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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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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2화
방문을 연 큰세진은 미소 비슷한 걸 짓고 있긴 했으나, 당연한 말이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음… 들어오게?”
“어.”
나는 방 안에 들어가서 대충 문을 닫으며, 들고 있던 냉수 한 병을 가볍게 던졌다.
“이거 뭐야, 냉수 마시고 정신 차려라?”
“겸사겸사.”
“하하.”
하나도 안 웃긴 놈이 웃는 시늉만 하고 있다.
큰세진은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따서 반병 가까이 비운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어차피 이렇게 되면 사과도 내가 하고 푸는 것도 내가 하게 될 건 알아.”
고조 없이 낮은 목소리였다.
“좀 가라앉으면 알아서 사과하고 선 지킬 테니까 걱정 마. 난 이런 걸로 그룹에 악영향 안 줄 거야.”
“…….”
그나마 다음 말은 좀 감정이 실렸다.
“너랑 다른 멤버들한텐 미안해. 차 안에서 싸워서 다들 놀랐겠다.”
나는 팔짱을 꼈다.
“…배세진 형한테는 사과는 하겠지만, 미안하진 않다?”
“당연한 거 아니야?”
큰세진이 실소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눈가를 쓸었다.
“나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그 형한테 팀원으로서 지킬 도리는 다 지켰다고 생각하거든?”
큰세진은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그 형 안무도 내가 절반은 일대일로 봐주는 식이야. 카메라 돌 때 마 뜨는 소리 하거나 그냥 입 다물어버리면 그거 수습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인가.”
사실이긴 했다.
저놈이 배세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활동할 때마다 팀원으로서 도와주긴 했다.
그게 배세진을 위한 건 아니겠지만.
“근데 그걸 친한 척이라고… 하.”
큰세진이 물병을 구겼다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다시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카메라 앞에서 그런 게 어딨어? 이건 일이잖아. 본인이 내가 불편하니까 카메라 돌 때도 말 걸지 말라는 건가? 그러면서 자기는 일에 진지하고 내가 애들 장난같이 군단 소리를…….”
대충 이런 데서 어긋난 줄은 알았다.
더 격해지기 전에 한번 끊자.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
큰세진은 말없이 물을 들이켰다. 나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넌 팀에 기여하는 게 크지. 네 말대로 형도 알게 모르게 너한테 일방적으로 도움받은 적이 많고.”
“…….”
“그래서 네가 자길 싫어한다는 거에 더 압박감을 크게 느꼈을 거야.”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형은 계속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배세진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아이돌로서 능력치가 떨어지는 건 별수 없었다.
애초에 이쪽 지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팀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본인 업보라고 생각해서 더 꾸역꾸역 참았을 것이다.
“그래서 참다가 터진 거겠지. 오해도 있었고. 일부러 널 다른 애들 앞에서 못된 놈 만들려고 한 건 아닐 거야.”
이놈 성격상 배세진이 일부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을 물 먹였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으니, 이것도 슬쩍 말해주고.
“…….”
아니나 다를까, 좀 진정한 모양이었다.
큰세진은 침착하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네가 보기에도 아까 내가 비꼬는 것처럼 들렸어?”
“차 안에서?”
“어.”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니.”
큰세진이 대답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근데 진심 같진 않았어. 마음에 없는 소리지만 분위기상 해준단 느낌이었지.”
사실 그 상황만 본다면, 큰세진의 말은 앞에서 다른 멤버들이 말했던 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그동안 쌓인 게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데뷔 극 초반에는 너 X 같은데 팀이니까 웃으며 대해준다는 느낌이었고.’
배세진 입장에서는 그때 인상이 강하니, 그 성의 없는 말투가 계속 비꼬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너야 무시하는 것보다는 그게 팀 분위기에 낫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인 건 알아. 근데 어떤 사람한테는 그게 더 견디기 힘들 수도 있지.”
“…….”
“물론 먼저 너랑 좀 괜찮은 분위기에서 따로 상의해 보는 게 더 좋았겠다만… 성격상 그게 안 됐을 거야.”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내 물을 마시며 피식 웃었다.
“그냥 네가 그 형이랑 성격이 안 맞아서 그래.”
“…하.”
큰세진이 한 손으로 이마를 눌렀다.
“이번 기회에 대화 좀 해봐라.”
차라리 서로 행동 원리를 머리로라도 이해하면 ‘저 새끼도 날 엿 먹이려는 의도는 없다’ 선에서 용납해 줄 순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대답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좀, 지긋지긋한데.”
썩 긍정적이진 않았다.
“뭐가.”
“그 형이 나랑 한 번이라도 잘 지내보려고 한 적 있나?”
“…!”
큰세진이 덤덤하게 말했다.
“기억나? 아주사 때부터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만 하면 정색했잖아.”
…첫 번째 팀전부터 수많은 사례가 스쳐 가긴 한다. 나는 침음성을 참았다.
“…그렇긴 했지. 사정이 있긴 했지만.”
“문대야, 여기 사정없는 사람이 어딨어? 노력 안 하는 사람도 없잖아.”
큰세진이 픽 웃었다.
“그런데 그 형은 노력하고 사정이 있고, 원래 예민하니까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다는 말은 하지 말자.”
배세진에 아예 기대를 버린 것 같은 뉘앙스였다.
“너도 봤잖아, 그 형 지금도 그래. 나랑 예능 잡히자마자 질색하던데. 그건 또 무례한 게 아닌가? 내가 싫어도 좋게좋게 대하다 보니 티가 나는 건 비꼬는 거고?”
큰세진은 어쩐지 좀 지친 것 같았다.
“그래 뭐, 어쨌든 네 말은 알겠어. 말했잖아. 사과할게. 일단 좀 자고… 내일 이야기해 보면 되겠지.”
“…….”
미치겠네.
나는 한숨을 참다가, 그냥 내쉬었다.
“야, 그렇게 불편하면 하지 마.”
“…!!”
“둘 싸운다고 당장 앨범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안 내키는데 굳이 마음에도 없는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차라리 시간 날 때 욕하고 싸우는 게 낫겠어.”
큰세진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뭐?”
“내일 오후부터 스케줄이야. 그전에는 풀어야 티가 안 날 테니까.”
“…….”
와, 진짜 대단한 놈이었다.
‘본인 마음이고 나발이고 일단 일이 우선이군.’
이러니 1인분도 간신히 소화하는 배세진한테 감정이 더 좋아지긴 힘들지.
‘게다가 이놈 백그라운드도 있고.’
나는 굳이 이놈을 찾아온 이유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일단 이놈 말부터 무너뜨려 놓자.
“우리 멤버가 7명이야. 굳이 둘이 대화 안 해도 한두 번은 우연으로 넘어갈걸. 내 태도가 한 달쯤 통으로 쓰레기 같았는데도 큰 문제로 안 번졌잖아.”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말하기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다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대화해 보라고 이야기한 건 일종의 경험담이기도 한데. 나도 청우 형이랑 대화해 보니까 좀… 괜찮아졌거든.”
“…! 그거랑은 다르지.”
“아니, 비슷한 부분도 있어.”
나는 내 물을 마셨다.
“난 그 형이 불편했던 게 아니라, 그 형을 보고 연상되는 사건이 불편했던 거니까.”
“…….”
“너도 비슷한 거 같은데.”
“뭐가.”
“네가 배세진 형한테 계속 박한 평가를 주는 여러 이유 중에, 나처럼 연상되는 사건이 있어서 불편한 것도 있지 않냐는 거지. ‘배우 출신 마지막 멤버’잖아.”
“…!”
그렇다. 큰세진이 예전에 콘서트 유닛 무대 준비하면서 털어놓은 과거사가 마음에 걸렸다.
본인이 데뷔조에서 잘린 이유.
-하필 딱 출범 직전에, 부모님 두 분이 전부 배우인 애가 새로 들어왔거든? 인지도가 있어서 팀에 넣어야겠는데… 윗분이 꼭 7명으로 내겠다는 거야. 어쩌겠어? 한 명 잘리는 거지.
똑같이 배우 키워드에 본인보다 실력이 부족한 마지막 멤버인 배세진을 보며 이 트라우마가 무의식 중에 도지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
큰세진은 뒤통수 맞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이거 잘못하면 나랑도 싸울 수 있겠다 싶은데, 멍청한 놈은 아니니까 내 말뜻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대화를 좀 하면서 배세진 형이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보라는 거였어. 당장 이해하거나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상대를 좀 차분하게 판단해 보라는 거지.”
“…….”
큰세진은 느리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 뒤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알았어. 해볼게.”
아까 전의 ‘이야기해 보겠다’와는 다른 뉘앙스의 대답이었다.
상황을 넘기기 위해 적당히 사과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대화해 보겠다는 뉘앙스.
‘됐네.’
이걸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나는 물병 뚜껑을 닫으며 방바닥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했다.”
“어이고, 수고 많으셨어요, 문대 선생님.”
“그만해라.”
“하하!”
큰세진은 실실 웃으면서도 약간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아마 본인의 거부감에 정말 그렇게 비합리적인 측면도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고 있을 것이다.
‘알아서 정리하겠지.’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도 더는 피곤해서 못 해 먹겠다.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 자러 간다.”
“그러셔요. 아 맞다.”
“왜.”
배세진과 관련된 질문이 아닐까 싶었지만, 의외의 말이 나왔다.
“너 그때 그렇게 태도 쓰레기 같지 않았어, 문대야. 그냥 아픈데 열심히 했지. 청우 형도 걱정만 했어.”
“…!”
“신경 써줘서 고맙다. 잘 자.”
큰세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방문을 닫았다.
달칵.
“…….”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느낌이 좀 이상했다.
“음.”
나는 닫힌 문 앞에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배세진이 류청우와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거기 들어가긴 좀 그럴 테니까.
거실에는 아까 봤던 셋이 나란히 모여서 TV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방 언제 들어가요? 졸려요.”
“조, 조금만 더 기다리자….”
“참아, 바보야. 거실에서 자면 되잖아.”
“나 바닥 싫어, 침대 좋아.”
“형들 마음보다 그게 중요해?”
“두 개 다 중요해!”
차유진과 김래빈은 멱살을 잡고 싸우기 직전이었다. 선아현이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얘, 얘들아. 싸우지 말고…!”
나는 침음성을 참으며 말을 걸었다.
“……너희들 다 들어가.”
“형!”
“문대 형!”
“화, 화해했어…?”
“아니.”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낸 후에 차유진을 큰세진이 있는 방으로 귀가시키고, 김래빈도 류청우를 기다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선아현에게 말했다.
“우린 그냥 거실에서 자자.”
“으, 응!”
데뷔 이후에 처음으로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자보게 생겼군. 새삼 그동안 잘 지냈다 싶다.
하지만 다른 방 붙박이장에서 이불을 꺼내오는 순간, 류청우가 우리 방 밖으로 나왔다.
“형.”
“아, 얘들아. …너희 이불 꺼내왔어??”
“이, 이야기가 길어지실까 봐요….”
“아, 괜찮아. 들어가서 자. 세진이랑 이야기 끝났어.”
“잘됐나요?”
“음…….”
류청우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세진이가 마음고생을 좀 한 모양이더라. 무조건 누구 탓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둘이 푸는 자리를 한번 마련하긴 해야겠어. 이세진이 쪽은 어땠어?”
“정신 차리면 대화해 보겠대요.”
“좋아. 그럼 우리 내일쯤 상황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예.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너야말로 수고했어.”
아마 류청우가 배세진의 말을 계속 잘 들어준 모양이었다. 대충 굿나잇 인사를 하고 선아현과 방으로 돌아가니, 배세진은 확실히 안정된 상태였다.
“…미안해. 나 때문에 분위기 불편했지.”
“아, 아니에요…! 형, 형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냥 좀… 어쨌든 미안해. 조심할게.”
배세진은 창백하고 부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침대에 누워서 미동도 없이 조용해졌다.
안 봐도 내부에서 스트레스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엄청나게 번뇌했나 보군.’
안 들어도 뻔했다. ‘내가 너무 지나쳤나’로 시작해서 ‘아니, 그런데 저 새끼가’까지 온갖 생각이 오르락내리락했겠지.
“…….”
선아현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침대로 가자, 나는 한숨을 쉬며 방 불을 끈 뒤 내 침대에 누웠다.
‘모니터링을 못 했네.’
원래는 차 안에서 할 생각이었는데, 알다시피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좀 해둘까.’
나는 스마트폰을 켠 뒤, 뉴스 기사부터 천천히 여론을 살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 자?”
배세진이었다. 잠든 선아현을 의식했는지,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아직은요.”
“…….”
배세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주저하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내가 잘못한 걸까.”
불안이 느껴졌다.
“아니요. 괜찮을 거예요.”
그냥… 더럽게 안 맞는 놈 둘이 나름대로 그룹을 위한답시고 서로 참아서 지금까지 곯은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배세진 쪽이 더 약자니까 이쪽이 더 힘들었을 것이고.
“……응.”
이불을 뒤집어썼는지, 아주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들키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용히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대화하고 나면 결론이 나겠지.’
그때까지는 둘이 좀 떨어뜨려 줘야겠다.
다음 날, W라이브에서 하필 그 두 사람이 같은 조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때의 생각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2화

방문을 연 큰세진은 미소 비슷한 걸 짓고 있긴 했으나, 당연한 말이지만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음… 들어오게?”

“어.”

나는 방 안에 들어가서 대충 문을 닫으며, 들고 있던 냉수 한 병을 가볍게 던졌다.

“이거 뭐야, 냉수 마시고 정신 차려라?”

“겸사겸사.”

“하하.”

하나도 안 웃긴 놈이 웃는 시늉만 하고 있다.

큰세진은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물을 따서 반병 가까이 비운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어차피 이렇게 되면 사과도 내가 하고 푸는 것도 내가 하게 될 건 알아.”

고조 없이 낮은 목소리였다.

“좀 가라앉으면 알아서 사과하고 선 지킬 테니까 걱정 마. 난 이런 걸로 그룹에 악영향 안 줄 거야.”

“…….”

그나마 다음 말은 좀 감정이 실렸다.

“너랑 다른 멤버들한텐 미안해. 차 안에서 싸워서 다들 놀랐겠다.”

나는 팔짱을 꼈다.

“…배세진 형한테는 사과는 하겠지만, 미안하진 않다?”

“당연한 거 아니야?”

큰세진이 실소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눈가를 쓸었다.

“나는 진짜…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그 형한테 팀원으로서 지킬 도리는 다 지켰다고 생각하거든?”

큰세진은 손가락을 접으며 말을 이었다.

“지금 그 형 안무도 내가 절반은 일대일로 봐주는 식이야. 카메라 돌 때 마 뜨는 소리 하거나 그냥 입 다물어버리면 그거 수습해 주는 것도 한두 번인가.”

사실이긴 했다.

저놈이 배세진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과는 별개로 활동할 때마다 팀원으로서 도와주긴 했다.

그게 배세진을 위한 건 아니겠지만.

“근데 그걸 친한 척이라고… 하.”

큰세진이 물병을 구겼다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다시 손아귀에서 힘을 뺐다.

“카메라 앞에서 그런 게 어딨어? 이건 일이잖아. 본인이 내가 불편하니까 카메라 돌 때도 말 걸지 말라는 건가? 그러면서 자기는 일에 진지하고 내가 애들 장난같이 군단 소리를…….”

대충 이런 데서 어긋난 줄은 알았다.

더 격해지기 전에 한번 끊자.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

큰세진은 말없이 물을 들이켰다. 나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넌 팀에 기여하는 게 크지. 네 말대로 형도 알게 모르게 너한테 일방적으로 도움받은 적이 많고.”

“…….”

“그래서 네가 자길 싫어한다는 거에 더 압박감을 크게 느꼈을 거야.”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 형은 계속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배세진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아이돌로서 능력치가 떨어지는 건 별수 없었다.

애초에 이쪽 지망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팀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본인 업보라고 생각해서 더 꾸역꾸역 참았을 것이다.

“그래서 참다가 터진 거겠지. 오해도 있었고. 일부러 널 다른 애들 앞에서 못된 놈 만들려고 한 건 아닐 거야.”

이놈 성격상 배세진이 일부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본인을 물 먹였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으니, 이것도 슬쩍 말해주고.

“…….”

아니나 다를까, 좀 진정한 모양이었다.

큰세진은 침착하게 물었다.

“…솔직히 말해봐. 네가 보기에도 아까 내가 비꼬는 것처럼 들렸어?”

“차 안에서?”

“어.”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니.”

큰세진이 대답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

“근데 진심 같진 않았어. 마음에 없는 소리지만 분위기상 해준단 느낌이었지.”

사실 그 상황만 본다면, 큰세진의 말은 앞에서 다른 멤버들이 말했던 것과 비슷했다.

문제는 그동안 쌓인 게 있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데뷔 극 초반에는 너 X 같은데 팀이니까 웃으며 대해준다는 느낌이었고.’

배세진 입장에서는 그때 인상이 강하니, 그 성의 없는 말투가 계속 비꼬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너야 무시하는 것보다는 그게 팀 분위기에 낫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인 건 알아. 근데 어떤 사람한테는 그게 더 견디기 힘들 수도 있지.”

“…….”

“물론 먼저 너랑 좀 괜찮은 분위기에서 따로 상의해 보는 게 더 좋았겠다만… 성격상 그게 안 됐을 거야.”

“이해가 안 된다.”

나는 내 물을 마시며 피식 웃었다.

“그냥 네가 그 형이랑 성격이 안 맞아서 그래.”

“…하.”

큰세진이 한 손으로 이마를 눌렀다.

“이번 기회에 대화 좀 해봐라.”

차라리 서로 행동 원리를 머리로라도 이해하면 ‘저 새끼도 날 엿 먹이려는 의도는 없다’ 선에서 용납해 줄 순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대답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좀, 지긋지긋한데.”

썩 긍정적이진 않았다.

“뭐가.”

“그 형이 나랑 한 번이라도 잘 지내보려고 한 적 있나?”

“…!”

큰세진이 덤덤하게 말했다.

“기억나? 아주사 때부터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말만 하면 정색했잖아.”

…첫 번째 팀전부터 수많은 사례가 스쳐 가긴 한다. 나는 침음성을 참았다.

“…그렇긴 했지. 사정이 있긴 했지만.”

“문대야, 여기 사정없는 사람이 어딨어? 노력 안 하는 사람도 없잖아.”

큰세진이 픽 웃었다.

“그런데 그 형은 노력하고 사정이 있고, 원래 예민하니까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다는 말은 하지 말자.”

배세진에 아예 기대를 버린 것 같은 뉘앙스였다.

“너도 봤잖아, 그 형 지금도 그래. 나랑 예능 잡히자마자 질색하던데. 그건 또 무례한 게 아닌가? 내가 싫어도 좋게좋게 대하다 보니 티가 나는 건 비꼬는 거고?”

큰세진은 어쩐지 좀 지친 것 같았다.

“그래 뭐, 어쨌든 네 말은 알겠어. 말했잖아. 사과할게. 일단 좀 자고… 내일 이야기해 보면 되겠지.”

“…….”

미치겠네.

나는 한숨을 참다가, 그냥 내쉬었다.

“야, 그렇게 불편하면 하지 마.”

“…!!”

“둘 싸운다고 당장 앨범이 망하는 것도 아니고……. 안 내키는데 굳이 마음에도 없는 사과할 필요는 없다고. 차라리 시간 날 때 욕하고 싸우는 게 낫겠어.”

큰세진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뭐?”

“내일 오후부터 스케줄이야. 그전에는 풀어야 티가 안 날 테니까.”

“…….”

와, 진짜 대단한 놈이었다.

‘본인 마음이고 나발이고 일단 일이 우선이군.’

이러니 1인분도 간신히 소화하는 배세진한테 감정이 더 좋아지긴 힘들지.

‘게다가 이놈 백그라운드도 있고.’

나는 굳이 이놈을 찾아온 이유 중 하나를 떠올렸다.

일단 이놈 말부터 무너뜨려 놓자.

“우리 멤버가 7명이야. 굳이 둘이 대화 안 해도 한두 번은 우연으로 넘어갈걸. 내 태도가 한 달쯤 통으로 쓰레기 같았는데도 큰 문제로 안 번졌잖아.”

그리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말하기 약간… 껄끄럽긴 하지만 다른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대화해 보라고 이야기한 건 일종의 경험담이기도 한데. 나도 청우 형이랑 대화해 보니까 좀… 괜찮아졌거든.”

“…! 그거랑은 다르지.”

“아니, 비슷한 부분도 있어.”

나는 내 물을 마셨다.

“난 그 형이 불편했던 게 아니라, 그 형을 보고 연상되는 사건이 불편했던 거니까.”

“…….”

“너도 비슷한 거 같은데.”

“뭐가.”

“네가 배세진 형한테 계속 박한 평가를 주는 여러 이유 중에, 나처럼 연상되는 사건이 있어서 불편한 것도 있지 않냐는 거지. ‘배우 출신 마지막 멤버’잖아.”

“…!”

그렇다. 큰세진이 예전에 콘서트 유닛 무대 준비하면서 털어놓은 과거사가 마음에 걸렸다.

본인이 데뷔조에서 잘린 이유.

-하필 딱 출범 직전에, 부모님 두 분이 전부 배우인 애가 새로 들어왔거든? 인지도가 있어서 팀에 넣어야겠는데… 윗분이 꼭 7명으로 내겠다는 거야. 어쩌겠어? 한 명 잘리는 거지.

똑같이 배우 키워드에 본인보다 실력이 부족한 마지막 멤버인 배세진을 보며 이 트라우마가 무의식 중에 도지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

큰세진은 뒤통수 맞은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이거 잘못하면 나랑도 싸울 수 있겠다 싶은데, 멍청한 놈은 아니니까 내 말뜻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래. 그럴 줄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대화를 좀 하면서 배세진 형이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보라는 거였어. 당장 이해하거나 사과하라는 게 아니라, 상대를 좀 차분하게 판단해 보라는 거지.”

“…….”

큰세진은 느리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 뒤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알았어. 해볼게.”

아까 전의 ‘이야기해 보겠다’와는 다른 뉘앙스의 대답이었다.

상황을 넘기기 위해 적당히 사과하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대화해 보겠다는 뉘앙스.

‘됐네.’

이걸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나는 물병 뚜껑을 닫으며 방바닥에서 일어났다.

“잘 생각했다.”

“어이고, 수고 많으셨어요, 문대 선생님.”

“그만해라.”

“하하!”

큰세진은 실실 웃으면서도 약간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아마 본인의 거부감에 정말 그렇게 비합리적인 측면도 있는지 한번 점검해 보고 있을 것이다.

‘알아서 정리하겠지.’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도 더는 피곤해서 못 해 먹겠다.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나 자러 간다.”

“그러셔요. 아 맞다.”

“왜.”

배세진과 관련된 질문이 아닐까 싶었지만, 의외의 말이 나왔다.

“너 그때 그렇게 태도 쓰레기 같지 않았어, 문대야. 그냥 아픈데 열심히 했지. 청우 형도 걱정만 했어.”

“…!”

“신경 써줘서 고맙다. 잘 자.”

큰세진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방문을 닫았다.

달칵.

“…….”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느낌이 좀 이상했다.

“음.”

나는 닫힌 문 앞에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배세진이 류청우와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거기 들어가긴 좀 그럴 테니까.

거실에는 아까 봤던 셋이 나란히 모여서 TV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방 언제 들어가요? 졸려요.”

“조, 조금만 더 기다리자….”

“참아, 바보야. 거실에서 자면 되잖아.”

“나 바닥 싫어, 침대 좋아.”

“형들 마음보다 그게 중요해?”

“두 개 다 중요해!”

차유진과 김래빈은 멱살을 잡고 싸우기 직전이었다. 선아현이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얘, 얘들아. 싸우지 말고…!”

나는 침음성을 참으며 말을 걸었다.

“……너희들 다 들어가.”

“형!”

“문대 형!”

“화, 화해했어…?”

“아니.”

나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낸 후에 차유진을 큰세진이 있는 방으로 귀가시키고, 김래빈도 류청우를 기다리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방으로 보냈다.

그리고 선아현에게 말했다.

“우린 그냥 거실에서 자자.”

“으, 응!”

데뷔 이후에 처음으로 침대가 아닌 곳에서 자보게 생겼군. 새삼 그동안 잘 지냈다 싶다.

하지만 다른 방 붙박이장에서 이불을 꺼내오는 순간, 류청우가 우리 방 밖으로 나왔다.

“형.”

“아, 얘들아. …너희 이불 꺼내왔어??”

“이, 이야기가 길어지실까 봐요….”

“아, 괜찮아. 들어가서 자. 세진이랑 이야기 끝났어.”

“잘됐나요?”

“음…….”

류청우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세진이가 마음고생을 좀 한 모양이더라. 무조건 누구 탓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둘이 푸는 자리를 한번 마련하긴 해야겠어. 이세진이 쪽은 어땠어?”

“정신 차리면 대화해 보겠대요.”

“좋아. 그럼 우리 내일쯤 상황 보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예.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너야말로 수고했어.”

아마 류청우가 배세진의 말을 계속 잘 들어준 모양이었다. 대충 굿나잇 인사를 하고 선아현과 방으로 돌아가니, 배세진은 확실히 안정된 상태였다.

“…미안해. 나 때문에 분위기 불편했지.”

“아, 아니에요…! 형, 형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냥 좀… 어쨌든 미안해. 조심할게.”

배세진은 창백하고 부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더니, 침대에 누워서 미동도 없이 조용해졌다.

안 봐도 내부에서 스트레스가 소용돌이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엄청나게 번뇌했나 보군.’

안 들어도 뻔했다. ‘내가 너무 지나쳤나’로 시작해서 ‘아니, 그런데 저 새끼가’까지 온갖 생각이 오르락내리락했겠지.

“…….”

선아현이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침대로 가자, 나는 한숨을 쉬며 방 불을 끈 뒤 내 침대에 누웠다.

‘모니터링을 못 했네.’

원래는 차 안에서 할 생각이었는데, 알다시피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지금이라도 좀 해둘까.’

나는 스마트폰을 켠 뒤, 뉴스 기사부터 천천히 여론을 살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안 자?”

배세진이었다. 잠든 선아현을 의식했는지,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아직은요.”

“…….”

배세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아주 주저하는 쉰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내가 잘못한 걸까.”

불안이 느껴졌다.

“아니요. 괜찮을 거예요.”

그냥… 더럽게 안 맞는 놈 둘이 나름대로 그룹을 위한답시고 서로 참아서 지금까지 곯은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배세진 쪽이 더 약자니까 이쪽이 더 힘들었을 것이고.

“……응.”

이불을 뒤집어썼는지, 아주 작게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들키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조용히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대화하고 나면 결론이 나겠지.’

그때까지는 둘이 좀 떨어뜨려 줘야겠다.

다음 날, W라이브에서 하필 그 두 사람이 같은 조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때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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