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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52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2화
광고 촬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고민이 많은 것 같던데.”
VTIC 청려였다.
‘돌겠네.’
저건 또 여기서 왜 나와.
참고로 회사에서 언질도 못 받았다. 급하게 좋은 광고 잡혔다고 사람을 실어나르는 통에 콘티만 보고 왔거든.
일단 안면 있는 놈이 상대면 대충이라도 말해줘야겠다는 생각 안 드나?
‘퇴사하고 싶다.’
일할 맛 정말 안 났다.
하지만 티 내봤자 루머 생성기일 뿐이다. 그냥 고개나 끄덕이자.
“예. 조언해 주신 덕분에 잘 해결했습니다.”
“아, 그래요? 잘됐네.”
청려가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힘을 더 주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악수는 순식간에 끝났다.
“그럼 잠시 후에 봐요.”
“예. 선배님.”
안 보고 싶다.
나는 콘티를 떠올리고는, 오묘한 기분이 되어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을 준비했다.
의상은 최근 유행하는 형태의 트레이닝복이었다. 단, 기업 로고가 달려 있었다.
‘하필 이런 옷을 입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고.’
일단, 촬영 장소가 풀밭이고, 촬영 중 운동량이 많았다.
이런 식이다.
“자, 풉니다!”
감독의 말에 풀밭에 서 있던 나와 청려에게 한 무리의 네발 동물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생후 3개월 된 각종 리트리버와 시골 강아지 무리였다.
“컹!!”
콘티에 나온 그대로 이놈 저놈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자니, 내 코까지 뛰어올라서 박치기를 하는 놈까지 나왔다.
‘신났군.’
한 놈이 그러니까 연달아 서너 마리가 뛰어오른다. 야, 핥지 마.
양손으로 북실북실한 덩어리들을 집어 들었다.
…귀엽게는 생겼네.
“푸흥!”
이젠 내 얼굴에다 기침을 해댄다. 고쳐 안다가 넘어질 뻔했다.
나는 너덧 마리를 양손에 끼고 침 범벅이 된 상황에 정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컷! 아, 그거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망한 내 얼굴을 스탭이 뛰어와서 고쳐줬다. 피차 고생이었다.
“강아지를 더 든든히 확! 잡아 들어주는 느낌으로~ 방긋 웃어주시고!”
그래. ‘든든한 느낌’ 중요하지.
지금 찍고 있는 게 보험사 광고니까 말이다.
정확히는, 모 대기업 보험사에서 유기견 지원 및 안내견 육성을 진행하는 것을 홍보하는 기업 브랜드 이미지 광고였다.
‘보통 이런 건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사람을 쓰는데 말이지.’
그런데 원래 내 자리에 기용하려던 모 배우가 성추행 파문으로 잡혀가면서 대신 나를 쓴 모양이었다.
에서 막 생긴 장년층 인지도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겠지만…….
“착하지.”
…저놈과의 대외적인 친분이 아예 영향을 안 주진 않았을 것 같다는 게 좀… 뒷맛이 찝찝하군.
청려는 촬영이 중지됐는데도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개 떼를 제압하고 있었다.
발라당 발라당 배 까는 놈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다. 포토제닉이 따로 없다 이거군.
‘하나 찍어두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굳이 들고 오긴 그랬다. 보기 안 좋지.
그 순간, 청려가 입을 열었다.
“강아지 좋아해요?”
“…나쁘지 않죠.”
마침 스탭이 자리를 비웠다. 장면만 따고 목소리는 내레이션 삽입이라 부착형 마이크도 없고.
그 말은, 이 새끼가 헛소리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렇죠? 참 괜찮은 애들이에요. 착하고.”
“…….”
“다루는 법도 쉽죠. 칭찬할 건 칭찬하고, 야단칠 건 야단치고.”
청려는 강아지 이야기만 하면서, 그냥 개를 쓰다듬었다.
반사적으로 머리에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그 형 막 유기견 센터에 자기 정산받은 거 절반씩 기부하고 그런다?
설마 진짜였나.
아니, 상관없다.
“선배님께선 개 좋아하시나 봅니다.”
적당히 맞장구쳐 주며 촬영 재시작까지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통상적으로… 의아하다는 뜻이다.
“좋은 건가? 잘 모르겠네요. 어차피 안 키우는 게 편해서.”
이때까지만 해도 강아지가 손이 가서 귀찮다는 건 줄 알았다.
“예전엔 다시 시작할 때마다 개를 길렀는데, 좀 지나니까… 유기 상습범 루머가 퍼지더라고.”
“……!”
“나라도 의심했을걸요? 확인해 보니 말할 때마다 전에 길렀던 견종이 달라지던데. 음, 아닌 게 증명되니 조현병 이야기가 나왔던가…. 하하하, 완전히 망했었어요, 그때!”
청려가 소리 내서 웃었다. 등골이 섬뜩했다.
“…같은 강아지가 아니었습니까?”
“네? 하하, 개까지 매번 똑같은 걸 기르기는 좀.”
“…….”
청려가 웃음을 멈췄다.
“해봤는데, 별로예요. 꼬여서 못 데려오면 괜히 신경 쓰여서 불편하니까.”
말문이 막혔다.
이 새끼가… 왜 돌아버렸는지 이해가 가서 문제였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실 일 없으니, 새로 길러보셔도 될 것 같은데요.”
포기하란 뜻이다.
“자신감 넘치네. 혹시… 이번이 마지막 미션인가? 내가 알려준 대로 계산해 보니 그래요?”
“…….”
무반응이 상책이다.
그러나 이 새끼가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했다.
“축하해요. 근데 그걸 믿어요?”
“……!”
“하하, 농담이에요. 내 경험상으로는 맞을 거예요. 이런 일로 거짓말은 안 하거든.”
대상 트로피를 저 면상에 뭉개는 상상이 위로가 됐다.
“…흠, 그럼 정말…… 끝인가.”
놈은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빠지고, 강아지 배에서 손을 뗐다.
‘…잠깐.’
설마 ‘다 끝나기 전에 한 번만 다시 해봐’, ‘끝나면 기회 없다 타이밍은 지금뿐’ 같은 소리 하면서 개짓거리 하진 않겠지.
당장 밑밥부터 치자.
“VTIC 선배님들은 현상 유지만 하셔도 지금 겨룰 그룹이 없을 텐데요. 현 상태가 최고 아닙니까.”
“뭐… 괜찮죠.”
청려는 심드렁했다.
그리고 강아지 뒷덜미를 집어 들었다.
“완벽하게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지만… 음, 뭐… 그렇긴 합니다. 적응해 봐야죠.”
“……!”
완곡한 항복 선언이었다.
‘됐다 X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혹시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진 않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청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님, 너무 방심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발 개소리 그만 듣고 싶다.
나는 슬슬 나도 모르게 개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는 맹한 털복숭이가 위로가 되긴 했다.
그리고 다행히, 청려의 다음 말은 개소리가 아니었다.
차가운 이성의 소리였다.
“이 직업군에서 ‘인기’는 한정된 자원이거든. 즉, 다른 팀이 자원을 잘 벌면, 내 자원이 유출된다는 뜻이죠. 언제나 그랬어요. 특히 국내로 한정 지으면 더더욱 그렇고.”
“…….”
설마 VTIC과 테스타 비유냐?
하지만 생각도 못 한 이름이 대신 튀어나왔다.
“올해 데뷔한 트레블러 소속 그룹이 좀 잘 되던데. 좀 신경 써둬요.”
트레블러, 골드 1의 소속사다.
즉, 저놈이 말하는 건 괜찮은 신인인 골드 1의 그룹을 견제하라는 충고였다.
‘…굳이?’
그놈들이 아직 견제할 만한 체급도 아니고, 잘못하면 괜히 서사만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어차피 청려가 아는 기간 이후에 데뷔한 놈들 아닌가. 이놈들의 미래를 청려가 확인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굳이’ 저 새끼를 긁을 필요도 없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유념해 두겠습니다.”
“말만 그러지 말고, 음…… 보니까 곡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작곡가가 회사 소속이 아니던데요.”
청려가 웃었다.
“작곡가를 매수하면 좋은데.”
“……!”
“쉽고 편해요. 곡이 별로면 끝이지.”
“못 들은 걸로 해두겠습니다.”
“칼 같네. 알았어요. 하지만 잊지는 말고.”
‘이 새끼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강아지 한 뭉텅이로 애니멀 테라피라도 받는 중인지 술술 말을 꺼낸다.
“다음 신 준비 거의 끝납니다~ 3분 스탠바이!”
다행히 곧 촬영이 재개된다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이걸로 끝이군.’
이 새끼와 같이 찍는 것도 다음 컷이 마지막이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촬영이 재시작하기 직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주저하는 말투였다.
“…말했던 문제는, 잘 해결됐어요?”
“…….”
나는 느리게 입을 뗐다.
“그럭저럭.”
“그래요. 뭐… 마음 바뀌거나, 고민 생기면 연락해요.”
“…알겠습니다.”
뭐, 이전보단 덜 섬뜩했다.
“컹! 키잉!”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청려는 스케줄 문제로 먼저 촬영 마치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개털이 묻은 트레이닝복과 똑같이 생긴 트레이닝복을 몇 벌 선물로 받아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추가 안무 연습으로 다들 자리를 비웠는지, 일찍 끝낸 한 사람만 숙소에 있었다.
차유진이다.
“왔다.”
“선물이요??”
“그래. 가져.”
“와우!”
나는 트레이닝복을 하나 받아들고 희희낙락한 차유진을 보고 묘한 기시감에 시달렸다.
‘…나보다 저게 개에 더 가깝지 않나?’
내가 적극적으로 채택하긴 했다만, 오묘한 별명의 세계였다.
* * *
며칠 뒤, 타이틀 안무가 완전히 숙달되었다.
“후우, 안무 영상 완료!”
“아 좋아요~”
좀 이르게 안무 영상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약간 시간이 남았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마룻바닥에 누워서 휴식을 즐겼다.
“차유진 너 그거 또 입었어?”
“편해요!”
“아, 안무 영상에 그… 로, 로고 나와도 괜찮을까…?”
“아, 내가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셨어. 걱정 마.”
“크, 형님 속도 봐~”
차유진은 내가 광고 촬영 선물로 받아온 트레이닝복을 주야장천 입고 있었다.
‘다음엔 저놈이 광고 찍을 판이군.’
나는 피식 웃고 스마트폰을 켰다. 앨범 예약 판매도 시작됐고, 커버 디자인도 공개돼서 반응을 모니터링할 생각이었다.
“무, 문대야. 팩 할래?”
“그래. 고마워.”
에어컨이 돌아가긴 했지만, 단체로 과하게 움직여서 더웠다. 나는 선아현이 넘겨준 아이스팩을 목베개 삼은 채로 화면을 넘겼다.
‘괜찮네.’
수묵화 컨셉의 흑백과 전통화 컨셉의 컬러로 컨셉을 나눠서 제작한 앨범 커버는 둘 다 호평이었다.
-전통 컨셉 맞나봐 너무 좋아ㅠㅠ
-한복 존버 승리
-포카 기대돼서 미치겠음
처음에 회사에서 ‘솔로로 7곡이니 7인 7색에 더해서 단체까지 앨범 8종 어떨까요?’라는 미친 소리를 해서 뜯어말리느라 힘들었다.
‘안에 앨범 꾸미는 용도의 스티커들이나 랜덤 8종 중 몇 가지로 넣자는 말이 통해서 다행이었지.’
8종이 그대로 통과됐으면 본부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재를 갈겨줬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본부장이 곧 날아간다던가.’
새 앨범부터 예능 무대 제작까지 근래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다 보니 이런 카더라도 많이 듣는다.
본부장이 곧 나간다는 소문이었다.
‘결재봇 있을 때 빨리 진행 시켜 놓아야겠군.’
미래가 불투명하니 당길 수 있을 때 빨리 당겨 먹어야 한다.
나는 상태이상 해결을 위한 계획을 점검하며, 무심히 모니터링용 검색어들을 바꿨다.
“무, 물 마실래?”
“어… 고맙다.”
선아현이 또 뭘 줬다. 나는 약간 떨떠름하게 물을 받아들었다.
고마운데 좀… 빵셔틀 같은 게 생각나서 미안하다.
‘모니터링이나 좀 해줄까.’
나는 별생각 없이 SNS에 선아현의 이름을 검색하려 했다.
그러자 인기 검색어가 자동완성되었다.
[선아현 연애]
“……?”
“문대문대 뭐 하……?!”
끼어들던 큰세진이 화면을 보고 굳었다.
그리고 나도 좀 당황했다.
‘선아현이?’
예상도 못 한… 연애설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2화

광고 촬영장에 들어서자마자 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고민이 많은 것 같던데.”

VTIC 청려였다.

‘돌겠네.’

저건 또 여기서 왜 나와.

참고로 회사에서 언질도 못 받았다. 급하게 좋은 광고 잡혔다고 사람을 실어나르는 통에 콘티만 보고 왔거든.

일단 안면 있는 놈이 상대면 대충이라도 말해줘야겠다는 생각 안 드나?

‘퇴사하고 싶다.’

일할 맛 정말 안 났다.

하지만 티 내봤자 루머 생성기일 뿐이다. 그냥 고개나 끄덕이자.

“예. 조언해 주신 덕분에 잘 해결했습니다.”

“아, 그래요? 잘됐네.”

청려가 웃으며 한 손을 내밀었다.

“오늘 촬영 잘 부탁해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힘을 더 주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지만, 악수는 순식간에 끝났다.

“그럼 잠시 후에 봐요.”

“예. 선배님.”

안 보고 싶다.

나는 콘티를 떠올리고는, 오묘한 기분이 되어 의상을 갈아입고 촬영을 준비했다.

의상은 최근 유행하는 형태의 트레이닝복이었다. 단, 기업 로고가 달려 있었다.

‘하필 이런 옷을 입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고.’

일단, 촬영 장소가 풀밭이고, 촬영 중 운동량이 많았다.

이런 식이다.

“자, 풉니다!”

감독의 말에 풀밭에 서 있던 나와 청려에게 한 무리의 네발 동물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생후 3개월 된 각종 리트리버와 시골 강아지 무리였다.

“컹!!”

콘티에 나온 그대로 이놈 저놈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자니, 내 코까지 뛰어올라서 박치기를 하는 놈까지 나왔다.

‘신났군.’

한 놈이 그러니까 연달아 서너 마리가 뛰어오른다. 야, 핥지 마.

양손으로 북실북실한 덩어리들을 집어 들었다.

…귀엽게는 생겼네.

“푸흥!”

이젠 내 얼굴에다 기침을 해댄다. 고쳐 안다가 넘어질 뻔했다.

나는 너덧 마리를 양손에 끼고 침 범벅이 된 상황에 정색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컷! 아, 그거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망한 내 얼굴을 스탭이 뛰어와서 고쳐줬다. 피차 고생이었다.

“강아지를 더 든든히 확! 잡아 들어주는 느낌으로~ 방긋 웃어주시고!”

그래. ‘든든한 느낌’ 중요하지.

지금 찍고 있는 게 보험사 광고니까 말이다.

정확히는, 모 대기업 보험사에서 유기견 지원 및 안내견 육성을 진행하는 것을 홍보하는 기업 브랜드 이미지 광고였다.

‘보통 이런 건 대중적으로 인지도 있는 사람을 쓰는데 말이지.’

그런데 원래 내 자리에 기용하려던 모 배우가 성추행 파문으로 잡혀가면서 대신 나를 쓴 모양이었다.

에서 막 생긴 장년층 인지도가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겠지만…….

“착하지.”

…저놈과의 대외적인 친분이 아예 영향을 안 주진 않았을 것 같다는 게 좀… 뒷맛이 찝찝하군.

청려는 촬영이 중지됐는데도 귀신같은 손놀림으로 개 떼를 제압하고 있었다.

발라당 발라당 배 까는 놈들이 눈에 들어오긴 했다. 포토제닉이 따로 없다 이거군.

‘하나 찍어두고 싶긴 한데.’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굳이 들고 오긴 그랬다. 보기 안 좋지.

그 순간, 청려가 입을 열었다.

“강아지 좋아해요?”

“…나쁘지 않죠.”

마침 스탭이 자리를 비웠다. 장면만 따고 목소리는 내레이션 삽입이라 부착형 마이크도 없고.

그 말은, 이 새끼가 헛소리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렇죠? 참 괜찮은 애들이에요. 착하고.”

“…….”

“다루는 법도 쉽죠. 칭찬할 건 칭찬하고, 야단칠 건 야단치고.”

청려는 강아지 이야기만 하면서, 그냥 개를 쓰다듬었다.

반사적으로 머리에 정보가 스쳐 지나갔다.

-그 형 막 유기견 센터에 자기 정산받은 거 절반씩 기부하고 그런다?

설마 진짜였나.

아니, 상관없다.

“선배님께선 개 좋아하시나 봅니다.”

적당히 맞장구쳐 주며 촬영 재시작까지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하지만 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통상적으로… 의아하다는 뜻이다.

“좋은 건가? 잘 모르겠네요. 어차피 안 키우는 게 편해서.”

이때까지만 해도 강아지가 손이 가서 귀찮다는 건 줄 알았다.

“예전엔 다시 시작할 때마다 개를 길렀는데, 좀 지나니까… 유기 상습범 루머가 퍼지더라고.”

“……!”

“나라도 의심했을걸요? 확인해 보니 말할 때마다 전에 길렀던 견종이 달라지던데. 음, 아닌 게 증명되니 조현병 이야기가 나왔던가…. 하하하, 완전히 망했었어요, 그때!”

청려가 소리 내서 웃었다. 등골이 섬뜩했다.

“…같은 강아지가 아니었습니까?”

“네? 하하, 개까지 매번 똑같은 걸 기르기는 좀.”

“…….”

청려가 웃음을 멈췄다.

“해봤는데, 별로예요. 꼬여서 못 데려오면 괜히 신경 쓰여서 불편하니까.”

말문이 막혔다.

이 새끼가… 왜 돌아버렸는지 이해가 가서 문제였다.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실 일 없으니, 새로 길러보셔도 될 것 같은데요.”

포기하란 뜻이다.

“자신감 넘치네. 혹시… 이번이 마지막 미션인가? 내가 알려준 대로 계산해 보니 그래요?”

“…….”

무반응이 상책이다.

그러나 이 새끼가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했다.

“축하해요. 근데 그걸 믿어요?”

“……!”

“하하, 농담이에요. 내 경험상으로는 맞을 거예요. 이런 일로 거짓말은 안 하거든.”

대상 트로피를 저 면상에 뭉개는 상상이 위로가 됐다.

“…흠, 그럼 정말…… 끝인가.”

놈은 얼굴에서 순식간에 표정이 빠지고, 강아지 배에서 손을 뗐다.

‘…잠깐.’

설마 ‘다 끝나기 전에 한 번만 다시 해봐’, ‘끝나면 기회 없다 타이밍은 지금뿐’ 같은 소리 하면서 개짓거리 하진 않겠지.

당장 밑밥부터 치자.

“VTIC 선배님들은 현상 유지만 하셔도 지금 겨룰 그룹이 없을 텐데요. 현 상태가 최고 아닙니까.”

“뭐… 괜찮죠.”

청려는 심드렁했다.

그리고 강아지 뒷덜미를 집어 들었다.

“완벽하게 마음에 든다는 건 아니지만… 음, 뭐… 그렇긴 합니다. 적응해 봐야죠.”

“……!”

완곡한 항복 선언이었다.

‘됐다 X발.’

수명이 줄어드는 느낌이다. 혹시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진 않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청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후배님, 너무 방심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발 개소리 그만 듣고 싶다.

나는 슬슬 나도 모르게 개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는 맹한 털복숭이가 위로가 되긴 했다.

그리고 다행히, 청려의 다음 말은 개소리가 아니었다.

차가운 이성의 소리였다.

“이 직업군에서 ‘인기’는 한정된 자원이거든. 즉, 다른 팀이 자원을 잘 벌면, 내 자원이 유출된다는 뜻이죠. 언제나 그랬어요. 특히 국내로 한정 지으면 더더욱 그렇고.”

“…….”

설마 VTIC과 테스타 비유냐?

하지만 생각도 못 한 이름이 대신 튀어나왔다.

“올해 데뷔한 트레블러 소속 그룹이 좀 잘 되던데. 좀 신경 써둬요.”

트레블러, 골드 1의 소속사다.

즉, 저놈이 말하는 건 괜찮은 신인인 골드 1의 그룹을 견제하라는 충고였다.

‘…굳이?’

그놈들이 아직 견제할 만한 체급도 아니고, 잘못하면 괜히 서사만 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어차피 청려가 아는 기간 이후에 데뷔한 놈들 아닌가. 이놈들의 미래를 청려가 확인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굳이’ 저 새끼를 긁을 필요도 없기에,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유념해 두겠습니다.”

“말만 그러지 말고, 음…… 보니까 곡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작곡가가 회사 소속이 아니던데요.”

청려가 웃었다.

“작곡가를 매수하면 좋은데.”

“……!”

“쉽고 편해요. 곡이 별로면 끝이지.”

“못 들은 걸로 해두겠습니다.”

“칼 같네. 알았어요. 하지만 잊지는 말고.”

‘이 새끼 왜 이렇게 말이 많아졌어.’

강아지 한 뭉텅이로 애니멀 테라피라도 받는 중인지 술술 말을 꺼낸다.

“다음 신 준비 거의 끝납니다~ 3분 스탠바이!”

다행히 곧 촬영이 재개된다는 소리가 사방을 울렸다. 사람들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이걸로 끝이군.’

이 새끼와 같이 찍는 것도 다음 컷이 마지막이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촬영이 재시작하기 직전,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주저하는 말투였다.

“…말했던 문제는, 잘 해결됐어요?”

“…….”

나는 느리게 입을 뗐다.

“그럭저럭.”

“그래요. 뭐… 마음 바뀌거나, 고민 생기면 연락해요.”

“…알겠습니다.”

뭐, 이전보단 덜 섬뜩했다.

“컹! 키잉!”

촬영은 순조롭게 끝났다. 청려는 스케줄 문제로 먼저 촬영 마치고 떠났다.

그리고 나는 개털이 묻은 트레이닝복과 똑같이 생긴 트레이닝복을 몇 벌 선물로 받아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추가 안무 연습으로 다들 자리를 비웠는지, 일찍 끝낸 한 사람만 숙소에 있었다.

차유진이다.

“왔다.”

“선물이요??”

“그래. 가져.”

“와우!”

나는 트레이닝복을 하나 받아들고 희희낙락한 차유진을 보고 묘한 기시감에 시달렸다.

‘…나보다 저게 개에 더 가깝지 않나?’

내가 적극적으로 채택하긴 했다만, 오묘한 별명의 세계였다.

* * *

며칠 뒤, 타이틀 안무가 완전히 숙달되었다.

“후우, 안무 영상 완료!”

“아 좋아요~”

좀 이르게 안무 영상 촬영까지 마치고 나니 약간 시간이 남았다.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마룻바닥에 누워서 휴식을 즐겼다.

“차유진 너 그거 또 입었어?”

“편해요!”

“아, 안무 영상에 그… 로, 로고 나와도 괜찮을까…?”

“아, 내가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셨어. 걱정 마.”

“크, 형님 속도 봐~”

차유진은 내가 광고 촬영 선물로 받아온 트레이닝복을 주야장천 입고 있었다.

‘다음엔 저놈이 광고 찍을 판이군.’

나는 피식 웃고 스마트폰을 켰다. 앨범 예약 판매도 시작됐고, 커버 디자인도 공개돼서 반응을 모니터링할 생각이었다.

“무, 문대야. 팩 할래?”

“그래. 고마워.”

에어컨이 돌아가긴 했지만, 단체로 과하게 움직여서 더웠다. 나는 선아현이 넘겨준 아이스팩을 목베개 삼은 채로 화면을 넘겼다.

‘괜찮네.’

수묵화 컨셉의 흑백과 전통화 컨셉의 컬러로 컨셉을 나눠서 제작한 앨범 커버는 둘 다 호평이었다.

-전통 컨셉 맞나봐 너무 좋아ㅠㅠ

-한복 존버 승리

-포카 기대돼서 미치겠음

처음에 회사에서 ‘솔로로 7곡이니 7인 7색에 더해서 단체까지 앨범 8종 어떨까요?’라는 미친 소리를 해서 뜯어말리느라 힘들었다.

‘안에 앨범 꾸미는 용도의 스티커들이나 랜덤 8종 중 몇 가지로 넣자는 말이 통해서 다행이었지.’

8종이 그대로 통과됐으면 본부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재를 갈겨줬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본부장이 곧 날아간다던가.’

새 앨범부터 예능 무대 제작까지 근래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이 많다 보니 이런 카더라도 많이 듣는다.

본부장이 곧 나간다는 소문이었다.

‘결재봇 있을 때 빨리 진행 시켜 놓아야겠군.’

미래가 불투명하니 당길 수 있을 때 빨리 당겨 먹어야 한다.

나는 상태이상 해결을 위한 계획을 점검하며, 무심히 모니터링용 검색어들을 바꿨다.

“무, 물 마실래?”

“어… 고맙다.”

선아현이 또 뭘 줬다. 나는 약간 떨떠름하게 물을 받아들었다.

고마운데 좀… 빵셔틀 같은 게 생각나서 미안하다.

‘모니터링이나 좀 해줄까.’

나는 별생각 없이 SNS에 선아현의 이름을 검색하려 했다.

그러자 인기 검색어가 자동완성되었다.

“……?”

“문대문대 뭐 하……?!”

끼어들던 큰세진이 화면을 보고 굳었다.

그리고 나도 좀 당황했다.

‘선아현이?’

예상도 못 한… 연애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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