테스타의 룸메이트 재배정 컨텐츠가 위튜브에 업로드되었다.
해당 계정 멤버십에 가입한 사람만 일주일 일찍 볼 수 있게 풀어줬지만, 당연히 불법 해적판이 온갖 곳에 판쳤다.
테스타의 유명세 덕분이었으나, 그 불법 업로드 영상마다 조회수가 붙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미친 개웃곀ㅋㅋㅋㅋㅋㅋ
엄청나게 웃겼기 때문이다.
보통 팬을 겨냥한 아이돌의 자체 컨텐츠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테스타의 최근 위튜브 컨텐츠들도 적당히 훈훈하고 덜 자극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룸메이트 컨텐츠부터는 제작 PD가 바뀌며, 테스타의 데뷔 리얼리티 당시의 자극적인 맛이 살아났다.
T1이 테스타의 자체 컨텐츠를 개편하면서, 데뷔 리얼리티를 찍었던 제작팀도 섭외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캐릭터성을 붙이고, 몰아가고, 편집의 반전도 잘 살렸다.
게다가 워낙 이 게임에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했다.
덕분에 온갖 영상의 댓글마다 외국어와 한글로 웃는 의성어가 도배되었다.
-여러분 이 영상은 찐입니다 방금 웃다 토할 뻔했어요
-계속 서로 파산시켜 미쳤냐곸ㅋㅋㅋ얘들아 땅을 지켜 왜 자꾸 팔아서 투기햌ㅋㅋ큐ㅠㅠㅠㅠ
-(19:41) 차유진 1/216 확률 뚫고 최고액 받는 순간 애들 반응ㅋㅋㅋㅋ
-아이 류청우 배세진 개모탴ㅋㅋㅋㅋ
└어릴 때부터 진짜 돈 버느라 가짜 돈 버는 게임은 못 해본 듯..(측은한 이모티콘)
└ㅋㅋㅋㅋㅋㅋ아니 국가대표랑 아역배우를 불법 아동노동처럼 말하기 있냐고요!!
팬들은 불법 영상들을 신고하자고 글로는 독려하면서도, 내심 영상이 너무 재밌어서 그냥 좋아했다.
-머글 영업용으로 좋을 듯… 돌덕의 망상인가? (턱을 괸 이모티콘)
-어차피 자컨은 홍보용인데 괜히 멤버십으로 당장 푼돈에 눈멀지 말고 바로 풀지ㅠㅠ
-아 꿀잼… 얘들아 사랑한다
-이런 존잼 그룹을 당장 파지않으면 인생의 낭비 최고의 가성비 당신의 웃음을 되찾아줄 테스타를 지금 위튜브에서 만나보세요
-파산한 배세의 영혼을 잡아채는 이세진의 깜찍한 손동작.. (GIF)
그리고 PD는 이 게임 이후의 룸메이트 결성까지도 제법 재밌게 살렸다.
룸메이트 배정으로 각각의 멤버들이 살짝 표현한 감정들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대화해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데뷔 후 거의 보지 못했던 차유진과 박문대의 조합은 제법 재밌어서 반응이 좋았다.
-차유진 그냥 박문대가 옆에 있어서 고르고 본 듯ㅋㅋㅋㅋㅋㅋㅋ
-문대 당연히 유진이가 래빈이 고를 줄 알았나 봐 표정 봨ㅋㅋㅋㅋ
-문댕댕 차고영 조합 얼마 만이냐 아 더 보여줘라~~(쩌렁쩌렁
-ㅅㅂ박문대 X나 내향인간 주제에 차유진 말 다 받아주네 X발 스윗한 사과떡 개조아
-이건 핵인싸 캘리보이의 직사광선에 짜게 마르는 인천 티벳여우 (캡처)
테스타를 두루두루 좋아하는 팬들이나 박문대의 팬들은 대부분 이 구도를 좋아했다. 캐릭터가 강렬하고 훈훈해서 재밌었기 때문이다.
다만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없진 않았다.
차유진의 개인 팬 중, ‘아주사’ 방영 극 초기부터 자리 잡고 있던 고인물 중 몇몇이었다.
-아 가만히 있는데 모두가 좋아하는 최애 밀고 싶어서 정병난 어떤 빠들 보면 우에에엑
-감성팔이로 선동질하던 버릇은 역시 못 버리는구나 어쩔 수 없지 그냥 죽어ㅠ
-곰머 X나 띠꺼운 티 다 내던데 곰머 빠들 어떻게든 훈훈으로 몰아가려고 기를 쓰네 썸머패키지 국데 다음은 윾진이야?ㅋㅋ
박문대가 차유진을 홀대하는 걸 억지로 훈훈하게 연출했다는 게 그들의 논지였다.
물론 이것이 차유진 팬덤의 전반적인 여론은 아니었다.
그들은 차유진의 성공적인 데뷔에 공격성이 많이 누그러들었고, 새롭게 팬이 된 사람과 섞이며 배타성이 많이 줄었다.
다만 여전히 박문대의 1위에 대해서는 그 정당성에 의문을 느끼는 팬들이 은연중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감성은 박문대의 개인적 활약을 썩 좋지 않게 보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그렇기에, 수면 아래 익명 사이트나 비밀 계정뿐만 아니라 공개된 곳에서도 이런 혐오성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나왔던 것이다.
언제나와 비슷한 날이었다.
-이 새끼들 뭐야?
다만 전과의 차이점은, 박문대의 팬들도 더 참을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캡처) 2위 악개들 아직도 이러고 계시네 느그가 못나서 투표에서 밀린 걸 어쩌라구ㅠㅠ
-응 열폭으로 넹글 돈 정병~
-윾진이도 너 같은 정병이 자기 프로필 쓰는 거 보면 토나올 듯ㅎ
-머갈텅텅이라 주둥이 간수 못 해서 단독 예능 못 나오는 걸 어떡해ㅜ 1위가 책임져줘야 하는 거야?ㅜ
아주사 때야 극 초반부터 부동의 상위권이었던 차유진 팬덤의 선점 효과에 밀려 꾹꾹 참고 뒷공작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으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박문대의 데뷔 후 활약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외양과 무대가 계속 계단식으로 좋아지며 팬 유입이 늘어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 데다가, 예능도 출연마다 홈런을 날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이번 앨범에서는 포토 카드 시세도 차유진과 엇비슷해졌다.
그러니 박문대의 과격한 개인팬들이 슬그머니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쟤네 정도는 이제 대놓고 패도 상관없지 않나?’
그리고 한번 반박하기 시작하니, 둑 깨진 저수지처럼 욕과 비난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물론 차유진의 악성 개인팬들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몇몇 사람은 글을 삭제하고 사라졌으나, 남은 사람들은 물 밑으로 들어가며 더 과격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아 내 계정에서 내 맘대로 떠드는 것도 안 되냐고 꼬우면 지들이 안 보면 될 걸 어디서 완장질이야ㅋㅋㅋㅋ
-올팬인 척 아가리 털면서 뒤에서는 솔로곡 스트리밍 배척하는 게 와우임 정말 돌이랑 빠가 똑같이 음습 그자체
-으으 X나 인기멤된 줄 알고 패악질 오졌다 그래 돈 안 쓰는 할배할매 픽 되신 거 축하드려요~(박수 이모티콘)
바야흐로 개판이 따로 없었다.
-쟤네 차유진 후렴 센터 아닐 때마다 별 추잡한 방법으로 까면서 팩스 총공까지 기획했던 새끼들임 이번 기회에 다 뿌리 뽑아야 돼요
-박문대 악개들 오픈메시지방 있잖아 왜 모른 척해ㅋㅋ 루머 제작 즐거웠어?(캡처)
폭로와 폭로가 이어지며, 루머와 가짜 증언문까지 슬금슬금 나오고 있었다.
-행복한 덕질 좀 하자 얘들아
-관련 내용 다 차단합니다 애들 떡밥만 즐길게요~
-다 탈덕해 제발
여기에 발 담그지 않은 팬 중 상황을 눈치챈 사람들은 많이들 진절머리를 내거나 무시했으나, 의견을 내는 사람도 심상치 않게 있었다.
-솔직히 차 악개들이 너무 심하긴 했지 미친 새끼들이 따로 없었음
-곰머 빠들도 똑같이 윾진이 까던데 그냥 다 병신들임 돌이 무슨 죄가 있냐
-걍 차유진이 1위 했어야 됐어 애초에 거기서부터 꼬인 거야 억울할 기회를 줬으니 뭐ㅋㅋㅋ
조금만 더 일이 번지면 SNS나 커뮤니티 인기글 진출까지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X발.’
그리고 박문대가 이 꼴을 본 것도 딱 그 시점이었다.
“…유진아.”
“네!”
“덥앱 좀 하자.”
회사와의 짧은 통화 후, 박문대는 차유진과 함께 개인 라이브 방송을 켜버렸다.
상황 확인 후 반나절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