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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25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5화
‘저놈이 이런 수작을 부렸다고?’
좀 이상한 일이었다.
큰세진이 상황 판단이 빠르고 자기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모는 놈인 건 안다.
하지만 굳이 카드에 수작까지 부려서 유닛을 고를 놈이었나?
혹시 들킬 수도 있다는 위험까지 감수하느니,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자기 유리하게 끌어갔을 것 같은데.
‘겨우 배세진 피하고 싶다고 저럴 것 같지도 않고.’
흠, 영 개운하지가 않다.
그러나 이걸 추궁하기도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숙소에 카메라 깔린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제 살 깎아 먹는 짓이었다.
그리고 사실이라도 뭐라 하기 그렇지 않은가. 콘서트 일회성 유닛 좀 자기 원하는 대로 슬쩍 했다고 뭐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니까.
괜히 분위기만 조질 확률이 높았다.
‘…일단은 넘어갈까.’
나는 이제 예전 방이 된 1번 방의 침대로 갔다. 큰세진이 이제 자기 방이 될 곳을 구경하는 것처럼 슬슬 따라 들어왔다.
“오, 나 문대 침대 써야지. 문대야, 내 침대를 너에게 인계하도록 하마.”
“…어딘데.”
“뭐야, 까먹었어? 제일 왼쪽이잖아~”
“그래. 거긴 피해야겠다.”
“헉, 너무 황송해서 못 쓰겠어? 괜찮아, 문대야. 사양하지 말고 편하게 써~”
“…….”
아주 평소 그대로군.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짐을 챙겨서 1번 방을 나왔다.
‘혹시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때 말 꺼내도 되겠지.’
그리고 그 타이밍은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찾아왔다.
바로 며칠 뒤 시상식이었다.
* * *
한대음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마지막 대형 시상식이었다.
하지만 몇몇 대형가수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투어 스케줄과 겹쳤기 때문인 것 같다.
즉, VTIC도 안 왔다는 뜻이다.
‘…오함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VTIC 청려 선배님 : 이번이 거의 마지막 같네요. 신인상 축하해요^^]
“…….”
정신적 오함마에 얻어맞는 기분이군.
단문으로 답장하고 스마트폰을 껐다. 그러자 큰세진이 아는 척을 했다.
“청려 선배님이랑 계속 연락해?”
“……어.”
“흠~ 그래그래.”
큰세진은 뭔가 더 말을 덧붙이려는 것 같았으나, 그보다 먼저 시상식 대기실에 도착했다.
대기실 문 앞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자이롭 / 테스타]
이번에는 단독 대기실이 아니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성적 덕분에 신인치고 대기실을 너무 잘 받았던 거긴 하지.’
웬만큼 떠도 대기실 부족한 환경에서는 그냥 칸막이 두고 대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두 그룹에 하나도 사실 사정이 좋은 편이고.’
흠, 그래서 이번에 함께 대기하는 건…… 유명한 소속사 출신의 남자 아이돌이다.
‘삼사 년쯤 선배인가.’
예상 가능한 라인업이었다.
류청우가 멤버들에게 가볍게 당부했다.
“음, 들어가면서 인사 잘하자.”
“넵!”
하지만 평범한 다른 멤버들의 반응과 달리, 바로 옆의 큰세진이 동요했다.
“…! …음.”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이놈들 소속사랑 데뷔 날짜를 계산해 보면…….’
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니저에 의해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아~ 안녕하세요~”
별 특색 없는 인사가 오가는가 싶더니, 곧 자이롭 놈들이 과장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 세진이!”
“잘 지냈어?”
역시 그랬군.
아무래도 이쪽이 전 큰세진의 짧은 탈선의 원인인 ‘그’ 그룹인 게 맞는 것 같다.
큰세진이 데뷔 직전에 솎아내졌다던, 첫 소속사의 첫 데뷔조 말이다.
“와~ 안녕하세요. 선배님~ 진짜 반갑습니다!”
“야, 선배님은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에이, 어떻게 그래요~”
큰세진은 웃으며 몇몇 놈들과 악수를 하고 주먹을 부딪쳤다. 썩 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큰세진이 큰세진처럼 구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얼굴이다. 워낙 사교성이 좋은 놈이니까.
다만 그다음부터는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세진이 어, 톡도 잘 안 보고 말이야. 형 서운하게.”
“아이, 아시잖아요~ 데뷔하니까 너무 바빠서!”
“그래. 세진이 너 지금이라도 바빠져서 좋겠어~ 생각보다 많이 늦었잖아! 운이 좋았네.”
‘어쭈?’
이놈들 은근히 큰세진이 그동안 데뷔에 실패했다고 비꼬고 있다.
큰세진은 벙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좋죠~ 선배님들 자주 톡 주시는데 답장 늦어서 죄송해요! 제가 일이 바빠서 잘 안 맞네요.”
너희 스케줄 없어서 X나 한가하냐는 뜻이다.
“…아니, 뭐, 자주 한 건 아니었잖아? 그냥 너 뭐 하나 궁금해서 했지.”
“어? 요새 여기저기 많이 나와서 제 근황 알기 편하지 않으세요? 저한테도 가끔은 선배님들 근황도 알려주세요~ 제가 다 궁금하네.”
“…….”
와, 저놈들 직전 활동이 부진해서 성적 관련 소식 없는 걸 이렇게 돌려 깔 수도 있군.
어떻게 봐도 큰세진의 판정승이었다.
그리고 이쯤 되니 김래빈을 제외한 대부분의 멤버가 상황을 파악했는지 눈을 굴리고 있었다.
자이롭의 멤버들은 표정이 썩기 직전이었다.
“…그래. 올해는 알기 싫어도 우리 소식 잘 알게 될 거야~”
“그래요? 이야, 기대되네요! 저희 테스타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
이건 순수하게 체급 차로 뭉개버렸고.
결국, 자이롭 멤버들은 억지로 웃으며 인사를 마쳤다.
“그래. 우리 서로 열심히 하자.”
“넵!”
그렇게 대화가 끝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뒤에서 멀뚱히 서 있던 자이롭 멤버 하나가 끼어들었다.
“근데 테스타 소식밖에 못 들었는데? 너 소식은 잘 모르는데?”
“……!”
의외였던 점은, 큰세진이 이 별거 아닌 말에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는 점이다.
큰세진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으나, 별다른 반박을 내놓는 대신 입을 닫고 있었다.
‘어?’
그리고 여기서 김래빈이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려서 발언했다.
참고로 참지 못한 건 열 받음이 아니라 순수한 논리적 오류였다.
얘는 상황을 몰라서 열 받지도 못했다.
“…? 세진 형이 테스타시니까, 테스타 소식이 형 소식 아닙니까?”
“맞아요!”
차유진이 냉큼 동의했다.
하지만 자이롭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룹 이야기만 들리고 이세진 이야기는 잘 안 들리니까~”
“……? 아, 저희는 그룹 활동 외에 개인 활동은 한 적이 없습니다. 테스타의 소식을 세진 형님의 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래빈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자이롭의 말이 억지가 됐다.
끝났군.
‘정리할까.’
나는 웃으며 끼어들었다.
“예. 앞으로는 테스타 소식 들을 때마다 이세진을 떠올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맞지?”
“정확하십니다!”
뿌듯한 김래빈의 얼굴과 반대로 자이롭의 얼굴은 완전히 썩었다.
“……아, 그래요.”
아무리 선배라지만 이 새끼들도 시상식까지 와서 체급도 큰 그룹한테 지랄할 배짱은 없는지, 대화는 그대로 끝났다.
하지만 큰세진의 상태는 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놈 진짜 좀 이상한데.’
한 시간째 말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큰세진은 더럽게 위화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방금 상황과 며칠 전 유닛 카드 사태와 연결하니 의심 가는 지점이 생겼고.
‘……이대로 두긴 애매한데.’
큰세진은 마이크를 잡는 일이 많았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수상소감을 말해야 할 타이밍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지금 털고 가는 게 나았다.
“…차에 잠깐 다녀올게.”
“어?”
“뭐 두고 와서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매니저에게 키를 받아왔다.
“내가 찾아다 줘?”
“괜찮아요. 얼른 갔다올게요.”
그리고 문 근처에 앉아 있던 큰세진을 툭툭 쳤다.
“야, 가자.”
“……응? 뭐라고?”
“옮길 게 있어서 한 명 더 필요할 것 같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
큰세진은 말없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만 웃으며 일어섰다.
“…그래~”
어딘가 빈정 상한 게 분명해 보였지만, 일단은 이동부터 하자.
그리고 이놈과 말없이 복도를 걸어서 차에 도착했다.
“…….”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차에 타고 나서 입을 열었다.
“너 뭐 최근에 문제 있냐?”
“……후.”
큰세진은 차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본인을 불러낸 목적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아니.”
“……그래? 그럼 머리 좀 식히고 올라가라. 너 대기실 불편한 것 같던데.”
“……!”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차를 뒤져서 목 베개를 찾아냈다.
대충 이거 찾으러 왔다고 하면 되겠지.
“대충 변명해 둘 테니까, 시간 전에만 돌아와. 그럼.”
“…….”
나는 차 문을 잡았다. 그러자 뒤에서 큰세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 이게 좀, 힘드네.”
“문제가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문제……라고 해야 하나 이걸.”
큰세진은 뭐라 말하기 힘든지, 계속 침묵이 이어졌다.
‘그냥 말하는 편이 낫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너 유닛 카드 고르는 거 봤다. …너 3번 카드 알고 피했지.”
“……!”
“…3명이 하면 2명보다 분량이 줄어서 그랬냐?”
아까 ‘너 말고 그룹이 잘 나가는 거지~’같은 말에 타격을 받는 걸 보니, 자기를 보여줄 부분이 줄어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나 싶었다.
하지만 큰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너랑 배세진 형이라 빠진 거야. 그 인원으로는 춤을 보여주기 어려울 테니까.”
“…!”
“뻔하지. 널 중심으로 보컬 위주 퍼포먼스 곡을 짰을 거고… 난 댄스 브레이크 센터 정도 받고 끝이겠지. 그것마저 그 형에게 맞추어 줘야 하니까 난이도가 평이했을 것 같은데.”
“……널 중심으로 댄스에 도전해 봤을 수도 있지.”
“하하. 아이고 문대야. 니가 팬들 돈 쓰는 콘서트 두고 퍽이나 그런 모험을 했겠다.”
“…….”
“그리고 혹시 나한테 맞춰서 댄스 위주로 구성했어도, 팬들 별로 안 좋아했을걸.”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미치겠네.”
큰세진은 한숨을 몇 번 쉬더니, 여러 번 주저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자신의 검색 방지용 이름으로 검색된… SNS 결과였다.
-까놓고 말해서 댄스라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 아혅이가 원탑이잖아 윾진이야 센터롤이고ㅋㅋㅋ 빅버드 빠들이 아득바득 댄스라인 미는 거 보면 역겨움
-아혅이 더듬는 거만 다 고치면 드디어 빅버드씨 소감 안 봐도 되는 거지? 휴 다행
-솔직히 국데도 춤 잘 추잖아 댄스라인 의미 없죠 빅버드 양심 있으면 빠져 어딜 아혅이한테 비벼ㅋㅋ
-빅버드… 대체 포지션이..? 인싸인 척 하는 게 포지션인가?ㅎㅎ
“…….”
“원래 이렇게 검색하면 욕만 나온다고 하진 말자. 이렇게 일괄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정말 어느 정도는 팬들 여론이라는 뜻이니까.”
큰세진은 침착했다.
나는 SNS를 밑으로 더 내려서,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확인했다.
‘…선아현이 너무 인상적이었군.’
백덤블링으로 사고를 수습하고, 말더듬까지 극복 중인 인상적인 모습 때문에 선아현의 능력에 대한 위상이 확 치솟은 것이다.
그리고 같은 댄스 라인 중 차유진은 워낙 인기가 많고, 끼가 대단해서 센터 포지션이 확실했다.
그러다 보니 큰세진만 붕 떴다.
원래 큰세진을 시큰둥하게 보던 팬들은 그 지점을 대단히 크게 느낀 모양이었다.
“물론 날 싫어하는 사람들 위주의 생각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포지션 인상에서 밀리는 건 사실이야.”
“…….”
“아현이가 잘하는 거? 좋지. 그룹에도 잘된 일이야. 근데 내가 이 상태인 건 못 참겠거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차유진을?”
“그래.”
큰세진이 스마트폰을 돌려받았다.
“이번에 유닛 무대에서 차유진보다 잘해야겠어.”
“…….”
“일대일 비교가 가능할 테니까. …그것밖에는 탈출로가 안 보이는데, 안 그래?”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5화

‘저놈이 이런 수작을 부렸다고?’

좀 이상한 일이었다.

큰세진이 상황 판단이 빠르고 자기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모는 놈인 건 안다.

하지만 굳이 카드에 수작까지 부려서 유닛을 고를 놈이었나?

혹시 들킬 수도 있다는 위험까지 감수하느니,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자기 유리하게 끌어갔을 것 같은데.

‘겨우 배세진 피하고 싶다고 저럴 것 같지도 않고.’

흠, 영 개운하지가 않다.

그러나 이걸 추궁하기도 상황이 영 좋지 않았다.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숙소에 카메라 깔린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제 살 깎아 먹는 짓이었다.

그리고 사실이라도 뭐라 하기 그렇지 않은가. 콘서트 일회성 유닛 좀 자기 원하는 대로 슬쩍 했다고 뭐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니까.

괜히 분위기만 조질 확률이 높았다.

‘…일단은 넘어갈까.’

나는 이제 예전 방이 된 1번 방의 침대로 갔다. 큰세진이 이제 자기 방이 될 곳을 구경하는 것처럼 슬슬 따라 들어왔다.

“오, 나 문대 침대 써야지. 문대야, 내 침대를 너에게 인계하도록 하마.”

“…어딘데.”

“뭐야, 까먹었어? 제일 왼쪽이잖아~”

“그래. 거긴 피해야겠다.”

“헉, 너무 황송해서 못 쓰겠어? 괜찮아, 문대야. 사양하지 말고 편하게 써~”

“…….”

아주 평소 그대로군.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짐을 챙겨서 1번 방을 나왔다.

‘혹시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때 말 꺼내도 되겠지.’

그리고 그 타이밍은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찾아왔다.

바로 며칠 뒤 시상식이었다.

* * *

한대음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마지막 대형 시상식이었다.

하지만 몇몇 대형가수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투어 스케줄과 겹쳤기 때문인 것 같다.

즉, VTIC도 안 왔다는 뜻이다.

‘…오함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문자가 왔다.

“…….”

정신적 오함마에 얻어맞는 기분이군.

단문으로 답장하고 스마트폰을 껐다. 그러자 큰세진이 아는 척을 했다.

“청려 선배님이랑 계속 연락해?”

“……어.”

“흠~ 그래그래.”

큰세진은 뭔가 더 말을 덧붙이려는 것 같았으나, 그보다 먼저 시상식 대기실에 도착했다.

대기실 문 앞에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번에는 단독 대기실이 아니던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성적 덕분에 신인치고 대기실을 너무 잘 받았던 거긴 하지.’

웬만큼 떠도 대기실 부족한 환경에서는 그냥 칸막이 두고 대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두 그룹에 하나도 사실 사정이 좋은 편이고.’

흠, 그래서 이번에 함께 대기하는 건…… 유명한 소속사 출신의 남자 아이돌이다.

‘삼사 년쯤 선배인가.’

예상 가능한 라인업이었다.

류청우가 멤버들에게 가볍게 당부했다.

“음, 들어가면서 인사 잘하자.”

“넵!”

하지만 평범한 다른 멤버들의 반응과 달리, 바로 옆의 큰세진이 동요했다.

“…! …음.”

……잠깐만.

‘그러고 보니, 이놈들 소속사랑 데뷔 날짜를 계산해 보면…….’

하지만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니저에 의해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아~ 안녕하세요~”

별 특색 없는 인사가 오가는가 싶더니, 곧 자이롭 놈들이 과장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 세진이!”

“잘 지냈어?”

역시 그랬군.

아무래도 이쪽이 전 큰세진의 짧은 탈선의 원인인 ‘그’ 그룹인 게 맞는 것 같다.

큰세진이 데뷔 직전에 솎아내졌다던, 첫 소속사의 첫 데뷔조 말이다.

“와~ 안녕하세요. 선배님~ 진짜 반갑습니다!”

“야, 선배님은 무슨! 그냥 형이라고 불러~”

“에이, 어떻게 그래요~”

큰세진은 웃으며 몇몇 놈들과 악수를 하고 주먹을 부딪쳤다. 썩 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큰세진이 큰세진처럼 구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얼굴이다. 워낙 사교성이 좋은 놈이니까.

다만 그다음부터는 분위기가 살짝 달라졌다.

“세진이 어, 톡도 잘 안 보고 말이야. 형 서운하게.”

“아이, 아시잖아요~ 데뷔하니까 너무 바빠서!”

“그래. 세진이 너 지금이라도 바빠져서 좋겠어~ 생각보다 많이 늦었잖아! 운이 좋았네.”

‘어쭈?’

이놈들 은근히 큰세진이 그동안 데뷔에 실패했다고 비꼬고 있다.

큰세진은 벙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좋죠~ 선배님들 자주 톡 주시는데 답장 늦어서 죄송해요! 제가 일이 바빠서 잘 안 맞네요.”

너희 스케줄 없어서 X나 한가하냐는 뜻이다.

“…아니, 뭐, 자주 한 건 아니었잖아? 그냥 너 뭐 하나 궁금해서 했지.”

“어? 요새 여기저기 많이 나와서 제 근황 알기 편하지 않으세요? 저한테도 가끔은 선배님들 근황도 알려주세요~ 제가 다 궁금하네.”

“…….”

와, 저놈들 직전 활동이 부진해서 성적 관련 소식 없는 걸 이렇게 돌려 깔 수도 있군.

어떻게 봐도 큰세진의 판정승이었다.

그리고 이쯤 되니 김래빈을 제외한 대부분의 멤버가 상황을 파악했는지 눈을 굴리고 있었다.

자이롭의 멤버들은 표정이 썩기 직전이었다.

“…그래. 올해는 알기 싫어도 우리 소식 잘 알게 될 거야~”

“그래요? 이야, 기대되네요! 저희 테스타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

“…….”

이건 순수하게 체급 차로 뭉개버렸고.

결국, 자이롭 멤버들은 억지로 웃으며 인사를 마쳤다.

“그래. 우리 서로 열심히 하자.”

“넵!”

그렇게 대화가 끝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뒤에서 멀뚱히 서 있던 자이롭 멤버 하나가 끼어들었다.

“근데 테스타 소식밖에 못 들었는데? 너 소식은 잘 모르는데?”

“……!”

의외였던 점은, 큰세진이 이 별거 아닌 말에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는 점이다.

큰세진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으나, 별다른 반박을 내놓는 대신 입을 닫고 있었다.

‘어?’

그리고 여기서 김래빈이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려서 발언했다.

참고로 참지 못한 건 열 받음이 아니라 순수한 논리적 오류였다.

얘는 상황을 몰라서 열 받지도 못했다.

“…? 세진 형이 테스타시니까, 테스타 소식이 형 소식 아닙니까?”

“맞아요!”

차유진이 냉큼 동의했다.

하지만 자이롭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그룹 이야기만 들리고 이세진 이야기는 잘 안 들리니까~”

“……? 아, 저희는 그룹 활동 외에 개인 활동은 한 적이 없습니다. 테스타의 소식을 세진 형님의 소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김래빈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자이롭의 말이 억지가 됐다.

끝났군.

‘정리할까.’

나는 웃으며 끼어들었다.

“예. 앞으로는 테스타 소식 들을 때마다 이세진을 떠올려주시면 되겠습니다. 맞지?”

“정확하십니다!”

뿌듯한 김래빈의 얼굴과 반대로 자이롭의 얼굴은 완전히 썩었다.

“……아, 그래요.”

아무리 선배라지만 이 새끼들도 시상식까지 와서 체급도 큰 그룹한테 지랄할 배짱은 없는지, 대화는 그대로 끝났다.

하지만 큰세진의 상태는 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놈 진짜 좀 이상한데.’

한 시간째 말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큰세진은 더럽게 위화감을 조성했다.

…그리고 방금 상황과 며칠 전 유닛 카드 사태와 연결하니 의심 가는 지점이 생겼고.

‘……이대로 두긴 애매한데.’

큰세진은 마이크를 잡는 일이 많았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수상소감을 말해야 할 타이밍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지금 털고 가는 게 나았다.

“…차에 잠깐 다녀올게.”

“어?”

“뭐 두고 와서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매니저에게 키를 받아왔다.

“내가 찾아다 줘?”

“괜찮아요. 얼른 갔다올게요.”

그리고 문 근처에 앉아 있던 큰세진을 툭툭 쳤다.

“야, 가자.”

“……응? 뭐라고?”

“옮길 게 있어서 한 명 더 필요할 것 같다. 사진도 찍어야 하고.”

“…….”

큰세진은 말없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입만 웃으며 일어섰다.

“…그래~”

어딘가 빈정 상한 게 분명해 보였지만, 일단은 이동부터 하자.

그리고 이놈과 말없이 복도를 걸어서 차에 도착했다.

“…….”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차에 타고 나서 입을 열었다.

“너 뭐 최근에 문제 있냐?”

“……후.”

큰세진은 차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본인을 불러낸 목적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아니.”

“……그래? 그럼 머리 좀 식히고 올라가라. 너 대기실 불편한 것 같던데.”

“……!”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차를 뒤져서 목 베개를 찾아냈다.

대충 이거 찾으러 왔다고 하면 되겠지.

“대충 변명해 둘 테니까, 시간 전에만 돌아와. 그럼.”

“…….”

나는 차 문을 잡았다. 그러자 뒤에서 큰세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미안. 이게 좀, 힘드네.”

“문제가 있다는 걸로 들리는데.”

“문제……라고 해야 하나 이걸.”

큰세진은 뭐라 말하기 힘든지, 계속 침묵이 이어졌다.

‘그냥 말하는 편이 낫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너 유닛 카드 고르는 거 봤다. …너 3번 카드 알고 피했지.”

“……!”

“…3명이 하면 2명보다 분량이 줄어서 그랬냐?”

아까 ‘너 말고 그룹이 잘 나가는 거지~’같은 말에 타격을 받는 걸 보니, 자기를 보여줄 부분이 줄어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나 싶었다.

하지만 큰세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천천히 다음 말을 이었다.

“너랑 배세진 형이라 빠진 거야. 그 인원으로는 춤을 보여주기 어려울 테니까.”

“…!”

“뻔하지. 널 중심으로 보컬 위주 퍼포먼스 곡을 짰을 거고… 난 댄스 브레이크 센터 정도 받고 끝이겠지. 그것마저 그 형에게 맞추어 줘야 하니까 난이도가 평이했을 것 같은데.”

“……널 중심으로 댄스에 도전해 봤을 수도 있지.”

“하하. 아이고 문대야. 니가 팬들 돈 쓰는 콘서트 두고 퍽이나 그런 모험을 했겠다.”

“…….”

“그리고 혹시 나한테 맞춰서 댄스 위주로 구성했어도, 팬들 별로 안 좋아했을걸.”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미치겠네.”

큰세진은 한숨을 몇 번 쉬더니, 여러 번 주저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자신의 검색 방지용 이름으로 검색된… SNS 결과였다.

-까놓고 말해서 댄스라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 아혅이가 원탑이잖아 윾진이야 센터롤이고ㅋㅋㅋ 빅버드 빠들이 아득바득 댄스라인 미는 거 보면 역겨움

-아혅이 더듬는 거만 다 고치면 드디어 빅버드씨 소감 안 봐도 되는 거지? 휴 다행

-솔직히 국데도 춤 잘 추잖아 댄스라인 의미 없죠 빅버드 양심 있으면 빠져 어딜 아혅이한테 비벼ㅋㅋ

-빅버드… 대체 포지션이..? 인싸인 척 하는 게 포지션인가?ㅎㅎ

“…….”

“원래 이렇게 검색하면 욕만 나온다고 하진 말자. 이렇게 일괄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정말 어느 정도는 팬들 여론이라는 뜻이니까.”

큰세진은 침착했다.

나는 SNS를 밑으로 더 내려서, 전체적인 흐름을 다시 확인했다.

‘…선아현이 너무 인상적이었군.’

백덤블링으로 사고를 수습하고, 말더듬까지 극복 중인 인상적인 모습 때문에 선아현의 능력에 대한 위상이 확 치솟은 것이다.

그리고 같은 댄스 라인 중 차유진은 워낙 인기가 많고, 끼가 대단해서 센터 포지션이 확실했다.

그러다 보니 큰세진만 붕 떴다.

원래 큰세진을 시큰둥하게 보던 팬들은 그 지점을 대단히 크게 느낀 모양이었다.

“물론 날 싫어하는 사람들 위주의 생각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포지션 인상에서 밀리는 건 사실이야.”

“…….”

“아현이가 잘하는 거? 좋지. 그룹에도 잘된 일이야. 근데 내가 이 상태인 건 못 참겠거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차유진을?”

“그래.”

큰세진이 스마트폰을 돌려받았다.

“이번에 유닛 무대에서 차유진보다 잘해야겠어.”

“…….”

“일대일 비교가 가능할 테니까. …그것밖에는 탈출로가 안 보이는데,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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