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1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9화
대체 청려 저 정신 나간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X 돼보라는 식으로 SNS에 글 올리더니,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또 이 지랄이냐.
‘회사에까지 전화를 돌려?’
심지어 하필 지금 샵이었다. 저녁 스케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드라이를 받던 김래빈이 눈을 휘둥그레 뜬 게 보였다. 매니저의 입 모양을 읽은 게 분명했다.
온갖 관계자들이 가득 찬 이 장소라 더 꺼림칙했다.
‘저게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 와중에 내 머리를 잡고 있던 헤어디자이너가 흔쾌히 상황을 재촉했다.
“받아, 받아~ 괜찮아요. 거의 끝났어.”
아마 내가 머리 손질에 방해가 될까 봐 머뭇거린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받기가 싫은 겁니다만…….’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일단 매니저에게 말했다.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 네가 번호를 모른다는데? 번호 바꿔서 이쪽으로 전화 줬대. 문대 너 모르는 번호 안 받잖아.”
“…….”
문자로 하면 되는 걸 굳이 회사까지 거쳐서 전화하는 건 뻔했다.
‘내가 차단한 걸 알았다 이거지.’
이렇게까지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매니저한테 계속 뭐 해달라고 전달하는 것도 보기 안 좋았다.
빨리 끝낸다.
“예. 그럼.”
나는 매니저에게 스마트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
“전화 바꿨습니다. 박문대입니다.”
-아, 드디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게 실실 쪼개는 것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번호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번호 저장해 놓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리고 신인상 축하합니다.
의자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직 시상식이 다 진행된 것도 아니고, 모르는 일이죠. 그럼….”
즉시 말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틈도 안 주고 청려가 대답했다.
-거의 확정이죠. 음,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아요?
안 궁금하다 개새끼야.
어차피 이대로 이놈이랑 교류해 봤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것 같지도 않다.
뒤통수 때려놓고 어디서 사람을 살살 낚으려고 들어.
“그다지요. 어쨌든 번호는 잘 저장해 두겠습니다. 연말 활동 잘 끝마치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이만 끊겠다는 의미였다.
-…아, 이렇게 되나.
그러자, 갑자기 놈의 말투가 약간 난처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음,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내가 다짜고짜 후배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아요. 나도 선이 있거든.
선 같은 소리 하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연말 활동하면서 계속 만날 테니까… 흠, 그때 설명해 줘야겠네요. 전화로 하긴 좀 그렇고.
“기회가 돼서 뵈면 좋죠. 그럼 죄송하지만, 일정이 있어서 끊겠습니다.”
청려는 농담처럼 대답했다.
-그래요. 이번에는 실수로 차단하지 말고.
“예. 그럼.”
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아마 숙소였으면 못 참고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샵이라 참았다.
그리고 폰을 매니저에게 돌려줬다.
“여기요 형. 감사합니다.”
“그래~ 아, 이분 번호 너한테 문자로 보내둘게.”
“…….”
일의 전말을 모르는 매니저의 친절을 욕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도로 의자에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귀찮다.’
처음에는 뭐라도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새끼 순 트롤러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태세 전환하는 게 진짜 정신 나간 놈 같아서 예측이 안 됐다.
‘역시 답은 손절이다.’
긁어 부스럼 없이 조용히 끝낸다.
어차피 2년만 지나면 내가 아는 미래도 끝이다. 그럼 저놈도 써먹을 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겠고.
그때까지 살살 상황 피하면서 안 엮이면 그만이다.
테스타도 다음 앨범쯤엔 탑티어에 발이라도 걸칠 것 같고, 저놈도 자기 지위가 아까우면 이번보다 더 노골적으로 나올 순 없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것과는 별개로, 아이돌로서 자신의 지위에는 상당히 집착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럼 서로 죽자는 식의 악감정만 안 쌓으면 된다.’
음, 원래는 너무 빡쳐서 어떻게든 보내 버릴 생각이었는데, 일단 일이 해결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내 리스크가 너무 크다.
‘트롤러 잡겠다고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이건 혹시 모를 예비안으로 챙겨만 간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김래빈이 말을 걸었다.
“…혹시 편곡 프로그램은,”
“기밀 사항이래.”
“알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걸 물어볼 날은 안 올 것 같다.
나는 시무룩한 김래빈에게 포도당 캔디를 하나 던져주었다.
* * *
연말 행사를 몇 개 뛰고 나니, 또 금방 새 연말 무대를 할 날이 왔다.
이번에는 KBC 가요대축제였다.
올해 제법 활약했던 가수들만 불러서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공중파보다 무대 분량을 잘 받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우리 나와요!”
“헐, 그때 그 광고네! 그 인공지능!”
“맙소사.”
…1, 2부 사이 중간광고로, 3개월 3억 5천짜리 광고의 실물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화면에서는 누가 봐도 세트장 같은 하얀 거실에 앉은 테스타가 각자 다른 소품을 들고 있는 모습이 송출되었다.
참고로 나는… 응원봉이다. 그것도 번쩍거리는 마법봉 형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만은 변명해 두고 싶다.
어쨌든, 이번에 광고 계약한 인공지능 비서는 조그매서 여기저기 탈부착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인 듯했다.
[내 감성을 보여주는 아이템에 커넥트.]
[사용자를 이해하는 너만의 비서, 네가 생각한 딱 그 노래를 틀어줘.]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눈깔 마감이 애매한 캐릭터형 인공지능 스피커를 비췄다.
차유진이 웃으며 스피커를 톡톡 두드렸다.
[나 비행기 듣고 싶어~]
그러자 스피커가 난데없이 저음질의 ‘떴다 떴다 비행기’를 힘차게 내보내기 시작했다.
[……?]
놀라는 차유진의 컷 다음에, 침착한 얼굴의 박문대가 튀어나왔다.
박문대는 응원봉을 흔들며 웃었다.
[큐리어스, 비행기 틀어줘]
그러자 테스타의 노래 ‘비행기’로 오디오가 가득 찼다.
깨끗한 음질의 BGM 위로, 테스타 멤버들이 제스처를 하는 컷이 지나갔다.
[마법소년 테스타의]
[마법같은 인공지능 비서!]
…거기서 뜬금없이 강아지 귀 그림을 단 박문대가 강아지 흉내를 내며 ‘큐리어스’를 외치는 것으로, 광고는 순식간에 끝났다.
[큐리어스! 멍멍!]
그리고 대기실은 폭소로 가득 찼다.
“으하하하학!!”
“크흡.”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피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웃음소리군.
“…….”
나는 한숨을 참았다. 제일 먼저 웃음을 멈춘 류청우부터 헛기침을 하며 그제서야 위로를 시작했다.
“크흠, 1위라 그런 거 같아 문대야. 광고에서 분량이 많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 그럼요…!”
“맞아맞아~ 청우 형님이 좋은 말씀 하셨네.”
아, 그러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맞는 말씀이네.”
“그렇지?”
“예. 다른 사람들 버전도 빨리 보고 싶네요.”
“……??”
“다른 사람들…?!”
배세진이 경악하는 멤버들에게 조용히 진실을 말해주었다.
“…이거 콘티에 버전 7가지라고 적혀 있었어.”
“……!”
한동안 TV 시청할 때마다 짜릿한 러시안룰렛을 즐기게 생겼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콘티를 떠올리는지 얼굴에 긴장감이 찼다.
뭐, 그래도 오래 걱정할 시간은 없었다. 2부 마지막쯤에 우리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가 중요했다. SBC 이후 첫 연말 무대였으니까.
‘돌아선 여론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뭐하나 어설퍼 보였다가는 ‘테스타 실력 모를… 그 특별 무대만 이악물고 했나 봐ㅠ’ 같은 말이 올라오는 건 필연이었다.
여기서 무조건 잘해야 했다.
덕분에 놈들은 금세 다른 의미의 긴장으로 빠릿해졌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모여서 기합까지 넣었다.
“아 테스타 오늘 뭔가 보여준다!”
“가자!”
꼭 이 문구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뭐, 분위기는 살았으니 됐나.
테스타는 그대로 리프트 장치를 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
온갖 불빛이 관객석에서 물결쳤다.
저 불 하나하나가 사람이라는 게 아직도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유독 눈에 띄는 응원봉은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테스타의 응원봉이다.
…발광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반딧불 사이에 손전등 둔 것 같군.’
어쨌든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생방송이라 대단한 건 못해도 들어갈 때 인사정도는 저쪽으로 할 수 있겠지.
그사이, 입장용 인트로가 끝나고 있었다.
나는 가운데로 걸어나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연말 무대용으로 편곡된 ‘마법소년’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라이브 버전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울리는 생 바이올린 멜로디에 맞춰, 나는 도입부를 시작했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현악기와 관악기의 합주가 화려하게 홀을 가득 채웠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완전한 생음악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라이브 밴드 느낌을 살려보겠다고 패기 있게 AR을 아예 안 깔았다는 뜻이다.
‘도입부가 나라서 편했지.’
들어갈 때 음정, 박자 못 맞추면 그대로 대참사다. 실패 확률 제일 낮은 놈이 맡는 게 맞았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들 라이브를 곧잘 해서 안정적이었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 true~”
화려한 연주에 맞춰서 안무에도 약간의 현대무용 동작을 섞었다. 몽환보다는 판타지 대서사시 같은 분위기가 됐지만, 그것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의상이 좀 너무 치렁치렁해서 민망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았고.
‘선아현 날아다니네.’
이런 컨셉을 제일 잘 받는 놈이라 평소보다 더 신난 것 같았다. 바이올린 독주와 타악기만 남은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선 예술성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행기’ 후렴구로 노래가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Airplane
끼이잉-!
‘인이어 진짜.’
귀에서 칠판 긁는 것 같은 소리가 튀었다.
함성이나 울림 때문에 박자를 놓치는 것을 방지하려고 달아둔 장치가 도리어 집중을 방해했다.
끼이 끼이 끼이이잉!
…볼륨이 너무 크거나, 뭐가 안 들린 적은 있어도 이 난리는 처음이다.
‘돌겠네.’
더 참지 못하고 반주가 나오는 쪽 인이어를 거칠게 뽑았다. 옆에서 몇 멤버가 동일한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송출 오류였다.
‘연말에 공중파 한번 참 잘 돌아간다.’
근데 더 환장할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배세진이 뽑은 인이어가 몸을 눕히는 안무 때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무대에 떨어졌던 것이다.
고정 작업해 주는 사람이 실수한 게 분명했다.
‘…다음 파트에 발로 처낸다.’
하지만 그 순간, 하필 동선을 바꾸며 가운데로 오던 선아현이 줄을 잘못 밟고 미끄러졌다.
그것도 머리부터 바닥을 향하게!
“……!”
반사적으로 선아현의 등을 잡았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나랑 똑같은 짓을 한 류청우와 눈이 마주쳤다.
‘일으켜 세우고 바로 복귀한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찰나에 판단이 끝났다.
그런데 손에 힘을 주려던 찰나, 도리어 선아현이 미끄러지던 그대로 발을 박차며 몸에 반동을 주기 시작했다.
“……!”
관성을 이용한 선아현은, 자신의 등을 잡은 나와 류청우의 팔에 두 손을 기댄 채 양 다리를 모두 피고 우아한 백덤블링을 했다.
그리고 그림처럼 착지하며, 자신의 파트를 이어불렀다.
“…저 멀리 fly high, 날아가는 내 맘이- 은하수를 넘어 빛나는 별이 되길 바래.”
“……!”
경악한 심정과 달리 몸에선 연습한 대로 변형 안무가 튀어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소절이 이어질 순간,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원래의 동선으로 복귀했다.
배세진이 헤드 마이크를 누르며 노래를 불렀다. 얼굴과 목소리는 멀쩡했으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두 손이 맞닿기를 원해-”
둥글게 선 7명이 하늘을 향해 한 손을 모았다 펼치는 안무로 곡이 마무리되었다.
“…….”
아아아악!
환호 소리와 함께 카메라 온에어 등이 꺼졌다.
그리고 조명까지 꺼지고 나서야, 식은땀에 흠뻑 젖은 것 같은 표정이 멤버들의 얼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습된 건가?’
일단 무대가 제대로…, 아니, 선아현 저놈 상태부터 봐야 하지 않나?
‘무슨 미친놈이 거기서 연습도 없이 넘어지다 백덤블링을 해.’
자칫 잘못되면 머리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않은가.
하지만 방송 진행상 여기서 더 미적거릴 틈은 없었다. 우리는 얼른 팬석에 손만 흔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가타부타 말을 나눌 시간도 없이, 즉시 모니터링 화면부터 마주하게 됐다.
“……!”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9화
대체 청려 저 정신 나간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X 돼보라는 식으로 SNS에 글 올리더니, 며칠 지나지도 않아서 또 이 지랄이냐.
‘회사에까지 전화를 돌려?’
심지어 하필 지금 샵이었다. 저녁 스케줄 준비 중이었기 때문이다.
옆에서 드라이를 받던 김래빈이 눈을 휘둥그레 뜬 게 보였다. 매니저의 입 모양을 읽은 게 분명했다.
온갖 관계자들이 가득 찬 이 장소라 더 꺼림칙했다.
‘저게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 와중에 내 머리를 잡고 있던 헤어디자이너가 흔쾌히 상황을 재촉했다.
“받아, 받아~ 괜찮아요. 거의 끝났어.”
아마 내가 머리 손질에 방해가 될까 봐 머뭇거린다고 생각한 듯싶었다.
‘받기가 싫은 겁니다만…….’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일단 매니저에게 말했다.
“…제가 나중에 연락드리겠다고 전해주시면 안 될까요.”
“어, 네가 번호를 모른다는데? 번호 바꿔서 이쪽으로 전화 줬대. 문대 너 모르는 번호 안 받잖아.”
“…….”
문자로 하면 되는 걸 굳이 회사까지 거쳐서 전화하는 건 뻔했다.
‘내가 차단한 걸 알았다 이거지.’
이렇게까지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매니저한테 계속 뭐 해달라고 전달하는 것도 보기 안 좋았다.
빨리 끝낸다.
“예. 그럼.”
나는 매니저에게 스마트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
“전화 바꿨습니다. 박문대입니다.”
-아, 드디어.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게 실실 쪼개는 것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번호 바꾸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번호 저장해 놓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그리고 신인상 축하합니다.
의자 손잡이를 잡은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아직 시상식이 다 진행된 것도 아니고, 모르는 일이죠. 그럼….”
즉시 말을 마무리하려는 찰나, 틈도 안 주고 청려가 대답했다.
-거의 확정이죠. 음, 이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 않아요?
안 궁금하다 개새끼야.
어차피 이대로 이놈이랑 교류해 봤자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것 같지도 않다.
뒤통수 때려놓고 어디서 사람을 살살 낚으려고 들어.
“그다지요. 어쨌든 번호는 잘 저장해 두겠습니다. 연말 활동 잘 끝마치시길 바랍니다. 선배님.”
이만 끊겠다는 의미였다.
-…아, 이렇게 되나.
그러자, 갑자기 놈의 말투가 약간 난처하다는 식으로 바뀌었다.
-음,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내가 다짜고짜 후배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진 않아요. 나도 선이 있거든.
선 같은 소리 하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연말 활동하면서 계속 만날 테니까… 흠, 그때 설명해 줘야겠네요. 전화로 하긴 좀 그렇고.
“기회가 돼서 뵈면 좋죠. 그럼 죄송하지만, 일정이 있어서 끊겠습니다.”
청려는 농담처럼 대답했다.
-그래요. 이번에는 실수로 차단하지 말고.
“예. 그럼.”
나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아마 숙소였으면 못 참고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샵이라 참았다.
그리고 폰을 매니저에게 돌려줬다.
“여기요 형. 감사합니다.”
“그래~ 아, 이분 번호 너한테 문자로 보내둘게.”
“…….”
일의 전말을 모르는 매니저의 친절을 욕할 순 없는 노릇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도로 의자에 기대면서 눈을 감았다.
‘귀찮다.’
처음에는 뭐라도 이득을 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 새끼 순 트롤러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태세 전환하는 게 진짜 정신 나간 놈 같아서 예측이 안 됐다.
‘역시 답은 손절이다.’
긁어 부스럼 없이 조용히 끝낸다.
어차피 2년만 지나면 내가 아는 미래도 끝이다. 그럼 저놈도 써먹을 게 없으니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겠고.
그때까지 살살 상황 피하면서 안 엮이면 그만이다.
테스타도 다음 앨범쯤엔 탑티어에 발이라도 걸칠 것 같고, 저놈도 자기 지위가 아까우면 이번보다 더 노골적으로 나올 순 없을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것과는 별개로, 아이돌로서 자신의 지위에는 상당히 집착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럼 서로 죽자는 식의 악감정만 안 쌓으면 된다.’
음, 원래는 너무 빡쳐서 어떻게든 보내 버릴 생각이었는데, 일단 일이 해결되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니 내 리스크가 너무 크다.
‘트롤러 잡겠다고 목숨 걸 필요는 없지.’
이건 혹시 모를 예비안으로 챙겨만 간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눈을 떴다.
그리고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던 김래빈이 말을 걸었다.
“…혹시 편곡 프로그램은,”
“기밀 사항이래.”
“알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그걸 물어볼 날은 안 올 것 같다.
나는 시무룩한 김래빈에게 포도당 캔디를 하나 던져주었다.
* * *
연말 행사를 몇 개 뛰고 나니, 또 금방 새 연말 무대를 할 날이 왔다.
이번에는 KBC 가요대축제였다.
올해 제법 활약했던 가수들만 불러서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다른 공중파보다 무대 분량을 잘 받았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우리 나와요!”
“헐, 그때 그 광고네! 그 인공지능!”
“맙소사.”
…1, 2부 사이 중간광고로, 3개월 3억 5천짜리 광고의 실물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화면에서는 누가 봐도 세트장 같은 하얀 거실에 앉은 테스타가 각자 다른 소품을 들고 있는 모습이 송출되었다.
참고로 나는… 응원봉이다. 그것도 번쩍거리는 마법봉 형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점만은 변명해 두고 싶다.
어쨌든, 이번에 광고 계약한 인공지능 비서는 조그매서 여기저기 탈부착이 가능하다는 게 장점인 듯했다.
그리고 갑자기 화면이 눈깔 마감이 애매한 캐릭터형 인공지능 스피커를 비췄다.
차유진이 웃으며 스피커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스피커가 난데없이 저음질의 ‘떴다 떴다 비행기’를 힘차게 내보내기 시작했다.
놀라는 차유진의 컷 다음에, 침착한 얼굴의 박문대가 튀어나왔다.
박문대는 응원봉을 흔들며 웃었다.
그러자 테스타의 노래 ‘비행기’로 오디오가 가득 찼다.
깨끗한 음질의 BGM 위로, 테스타 멤버들이 제스처를 하는 컷이 지나갔다.
…거기서 뜬금없이 강아지 귀 그림을 단 박문대가 강아지 흉내를 내며 ‘큐리어스’를 외치는 것으로, 광고는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 대기실은 폭소로 가득 찼다.
“으하하하학!!”
“크흡.”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는 피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웃음소리군.
“…….”
나는 한숨을 참았다. 제일 먼저 웃음을 멈춘 류청우부터 헛기침을 하며 그제서야 위로를 시작했다.
“크흠, 1위라 그런 거 같아 문대야. 광고에서 분량이 많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이야?”
“그, 그럼요…!”
“맞아맞아~ 청우 형님이 좋은 말씀 하셨네.”
아, 그러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맞는 말씀이네.”
“그렇지?”
“예. 다른 사람들 버전도 빨리 보고 싶네요.”
“……??”
“다른 사람들…?!”
배세진이 경악하는 멤버들에게 조용히 진실을 말해주었다.
“…이거 콘티에 버전 7가지라고 적혀 있었어.”
“……!”
한동안 TV 시청할 때마다 짜릿한 러시안룰렛을 즐기게 생겼다.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콘티를 떠올리는지 얼굴에 긴장감이 찼다.
뭐, 그래도 오래 걱정할 시간은 없었다. 2부 마지막쯤에 우리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무대가 중요했다. SBC 이후 첫 연말 무대였으니까.
‘돌아선 여론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뭐하나 어설퍼 보였다가는 ‘테스타 실력 모를… 그 특별 무대만 이악물고 했나 봐ㅠ’ 같은 말이 올라오는 건 필연이었다.
여기서 무조건 잘해야 했다.
덕분에 놈들은 금세 다른 의미의 긴장으로 빠릿해졌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 모여서 기합까지 넣었다.
“아 테스타 오늘 뭔가 보여준다!”
“가자!”
꼭 이 문구를 써야 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뭐, 분위기는 살았으니 됐나.
테스타는 그대로 리프트 장치를 타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
온갖 불빛이 관객석에서 물결쳤다.
저 불 하나하나가 사람이라는 게 아직도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유독 눈에 띄는 응원봉은 있었다. 예상했겠지만, 테스타의 응원봉이다.
…발광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반딧불 사이에 손전등 둔 것 같군.’
어쨌든 곧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생방송이라 대단한 건 못해도 들어갈 때 인사정도는 저쪽으로 할 수 있겠지.
그사이, 입장용 인트로가 끝나고 있었다.
나는 가운데로 걸어나와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연말 무대용으로 편곡된 ‘마법소년’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오케스트라 라이브 버전이었다.
무대 아래에서 울리는 생 바이올린 멜로디에 맞춰, 나는 도입부를 시작했다.
“내일 만난 너를 오늘 내내 생각해,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현악기와 관악기의 합주가 화려하게 홀을 가득 채웠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완전한 생음악이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라이브 밴드 느낌을 살려보겠다고 패기 있게 AR을 아예 안 깔았다는 뜻이다.
‘도입부가 나라서 편했지.’
들어갈 때 음정, 박자 못 맞추면 그대로 대참사다. 실패 확률 제일 낮은 놈이 맡는 게 맞았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들 라이브를 곧잘 해서 안정적이었다.
“Cast a spell-”
“Make a wish come true, true, true~”
화려한 연주에 맞춰서 안무에도 약간의 현대무용 동작을 섞었다. 몽환보다는 판타지 대서사시 같은 분위기가 됐지만, 그것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의상이 좀 너무 치렁치렁해서 민망하긴 했지만 사람들은 좋아할 것 같았고.
‘선아현 날아다니네.’
이런 컨셉을 제일 잘 받는 놈이라 평소보다 더 신난 것 같았다. 바이올린 독주와 타악기만 남은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선 예술성까지 느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행기’ 후렴구로 노래가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Airplane
끼이잉-!
‘인이어 진짜.’
귀에서 칠판 긁는 것 같은 소리가 튀었다.
함성이나 울림 때문에 박자를 놓치는 것을 방지하려고 달아둔 장치가 도리어 집중을 방해했다.
끼이 끼이 끼이이잉!
…볼륨이 너무 크거나, 뭐가 안 들린 적은 있어도 이 난리는 처음이다.
‘돌겠네.’
더 참지 못하고 반주가 나오는 쪽 인이어를 거칠게 뽑았다. 옆에서 몇 멤버가 동일한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송출 오류였다.
‘연말에 공중파 한번 참 잘 돌아간다.’
근데 더 환장할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배세진이 뽑은 인이어가 몸을 눕히는 안무 때 주르륵 흘러내리더니 무대에 떨어졌던 것이다.
고정 작업해 주는 사람이 실수한 게 분명했다.
‘…다음 파트에 발로 처낸다.’
하지만 그 순간, 하필 동선을 바꾸며 가운데로 오던 선아현이 줄을 잘못 밟고 미끄러졌다.
그것도 머리부터 바닥을 향하게!
“……!”
반사적으로 선아현의 등을 잡았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나랑 똑같은 짓을 한 류청우와 눈이 마주쳤다.
‘일으켜 세우고 바로 복귀한다.’
이런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 찰나에 판단이 끝났다.
그런데 손에 힘을 주려던 찰나, 도리어 선아현이 미끄러지던 그대로 발을 박차며 몸에 반동을 주기 시작했다.
“……!”
관성을 이용한 선아현은, 자신의 등을 잡은 나와 류청우의 팔에 두 손을 기댄 채 양 다리를 모두 피고 우아한 백덤블링을 했다.
그리고 그림처럼 착지하며, 자신의 파트를 이어불렀다.
“…저 멀리 fly high, 날아가는 내 맘이- 은하수를 넘어 빛나는 별이 되길 바래.”
“……!”
경악한 심정과 달리 몸에선 연습한 대로 변형 안무가 튀어나왔다.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소절이 이어질 순간, 멤버들은 자연스럽게 원래의 동선으로 복귀했다.
배세진이 헤드 마이크를 누르며 노래를 불렀다. 얼굴과 목소리는 멀쩡했으나,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두 손이 맞닿기를 원해-”
둥글게 선 7명이 하늘을 향해 한 손을 모았다 펼치는 안무로 곡이 마무리되었다.
“…….”
아아아악!
환호 소리와 함께 카메라 온에어 등이 꺼졌다.
그리고 조명까지 꺼지고 나서야, 식은땀에 흠뻑 젖은 것 같은 표정이 멤버들의 얼굴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습된 건가?’
일단 무대가 제대로…, 아니, 선아현 저놈 상태부터 봐야 하지 않나?
‘무슨 미친놈이 거기서 연습도 없이 넘어지다 백덤블링을 해.’
자칫 잘못되면 머리가 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 않은가.
하지만 방송 진행상 여기서 더 미적거릴 틈은 없었다. 우리는 얼른 팬석에 손만 흔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가타부타 말을 나눌 시간도 없이, 즉시 모니터링 화면부터 마주하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