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3화
“…무용?”
‘새로운 세상으로’는 시작 안무부터 발레와 현대무용을 접목한 동작이 나왔다.?
아련하고 몽환적이지만 역시 강렬하지는 않았다.
“예쁘긴 한데….”
입을 떼던 골드 1이 말을 흐렸다.
안무를 고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즉, 이 안무 덕분에 편곡 난이도가 다시 한번 수직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쓰기엔 오디션 프로에 안 맞다는 생각이 들 테니 더 막막하겠지.
가사에 이어서 연타를 얻어맞자,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안무 숙지가 시작됐다.
“일단 최대한 빨리 따봅시다!”
“으응!”
다만 앞길이 막막한 게 자포자기보다는 위기감으로 작용했는지, 다들 입 다물고 열심히 해서 의외로 연습하기 쾌적했다.
괜한 불만을 떠들다간 곡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방송에 나갈 수도 있다는 걸 짐작한 모양이었다.
‘편해서 좋긴 하군.’
나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했다.
어차피 나야 어떤 안무든 경험치가 없다 보니 애먹는 건 똑같아서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여기서는 팔을 잡아서, 이렇게 돌리면….”
“으음.”
“오, 비슷했어.”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분위기를 잡았으니, 이제 중요한 건 편집에서 자르고 싶지 않을 만큼 임팩트 있는 그림이었다. 방송에서 편곡 과정이 어떻게 나오느냐도 중요했으니까.
기회는 이틀 후 트레이너 점검 시간에 찾아왔다.
* * *
“너희 곡 받고 고민 많이 했겠는데?”
안무가의 말에 팀원들이 어설프게 웃었다. 고민을 아예 미루고 안무만 땄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
안무가는 이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으나, 일단 넘어가 줬다.
“일단 해온 것 좀 보자.”
“예!”
그리고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1절 안무를 실수 없이 마쳤다.
“후우….”
내 주변 숨을 몰아쉬는 놈들에게서 일단 실수가 없었다는 것을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그래.”
안무가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상당히 중립적인 동작이었다.
“동작은 어떻게 다들 외우긴 했네. 누가 안무 땄어?”
“어, 춤에 좀 익숙한 팀원들이 다 같이…….”
“예. 다 같이 했습니다!”
골드 2의 말에 큰세진이 말을 더했다.
골드 넷이서 주도적으로 진행한 건 맞지만, 사실상 딴 건 선아현이 제일 많았다. 알고 보니 무용 전공자라더라.
뭐 전적으로 혼자 딴 것도 아니고, 메인 댄서가 큰세진이 됐으니 이 정도로 뭉개고 넘어갈 모양이었다.
안무가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 고생은 했겠다. 근데…….”
안무가가 목을 두둑 꺾었다.
“아무도 눈에 안 들어와.”
옆에서 골드 2가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누가 보면 귀신이라도 나온 줄 알겠군.
“뭐 어쩌자는 거야. 그냥 ‘쟤네 춤추네. 이 동작 하네. 저 동작 하네.’ 이런 평은 어디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들어야 칭찬인 거고, 너희 이걸로 당장 먹고살려고 여기 나온 거 아니야?”
말이 쏟아질 때마다 팀원들이 움찔거렸다.
“뭐 볼 맛이 안 나네.”
곡 해석을 회피하고 안무만 기계적으로 땄으니 사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같은 말도 조언 대신 폭언처럼 했다는 게 안무가다웠다.
“아예 수준 이하인 애들도 있고.”
말을 덧붙이며 배우 이세진을 힐끗 보는 게 노골적이었다. 이세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안무만 간신히 외운 수준이었는데 저쪽이 총알받이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한 명쯤 질질 짜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의 피드백이 계속 이어졌다.
안무가는 거침없이 턱짓을 해댔다.
“너, 선아현이.”
“네, 네…….”
“너 현대무용 전공했다며. 근데 왜 표현하는 게 문대보다도 약한 것 같지?”
선아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나는 저 발언이 절대 편집되지 않을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이 탈모 걸릴 놈이… 저거 지금 일부러 못하는 놈인 날 찍어다가 비교해서 충격 주려고 한 거지?
“쟤는 노래도 잘해. 너 여기가 오디션이니까 지금까지 평이 괜찮았던 거지. 데뷔하면 누가 사연 있으니까 얘는 이만큼만 해도 잘했다고 해주자고 할 것 같아?”
연예계만큼 스토리 텔링이 잘 먹히는 업계도 별로 없으면서 굉장히 냉철하게 실력으로만 판가름나는 곳인 것처럼 말하는군. 여전했다.
어쨌든 간에 선아현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줬는지,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건 좀 난감한데…….’
안 그래도 이상한 상태이상이 걸려 있는 놈인데, 더 악화돼서 자기 몫을 못하면 곤란했다.
“아무튼, 지금 수준은 그냥 좀 연습한 아마추어다. 이 곡에서 뭘 표현하고 싶은 건지 생각을 좀 하고 다음에는 볼만한 상태로 와라.”
“감사합니다…….”
삽시간에 걸레짝이 된 팀원들은 터덜터덜 평가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라이프가 제로인 몰골들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보컬 피드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얘들아. 너희 뭘 하고 싶니?”
뮤디가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듯이 건반을 두들겼다.
이쪽은 정말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인신공격 대신 구체적 지시를 쏟아냈다.
“이 곡 꽃의 요정이 컨셉이잖아. 맑고 예쁘게 부르는 곡이야. 근데 너흰 그냥 음만 맞춰 부르고 있어. 대놓고 예쁘고 아련한 느낌이 전혀 없어. 그렇게 부르기 창피하니?”
“…….”
이 곡이 오디션 프로에 적합하지 않은 것 외에도, 솔직히 저 생각을 안 해본 팀원이 있을까 싶긴 했다. 고등학생 전후 나잇대의 놈들이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쪽팔리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아무래도 오디션이다 보니까, 더 강한 느낌으로 편곡하고 싶었는데……, 곡 컨셉이 워낙 확실하니까 자연스럽게 강한 방향으로 바꾸기가 힘들어서요.”
“편곡이 힘들 것 같으면 원곡을 충실하게 더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이라도 했어야지.”
“…….”
뮤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얘들아. 일단 방향부터 잡아봐야겠다.”
그리고 제작진의 개입으로 즉석에서 팀원 토의가 시작되었다.
카메라가 정면에 다닥다닥 붙었고, 제작진들이 앞에 앉아 있는데 할 말도 못 나올 끔찍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문을 터야 할 테니, 완장 찬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큰세진이었다.
“음, 우리 이틀간 굉장히 열심히 했잖아요. 덕분에 안무도 빨리 땄구요. 이제부터 그 기세로 곡에 몰입하면, 충분히 무대 퀄리티 있게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한 듯이 자연스러운 다독임이었다. 이놈 봐라?
“우리 빼지 말고, 열심히 한 번 원곡 감성 살려봅시다! 약간 민망할 수도 있지만, 천연덕스럽게 저희가 잘하면 약간… 말랑달콤 선배님들 히트곡 느낌도 나고 재밌지 않을까요?”
“아, 문대가 했던 거처럼?”
“그거지! 좀 유머러스하게 청순하면 신선한 느낌도 들잖아요. 약간 비트 빠르게 해서 신나게 해 보면 어떨까요?”
결국, 청순한 여자 아이돌 곡을 뻔뻔하게 오버해서 오히려 말랑달콤 전성기의 병맛 큐티 컨셉처럼 소화하자는 말이었다.
‘…이건 진짜 준비한 거 같은데.’
그 순간 깨달았다. 이놈도 나처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일부러 트레이너 피드백까지 방치했군.’
다짜고짜 원곡대로 청순하게 가자고 말하면 반발하는 놈들이 분명 나올 테니까.
원곡에 더 어울리는 전공자인 선아현에게 메댄이 갈 가능성도 차단하고.
이렇게 회의 컷 뽑아서 리더 임팩트도 챙기고.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안됐군. 이 녀석이 뭔 큰 그림을 그렸던 소용없을 것이다.
내 의견이 더 나았으니까.
일단 밑밥을 치자.
“아이디어는 좋은데, 잘못하면 원곡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안 그래도 선배 아이돌의 곡이다. 조금만 선 넘어서 우스꽝스럽게 보였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물론, 이 반대 의견도 상정 외는 아니었는지, 큰세진은 웃으며 반박했다.
“안 그래 보이도록 우리가 잘하면 되지!”
“문대 형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
갑자기 최원길이 급발진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음, 원길아?”
큰세진은 드물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지원 받는 사람보다 공격받는 내가 이득 보는 재밌는 전개다. 큰세진 큰 그림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는군.
최원길은 그라데이션으로 분노에 찬 발언을 박문대에게 쏟아부었다. 카메라가 있다는 걸 순차적으로 까먹고 있나 보다.
“그러는 형은 뭐 좋은 의견 있으세요? 형이야 트레이너분들께서 좋게 봐주시니까 마음 편하실지 몰라도, 다른 팀원들 마음도 생각해주셔야죠. 그렇게 무작정 반대만 하시면…….”
오, 의외로 일리 있는 발언인데.
“아, 당연히 있지. 내 의견.”
“예……?”
“생각해 봤는데, 원곡 감성 살리면서 강렬하게 갈 방법…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런 게 있냐?”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론에 다른 팀원들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풀린 분위기에 최원길이 순간 낭패 어린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큰세진은 오히려 머쓱하게 뒷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 자식은 진짜 보통이 아니다.
“진짜면 당연히 좋지만……, 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공포를 섞죠.”
“…!”
그냥 꽃의 요정이 아니라, 미국 간 꽃의 요정으로 가자.
느낌표와 함께하는 정적이 잠깐 지나간 후,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 어! 좋은 것 같은데?”
“야, 이 안무에 공포 컨셉 붙으면 진짜 무서울 것 같잖아!”
“오…….”
외운 안무를 손으로 대충 휘적거리며 유레카를 외치는 골드 1부터 병맛보단 그나마 낫다는 표정을 짓는 이세진까지, 수위는 다르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이 나잇대 아이돌 지망생이라면 보통 병맛보다 멋있는 걸 하고 싶을 테니 차라리 호러가 좋다고 할 줄 알았다.
큰세진도 짧게 감탄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론 보고 바로 방향을 선회했군.
“이렇게 바로 이야기하기 좀 민망하지만…… 문대 의견, 전 좋은데요?”
“와, 자기 의견을 버리고 갈아탔어!”
“역시 참 리더!”
순식간에 분위기가 밝아졌다. 와글와글 떠드는 팀원들 너머로 흐뭇한 표정의 뮤디가 보였다.
카메라가 뮤디도 잡는 걸로 봐서는 저 컷도 쓸 것 같긴 한데……. 잘 교차 편집돼서 나갔으면 좋겠군.
하지만 겨우 훈훈해진 컷 씬을 흐리는 한 놈이 있었다.
최원길은… 아슬아슬하지만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본인이 한 짓이 편집으로 어떻게 나갈지 걱정됐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분위기에 탑승하려고 애쓰긴 하는데, 나한테 사과하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지 눈도 안 마주치려고 애쓴다.
나라면 벌써 이 분위기에 묻어서 말 심했다고 말하고 끝냈다.
지금 상대가 받아줄 수밖에 없는 분위긴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그런가, 사회생활을 모르네.
그렇다면 범인이 누구냐, 선아현이다.
“귀신! 귀신으로 하자! 사람 죽은 썰 붙은 꽃도 있잖아요.”
“무슨 공포영화야? 너무 본격적인데? 아! 영화 검은 백조 있잖아, 그렇게 섬뜩한 느낌으로 하면…….”
“와, 안무 그렇게 하면 진짜 무섭겠다.”
선아현은 이 조별과제 행복회로편 같은 상황 속에서 본인 혼자 우울한 표정으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중이다.
“…….”
아마 안무가 트레이너가 한 말 때문에 멘탈이 나간 게 회복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참리더 이미지 컷 뽑으려고 큰세진이 나서지 않을까 잠시 희망찬 생각을 했지만, 그럴 기미도 없었다.
아무래도 선아현이 정신 차리면 전공자 버프로 메댄이라고 꿰찰까 봐 내버려 두는 것 같다.
나머진 머리가 해맑거나 사회성 없는 놈들뿐이니, 결국 말 꺼낼 건 포지션 안 겹쳐서 견제할 필요 없는 나뿐인가.
이렇게 귀찮을 수가……. 팔자에 없던 멘탈 지킴이 짓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어쨌든 무대 퀄리티 한 단계가 아쉬운 시점이다. 말이라도 꺼내보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3화
“…무용?”
‘새로운 세상으로’는 시작 안무부터 발레와 현대무용을 접목한 동작이 나왔다.?
아련하고 몽환적이지만 역시 강렬하지는 않았다.
“예쁘긴 한데….”
입을 떼던 골드 1이 말을 흐렸다.
안무를 고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즉, 이 안무 덕분에 편곡 난이도가 다시 한번 수직 상승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그대로 쓰기엔 오디션 프로에 안 맞다는 생각이 들 테니 더 막막하겠지.
가사에 이어서 연타를 얻어맞자, 초상집 같은 분위기에서 안무 숙지가 시작됐다.
“일단 최대한 빨리 따봅시다!”
“으응!”
다만 앞길이 막막한 게 자포자기보다는 위기감으로 작용했는지, 다들 입 다물고 열심히 해서 의외로 연습하기 쾌적했다.
괜한 불만을 떠들다간 곡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방송에 나갈 수도 있다는 걸 짐작한 모양이었다.
‘편해서 좋긴 하군.’
나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했다.
어차피 나야 어떤 안무든 경험치가 없다 보니 애먹는 건 똑같아서 별 감흥은 들지 않았다.
“여기서는 팔을 잡아서, 이렇게 돌리면….”
“으음.”
“오, 비슷했어.”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렸다.
분위기를 잡았으니, 이제 중요한 건 편집에서 자르고 싶지 않을 만큼 임팩트 있는 그림이었다. 방송에서 편곡 과정이 어떻게 나오느냐도 중요했으니까.
기회는 이틀 후 트레이너 점검 시간에 찾아왔다.
* * *
“너희 곡 받고 고민 많이 했겠는데?”
안무가의 말에 팀원들이 어설프게 웃었다. 고민을 아예 미루고 안무만 땄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지.
안무가는 이 반응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으나, 일단 넘어가 줬다.
“일단 해온 것 좀 보자.”
“예!”
그리고 나를 포함한 팀원들은 1절 안무를 실수 없이 마쳤다.
“후우….”
내 주변 숨을 몰아쉬는 놈들에게서 일단 실수가 없었다는 것을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 그래.”
안무가는 고개를 까닥거렸다. 상당히 중립적인 동작이었다.
“동작은 어떻게 다들 외우긴 했네. 누가 안무 땄어?”
“어, 춤에 좀 익숙한 팀원들이 다 같이…….”
“예. 다 같이 했습니다!”
골드 2의 말에 큰세진이 말을 더했다.
골드 넷이서 주도적으로 진행한 건 맞지만, 사실상 딴 건 선아현이 제일 많았다. 알고 보니 무용 전공자라더라.
뭐 전적으로 혼자 딴 것도 아니고, 메인 댄서가 큰세진이 됐으니 이 정도로 뭉개고 넘어갈 모양이었다.
안무가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 고생은 했겠다. 근데…….”
안무가가 목을 두둑 꺾었다.
“아무도 눈에 안 들어와.”
옆에서 골드 2가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누가 보면 귀신이라도 나온 줄 알겠군.
“뭐 어쩌자는 거야. 그냥 ‘쟤네 춤추네. 이 동작 하네. 저 동작 하네.’ 이런 평은 어디 수학여행 장기자랑에서 들어야 칭찬인 거고, 너희 이걸로 당장 먹고살려고 여기 나온 거 아니야?”
말이 쏟아질 때마다 팀원들이 움찔거렸다.
“뭐 볼 맛이 안 나네.”
곡 해석을 회피하고 안무만 기계적으로 땄으니 사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같은 말도 조언 대신 폭언처럼 했다는 게 안무가다웠다.
“아예 수준 이하인 애들도 있고.”
말을 덧붙이며 배우 이세진을 힐끗 보는 게 노골적이었다. 이세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나도 안무만 간신히 외운 수준이었는데 저쪽이 총알받이 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한 명쯤 질질 짜도 이상할 게 없을 수준의 피드백이 계속 이어졌다.
안무가는 거침없이 턱짓을 해댔다.
“너, 선아현이.”
“네, 네…….”
“너 현대무용 전공했다며. 근데 왜 표현하는 게 문대보다도 약한 것 같지?”
선아현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나는 저 발언이 절대 편집되지 않을 것 같다는 강렬한 예감이 들었다.
이 탈모 걸릴 놈이… 저거 지금 일부러 못하는 놈인 날 찍어다가 비교해서 충격 주려고 한 거지?
“쟤는 노래도 잘해. 너 여기가 오디션이니까 지금까지 평이 괜찮았던 거지. 데뷔하면 누가 사연 있으니까 얘는 이만큼만 해도 잘했다고 해주자고 할 것 같아?”
연예계만큼 스토리 텔링이 잘 먹히는 업계도 별로 없으면서 굉장히 냉철하게 실력으로만 판가름나는 곳인 것처럼 말하는군. 여전했다.
어쨌든 간에 선아현에게는 엄청난 타격을 줬는지,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건 좀 난감한데…….’
안 그래도 이상한 상태이상이 걸려 있는 놈인데, 더 악화돼서 자기 몫을 못하면 곤란했다.
“아무튼, 지금 수준은 그냥 좀 연습한 아마추어다. 이 곡에서 뭘 표현하고 싶은 건지 생각을 좀 하고 다음에는 볼만한 상태로 와라.”
“감사합니다…….”
삽시간에 걸레짝이 된 팀원들은 터덜터덜 평가실 밖으로 걸어나갔다. 이미 라이프가 제로인 몰골들이었다.
그러나 이어진 보컬 피드백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얘들아. 너희 뭘 하고 싶니?”
뮤디가 답답하고 안타깝다는 듯이 건반을 두들겼다.
이쪽은 정말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인신공격 대신 구체적 지시를 쏟아냈다.
“이 곡 꽃의 요정이 컨셉이잖아. 맑고 예쁘게 부르는 곡이야. 근데 너흰 그냥 음만 맞춰 부르고 있어. 대놓고 예쁘고 아련한 느낌이 전혀 없어. 그렇게 부르기 창피하니?”
“…….”
이 곡이 오디션 프로에 적합하지 않은 것 외에도, 솔직히 저 생각을 안 해본 팀원이 있을까 싶긴 했다. 고등학생 전후 나잇대의 놈들이니까.
하지만 솔직하게 쪽팔리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아무래도 오디션이다 보니까, 더 강한 느낌으로 편곡하고 싶었는데……, 곡 컨셉이 워낙 확실하니까 자연스럽게 강한 방향으로 바꾸기가 힘들어서요.”
“편곡이 힘들 것 같으면 원곡을 충실하게 더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이라도 했어야지.”
“…….”
뮤디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한 손을 휘휘 내저었다.
“얘들아. 일단 방향부터 잡아봐야겠다.”
그리고 제작진의 개입으로 즉석에서 팀원 토의가 시작되었다.
카메라가 정면에 다닥다닥 붙었고, 제작진들이 앞에 앉아 있는데 할 말도 못 나올 끔찍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문을 터야 할 테니, 완장 찬 놈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큰세진이었다.
“음, 우리 이틀간 굉장히 열심히 했잖아요. 덕분에 안무도 빨리 땄구요. 이제부터 그 기세로 곡에 몰입하면, 충분히 무대 퀄리티 있게 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준비한 듯이 자연스러운 다독임이었다. 이놈 봐라?
“우리 빼지 말고, 열심히 한 번 원곡 감성 살려봅시다! 약간 민망할 수도 있지만, 천연덕스럽게 저희가 잘하면 약간… 말랑달콤 선배님들 히트곡 느낌도 나고 재밌지 않을까요?”
“아, 문대가 했던 거처럼?”
“그거지! 좀 유머러스하게 청순하면 신선한 느낌도 들잖아요. 약간 비트 빠르게 해서 신나게 해 보면 어떨까요?”
결국, 청순한 여자 아이돌 곡을 뻔뻔하게 오버해서 오히려 말랑달콤 전성기의 병맛 큐티 컨셉처럼 소화하자는 말이었다.
‘…이건 진짜 준비한 거 같은데.’
그 순간 깨달았다. 이놈도 나처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일부러 트레이너 피드백까지 방치했군.’
다짜고짜 원곡대로 청순하게 가자고 말하면 반발하는 놈들이 분명 나올 테니까.
원곡에 더 어울리는 전공자인 선아현에게 메댄이 갈 가능성도 차단하고.
이렇게 회의 컷 뽑아서 리더 임팩트도 챙기고.
예사 솜씨가 아니었다.
하지만 안됐군. 이 녀석이 뭔 큰 그림을 그렸던 소용없을 것이다.
내 의견이 더 나았으니까.
일단 밑밥을 치자.
“아이디어는 좋은데, 잘못하면 원곡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안 그래도 선배 아이돌의 곡이다. 조금만 선 넘어서 우스꽝스럽게 보였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물론, 이 반대 의견도 상정 외는 아니었는지, 큰세진은 웃으며 반박했다.
“안 그래 보이도록 우리가 잘하면 되지!”
“문대 형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
갑자기 최원길이 급발진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음, 원길아?”
큰세진은 드물게 당황한 기색이었다.
지원 받는 사람보다 공격받는 내가 이득 보는 재밌는 전개다. 큰세진 큰 그림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리는군.
최원길은 그라데이션으로 분노에 찬 발언을 박문대에게 쏟아부었다. 카메라가 있다는 걸 순차적으로 까먹고 있나 보다.
“그러는 형은 뭐 좋은 의견 있으세요? 형이야 트레이너분들께서 좋게 봐주시니까 마음 편하실지 몰라도, 다른 팀원들 마음도 생각해주셔야죠. 그렇게 무작정 반대만 하시면…….”
오, 의외로 일리 있는 발언인데.
“아, 당연히 있지. 내 의견.”
“예……?”
“생각해 봤는데, 원곡 감성 살리면서 강렬하게 갈 방법… 있을 것 같은데요.”
“…?”
“그런 게 있냐?”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론에 다른 팀원들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풀린 분위기에 최원길이 순간 낭패 어린 표정을 짓는 것과 달리, 큰세진은 오히려 머쓱하게 뒷머리에 손을 올렸다.
이 자식은 진짜 보통이 아니다.
“진짜면 당연히 좋지만……, 뭔데?”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공포를 섞죠.”
“…!”
그냥 꽃의 요정이 아니라, 미국 간 꽃의 요정으로 가자.
느낌표와 함께하는 정적이 잠깐 지나간 후,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 어! 좋은 것 같은데?”
“야, 이 안무에 공포 컨셉 붙으면 진짜 무서울 것 같잖아!”
“오…….”
외운 안무를 손으로 대충 휘적거리며 유레카를 외치는 골드 1부터 병맛보단 그나마 낫다는 표정을 짓는 이세진까지, 수위는 다르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이 나잇대 아이돌 지망생이라면 보통 병맛보다 멋있는 걸 하고 싶을 테니 차라리 호러가 좋다고 할 줄 알았다.
큰세진도 짧게 감탄사를 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여론 보고 바로 방향을 선회했군.
“이렇게 바로 이야기하기 좀 민망하지만…… 문대 의견, 전 좋은데요?”
“와, 자기 의견을 버리고 갈아탔어!”
“역시 참 리더!”
순식간에 분위기가 밝아졌다. 와글와글 떠드는 팀원들 너머로 흐뭇한 표정의 뮤디가 보였다.
카메라가 뮤디도 잡는 걸로 봐서는 저 컷도 쓸 것 같긴 한데……. 잘 교차 편집돼서 나갔으면 좋겠군.
하지만 겨우 훈훈해진 컷 씬을 흐리는 한 놈이 있었다.
최원길은… 아슬아슬하지만 해당 사항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본인이 한 짓이 편집으로 어떻게 나갈지 걱정됐던 모양이다.
어떻게든 분위기에 탑승하려고 애쓰긴 하는데, 나한테 사과하기엔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지 눈도 안 마주치려고 애쓴다.
나라면 벌써 이 분위기에 묻어서 말 심했다고 말하고 끝냈다.
지금 상대가 받아줄 수밖에 없는 분위긴데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그런가, 사회생활을 모르네.
그렇다면 범인이 누구냐, 선아현이다.
“귀신! 귀신으로 하자! 사람 죽은 썰 붙은 꽃도 있잖아요.”
“무슨 공포영화야? 너무 본격적인데? 아! 영화 검은 백조 있잖아, 그렇게 섬뜩한 느낌으로 하면…….”
“와, 안무 그렇게 하면 진짜 무섭겠다.”
선아현은 이 조별과제 행복회로편 같은 상황 속에서 본인 혼자 우울한 표정으로 구석에 처박혀 있던 중이다.
“…….”
아마 안무가 트레이너가 한 말 때문에 멘탈이 나간 게 회복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참리더 이미지 컷 뽑으려고 큰세진이 나서지 않을까 잠시 희망찬 생각을 했지만, 그럴 기미도 없었다.
아무래도 선아현이 정신 차리면 전공자 버프로 메댄이라고 꿰찰까 봐 내버려 두는 것 같다.
나머진 머리가 해맑거나 사회성 없는 놈들뿐이니, 결국 말 꺼낼 건 포지션 안 겹쳐서 견제할 필요 없는 나뿐인가.
이렇게 귀찮을 수가……. 팔자에 없던 멘탈 지킴이 짓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허탈해졌다.
어쨌든 무대 퀄리티 한 단계가 아쉬운 시점이다. 말이라도 꺼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