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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5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화
갑자기 여기서 말랑달콤이 왜 나와……?
당황한 방청객들은 그제야 이 무대가 VTIC을 커버한 게 아니라, VTIC의 소속사인 LeTi의 소속 아이돌들을 커버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앞에서 MC가 대놓고 VTIC의 이야기를 한 탓에 순간 헷갈렸던 것이다.
“뭐야….”
심지어 별로 유명한 곡도 아니었던 탓에, 여기저기서 짜증에 찬 반응이 간헐적으로 나왔다가 사라졌다.
차라리 같은 히트곡이면 모를까, 데뷔곡은 후렴만 좀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카메라 세팅을 바꾸던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충 투표인사 사진만 건질까?’
그녀가 시큐리티의 눈을 피해 카메라를 감추며 성의 없이 생각할 때쯤, 무대가 어두워지며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으-. 우우으으우-. 우우–.
변조된 신디사이저의 음울한 멜로디가 무대를 메웠다.
본래 현악기와 피아노로 2010년대 청초한 여성 아이돌풍 오케스트라 전주가 흘러나와야 할 자리였다.
“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하얀 무대의상에 거무튀튀한 어깨띠 같은 장식을 걸친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정장 비슷한 폼이야 워낙 전형적인 남자 아이돌의 착장이었기에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전자음으로 가득한 전주보다 서정적인 분위기라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 순간, 참가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깨달았어
불완전한 시간 속을 헤매는 나를
첫 소절을 시작한 참가자는 분명 잘생긴 얼굴에 움직임이 능숙했다.
그녀는 순간 이름도 기억해 냈다.
‘선아현이었던가?’
심지어 안무도 서정적이고 우아한 무용의 동작이 섞여 있었지만, 왠지… 좀 이상했다.
-멈출 수 없는 이 시간의 미로
그 속에 갇힌 나를 구해줘
다음 파트가 나오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왜 다 무표정이지?’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이 다 표정이 없던 것이다.
원래 자기 파트가 아닐 때는 표정연기가 덜한 건 흔했으나, 이렇게 표정이 없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누, 눈이 이상한데?’
시선을 카메라가 아니라 허공에 두고 있었다.
자기 파트가 돌아올 때만 갑자기 표정과 눈의 초점이 돌아오니 아마 의도적인 것 같았다.
실수로 카메라와 아이컨택을 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아이돌들은 자기 파트가 아닐 때도 귀신같이 카메라를 찾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그래서 더욱 이상한 광경이었다.
자기 파트에서 혼자 웃고 눈을 빛내는 참가자와 대조되어 더 오싹했다.
-점점 시들어가
이 안의 작은 공간
다시 꽃 필 날을 기다리니까
어서 나를 찾아와줘
치지직. 피치를 낮춰 음산한 노이즈가 섞인 MR에 간절한 목소리가 올라갔다.
가사는 분명 부드럽고 애절한데, 전주와 연출 탓에 함정처럼 들렸다.
폐교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면 돕고싶은 마음보다 공포심이 들지 않겠는가.
무대는 그런 섬뜩한 뉘앙스로 전개되고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네가 오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데
망설이지 말고 손 내밀어줘
이제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곡 제목과 동일한 가사를 부르는 고음이 짜릿하게 등골을 울렸다.
반 키를 높여 불협화음으로 만든 탓에, 맑고 또렷한 소리인데도 어딘지 이상하고 사악하게 들렸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였는데, 그 노래 실력보다도 무대 자체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후렴에서는 원곡과 동일한 현악기가 들어오며 신디사이저의 변조음과 부딪혀 섬뜩해졌다.
지이이이잉-. 끼이이이익-.
발레에서 차용한 움직임에 격한 동작 몇 가지를 더 넣은 탓에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악토버31, 10월 31일……, 핼러윈이었다. 사악한 존재들이 이승으로 나오는 밤.
-Come to me
Come to me
널 향한 사랑의 Melody (계속돼)
이건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사람을 홀리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허억!’
입을 틀어막은 그녀의 머리엔 폭발음이 가득했다.
물론 비인간적인 컨셉을 쓰는 아이돌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의 아이돌 데뷔 오디션 프로에서, 정반대 컨셉의 여성 선배 곡으로 이렇게 모험적인 시도를 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짱이 대단하다’ 등의 평가를 내릴 여유도 없이, 그녀는 순식간에 무대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윽고 변형되어 잘린 2절을 지나, 곡이 브릿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Can’t You feel me?
브릿지에서 갑자기 편곡이 원곡으로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음역도 돌아왔다. 여성이 부른 원곡의 높은 키 그대로 맑은 소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따듯한 네 손길이
날 일으키네 아름다워
봄의 정원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반주에 조명까지 색을 바꾸어 밝아지자, 언뜻 성스럽게까지 느껴졌다.
-Ooh, Ooh…….
하지만 조명이 밝아지며 다른 것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로 의상의 디테일이었다.
단순히 어두운색인 줄 알았던 어깨끈 같은 천은, 의상과 똑같은 흰 천에 검붉은 염료가 덕지덕지 붙어 얼룩덜룩한 상태였던 것이다.
심지어 어깨끈 위의 목에서부터 흐른 것 같은 흔적이었다.
‘흡혈귀였구나……!’
방청객의 뇌리에 그것이 각인되는 순간, 브릿지가 끝나고 다시 변조된 사운드의 후렴구가 이어졌다.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하지만 이번에는 오케스트라와의 불협화음이 잦아들고 노이즈가 많이 사라졌기에, 가사 그대로의 애절함이 드러났다.
자기 파트가 아닐 때의 인위적인 무표정도 사라지며, 섬뜩함보다 몽환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사운드의 구성도 날카로움 대신 드림 팝(Dream pop) 같은 공간감이 살아났다.
-Come to me
Come to me
널 향한 사랑의 Melody (계속돼)
변조음이 사라지고, 바이올린으로 소리가 끝난다.
발레동작으로 끝나는 원곡과 달리, 후렴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쓰러지는 것으로 곡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무대는 마지막에 공포보다 애절함을 남기며 끝났다. 마치 비인간적인 노래의 화자가 정말 사람과 사랑에라도 빠진 것처럼.
“……어어어!!”
순간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열심히 환호를 보냈다.
충격으로 시작해 애달픈 마무리까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두루 자극하는 무대였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팀의 참가자들은 제대로 해냈다.
‘미쳤다 진짜!’
소리를 지르는 방청객 중에서는 이 참가자들의 실력이 평균 이상에 외모와 스타일까지 좋았기에 가능했단 점을 캐치한 사람도 다수였다.
여기저기서 벌써 마음을 정했는지 흥분한 방청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난 참가자들은 자기들끼리 몇 번 등을 두드리더니, 방청객을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꾸벅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해요.”
다른 팀들도 다 했던 행동이나, 무대와의 갭이 심한 탓에 어쩐지 더 귀엽게 느껴졌다.
“귀엽네…….”
카메라를 지침해 온 그녀 역시 훈훈하게 중얼거렸다. 특히 고음 브릿지를 한 멤버가 눈에 들어왔다.
그 반전 브릿지는 분명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이 발음향을 뚫고 그 고음을 말도 안 되게 잘 소화한 데다가 얼굴도 트렌디하게 귀엽고, 심지어 저 과한 컨셉을 하면서 마가 뜨지도 않았다.
‘투표 인사 나오면 무조건 이름 기억해 둔다.’
그녀는 무대 뒤로 퇴장하는 박문대에게 계속 시선을 주며 다짐하다가, 문득 자기 손에 들린 카메라를 깨달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무대에 집중하느라, 카메라를 완전히 잊었어…!’
사진을 못 찍어서 아까워 죽겠는데, 동시에 카메라 신경 안 쓰고 저걸 생눈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다니!
이런 적은, 구 아이돌 이후 처음이었다.
전율이 흘렀다.
바야흐로, 과몰입의 신호였다.
* * *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팀원들이 다리가 풀렸는지 벽을 잡거나 털썩 주저앉았다.
나도 벽에 기대어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이상했다.
솔직히, 이게 재밌을 거라고 예상해본 적, 없다.
그냥 데뷔 안 하면 돌연사를 당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지.
내 인생에 누구 앞에서 춤추며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그것도 분장까지 한 채로.
…분명 팝콘 출 때나 노래 부를 때까지만 해도, 그냥 해야 하니까 했다는 느낌밖에 없었단 말이다.
‘현타나 올 줄 알았는데… 왜 재밌냐고.’
심지어 숨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상태인데 말이다.
‘연습 때보다 더 힘들다.’
아무래도 실전이라서 힘이 더 들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같이 위에 올라갔던 놈들은 웬만하면 다 비슷하게 숨이 찼을 것이다.
지금도 헉헉거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표정들은 훤했다.?
함성이 귀를 찢을 듯이 컸기 때문이다.
“와아아!!”
“앵콜! 앵콜!”
심지어 지금 뒤에서 몇몇이 앵콜을 외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람이 많지도 않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결과가 좋았다.
1, 2위가 속한 팀에서도 못 받은 환호였다.
설마 이래서 재밌는 건가. 눈앞에서 쏟아지는 반응 때문에?
“다들 정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 잘해냈어요! 진짜!”
카메라가 다가오자 큰세진이 냉큼 입을 열었다.
카메라 의식을 안 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원래 뭐든 결과가 좋으면 미화된다고, 팀원들도 다들 얼싸안은 채로 서로에게 감사하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 고마웠습니다….”
나도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나.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대야…….”
“세상에, 문대도 이런 말 하는구나.”
뭐라는 거냐.
이놈들 얼마나 감격했는지 아무 말에나 감동하고 있다.?
심지어 그 뚱한 이세진 마저도 울컥한 표정으로 분위기에 취했다.
“…수고했어.”
“헐. 형님.”?
“감동입니다.”
팀원들이 드물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도 훈훈한 눈으로 이세진을 마주 보았다.?
분위기가 아주 소년만화 결말부 같았다.
나는 지난 연습과정을 떠올려보았다.
-형! 우리 역시 공포를 강하게! 세게 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청순에 밀리지 않게!
-그치? 형이 생각해 봤는데 살인마는 어떨까!
-오~ 세다!
-…실존 인물하고 겹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판타지 생물 쪽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유, 유령은…….
-…유령?
-으응, 이, 이렇게, 움직이면… 신기해 보이니까, 그…….
-하하하! 좋은 의견 많네요~ 민주적으로 다수결 붙여봅시다!
…….
…이 말 많은 놈들이 떠드는 얼토당토않은 과한 주장들을 완곡하게 쳐내느라 고생한 과정만 떠올랐다.
이때만큼은 큰세진이 고마웠다. 여론몰이 끝내주게 하더라.
결국, 편곡은 나와 큰세진의 의사대로 대부분 진행되었다. 내가 민 흡혈귀를 저놈도 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귀신이나 살인마보다는 검증된 인기 요소가 나았으니까.
귀신까지는 그렇다 쳐도, 살인마? SNS에서 만 단위 공유 타면서 욕 처먹을 생각인가.
어쨌든 공포와 청순을 적절히 배치해서 좋은 결과를 냈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솔직히…….
재밌었으니까.
왜 이렇게 이 직업을 하려는 사람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키자 팀원들이 얼싸안은 공간에 나를 끼워 넣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까지 빼면 분위기가 안 살겠지.
카메라에 팀워크를 과시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 굳이 빠져나오진 않았다.
“우리 꼭 다음 팀전 가자.”
“아, 다음에도 같이합시다!”
“조, 조, 좋아요.”
“솔직히 팀워크는 우리가 최고였지.”
덕담이 계속됐고, 더 이상 레파토리가 없을 때 즈음에야 스탭의 안내에 따라 상대팀의 무대를 확인하기 위해 공간을 이동했다.
모니터가 단독 설치된 방에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오…….”
이 녀석들이 예의상 감탄은 하지만, 아마 깨달았을 것이다.
관객 환호성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5화

갑자기 여기서 말랑달콤이 왜 나와……?

당황한 방청객들은 그제야 이 무대가 VTIC을 커버한 게 아니라, VTIC의 소속사인 LeTi의 소속 아이돌들을 커버하는 것이란 걸 깨달았다.

앞에서 MC가 대놓고 VTIC의 이야기를 한 탓에 순간 헷갈렸던 것이다.

“뭐야….”

심지어 별로 유명한 곡도 아니었던 탓에, 여기저기서 짜증에 찬 반응이 간헐적으로 나왔다가 사라졌다.

차라리 같은 히트곡이면 모를까, 데뷔곡은 후렴만 좀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카메라 세팅을 바꾸던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충 투표인사 사진만 건질까?’

그녀가 시큐리티의 눈을 피해 카메라를 감추며 성의 없이 생각할 때쯤, 무대가 어두워지며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으-. 우우으으우-. 우우–.

변조된 신디사이저의 음울한 멜로디가 무대를 메웠다.

본래 현악기와 피아노로 2010년대 청초한 여성 아이돌풍 오케스트라 전주가 흘러나와야 할 자리였다.

“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그녀의 눈에, 하얀 무대의상에 거무튀튀한 어깨띠 같은 장식을 걸친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정장 비슷한 폼이야 워낙 전형적인 남자 아이돌의 착장이었기에 새로울 것도 없었지만, 전자음으로 가득한 전주보다 서정적인 분위기라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그 순간, 참가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턴가 깨달았어

불완전한 시간 속을 헤매는 나를

첫 소절을 시작한 참가자는 분명 잘생긴 얼굴에 움직임이 능숙했다.

그녀는 순간 이름도 기억해 냈다.

‘선아현이었던가?’

심지어 안무도 서정적이고 우아한 무용의 동작이 섞여 있었지만, 왠지… 좀 이상했다.

-멈출 수 없는 이 시간의 미로

그 속에 갇힌 나를 구해줘

다음 파트가 나오는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왜 다 무표정이지?’

노래를 부르는 당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이 다 표정이 없던 것이다.

원래 자기 파트가 아닐 때는 표정연기가 덜한 건 흔했으나, 이렇게 표정이 없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누, 눈이 이상한데?’

시선을 카메라가 아니라 허공에 두고 있었다.

자기 파트가 돌아올 때만 갑자기 표정과 눈의 초점이 돌아오니 아마 의도적인 것 같았다.

실수로 카메라와 아이컨택을 하지 못한다면 모를까, 아이돌들은 자기 파트가 아닐 때도 귀신같이 카메라를 찾는 것을 본분으로 알았다.

…그래서 더욱 이상한 광경이었다.

자기 파트에서 혼자 웃고 눈을 빛내는 참가자와 대조되어 더 오싹했다.

-점점 시들어가

이 안의 작은 공간

다시 꽃 필 날을 기다리니까

어서 나를 찾아와줘

치지직. 피치를 낮춰 음산한 노이즈가 섞인 MR에 간절한 목소리가 올라갔다.

가사는 분명 부드럽고 애절한데, 전주와 연출 탓에 함정처럼 들렸다.

폐교에서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면 돕고싶은 마음보다 공포심이 들지 않겠는가.

무대는 그런 섬뜩한 뉘앙스로 전개되고 있었다.

-한 걸음 두 걸음

네가 오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데

망설이지 말고 손 내밀어줘

이제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곡 제목과 동일한 가사를 부르는 고음이 짜릿하게 등골을 울렸다.

반 키를 높여 불협화음으로 만든 탓에, 맑고 또렷한 소리인데도 어딘지 이상하고 사악하게 들렸다.

이제까지 중에 가장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였는데, 그 노래 실력보다도 무대 자체에 더 몰입하게 되었다.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후렴에서는 원곡과 동일한 현악기가 들어오며 신디사이저의 변조음과 부딪혀 섬뜩해졌다.

지이이이잉-. 끼이이이익-.

발레에서 차용한 움직임에 격한 동작 몇 가지를 더 넣은 탓에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

악토버31, 10월 31일……, 핼러윈이었다. 사악한 존재들이 이승으로 나오는 밤.

-Come to me

Come to me

널 향한 사랑의 Melody (계속돼)

이건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사람을 홀리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허억!’

입을 틀어막은 그녀의 머리엔 폭발음이 가득했다.

물론 비인간적인 컨셉을 쓰는 아이돌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의 아이돌 데뷔 오디션 프로에서, 정반대 컨셉의 여성 선배 곡으로 이렇게 모험적인 시도를 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짱이 대단하다’ 등의 평가를 내릴 여유도 없이, 그녀는 순식간에 무대에 몰입하게 되었다.

이윽고 변형되어 잘린 2절을 지나, 곡이 브릿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상치 못한 것이 튀어나왔다.

-Can’t You feel me?

브릿지에서 갑자기 편곡이 원곡으로 돌아온 것이다!?

심지어 음역도 돌아왔다. 여성이 부른 원곡의 높은 키 그대로 맑은 소년의 목소리가 울렸다.

-따듯한 네 손길이

날 일으키네 아름다워

봄의 정원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반주에 조명까지 색을 바꾸어 밝아지자, 언뜻 성스럽게까지 느껴졌다.

-Ooh, Ooh…….

하지만 조명이 밝아지며 다른 것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바로 의상의 디테일이었다.

단순히 어두운색인 줄 알았던 어깨끈 같은 천은, 의상과 똑같은 흰 천에 검붉은 염료가 덕지덕지 붙어 얼룩덜룩한 상태였던 것이다.

심지어 어깨끈 위의 목에서부터 흐른 것 같은 흔적이었다.

‘흡혈귀였구나……!’

방청객의 뇌리에 그것이 각인되는 순간, 브릿지가 끝나고 다시 변조된 사운드의 후렴구가 이어졌다.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하지만 이번에는 오케스트라와의 불협화음이 잦아들고 노이즈가 많이 사라졌기에, 가사 그대로의 애절함이 드러났다.

자기 파트가 아닐 때의 인위적인 무표정도 사라지며, 섬뜩함보다 몽환적인 느낌이 강해졌다.

사운드의 구성도 날카로움 대신 드림 팝(Dream pop) 같은 공간감이 살아났다.

-Come to me

Come to me

널 향한 사랑의 Melody (계속돼)

변조음이 사라지고, 바이올린으로 소리가 끝난다.

발레동작으로 끝나는 원곡과 달리, 후렴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쓰러지는 것으로 곡이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무대는 마지막에 공포보다 애절함을 남기며 끝났다. 마치 비인간적인 노래의 화자가 정말 사람과 사랑에라도 빠진 것처럼.

“……어어어!!”

순간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열심히 환호를 보냈다.

충격으로 시작해 애달픈 마무리까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두루 자극하는 무대였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팀의 참가자들은 제대로 해냈다.

‘미쳤다 진짜!’

소리를 지르는 방청객 중에서는 이 참가자들의 실력이 평균 이상에 외모와 스타일까지 좋았기에 가능했단 점을 캐치한 사람도 다수였다.

여기저기서 벌써 마음을 정했는지 흥분한 방청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난 참가자들은 자기들끼리 몇 번 등을 두드리더니, 방청객을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꾸벅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가, 감사해요.”

다른 팀들도 다 했던 행동이나, 무대와의 갭이 심한 탓에 어쩐지 더 귀엽게 느껴졌다.

“귀엽네…….”

카메라를 지침해 온 그녀 역시 훈훈하게 중얼거렸다. 특히 고음 브릿지를 한 멤버가 눈에 들어왔다.

그 반전 브릿지는 분명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날 것 같았다.

이 발음향을 뚫고 그 고음을 말도 안 되게 잘 소화한 데다가 얼굴도 트렌디하게 귀엽고, 심지어 저 과한 컨셉을 하면서 마가 뜨지도 않았다.

‘투표 인사 나오면 무조건 이름 기억해 둔다.’

그녀는 무대 뒤로 퇴장하는 박문대에게 계속 시선을 주며 다짐하다가, 문득 자기 손에 들린 카메라를 깨달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무대에 집중하느라, 카메라를 완전히 잊었어…!’

사진을 못 찍어서 아까워 죽겠는데, 동시에 카메라 신경 안 쓰고 저걸 생눈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다니!

이런 적은, 구 아이돌 이후 처음이었다.

전율이 흘렀다.

바야흐로, 과몰입의 신호였다.

* * *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자, 팀원들이 다리가 풀렸는지 벽을 잡거나 털썩 주저앉았다.

나도 벽에 기대어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이상했다.

솔직히, 이게 재밌을 거라고 예상해본 적, 없다.

그냥 데뷔 안 하면 돌연사를 당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거지.

내 인생에 누구 앞에서 춤추며 노래를 해본 적이 없다. 그것도 분장까지 한 채로.

…분명 팝콘 출 때나 노래 부를 때까지만 해도, 그냥 해야 하니까 했다는 느낌밖에 없었단 말이다.

‘현타나 올 줄 알았는데… 왜 재밌냐고.’

심지어 숨이 목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상태인데 말이다.

‘연습 때보다 더 힘들다.’

아무래도 실전이라서 힘이 더 들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같이 위에 올라갔던 놈들은 웬만하면 다 비슷하게 숨이 찼을 것이다.

지금도 헉헉거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표정들은 훤했다.?

함성이 귀를 찢을 듯이 컸기 때문이다.

“와아아!!”

“앵콜! 앵콜!”

심지어 지금 뒤에서 몇몇이 앵콜을 외치는 소리까지 들렸다.?

‘사람이 많지도 않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결과가 좋았다.

1, 2위가 속한 팀에서도 못 받은 환호였다.

설마 이래서 재밌는 건가. 눈앞에서 쏟아지는 반응 때문에?

“다들 정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우리 잘해냈어요! 진짜!”

카메라가 다가오자 큰세진이 냉큼 입을 열었다.

카메라 의식을 안 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원래 뭐든 결과가 좋으면 미화된다고, 팀원들도 다들 얼싸안은 채로 서로에게 감사하기 시작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 고마웠습니다….”

나도 한마디 정도는 해야 하나.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문대야…….”

“세상에, 문대도 이런 말 하는구나.”

뭐라는 거냐.

이놈들 얼마나 감격했는지 아무 말에나 감동하고 있다.?

심지어 그 뚱한 이세진 마저도 울컥한 표정으로 분위기에 취했다.

“…수고했어.”

“헐. 형님.”?

“감동입니다.”

팀원들이 드물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도 훈훈한 눈으로 이세진을 마주 보았다.?

분위기가 아주 소년만화 결말부 같았다.

나는 지난 연습과정을 떠올려보았다.

-형! 우리 역시 공포를 강하게! 세게 가야 하는 거 아닐까요? 청순에 밀리지 않게!

-그치? 형이 생각해 봤는데 살인마는 어떨까!

-오~ 세다!

-…실존 인물하고 겹칠 수도 있으니까, 좀 더 판타지 생물 쪽으로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유, 유령은…….

-…유령?

-으응, 이, 이렇게, 움직이면… 신기해 보이니까, 그…….

-하하하! 좋은 의견 많네요~ 민주적으로 다수결 붙여봅시다!

…….

…이 말 많은 놈들이 떠드는 얼토당토않은 과한 주장들을 완곡하게 쳐내느라 고생한 과정만 떠올랐다.

이때만큼은 큰세진이 고마웠다. 여론몰이 끝내주게 하더라.

결국, 편곡은 나와 큰세진의 의사대로 대부분 진행되었다. 내가 민 흡혈귀를 저놈도 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귀신이나 살인마보다는 검증된 인기 요소가 나았으니까.

귀신까지는 그렇다 쳐도, 살인마? SNS에서 만 단위 공유 타면서 욕 처먹을 생각인가.

어쨌든 공포와 청순을 적절히 배치해서 좋은 결과를 냈으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솔직히…….

재밌었으니까.

왜 이렇게 이 직업을 하려는 사람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키자 팀원들이 얼싸안은 공간에 나를 끼워 넣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여기서까지 빼면 분위기가 안 살겠지.

카메라에 팀워크를 과시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니 굳이 빠져나오진 않았다.

“우리 꼭 다음 팀전 가자.”

“아, 다음에도 같이합시다!”

“조, 조, 좋아요.”

“솔직히 팀워크는 우리가 최고였지.”

덕담이 계속됐고, 더 이상 레파토리가 없을 때 즈음에야 스탭의 안내에 따라 상대팀의 무대를 확인하기 위해 공간을 이동했다.

모니터가 단독 설치된 방에 도착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팀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오…….”

이 녀석들이 예의상 감탄은 하지만, 아마 깨달았을 것이다.

관객 환호성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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