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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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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8화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5월의 신랑’이라는 이름의 가수 캐릭터 홀로그램 앞에 마이크가 나타났다.
스탠딩 마이크였다.
현실에 존재할 일 없는 대리석 스탠드 마이크에는 화려한 꽃 덩굴과 흰 레이스가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5월의 신랑’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잡았다.
[과연 ‘5월의 신랑’은 어떤 목소리를 들려줄 것인가!]
화려한 꽃 부케의 오브젝트 헤드가 주는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고등학생은 발바닥을 턱턱 쳤다.
“컨셉충 뭐냐.”
여자애들한테 멋있어 보이려는 것 같아서 슬쩍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웨딩의 화려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뚫고 나오는 약간 으스스하고 기이한 느낌이 재밌었다.
‘가오 잡는 놈들이 원래 노래는 X니 못하는데.’
고등학생은 그 호감을 애써 부정하며 화면을 봤다.
반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롱한 두 대의 피아노 소리와, 밝고 경쾌한 브라스 소리가 드럼 박 위로 피어올랐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당신에게 건넬 나의 고백
“어?”
아주 유명한 청혼가였다.
본래 총 10명이 나오는 1차 예선전에서는, 이렇게 캐릭터 컨셉에 충실한 곡을 부르는 것이 룰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예측 가능한 선곡이었으나, 단 하나 시청자가 예측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했다.
-꽃 핀 5월에
흐드러지는 우리의 청춘
더없이 선량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드릴 나의 사랑
단정하고 청초한 목소리가 낮고 풍성한 음을 냈다.
미친 듯이 전율이 이는 고음이나 테크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곡에 더없이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이 곡은 원래 이렇게 불러야 하는 것처럼 들리는.
-사랑이 들리면
나를 생각해줘요
오늘도 내일도
그대를 사랑해요
삐걱거리거나 아쉬운 부분 없이, 이대로 계속 듣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였다.
그리고 예선전에서는 1분 30초의 시간만 허락되었기에, 딱 감질날 시점에 곡이 끊겼다.
[달콤한 청혼의 노랫소리]
박수와 자막 너머로, 곡을 마친 ‘5월의 신랑’은 다시 한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오올.”
좀 하네?
고등학생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마 배우나 모델은 아니고 가수인 것 같았다.
‘발라드 가순가?’
폭발적인 가창력은 아니었지만, 무난히 1차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울림이 풍성한 게, 내공이 느껴진달까?]
[너무 아름다운 목소리였어요~]
[확실히 가수신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음악인들이 뭐라도 말을 하든 ‘5월의 신랑’에게선 특별히 반응이 없었다.
그냥 단정한 자세로 서서, 질문에 고개를 기웃거렸을 뿐이다.
즉, 부케가 흔들거렸다는 뜻이다.
“아 컨셉충 아 씨.”
예능 출연하는 옛날 가수 아니냐며, 고등학생은 진절머리를 냈다.
동작이나 분위기가 그럴싸해서 자꾸 몰입되는 게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잘 들었습니다~]
이윽고, 심사평을 다 들은 ‘5월의 신랑’은 무대 위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1차 무대들은 한두 개 빼고는 고만고만했다.
중간광고 이후 발표한 본선 진출자의 명단이 뻔했다는 뜻이다.
[본선에 진출할 세 번째 가수는… ‘5월의 신랑’입니다!]
‘그럴 줄 알았지.’
고등학생은 6명의 진출자를 한 명 빼고 다 맞춘 자신의 안목에 스스로 감탄했다.
‘나 진짜 쩐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의 머리에 ‘5월의 신랑’의 다음 무대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1차에서 보여준 게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색빨로 미는 놈에 천원 건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천원은 무참히 사라진다.
[아아아아악!!!]
“…?!”
고등학생은 입을 떡 벌렸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6명이 진출한 본선에서는 지정곡을 불러야 했다. 그래서 출연진들은 제작진이 제시한 세 곡 중 하나를 본선용으로 미리 연습해 왔다.
원래는 어떤 캐릭터가 어떤 곡을 선곡했는지 보는 맛, 그리고 같은 곡을 선곡한 출연진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무려 4명이 같은 곡을 고른 것이다.
바로 ‘겨울밤’이라는 90년대 발라드 명곡이었다.
그리고 ‘5월의 신랑’도 이 확률을 피해 가지 못하고, 해당 곡을 선곡했다.
4명이나 되는 탓에 편곡도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5월의 신랑’은 약간의 편법을 썼다.
-이 새벽에 취하여
노래를 불러도
겨울밤은 여전하네
눈바람이 세차네
그는 이별의 슬픔이 애절했던 발라드곡을 비장미가 넘치는 뮤지컬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오케스트라로 편곡해버렸다.
무슨 뜻인가 하면, 클라이맥스의 고음이 무지막지했다는 뜻이다.
-눈물 흘린 밤이 가면
눈 시린 아침이 오면
창가의 햇살로 다시
찾아올 나를
원래는 저음으로 마무리되는 음도 쭉 끌어올려서 초고음으로 당겨 버렸다.
다정하고 조곤조곤한 첫 곡과 대비되는, 넘치도록 휘몰아치는 고음과 심지 단단한 발성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라이브 무대에서 이런 성대 묘기 대행진은 유구하게 잘 먹혔다.
[와아아아아!!]
끝난 뒤 박수와 환호가 첫 무대와 비견될 바가 아니었다.
본래는 여운을 망칠 만큼 과한 고음도, 웅장한 편곡 덕에 전율만 주고 끝났다.
콜로세움에서 1:3 맨몸 결투로 승리한 꼴이었다.
“개쩐다.”
고등학생은 육성으로 감탄했다.
예능이나 나오는 퇴물가수라고 추측했던 것은 어느새 ‘시대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진짜배기 가수’로 탈바꿈되었다.
‘보정 감안해도 탑티어에 비비는 거 아니냐?’
저 정도면 컨셉충이어도 인정이다. 고등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병 걸린 인디 가수나 저런 걸로 라도 멋있어 보이려는 아재로 추측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문득 뭐가 보였다.
자신의 생물학적 연장자 여성이었다.
“……너 뭐 하냐?”
고등학생의 누나, 김래빈의 팬은 입을 떡 벌린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5월의 신랑’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오며 가며 들은 모양이다. 아니면 듣다가 너무 대단해서 뛰쳐나왔거나.
고등학생은 괜히 으쓱해져서 말했다.
“크, 봤냐? 이런 게 진짜 가수지!”
누나도 결국 그 춤추는 비리비리한 남자 아이돌들이 아니라 이 진가를 알아본다고, 고등학생은 오랜만에 나타난 공감 거리에 뿌듯해했다.
김래빈의 팬이 외쳤다.
“저거 문대잖아…!”
“……?!”
고등학생은 잠깐 귀를 의심했다.
박문대라면… 누나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중 하나였다!
“개소리 마세요, 저런 목소리 아니었다~ 저렇게 부른다고?”
“그냥 들어도 문대라고 멍청아!”
“아 X나 쪽팔리게 왜 그러냐고!”
남매는 서로 삿대질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인터넷상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잘 들어가세요, 문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번 주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선아현은 화장품 단독 광고 촬영 때문에 이미 문자로 인사 후 촬영장으로 떠났다.
[문대야 어제 스케줄 때문에 네가 출연한 모니터링 못 해서 아쉬웠는데, 나는 오늘도 스케줄이 촘촘해서 나중에야 보게 될 것 같아 더 아쉬워. 내가 어떻게든 시간 내서 꼭 보고…… (더 보기)]
‘…이번에도 장문이군.’
거의 편지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쉴 때 쉬어라’는 내용을 넣어 적당히 답장했다.
‘그러고 보니, 확인하기 좋은 타이밍인가.’
내 무대… 그러니까, 내가 만든 ‘5월의 신랑’의 무대 말이다.
어젯밤에 본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클립도 업로드되었을 테니, 슬슬 충분히 반응이 쌓였을 것이다.
‘지금 봐두자.’
나는 위튜브에 접속했다.
[신부를 찾습니다. | ‘5월의 신랑’ – | 예선 무대 | 202X0611]
다행히 두 무대 모두 조회수가 꽤 괜찮았다.
‘첫 무대는 좀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특별히 고조가 없는 곡을 불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조형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나 보다.
-X발 부케 헤드 미쳤나 개좋아ㅠㅠ
-솔직히 꽃대가리 좀 무서운데 노래 부르는 순간 다 날아가고 미남으로 합성됨
-청혼 감사합니다 식장은 어디인지?
-캐릭터 몰입한 것 좀 봐 꽃이 귀엽고 잘생길 일이냐고ㅋㅋㅠㅠㅠ
-하얀 정장에 면사포? 꽃 달린 스탠드 마이크? 미남이 아니면 용납할 수 없는 조합임 고로 미남일 것이다
“오…….”
설정한 캐릭터랑 어울리는 곡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도 몰입한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재밌다면 됐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음 영상을 확인했다. 본선에서 부른 ‘겨울밤’ 영상에 달린 댓글은 이런 기조였다.
-진짜 X나 잘한다 속이 뻥 뚫림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다 음원 내줘ㅠㅠ
-다음 주 우승각 봅니다~
-누군지 참~ 궁금하네요^^ 움직임만 봐도 가슴이 콩딱거리게 잘생긴 것이… 참 기대가 됩니다…
-머리는 괴상한데 노래는 천하일품입니다.
-신부가 요절해도 참으로 저승까지 가서 찾아올 명가수 신랑이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의 취향에 잘 맞았나 보다.
‘좀 예스럽게 편곡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전체적으로 호평과 기대로 댓글이 넘실거렸다.
나는 등을 폈다.
‘전략이 괜찮았나.’
첫 번째, 두 번째 무대가 같은 화에 방영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어차피 한 화 안에 다 나오면 둘 다 첫인상이 된다. 그럼 빌드업 구성이 맞지.’
첫 무대가 약해도 한꺼번에 뒷무대까지 보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첫 무대는 약간 약해도 캐릭터를 살리는 쪽으로 하고, 강한 편곡을 뒤로 뺐다.
‘잘 통한 것 같아 다행이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무대 반응을 최신순으로 정렬하면, 약간의 갈등이 드러났다.
추려내 보면, 이런 식이다.
-박문대 맞는 것 같은데…
-박씨도 노래를 잘하긴 하지만 아닌 것 같아요 음색도 다르고~
-바보들아 아이돌들 이런데 나오면 일부러 정체 감추려고 웃긴 캐릭터 만듬 대놓고 멋진 캐릭터 만든 거 보니까 아이돌 아님 ㅇㅋ?
└그 발상을 역으로 찔러서 아이돌일지도?
└노래 잘하는 아이돌 많긴 한데… 흠 아주사에서 본 박문대가 이 정도 수준 아니었음
└미국 프로그램에서 부른 거 한 번 보세요 진짜 잘해요 전 박문대 맞는 듯 (링크)
└오 잘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다름 신랑이는 아닌 듯
이런 식으로, 박문대라고 의심하는 의견을 낸 사람들이 소수파로 밀리는 판이었다.
그나마 ‘박문대’가 노래를 잘하는 것은 제법 알려진 덕에 특별히 비웃는 분위기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흠.”
노린 상황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5월의 신랑’이 박문대라는 추측이 힘을 얻지 못할 줄은 몰랐다.
물론 추리하는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목소리를 좀 다르게 내려고 노력하긴 했다.
평소 그룹에서 부를 때하고는 발성도 좀 다르게 해봤고.
‘…그래도 긴가민가 헷갈리는 수준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박문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많이 들어본 사람들은 눈치챌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여론이 예상보다도 완고했다.
‘적당히 이족보행 고양이나 할 걸 그랬나.’
나는 마지막까지 후보에 있던 괴도 고양이를 떠올리며 살짝 후회했으나, 곧 정리했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어.’
사실 이건, 상담하면서 받은 조언을 좀 의식해 봤다.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 말고, 문대 선생님이 좋아하는 쪽을 고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게 이번에 드리는 숙제예요.
뭐 전문가가 그렇다니, 한번 스케일 크게 해본 것이다.
‘이번 상태이상과 크게 관련 있는 문제도 아니니 괜찮겠지.’
아무래도 고양이 발보단 인간 팔다리가 내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게 보기 편했다.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 같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도착한 숙소 앞에 내려서 발을 옮겼다.
‘다음 주에 캐릭터 프로필이 공개되지.’
나는 미리 제작한 프로필을 훑으며, 혹시라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도착한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는 척을 했다.
류청우였다.
“왔어?”
“네. 형.”
“거기 아이스크림 사놨다. 먹어.”
류청우는 가볍게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앉아 있던 소파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알았다.
‘지금 자리 피해주는 거냐.’
본인이 거실에 있으면 불편할까 봐 일어난다. 내가 거실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허이고.’
어쩐지 어깨에 힘이 빠졌다. 남아 있던 거북함은 솟은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수그러들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며, 류청우를 불렀다.
“형도 아이스크림 드시죠. 무슨 맛 드릴까요.”
“…아, 그럴까?”
“네.”
소파에 다시 걸터앉은 류청우가 씩 웃었다.
“그럼 난 오렌지 맛으로 줘.”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 신나게 달려왔다.
“저도 아이스크림 주세요!”
‘어디서 튀어나왔냐.’
본능적으로 문법이 자연스러워진 차유진에게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던져준 뒤,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함께 재방송을 시청했다.
“머리가 꽃이에요! 멋져요!”
“고맙다.”
“너 진짜 노래 잘 부른다. 문대야.”
“별말씀을요.”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내 무대가 전부 끝난 순간, 류청우가 물었다.
“다음 화, 방금 촬영하고 온 거지?”
“네.”
“어땠어?”
“…재밌었죠.”
나는 피식 웃었다.
다음 주 방영분이 상당히 기대됐으니까.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8화

관객들의 박수와 함께, ‘5월의 신랑’이라는 이름의 가수 캐릭터 홀로그램 앞에 마이크가 나타났다.

스탠딩 마이크였다.

현실에 존재할 일 없는 대리석 스탠드 마이크에는 화려한 꽃 덩굴과 흰 레이스가 얼기설기 엮여 있었다.

‘5월의 신랑’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으로 스탠드 마이크를 잡았다.

화려한 꽃 부케의 오브젝트 헤드가 주는 충격에서 겨우 벗어난 고등학생은 발바닥을 턱턱 쳤다.

“컨셉충 뭐냐.”

여자애들한테 멋있어 보이려는 것 같아서 슬쩍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웨딩의 화려하고 청순한 이미지를 뚫고 나오는 약간 으스스하고 기이한 느낌이 재밌었다.

‘가오 잡는 놈들이 원래 노래는 X니 못하는데.’

고등학생은 그 호감을 애써 부정하며 화면을 봤다.

반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영롱한 두 대의 피아노 소리와, 밝고 경쾌한 브라스 소리가 드럼 박 위로 피어올랐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당신에게 건넬 나의 고백

“어?”

아주 유명한 청혼가였다.

본래 총 10명이 나오는 1차 예선전에서는, 이렇게 캐릭터 컨셉에 충실한 곡을 부르는 것이 룰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예측 가능한 선곡이었으나, 단 하나 시청자가 예측하지 못한 지점이 있었다.

노래를 정말 잘했다.

-꽃 핀 5월에

흐드러지는 우리의 청춘

더없이 선량한 마음으로

당신에게 드릴 나의 사랑

단정하고 청초한 목소리가 낮고 풍성한 음을 냈다.

미친 듯이 전율이 이는 고음이나 테크닉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곡에 더없이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마치 이 곡은 원래 이렇게 불러야 하는 것처럼 들리는.

-사랑이 들리면

나를 생각해줘요

오늘도 내일도

그대를 사랑해요

삐걱거리거나 아쉬운 부분 없이, 이대로 계속 듣고 싶은 아름다운 노래였다.

그리고 예선전에서는 1분 30초의 시간만 허락되었기에, 딱 감질날 시점에 곡이 끊겼다.

박수와 자막 너머로, 곡을 마친 ‘5월의 신랑’은 다시 한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오올.”

좀 하네?

고등학생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아마 배우나 모델은 아니고 가수인 것 같았다.

‘발라드 가순가?’

폭발적인 가창력은 아니었지만, 무난히 1차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음악인들이 뭐라도 말을 하든 ‘5월의 신랑’에게선 특별히 반응이 없었다.

그냥 단정한 자세로 서서, 질문에 고개를 기웃거렸을 뿐이다.

즉, 부케가 흔들거렸다는 뜻이다.

“아 컨셉충 아 씨.”

예능 출연하는 옛날 가수 아니냐며, 고등학생은 진절머리를 냈다.

동작이나 분위기가 그럴싸해서 자꾸 몰입되는 게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이윽고, 심사평을 다 들은 ‘5월의 신랑’은 무대 위에서 스르륵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진 1차 무대들은 한두 개 빼고는 고만고만했다.

중간광고 이후 발표한 본선 진출자의 명단이 뻔했다는 뜻이다.

‘그럴 줄 알았지.’

고등학생은 6명의 진출자를 한 명 빼고 다 맞춘 자신의 안목에 스스로 감탄했다.

‘나 진짜 쩐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의 머리에 ‘5월의 신랑’의 다음 무대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1차에서 보여준 게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색빨로 미는 놈에 천원 건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천원은 무참히 사라진다.

“…?!”

고등학생은 입을 떡 벌렸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6명이 진출한 본선에서는 지정곡을 불러야 했다. 그래서 출연진들은 제작진이 제시한 세 곡 중 하나를 본선용으로 미리 연습해 왔다.

원래는 어떤 캐릭터가 어떤 곡을 선곡했는지 보는 맛, 그리고 같은 곡을 선곡한 출연진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이변이 일어났다. 무려 4명이 같은 곡을 고른 것이다.

바로 ‘겨울밤’이라는 90년대 발라드 명곡이었다.

그리고 ‘5월의 신랑’도 이 확률을 피해 가지 못하고, 해당 곡을 선곡했다.

4명이나 되는 탓에 편곡도 겹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5월의 신랑’은 약간의 편법을 썼다.

-이 새벽에 취하여

노래를 불러도

겨울밤은 여전하네

눈바람이 세차네

그는 이별의 슬픔이 애절했던 발라드곡을 비장미가 넘치는 뮤지컬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오케스트라로 편곡해버렸다.

무슨 뜻인가 하면, 클라이맥스의 고음이 무지막지했다는 뜻이다.

-눈물 흘린 밤이 가면

눈 시린 아침이 오면

창가의 햇살로 다시

찾아올 나를

원래는 저음으로 마무리되는 음도 쭉 끌어올려서 초고음으로 당겨 버렸다.

다정하고 조곤조곤한 첫 곡과 대비되는, 넘치도록 휘몰아치는 고음과 심지 단단한 발성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라이브 무대에서 이런 성대 묘기 대행진은 유구하게 잘 먹혔다.

끝난 뒤 박수와 환호가 첫 무대와 비견될 바가 아니었다.

본래는 여운을 망칠 만큼 과한 고음도, 웅장한 편곡 덕에 전율만 주고 끝났다.

콜로세움에서 1:3 맨몸 결투로 승리한 꼴이었다.

“개쩐다.”

고등학생은 육성으로 감탄했다.

예능이나 나오는 퇴물가수라고 추측했던 것은 어느새 ‘시대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진짜배기 가수’로 탈바꿈되었다.

‘보정 감안해도 탑티어에 비비는 거 아니냐?’

저 정도면 컨셉충이어도 인정이다. 고등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술병 걸린 인디 가수나 저런 걸로 라도 멋있어 보이려는 아재로 추측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문득 뭐가 보였다.

자신의 생물학적 연장자 여성이었다.

“……너 뭐 하냐?”

고등학생의 누나, 김래빈의 팬은 입을 떡 벌린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5월의 신랑’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오며 가며 들은 모양이다. 아니면 듣다가 너무 대단해서 뛰쳐나왔거나.

고등학생은 괜히 으쓱해져서 말했다.

“크, 봤냐? 이런 게 진짜 가수지!”

누나도 결국 그 춤추는 비리비리한 남자 아이돌들이 아니라 이 진가를 알아본다고, 고등학생은 오랜만에 나타난 공감 거리에 뿌듯해했다.

김래빈의 팬이 외쳤다.

“저거 문대잖아…!”

“……?!”

고등학생은 잠깐 귀를 의심했다.

박문대라면… 누나가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 중 하나였다!

“개소리 마세요, 저런 목소리 아니었다~ 저렇게 부른다고?”

“그냥 들어도 문대라고 멍청아!”

“아 X나 쪽팔리게 왜 그러냐고!”

남매는 서로 삿대질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대화는 인터넷상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잘 들어가세요, 문대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번 주 상담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선아현은 화장품 단독 광고 촬영 때문에 이미 문자로 인사 후 촬영장으로 떠났다.

‘…이번에도 장문이군.’

거의 편지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쉴 때 쉬어라’는 내용을 넣어 적당히 답장했다.

‘그러고 보니, 확인하기 좋은 타이밍인가.’

내 무대… 그러니까, 내가 만든 ‘5월의 신랑’의 무대 말이다.

어젯밤에 본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클립도 업로드되었을 테니, 슬슬 충분히 반응이 쌓였을 것이다.

‘지금 봐두자.’

나는 위튜브에 접속했다.

다행히 두 무대 모두 조회수가 꽤 괜찮았다.

‘첫 무대는 좀 적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특별히 고조가 없는 곡을 불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캐릭터의 조형에 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은근히 많았나 보다.

-X발 부케 헤드 미쳤나 개좋아ㅠㅠ

-솔직히 꽃대가리 좀 무서운데 노래 부르는 순간 다 날아가고 미남으로 합성됨

-청혼 감사합니다 식장은 어디인지?

-캐릭터 몰입한 것 좀 봐 꽃이 귀엽고 잘생길 일이냐고ㅋㅋㅠㅠㅠ

-하얀 정장에 면사포? 꽃 달린 스탠드 마이크? 미남이 아니면 용납할 수 없는 조합임 고로 미남일 것이다

“오…….”

설정한 캐릭터랑 어울리는 곡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도 몰입한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재밌다면 됐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다음 영상을 확인했다. 본선에서 부른 ‘겨울밤’ 영상에 달린 댓글은 이런 기조였다.

-진짜 X나 잘한다 속이 뻥 뚫림

-하루종일 틀어놓고 있다 음원 내줘ㅠㅠ

-다음 주 우승각 봅니다~

-누군지 참~ 궁금하네요^^ 움직임만 봐도 가슴이 콩딱거리게 잘생긴 것이… 참 기대가 됩니다…

-머리는 괴상한데 노래는 천하일품입니다.

-신부가 요절해도 참으로 저승까지 가서 찾아올 명가수 신랑이다

…아무래도 어르신들의 취향에 잘 맞았나 보다.

‘좀 예스럽게 편곡해서 그런 건가.’

아무튼, 전체적으로 호평과 기대로 댓글이 넘실거렸다.

나는 등을 폈다.

‘전략이 괜찮았나.’

첫 번째, 두 번째 무대가 같은 화에 방영된다는 점을 고려했다.

‘어차피 한 화 안에 다 나오면 둘 다 첫인상이 된다. 그럼 빌드업 구성이 맞지.’

첫 무대가 약해도 한꺼번에 뒷무대까지 보게 되니 말이다.

그래서 첫 무대는 약간 약해도 캐릭터를 살리는 쪽으로 하고, 강한 편곡을 뒤로 뺐다.

‘잘 통한 것 같아 다행이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무대 반응을 최신순으로 정렬하면, 약간의 갈등이 드러났다.

추려내 보면, 이런 식이다.

-박문대 맞는 것 같은데…

-박씨도 노래를 잘하긴 하지만 아닌 것 같아요 음색도 다르고~

-바보들아 아이돌들 이런데 나오면 일부러 정체 감추려고 웃긴 캐릭터 만듬 대놓고 멋진 캐릭터 만든 거 보니까 아이돌 아님 ㅇㅋ?

└그 발상을 역으로 찔러서 아이돌일지도?

└노래 잘하는 아이돌 많긴 한데… 흠 아주사에서 본 박문대가 이 정도 수준 아니었음

└미국 프로그램에서 부른 거 한 번 보세요 진짜 잘해요 전 박문대 맞는 듯 (링크)

└오 잘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다름 신랑이는 아닌 듯

이런 식으로, 박문대라고 의심하는 의견을 낸 사람들이 소수파로 밀리는 판이었다.

그나마 ‘박문대’가 노래를 잘하는 것은 제법 알려진 덕에 특별히 비웃는 분위기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흠.”

노린 상황은 아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5월의 신랑’이 박문대라는 추측이 힘을 얻지 못할 줄은 몰랐다.

물론 추리하는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목소리를 좀 다르게 내려고 노력하긴 했다.

평소 그룹에서 부를 때하고는 발성도 좀 다르게 해봤고.

‘…그래도 긴가민가 헷갈리는 수준으로 잡으려고 했는데.’

박문대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많이 들어본 사람들은 눈치챌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 그런가, 여론이 예상보다도 완고했다.

‘적당히 이족보행 고양이나 할 걸 그랬나.’

나는 마지막까지 후보에 있던 괴도 고양이를 떠올리며 살짝 후회했으나, 곧 정리했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어.’

사실 이건, 상담하면서 받은 조언을 좀 의식해 봤다.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선택 말고, 문대 선생님이 좋아하는 쪽을 고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게 이번에 드리는 숙제예요.

뭐 전문가가 그렇다니, 한번 스케일 크게 해본 것이다.

‘이번 상태이상과 크게 관련 있는 문제도 아니니 괜찮겠지.’

아무래도 고양이 발보단 인간 팔다리가 내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게 보기 편했다.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 같고.’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도착한 숙소 앞에 내려서 발을 옮겼다.

‘다음 주에 캐릭터 프로필이 공개되지.’

나는 미리 제작한 프로필을 훑으며, 혹시라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와 동시에, 도착한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침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는 척을 했다.

류청우였다.

“왔어?”

“네. 형.”

“거기 아이스크림 사놨다. 먹어.”

류청우는 가볍게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하고는, 앉아 있던 소파 밑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알았다.

‘지금 자리 피해주는 거냐.’

본인이 거실에 있으면 불편할까 봐 일어난다. 내가 거실에 마음 편히 있을 수 있도록 말이다.

‘…허이고.’

어쩐지 어깨에 힘이 빠졌다. 남아 있던 거북함은 솟은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수그러들었다.

나는 냉장고를 열며, 류청우를 불렀다.

“형도 아이스크림 드시죠. 무슨 맛 드릴까요.”

“…아, 그럴까?”

“네.”

소파에 다시 걸터앉은 류청우가 씩 웃었다.

“그럼 난 오렌지 맛으로 줘.”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 신나게 달려왔다.

“저도 아이스크림 주세요!”

‘어디서 튀어나왔냐.’

본능적으로 문법이 자연스러워진 차유진에게도 아이스크림을 하나 던져준 뒤,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함께 재방송을 시청했다.

“머리가 꽃이에요! 멋져요!”

“고맙다.”

“너 진짜 노래 잘 부른다. 문대야.”

“별말씀을요.”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내 무대가 전부 끝난 순간, 류청우가 물었다.

“다음 화, 방금 촬영하고 온 거지?”

“네.”

“어땠어?”

“…재밌었죠.”

나는 피식 웃었다.

다음 주 방영분이 상당히 기대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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