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6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8화
매니지먼트실 실장과의 면담은 약간의 소란 이후 곧바로 체결되었다.
굳이 실장과 만나려는 이유가 뭔지 캐물으려는 시도가 몇 번이나 있었으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라는 모호한 말로도 방어가 가능했다는 게 놀라웠다.
‘테스타로 돈을 잘 벌긴 하나 보지.’
감정이 있는 자원이다 보니 어지간하면 잘 달래보려는 투가 역력했다.
괜히 구체적인 변명까지 생각해 뒀군.
그리고 매니지먼트실에서 은근히 긴장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앨범이나 활동 계획 외에는 큰 자기주장 없던 그룹의, 리더도 아닌 놈이 다짜고짜 면담 요청을 넣었으니까.
아마 이 돌발활동과 관련해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걸 오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내일 뵈러 가겠습니다.”
-아… 네!
바로 다음 날로 면담 약속을 잡아버렸거든.
마침 일주일 중에 낮 스케줄이 없는 게 그때뿐이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무슨 추측을 하고 있으려나.’
특별히 상관은 없으나, 상황상 궁금하긴 했다.
그리고 회사가 내 행동에 대해 무슨 판단을 내렸는지는, 다음 날 10시에 실장과의 면담 자리에 입장하고 난 뒤 5분 만에 알게 되었다.
“음… 문대 씨, 그룹 활동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까요?”
“…….”
“문대 씨가 능력이 좋아서 답답할 수도 있죠. 그래도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이 기조로 가는 게 안정적이거든요.”
인사한 뒤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약간 하다가 들어간 본론이 저거였다.
‘아하.’
그리고 그 뉘앙스에서 알아차렸다.
‘내가 솔로 활동을 원한다고 생각했나.’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긴 했다.
서바이벌 1등, 최근 개인 예능 반응 좋음, 그룹 활동 중 정신적 불안으로 상담받음.
‘솔로 활동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배경이긴 하지.’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놈 이런 대화 별로 안 해봤어.’
내가 진짜 솔로에 관심이 있어서 그룹 위주의 활동에 불만을 제기하러 온 거였다면, 저러면 안 됐다.
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다짜고짜 ‘1년 더 이렇게 갈 거다’라는 말을 들은 꼴이지 않은가.
자의식 비대한 시기의 연예인이 퍽이나 저걸 납득했겠다.
‘무조건 연예인이 먼저 자기 이야기 꺼내고 넌 고심해 주는 척하는 구도로 갔어야지.’
보통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실장까지 달려면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사람일 텐데, 이놈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시 낙하산이군.’
다른 파트, 가령 AR 파트나 프로듀싱, 제작마케팅은 아무래도 전문인력이 필요한 부서였기 때문에 스카웃 해온 경력직들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매니지먼트 쪽은 그나마 비빌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 주려고 꽂은 낙하산이 몇 명 있었다.
사실 이쪽도 전문성이 필요한 파트인데 말이다.
‘덕분에 이야기하기가 한결 편해졌다만.’
나는 젊은 실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일부러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적이면 좋죠.”
“그렇죠~?”
“그런데 이러다가 큰일 나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폭탄을 던졌다.
“다른 기획사 다니는 분이 이중 취업 중이시던데, 괜찮을까요?”
“…!!”
실장은 말문이 막히는지 잠깐 대답을 못 했다.
그리고 겨우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문대 씨, 우리 회사 그거 안 돼요~ 아마 뭐,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그쪽에서 프로필이 안 내려간 것 같은데.”
잘 모르는 어린놈이 오해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해 줄수록 좋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잘못 알았나 보네요. 자꾸 골든에이지하고 같이 스케줄을 잡으시는 것 같아서요.”
“예??”
“저 이번에 촬영한다고, 골든에이지 이야기하시면서 통화하시던데요.”
“…! 누, 누가요?”
“그… 누구시더라? 잠시만요.”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주소록을 뒤지는 척하다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맞다. 운영팀 오서형 대리님이요.”
“……!”
혹시 기억나나?
이세진과 배세진이 싸웠을 때, 둘을 같은 팀에 배정시켜서 항의 전화하니 ‘실수는 맞는데 예민 떨지 말라’고 말한 그놈 맞다.
아, 저 통화를 진짜 들었냐고?
‘당연히 못 들었지.’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담당 연예인이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저런 통화를 하겠는가.
그러나 용의자는 확실했다.
‘저놈뿐이야.’
일단 다른 파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앞에서 말했지만, 스카우트해 온 전문인력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굳이 이런 산업스파이짓을 하지 않아도 이직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헛꿈을 꿀 필요가 없으니 유인책이 없었다.
하지만 운영팀은 달랐다.
연예계 매니지먼트실의 전문성을 평가절하한 T1이 경력직 스카우트 대신 낙하산과 이미 시장에 나온 애매한 경력의 싼 매물로 채워 넣은 곳이다.
거기에 머릿수 채우려고 넣은 뭣 모르는 신입까지.
한 마디로 이 회사에서 제일 일 못 하는 집단. 불만이 많고, 이 일에 특별히 애착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콩고물에 홀릴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지.’
그럼 다음은 간단하다.
‘겹치는 놈이 있는지 보면 된다.’
골든에이지의 소속사에서 다짜고짜 잘 모르는 놈을 섭외하진 못했을 테니, 분명 어느 정도 안면이 있고 같이 일해본 놈을 꼬셨을 것이다.
그래서 골든에이지의 소속사, ‘트레블러’의 자체 이력을 확인해 봤다.
보통 이렇게 일 잘하는 놈들이면 어디 다른 대형에서 한 가닥하고 왔을 확률이 높지 않은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원하는 증언이 이미 SNS에 넘쳤다.
-대표님이 원더홀에서 일하다가 일준이랑 몇 명 데리고 독립하신 거래 어쩐지 연생들이 원더홀 느낌이더니ㅠㅠ
원더홀. 대형 남자아이돌을 잘 내는 유명한 기획사였다.
‘음, 뻔하군.’
그럼 이제 끝이다.
남은 건 저 대표와 직원들의 ‘원더홀’에 재직 기간과 이력이 겹치는 우리 회사 놈을 찾아내면 된다.
‘회사 내부망 구조를 T1에서 따왔던데.’
소속 연예인에게 무심코 문서 접근 권한을 높게 준 안일함에 감사할 뿐이었다.
어쨌든 확인 결과, 이력이 겹치는 건 매니지먼트실에서 딱 한 명뿐이었다.
[2019. 06. 01. – 2021. 01. 04. | 원더홀 ENT | 현장 업무 보조 및 서류 작업]
운영팀 오서형 대리 말이다.
그러면 모든 정황이 다 맞다.
‘저쪽에서 일 대충 하는 것도 납득이 가지.’
이미 마음이 떴으니 구색만 맞추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놈이 담당하는 것마다 잡음이 났던 거고.
“대리님은 좋은 예능 공유하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신 걸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한 곳에 집중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여기서 중요한 건, 절대 연예인 쪽에서 패악질 부리는 구도로 가면 안 된다.
이 문제를 ‘연예인이 과하게 생각했나 보네~’ 하고 합리화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놈이 직접 의심을 가지고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난 뭣도 모르고 말하는 것이고.
“생각해 보니까 자꾸 골든에이지 쪽하고 뭐가 많이 겹치던데, 좀 가성비로 일하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스케줄이 겹쳐요?”
“예. 그렇던데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기사나 글에 같이 붙어나오는 경우도 많고… 귀찮아서 같이 작업하시나 싶어서, 좀 그랬어요.”
“…….”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이 말 뒤의 심각성을 못 알아차리면 넌 X발 낙하산이 아니라 돌대가리다.
다행히 실장은 얼굴이 시뻘게졌다가 다시 허옇게 떴다가 도로 돌아왔다.
내면에서 뭔가 깨달음과 빡침이 오갔다는 뜻이다.
“그래요… 흠, 그래. 내가, 그 대리 문제는 잘 이야기해 볼게요. 문대 씨 이야기 잘 알았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물론 정말 정신 차리고 깔끔히 처리할 거란 기대는 안 한다.
잘 봐라.
“문대 씨. 그래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이 일은 잘 해결될 때까지는 따로 어디 말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럴 줄 알았다. 이 새끼, 자기 평판 나빠질까 봐 쫄았네.
그럴 만도 했다. 이건 외부로 유출되는 순간 테스타 팬들에게 시위 트럭을 받을 급이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참고로, 이것도 당연히 뻥이다.
“잘 생각했어요.”
실장은 내가 면담을 요청한 이유를 더 묻거나 생각해 본 겨를도 없는지, 그대로 나를 배웅했다.
‘정신이 빠졌네.’
나는 내심 혀를 차며, ‘마침 회사 들린 김에 녹음도 처리하겠다’는 핑계로 잡은 녹음실로 향했다.
음향 조정 등을 요청받은 AR팀 직원이, 미리 온 두 번째 매니저와 잠깐 잡담을 하다 끝낸 참이었다.
매니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문대 왔구나~ 이야기 잘했어?”
“네, 괜찮았어요.”
“무슨 이야기 했어?”
“음… 비밀로 해달라고 하시던데요.”
“어어?”
옆에서 기기를 만지던 AR팀 직원의 귀가 두 배로 커져도 안 놀랐을 것이다.
‘궁금하겠지.’
그건 두 번째 매니저도 마찬가진지, 내게 괜히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왜, 왜. 문대 너 솔로 시켜주시겠대?”
“아, 그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럼 뭔데??”
“음… 형은 매니지먼트실이니까, 들으셔도 될 것 같기도 한데요.”
“뭐야, 뭐야??”
자, 매니지먼트실 이야기라는 힌트는 잘 흘렀다. AR팀 직원도 잘 주워들었겠지.
나는 일부러 좀 뜸을 들이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뭐, 어떻게든 해결 날 때까지 조용히 해달라고 하셔서.”
“아~ 궁금하네 진짜!”
“죄송해요. 말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에이, 알았어!”
자, 꽤 큰 문제가 터진 거라는 뉘앙스도 흘렸다.
아마 이 스케줄이 끝난 AR팀 직원이 돌아가서 할 말이 뻔했다.
‘매니지먼트실에서 뭐 큰 문제 터졌나 봐!’
지루한 회사 생활에 재밌는 안줏거리 아닌가.
이제 매니지먼트실에서 수습하는 기색만 나면, 무슨 일인지 관심을 가지고 캐내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 내부에 소문 다 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겠지.
‘이번 주 내로 본부장 귀에 들어가는데 천원 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사흘 뒤, 본부장이 기염을 토하며 관련자와 증거를 추가 색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 * *
“문대문대, 그거 알아?”
“뭐.”
“운영팀에 누가 우리 정보를 다른 기획사에 팔고 있었대! 세상에~ 무섭다 진짜.”
거실 소파에 걸터앉은 큰세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 말은 저래도 개새끼 잡아내서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 잡았대?”
“어. 근데… 우리 멤버 중에 누가 알아서 제보했다더라고.”
“……그래?”
“응. 그냥 그렇다고.”
큰세진이 씩 웃었다.
“그리고 이것도 그냥 하는 말인데, 고생한다 문대야~”
큰세진은 내 등을 툭 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눈치챘나.’
괜히 캐묻지 않아서 편한 놈이었다.
그리고 역으로, 일단 와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와~ 회사 분위기 장난 아니다!”
두 번째 매니저 말이다.
개인 스케줄 도중에 ‘네가 말하려다 말았던 것이 이게 아니냐’며, 흥분해서 회사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어주더라.
“어떤데요?”
“본부장님이 직접 그쪽 회사에 연락하고 계시던데! 아, 오 대리는 벌써 불려갔어!”
그럴 만도 했다.
결재봇은 조용히 기간만 채우려다 가려고 했는데, 이런 대형 문제가 물밑에서 터졌으니 빡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번 이런 게 소문난 이상, 분위기 다시 잡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T1에서 일하다 온 결재봇도 잘 알 것이다.
공개처형 말이다.
‘물론 회사 내부에서 만으로 한정이겠지만.’
그래서 일단 산업스파이는 찍어둔 채로, 그 스파이를 고소해서 공론화해버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골든에이지의 소속사를 압박 중일 것이다.
물론 결과는 무조건 항복일 확률이 높았다.
‘들키는 순간 끝이었지.’
골든에이지가 1군이 되도록 키운 후라면 모를까, 이건 체급싸움도 여론싸움도 안 됐다.
방송국을 뒤에 업은 대기업 계열사랑 중소기획사의 정면 알력 싸움인데, 심지어 귀책사유가 중소기획사에 있어서 대기업에 명분까지 있다?
‘증거까지 확보된 이상, 더는 빼도 박도 못한다.’
골든에이지의 소속사가 아무리 영리하고 일을 잘해도, 계속 영업하고 싶다면 엎드려서 운신을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재갈 물고 있겠군.’
테스타와 엮는 언론 플레이와 바이럴 장사는 눈치껏 접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제 방영될 의 대중 반응에도 골든에이지 측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결 편하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사전 준비는 다 끝났다. 프로그램이 방영될 주말이 코앞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8화
매니지먼트실 실장과의 면담은 약간의 소란 이후 곧바로 체결되었다.
굳이 실장과 만나려는 이유가 뭔지 캐물으려는 시도가 몇 번이나 있었으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라는 모호한 말로도 방어가 가능했다는 게 놀라웠다.
‘테스타로 돈을 잘 벌긴 하나 보지.’
감정이 있는 자원이다 보니 어지간하면 잘 달래보려는 투가 역력했다.
괜히 구체적인 변명까지 생각해 뒀군.
그리고 매니지먼트실에서 은근히 긴장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앨범이나 활동 계획 외에는 큰 자기주장 없던 그룹의, 리더도 아닌 놈이 다짜고짜 면담 요청을 넣었으니까.
아마 이 돌발활동과 관련해서 자기들끼리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걸 오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 내일 뵈러 가겠습니다.”
-아… 네!
바로 다음 날로 면담 약속을 잡아버렸거든.
마침 일주일 중에 낮 스케줄이 없는 게 그때뿐이라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음… 무슨 추측을 하고 있으려나.’
특별히 상관은 없으나, 상황상 궁금하긴 했다.
그리고 회사가 내 행동에 대해 무슨 판단을 내렸는지는, 다음 날 10시에 실장과의 면담 자리에 입장하고 난 뒤 5분 만에 알게 되었다.
“음… 문대 씨, 그룹 활동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을까요?”
“…….”
“문대 씨가 능력이 좋아서 답답할 수도 있죠. 그래도 앞으로 1년 정도는 더 이 기조로 가는 게 안정적이거든요.”
인사한 뒤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약간 하다가 들어간 본론이 저거였다.
‘아하.’
그리고 그 뉘앙스에서 알아차렸다.
‘내가 솔로 활동을 원한다고 생각했나.’
쉽고 빠르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긴 했다.
서바이벌 1등, 최근 개인 예능 반응 좋음, 그룹 활동 중 정신적 불안으로 상담받음.
‘솔로 활동 이야기를 하러 왔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배경이긴 하지.’
그리고 하나 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이놈 이런 대화 별로 안 해봤어.’
내가 진짜 솔로에 관심이 있어서 그룹 위주의 활동에 불만을 제기하러 온 거였다면, 저러면 안 됐다.
뭔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다짜고짜 ‘1년 더 이렇게 갈 거다’라는 말을 들은 꼴이지 않은가.
자의식 비대한 시기의 연예인이 퍽이나 저걸 납득했겠다.
‘무조건 연예인이 먼저 자기 이야기 꺼내고 넌 고심해 주는 척하는 구도로 갔어야지.’
보통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실장까지 달려면 이런 일에 이골이 난 사람일 텐데, 이놈은 아니라는 뜻이다.
‘역시 낙하산이군.’
다른 파트, 가령 AR 파트나 프로듀싱, 제작마케팅은 아무래도 전문인력이 필요한 부서였기 때문에 스카웃 해온 경력직들이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매니지먼트 쪽은 그나마 비빌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이해관계자들이 한자리 주려고 꽂은 낙하산이 몇 명 있었다.
사실 이쪽도 전문성이 필요한 파트인데 말이다.
‘덕분에 이야기하기가 한결 편해졌다만.’
나는 젊은 실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일부러 진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정적이면 좋죠.”
“그렇죠~?”
“그런데 이러다가 큰일 나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요.”
“네?”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폭탄을 던졌다.
“다른 기획사 다니는 분이 이중 취업 중이시던데, 괜찮을까요?”
“…!!”
실장은 말문이 막히는지 잠깐 대답을 못 했다.
그리고 겨우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문대 씨, 우리 회사 그거 안 돼요~ 아마 뭐,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그쪽에서 프로필이 안 내려간 것 같은데.”
잘 모르는 어린놈이 오해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해 줄수록 좋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가 잘못 알았나 보네요. 자꾸 골든에이지하고 같이 스케줄을 잡으시는 것 같아서요.”
“예??”
“저 이번에 촬영한다고, 골든에이지 이야기하시면서 통화하시던데요.”
“…! 누, 누가요?”
“그… 누구시더라? 잠시만요.”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주소록을 뒤지는 척하다가, 알아차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맞다. 운영팀 오서형 대리님이요.”
“……!”
혹시 기억나나?
이세진과 배세진이 싸웠을 때, 둘을 같은 팀에 배정시켜서 항의 전화하니 ‘실수는 맞는데 예민 떨지 말라’고 말한 그놈 맞다.
아, 저 통화를 진짜 들었냐고?
‘당연히 못 들었지.’
대가리에 총 맞지 않고서야 담당 연예인이 쉽게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저런 통화를 하겠는가.
그러나 용의자는 확실했다.
‘저놈뿐이야.’
일단 다른 파트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앞에서 말했지만, 스카우트해 온 전문인력들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굳이 이런 산업스파이짓을 하지 않아도 이직에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헛꿈을 꿀 필요가 없으니 유인책이 없었다.
하지만 운영팀은 달랐다.
연예계 매니지먼트실의 전문성을 평가절하한 T1이 경력직 스카우트 대신 낙하산과 이미 시장에 나온 애매한 경력의 싼 매물로 채워 넣은 곳이다.
거기에 머릿수 채우려고 넣은 뭣 모르는 신입까지.
한 마디로 이 회사에서 제일 일 못 하는 집단. 불만이 많고, 이 일에 특별히 애착도 없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콩고물에 홀릴 확률이 더 높을 수밖에 없지.’
그럼 다음은 간단하다.
‘겹치는 놈이 있는지 보면 된다.’
골든에이지의 소속사에서 다짜고짜 잘 모르는 놈을 섭외하진 못했을 테니, 분명 어느 정도 안면이 있고 같이 일해본 놈을 꼬셨을 것이다.
그래서 골든에이지의 소속사, ‘트레블러’의 자체 이력을 확인해 봤다.
보통 이렇게 일 잘하는 놈들이면 어디 다른 대형에서 한 가닥하고 왔을 확률이 높지 않은가.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원하는 증언이 이미 SNS에 넘쳤다.
-대표님이 원더홀에서 일하다가 일준이랑 몇 명 데리고 독립하신 거래 어쩐지 연생들이 원더홀 느낌이더니ㅠㅠ
원더홀. 대형 남자아이돌을 잘 내는 유명한 기획사였다.
‘음, 뻔하군.’
그럼 이제 끝이다.
남은 건 저 대표와 직원들의 ‘원더홀’에 재직 기간과 이력이 겹치는 우리 회사 놈을 찾아내면 된다.
‘회사 내부망 구조를 T1에서 따왔던데.’
소속 연예인에게 무심코 문서 접근 권한을 높게 준 안일함에 감사할 뿐이었다.
어쨌든 확인 결과, 이력이 겹치는 건 매니지먼트실에서 딱 한 명뿐이었다.
운영팀 오서형 대리 말이다.
그러면 모든 정황이 다 맞다.
‘저쪽에서 일 대충 하는 것도 납득이 가지.’
이미 마음이 떴으니 구색만 맞추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저놈이 담당하는 것마다 잡음이 났던 거고.
“대리님은 좋은 예능 공유하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신 걸 수도 있겠는데, 그래도 한 곳에 집중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여기서 중요한 건, 절대 연예인 쪽에서 패악질 부리는 구도로 가면 안 된다.
이 문제를 ‘연예인이 과하게 생각했나 보네~’ 하고 합리화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놈이 직접 의심을 가지고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난 뭣도 모르고 말하는 것이고.
“생각해 보니까 자꾸 골든에이지 쪽하고 뭐가 많이 겹치던데, 좀 가성비로 일하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스케줄이 겹쳐요?”
“예. 그렇던데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기사나 글에 같이 붙어나오는 경우도 많고… 귀찮아서 같이 작업하시나 싶어서, 좀 그랬어요.”
“…….”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이 말 뒤의 심각성을 못 알아차리면 넌 X발 낙하산이 아니라 돌대가리다.
다행히 실장은 얼굴이 시뻘게졌다가 다시 허옇게 떴다가 도로 돌아왔다.
내면에서 뭔가 깨달음과 빡침이 오갔다는 뜻이다.
“그래요… 흠, 그래. 내가, 그 대리 문제는 잘 이야기해 볼게요. 문대 씨 이야기 잘 알았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물론 정말 정신 차리고 깔끔히 처리할 거란 기대는 안 한다.
잘 봐라.
“문대 씨. 그래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이 일은 잘 해결될 때까지는 따로 어디 말씀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이럴 줄 알았다. 이 새끼, 자기 평판 나빠질까 봐 쫄았네.
그럴 만도 했다. 이건 외부로 유출되는 순간 테스타 팬들에게 시위 트럭을 받을 급이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참고로, 이것도 당연히 뻥이다.
“잘 생각했어요.”
실장은 내가 면담을 요청한 이유를 더 묻거나 생각해 본 겨를도 없는지, 그대로 나를 배웅했다.
‘정신이 빠졌네.’
나는 내심 혀를 차며, ‘마침 회사 들린 김에 녹음도 처리하겠다’는 핑계로 잡은 녹음실로 향했다.
음향 조정 등을 요청받은 AR팀 직원이, 미리 온 두 번째 매니저와 잠깐 잡담을 하다 끝낸 참이었다.
매니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문대 왔구나~ 이야기 잘했어?”
“네, 괜찮았어요.”
“무슨 이야기 했어?”
“음… 비밀로 해달라고 하시던데요.”
“어어?”
옆에서 기기를 만지던 AR팀 직원의 귀가 두 배로 커져도 안 놀랐을 것이다.
‘궁금하겠지.’
그건 두 번째 매니저도 마찬가진지, 내게 괜히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왜, 왜. 문대 너 솔로 시켜주시겠대?”
“아, 그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그럼 뭔데??”
“음… 형은 매니지먼트실이니까, 들으셔도 될 것 같기도 한데요.”
“뭐야, 뭐야??”
자, 매니지먼트실 이야기라는 힌트는 잘 흘렀다. AR팀 직원도 잘 주워들었겠지.
나는 일부러 좀 뜸을 들이다가, 그냥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뭐, 어떻게든 해결 날 때까지 조용히 해달라고 하셔서.”
“아~ 궁금하네 진짜!”
“죄송해요. 말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에이, 알았어!”
자, 꽤 큰 문제가 터진 거라는 뉘앙스도 흘렸다.
아마 이 스케줄이 끝난 AR팀 직원이 돌아가서 할 말이 뻔했다.
‘매니지먼트실에서 뭐 큰 문제 터졌나 봐!’
지루한 회사 생활에 재밌는 안줏거리 아닌가.
이제 매니지먼트실에서 수습하는 기색만 나면, 무슨 일인지 관심을 가지고 캐내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 내부에 소문 다 나는 데에 오래 걸리지 않겠지.
‘이번 주 내로 본부장 귀에 들어가는데 천원 건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사흘 뒤, 본부장이 기염을 토하며 관련자와 증거를 추가 색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 * *
“문대문대, 그거 알아?”
“뭐.”
“운영팀에 누가 우리 정보를 다른 기획사에 팔고 있었대! 세상에~ 무섭다 진짜.”
거실 소파에 걸터앉은 큰세진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 말은 저래도 개새끼 잡아내서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게. 잡았대?”
“어. 근데… 우리 멤버 중에 누가 알아서 제보했다더라고.”
“……그래?”
“응. 그냥 그렇다고.”
큰세진이 씩 웃었다.
“그리고 이것도 그냥 하는 말인데, 고생한다 문대야~”
큰세진은 내 등을 툭 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눈치챘나.’
괜히 캐묻지 않아서 편한 놈이었다.
그리고 역으로, 일단 와서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와~ 회사 분위기 장난 아니다!”
두 번째 매니저 말이다.
개인 스케줄 도중에 ‘네가 말하려다 말았던 것이 이게 아니냐’며, 흥분해서 회사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다 떠들어주더라.
“어떤데요?”
“본부장님이 직접 그쪽 회사에 연락하고 계시던데! 아, 오 대리는 벌써 불려갔어!”
그럴 만도 했다.
결재봇은 조용히 기간만 채우려다 가려고 했는데, 이런 대형 문제가 물밑에서 터졌으니 빡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번 이런 게 소문난 이상, 분위기 다시 잡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T1에서 일하다 온 결재봇도 잘 알 것이다.
공개처형 말이다.
‘물론 회사 내부에서 만으로 한정이겠지만.’
그래서 일단 산업스파이는 찍어둔 채로, 그 스파이를 고소해서 공론화해버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골든에이지의 소속사를 압박 중일 것이다.
물론 결과는 무조건 항복일 확률이 높았다.
‘들키는 순간 끝이었지.’
골든에이지가 1군이 되도록 키운 후라면 모를까, 이건 체급싸움도 여론싸움도 안 됐다.
방송국을 뒤에 업은 대기업 계열사랑 중소기획사의 정면 알력 싸움인데, 심지어 귀책사유가 중소기획사에 있어서 대기업에 명분까지 있다?
‘증거까지 확보된 이상, 더는 빼도 박도 못한다.’
골든에이지의 소속사가 아무리 영리하고 일을 잘해도, 계속 영업하고 싶다면 엎드려서 운신을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재갈 물고 있겠군.’
테스타와 엮는 언론 플레이와 바이럴 장사는 눈치껏 접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제 방영될 의 대중 반응에도 골든에이지 측은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결 편하네.’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누웠다.
사전 준비는 다 끝났다. 프로그램이 방영될 주말이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