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1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8화
SBC 가요대전이 끝났다.
이후 스케줄 문제로 새벽 내내 차 안에서 자면서 이동했지만, 컨디션이 지난 한 달 중에 제일 괜찮았다.
매니저가 방송 끝나자마자 너무 신났는지 미주알고주알 현재 여론을 다 말해줬기 때문이다.
-완전 다 뒤집어졌다!
그때 멤버들 표정이 볼 만했지.
어쨌든, 그 후엔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긴장이 풀렸는지 차 안인데도 푹 잔 것 같다.
덕분에 이 아침에 회사가 불러서 나 혼자 숙소가 아니라는 점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왜 날 부른 건지 영 짐작 가는 이유가 없었다.
‘뭐, 표정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고.’
개인 스케줄이라도 새로 잡혔나 싶다.
그리고 회사 건물 뒤쪽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호출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관계자용 작은 현관이 터져 나가도록 많은 상자가 쌓여 있던 것이다.
하나같이 정성스러운 포장에 리본까지 맞춘 그것들은… 선물 상자였다.
지난 휴가 때 숙소 현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지만, 규모는 훨씬 컸다.
‘어?’
잠깐.
나와 있던 직원 중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문대 씨, 생일 선물 왔어요~”
“……!”
…그랬군.
오늘은 12월 15일.
박문대의 생일이었다.
‘…짐작도 못 했다.’
끝없는 스케줄과 연습이 반복되며 날짜 감각이 사라진 탓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SNS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애초에 원래 생일도 아니니까.’
아니,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전에도… 특별히 생일을 유별나게 챙긴 적이 드물었다.
‘밥이나 좀 비싼 재료로 해 먹는 정도였지.’
덕분에 두 벽을 가득 채운 선물 상자들을 보니 저절로 발이 굳었다.
이게 다 나한테 온 거라고?
“숙소에 두기는 힘들 것 같은데… 문대 씨 본가… 음.”
직원은 말하다가 박문대의 가정사를 깨달았는지, 급격히 뒷말을 흐렸다.
그리고 친절하게 다시 정정했다.
“일단 회사 창고에 둘까요? 전자기기나 명품 같은 건 숙소로 보낼게요. 가서 뜯어보시면 되겠네.”
“……이거 가져오신 분들은, 별다른 말 없으셨나요.”
척 봐도 포장 형태가 다른 게 서너 군데에서 따로따로 넣은 것 같았다.
‘적어도 한두 팀 정도는 직접 전달하려고 했을 것 같은데…….’
“아, 전문 배달 업체 이용했더라구요. 그저께 배송 연락받았어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문대 씨한테, 특별히 인증 안 해도 된다고 전해달라 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랬어요.”
“…!”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일부러 조용히 전달만 했구나.’
그저께면 인터넷에서 신인상으로 테스타를 걸고넘어지는 것에 한창이었다.
어제 SBC에서 전면전 안 했으면 당연히 지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상황에 이런 대형 선물 서포트를 수령한 인증까지 하면 혹시라도 또 꼬투리 잡힐 여지가 될까 봐 걱정했겠지.
‘그런 걸 의식해서 직접 찾아오지도 못했나…….’
기분이 이상했다.
제대로 교류하지도 못하는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 대상이 나라는 건 정말… 더, 이상했다.
“안 열어보세요? 그냥 일단 창고로 옮기는 걸로 할까요?”
“…잠시만요.”
나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겨서 상자들로 다가갔다.
내 사진을 인화해서 만든 액자, 브랜드 쇼핑백을 묶은 리본 너머로 같은 포장지로 일괄 포장된 상자들이 보였다.
각 포장 리본에 태그가 붙어 있었다.
“…….”
수많은 옷, 전자기기, 액세서리가 태그마다 보였다.
‘…어쩌지.’
거의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뭘 어떤 기준으로 숙소에 우선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인증이 쉬운 물건으로, 각 포장지 디자인마다 세 점씩만…….’
고민하던 중, 한 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상자에 붙어 있던 태그였다.
[메시지 북]
“…….”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 상자를 들어 올려 포장지를 풀었다.
직접 제작한 것 같은 황금색 양장본이 드러났다.
양장본을 펼치자, 단정한 디자인 속에 편집된 문장들이 드러났다.
– 무대 보는 순간 알았어요. 저 친구가 바로 내 아이돌이구나! ㅎㅎ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문대를 응원해요. 하지만 혹시 그러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언제나 문대의 행복을 응원할게요♡
-오래오래 보고 싶은 나의 별
-문대 만나고 내 불면증이 사라졌어!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볼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앞으로도 사랑해
-언제나 뭘 할 때도 팬들 신경 써주는 문대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야ㅠㅠ 우리 문대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진짜 문대는 그래도 된다!
긴 줄글들 사이로 절제한 듯한 문장들이 튀어 올랐다. 정제된 마음까지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누나는 아직도 티벳여우를 잊지 않았어 문대야… 강아지 문대도 사랑하지만 티벳문대도 사랑한단다ㅠ
“하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로…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다정함이었다.
물론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이 사람들도 ‘언제까지나, 오래도록, 영원히’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람인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이 어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
“문대 씨?”
“…아, 죄송합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선물 상자 몇 가지를 빠르게 챙겼다.
계획했던 대로, …아니, 계획했던 것보다 좀 많이.
“…숙소 가져갈 수 있겠어요?”
“차 있어요. 괜찮습니다.”
매니저가 동행했다. 지금쯤 건물 앞 로비 쪽에서 음료를 사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음… 알겠어요. 잘 들어가세요. 생일 축하드리구요!”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 가득 선물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만난 매니저는 기겁했다.
“그걸 너 혼자 다 가져왔어?! 호출을 하지!”
“괜찮아요. 가까운 거리고.”
“어유… 어쨌든, 선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하고. 뭐 형이 커피라도 사주리?”
“다음에요.”
“어쭈, 거절 안 하는구만.”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머리에 헛바람이라도 들어갔는지, 별게 다 유쾌하게 느껴졌다.
“잘 들어가라~”
“예. 감사합니다.”
나는 숙소 건물 앞에서 매니저와 헤어졌다. 그러곤 다시 선물을 가득 챙겨 들어 숙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이었다.
묘한 냄새가 숙소 문 앞에서 느껴졌다.
“……?”
이거 탄내 아닌가?
‘설마.’
나는 선물을 복도 한편에 쌓아두고, 당장 현관 도어락을 해제했다.
그리고 소화전을 열어둔 뒤에 문을 개방했다.
“……?!”
“안 돼요!!”
…그리고 웬 냄비를 들고 거실을 질주하는 차유진과 선아현을 목격했다.
냄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물었다.
“…너네 뭐하냐?”
“무, 문대야! 벼, 별건 아니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차유진이 그렇게 외치며 냄비를 도로 부엌으로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거실에 남겨진 선아현에게서 지독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
“…….”
“…새, 생일…… 추, 축하해.”
“고맙다.”
축하는 고마운데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좀 듣고 싶다.
* * *
“…생일 선물?”
“네!”
“아, 아니… 서, 선물을 따로 있고! 그, 그냥 고맙다는 뜻으로…….”
“저도 선물 더 있어요.”
차유진과 선아현 둘이 떠드는 걸 들어봤자 하나도 정리가 안 됐다. 둘끼리도 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더라.
냄비 대소동에 얼결에 깨어난 다른 멤버들이 도리어 정리를 시도했다.
“그러니까, 문대 생일이고 마침 우리가 오전에 시간이 있으니까 맛있는 걸 해줄 생각이었다는 거지?”
“예!”
“……그 인원으로?”
배세진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선아현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레, 레시피가 확실해서…… 하,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확실한 레시피 맞아?”
의심 가득한 배세진의 물음에 차유진이 즐겁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 레시피예요! Chicken soup!”
“…!”
배세진은 동공지진 하다가, 황급히 덧붙였다.
“그… 레시피가 훌륭해도, 초보자는 못 할 수도 있고.”
“다시 해봐요!”
“잠깐, 앉아.”
나는 벌떡 일어나려는 차유진을 도로 앉혔다. 그리고 부엌에서 봤던 냄비를 떠올렸다.
‘…시커멓게 탔지.’
게다가 도마나 싱크대 꼴을 보니 조리 과정 자체가 정상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진이 요리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굽는 거 잘해요. 끓이는 거 처음이요…….”
“저런.”
만담이 따로 없었다. 큰세진은 혀를 차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아, 문대 생일 축하~ 나는 기프티콘 보냈다?”
“…치킨?”
“닭. 그것도 두 마리.”
8월에 줬던 걸 그대로 돌려받았군. 셈 빠른 놈다운 결과였다.
“고맙다.”
“나, 나도! 잠깐만……!”
죄인처럼 앉아 있던 선아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우당탕 발을 구르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잘 포장된 조그만 선물 하나를 가져와서 내밀었다.
“새, 생일 축하해!”
“어… 고맙다. 열어봐도 돼?”
“으, 응!”
열어보니, 백화점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
이거… 무슨 친구비라도 수거하는 기분인데.
하지만 선아현은 뿌듯해 보였다.
“도, 도저히 사러 갈 시간이 없어서……. 지, 직접 보고 고르는 게 좋으니까!”
“…음, 그래. 고마워. 시간 나면 가봐야겠다.”
“으응!”
다음에 가면… 적당히 선아현 것도 사야겠다. 친구든 직장 동료든 받기 좀 과한 액수였다.
‘그러고 보니 큰세진 생일에도 좀 비싼 걸 준 것 같던데.’
그럴 필요 없다고 언제 한번 말이라도 해줘야 되나 싶다.
“아, 나도 하나 샀어.”
선아현만큼 예상 못 한 항목은 없었지만, 그 후로도 의외로 한두 명에게 선물을 받았다.
일단 차유진은 거대한 젤리 한 통을 줬다.
‘자기가 절반은 먹겠군.’
아마 본인이 주문한 것에서 떼어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의외로 배세진이 남의 생일을 기억하는 타입인지, 후드 티를 하나 줬다.
“잘 입을게요. 감사합니다, 형.”
“…뭐, 그래.”
그렇게 선물 증정식이 끝났다.
솔직히, 인생에서 당일에 이렇게 축하 선물을 많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느낌 이상한걸.’
나는 팬들에게 받은 상자를 챙겨와서, 멤버들에게 받은 선물과 함께 내 방으로 옮겼다.
“못 챙겨서 미안하네. 다음에 내가 밥이라도 한번 살게. 뭐 먹고 싶어?”
“안 미안하셔도 되고, 음, 그때 먹고 싶은 걸로 먹을까요.”
“그래. 그러자.”
모르는 게 정상인 판인데 모른다고 미안해하는 류청우와 적당히 밥으로 퉁 치고 있자니, 옆에서 김래빈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생신 몰라서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제가 최근에 찍은 비트가 있는데… 그걸 형 솔로곡으로 쓰시면……!”
여기서 홀라당 자기 곡을 내밀면 어쩌냐.
…그래도 일단은 수긍해 주자.
“그래. 좋은 곡일 것 같다. 시간 나면 확인해 보자.”
“예!”
김래빈은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었는지,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방으로 비틀비틀 사라졌다.
“…….”
쟤도 저러다 큰일 나지 싶은데, 나중에 너무 저자세로 나오지 말라고 말이라도 해둬야겠다.
나는 침대 옆에 박스들을 정리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켰다. 그러자 제일 먼저 톡이 들어왔다.
큰세진의 선물이었다.
[큰세진님의 선물]
: 오림 토종 생닭 1.5㎏
“…….”
그리고 잠시 뒤에 ‘ㅋㅋㅋㅋㅋㅋㅋㅋ’으로 도배된 큰세진의 톡이 도착했다.
‘이 새끼가 진짜.’
나는 반사적으로 진심을 쳤다.
[죽을래?]
즉시 답문이 왔다.
[큰세진 : ㅎ싫음]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세진의 방으로 달려가려다가, 참았다.
그게 바로 이 새끼가 바라는 반응일 것이다.
대신 침착하고 이상적인 타격을 주자.
[넌 앞으로 사진 업로드가 없다.]
[큰세진 : 죄송합니다]
역시 이게 직방이군.
나는 스마트폰을 종료하고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 오늘 받은 선물의 형태와 메시지 북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유유히 배회했다.
…어쩐지, 지금 낮잠에서는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 * *
하지만 기분 좋은 숙면 이후, 다시 만난 매니저에게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대야, 너한테 전화가 왔는데?”
“예? 누구요?”
매니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며,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브이틱 청려!’
이런 X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18화
SBC 가요대전이 끝났다.
이후 스케줄 문제로 새벽 내내 차 안에서 자면서 이동했지만, 컨디션이 지난 한 달 중에 제일 괜찮았다.
매니저가 방송 끝나자마자 너무 신났는지 미주알고주알 현재 여론을 다 말해줬기 때문이다.
-완전 다 뒤집어졌다!
그때 멤버들 표정이 볼 만했지.
어쨌든, 그 후엔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긴장이 풀렸는지 차 안인데도 푹 잔 것 같다.
덕분에 이 아침에 회사가 불러서 나 혼자 숙소가 아니라는 점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왜 날 부른 건지 영 짐작 가는 이유가 없었다.
‘뭐, 표정 보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고.’
개인 스케줄이라도 새로 잡혔나 싶다.
그리고 회사 건물 뒤쪽 현관에 들어가자마자 호출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관계자용 작은 현관이 터져 나가도록 많은 상자가 쌓여 있던 것이다.
하나같이 정성스러운 포장에 리본까지 맞춘 그것들은… 선물 상자였다.
지난 휴가 때 숙소 현관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모양새였지만, 규모는 훨씬 컸다.
‘어?’
잠깐.
나와 있던 직원 중 한 분이 웃으며 말했다.
“문대 씨, 생일 선물 왔어요~”
“……!”
…그랬군.
오늘은 12월 15일.
박문대의 생일이었다.
‘…짐작도 못 했다.’
끝없는 스케줄과 연습이 반복되며 날짜 감각이 사라진 탓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SNS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으로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애초에 원래 생일도 아니니까.’
아니,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전에도… 특별히 생일을 유별나게 챙긴 적이 드물었다.
‘밥이나 좀 비싼 재료로 해 먹는 정도였지.’
덕분에 두 벽을 가득 채운 선물 상자들을 보니 저절로 발이 굳었다.
이게 다 나한테 온 거라고?
“숙소에 두기는 힘들 것 같은데… 문대 씨 본가… 음.”
직원은 말하다가 박문대의 가정사를 깨달았는지, 급격히 뒷말을 흐렸다.
그리고 친절하게 다시 정정했다.
“일단 회사 창고에 둘까요? 전자기기나 명품 같은 건 숙소로 보낼게요. 가서 뜯어보시면 되겠네.”
“……이거 가져오신 분들은, 별다른 말 없으셨나요.”
척 봐도 포장 형태가 다른 게 서너 군데에서 따로따로 넣은 것 같았다.
‘적어도 한두 팀 정도는 직접 전달하려고 했을 것 같은데…….’
“아, 전문 배달 업체 이용했더라구요. 그저께 배송 연락받았어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문대 씨한테, 특별히 인증 안 해도 된다고 전해달라 했던 것 같은데……. 맞아. 그랬어요.”
“…!”
그제야 상황을 깨달았다.
‘……일부러 조용히 전달만 했구나.’
그저께면 인터넷에서 신인상으로 테스타를 걸고넘어지는 것에 한창이었다.
어제 SBC에서 전면전 안 했으면 당연히 지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상황에 이런 대형 선물 서포트를 수령한 인증까지 하면 혹시라도 또 꼬투리 잡힐 여지가 될까 봐 걱정했겠지.
‘그런 걸 의식해서 직접 찾아오지도 못했나…….’
기분이 이상했다.
제대로 교류하지도 못하는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 대상이 나라는 건 정말… 더, 이상했다.
“안 열어보세요? 그냥 일단 창고로 옮기는 걸로 할까요?”
“…잠시만요.”
나는 그제야 발걸음을 옮겨서 상자들로 다가갔다.
내 사진을 인화해서 만든 액자, 브랜드 쇼핑백을 묶은 리본 너머로 같은 포장지로 일괄 포장된 상자들이 보였다.
각 포장 리본에 태그가 붙어 있었다.
“…….”
수많은 옷, 전자기기, 액세서리가 태그마다 보였다.
‘…어쩌지.’
거의 압도당할 지경이었다. 뭘 어떤 기준으로 숙소에 우선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인증이 쉬운 물건으로, 각 포장지 디자인마다 세 점씩만…….’
고민하던 중, 한 태그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것보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상자에 붙어 있던 태그였다.
“…….”
나는 머뭇거리다가, 그 상자를 들어 올려 포장지를 풀었다.
직접 제작한 것 같은 황금색 양장본이 드러났다.
양장본을 펼치자, 단정한 디자인 속에 편집된 문장들이 드러났다.
– 무대 보는 순간 알았어요. 저 친구가 바로 내 아이돌이구나! ㅎㅎ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계속 발전해 나가는 문대를 응원해요. 하지만 혹시 그러지 않더라도 괜찮아요. 언제나 문대의 행복을 응원할게요♡
-오래오래 보고 싶은 나의 별
-문대 만나고 내 불면증이 사라졌어! 보고만 있어도 즐겁고 볼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앞으로도 사랑해
-언제나 뭘 할 때도 팬들 신경 써주는 문대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마음이야ㅠㅠ 우리 문대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진짜 문대는 그래도 된다!
긴 줄글들 사이로 절제한 듯한 문장들이 튀어 올랐다. 정제된 마음까지 비집고 나오는 것 같았다.
-누나는 아직도 티벳여우를 잊지 않았어 문대야… 강아지 문대도 사랑하지만 티벳문대도 사랑한단다ㅠ
“하하.”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로…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다정함이었다.
물론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이 사람들도 ‘언제까지나, 오래도록, 영원히’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람인 이상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생각을 해주는 사람들이 어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
“문대 씨?”
“…아, 죄송합니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선물 상자 몇 가지를 빠르게 챙겼다.
계획했던 대로, …아니, 계획했던 것보다 좀 많이.
“…숙소 가져갈 수 있겠어요?”
“차 있어요. 괜찮습니다.”
매니저가 동행했다. 지금쯤 건물 앞 로비 쪽에서 음료를 사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을 것이다.
“음… 알겠어요. 잘 들어가세요. 생일 축하드리구요!”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 가득 선물을 챙겨 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만난 매니저는 기겁했다.
“그걸 너 혼자 다 가져왔어?! 호출을 하지!”
“괜찮아요. 가까운 거리고.”
“어유… 어쨌든, 선물 축하한다. 생일 축하하고. 뭐 형이 커피라도 사주리?”
“다음에요.”
“어쭈, 거절 안 하는구만.”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머리에 헛바람이라도 들어갔는지, 별게 다 유쾌하게 느껴졌다.
“잘 들어가라~”
“예. 감사합니다.”
나는 숙소 건물 앞에서 매니저와 헤어졌다. 그러곤 다시 선물을 가득 챙겨 들어 숙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순간이었다.
묘한 냄새가 숙소 문 앞에서 느껴졌다.
“……?”
이거 탄내 아닌가?
‘설마.’
나는 선물을 복도 한편에 쌓아두고, 당장 현관 도어락을 해제했다.
그리고 소화전을 열어둔 뒤에 문을 개방했다.
“……?!”
“안 돼요!!”
…그리고 웬 냄비를 들고 거실을 질주하는 차유진과 선아현을 목격했다.
냄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물었다.
“…너네 뭐하냐?”
“무, 문대야! 벼, 별건 아니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차유진이 그렇게 외치며 냄비를 도로 부엌으로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거실에 남겨진 선아현에게서 지독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
“…….”
“…새, 생일…… 추, 축하해.”
“고맙다.”
축하는 고마운데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이나 좀 듣고 싶다.
* * *
“…생일 선물?”
“네!”
“아, 아니… 서, 선물을 따로 있고! 그, 그냥 고맙다는 뜻으로…….”
“저도 선물 더 있어요.”
차유진과 선아현 둘이 떠드는 걸 들어봤자 하나도 정리가 안 됐다. 둘끼리도 대화가 잘 안 되는 것 같더라.
냄비 대소동에 얼결에 깨어난 다른 멤버들이 도리어 정리를 시도했다.
“그러니까, 문대 생일이고 마침 우리가 오전에 시간이 있으니까 맛있는 걸 해줄 생각이었다는 거지?”
“예!”
“……그 인원으로?”
배세진이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선아현이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레, 레시피가 확실해서…… 하,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확실한 레시피 맞아?”
의심 가득한 배세진의 물음에 차유진이 즐겁게 대답했다.
“우리 엄마 레시피예요! Chicken soup!”
“…!”
배세진은 동공지진 하다가, 황급히 덧붙였다.
“그… 레시피가 훌륭해도, 초보자는 못 할 수도 있고.”
“다시 해봐요!”
“잠깐, 앉아.”
나는 벌떡 일어나려는 차유진을 도로 앉혔다. 그리고 부엌에서 봤던 냄비를 떠올렸다.
‘…시커멓게 탔지.’
게다가 도마나 싱크대 꼴을 보니 조리 과정 자체가 정상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유진이 요리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굽는 거 잘해요. 끓이는 거 처음이요…….”
“저런.”
만담이 따로 없었다. 큰세진은 혀를 차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흔들었다.
“아, 문대 생일 축하~ 나는 기프티콘 보냈다?”
“…치킨?”
“닭. 그것도 두 마리.”
8월에 줬던 걸 그대로 돌려받았군. 셈 빠른 놈다운 결과였다.
“고맙다.”
“나, 나도! 잠깐만……!”
죄인처럼 앉아 있던 선아현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우당탕 발을 구르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잘 포장된 조그만 선물 하나를 가져와서 내밀었다.
“새, 생일 축하해!”
“어… 고맙다. 열어봐도 돼?”
“으, 응!”
열어보니, 백화점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
이거… 무슨 친구비라도 수거하는 기분인데.
하지만 선아현은 뿌듯해 보였다.
“도, 도저히 사러 갈 시간이 없어서……. 지, 직접 보고 고르는 게 좋으니까!”
“…음, 그래. 고마워. 시간 나면 가봐야겠다.”
“으응!”
다음에 가면… 적당히 선아현 것도 사야겠다. 친구든 직장 동료든 받기 좀 과한 액수였다.
‘그러고 보니 큰세진 생일에도 좀 비싼 걸 준 것 같던데.’
그럴 필요 없다고 언제 한번 말이라도 해줘야 되나 싶다.
“아, 나도 하나 샀어.”
선아현만큼 예상 못 한 항목은 없었지만, 그 후로도 의외로 한두 명에게 선물을 받았다.
일단 차유진은 거대한 젤리 한 통을 줬다.
‘자기가 절반은 먹겠군.’
아마 본인이 주문한 것에서 떼어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의외로 배세진이 남의 생일을 기억하는 타입인지, 후드 티를 하나 줬다.
“잘 입을게요. 감사합니다, 형.”
“…뭐, 그래.”
그렇게 선물 증정식이 끝났다.
솔직히, 인생에서 당일에 이렇게 축하 선물을 많이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느낌 이상한걸.’
나는 팬들에게 받은 상자를 챙겨와서, 멤버들에게 받은 선물과 함께 내 방으로 옮겼다.
“못 챙겨서 미안하네. 다음에 내가 밥이라도 한번 살게. 뭐 먹고 싶어?”
“안 미안하셔도 되고, 음, 그때 먹고 싶은 걸로 먹을까요.”
“그래. 그러자.”
모르는 게 정상인 판인데 모른다고 미안해하는 류청우와 적당히 밥으로 퉁 치고 있자니, 옆에서 김래빈이 비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생신 몰라서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제가 최근에 찍은 비트가 있는데… 그걸 형 솔로곡으로 쓰시면……!”
여기서 홀라당 자기 곡을 내밀면 어쩌냐.
…그래도 일단은 수긍해 주자.
“그래. 좋은 곡일 것 같다. 시간 나면 확인해 보자.”
“예!”
김래빈은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었는지,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신의 방으로 비틀비틀 사라졌다.
“…….”
쟤도 저러다 큰일 나지 싶은데, 나중에 너무 저자세로 나오지 말라고 말이라도 해둬야겠다.
나는 침대 옆에 박스들을 정리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오랜만에, 스마트폰의 데이터를 켰다. 그러자 제일 먼저 톡이 들어왔다.
큰세진의 선물이었다.
: 오림 토종 생닭 1.5㎏
“…….”
그리고 잠시 뒤에 ‘ㅋㅋㅋㅋㅋㅋㅋㅋ’으로 도배된 큰세진의 톡이 도착했다.
‘이 새끼가 진짜.’
나는 반사적으로 진심을 쳤다.
즉시 답문이 왔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큰세진의 방으로 달려가려다가, 참았다.
그게 바로 이 새끼가 바라는 반응일 것이다.
대신 침착하고 이상적인 타격을 주자.
역시 이게 직방이군.
나는 스마트폰을 종료하고 잠을 청했다.
눈을 감자, 오늘 받은 선물의 형태와 메시지 북의 문장들이 머릿속을 유유히 배회했다.
…어쩐지, 지금 낮잠에서는 좋은 꿈을 꿀 것 같았다.
* * *
하지만 기분 좋은 숙면 이후, 다시 만난 매니저에게서 반갑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문대야, 너한테 전화가 왔는데?”
“예? 누구요?”
매니저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게 건네며,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브이틱 청려!’
이런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