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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12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화
“야하~ 우리 너무 좋은데요? 실력 좋은 사람도 많고, 잘생긴 사람도 많고!”
골드 등급 이세진이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모두 쑥스러워하면서도 정말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있는 대로 화목한 척해도 모자랄 타이밍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근데, 아, 세진 배우님. 우리 이름이 똑같아서……. 어떻게 좀 차별화를 줄까요?”
“예?”
“어 그거 좋다!”
“그치? 그럼 배우님이시니까, 배세진 어떨까요?”
1번째로 합류한 골드 등급 참가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더했다.
“야, 그럼 너는 덩치만 크니까 큰세진 해라.”
“큰세진? 야 좋다, 콜! 어떠세요? 세진 형님?”
“…….”
아역배우 이세진이 뭘 참는 것처럼 입을 꾹 깨물더니, 툭 이야기했다.
“전 그냥 이름이 좋은데요.”
“…….”
“아…, 그러시구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골드 등급 이세진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앗 좋습니다. 그러면 형 동생들, 저를 앞으로 큰세진으로 불러주세요~”
“좋아용~”
“별명 좋네!”
짝짝짝, 박수를 치며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이어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할 때 즈음, 또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참가자분들, 서로 인사는 다 나누셨나요?”
“제발 선곡은 마음대로 좀.”
팀원 중 하나가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럼 이제……. 선곡 뽑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와…….”
“선곡도 랜덤…….”
다들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MC는 휘휘 손을 내저으며 익살맞게 말했다.
“에이, 여러분! 여러분이 고른 기획사의 대표 아이돌들의 히트곡 중에 뽑는 겁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그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분위기가 그나마 나아졌다.
“자, 앞에 있는 팻말에서 대표곡이 돌아가는 데요, 멈추고 싶으실 때 스위치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팻말에 가장 먼저 합류한 참가자분,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팀원들이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형님, 믿습니다!”
“갓띵곡만이 살 길!”
“휴, 또 내가 능력을 보여야 되는 건가.”
첫 번째 참가자가 성원과 함께 거드름을 피우며 팻말 앞으로 나갔다.
“자, 준비하시고… 쏘세요!”
“와악!”
팀원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곧바로 스위치를 눌렀다. 옆에서 큰세진(본인이 자초했으니 앞으로 이렇게 지칭할 예정이다)이 중얼거렸다.
“아니, 좀 보고 누르지…….”
팻말은 둥둥둥 천천히 돌아가며 몇 개의 노래 제목을 보여줬다.
[산군 / VTIC]
[LIFE / VTIC]
[영원할 노래 / VTIC]
VTIC. 현재 가장 음반을 많이 파는 남자 아이돌이다.
“다 괜찮은데… 제발.”
저 끝에서 최원길이 간절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묵묵히 화면이 멈추길 기다렸다.
화면은 천천히 멈추었다.
[새로운 세상으로 / 말랑달콤]
“…?”
“……??”
“……!?”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X노보노 눈이 되어서 팻말을 바라보았다.
“오, 오륜가?”
팻말을 만진 팀원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작진에게서는 아무런 사인이 없었다.
진짜라는 뜻이었다.
“여자 아이돌도 포함이에요?”
“여돌 곡도 있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비슷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물론 우리만큼 강한 반응은 아니었다.
팀원들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어… 그러니까, 꽃의 요정이었나?”
“그… 어, 데뷔곡, 으응.”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는 꽃의 요정을 표방하는 청순하고 몽환적인 곡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데뷔곡이다. 말랑달콤이 확 뜬 병맛 큐티 컨셉을 잡기 전에 발표한, 공중파 1위를 해본 적 없는 곡.
“아! 감사합니다!”
“대박!!”
주변에서는 좋은 곡이 걸린 듯 환호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명곡이 가득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절정은 여기서 나왔다.
“아아아악!!”
“형! 형!!”
우리 팻말의 다음 팀이 VTIC의 ‘산군’을 뽑은 것이다.
참고로 저 곡, 두 달 전 국내 최대음원사이트 시상식에서 대상 받은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지금 뽑을 수 있는 곡 중에 가장 핫한 곡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다들 끌어안고 난리도 아니었다. 팀원 등급이 낮아서 잠깐 사이 맘고생을 했는지, 벌써 이긴 것처럼 분위기가 좋아졌다.
“…….”
그리고 우리 쪽은 급격히 말이 없어졌다. 충격에서 다들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어떠냐고?
‘이걸 피하네.’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기획사 팻말을 안일하게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VTIC의 ‘산군’?
안 하느니만 못하다.
운 좋게 피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대진 운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들 아직 못 깨달은 것 같지만.’
나는 우울하게 모이는 팀원들을 보며,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위기감이 들면 좀 협조적으로 나와주겠지.
* * *
“키가 안 맞는데요.”
협조적으로 나올 거라고 내가 생각했던가? 과한 기대감이었다고 정정하고 싶다.
다 포기한 듯이 구는 놈이 벌써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원길아, 그래도 한 번 다시 해보면…….”
“몇 번 다시 해봤는데, 다시 해도 안 되는 게 될 것 같지는 않아서요…….”
최원길은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슬쩍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원래 여자곡인데 남자 키로 바꿔서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아예 높은 파트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내 쪽을 보는 것이다.
‘내 파트 달라는 말이군.’
나는 골드 등급 세 사람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일찌감치 메인보컬 배지를 달고 있었다.
등급이 낮아서인지 최원길은 입도 벙긋 못하고 내가 배지를 다는 걸 보기만 했다.
그러다 발 뻗을 자리가 보이니 핀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까?”
“……!”
큰세진이 내 허벅지를 쳤다. 이게 진짜…….
“야, 애한테 괜히 장난치지 말고. 이럴 때는 자기 파트 소화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뭐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사람 말을 농담으로 푼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역시 그냥 넉살 좋은 놈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의구심을 숨기며 다시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진짜 바꿔도 상관없어. 할 거면 안무 익히기 전에 초반에 해야지.”
“저, 정말요?”
“어.”
나는 태평하게 말을 맺었다. 최원길은 몹시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내가 말을 바꿀까 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저 1절 후렴 하고 싶은데…….”
“좋아. 그럼 브릿지 파트는 내가 하는 걸로.”
“네?”
“파트 바꾸자며. 너 안 된다는 게 거기잖아.”
최원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못하겠다는 파트를 가져간다는데도 아까운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후렴구를 가져가고 싶어서 떠들었지만 내심 자기 파트를 놓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원래 이 정도로 갈무리 못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실버로 떨어진 게 기폭점이 되었나. 좀 맛이 갔다.
큰세진은 나와 최원길을 번갈아 보더니, 들릴 듯 말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그려둔 그림에서는 내가 1절 후렴구를 했나 보군.’
그리곤 아닌 척 활기차게 말을 이었다.
“자, 그럼 파트는 이대로 가고.”
남은 메인 포지션이 하나 있었다. 골드 등급 참가자들이 아닌 척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메인 댄서만 정하면 되는 거네.”
큰세진이 말을 더 하기 전에, 나는 손을 들었다.
“아, 나 의견 있다.”
“어?”
“다들 괜찮으시면, 메인댄서 정하기 전에 편곡 방향부터 정하고 싶습니다.”
“…어?”
편곡.
가장 중요한 화두였음에도 다들 무의식중에 피하고 있던 화제였다.
‘새로운 세상으로’는 청순한 여자 아이돌 곡이다.
그리고 ‘청순’은…… 굉장히 소화하기 힘든 컨셉이었다.
예쁘기만 하면 쉽게 가능하다고 흔히들 착각하지만, 그건 정말로 착각이 맞다.
강렬하기 쉽지 않은 컨셉이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무대에서 그런 곡으로 관객들에게 각인되려면 말도 안 되게 실력이 좋거나, 끼가 특출나야 했다.
아마 다들 거기까지는 생각했는지, 편곡 의견은 일단 이렇게 시작했다.
“좀…… 가사를 바꿔서 강렬하게 가는 건 어때?”
“비트 세게 넣어서요?”
“응. 새로운 세상으로~ 하는 걸 이렇게 포부 넘치게 딱! 하는 거지.”
첫 번째 골드…, 이렇게 부르는 것도 귀찮다. 적당히 골드 1이라고 부를까.
그래서, 이건 골드 1이 낸 의견이었다. 생각 있는 서바이벌 참가자라면 떠올릴 만한 내용이다.
강렬하게 바꾸기.
문제는 이 곡이 저 말대로 ‘포부 넘치는’ 느낌을 주는 건 어지간해서는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가사는 이렇다.
-어느 순간부턴가 깨달았어
불완전한 시간 속을 헤매는 나를
멈출 수 없는 이 시간의 미로
그 속에 갇힌 나를 구해줘
점점 시들어가
이 안의 작은 공간 (Little Flower~)
다시 꽃 필 날을 기다리니까
어서 나를 찾아와줘
여기까지가 1절 벌스다.
포부 넘치게 하고 싶다면 가사를 더 화자 중심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데, 그럼 프리 코러스부터 곡의 스토리가 엉망진창이 된다.
이 곡 후렴구는 상대에게 빨리 다가와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두 걸음
네가 오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데
망설이지 말고 손 내밀어줘
이제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Come to me
Come to me
널 향한 사랑의 Melody (계속돼)
“그럼 ‘새로운 세상으로’ 다음 가사인 ‘Come to me’도 고쳐야 하나?”
“어…, ‘come to you’로 하면…….”
골드 1이 뒷말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문제가 그것뿐만이 아닌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러면 ‘나를 구해줘’부터 다 고쳐야 하지 않냐?”
“으음.”
그렇다. 후렴이 워낙 청자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빨리 다가가겠다고 고치면 또 다음 가사의 뉘앙스가 뭉개진다.
“이렇게 가려면 전체적으로 다 고쳐야겠네.”
“네, …근데 너무 바꾸면 형평성에 걸릴 수도.”
그렇게 다 뜯어고치는 걸 과연 상대 팀이나 제작진들이 용납해 줄지도 문제였다.
“…….”
슬슬 심각성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팀원들이 말이 없어졌다.
큰세진이 얼른 끼어들어 화제를 바꿨다.
“편곡은 선생님들께 이야기해 보고 정하는 게 어떨까요? 피드백 받기 좋게 빨리 안무부터 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문대야 괜찮아?”
“어, 괜찮아. 그러자.”
나는 순순히 납득해 줬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 편곡 얘기를 꺼낸 건 충격을 주려는 의도였다.
더 절박한 분위기를 조성할수록 내가 편곡 의견을 낼 때 딴소리가 안 나올 테니까.
물론 이렇게까지 안 해도 안무 영상을 보면 다들 상황을 파악할 것 같긴 했지만.
“오케이, 그럼 안무 틉니다!”
큰세진의 주도하에 안무 영상을 재생하자, 다들 일단 태블릿PC 화면에 머리를 들이댔다.
아마 후렴구는 어디서 들어봤어도 안무를 자세히 기억하는 팀원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안무 영상이 시작된 지 15초도 지나지 않아 다들 침음성을 냈다.
“아…….”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2화

“야하~ 우리 너무 좋은데요? 실력 좋은 사람도 많고, 잘생긴 사람도 많고!”

골드 등급 이세진이 벙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모두 쑥스러워하면서도 정말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있는 대로 화목한 척해도 모자랄 타이밍이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근데, 아, 세진 배우님. 우리 이름이 똑같아서……. 어떻게 좀 차별화를 줄까요?”

“예?”

“어 그거 좋다!”

“그치? 그럼 배우님이시니까, 배세진 어떨까요?”

1번째로 합류한 골드 등급 참가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더했다.

“야, 그럼 너는 덩치만 크니까 큰세진 해라.”

“큰세진? 야 좋다, 콜! 어떠세요? 세진 형님?”

“…….”

아역배우 이세진이 뭘 참는 것처럼 입을 꾹 깨물더니, 툭 이야기했다.

“전 그냥 이름이 좋은데요.”

“…….”

“아…, 그러시구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식었다. 골드 등급 이세진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앗 좋습니다. 그러면 형 동생들, 저를 앞으로 큰세진으로 불러주세요~”

“좋아용~”

“별명 좋네!”

짝짝짝, 박수를 치며 분위기가 정리되었다. 이어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할 때 즈음, 또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참가자분들, 서로 인사는 다 나누셨나요?”

“제발 선곡은 마음대로 좀.”

팀원 중 하나가 간절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럼 이제……. 선곡 뽑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와…….”

“선곡도 랜덤…….”

다들 지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MC는 휘휘 손을 내저으며 익살맞게 말했다.

“에이, 여러분! 여러분이 고른 기획사의 대표 아이돌들의 히트곡 중에 뽑는 겁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그 정도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분위기가 그나마 나아졌다.

“자, 앞에 있는 팻말에서 대표곡이 돌아가는 데요, 멈추고 싶으실 때 스위치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그럼 팻말에 가장 먼저 합류한 참가자분, 앞으로 나와주십시오!”

팀원들이 곧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형님, 믿습니다!”

“갓띵곡만이 살 길!”

“휴, 또 내가 능력을 보여야 되는 건가.”

첫 번째 참가자가 성원과 함께 거드름을 피우며 팻말 앞으로 나갔다.

“자, 준비하시고… 쏘세요!”

“와악!”

팀원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곧바로 스위치를 눌렀다. 옆에서 큰세진(본인이 자초했으니 앞으로 이렇게 지칭할 예정이다)이 중얼거렸다.

“아니, 좀 보고 누르지…….”

팻말은 둥둥둥 천천히 돌아가며 몇 개의 노래 제목을 보여줬다.

VTIC. 현재 가장 음반을 많이 파는 남자 아이돌이다.

“다 괜찮은데… 제발.”

저 끝에서 최원길이 간절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묵묵히 화면이 멈추길 기다렸다.

화면은 천천히 멈추었다.

“…?”

“……??”

“……!?”

지독한 침묵이 흘렀다.

나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X노보노 눈이 되어서 팻말을 바라보았다.

“오, 오륜가?”

팻말을 만진 팀원이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작진에게서는 아무런 사인이 없었다.

진짜라는 뜻이었다.

“여자 아이돌도 포함이에요?”

“여돌 곡도 있어요?”

우리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비슷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물론 우리만큼 강한 반응은 아니었다.

팀원들은 정신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어… 그러니까, 꽃의 요정이었나?”

“그… 어, 데뷔곡, 으응.”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세상으로’는 꽃의 요정을 표방하는 청순하고 몽환적인 곡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데뷔곡이다. 말랑달콤이 확 뜬 병맛 큐티 컨셉을 잡기 전에 발표한, 공중파 1위를 해본 적 없는 곡.

“아! 감사합니다!”

“대박!!”

주변에서는 좋은 곡이 걸린 듯 환호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명곡이 가득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절정은 여기서 나왔다.

“아아아악!!”

“형! 형!!”

우리 팻말의 다음 팀이 VTIC의 ‘산군’을 뽑은 것이다.

참고로 저 곡, 두 달 전 국내 최대음원사이트 시상식에서 대상 받은 앨범의 타이틀곡이었다.

지금 뽑을 수 있는 곡 중에 가장 핫한 곡이라고 할까.

그래서인지 다들 끌어안고 난리도 아니었다. 팀원 등급이 낮아서 잠깐 사이 맘고생을 했는지, 벌써 이긴 것처럼 분위기가 좋아졌다.

“…….”

그리고 우리 쪽은 급격히 말이 없어졌다. 충격에서 다들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어떠냐고?

‘이걸 피하네.’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기획사 팻말을 안일하게 골랐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VTIC의 ‘산군’?

안 하느니만 못하다.

운 좋게 피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대진 운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다들 아직 못 깨달은 것 같지만.’

나는 우울하게 모이는 팀원들을 보며,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위기감이 들면 좀 협조적으로 나와주겠지.

* * *

“키가 안 맞는데요.”

협조적으로 나올 거라고 내가 생각했던가? 과한 기대감이었다고 정정하고 싶다.

다 포기한 듯이 구는 놈이 벌써부터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원길아, 그래도 한 번 다시 해보면…….”

“몇 번 다시 해봤는데, 다시 해도 안 되는 게 될 것 같지는 않아서요…….”

최원길은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더니, 슬쩍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원래 여자곡인데 남자 키로 바꿔서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아예 높은 파트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내 쪽을 보는 것이다.

‘내 파트 달라는 말이군.’

나는 골드 등급 세 사람의 열화와 같은 성원과 함께 일찌감치 메인보컬 배지를 달고 있었다.

등급이 낮아서인지 최원길은 입도 벙긋 못하고 내가 배지를 다는 걸 보기만 했다.

그러다 발 뻗을 자리가 보이니 핀 것이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까?”

“……!”

큰세진이 내 허벅지를 쳤다. 이게 진짜…….

“야, 애한테 괜히 장난치지 말고. 이럴 때는 자기 파트 소화할 수 있게 도와줘야지! 뭐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사람 말을 농담으로 푼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역시 그냥 넉살 좋은 놈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의구심을 숨기며 다시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진짜 바꿔도 상관없어. 할 거면 안무 익히기 전에 초반에 해야지.”

“저, 정말요?”

“어.”

나는 태평하게 말을 맺었다. 최원길은 몹시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내가 말을 바꿀까 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저, 그럼 저 1절 후렴 하고 싶은데…….”

“좋아. 그럼 브릿지 파트는 내가 하는 걸로.”

“네?”

“파트 바꾸자며. 너 안 된다는 게 거기잖아.”

최원길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못하겠다는 파트를 가져간다는데도 아까운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후렴구를 가져가고 싶어서 떠들었지만 내심 자기 파트를 놓고 싶지는 않았나 보다.

원래 이 정도로 갈무리 못 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실버로 떨어진 게 기폭점이 되었나. 좀 맛이 갔다.

큰세진은 나와 최원길을 번갈아 보더니, 들릴 듯 말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자기가 그려둔 그림에서는 내가 1절 후렴구를 했나 보군.’

그리곤 아닌 척 활기차게 말을 이었다.

“자, 그럼 파트는 이대로 가고.”

남은 메인 포지션이 하나 있었다. 골드 등급 참가자들이 아닌 척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메인 댄서만 정하면 되는 거네.”

큰세진이 말을 더 하기 전에, 나는 손을 들었다.

“아, 나 의견 있다.”

“어?”

“다들 괜찮으시면, 메인댄서 정하기 전에 편곡 방향부터 정하고 싶습니다.”

“…어?”

편곡.

가장 중요한 화두였음에도 다들 무의식중에 피하고 있던 화제였다.

‘새로운 세상으로’는 청순한 여자 아이돌 곡이다.

그리고 ‘청순’은…… 굉장히 소화하기 힘든 컨셉이었다.

예쁘기만 하면 쉽게 가능하다고 흔히들 착각하지만, 그건 정말로 착각이 맞다.

강렬하기 쉽지 않은 컨셉이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무대에서 그런 곡으로 관객들에게 각인되려면 말도 안 되게 실력이 좋거나, 끼가 특출나야 했다.

아마 다들 거기까지는 생각했는지, 편곡 의견은 일단 이렇게 시작했다.

“좀…… 가사를 바꿔서 강렬하게 가는 건 어때?”

“비트 세게 넣어서요?”

“응. 새로운 세상으로~ 하는 걸 이렇게 포부 넘치게 딱! 하는 거지.”

첫 번째 골드…, 이렇게 부르는 것도 귀찮다. 적당히 골드 1이라고 부를까.

그래서, 이건 골드 1이 낸 의견이었다. 생각 있는 서바이벌 참가자라면 떠올릴 만한 내용이다.

강렬하게 바꾸기.

문제는 이 곡이 저 말대로 ‘포부 넘치는’ 느낌을 주는 건 어지간해서는 힘들 것 같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가사는 이렇다.

-어느 순간부턴가 깨달았어

불완전한 시간 속을 헤매는 나를

멈출 수 없는 이 시간의 미로

그 속에 갇힌 나를 구해줘

점점 시들어가

이 안의 작은 공간 (Little Flower~)

다시 꽃 필 날을 기다리니까

어서 나를 찾아와줘

여기까지가 1절 벌스다.

포부 넘치게 하고 싶다면 가사를 더 화자 중심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데, 그럼 프리 코러스부터 곡의 스토리가 엉망진창이 된다.

이 곡 후렴구는 상대에게 빨리 다가와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두 걸음

네가 오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데

망설이지 말고 손 내밀어줘

이제 나는 새로운 세상으로~

Come to me

Come to me

눈부셔 네 곁의 Paradise

Come to me

Come to me

널 향한 사랑의 Melody (계속돼)

“그럼 ‘새로운 세상으로’ 다음 가사인 ‘Come to me’도 고쳐야 하나?”

“어…, ‘come to you’로 하면…….”

골드 1이 뒷말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문제가 그것뿐만이 아닌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러면 ‘나를 구해줘’부터 다 고쳐야 하지 않냐?”

“으음.”

그렇다. 후렴이 워낙 청자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빨리 다가가겠다고 고치면 또 다음 가사의 뉘앙스가 뭉개진다.

“이렇게 가려면 전체적으로 다 고쳐야겠네.”

“네, …근데 너무 바꾸면 형평성에 걸릴 수도.”

그렇게 다 뜯어고치는 걸 과연 상대 팀이나 제작진들이 용납해 줄지도 문제였다.

“…….”

슬슬 심각성이 피부로 느껴지는지, 팀원들이 말이 없어졌다.

큰세진이 얼른 끼어들어 화제를 바꿨다.

“편곡은 선생님들께 이야기해 보고 정하는 게 어떨까요? 피드백 받기 좋게 빨리 안무부터 따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문대야 괜찮아?”

“어, 괜찮아. 그러자.”

나는 순순히 납득해 줬다.

어차피 이 시점에서 편곡 얘기를 꺼낸 건 충격을 주려는 의도였다.

더 절박한 분위기를 조성할수록 내가 편곡 의견을 낼 때 딴소리가 안 나올 테니까.

물론 이렇게까지 안 해도 안무 영상을 보면 다들 상황을 파악할 것 같긴 했지만.

“오케이, 그럼 안무 틉니다!”

큰세진의 주도하에 안무 영상을 재생하자, 다들 일단 태블릿PC 화면에 머리를 들이댔다.

아마 후렴구는 어디서 들어봤어도 안무를 자세히 기억하는 팀원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안무 영상이 시작된 지 15초도 지나지 않아 다들 침음성을 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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