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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40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0화
나는 미리 깔아놓은 은행 어플에 접속했다.
‘지금쯤이면 입금됐겠지.’
정산금이 들어올 것이란 이야기는 어제 들었다.
사실 분기별로 정산되는 것으로 계약은 됐는데, 작년에 회사가 난장판이라 법정금리가 붙는 조건으로 잠시 유예됐었다.
그래서 4월인 지금, 작년 정산금과 이번 1분기 정산금이 한꺼번에 입금됐다.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회사를 고소할 공백이었지만, 당장 급한 사람이 없고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서 큰 잡음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4월 22일 월요일,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즉시 정산금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으헉!”
옆 침대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배세진이다.
‘액수가 큰가 보군.’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워낙 성적이 좋았고, 콘서트까지 했으니까.
‘그래도 크게 실감이 나진 않는데.’
나는 관성적으로 어플의 대표계좌를 밀고 새 계좌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대한 종합예금]
[1,146,193,520원]
‘…11억?’
11억이라고??
장기밀매를 해도 못 만져볼 액수가 화면에 떠 있었다.
“…….”
말문이 막혔다.
이게 9개월 일하고 받는 게 가능한 액수였나?
잠 못 자고 부담감이 큰 상태에서 구른 건 맞았다. 그리고 길게 보자면, 때부터의 개고생이 누적된 금액이기도 했다.
하지만 11억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남아서 무서운 장사다.
‘아무리 그래도 11억은… 상상 이상인데.’
정산서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회사 수신용으로 개통한 메일을 확인해 봤다.
어떻게 주소가 유출된 건지 별 이상한 메일들이 폭탄처럼 쌓여 있긴 했다만, 대충 거르고 나니 정산서 메일을 찾을 수 있었다.
빠르게 훑었다.
“……후.”
11억이, 맞았다.
그리고 원인도 알았다.
‘연습생 비용이 없군.’
회사의 사전 투자 비용이 안 잡혔다는 뜻이다. 덕분에 수익이 발생하는 즉시 알짜 그대로 정산됐다.
앨범, 행사, 광고, 음원, 콘서트…….
게다가 제작에 참여한 비중이 커서 저작권료도 꽤 됐다.
‘김래빈은 더 받았겠는데.’
마침 옆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김래빈이 통화 중인 것 같았다.
아마 가족 중 누군가가 놀라서 전화한 듯싶다.
‘난리군.’
난리가 나야 정상인 금액이긴 했다. 아직도 썩 내 돈 같지가 않다.
“너, 너 봤어??”
배세진이 뻘게진 채로 말을 걸었다. 정산금 봤냐는 뜻일 것이다.
“…네. 지금.”
“이 정도면, 서울에 집 살 수 있지?? 대출, 대출 끼면…….”
어떤 집이냐에 따라 다르지.
하지만 배세진은 보안 좋은 내 집 마련 계획의 초기 달성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오자 흥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계산이 잘못됐다.
“그거 세금 떼기 전 금액이에요.”
“어, …어?”
“고액이라 세율이 높을 테니까, 다 쓸 생각 마시고 5월에 종합 소득세 신고하기 전에 세무사랑 꼭 상담하세요.”
“……그, 그래.”
배세진은 멍하게 긍정하더니, 도로 자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현실로 돌아온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배세진에게 조언하면서 정신 좀 차렸다.
“형은 정산금 익숙할 줄 알았는데요.”
“이런 금액은 처음이야…….”
배세진은 햄스터 바디필로우에 얼굴을 처박았다.
저거, 전부터 유용하게 써먹는군.
“무, 무슨 일이야…?”
씻는 중이던 선아현까지 소리를 듣고 욕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정산 확인 중.”
“아, 아하.”
선아현은 안심했는지 웃었다. 얼만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넌 부모님이 관리해 주시던가?”
“으, 으응! 요, 용돈 받기도 하고…….”
지난번에 백화점 상품권을 턱 하고 생일 선물로 내민 걸 봐서는 아마 저 용돈이라는 것도 상당한 고액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상품권도 아직 안 썼군.’
시상식 시즌 끝나자마자 콘서트랑 새 앨범 준비하고, 곧바로 또 활동기라 잊고 지냈다.
‘마침 내일 오전에… 음, 스케줄은 없는데.’
앞으로 주말을 포함한 2주 동안 낮에 시간이 비는 건 그때가 유일했다.
일단 재확인부터 해보자.
“내일 낮에 우리 스케줄 없는 거 맞지?”
“어, 어! 맞아, 왜…?”
“좀 나갔다 오려고.”
“…쇼핑? 은행이야?”
배세진이 끼어들었다. 정산받자마자 나간다고 하니 짐작한 듯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쇼핑.”
“…그럼 같이 나갈래? 나도 은행 들러야 되니까.”
“음… 그건 좀.”
“뭐?”
나는 목 뒤를 쓰다듬었다.
“디저트 가게 갈 생각이라서요.”
“……?”
“한… 일곱 군데 정도.”
“…??”
* * *
그래서 다음 날인 화요일. 나는 혼자 유유자적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아니, 돌아다닐 예정이었는데, 말이다.
“무, 문대야. 저기 파란 간판 맞지?”
“우측 첫 번째 골목에서 내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사님.”
까보니 꼬리가 두 놈이나 붙었다.
선아현과 김래빈이 반색하며 따라온 것이다.
-나, 나도 나가고 싶었는데…!
-디저트요? 다음 주가 누나 생일인데 선물 중 하나를 고르기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한다.
참고로 배세진은 오다가 은행에 내려줬다. 택시 대절비가 절약돼서 이득이었다.
‘이제 택시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만.’
인생에서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너무 오랜만이라 좀 이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분이 첫 목적지에 차를 세웠다.
“자,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뒷자리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둘도 얼른 따라 내렸다.
“마, 맛있겠지?”
“기대가 큽니다.”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쓴 남자 셋이 전문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는 게 썩 흔한 그림일 것 같지는 않았다만… 뭐, 됐다.
‘길에 사람 자체가 별로 없어.’
평일 9시 반이라 그런 것 같았다.
나와 멤버 둘은 막 문을 연 가게에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 헉.”
“안녕하세요.”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간파당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젠 마스크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어어, 어… 헉, 와……. 노래 너무 잘 듣고 있고, 허어.”
“감사합니다. 다쿠아즈 종류별로 하나씩 다 포장해 주세요.”
“네, 네?”
“맛별로 하나씩 전부 포장 부탁드립니다.”
“아, 아, 넵!”
미안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악수와 사인을 포장된 다쿠아즈와 교환했다.
“으허헉.”
…그래도 즐거우신 것 같아 다행이군.
그리고 당황한 채로 서 있는 둘을 돌아보았다.
“너희 안 골라?”
“아!”
나머지 둘도 얼결에 악수와 함께 다쿠아즈를 골랐다.
나는 곧바로 계산대로 갔다.
“같이 결제 부탁드립니다.”
“아, 네!”
둘 다 기겁했다.
“괘, 괜찮은데!”
“정산 액수로 정렬하면 제가 사는 게 맞… 아니,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니라, 그, 괜찮다는 의미로…….”
나는 픽 웃었다.
“됐어. 내가 나오자고 한 거고.”
“형…….”
“무, 문대야…….”
차유진이나 큰세진을 데리고 왔으면 뻔뻔하게 뜯어먹었을 텐데, 이 두 놈은 감동이나 받고 앉아 있다.
둘은 포장된 다쿠아즈를 건네받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자, 잘 먹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김래빈이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아, 저 누나 생일 선물을 사야 합니다.”
“그건 천천히 골라봐도 괜찮을 것 같다. 가게가 많이 남았으니까.”
“네?”
둘은 눈을 끔벅였다.
“그, 여, 여기서 샀으니까, 고, 고른 거 아냐?”
“마음에 안 들 경우를 대비해서 후보군을 많이 찾아놓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곱 곳에서 다 살 거야.”
“……!!”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그래서 정오가 됐을 때, 두 놈은 모두 흐느적거리며 택시에 앉아 있게 되었다.
나는 박스를 정리해서 발밑에 내려놓았다.
모두 일곱 개. 다 성공적으로 구매했다. 이미 하나씩 맛도 봤고.
중간에 앨범을 흔들며 달려온 분과 포옹하는 예상 못 한 이벤트가 있긴 했지만, 순조로웠다.
‘마지막은 좀 아슬아슬했지.’
계산대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이 우렁차게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마카롱 받자마자 인사만 하고 도둑놈처럼 가게에서 도망쳤다.
“끄, 끝이지…?”
“어. 끝.”
“흐아아아…….”
선아현이 줄줄 녹아내렸다. 사람 많이 만나서 지친 모양이다.
중간에 그냥 숙소 들어가라니까, 어차피 몸 관리하느라 단 건 별로 먹지도 않는 놈이 왜 꾸역꾸역 따라붙었는지 모르겠다.
‘소외감 때문인가.’
선아현 성격상, 여럿이서 다니다가 혼자 빠지는 게 싫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쉬는 시간에 굳이 따라 나와 준 건… 효용을 떠나서 고마운 일이긴 했다.
“이제 귀가하는 겁니까?”
“어. 가자.”
나는 택시를 숙소로 돌렸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에서 같이 올라가는 대신, 디저트만 맡겼다.
“숙소 있는 사람들 나눠 먹으라고 전해줘.”
“어, 어?”
“내가 잠깐 할 일이 생각나서.”
나는 두 놈을 귀가 조치 하고 도로 택시에 탔다.
그리고 내비를 다시 찍었다.
“백화점?”
“예.”
나는 볼 일을 마저 본 뒤, 한 시간쯤 뒤에 숙소에 귀가했다.
띠리링-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서 다쿠아즈를 볼이 터지게 집어먹고 있는 차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
“맛있어요! 고마워요!”
“뭐… 그래.”
살찌는 놈도 아니고 단 것도 좋아하니, 적임자라고 볼 수 있었다.
“뭐가 제일 맛있냐.”
“이거요.”
딸기 마카롱이군. 나는 포장지의 가게 이름을 기억해 뒀다.
“과자 잘 먹었어 문대야.”
“뭘요.”
“문대 여자친구 생겨서 연막으로 우리까지 사준 건 아니지? 형 믿는다~”
“미쳤냐.”
나는 류청우와 인사한 후, 킬킬거리는 큰세진의 등을 치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서 책을 읽던 배세진 너머로, 책상에서 수세미를 뜨던 선아현이 보였다.
“무, 문대야. 할 일은 잘 끝났어?”
“어. 그리고 이거.”
“으, 으응?”
나는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좀 이르지만… 생일 선물이야.”
“어, 어어!?”
선아현이 기겁했다. 배세진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선아현 생일이야…?!”
“아, 아니요…?!”
둘이 나란히 당황한 게 무슨 콩트 같다.
“이주 뒤인데, 그때까지 외출할 시간이 없어서 지금 주는 겁니다.”
“아…….”
배세진이 안심하며 도로 누웠다. 선아현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고마워…!”
“별말씀을.”
……저 선물에 자기가 준 백화점 상품권을 썼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말도록 하자.
“여, 열어봐도 돼?!”
“당연하지.”
선아현은 당장 포장을 개봉했다. 그리고 등장한 코트에 굳었다.
“…! 너, 너무 비싼 거, 아니…….”
“아니야.”
상품권 준 놈이 별소리를 다 한다.
나는 백화점에서 사 온 다른 쇼핑백을 침대 밑에 넣었다. 쇼핑백 크기가 커서 약간 시간이 걸렸다.
‘…잘 고른 것 같긴 한데.’
차라리 선아현을 데리고 갈 걸 그랬나, 짧게 후회가 됐지만 이미 사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배세진이 힐끔 쳐다봤다.
“그건 뭔데?”
“선물이요.”
* * *
그리고 그 주 일요일, 테스타의 이번 활동 마지막 음악방송 사전 녹화가 진행되는 새벽의 방송국.
현장에 도착한 테스타의 팬들은 웬 큼직한 박스를 하나씩 받게 되었다.
[테스타가 부릅니다.]
[자정 그리고 러뷰어♡]
“…??”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40화

나는 미리 깔아놓은 은행 어플에 접속했다.

‘지금쯤이면 입금됐겠지.’

정산금이 들어올 것이란 이야기는 어제 들었다.

사실 분기별로 정산되는 것으로 계약은 됐는데, 작년에 회사가 난장판이라 법정금리가 붙는 조건으로 잠시 유예됐었다.

그래서 4월인 지금, 작년 정산금과 이번 1분기 정산금이 한꺼번에 입금됐다.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회사를 고소할 공백이었지만, 당장 급한 사람이 없고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서 큰 잡음 없이 넘어갔다.

하지만 돈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덕분에 4월 22일 월요일,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즉시 정산금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으헉!”

옆 침대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배세진이다.

‘액수가 큰가 보군.’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다. 워낙 성적이 좋았고, 콘서트까지 했으니까.

‘그래도 크게 실감이 나진 않는데.’

나는 관성적으로 어플의 대표계좌를 밀고 새 계좌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11억?’

11억이라고??

장기밀매를 해도 못 만져볼 액수가 화면에 떠 있었다.

“…….”

말문이 막혔다.

이게 9개월 일하고 받는 게 가능한 액수였나?

잠 못 자고 부담감이 큰 상태에서 구른 건 맞았다. 그리고 길게 보자면, 때부터의 개고생이 누적된 금액이기도 했다.

하지만 11억을 받을 수 있다면 너무 남아서 무서운 장사다.

‘아무리 그래도 11억은… 상상 이상인데.’

정산서를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회사 수신용으로 개통한 메일을 확인해 봤다.

어떻게 주소가 유출된 건지 별 이상한 메일들이 폭탄처럼 쌓여 있긴 했다만, 대충 거르고 나니 정산서 메일을 찾을 수 있었다.

빠르게 훑었다.

“……후.”

11억이, 맞았다.

그리고 원인도 알았다.

‘연습생 비용이 없군.’

회사의 사전 투자 비용이 안 잡혔다는 뜻이다. 덕분에 수익이 발생하는 즉시 알짜 그대로 정산됐다.

앨범, 행사, 광고, 음원, 콘서트…….

게다가 제작에 참여한 비중이 커서 저작권료도 꽤 됐다.

‘김래빈은 더 받았겠는데.’

마침 옆방에서 비명이 들렸다. 김래빈이 통화 중인 것 같았다.

아마 가족 중 누군가가 놀라서 전화한 듯싶다.

‘난리군.’

난리가 나야 정상인 금액이긴 했다. 아직도 썩 내 돈 같지가 않다.

“너, 너 봤어??”

배세진이 뻘게진 채로 말을 걸었다. 정산금 봤냐는 뜻일 것이다.

“…네. 지금.”

“이 정도면, 서울에 집 살 수 있지?? 대출, 대출 끼면…….”

어떤 집이냐에 따라 다르지.

하지만 배세진은 보안 좋은 내 집 마련 계획의 초기 달성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오자 흥분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계산이 잘못됐다.

“그거 세금 떼기 전 금액이에요.”

“어, …어?”

“고액이라 세율이 높을 테니까, 다 쓸 생각 마시고 5월에 종합 소득세 신고하기 전에 세무사랑 꼭 상담하세요.”

“……그, 그래.”

배세진은 멍하게 긍정하더니, 도로 자기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좀 현실로 돌아온 모양이다.

그리고 나도 배세진에게 조언하면서 정신 좀 차렸다.

“형은 정산금 익숙할 줄 알았는데요.”

“이런 금액은 처음이야…….”

배세진은 햄스터 바디필로우에 얼굴을 처박았다.

저거, 전부터 유용하게 써먹는군.

“무, 무슨 일이야…?”

씻는 중이던 선아현까지 소리를 듣고 욕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정산 확인 중.”

“아, 아하.”

선아현은 안심했는지 웃었다. 얼만지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넌 부모님이 관리해 주시던가?”

“으, 으응! 요, 용돈 받기도 하고…….”

지난번에 백화점 상품권을 턱 하고 생일 선물로 내민 걸 봐서는 아마 저 용돈이라는 것도 상당한 고액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상품권도 아직 안 썼군.’

시상식 시즌 끝나자마자 콘서트랑 새 앨범 준비하고, 곧바로 또 활동기라 잊고 지냈다.

‘마침 내일 오전에… 음, 스케줄은 없는데.’

앞으로 주말을 포함한 2주 동안 낮에 시간이 비는 건 그때가 유일했다.

일단 재확인부터 해보자.

“내일 낮에 우리 스케줄 없는 거 맞지?”

“어, 어! 맞아, 왜…?”

“좀 나갔다 오려고.”

“…쇼핑? 은행이야?”

배세진이 끼어들었다. 정산받자마자 나간다고 하니 짐작한 듯싶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쇼핑.”

“…그럼 같이 나갈래? 나도 은행 들러야 되니까.”

“음… 그건 좀.”

“뭐?”

나는 목 뒤를 쓰다듬었다.

“디저트 가게 갈 생각이라서요.”

“……?”

“한… 일곱 군데 정도.”

“…??”

* * *

그래서 다음 날인 화요일. 나는 혼자 유유자적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아니, 돌아다닐 예정이었는데, 말이다.

“무, 문대야. 저기 파란 간판 맞지?”

“우측 첫 번째 골목에서 내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기사님.”

까보니 꼬리가 두 놈이나 붙었다.

선아현과 김래빈이 반색하며 따라온 것이다.

-나, 나도 나가고 싶었는데…!

-디저트요? 다음 주가 누나 생일인데 선물 중 하나를 고르기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뭐, 그렇다고 한다.

참고로 배세진은 오다가 은행에 내려줬다. 택시 대절비가 절약돼서 이득이었다.

‘이제 택시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만.’

인생에서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너무 오랜만이라 좀 이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분이 첫 목적지에 차를 세웠다.

“자,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뒷자리에서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둘도 얼른 따라 내렸다.

“마, 맛있겠지?”

“기대가 큽니다.”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쓴 남자 셋이 전문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는 게 썩 흔한 그림일 것 같지는 않았다만… 뭐, 됐다.

‘길에 사람 자체가 별로 없어.’

평일 9시 반이라 그런 것 같았다.

나와 멤버 둘은 막 문을 연 가게에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 헉.”

“안녕하세요.”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간파당했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젠 마스크는 무용지물인 것 같다.

“어어, 어… 헉, 와……. 노래 너무 잘 듣고 있고, 허어.”

“감사합니다. 다쿠아즈 종류별로 하나씩 다 포장해 주세요.”

“네, 네?”

“맛별로 하나씩 전부 포장 부탁드립니다.”

“아, 아, 넵!”

미안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는 악수와 사인을 포장된 다쿠아즈와 교환했다.

“으허헉.”

…그래도 즐거우신 것 같아 다행이군.

그리고 당황한 채로 서 있는 둘을 돌아보았다.

“너희 안 골라?”

“아!”

나머지 둘도 얼결에 악수와 함께 다쿠아즈를 골랐다.

나는 곧바로 계산대로 갔다.

“같이 결제 부탁드립니다.”

“아, 네!”

둘 다 기겁했다.

“괘, 괜찮은데!”

“정산 액수로 정렬하면 제가 사는 게 맞… 아니,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니라, 그, 괜찮다는 의미로…….”

나는 픽 웃었다.

“됐어. 내가 나오자고 한 거고.”

“형…….”

“무, 문대야…….”

차유진이나 큰세진을 데리고 왔으면 뻔뻔하게 뜯어먹었을 텐데, 이 두 놈은 감동이나 받고 앉아 있다.

둘은 포장된 다쿠아즈를 건네받으며 싱글벙글 웃었다.

“자, 잘 먹을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게 밖으로 나오는 순간, 김래빈이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

“아, 저 누나 생일 선물을 사야 합니다.”

“그건 천천히 골라봐도 괜찮을 것 같다. 가게가 많이 남았으니까.”

“네?”

둘은 눈을 끔벅였다.

“그, 여, 여기서 샀으니까, 고, 고른 거 아냐?”

“마음에 안 들 경우를 대비해서 후보군을 많이 찾아놓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아닌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곱 곳에서 다 살 거야.”

“……!!”

그리고 정말 그렇게 했다.

그래서 정오가 됐을 때, 두 놈은 모두 흐느적거리며 택시에 앉아 있게 되었다.

나는 박스를 정리해서 발밑에 내려놓았다.

모두 일곱 개. 다 성공적으로 구매했다. 이미 하나씩 맛도 봤고.

중간에 앨범을 흔들며 달려온 분과 포옹하는 예상 못 한 이벤트가 있긴 했지만, 순조로웠다.

‘마지막은 좀 아슬아슬했지.’

계산대에서 눈이 마주친 사람이 우렁차게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마카롱 받자마자 인사만 하고 도둑놈처럼 가게에서 도망쳤다.

“끄, 끝이지…?”

“어. 끝.”

“흐아아아…….”

선아현이 줄줄 녹아내렸다. 사람 많이 만나서 지친 모양이다.

중간에 그냥 숙소 들어가라니까, 어차피 몸 관리하느라 단 건 별로 먹지도 않는 놈이 왜 꾸역꾸역 따라붙었는지 모르겠다.

‘소외감 때문인가.’

선아현 성격상, 여럿이서 다니다가 혼자 빠지는 게 싫었을 수도 있겠다.

어쨌든 쉬는 시간에 굳이 따라 나와 준 건… 효용을 떠나서 고마운 일이긴 했다.

“이제 귀가하는 겁니까?”

“어. 가자.”

나는 택시를 숙소로 돌렸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에서 같이 올라가는 대신, 디저트만 맡겼다.

“숙소 있는 사람들 나눠 먹으라고 전해줘.”

“어, 어?”

“내가 잠깐 할 일이 생각나서.”

나는 두 놈을 귀가 조치 하고 도로 택시에 탔다.

그리고 내비를 다시 찍었다.

“백화점?”

“예.”

나는 볼 일을 마저 본 뒤, 한 시간쯤 뒤에 숙소에 귀가했다.

띠리링-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거실에서 다쿠아즈를 볼이 터지게 집어먹고 있는 차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

“맛있어요! 고마워요!”

“뭐… 그래.”

살찌는 놈도 아니고 단 것도 좋아하니, 적임자라고 볼 수 있었다.

“뭐가 제일 맛있냐.”

“이거요.”

딸기 마카롱이군. 나는 포장지의 가게 이름을 기억해 뒀다.

“과자 잘 먹었어 문대야.”

“뭘요.”

“문대 여자친구 생겨서 연막으로 우리까지 사준 건 아니지? 형 믿는다~”

“미쳤냐.”

나는 류청우와 인사한 후, 킬킬거리는 큰세진의 등을 치고 내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서 책을 읽던 배세진 너머로, 책상에서 수세미를 뜨던 선아현이 보였다.

“무, 문대야. 할 일은 잘 끝났어?”

“어. 그리고 이거.”

“으, 으응?”

나는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좀 이르지만… 생일 선물이야.”

“어, 어어!?”

선아현이 기겁했다. 배세진이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선아현 생일이야…?!”

“아, 아니요…?!”

둘이 나란히 당황한 게 무슨 콩트 같다.

“이주 뒤인데, 그때까지 외출할 시간이 없어서 지금 주는 겁니다.”

“아…….”

배세진이 안심하며 도로 누웠다. 선아현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고마워…!”

“별말씀을.”

……저 선물에 자기가 준 백화점 상품권을 썼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말도록 하자.

“여, 열어봐도 돼?!”

“당연하지.”

선아현은 당장 포장을 개봉했다. 그리고 등장한 코트에 굳었다.

“…! 너, 너무 비싼 거, 아니…….”

“아니야.”

상품권 준 놈이 별소리를 다 한다.

나는 백화점에서 사 온 다른 쇼핑백을 침대 밑에 넣었다. 쇼핑백 크기가 커서 약간 시간이 걸렸다.

‘…잘 고른 것 같긴 한데.’

차라리 선아현을 데리고 갈 걸 그랬나, 짧게 후회가 됐지만 이미 사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

배세진이 힐끔 쳐다봤다.

“그건 뭔데?”

“선물이요.”

* * *

그리고 그 주 일요일, 테스타의 이번 활동 마지막 음악방송 사전 녹화가 진행되는 새벽의 방송국.

현장에 도착한 테스타의 팬들은 웬 큼직한 박스를 하나씩 받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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