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6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9화
박문대의 출연은 예고편이 뜨면서야 알려졌다. 가장 빠른 방영 일자로 급하게 스케줄을 잡은 탓이었다.
[(예고) 성균관 유생이 된 테스타와 골든에이지?〈과거가 부른다> EP36 | SBC 교양]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서 걱정하는 물밑 여론이 한번 휘몰아쳤다.
긁어 부스럼에 대한 걱정과 지난 경험에서 나온 직감이었다.
-아 X발 또 그 그룹
-나만 싸하냐
-맛집 가는 힐링 예능이나 잡으라고 안 그래도 바쁜 애한테 교양까지 시키고 있어 개새끼들이
여론을 신경 쓰는 팬 중에는 골든에이지가 일부러 테스타를 물고 늘어진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사람도 많았다.
박문대의 과거, 가정사와 불우한 자퇴 스토리까지 연결해서 생각하면, 굳이 한국대생과 함께 ‘머리 쓰는 교양’에 나온 이 상황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혹시라도 학벌로 은근히 비교하며 긁는 편집이 들어가는 날에는 억울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속 터져서 본방 못 볼 것 같아
-이번에도 또 비비면 못 참을 듯 어떻게든 공론화한다 내가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깊게 파고들어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 가볍고 즐겁게 팬심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볼 수 있는 여론은 이랬다.
-미친 박문대 한복 차림 돌았다ㅠㅠㅠ 심지어 성균관 유생복이래 예고만 봐도 갓작
-감사합니다… 압도적 감사..
-아니 이렇게 갑자기? 굉장히 갑작스러운데요 대환영입니다
-예고편 보니까 문대 활약 많이 한 것 같아서 두근거린다
고단한 석사 과정을 보내는 중이던 대학원생이 보던 것도 이쪽이었다.
‘내 삶의 낙…….’
대학원생은 퀭한 눈으로 히죽 웃었다.
심야에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주말 낮에도 랩실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본방 본다구!!’
그녀는 신이 나서 소파 위라도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기력이 없던 탓에 얌전히 착석해서 TV를 켰다.
“이제 한다!”
방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했다.
[그들을 부르는 과거는?]
대학원생은 흥미진진하게 초반 안대를 푸는 오프닝과 MC의 모니터링룸 착석까지를 관람했다.
그리고 신나서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박문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말하고 웃는 박문대가 힐링이 따로 없었다.
‘이번 활동 흑발이라 아쉬웠는데, 그래도 얼른 유생복 입은 거 보고 싶다!’
그러나, 이 평정심은 다음 장면에서 박살 난다.
[‘갑’과 ‘기’가 집현전에서 근무하네요.]
[!!]
“어어어억!”
박문대가 쾌속으로 첫 번째 문제를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왜 저래? 박문대 왜 저래??”
그리고 이 육성은 대학원생 혼자만의 생각도 아니었다.
그녀가 덕질용으로 어설프게 만든 SNS 계정의 타임라인도 비슷한 문구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
-뭐임
-박문대 미친ㅋㅋㅋㅋㅋㅋ
-내 남자 머리까지 좋냐 X발ㅠㅠㅠㅠㅠ
그러나 너무 빠른 경악이었다.
[음, 날짐승 세 번, 들짐승 한 번, 바다짐승 두 번, 날짐승 한 번… 같은데요.]
[세 번째 선반에 있는 걸 가져다 드리면 어떨까요.]
박문대의 활약이 방송 내내 끝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헐.”
대학원생은 입을 벌리고 화면을 보았다.
방송은 특별히 편집의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 교양국답게, 세련되었지만 너무 자극적이진 않은 산뜻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리어 박문대의 문제 풀이도 실시간 느낌이 살아 그 맛이 더 잘 느껴졌다.
[어어? 저거 저러면 안 되지 않나??]
[저거 원래 한 바퀴 돌고 와야 풀 수 있는 건데…….]
[]
그 비상식적인 수준의 능력치에, 제작진과 MC의 적나라한 리액션과 탄식이 나오는 것까지 분위기를 잡았다.
“와…….”
대학원생은 말문이 막힌 채 화면을 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걸… 똑똑하다는 밋밋한 말로 표현하기가 싫다!!’
무슨 머리 좋은 연예인들 모아놓고 문제 풀게 만드는 퀴즈쇼에 나가도 손색없이 에이스일 것 같지 않은가!
출연진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여기저기서 감탄과 헛웃음이 쏟아졌다.
[문대야, 이리 와 봐. 그래. 솔직하게 대답하자. …너 멘사 회원이지? 나한테만 딱 말해줘!]
[예? 그럴 리가요.]
‘그럴 것 같은데!!’
완전 그럴 것 같은데 뭘 ‘그럴 리가요’ 같은 대답을 하고 있냐며 대학원생은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 잔뜩 흥분한 그녀처럼, 출연을 걱정했던 팬들도 예상을 훨씬 웃도는 박문대의 미친 활약에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친 박문대 또 맞췄음
-혹시 이거 내 꿈 속인가?
-뭐 듣자마자 계속 풀엌ㅋㅋㅋㅠㅠㅠ미쳤냐고 박문댕!!
-문대는 그림 빼면 못하는 게 뭐냐 진짜 ㅅㅂ괜히 걱정했네;;
-나는… 우리 강아지가 노래 춤 얼굴 아이디어만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 천재였던 거임
심지어는 워낙 박문대가 쾌속 진행을 해버린 탓에, 문제 푸는 부분은 특별히 쳐낸 것도 없었다.
오히려 덧대어졌다.
[첫 번째 문제는 사실 논리학 기호로 정리하면 간단해서요. 저, 혹시 펜 좀… 감사합니다.]
박문대가 아예 인터뷰에서 자신의 풀이법을 설명하면서, 원래도 나왔을 문제 해설 분량을 더 흥미롭게 보강한 것이다.
욕할 각을 보던 사람들이 ‘대본 티 너무 난다’, ‘이미 답 다 알려준 거 아니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할 만큼 상세했다.
[저는 동일 기호는 무조건 겹쳐서 정리하는 게 편하던데요. 그러면 이렇게… 하나씩 안 맞고 튀어나오는 게 있어요.]
누가 봐도 박문대가 자신이 직접 풀어서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티가 났다.
게다가 화룡점정으로, ‘왜 이렇게 잘하는지’에 대한 백그라운드 스토리까지 준비되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많이 봤거든요. 어떻게 풀면 좋을지 고민하면서 나름대로 많이 공부해 봤어요.]
박문대가 솔직하게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예습한 것을 토로한 것이다.
물론 진실은 이번 화 한국사 출제 범위를 좁혀 암기하기 좋게 추린 것뿐이었으나, 적당히 사실을 섞은 덕에 더 진실해 보였다.
논리 퀴즈에 뺏긴 한국사 실력에 대한 변명도 적당히 진실이 섞여 덧붙여졌다.
[사실… 공무원이 되면 어떨까 해서, 아이돌 되기 전에 한국사 공부도 좀 했었구요.]
박문대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다소 가슴 찡해질 만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사정을 박문대에게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다들 알고 있다는 점에서, 좀 치사할 정도로 잘 조형된 발언이었다.
덕분에 ‘기특하다’와 ‘어떡해’와 우는 이모티콘으로 시청자 리액션이 가득 찼다.
-ㅠㅠㅠ문대 하고싶은 거 다 해 은퇴 빼고
-우리 엄마가 계속 기특하다고 혼잣말하셔 장학금도 보낼 기세
-아이돌 해줘서 고맙다ㅠㅠ 공무원… 와 저 머리면 금방 붙었을 듯 말랑콩떡 문댕댕이 없는 돌판이라니 제법 섬뜩했단 거죠
-참 똑똑하고.. 뜻 있는 청년도.. 배움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개탄스럽구나!
교육열로 불타는 국민성의 옆구리가 쿡 찔린 덕이었다.
그야말로, 조작 어그로가 뭐라 말 꺼내기도 머쓱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간간히 ‘작위적인 느낌이다’, ‘음ㅋㅋ’, ‘노렸네’ 같은 애매한 댓글이 달리며 발화점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 쳤지만, 턱도 없었다.
이 프로그램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티원 계열사도 아니고 공중파가 굳이 박문대 띄워주려고 주작을?ㅋㅋ 그럴 필요가 없지
-제작진도 개당황했넼ㅋㅋㅅㅂ개웃겨ㅋㅋㅋ
-이 프로 PD는 조작하느니 망하자는 쪽임 고증에도 목숨 걸고 그래서 가끔 망하면 회생 불가 개노잼화도 나오는데도 꿋꿋한 교친놈들이라고ㅋㅋㅋㅋ
게다가 ‘분량 혼자 다 해 먹네’ 같은 방향으로 트집 방향을 돌리려고 해도 근거가 희박했다.
박문대는 문제를 푸는 상황 외에는 특별히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극이나 액션, 혹은 훈훈한 장면에서는 도리어 선아현을 전면으로 내밀었다.
[우와! 우와아악!]
[내도 저런 걸 해보고 싶다….]
가령, 선아현이 천장에 매달린 한지와 감을 건드리지 않고 힌트를 빼가야 하는 미션을 우아하고 날렵하게 소화해 내는 것은 꽤 볼 만한 장면이었다.
몸가짐이 깔끔해서 더 어울렸다.
‘무슨 신선 같네.’
대학생은 저 장면의 슬로우 걸린 온갖 보정이 며칠 안으로 자신의 타임라인 안에 들어올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선아현은 깨알 같은 토크도 제법 살렸다.
[이거… 하나 드릴까요?]
[어, 어. 저 괜찮은… 아니, 저는 괜찮사옵니다.]
박문대가 구워 온 떡을 멍하니 보던 궁인에게, 떡 한 조각을 조청에 찍어서 다른 손으로 받쳐 내미는 선아현은 그림이 따로 없었다.
촬영 중에 이래도 되는 건지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이 귀여움까지 챙겨갔다.
심지어 분위기 조성용 NPC로 등장하는 궁인도 순간 본분을 잊고 현실 인물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 않는가.
‘별명이 왜 천사인지 알겠다….’
대학원생은 자신의 내면 ‘문대의 친구들’ 폴더의 선아현을 ‘문대의 귀여운 친구들’ 폴더로 승격시켜 주었다.
그 와중에도 화면에선 출연진들이 훈훈하게 사건을 풀어가고 있었다.
[우리 분위기 좋은데?]
[좋아좋아! 자, 우리 막내도 함 해볼까?]
[넵! 풀어보겠습니다!]
물론, 박문대가 준비했던 대로, 골든에이지의 한국대생도 문제나 상황극에서 분량은 받긴 했다.
다만 익숙지 않은 단독 출연과 토크에 뻣뻣이 굳은 탓에 별 재미는 없었다.
문제를 푸는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선방했으나, 기대치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쾌속으로 풀어버린 박문대만큼의 임팩트는 당연히 없었다.
애초에 한국대생이라는 사전정보를 강조한 탓에, 그 정도는 기대했기 때문이다.
[오~ 굿굿!]
[감사합니다!]
이런 수준의 개성 없는 통상적인 장면으로 방송 흐름만 이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대생은 ‘심하게 조롱거리가 된 나머지 괜한 시빗거리나 화제가 될 정도’는 아니나, ‘스포트라이트는 다 뺏길 수준의 맹탕’으로 시청자들에게 정리되었다.
박문대의 팬들에게는 최고의 결과였다.
덕분에 그들의 비공개 커뮤니티나 SNS는 축제 분위기였다.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속 개시원함
-내가수 때랑 똑같은 꼴 났네ㅎ
-ㅋㅋㅋㅋㅋ아 꿀잼
-다음에는 제발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세용
평소라면 ‘대기업의 횡포’란 식의 은근한 부추김이라도 했을 골든에이지의 소속사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기 때문에, 이 분위기는 반발 없이 정설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절정은 에피소드 마지막에서 터졌다.
[이 서적이요.]
[이거, 꼭 한글 같지 않으세요?]
바로 박문대의 한국사 지식 자랑과 추리 대행진이었다.
[집현전의 ‘갑’과 ‘기’가 전하께 을 올리기 위하여 왔습니다.]
담담한 발성과 희미한 미소가 곁들여진 이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의 클라이맥스 컷처럼 그럴싸하게 잘 나왔다.
덕분에 방송을 타자마자 클립이 되어 온갖 SNS와 커뮤니티에 올라오기까지 했다.
[오늘자 시청자라면 공감할 명장면]
[??? : 이거 꼭 한글 같지 않으세요?]
[ 소름 돋는 박문대 마지막 추리씬]
평소라면 어그로가 끌리다 못해 폭발해나갈 제목이었으나, 어그로 대신 수많은 공감을 받으며 순식간에 인기글로 등극했다.
담백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난이도 에바였는데 이걸 한 방에 맞춰서 진짜 개소름 돋음
-역시 머리는 타고 나는 건가봐
-이거 딱딱 맞아드는데 카타르시스 오지더라ㅋㅋㅋㅋ
-그래 박문대 데뷔곡 PPT 주도적으로 만들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ㅋㅋㅋ
-뭔가 너무 아까워 이렇게 똑똑한데… 내 안의 K-고3이 지금이라도 수능을 보라고 말하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돼 문대는 영원히 K돌 해야된다구!ㅠㅠ
약점을 동반했던 박문대의 ‘불우한 과거사’ 이미지가 추가된 ‘좋은 머리’를 받아들이며 더 입체적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박문대의 계획이 차질 없이, 변수 없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 * *
‘깔끔하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돌발 사태 없이 개운하게 성과만 본 적도 오랜만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
옆 방에서 차유진이 무슨 응원 문구처럼 단어를 신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케줄 빈 놈들이 심심하다며 를 함께 모니터링한 결과였다.
‘미국식 버릇인가.’
발음도 정확한 게, 그 장면이 한국사 무식자 차유진에게도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으하하핫!”
마침 차유진의 룸메이트인 큰세진이 포복절도하는 소리도 들린다. 룸메이트 재배정 컨텐츠가 코앞인데, 제발 저 두 놈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
“후.”
그래도 어쨌든… 간만에 계산할 게 없는 밤이었다.
나는 옆 방의 소음을 둔하게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이완되는 감각이 지배적이라 귀마개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좀 일찍 자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폰이 일정 진동으로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였다.
‘뭐야.’
전화할 만한 놈이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주소록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전화는 차단하도록 설정해 뒀으니, 스팸도 아니었다.
“하….”
나는 한숨을 참으며 스마트폰을 도로 들어 눈앞에 가져왔다. 당연하지만, 전화 건 놈이 액정에 떠 있었다.
[골든에이지 하일준 형]
“……?”
웬… 아닌 밤중에 골드 1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9화
박문대의 출연은 예고편이 뜨면서야 알려졌다. 가장 빠른 방영 일자로 급하게 스케줄을 잡은 탓이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사서 걱정하는 물밑 여론이 한번 휘몰아쳤다.
긁어 부스럼에 대한 걱정과 지난 경험에서 나온 직감이었다.
-아 X발 또 그 그룹
-나만 싸하냐
-맛집 가는 힐링 예능이나 잡으라고 안 그래도 바쁜 애한테 교양까지 시키고 있어 개새끼들이
여론을 신경 쓰는 팬 중에는 골든에이지가 일부러 테스타를 물고 늘어진다는 것을 이미 깨달은 사람도 많았다.
박문대의 과거, 가정사와 불우한 자퇴 스토리까지 연결해서 생각하면, 굳이 한국대생과 함께 ‘머리 쓰는 교양’에 나온 이 상황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혹시라도 학벌로 은근히 비교하며 긁는 편집이 들어가는 날에는 억울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속 터져서 본방 못 볼 것 같아
-이번에도 또 비비면 못 참을 듯 어떻게든 공론화한다 내가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깊게 파고들어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너무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고, 가볍고 즐겁게 팬심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볼 수 있는 여론은 이랬다.
-미친 박문대 한복 차림 돌았다ㅠㅠㅠ 심지어 성균관 유생복이래 예고만 봐도 갓작
-감사합니다… 압도적 감사..
-아니 이렇게 갑자기? 굉장히 갑작스러운데요 대환영입니다
-예고편 보니까 문대 활약 많이 한 것 같아서 두근거린다
고단한 석사 과정을 보내는 중이던 대학원생이 보던 것도 이쪽이었다.
‘내 삶의 낙…….’
대학원생은 퀭한 눈으로 히죽 웃었다.
심야에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주말 낮에도 랩실에 있기 때문이다…….
‘나도 본방 본다구!!’
그녀는 신이 나서 소파 위라도 뛰어다니고 싶었지만, 기력이 없던 탓에 얌전히 착석해서 TV를 켰다.
“이제 한다!”
방송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했다.
대학원생은 흥미진진하게 초반 안대를 푸는 오프닝과 MC의 모니터링룸 착석까지를 관람했다.
그리고 신나서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박문대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말하고 웃는 박문대가 힐링이 따로 없었다.
‘이번 활동 흑발이라 아쉬웠는데, 그래도 얼른 유생복 입은 거 보고 싶다!’
그러나, 이 평정심은 다음 장면에서 박살 난다.
“어어어억!”
박문대가 쾌속으로 첫 번째 문제를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뭐야? 왜 저래? 박문대 왜 저래??”
그리고 이 육성은 대학원생 혼자만의 생각도 아니었다.
그녀가 덕질용으로 어설프게 만든 SNS 계정의 타임라인도 비슷한 문구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
-뭐임
-박문대 미친ㅋㅋㅋㅋㅋㅋ
-내 남자 머리까지 좋냐 X발ㅠㅠㅠㅠㅠ
그러나 너무 빠른 경악이었다.
박문대의 활약이 방송 내내 끝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헐.”
대학원생은 입을 벌리고 화면을 보았다.
방송은 특별히 편집의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 교양국답게, 세련되었지만 너무 자극적이진 않은 산뜻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도리어 박문대의 문제 풀이도 실시간 느낌이 살아 그 맛이 더 잘 느껴졌다.
그 비상식적인 수준의 능력치에, 제작진과 MC의 적나라한 리액션과 탄식이 나오는 것까지 분위기를 잡았다.
“와…….”
대학원생은 말문이 막힌 채 화면을 보다가,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걸… 똑똑하다는 밋밋한 말로 표현하기가 싫다!!’
무슨 머리 좋은 연예인들 모아놓고 문제 풀게 만드는 퀴즈쇼에 나가도 손색없이 에이스일 것 같지 않은가!
출연진들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여기저기서 감탄과 헛웃음이 쏟아졌다.
‘그럴 것 같은데!!’
완전 그럴 것 같은데 뭘 ‘그럴 리가요’ 같은 대답을 하고 있냐며 대학원생은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리고 잔뜩 흥분한 그녀처럼, 출연을 걱정했던 팬들도 예상을 훨씬 웃도는 박문대의 미친 활약에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친 박문대 또 맞췄음
-혹시 이거 내 꿈 속인가?
-뭐 듣자마자 계속 풀엌ㅋㅋㅋㅠㅠㅠ미쳤냐고 박문댕!!
-문대는 그림 빼면 못하는 게 뭐냐 진짜 ㅅㅂ괜히 걱정했네;;
-나는… 우리 강아지가 노래 춤 얼굴 아이디어만 천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 천재였던 거임
심지어는 워낙 박문대가 쾌속 진행을 해버린 탓에, 문제 푸는 부분은 특별히 쳐낸 것도 없었다.
오히려 덧대어졌다.
박문대가 아예 인터뷰에서 자신의 풀이법을 설명하면서, 원래도 나왔을 문제 해설 분량을 더 흥미롭게 보강한 것이다.
욕할 각을 보던 사람들이 ‘대본 티 너무 난다’, ‘이미 답 다 알려준 거 아니냐’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할 만큼 상세했다.
누가 봐도 박문대가 자신이 직접 풀어서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티가 났다.
게다가 화룡점정으로, ‘왜 이렇게 잘하는지’에 대한 백그라운드 스토리까지 준비되었다.
박문대가 솔직하게 자신이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예습한 것을 토로한 것이다.
물론 진실은 이번 화 한국사 출제 범위를 좁혀 암기하기 좋게 추린 것뿐이었으나, 적당히 사실을 섞은 덕에 더 진실해 보였다.
논리 퀴즈에 뺏긴 한국사 실력에 대한 변명도 적당히 진실이 섞여 덧붙여졌다.
박문대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다소 가슴 찡해질 만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사정을 박문대에게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다들 알고 있다는 점에서, 좀 치사할 정도로 잘 조형된 발언이었다.
덕분에 ‘기특하다’와 ‘어떡해’와 우는 이모티콘으로 시청자 리액션이 가득 찼다.
-ㅠㅠㅠ문대 하고싶은 거 다 해 은퇴 빼고
-우리 엄마가 계속 기특하다고 혼잣말하셔 장학금도 보낼 기세
-아이돌 해줘서 고맙다ㅠㅠ 공무원… 와 저 머리면 금방 붙었을 듯 말랑콩떡 문댕댕이 없는 돌판이라니 제법 섬뜩했단 거죠
-참 똑똑하고.. 뜻 있는 청년도.. 배움의 기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개탄스럽구나!
교육열로 불타는 국민성의 옆구리가 쿡 찔린 덕이었다.
그야말로, 조작 어그로가 뭐라 말 꺼내기도 머쓱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간간히 ‘작위적인 느낌이다’, ‘음ㅋㅋ’, ‘노렸네’ 같은 애매한 댓글이 달리며 발화점이 되고 싶어서 발버둥 쳤지만, 턱도 없었다.
이 프로그램이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신뢰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티원 계열사도 아니고 공중파가 굳이 박문대 띄워주려고 주작을?ㅋㅋ 그럴 필요가 없지
-제작진도 개당황했넼ㅋㅋㅅㅂ개웃겨ㅋㅋㅋ
-이 프로 PD는 조작하느니 망하자는 쪽임 고증에도 목숨 걸고 그래서 가끔 망하면 회생 불가 개노잼화도 나오는데도 꿋꿋한 교친놈들이라고ㅋㅋㅋㅋ
게다가 ‘분량 혼자 다 해 먹네’ 같은 방향으로 트집 방향을 돌리려고 해도 근거가 희박했다.
박문대는 문제를 푸는 상황 외에는 특별히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극이나 액션, 혹은 훈훈한 장면에서는 도리어 선아현을 전면으로 내밀었다.
가령, 선아현이 천장에 매달린 한지와 감을 건드리지 않고 힌트를 빼가야 하는 미션을 우아하고 날렵하게 소화해 내는 것은 꽤 볼 만한 장면이었다.
몸가짐이 깔끔해서 더 어울렸다.
‘무슨 신선 같네.’
대학생은 저 장면의 슬로우 걸린 온갖 보정이 며칠 안으로 자신의 타임라인 안에 들어올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선아현은 깨알 같은 토크도 제법 살렸다.
박문대가 구워 온 떡을 멍하니 보던 궁인에게, 떡 한 조각을 조청에 찍어서 다른 손으로 받쳐 내미는 선아현은 그림이 따로 없었다.
촬영 중에 이래도 되는 건지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정이 귀여움까지 챙겨갔다.
심지어 분위기 조성용 NPC로 등장하는 궁인도 순간 본분을 잊고 현실 인물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지 않는가.
‘별명이 왜 천사인지 알겠다….’
대학원생은 자신의 내면 ‘문대의 친구들’ 폴더의 선아현을 ‘문대의 귀여운 친구들’ 폴더로 승격시켜 주었다.
그 와중에도 화면에선 출연진들이 훈훈하게 사건을 풀어가고 있었다.
물론, 박문대가 준비했던 대로, 골든에이지의 한국대생도 문제나 상황극에서 분량은 받긴 했다.
다만 익숙지 않은 단독 출연과 토크에 뻣뻣이 굳은 탓에 별 재미는 없었다.
문제를 푸는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선방했으나, 기대치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쾌속으로 풀어버린 박문대만큼의 임팩트는 당연히 없었다.
애초에 한국대생이라는 사전정보를 강조한 탓에, 그 정도는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런 수준의 개성 없는 통상적인 장면으로 방송 흐름만 이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대생은 ‘심하게 조롱거리가 된 나머지 괜한 시빗거리나 화제가 될 정도’는 아니나, ‘스포트라이트는 다 뺏길 수준의 맹탕’으로 시청자들에게 정리되었다.
박문대의 팬들에게는 최고의 결과였다.
덕분에 그들의 비공개 커뮤니티나 SNS는 축제 분위기였다.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속 개시원함
-내가수 때랑 똑같은 꼴 났네ㅎ
-ㅋㅋㅋㅋㅋ아 꿀잼
-다음에는 제발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으세용
평소라면 ‘대기업의 횡포’란 식의 은근한 부추김이라도 했을 골든에이지의 소속사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기 때문에, 이 분위기는 반발 없이 정설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절정은 에피소드 마지막에서 터졌다.
바로 박문대의 한국사 지식 자랑과 추리 대행진이었다.
담담한 발성과 희미한 미소가 곁들여진 이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의 클라이맥스 컷처럼 그럴싸하게 잘 나왔다.
덕분에 방송을 타자마자 클립이 되어 온갖 SNS와 커뮤니티에 올라오기까지 했다.
평소라면 어그로가 끌리다 못해 폭발해나갈 제목이었으나, 어그로 대신 수많은 공감을 받으며 순식간에 인기글로 등극했다.
담백한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난이도 에바였는데 이걸 한 방에 맞춰서 진짜 개소름 돋음
-역시 머리는 타고 나는 건가봐
-이거 딱딱 맞아드는데 카타르시스 오지더라ㅋㅋㅋㅋ
-그래 박문대 데뷔곡 PPT 주도적으로 만들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ㅋㅋㅋ
-뭔가 너무 아까워 이렇게 똑똑한데… 내 안의 K-고3이 지금이라도 수능을 보라고 말하고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돼 문대는 영원히 K돌 해야된다구!ㅠㅠ
약점을 동반했던 박문대의 ‘불우한 과거사’ 이미지가 추가된 ‘좋은 머리’를 받아들이며 더 입체적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박문대의 계획이 차질 없이, 변수 없이 이루어졌다는 뜻이었다.
* * *
‘깔끔하네.’
나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돌발 사태 없이 개운하게 성과만 본 적도 오랜만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
옆 방에서 차유진이 무슨 응원 문구처럼 단어를 신나게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케줄 빈 놈들이 심심하다며 를 함께 모니터링한 결과였다.
‘미국식 버릇인가.’
발음도 정확한 게, 그 장면이 한국사 무식자 차유진에게도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었다.
“으하하핫!”
마침 차유진의 룸메이트인 큰세진이 포복절도하는 소리도 들린다. 룸메이트 재배정 컨텐츠가 코앞인데, 제발 저 두 놈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
“후.”
그래도 어쨌든… 간만에 계산할 게 없는 밤이었다.
나는 옆 방의 소음을 둔하게 무시하며, 눈을 감았다.
이완되는 감각이 지배적이라 귀마개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좀 일찍 자볼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폰이 일정 진동으로 계속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였다.
‘뭐야.’
전화할 만한 놈이 없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주소록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전화는 차단하도록 설정해 뒀으니, 스팸도 아니었다.
“하….”
나는 한숨을 참으며 스마트폰을 도로 들어 눈앞에 가져왔다. 당연하지만, 전화 건 놈이 액정에 떠 있었다.
“……?”
웬… 아닌 밤중에 골드 1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