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7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2화
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테스타의 이번 룸메이트 배정은 카드 게임을 빙자한 땅따먹기 보드게임으로 정해졌다.
“자자, 이제 여의도는 제 ‘빨간무코인 세력’ 땅입니다! 다들 코인 하나씩 주시죠~”
“…어, 어어??”
“벌써? 세진이가 굉장히 잘하네.”
“하하~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낯선 게임은 룰이 복잡하고 플레이 타임이 길었으며 결정적으로, 룸메이트 배정과는 별 연관성이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콜라보 했었던 ‘127 Section’의 IP를 쓰는 보드게임 신작이더라고.
‘T1에서 넣은 PPL이겠지.’
이젠 익숙하다.
아무튼, 그래서 제작진들은 어떻게든 이걸 룸메이트 재배정과 끼워 맞추기 위해, 게임 순위 높은 놈 순서대로 룸메이트를 고를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결과가 이렇다.
“바로 유진이의… ‘불꽃폭주족’이 36칸으로 1등!”
“예아!!”
“에이~ 아쉽네!”
막판에 차유진이 역전승한 것이다.
‘삼 연속 주사위 6면이 나오다니.’
차유진의 미친 운빨에 승리고 나발이고 나중에는 다 무슨 갬블링 관전하는 것처럼 소리나 지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차유진 이놈은… 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룸메이트로 지목했고.
“문대 형, 룸메이트 잘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대체 왜.’
우리가 언제 친해졌다고 이러냐.
심지어 다른 놈을 끼워 넣어 책임을 분산시킨다는 선택지도 차단되었다.
“흠흠, 그럼 1등 한 유진이의 방 선택은….”
“1번!!”
2명이 지내는 방이다.
“오~ 문대 1번 방 복귀네? 축하해~”
“…오.”
하나도 안 반갑군.
물론 이걸 대놓고 표출하는 미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차마 적극적인 말은 못 했다만, 그래도 차유진에게 하이파이브나 어깨를 두드리는 등의 긍정적인 신체 신호는 충분히 주고 있다.
‘차유진 팬들은 자극하면 안 돼.’
그 사람들은 이걸 개그로 넘어가 주지 않고 날 쥐어 짜내서 막내 갈구는 왕따 유발자로 만들 것이다.
그러니 진정하고, 이놈이랑 같은 방을 써서 좋은 점을 생각해 보자….
“…….”
…그런 게 있나?
“그럼 2등인 세진이의 선택은?”
“옙, 제 선택은… 두구두구두구. 우리 멋쟁이 래빈이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하! 아, 우리 3인 방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음, 3등은 문대니까 생략하고… 마침 4등인 래빈이가 룸메이트 차례네. 래빈이 어떻게 할래?”
“저는 선아현 형이 마지막 룸메이트로 합류해 주셨으면 합니다!”
“…! 나, 나?”
“예! 지난 룸메이트 시절 이후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사항이….”
다른 놈들이 속속들이 룸메이트가 되는 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장점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하나는 알았다.
“젤리 먹어요!”
“그래.”
한동안 일찍 숙면하긴 글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 * *
며칠 후 음악방송 대기실. 의상 소품을 고정하던 스타일리스트가 물었다.
“문대야, 괜찮아? 정신없어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다만 바쿠스가 없었다면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차유진 저 미친놈 어제 새벽 2시까지 안 잤어.’
그것까지는 괜찮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 있지.
다만 그 2시까지 활발히 활동했다는 게 문제였다.
나한테 말을 걸면서 말이다.
“……후.”
사실, 나는 미리 선수 쳐서 차유진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해둔 상태였다.
-내가 최근에 체력을 관리하느라… 운동 시간 외에는 웬만하면 누워서 쉬고 싶거든.
-오우… 형 힘들어요?
-힘든 건 아니고. 체력을 좀 비축해 두려는 거니까 되도록 침대에서 안 나오게 해줘.
-알았습니다!
그리고 차유진은 내가 질문 폭탄이 날아올 것을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깔끔하게 오케이를 외치더니, 그다음부터는 정말 주의해 줬다.
그러니까… ‘침대에서 안 일어날 수 있는’ 수식어만 말이다.
-와우! 이거 봐요, 형!
-…….
침대에서 목만 빼서 확인한 차유진의 스마트폰에는 아기와 요상한 하울링으로 대화하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너무 귀엽고 웃기지 않아요?? 아기와 강아지. 언제나 제 하루를 행복하게 해준다니까요.]
-그래. 좋지.
여기에 긍정적인 대꾸를 해줄 때까지만 해도 이 비슷한 패턴이 새벽 2시까지 반복해서 나올 줄은 몰랐다.
당장 내일 금요일 음악방송 사전 녹화가 있는데… 말이다.
-형, 형! 이 hippo….
-그만.
결국 ‘조용히 하고 좀 자자’는 말을 세 번쯤 하고 나서야 차유진은 잠을 잤다.
조금만 더 나갔어도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강제로 취침시켰을 것이다.
‘미치겠네.’
물론 매번 이러는 건 아니다.
차유진이 일찍 잘 때도 있지만 그게 순 자기 맘대로라는 게 문제다.
그래도 태도를 보면 내 말을 나름대로 지키려는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자기 기준에 별거 아니다 싶으면 머리에 저장을 못 하는 부류라 매번 까먹는다는 것이다.
‘겁이라도 줘야 하나.’
물론 농담이다. 카메라 앞에서 차유진이 주눅 든 티라도 내는 순간 불화설 꼬투리다.
평소라면 무시할 정도였으나, 문제는 내가 바로 몇 달 전에 류청우에게 비협조적으로 보일 영상물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 썸머패키지 말이다.
‘안 좋아.’
고로 일단은… 참는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향상 반년 이상은 이 룸메이트가 고정일 텐데, 과연 내가 그동안 이 새끼에게 불편한 티를 한 점도 안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류청우는 처음에 어떻게 룸메이트를 버틴 거지.’
음, 생각해 보니 큰세진이 있으니 그쪽으로 차유진의 어그로가 다 튀었겠군.
“형! 쿠키 쿠키?”
“괜찮아.”
“맛있어요!”
“너 많이 먹어라.”
이젠 숙소 밖에서도 차유진이 부쩍 말 거는 빈도수가 늘었다. 룸메이트라고 친근감을 느끼는 중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테스타 바로 대기하러 이동하실 게요~”
“넵!”
어쨌든 다음 무대가 바로 우리였다. 룸메이트는 룸메이트고, 지금은 일에 집중하자.
와아아아아-!
인이어 너머로 함성이 들렸다.
차음 작용을 하는 작은 파츠를 뚫고 웅웅 울리는 소리는 묘하게 사람을 고양 시키는 맛이 있었다.
‘잡념이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특히 퍼포먼스가 복잡하고 빈틈없는 곡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느낌이 썩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군데군데 느슨하게 짜인 곡은 억지로라도 좀 생각을 하는 게 좋다.
그냥 흘렸다가는 맹숭맹숭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니까.
쉬운 만큼 밋밋해 보이지 않게 더 신경 써야 하더라고.
‘여기서 약간 기다렸다가… 제스처.’
-시원한 바람 달콤한 커피
시럽을 많이 넣어
나와 똑같아 그래
Take a seat
턱을 괴는 동작이 불 들어오는 카메라에 잘 잡혔다.
‘묘하게 수월하군.’
전보다 생각에서 표현까지의 딜레이나 체감적 차이가 줄어든 느낌이다.
‘이게 끼 스탯의 힘인가.’
제법 재밌었다.
나는 몇 번 생각에 없던 표현-표정을 바꾸거나 한 손으로 안경을 만드는 등의 동작을 더 추가했는데, 멈칫거림 없이 적절히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오.’
흥미롭다.
-이제 편하게 기다려
(Hold on a second)
지금 데리러 갈게
서로서로 등을 대고 서거나 앉는 것으로 무대는 끝났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꾸벅꾸벅 인사하며 무대 아래로 내려온 놈들의 얼굴이 굉장히 멀쩡했다.
“모니터링, 모니터링~”
“거기 줄 조심해!”
마지막에 좀 재기발랄한 댄스 브레이크가 있긴 한데, 특별히 폐가 튀어나올 만큼 숨이 차진 않았기 때문이다.
‘서브곡도 발라드고.’
재밌는 점은, 활동 난이도가 낮아진 것과 다르게 음원은 더없이 잘 나갔다는 점이다.
당장 매니저도 무대 모니터링이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이렇게 외치는 판이다.
“얘들아! 피크닉 음원 또 올랐어! 24Hits에서 7위야!”
“와!”
발매 5일째라고 믿기지 않는 쾌거였다.
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들어도 24시간 내로는 1회만 카운트해 주는 구조에서, 올해 남자아이돌 음원 중 이런 순위는 VTIC 외엔 우리가 처음이다.
‘당장 우리 직전 앨범인 행차보다도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좋아.’
음원 대중성이 훨씬 좋은 영린과 비슷한 속도였으니, 곡이 정말 이지리스닝으로 잘 빠졌다는 뜻이다.
큰세진이 슬쩍 챙겼다.
“래빈이가 편곡을 잘해줘서 그래~”
“마, 맞아. 곡 정말 좋아…!”
“아, 아닙니다! 실질적으론 좋은 데모와 팀원분들의 좋은 의견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수상소감 같다.
‘얼굴이 폈군.’
김래빈은 며칠 전보다 훨씬 편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음, 그래도 여전히 살벌해 보인다.
“너 곡 많이 만들어! 나 줘.”
“곡이라는 건 그렇게 마구 찍어내는 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영감이 와야 작업을 할 수 있…….”
“영감님? 너 할아버지?”
“바보야! 그게 아니라, 음…….”
나는 한숨을 쉬었다.
“…Inspiration.”
“아, 감사합니다 문대 형!”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이 두 놈의 정수리를 보고 있자니, 사실 차유진이 통역사로 쓰기 위해 날 룸메이트로 찍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설득력 있군.
“얘들아, 엔딩 무대!”
“아, 넵!”
어쨌든, 컴백 주라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생각을 정리할 타이밍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차유진의 속셈을 알게 된 건 며칠 후 취침 직전의 자유시간이 되어서였다.
* * *
[일기예보와 상관없어~ 널 만나고 싶은 날이야.]
그나마 시간이 빈 월요일 심야.
나는 침대에 누워서 직캠을 보고 있었다.
바로 금요일 날 찍었던 그 음방에서 올려준 공식 세로 직캠이었다.
[(K-cam) 테스타(TeSTAR) 박문대 직캠 ‘Picnic’ 2X1018]
썸네일은 턱을 괴는 내 클로즈업 샷에, 벌써 조회수도 제법 붙었다.
보니까 커뮤니티 등지에서 내 첫 번째 아주사 직캠과 비교하며 가볍게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그… 등급 평가 직캠 말이다.
나는 ‘박문대는 딥러닝 AI 댕댕이’ 비슷한 말로 도배된 댓글을 약간 민망하게 훑으며, 내 직캠을 다 봤다.
‘확실히 더 좋아졌다.’
강약 조절이 확실하고,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확실하면서도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게 좋았다.
‘음.’
이 정도면 예전의 내가 봐도 이놈은 돈 되겠다고 찍을 수준이 아닌가, 살짝 자화자찬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생각은 다음 동영상이 자동재생되며 일시 기각되었다.
[(K-cam) 테스타(TeSTAR) 차유진 직캠 ‘Picnic’ 2X1018]
같은 날 차유진의 직캠이었다.
‘이 새끼는 진짜 괴물이네.’
그냥 자연스럽고 좋은 수준이 아니라, 동작마다 하나하나 묘하게 느낌을 줬다.
‘흠, 쫄깃쫄깃?’
그런 수식어가 어울릴 것 같다.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게 아니라, 잘 살렸다.
‘분석할 보람이 있겠군.’
나는 잠시 차유진의 직캠을 틀어뒀다.
그러자, 불쑥 머리가 옆에 들어왔다.
“형! 제 video 봐요??”
“어. 너 잘하네.”
“히히.”
차유진은 신난 표정으로, 영어로 우수수 말을 쏟았다.
[어때요? 그러니까, 재미있어서 보는 거예요?]
“그것도 있고, 내 거랑 비교도 해보고 연구 좀 할 겸.”
“오우!”
차유진은 눈을 번쩍 빛내더니, 내 침대를 펑펑 쳤다.
[형! 그럼 우리 몇 가지 팁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형이 저한테 노래에 대해서 알려주면, 저는 춤에 대해 알려주는 거죠!]
“그래?”
“네!”
저놈이 가르치는 데 소양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별 기대는 안 된다고 생각할 찰나, 차유진의 본론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가 유닛 공연을 하는 게 어때요? 다음 콘서트에서!]
어쭈?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2화
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설명하자면 이렇다.
테스타의 이번 룸메이트 배정은 카드 게임을 빙자한 땅따먹기 보드게임으로 정해졌다.
“자자, 이제 여의도는 제 ‘빨간무코인 세력’ 땅입니다! 다들 코인 하나씩 주시죠~”
“…어, 어어??”
“벌써? 세진이가 굉장히 잘하네.”
“하하~ 감사합니다!”
참고로 이 낯선 게임은 룰이 복잡하고 플레이 타임이 길었으며 결정적으로, 룸메이트 배정과는 별 연관성이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콜라보 했었던 ‘127 Section’의 IP를 쓰는 보드게임 신작이더라고.
‘T1에서 넣은 PPL이겠지.’
이젠 익숙하다.
아무튼, 그래서 제작진들은 어떻게든 이걸 룸메이트 재배정과 끼워 맞추기 위해, 게임 순위 높은 놈 순서대로 룸메이트를 고를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결과가 이렇다.
“바로 유진이의… ‘불꽃폭주족’이 36칸으로 1등!”
“예아!!”
“에이~ 아쉽네!”
막판에 차유진이 역전승한 것이다.
‘삼 연속 주사위 6면이 나오다니.’
차유진의 미친 운빨에 승리고 나발이고 나중에는 다 무슨 갬블링 관전하는 것처럼 소리나 지르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차유진 이놈은… 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룸메이트로 지목했고.
“문대 형, 룸메이트 잘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대체 왜.’
우리가 언제 친해졌다고 이러냐.
심지어 다른 놈을 끼워 넣어 책임을 분산시킨다는 선택지도 차단되었다.
“흠흠, 그럼 1등 한 유진이의 방 선택은….”
“1번!!”
2명이 지내는 방이다.
“오~ 문대 1번 방 복귀네? 축하해~”
“…오.”
하나도 안 반갑군.
물론 이걸 대놓고 표출하는 미친 짓을 할 생각은 없었다.
차마 적극적인 말은 못 했다만, 그래도 차유진에게 하이파이브나 어깨를 두드리는 등의 긍정적인 신체 신호는 충분히 주고 있다.
‘차유진 팬들은 자극하면 안 돼.’
그 사람들은 이걸 개그로 넘어가 주지 않고 날 쥐어 짜내서 막내 갈구는 왕따 유발자로 만들 것이다.
그러니 진정하고, 이놈이랑 같은 방을 써서 좋은 점을 생각해 보자….
“…….”
…그런 게 있나?
“그럼 2등인 세진이의 선택은?”
“옙, 제 선택은… 두구두구두구. 우리 멋쟁이 래빈이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하하! 아, 우리 3인 방 가도 좋을 것 같은데?”
“음, 3등은 문대니까 생략하고… 마침 4등인 래빈이가 룸메이트 차례네. 래빈이 어떻게 할래?”
“저는 선아현 형이 마지막 룸메이트로 합류해 주셨으면 합니다!”
“…! 나, 나?”
“예! 지난 룸메이트 시절 이후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사항이….”
다른 놈들이 속속들이 룸메이트가 되는 동안 생각해 보았지만, 장점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만 하나는 알았다.
“젤리 먹어요!”
“그래.”
한동안 일찍 숙면하긴 글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 * *
며칠 후 음악방송 대기실. 의상 소품을 고정하던 스타일리스트가 물었다.
“문대야, 괜찮아? 정신없어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다만 바쿠스가 없었다면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차유진 저 미친놈 어제 새벽 2시까지 안 잤어.’
그것까지는 괜찮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 있지.
다만 그 2시까지 활발히 활동했다는 게 문제였다.
나한테 말을 걸면서 말이다.
“……후.”
사실, 나는 미리 선수 쳐서 차유진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해둔 상태였다.
-내가 최근에 체력을 관리하느라… 운동 시간 외에는 웬만하면 누워서 쉬고 싶거든.
-오우… 형 힘들어요?
-힘든 건 아니고. 체력을 좀 비축해 두려는 거니까 되도록 침대에서 안 나오게 해줘.
-알았습니다!
그리고 차유진은 내가 질문 폭탄이 날아올 것을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 깔끔하게 오케이를 외치더니, 그다음부터는 정말 주의해 줬다.
그러니까… ‘침대에서 안 일어날 수 있는’ 수식어만 말이다.
-와우! 이거 봐요, 형!
-…….
침대에서 목만 빼서 확인한 차유진의 스마트폰에는 아기와 요상한 하울링으로 대화하는 시베리안 허스키의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너무 귀엽고 웃기지 않아요?? 아기와 강아지. 언제나 제 하루를 행복하게 해준다니까요.]
-그래. 좋지.
여기에 긍정적인 대꾸를 해줄 때까지만 해도 이 비슷한 패턴이 새벽 2시까지 반복해서 나올 줄은 몰랐다.
당장 내일 금요일 음악방송 사전 녹화가 있는데… 말이다.
-형, 형! 이 hippo….
-그만.
결국 ‘조용히 하고 좀 자자’는 말을 세 번쯤 하고 나서야 차유진은 잠을 잤다.
조금만 더 나갔어도 뒤통수를 후려갈겨서 강제로 취침시켰을 것이다.
‘미치겠네.’
물론 매번 이러는 건 아니다.
차유진이 일찍 잘 때도 있지만 그게 순 자기 맘대로라는 게 문제다.
그래도 태도를 보면 내 말을 나름대로 지키려는 것 같긴 한데, 문제는 자기 기준에 별거 아니다 싶으면 머리에 저장을 못 하는 부류라 매번 까먹는다는 것이다.
‘겁이라도 줘야 하나.’
물론 농담이다. 카메라 앞에서 차유진이 주눅 든 티라도 내는 순간 불화설 꼬투리다.
평소라면 무시할 정도였으나, 문제는 내가 바로 몇 달 전에 류청우에게 비협조적으로 보일 영상물을 남겼다는 점이다.
그 썸머패키지 말이다.
‘안 좋아.’
고로 일단은… 참는다.
다만 지금까지의 경향상 반년 이상은 이 룸메이트가 고정일 텐데, 과연 내가 그동안 이 새끼에게 불편한 티를 한 점도 안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류청우는 처음에 어떻게 룸메이트를 버틴 거지.’
음, 생각해 보니 큰세진이 있으니 그쪽으로 차유진의 어그로가 다 튀었겠군.
“형! 쿠키 쿠키?”
“괜찮아.”
“맛있어요!”
“너 많이 먹어라.”
이젠 숙소 밖에서도 차유진이 부쩍 말 거는 빈도수가 늘었다. 룸메이트라고 친근감을 느끼는 중이라면 사양하고 싶다.
“테스타 바로 대기하러 이동하실 게요~”
“넵!”
어쨌든 다음 무대가 바로 우리였다. 룸메이트는 룸메이트고, 지금은 일에 집중하자.
와아아아아-!
인이어 너머로 함성이 들렸다.
차음 작용을 하는 작은 파츠를 뚫고 웅웅 울리는 소리는 묘하게 사람을 고양 시키는 맛이 있었다.
‘잡념이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특히 퍼포먼스가 복잡하고 빈틈없는 곡에서는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느낌이 썩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군데군데 느슨하게 짜인 곡은 억지로라도 좀 생각을 하는 게 좋다.
그냥 흘렸다가는 맹숭맹숭해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니까.
쉬운 만큼 밋밋해 보이지 않게 더 신경 써야 하더라고.
‘여기서 약간 기다렸다가… 제스처.’
-시원한 바람 달콤한 커피
시럽을 많이 넣어
나와 똑같아 그래
Take a seat
턱을 괴는 동작이 불 들어오는 카메라에 잘 잡혔다.
‘묘하게 수월하군.’
전보다 생각에서 표현까지의 딜레이나 체감적 차이가 줄어든 느낌이다.
‘이게 끼 스탯의 힘인가.’
제법 재밌었다.
나는 몇 번 생각에 없던 표현-표정을 바꾸거나 한 손으로 안경을 만드는 등의 동작을 더 추가했는데, 멈칫거림 없이 적절히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다.
‘오.’
흥미롭다.
-이제 편하게 기다려
(Hold on a second)
지금 데리러 갈게
서로서로 등을 대고 서거나 앉는 것으로 무대는 끝났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꾸벅꾸벅 인사하며 무대 아래로 내려온 놈들의 얼굴이 굉장히 멀쩡했다.
“모니터링, 모니터링~”
“거기 줄 조심해!”
마지막에 좀 재기발랄한 댄스 브레이크가 있긴 한데, 특별히 폐가 튀어나올 만큼 숨이 차진 않았기 때문이다.
‘서브곡도 발라드고.’
재밌는 점은, 활동 난이도가 낮아진 것과 다르게 음원은 더없이 잘 나갔다는 점이다.
당장 매니저도 무대 모니터링이 끝나자마자 달려와서 이렇게 외치는 판이다.
“얘들아! 피크닉 음원 또 올랐어! 24Hits에서 7위야!”
“와!”
발매 5일째라고 믿기지 않는 쾌거였다.
한 사람이 반복적으로 들어도 24시간 내로는 1회만 카운트해 주는 구조에서, 올해 남자아이돌 음원 중 이런 순위는 VTIC 외엔 우리가 처음이다.
‘당장 우리 직전 앨범인 행차보다도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좋아.’
음원 대중성이 훨씬 좋은 영린과 비슷한 속도였으니, 곡이 정말 이지리스닝으로 잘 빠졌다는 뜻이다.
큰세진이 슬쩍 챙겼다.
“래빈이가 편곡을 잘해줘서 그래~”
“마, 맞아. 곡 정말 좋아…!”
“아, 아닙니다! 실질적으론 좋은 데모와 팀원분들의 좋은 의견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수상소감 같다.
‘얼굴이 폈군.’
김래빈은 며칠 전보다 훨씬 편한 얼굴로 활짝 웃었다. 음, 그래도 여전히 살벌해 보인다.
“너 곡 많이 만들어! 나 줘.”
“곡이라는 건 그렇게 마구 찍어내는 게 아니라 어떤 종류의 영감이 와야 작업을 할 수 있…….”
“영감님? 너 할아버지?”
“바보야! 그게 아니라, 음…….”
나는 한숨을 쉬었다.
“…Inspiration.”
“아, 감사합니다 문대 형!”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이 두 놈의 정수리를 보고 있자니, 사실 차유진이 통역사로 쓰기 위해 날 룸메이트로 찍은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설득력 있군.
“얘들아, 엔딩 무대!”
“아, 넵!”
어쨌든, 컴백 주라 정신없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생각을 정리할 타이밍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차유진의 속셈을 알게 된 건 며칠 후 취침 직전의 자유시간이 되어서였다.
* * *
그나마 시간이 빈 월요일 심야.
나는 침대에 누워서 직캠을 보고 있었다.
바로 금요일 날 찍었던 그 음방에서 올려준 공식 세로 직캠이었다.
썸네일은 턱을 괴는 내 클로즈업 샷에, 벌써 조회수도 제법 붙었다.
보니까 커뮤니티 등지에서 내 첫 번째 아주사 직캠과 비교하며 가볍게 화제가 된 모양이었다.
그… 등급 평가 직캠 말이다.
나는 ‘박문대는 딥러닝 AI 댕댕이’ 비슷한 말로 도배된 댓글을 약간 민망하게 훑으며, 내 직캠을 다 봤다.
‘확실히 더 좋아졌다.’
강약 조절이 확실하고, 표현하고 싶은 느낌이 확실하면서도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게 좋았다.
‘음.’
이 정도면 예전의 내가 봐도 이놈은 돈 되겠다고 찍을 수준이 아닌가, 살짝 자화자찬해 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생각은 다음 동영상이 자동재생되며 일시 기각되었다.
같은 날 차유진의 직캠이었다.
‘이 새끼는 진짜 괴물이네.’
그냥 자연스럽고 좋은 수준이 아니라, 동작마다 하나하나 묘하게 느낌을 줬다.
‘흠, 쫄깃쫄깃?’
그런 수식어가 어울릴 것 같다. 단순히 춤을 잘 추는 게 아니라, 잘 살렸다.
‘분석할 보람이 있겠군.’
나는 잠시 차유진의 직캠을 틀어뒀다.
그러자, 불쑥 머리가 옆에 들어왔다.
“형! 제 video 봐요??”
“어. 너 잘하네.”
“히히.”
차유진은 신난 표정으로, 영어로 우수수 말을 쏟았다.
“그것도 있고, 내 거랑 비교도 해보고 연구 좀 할 겸.”
“오우!”
차유진은 눈을 번쩍 빛내더니, 내 침대를 펑펑 쳤다.
“그래?”
“네!”
저놈이 가르치는 데 소양이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별 기대는 안 된다고 생각할 찰나, 차유진의 본론이 나왔다.
어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