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6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1화
솔직히 까놓고 생각해 보자.
‘배세진은 드라마 하고 싶어 할 만하지.’
애초에 아역배우 출신에, 배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에 나왔던 녀석이다.
게다가 누가 봐도 아이돌 관련 능력치보다 배우 관련 능력치가 좋았다.
‘나라도 흔들렸겠어.’
나는 약간 어두운 안색인 배세진에게 넌지시 물었다.
“제안 온 드라마가 괜찮았나 보네요.”
“…나 예전에 아역배우 할 때, 같이 일해봤던 작가분 드라마야. 거기서… 작은 역할이 하나 있다는데.”
배세진이 약간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방금 말 건 PD가 그 드라마 PD랑 지인이라면서… 드라마 괜찮다고, T1에서 지원 제작하기도 하고…….”
“음.”
그 정도면 분명 회사에도 오퍼가 들어갔을 텐데, 활동 생각해서 자른 모양이었다.
‘슬슬 테스타 투어 각이 보이니까 괜한 여지 안 주려는 생각이었나.’
하락세가 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투어가 더 돈이 될 테니까 말이다.
“…뭐, 됐어. 어차피 지인은 누구나 괜찮다고 하지.”
배세진은 억지로 떨쳐내듯이 말하고, 명함을 버리려는지 근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잠시만요.”
“왜?”
“회사하고 이야기라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저희 활동도 1년 지났으니까, 가볍게 한 작품 정도는 이야기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
배세진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야 배세진이 한 3년은 다른 생각 없이 그룹 활동만 해주는 게 최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변수였다.
‘자꾸 누르면 계약기간 못 채우고 탈주할 수도 있단 말이지.’
보니까 하고 싶은데 팀 활동에 문제가 생길까 봐 꾹꾹 눌러 참는 게 눈에 보였다.
사람이 이성과 사회성으로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아무리 재미를 붙였다곤 하지만 본인이 잘하는 걸 눈앞에 두고 부진한 것만 계속하다 보면 돌아버리기 딱 좋다.
‘차라리 지금 드라마 하나 풀어주는 게 낫지 않나.’
들어보니 비중 작은 조연 같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욕 좀 먹더라도 ‘T1 제작이라서 홍보용으로 테스타 멤버까지 동원됐구나~’ 하고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니 말이다.
그나마 이렇게 아귀 맞게 가능할 때 살짝 풀어주는 게 몇 년 뒤에 본격적으로 연기하기도 편하겠지. 거부감도 덜하고.
나는 배세진이 적당히 합리화할 수 있도록 근거도 슬쩍 붙여줬다.
“어차피 슬슬 개인으로 예능도 몇 번 나오고, 화보나 광고도 찍는 분위기니까요.”
“…….”
하지만 배세진은 굳은 얼굴로 명함을 구기더니, 쓰레기통에 넣었다.
“…!”
“됐어. 정신만 팔리겠지.”
그리고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데… 지금 다른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어.”
압박감이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활동이 우선이야.”
“형…….”
“…??”
저거 나 아니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김래빈이 우수에 찬 얼굴로 배세진을 보고 있었다.
손에 음료수가 들려있는 걸 보니, 배세진과 내가 자리에 없어서 못 받은 걸 자기 손에 들고 우릴 찾아다닌 모양이다.
‘발에 아직도 보호대 찬 놈이 무슨.’
어처구니가 없는데 당사자는 해맑았다.
“형이 테스타의 활동에 이렇게 열중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빨리 부상에서 회복해서 팀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뭐, 뭐야! 너 어디서 나왔어!”
“아, 이거 드십시오!”
배세진은 얼굴을 붉히고 기겁했다.
‘망했네.’
뭐라 더 설득할 여지도 분위기도 없었다.
‘영 아쉬워 보이면 나중에 한번 운이라도 띄워줘야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음료수를 받아들고 김래빈을 따라 일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세진은 불퉁한 표정으로 본인의 차를 빨아먹고 있었지만, 썩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배세진 형과 문대 형을 만나서 음료를 전달했습니다.”
“고생했네~”
“그래도 앞으로는 걷는 건 조심하자 래빈아. 회복할 때까지는 신경 써야지.”
“숙지하겠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김래빈은 ‘대체 어디를 갔다가 온 거냐’는 멤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 둘을 찾아 데리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뒷자리에서 차유진이 툭툭 김래빈의 옆구리를 치며 물었다.
“형들은 어떤 일 했어??”
“아, 배세진 형께서 테스타의 향후 활동에 대해 다짐하시는 것 같…….”
“아, 아냐!”
맨 앞자리의 배세진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황급히 부정했다.
김래빈은 그 격렬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분명 모종의 활동을 거절하시면서 테스타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신 것 같…….”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말 좀 해줘…….”
“…….”
본인이 하시지 왜 날 부르고 그러냐.
나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형이 드라마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했어.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고.”
“헐!”
“지, 진짜?”
앞에서 배세진이 신음을 내며 얼굴을 두 손을 가리는 게 얼핏 보였다.
“고생했네, 세진이.”
“다음에 해봐요! 도전 좋아요!”
“저, 저도 활동 열심히 할게요 형…!”
약간의 감동과 격려로 차 안이 훈훈해졌다. 배세진은 복잡미묘한 생각이 드는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하이고.’
나는 혀를 차며 생수병을 땄다. 옆에서 큰세진도 적당히 스마트폰을 보며 말을 던졌다.
“정말 아쉬우셨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
앞자리의 배세진은 움찔하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나온 듯이 툭 대답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 안 하잖아.”
“…!”
다소 날 선 대답이었다.
대답을 들은 큰세진의 얼굴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실소가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예? 에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좋은 말씀드린 거잖아요.”
“…너 비꼬는 건 아는데, 이런 걸로 그러지 마. 거절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제가 언제 형 말을 비꽜… 아뇨. 넵.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말 안 할게요. 그럼 괜찮으시죠?”
“그러니까 매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대놓고 말해.”
갑자기 차 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이건 X발 또 뭐야.’
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에서 큰세진이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뗐다.
큰세진은 이젠 숨기지도 않고 실소 중이었다.
“뭘 또 대놓고 말해요? 저 이미 말 잘하고 있는데.”
“은근히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거 그만하라고.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러니까 제가 왜 형을 이상하게 만들겠냐구요. 아니, 왜 이런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
“얘들아, 잠깐.”
배세진이 휙 고개를 돌렸다.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너 나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도움도 안 되는 게 자존심만 세다고 생각하는 거 나도 안다고.”
“……!”
“거봐.”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 건데요.”
“그러면서 또 카메라 앞에서 자기 유리할 때만 나한테 친한 척하잖아.”
슬슬 큰세진도 머리끝까지 빡친 얼굴이었다.
“그럼 카메라 앞에서 싸울까요? 형, 일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매번 사람이…….”
배세진이 자신의 팔걸이를 내려쳤다.
“나는! 이 일에 진지해. 애들 장난처럼 구는 건 너야.”
“뭐?”
분위기는 이게 주먹다짐으로 안 번진 건 전적으로 차 안이라 그런 것 같은 수준까지 험악해졌다.
그 순간, 큰세진이 거의 일어나다시피 상체를 앞으로 뺐다.
“누구한테 지금…….”
“야, 그만.”
‘미쳤나.’
나는 얼른 놈의 가슴을 한 손으로 눌렀다. 갑작스럽게 번진 말싸움에 당황했다가 그제야 정신 차린 다른 사람들도 둘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그래 얘들아 그만하자! 형 운전하다가 심장마비 걸리겠어!”
“지, 진정하, 하시고…….”
“일단 숙소 돌아가서 좀 차분히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
“우리 지금 달리는 차 안이야. 사고 날 수도 있어!”
“…….”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말없이 조용히 자리에 도로 정상 착석했다.
물론 분위기는 여전히 살벌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차 안에서, 나는 침음성을 참았다.
‘돌아버리겠네.’
데뷔 때부터 눈에 들어오던 삐걱거림이 갑자기 대단한 것도 아닌 도화선에서 확 터졌다.
‘적당히 서로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왔나.’
이게 해결될 방안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일단, 숙소 도착하면 대화부터 중재하는 걸로 하고.’
귀찮지만 별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숙소에 도착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둘은 대화는커녕,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신속하게 각자의 방에 처박혔다.
정확히는 배세진이 방으로 직행하는 순간 이세진도 코웃음을 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회피라기보단… 그냥 둘 다 더럽게 열받은 모양이다.
‘X발.’
답이 없다.
“…….”
거실에 앉은 나머지 테스타 놈들은 말없이 TV 화면만 보고 있었다.
마침 보기 싫은 광고까지 나온다.
[따스한 마음처럼 따스한 손길]
[오성의 안내견 전문학교의 예비 안내견들을 만나보세요!]
청려와 찍었던 광고다. 화사한 필터 속 야외 풀밭에서 노란 개들이 뛰어나와 내 머리에 매달리는 게 반복 컷으로 나오고 있다. 내 얼굴이 상당히 멍청해 보였다.
“어, 문대 형.”
“강아지 좋아요….”
개 좋다고 말하는 차유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이 들렸다. 아니, 차유진뿐만 아니라, 다들 좀 당황해서 멍한 것 같다.
‘이 팀이 그럭저럭 화목하게 잘 지내긴 했지.’
데뷔한 후로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싸움이 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당황할 만도 했다.
씁쓸한 현실의 분위기와 다르게, 화면에서는 활기찬 개떼와 청려가 보였다.
[여러분의 사랑으로 자랐습니다.]
[감사합니다! 국민 여러분!]
[국민의 보험 – 오성 생명보험]
저기도 개판. 여기도 개판이었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 나는 뒷머리를 휘저으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생각하자.
‘일단… 타이밍이 안 좋았지.’
배세진은 드라마를 거절하겠다고 어렵게 결심한 탓에 아직 심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예민한 놈이었다. 평소에 큰세진의 은근한 말투를 눈치채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쌓아뒀나 본데, 이번에는 참을 수 없이 딱 거슬렸나 보다.
‘큰세진이야 안 그래도 커리어 성취에 집착하는 놈이고.’
나처럼 상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성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타입이다.
그래서 팀원 중 능력치도 떨어지고 사회성 부족한데 빳빳한 배세진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러니까 아마 본인이 ‘참아주던’ 놈이 도리어 지랄한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둘이 안 맞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공통점이랄게 없는 놈들이다. 호감도 없고 서로의 행동이 납득도 안 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솔직히, 그냥 카메라 돌아갈 때만 알아서 잘하라고 내버려 두고 싶긴 한데…….
‘그래도 뭘 해보긴 해야겠지.’
…류청우 때 배려도 받았고 말이다.
나는 넌덜머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문대야.”
“형.”
류청우가 슬그머니 따라오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세진이, 그러니까 이세진한테 가볼 테니까… 네가 배세진이한테 가볼래? 둘이 대화는 해봐야지.”
“흠.”
내가 배세진과 현재 룸메이트란 사실을 고려한 분배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세진한테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 되돌아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이걸 멤버 중에 나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류청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갑이 나을 수도 있겠다.”
“네.”
“그럼… 고생하자.”
류청우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 주방을 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냉장고를 열었다.
‘술은 역효과일 것 같고.’
냉수나 좀 챙겨가자.
나는 한 손에 생수 두 병을 들고 이세진의 방문 앞으로 갔다.
똑똑.
“나야.”
“…….”
잠시 후,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61화
솔직히 까놓고 생각해 보자.
‘배세진은 드라마 하고 싶어 할 만하지.’
애초에 아역배우 출신에, 배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에 나왔던 녀석이다.
게다가 누가 봐도 아이돌 관련 능력치보다 배우 관련 능력치가 좋았다.
‘나라도 흔들렸겠어.’
나는 약간 어두운 안색인 배세진에게 넌지시 물었다.
“제안 온 드라마가 괜찮았나 보네요.”
“…나 예전에 아역배우 할 때, 같이 일해봤던 작가분 드라마야. 거기서… 작은 역할이 하나 있다는데.”
배세진이 약간 우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방금 말 건 PD가 그 드라마 PD랑 지인이라면서… 드라마 괜찮다고, T1에서 지원 제작하기도 하고…….”
“음.”
그 정도면 분명 회사에도 오퍼가 들어갔을 텐데, 활동 생각해서 자른 모양이었다.
‘슬슬 테스타 투어 각이 보이니까 괜한 여지 안 주려는 생각이었나.’
하락세가 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투어가 더 돈이 될 테니까 말이다.
“…뭐, 됐어. 어차피 지인은 누구나 괜찮다고 하지.”
배세진은 억지로 떨쳐내듯이 말하고, 명함을 버리려는지 근처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잠시만요.”
“왜?”
“회사하고 이야기라도 해보는 게 어떨까요. 저희 활동도 1년 지났으니까, 가볍게 한 작품 정도는 이야기해 봐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데.”
배세진의 눈이 커졌다.
솔직히 내 입장에서야 배세진이 한 3년은 다른 생각 없이 그룹 활동만 해주는 게 최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변수였다.
‘자꾸 누르면 계약기간 못 채우고 탈주할 수도 있단 말이지.’
보니까 하고 싶은데 팀 활동에 문제가 생길까 봐 꾹꾹 눌러 참는 게 눈에 보였다.
사람이 이성과 사회성으로 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아무리 재미를 붙였다곤 하지만 본인이 잘하는 걸 눈앞에 두고 부진한 것만 계속하다 보면 돌아버리기 딱 좋다.
‘차라리 지금 드라마 하나 풀어주는 게 낫지 않나.’
들어보니 비중 작은 조연 같았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욕 좀 먹더라도 ‘T1 제작이라서 홍보용으로 테스타 멤버까지 동원됐구나~’ 하고 큰 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니 말이다.
그나마 이렇게 아귀 맞게 가능할 때 살짝 풀어주는 게 몇 년 뒤에 본격적으로 연기하기도 편하겠지. 거부감도 덜하고.
나는 배세진이 적당히 합리화할 수 있도록 근거도 슬쩍 붙여줬다.
“어차피 슬슬 개인으로 예능도 몇 번 나오고, 화보나 광고도 찍는 분위기니까요.”
“…….”
하지만 배세진은 굳은 얼굴로 명함을 구기더니, 쓰레기통에 넣었다.
“…!”
“됐어. 정신만 팔리겠지.”
그리고 다짐하듯이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간신히 따라가고 있는데… 지금 다른 걸 신경 쓸 여유는 없어.”
압박감이 목소리에서도 느껴졌다.
“…활동이 우선이야.”
“형…….”
“…??”
저거 나 아니다.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김래빈이 우수에 찬 얼굴로 배세진을 보고 있었다.
손에 음료수가 들려있는 걸 보니, 배세진과 내가 자리에 없어서 못 받은 걸 자기 손에 들고 우릴 찾아다닌 모양이다.
‘발에 아직도 보호대 찬 놈이 무슨.’
어처구니가 없는데 당사자는 해맑았다.
“형이 테스타의 활동에 이렇게 열중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도 빨리 부상에서 회복해서 팀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뭐, 뭐야! 너 어디서 나왔어!”
“아, 이거 드십시오!”
배세진은 얼굴을 붉히고 기겁했다.
‘망했네.’
뭐라 더 설득할 여지도 분위기도 없었다.
‘영 아쉬워 보이면 나중에 한번 운이라도 띄워줘야겠어.’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음료수를 받아들고 김래빈을 따라 일행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세진은 불퉁한 표정으로 본인의 차를 빨아먹고 있었지만, 썩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배세진 형과 문대 형을 만나서 음료를 전달했습니다.”
“고생했네~”
“그래도 앞으로는 걷는 건 조심하자 래빈아. 회복할 때까지는 신경 써야지.”
“숙지하겠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김래빈은 ‘대체 어디를 갔다가 온 거냐’는 멤버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 둘을 찾아 데리고 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자 뒷자리에서 차유진이 툭툭 김래빈의 옆구리를 치며 물었다.
“형들은 어떤 일 했어??”
“아, 배세진 형께서 테스타의 향후 활동에 대해 다짐하시는 것 같…….”
“아, 아냐!”
맨 앞자리의 배세진이 얼굴이 시뻘게져서 황급히 부정했다.
김래빈은 그 격렬한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는지,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기웃거렸다.
“하지만 분명 모종의 활동을 거절하시면서 테스타에 대한 헌신을 다짐하신 것 같…….”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말 좀 해줘…….”
“…….”
본인이 하시지 왜 날 부르고 그러냐.
나는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형이 드라마 출연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했어. 활동에 집중하고 싶다고.”
“헐!”
“지, 진짜?”
앞에서 배세진이 신음을 내며 얼굴을 두 손을 가리는 게 얼핏 보였다.
“고생했네, 세진이.”
“다음에 해봐요! 도전 좋아요!”
“저, 저도 활동 열심히 할게요 형…!”
약간의 감동과 격려로 차 안이 훈훈해졌다. 배세진은 복잡미묘한 생각이 드는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하이고.’
나는 혀를 차며 생수병을 땄다. 옆에서 큰세진도 적당히 스마트폰을 보며 말을 던졌다.
“정말 아쉬우셨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
앞자리의 배세진은 움찔하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나온 듯이 툭 대답을 던졌다.
“그렇게 생각 안 하잖아.”
“…!”
다소 날 선 대답이었다.
대답을 들은 큰세진의 얼굴에서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실소가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예? 에이,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냥 좋은 말씀드린 거잖아요.”
“…너 비꼬는 건 아는데, 이런 걸로 그러지 마. 거절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제가 언제 형 말을 비꽜… 아뇨. 넵.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말 안 할게요. 그럼 괜찮으시죠?”
“그러니까 매번 그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대놓고 말해.”
갑자기 차 안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이건 X발 또 뭐야.’
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옆에서 큰세진이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뗐다.
큰세진은 이젠 숨기지도 않고 실소 중이었다.
“뭘 또 대놓고 말해요? 저 이미 말 잘하고 있는데.”
“은근히 사람 이상하게 만드는 거 그만하라고. 내가 모를 줄 알아?”
“그러니까 제가 왜 형을 이상하게 만들겠냐구요. 아니, 왜 이런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
“얘들아, 잠깐.”
배세진이 휙 고개를 돌렸다. 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잖아. 너 나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지? 도움도 안 되는 게 자존심만 세다고 생각하는 거 나도 안다고.”
“……!”
“거봐.”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 건데요.”
“그러면서 또 카메라 앞에서 자기 유리할 때만 나한테 친한 척하잖아.”
슬슬 큰세진도 머리끝까지 빡친 얼굴이었다.
“그럼 카메라 앞에서 싸울까요? 형, 일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매번 사람이…….”
배세진이 자신의 팔걸이를 내려쳤다.
“나는! 이 일에 진지해. 애들 장난처럼 구는 건 너야.”
“뭐?”
분위기는 이게 주먹다짐으로 안 번진 건 전적으로 차 안이라 그런 것 같은 수준까지 험악해졌다.
그 순간, 큰세진이 거의 일어나다시피 상체를 앞으로 뺐다.
“누구한테 지금…….”
“야, 그만.”
‘미쳤나.’
나는 얼른 놈의 가슴을 한 손으로 눌렀다. 갑작스럽게 번진 말싸움에 당황했다가 그제야 정신 차린 다른 사람들도 둘을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그래 얘들아 그만하자! 형 운전하다가 심장마비 걸리겠어!”
“지, 진정하, 하시고…….”
“일단 숙소 돌아가서 좀 차분히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
“우리 지금 달리는 차 안이야. 사고 날 수도 있어!”
“…….”
둘은 서로를 노려보다가, 말없이 조용히 자리에 도로 정상 착석했다.
물론 분위기는 여전히 살벌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차 안에서, 나는 침음성을 참았다.
‘돌아버리겠네.’
데뷔 때부터 눈에 들어오던 삐걱거림이 갑자기 대단한 것도 아닌 도화선에서 확 터졌다.
‘적당히 서로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왔나.’
이게 해결될 방안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다.
‘…일단, 숙소 도착하면 대화부터 중재하는 걸로 하고.’
귀찮지만 별수 없었다. 나는 눈을 감고 숙소에 도착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둘은 대화는커녕,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신속하게 각자의 방에 처박혔다.
정확히는 배세진이 방으로 직행하는 순간 이세진도 코웃음을 치며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회피라기보단… 그냥 둘 다 더럽게 열받은 모양이다.
‘X발.’
답이 없다.
“…….”
거실에 앉은 나머지 테스타 놈들은 말없이 TV 화면만 보고 있었다.
마침 보기 싫은 광고까지 나온다.
청려와 찍었던 광고다. 화사한 필터 속 야외 풀밭에서 노란 개들이 뛰어나와 내 머리에 매달리는 게 반복 컷으로 나오고 있다. 내 얼굴이 상당히 멍청해 보였다.
“어, 문대 형.”
“강아지 좋아요….”
개 좋다고 말하는 차유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이 들렸다. 아니, 차유진뿐만 아니라, 다들 좀 당황해서 멍한 것 같다.
‘이 팀이 그럭저럭 화목하게 잘 지내긴 했지.’
데뷔한 후로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싸움이 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당황할 만도 했다.
씁쓸한 현실의 분위기와 다르게, 화면에서는 활기찬 개떼와 청려가 보였다.
저기도 개판. 여기도 개판이었다.
“휴우.”
한숨이 절로 나오는군. 나는 뒷머리를 휘저으며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생각하자.
‘일단… 타이밍이 안 좋았지.’
배세진은 드라마를 거절하겠다고 어렵게 결심한 탓에 아직 심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을 것이다.
안 그래도 예민한 놈이었다. 평소에 큰세진의 은근한 말투를 눈치채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쌓아뒀나 본데, 이번에는 참을 수 없이 딱 거슬렸나 보다.
‘큰세진이야 안 그래도 커리어 성취에 집착하는 놈이고.’
나처럼 상태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성적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타입이다.
그래서 팀원 중 능력치도 떨어지고 사회성 부족한데 빳빳한 배세진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게 뻔히 보였다.
그러니까 아마 본인이 ‘참아주던’ 놈이 도리어 지랄한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둘이 안 맞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공통점이랄게 없는 놈들이다. 호감도 없고 서로의 행동이 납득도 안 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솔직히, 그냥 카메라 돌아갈 때만 알아서 잘하라고 내버려 두고 싶긴 한데…….
‘그래도 뭘 해보긴 해야겠지.’
…류청우 때 배려도 받았고 말이다.
나는 넌덜머리를 내며 소파에서 일어나서 주방으로 향했다.
“문대야.”
“형.”
류청우가 슬그머니 따라오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세진이, 그러니까 이세진한테 가볼 테니까… 네가 배세진이한테 가볼래? 둘이 대화는 해봐야지.”
“흠.”
내가 배세진과 현재 룸메이트란 사실을 고려한 분배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세진한테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다. 되돌아보니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이걸 멤버 중에 나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류청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갑이 나을 수도 있겠다.”
“네.”
“그럼… 고생하자.”
류청우는 내 어깨를 두드리고 주방을 나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냉장고를 열었다.
‘술은 역효과일 것 같고.’
냉수나 좀 챙겨가자.
나는 한 손에 생수 두 병을 들고 이세진의 방문 앞으로 갔다.
똑똑.
“나야.”
“…….”
잠시 후,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