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6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4화
W라이브를 포함한 그 날의 스케줄을 모두 끝내고 숙소에 돌아온 밤 11시.
싸운 둘을 위해 방 하나를 비워준 나머지 놈들은 다시 거실에 모였다.
참고로 비워준 방은 3인 방이다. 그쪽이 더 넓으니까.
급하게 나오느라 뜨려고 잡았던 수세미도 놓고 온 선아현이 중얼거렸다.
“자, 잘 푸셨으면 좋겠어…….”
“그러게.”
사실 류청우라도 저 자리에 끼워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했는데, 그러면 도리어 제삼자를 의식해서 겉핥기식으로 끝날까 봐 폐기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대판 싸우는 게 낫지.’
좀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대화할 자세도 갖추었으니, 이젠 싸워도 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럼 시간이 좀 지나면 선을 지킬 수 있다.’
격한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은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생각이 많은 타입이니, 그 시간이 길지도 않을 것이다.
“넷플러스 틀어요!”
“그래. 너 보고 싶은 거 봐.”
차유진은 류청우의 허락에 태평하게 미국 시트콤을 틀었다.
영어로 떠들썩해진 거실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 회사와의 통화 내역이 찍혀 있었다.
[운영팀 오서형 대리님]
까놓고 말하자면, 내가 항의한 흔적이다.
그렇게 요청하고 당부했는데도 오늘 W앱에서 싸운 둘이 한 팀이 된 일에 대해서 말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러는데 화 안 내면 호구지.’
워낙 워라밸이 없는 동네다 보니 어지간한 실수는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치명적일 수 있는 건 알아서 신경 잘 써야 할 것 아닌가.
‘불화설 폭탄을 이렇게 다뤄?’
변명을 들어보니 ‘마크 있는 걸 뽑지 말아라’가 ‘뽑아라’로 와전되면서 전달되어 이렇게 됐다는데, 뭐, 그건 알겠다.
문제는 그 뉘앙스였다.
-근데 사실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이 큰 문제 없었잖아요…. 조심하는 건 좋고 저희 쪽에서 실수한 일이긴 한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한마디로, ‘애초에 별일 아니었는데 너희가 오버한 거 아니냐’는 뜻이다.
‘이 새끼들 너무 풀렸네.’
아무래도 그간 외부에서 일이 많이 터지고 거기만 집중하다 보니, 내부에선 테스타의 무던함을 안일하게 믿게 된 것 같다.
이러다 진짜 누가 돌발 행동이라도 하면 대처가 느릴 것 같아서 영 별로다.
‘이건 손질 좀 들어가야겠는데.’
나는 적당히 그림을 뽑아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스마트폰을 내렸다.
‘일단은… 저놈들부터 해결되면.’
소파 앞에서는 차유진이 자기가 좋아하는 시트콤 등장인물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김래빈이 진지하게 말렸다.
“아직 이 드라마를 안 본 사람에게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니 자중…….”
“스포일러 아냐!”
“스포일러 맞아!”
저놈들 목소리 때문에 드라마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방에 들어간 두 놈이 악을 쓰고 싸워도 못 듣겠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해당 방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뛰쳐나왔다.
“…!”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상기된 배세진이었다.
“박문대!”
‘쟤가 내 이름 부르는 걸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설마 둘이 의기투합해서 날 공격하는 걸로 결론을 냈냐.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너, 너…… 좀, 들어가자.”
“예?”
“와보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일어났다.
그리고 얼결에 배세진에게 몰려 방으로 들어갔다.
“오우! 형들 싸우….”
“자자, TV 봐, 유진아.”
탕.
배세진이 문을 닫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시끄러운 드라마 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던 큰세진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멱살 잡는 소동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었다.
‘괜찮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날 불렀냐.’
떨떠름하게 바닥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큰세진이 입을 열었다.
“일단… 형이랑 대화 좀 하면서 정리를 좀 해봤어.”
“그래.”
“들어봐.”
큰세진은 차분히 현 상황을 이야기했다. 심지어 중간중간 배세진이 끼어들 틈까지 주는 완벽히 정제된 태도였다.
‘사무적이군.’
우선, 둘 다 앞으로 태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앞으로 최대한 서로 감정 상하지 않는 쪽으로 가려고.”
큰세진은 본인이 배세진에게 감정이 좋지 않아 무시하듯이 굴었다는 점을 사과했고, 배세진도 심경이 복잡한 나머지 갑자기 강하게 공격한 점은 사과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서로 좀 조심하기로 했어.”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서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서 말이야.”
이야기하다 보니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게 있었다고 한다.
배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좀 봐줘. 어떤지.”
리더인 류청우가 있는데 굳이 나를 배심원으로 초빙할 필요가 있었냐는 말이 목까지 올랐으나, 참았다.
‘상태이상만 아니었어도 진짜.’
이놈들은 내 시한부 상태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인데요.”
배세진이 침을 꼴깍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도 그렇게 비협조적이야?”
“…!”
배세진은 창백한 얼굴로 두 손을 각각 꾹 움켜쥐었다.
“나는… 내가, 못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별로라면 알겠어.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야. 진짜야.”
“…형 노력하시는 건 다들 알죠.”
큰세진이 진절머리가 나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형이 노력을 안 하신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형이 노력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신경을 안 쓰시니까….”
배세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경을, 안 쓴다고?”
큰세진이 한숨을 쉬었다.
“들어보시려는 생각보다 화부터 나죠? 이래서 제가 그냥…….”
“잠깐.”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다. 나는 큰세진이 뭔가를 더 쏟아붓기 전에 끊었다.
“설명을 더 해줘야지. 형이 신경 안 쓴다는 나머지가 뭔데.”
“너도 알잖아.”
큰세진은 약간 진정된 어조로 설명을 이었다.
“자기가 아니라 그룹을 보여주는 거엔 하나도 신경 안 쓰시는 거.”
“무슨….”
“모든 멤버가 의좋고 사이좋은 그룹처럼 보이는 데 별 관심 없으신 거 알아요. 근데 이 그룹 존속에 큰 관심이 없으셔도 그 정도는 카메라 돌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큰세진이 지친 투로 말했다.
“아이돌 그룹이잖아요. 그런 것도 중요해요.”
“…!”
배세진은 굳었다. 그리고 잠시, 입을 꾹 다문 채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대답은 천천히 나왔다.
“알았어.”
“…!”
“…내가 그런 건 잘 몰라서… 미안. 앞으로는 신경 쓸게.”
이번에는 큰세진이 말문이 막혔다.
‘생각하고는 좀 다르게 흘러가나 보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배세진에겐 애초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 그룹이었을 텐데, 심지어 서바이벌 개인전으로 올라왔다.
그러니 그룹 케미스트리고 나발이고 그런 걸 눈치채거나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무대 연습하기도 버거웠겠지.’
사실 큰세진이 편견 없이 생각했다면, 진작에 오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다만 ‘배우’ 때문에 데뷔조에서 탈락했던 트라우마와 겹쳐서 무의식중에 생각이 고정된 것이다.
‘어차피 배우 할 텐데 딱 지금만 존버 해보려는 거겠지’로 말이다.
그리고 큰세진에게는 충격스럽게도, 심지어 배세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도 이 팀이 좋은 팀이라고 생각해. 잘하고 싶고, 폐 끼치고 싶지 않아. 또, 이 팀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좋고.”
“…….”
배세진은 다음 말을 꺼내기까지 머뭇거렸으나,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카메라 돌 때만 친한 척한다고 해서 미안해. 넌 그냥 잘해보려고 한 거였구나.”
“……!”
큰세진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대답은 한 박자 느리게, 충분히 생각한 후에 나왔다.
“아니요. 제가 함부로 억측했네요. 죄송합니다.”
“…!”
이번엔 배세진이 의외란 얼굴을 했다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크, 크흠. 괘, 괜찮아!”
보니까 슬쩍 열 받았어서 화낼까 말까 약간 갈등했는데 참았군. 저놈도 많이 성장했다.
큰세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저도 뭐, 이득 보려고 한 거 맞죠! 동명이인 캐릭터 좋잖아요~”
평소와 비슷한, 유들한 어조였다.
다만 평소 배세진과의 영혼 없는 대화보다야 훨씬 솔직하게 느껴졌다.
배세진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뭐… 뭐, 그래.”
여기선 또 부정해 주는 게 서로 더 풀고 화해하는 대화로 이어졌겠다만, 배세진의 한계는 여기까진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큰세진은 벌써 쓴웃음을 짓고 있다. 화해 제스처를 뭉갰으니 이해가 안 되겠지.
‘괜찮아. 여기까지만 해도 별 다섯 개급 전개다.’
어쨌든 서로의 행동에 대단한 악의는 없었다는 걸 사례 하나로 확실히 증명했지 않은가.
앞으로는 상대 때문에 빡칠 때마다, 괜히 과한 추측으로 스트레스 안 받고 ‘원래 그런 놈이지’ 하며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겨우 시작점으로 돌려놓은 거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정말 할 만큼 했다.’
간절히 맥주가 당겼다. 찾으러 가야겠다.
“그럼 배세진 형은 협조적이신 걸로 하고… 전 나가보겠습니다.”
배세진이 화들짝 놀랐다.
“어? 자, 잠깐.”
“야, 같이 나가자~ 아, 형, 더 말씀하실 거 있으세요?”
“…없어.”
“그러시다네.”
큰세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서로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음, 그래.”
괜히 더 깊은 대화 나누게 했다가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니 이 상태로 고정해 두는 게 좋겠지.
나는 둘과 함께 방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실에서 안도와 환영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을 피해, 냉장고로 향했다.
‘아마 두 캔 정도 남았던 것 같은데.’
지금 체중에도 문제없으니 야밤이라도 한 번은 괜찮겠지.
달칵.
“…….”
없어.
“여기 맥주…….”
“여기요!”
“헉, 죄송합니다, 마지막 캔인 줄 모르고 함부로 차유진이…….”
거실에 누운 차유진의 손에는 다 비어 찌그러진 캔이 흔들리고 있었다.
“…….”
이 새끼가…….
“무, 문대야. 나, 양주 받은 거 있는데, 마실…….”
“고마워.”
“뭐, 뭘!”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건강에 도움 되는 놈은 선아현뿐이었다.
나는 돌아간 방에서 선아현의 양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거, 건배!”
룸메이트인 배세진도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해소된 느낌에 취했는지, 양주 시음에 기꺼이 동참했다가 죽은 듯이 잠든 게 그날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저… 작은 세진이한테 제안이 하나 왔는데 말이야.”
매니저가 샵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슬그머니 갈등의 원인을 도로 집어 왔다.
“드라만데, 작가님이 작은 세진이를 아신다는… 얘들아?”
“…….”
배세진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지 새끼야.
매니저는 삽시간에 굳은 차 안 분위기에 당황했으나, 뒷자리의 배세진은 숙취로 퀭한 눈으로 큰 동요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안 해요.”
“그, 그래? 근데 큰 거 아닌데…….”
매니저가 더 당황하기 전에, 류청우가 배세진에게 물었다.
“…세진아, 그래도 비활동기랑 겹칠 수도 있으니까 한번 봐두는 것도 낫지 않겠어?”
“…!”
배세진은 살짝 동요한 자신이 창피한지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난.”
“청우가 좋은 말 했네! 다들 괜찮지?”
둘이 대판 싸웠던 날 차에 없었던 첫 번째 매니저는 앞자리에 앉은 ‘넉살 좋은 놈’을 지정해서 리액션을 시켰다.
큰세진 말이다.
“……음.”
별 기색 없이 매니저를 보던 큰세진이 입을 열었다.
“활동에 지장만 없으면 되지 않을까요? 형이 알아서 정하시겠죠~”
“…!”
담백하고 완곡한 중립 선언이었다.
이번에는 배세진도 ‘알아서 처신 잘해라’ 같은 느낌을 받지는 않았는지, 약간 놀란 얼굴로 큰세진의 좌석 쪽을 보았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킨 뒤, 매니저에게 말했다.
“…그럼. 시놉은 볼게요.”
“오~ 좋지!”
하지만 매니저는 약간 난감한 얼굴로 슬쩍 설명을 붙였다.
“근데 시놉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예?”
“어, 이거 카메오 같은 거거든?”
“……!!”
“작은 세진이 예전에 영화에서 했던 그 애기무당 있잖아? 그게 깜짝 출연하는 느낌으로다가……. 세진아? 듣고 있지?”
“…….”
그렇다. 이 모든 개싸움은 원인부터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큰세진과 배세진은 멍한 얼굴로 그날 관리받는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어쨌든 며칠 뒤, 배세진은 1, 2화에 깜짝 등장하는 ‘미친놈으로 잘 자란 애기무당’ 촬영을 하루 만에 끝마쳤다.
“와…….”
“어어어….”
당일에 시청한 결과, 무당과의 싱크로율이 거의 귀기 어린 수준으로 훌륭했으며 대단히 박력이 있었다.
그 귀기가 실제 빡침에서 우러난 것 같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형 진짜 연기력이 대단하십니다.”
“멋져요!”
“…이, 이 정도 가지고 뭘.”
뭐, 결국 배세진도 좋아하긴 했고.
다만 드라마가 끝나고 나온 예고편이 더 충격적이긴 했다.
[재상장! 아이돌 주식회사2]
[금요일 오후 10시 방영]
시즌4 방영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4화
W라이브를 포함한 그 날의 스케줄을 모두 끝내고 숙소에 돌아온 밤 11시.
싸운 둘을 위해 방 하나를 비워준 나머지 놈들은 다시 거실에 모였다.
참고로 비워준 방은 3인 방이다. 그쪽이 더 넓으니까.
급하게 나오느라 뜨려고 잡았던 수세미도 놓고 온 선아현이 중얼거렸다.
“자, 잘 푸셨으면 좋겠어…….”
“그러게.”
사실 류청우라도 저 자리에 끼워놔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긴 했는데, 그러면 도리어 제삼자를 의식해서 겉핥기식으로 끝날까 봐 폐기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대판 싸우는 게 낫지.’
좀 생각할 시간을 가지고 대화할 자세도 갖추었으니, 이젠 싸워도 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들을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럼 시간이 좀 지나면 선을 지킬 수 있다.’
격한 감정은 사라지고 기억은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 다 생각이 많은 타입이니, 그 시간이 길지도 않을 것이다.
“넷플러스 틀어요!”
“그래. 너 보고 싶은 거 봐.”
차유진은 류청우의 허락에 태평하게 미국 시트콤을 틀었다.
영어로 떠들썩해진 거실에서,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 회사와의 통화 내역이 찍혀 있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내가 항의한 흔적이다.
그렇게 요청하고 당부했는데도 오늘 W앱에서 싸운 둘이 한 팀이 된 일에 대해서 말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러는데 화 안 내면 호구지.’
워낙 워라밸이 없는 동네다 보니 어지간한 실수는 그러려니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치명적일 수 있는 건 알아서 신경 잘 써야 할 것 아닌가.
‘불화설 폭탄을 이렇게 다뤄?’
변명을 들어보니 ‘마크 있는 걸 뽑지 말아라’가 ‘뽑아라’로 와전되면서 전달되어 이렇게 됐다는데, 뭐, 그건 알겠다.
문제는 그 뉘앙스였다.
-근데 사실 촬영하는 동안 두 사람이 큰 문제 없었잖아요…. 조심하는 건 좋고 저희 쪽에서 실수한 일이긴 한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한마디로, ‘애초에 별일 아니었는데 너희가 오버한 거 아니냐’는 뜻이다.
‘이 새끼들 너무 풀렸네.’
아무래도 그간 외부에서 일이 많이 터지고 거기만 집중하다 보니, 내부에선 테스타의 무던함을 안일하게 믿게 된 것 같다.
이러다 진짜 누가 돌발 행동이라도 하면 대처가 느릴 것 같아서 영 별로다.
‘이건 손질 좀 들어가야겠는데.’
나는 적당히 그림을 뽑아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스마트폰을 내렸다.
‘일단은… 저놈들부터 해결되면.’
소파 앞에서는 차유진이 자기가 좋아하는 시트콤 등장인물에 대해서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김래빈이 진지하게 말렸다.
“아직 이 드라마를 안 본 사람에게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니 자중…….”
“스포일러 아냐!”
“스포일러 맞아!”
저놈들 목소리 때문에 드라마 소리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다. 방에 들어간 두 놈이 악을 쓰고 싸워도 못 듣겠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해당 방문이 벌컥 열리고 누군가 뛰쳐나왔다.
“…!”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상기된 배세진이었다.
“박문대!”
‘쟤가 내 이름 부르는 걸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설마 둘이 의기투합해서 날 공격하는 걸로 결론을 냈냐.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너, 너…… 좀, 들어가자.”
“예?”
“와보라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일어났다.
그리고 얼결에 배세진에게 몰려 방으로 들어갔다.
“오우! 형들 싸우….”
“자자, TV 봐, 유진아.”
탕.
배세진이 문을 닫고 들어왔다. 순식간에 시끄러운 드라마 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조용한 방 안에 앉아 있던 큰세진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멱살 잡는 소동은 일어나지 않을 듯싶었다.
‘괜찮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 왜 날 불렀냐.’
떨떠름하게 바닥에 앉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큰세진이 입을 열었다.
“일단… 형이랑 대화 좀 하면서 정리를 좀 해봤어.”
“그래.”
“들어봐.”
큰세진은 차분히 현 상황을 이야기했다. 심지어 중간중간 배세진이 끼어들 틈까지 주는 완벽히 정제된 태도였다.
‘사무적이군.’
우선, 둘 다 앞으로 태도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한 모양이다.
“앞으로 최대한 서로 감정 상하지 않는 쪽으로 가려고.”
큰세진은 본인이 배세진에게 감정이 좋지 않아 무시하듯이 굴었다는 점을 사과했고, 배세진도 심경이 복잡한 나머지 갑자기 강하게 공격한 점은 사과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서로 좀 조심하기로 했어.”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서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서 말이야.”
이야기하다 보니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게 있었다고 한다.
배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좀 봐줘. 어떤지.”
리더인 류청우가 있는데 굳이 나를 배심원으로 초빙할 필요가 있었냐는 말이 목까지 올랐으나, 참았다.
‘상태이상만 아니었어도 진짜.’
이놈들은 내 시한부 상태에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무슨 말인데요.”
배세진이 침을 꼴깍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지금도 그렇게 비협조적이야?”
“…!”
배세진은 창백한 얼굴로 두 손을 각각 꾹 움켜쥐었다.
“나는… 내가, 못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별로라면 알겠어. 그런데… 최선을 다해서 하는 거야. 진짜야.”
“…형 노력하시는 건 다들 알죠.”
큰세진이 진절머리가 나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형이 노력을 안 하신다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런데 형이 노력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신경을 안 쓰시니까….”
배세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신경을, 안 쓴다고?”
큰세진이 한숨을 쉬었다.
“들어보시려는 생각보다 화부터 나죠? 이래서 제가 그냥…….”
“잠깐.”
무슨 상황인지는 알겠다. 나는 큰세진이 뭔가를 더 쏟아붓기 전에 끊었다.
“설명을 더 해줘야지. 형이 신경 안 쓴다는 나머지가 뭔데.”
“너도 알잖아.”
큰세진은 약간 진정된 어조로 설명을 이었다.
“자기가 아니라 그룹을 보여주는 거엔 하나도 신경 안 쓰시는 거.”
“무슨….”
“모든 멤버가 의좋고 사이좋은 그룹처럼 보이는 데 별 관심 없으신 거 알아요. 근데 이 그룹 존속에 큰 관심이 없으셔도 그 정도는 카메라 돌면 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큰세진이 지친 투로 말했다.
“아이돌 그룹이잖아요. 그런 것도 중요해요.”
“…!”
배세진은 굳었다. 그리고 잠시, 입을 꾹 다문 채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대답은 천천히 나왔다.
“알았어.”
“…!”
“…내가 그런 건 잘 몰라서… 미안. 앞으로는 신경 쓸게.”
이번에는 큰세진이 말문이 막혔다.
‘생각하고는 좀 다르게 흘러가나 보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배세진에겐 애초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돌 그룹이었을 텐데, 심지어 서바이벌 개인전으로 올라왔다.
그러니 그룹 케미스트리고 나발이고 그런 걸 눈치채거나 신경 쓸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무대 연습하기도 버거웠겠지.’
사실 큰세진이 편견 없이 생각했다면, 진작에 오해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다만 ‘배우’ 때문에 데뷔조에서 탈락했던 트라우마와 겹쳐서 무의식중에 생각이 고정된 것이다.
‘어차피 배우 할 텐데 딱 지금만 존버 해보려는 거겠지’로 말이다.
그리고 큰세진에게는 충격스럽게도, 심지어 배세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나도 이 팀이 좋은 팀이라고 생각해. 잘하고 싶고, 폐 끼치고 싶지 않아. 또, 이 팀으로… 활동할 수 있어서 좋고.”
“…….”
배세진은 다음 말을 꺼내기까지 머뭇거렸으나, 쥐어 짜내는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카메라 돌 때만 친한 척한다고 해서 미안해. 넌 그냥 잘해보려고 한 거였구나.”
“……!”
큰세진은 복잡한 얼굴이 되었다.
대답은 한 박자 느리게, 충분히 생각한 후에 나왔다.
“아니요. 제가 함부로 억측했네요. 죄송합니다.”
“…!”
이번엔 배세진이 의외란 얼굴을 했다가,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크, 크흠. 괘, 괜찮아!”
보니까 슬쩍 열 받았어서 화낼까 말까 약간 갈등했는데 참았군. 저놈도 많이 성장했다.
큰세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저도 뭐, 이득 보려고 한 거 맞죠! 동명이인 캐릭터 좋잖아요~”
평소와 비슷한, 유들한 어조였다.
다만 평소 배세진과의 영혼 없는 대화보다야 훨씬 솔직하게 느껴졌다.
배세진은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뭐… 뭐, 그래.”
여기선 또 부정해 주는 게 서로 더 풀고 화해하는 대화로 이어졌겠다만, 배세진의 한계는 여기까진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큰세진은 벌써 쓴웃음을 짓고 있다. 화해 제스처를 뭉갰으니 이해가 안 되겠지.
‘괜찮아. 여기까지만 해도 별 다섯 개급 전개다.’
어쨌든 서로의 행동에 대단한 악의는 없었다는 걸 사례 하나로 확실히 증명했지 않은가.
앞으로는 상대 때문에 빡칠 때마다, 괜히 과한 추측으로 스트레스 안 받고 ‘원래 그런 놈이지’ 하며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겨우 시작점으로 돌려놓은 거지.’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정말 할 만큼 했다.’
간절히 맥주가 당겼다. 찾으러 가야겠다.
“그럼 배세진 형은 협조적이신 걸로 하고… 전 나가보겠습니다.”
배세진이 화들짝 놀랐다.
“어? 자, 잠깐.”
“야, 같이 나가자~ 아, 형, 더 말씀하실 거 있으세요?”
“…없어.”
“그러시다네.”
큰세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서로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음, 그래.”
괜히 더 깊은 대화 나누게 했다가 어디서 뭐가 터질지 모르니 이 상태로 고정해 두는 게 좋겠지.
나는 둘과 함께 방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거실에서 안도와 환영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을 피해, 냉장고로 향했다.
‘아마 두 캔 정도 남았던 것 같은데.’
지금 체중에도 문제없으니 야밤이라도 한 번은 괜찮겠지.
달칵.
“…….”
없어.
“여기 맥주…….”
“여기요!”
“헉, 죄송합니다, 마지막 캔인 줄 모르고 함부로 차유진이…….”
거실에 누운 차유진의 손에는 다 비어 찌그러진 캔이 흔들리고 있었다.
“…….”
이 새끼가…….
“무, 문대야. 나, 양주 받은 거 있는데, 마실…….”
“고마워.”
“뭐, 뭘!”
아무리 생각해도 정신건강에 도움 되는 놈은 선아현뿐이었다.
나는 돌아간 방에서 선아현의 양주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거, 건배!”
룸메이트인 배세진도 극한의 스트레스에서 해소된 느낌에 취했는지, 양주 시음에 기꺼이 동참했다가 죽은 듯이 잠든 게 그날의 마지막 사건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저… 작은 세진이한테 제안이 하나 왔는데 말이야.”
매니저가 샵으로 가는 차 안에서 슬그머니 갈등의 원인을 도로 집어 왔다.
“드라만데, 작가님이 작은 세진이를 아신다는… 얘들아?”
“…….”
배세진 따로 불러서 이야기하지 새끼야.
매니저는 삽시간에 굳은 차 안 분위기에 당황했으나, 뒷자리의 배세진은 숙취로 퀭한 눈으로 큰 동요 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 안 해요.”
“그, 그래? 근데 큰 거 아닌데…….”
매니저가 더 당황하기 전에, 류청우가 배세진에게 물었다.
“…세진아, 그래도 비활동기랑 겹칠 수도 있으니까 한번 봐두는 것도 낫지 않겠어?”
“…!”
배세진은 살짝 동요한 자신이 창피한지 어깨를 움츠렸다.
“아니… 난.”
“청우가 좋은 말 했네! 다들 괜찮지?”
둘이 대판 싸웠던 날 차에 없었던 첫 번째 매니저는 앞자리에 앉은 ‘넉살 좋은 놈’을 지정해서 리액션을 시켰다.
큰세진 말이다.
“……음.”
별 기색 없이 매니저를 보던 큰세진이 입을 열었다.
“활동에 지장만 없으면 되지 않을까요? 형이 알아서 정하시겠죠~”
“…!”
담백하고 완곡한 중립 선언이었다.
이번에는 배세진도 ‘알아서 처신 잘해라’ 같은 느낌을 받지는 않았는지, 약간 놀란 얼굴로 큰세진의 좌석 쪽을 보았다.
그리고 침을 꿀꺽 삼킨 뒤, 매니저에게 말했다.
“…그럼. 시놉은 볼게요.”
“오~ 좋지!”
하지만 매니저는 약간 난감한 얼굴로 슬쩍 설명을 붙였다.
“근데 시놉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예?”
“어, 이거 카메오 같은 거거든?”
“……!!”
“작은 세진이 예전에 영화에서 했던 그 애기무당 있잖아? 그게 깜짝 출연하는 느낌으로다가……. 세진아? 듣고 있지?”
“…….”
그렇다. 이 모든 개싸움은 원인부터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큰세진과 배세진은 멍한 얼굴로 그날 관리받는 내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어쨌든 며칠 뒤, 배세진은 1, 2화에 깜짝 등장하는 ‘미친놈으로 잘 자란 애기무당’ 촬영을 하루 만에 끝마쳤다.
“와…….”
“어어어….”
당일에 시청한 결과, 무당과의 싱크로율이 거의 귀기 어린 수준으로 훌륭했으며 대단히 박력이 있었다.
그 귀기가 실제 빡침에서 우러난 것 같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형 진짜 연기력이 대단하십니다.”
“멋져요!”
“…이, 이 정도 가지고 뭘.”
뭐, 결국 배세진도 좋아하긴 했고.
다만 드라마가 끝나고 나온 예고편이 더 충격적이긴 했다.
시즌4 방영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