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0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04화
“형, 괜찮아요?”
“세진아, 너 발목 상태 좀 보자.”
“…….”
이세진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발목을 보더니, 결국 이를 악물고 바지를 걷어서 상태를 확인했다.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이거 안 좋은데.’
일단 부상은 확정이다.
“……!”
“괘, 괜찮아요! 조, 좀 붓긴 했는데…… 벼, 병원 바로 가면…….”
선아현이 발목을 살피더니 다급히 외쳤다. 무용전공자라서 어느 정도 발목 부상에 조예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세진아, 일단 앉아봐. 매니저 형한테 연락해서 바로 응급실 가자.”
“……그래.”
이세진은 류청우의 안정적인 부축을 받으며 일단 안무실 구석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고 온 매니저와 함께 병원으로 떠났다.
“가, 같이…….”
“아니!! …나 때문에 연습 지연되면 안 되잖아. 갔다 올게.”
이세진은 동행을 극구 거부하며 매니저 둘의 부축과 함께 안무 연습실을 떠났다.
“큰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마, 많이 붓지는 않았으니까… 괘, 괜찮을 거야.”
넘어진 정도였기 때문에, 다들 큰 부상은 아닐 거라고 짐작하며 다시 연습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세진이 돌아온 것은 안무 연습 시간이 다 지난 뒤였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다.
“아~ 여기가 우리 세진이 숙소인가? 좋네!”
“…….”
“어? 자주 올게, 내가.”
“…스케줄 때문에, 거의 숙소에 없어요.”
“그래~? 그럼 이 아빠가 들어와서 관리해 주면 되겠어. 사양 안 해도 돼.”
“……괜찮아요.”
이세진은 웬 중년 남성의 부축을 받고 있었는데, 얼굴 생김새만 봐도 부자 관계로 보였다.
그런데 대화에서는 편의점 알바와 술취한 진상의 냄새가 났다.
‘……?’
“아, 우리 세진이 친구들이구만~ 나, 세진이 아빠!”
“아,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어르신은 무슨~ 나, 세진이랑도 나가면 큰형인 줄 알어.”
“하하, 동안이시네요~”
큰세진이 대화를 받으며 잘랐다. 그리고 류청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진이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제 숙소를 촬영해야 해서…….”
“아, 나 저기 조용히 앉아 있을게! 찍을 거 찍어요~”
“…….”
류청우가 약간 난감한 기색이 됐다.
나는 이세진의 표정을 확인했다.
주책맞은 부모님을 선보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이 아니라, 피로감과 수치스러움 같은 게 덕지덕지 보였다가 쑥 사라졌다.
‘…진상 맞는 것 같은데?’
큰세진이 이세진의 아버지에게 손을 저었다.
“에이~ 아버님,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 드려야죠. 이렇게 멤버 부모님을 홀대하면 되나요. 저희가 준비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내가 좀 있다가 가겠다니까? 쟤 부축해 오느라 힘들어서 그래.”
저렇게까지 말하면 퇴치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서, 물건을 들고 돌아왔다.
“아버님, 고생하셨을 텐데 들어가서 편하게 드세요.”
회사에서 명절선물로 받은 홍삼 세트였다.
“…! 아이고~ 내가 이런 거 받는 사람이 아닌데. 응? 이런 거 달라고 한 소리가 아니야.”
뻔한 소리를 하면서 중년 남성이 냉큼 홍삼을 받아 갔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들 묵는 숙소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시잖아요. 저희가 스케줄상 그럴 여건이 안 돼서 반갑고 죄송해서 드리는 겁니다.”
“그래~ 응? 1등 친구가 이 친구지? 세진이 뽑아준 친구가. 어, 아주 듬직하네. 세진아, 얼른 고맙다고 해.”
“…….”
“아, 저희 촬영 때문에 이제 매니저 형 올 시간이 돼서요. 조심히 돌아가세요.”
“…음, 그래요, 나 가볼게~ 금방 또 올 거야.”
이세진의 아버지는 힐끔힐끔 이세진을 돌아보다가,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
이세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아, 앉아야 하는데…….”
이세진은 선아현이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러서 휙 쳐냈다.
“……!”
다행히 선아현은 손을 피했다. 그리고 이세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 미안해!!”
“괘, 괜찮아요!”
난리군.
어쨌든 이세진은 방을 힐끔 보는 것이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 경험들을 떠올리는지 도망치는 대신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냥 다리가 불편해서 방까지 가기 힘든 걸 수도 있다만.’
반깁스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덕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아버님이야?”
“……어.”
무거운 분위기에서 김래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근데 매니저 형은 어디 가시고 부모님께서 오시게 된 겁니까?”
“…무슨 문제가 있다고, 급하게 가면서 연락한 것 같더라.”
본래는 차라리 다른 회사 사람에게 연락할 텐데, 나중에 들어온 두 번째 매니저가 신입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부모님께 연락드려 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살짝 무거운 분위기에서, 차유진이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발목 괜찮아요?”
“…! 마, 맞아요, 발목!”
“회복까지 얼마나 소요된다고 하십니까?”
“……별일 아니랬어. 일이 주만 조심하면 된다고.”
“흠, 그런 것치고는 고정을 제대로 시켜두셨는데.”
“일부러 좀 과하게 해주신 거야. …내가, 빨리 낫고 싶다고 해서.”
몇몇 멤버들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주로 미성년자다.
“형…….”
“멋져요!”
이세진은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약간 쑥스러운 것처럼,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룹에 폐가 되는 일은 없게 할게.”
“에이~”
이세진의 미소가 약간 어두워졌다.
“……그, 아버지도 못 오게 할 거고. 걱정 마.”
“…….”
참 애매했다.
‘가정사라는 게 그렇지.’
이렇게 단체로 앉은 상황에서 까보라고 요구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 오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다만 이 자리에 김래빈이 있다는 걸 깜박했군. 저놈은 아까 흐른 묘한 분위기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김래빈의 질문에 이세진은 당황한 얼굴이 되더니, 내장을 토하는 해삼처럼 더듬더듬 사연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이 숙소가 넓으니까, 자기도 살겠다고 버틸 수도 있어.”
“그럼 회사에 말해서 허가를 받으면…….”
“…안 돼! 손버릇도 나쁘고…… 아무튼, 같이 있어서 좋을 게 없는 인간이야.”
이세진은 대체 자기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얼른 말을 마쳤다.
“…아무튼, 내가 못 오게 할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그, 그게 끝이야.”
그리고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서 뒤뚱뒤뚱 방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남은 멤버들은 멀뚱히 서로를 돌아보았다.
“…….”
“흠, 뭐… 발목도 괜찮은 것 같고, 저희도 이만 자러 갈까요?”
“일단은 그러자.”
큰세진의 정리에 다들 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아~ 넷플러스 보지 말고 자라.”
“싫어요…….”
거실에서 넷플러스를 틀던 차유진은 류청우의 말에 우울하게 TV를 끄더니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음.”
넷플러스라. 얼마 전에 이세진이 침대에 머리 박고 울던 게 떠올랐다.
‘그거 넷플러스가 아니라… 설마 아버지 때문인가.’
……웬만하면 이 문제는 아니었으면 좋겠군.
해결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이세진의 종이같은 멘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반깁스한 다리를 힘겹게 햄스터 바디필로우 위로 올려두던 이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
“…….”
이세진이 민망했는지 쓱 시선을 피했다.
‘못 본 척해주자.’
나는 스마트폰을 보는 척하며 침대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오히려 이세진이 말을 걸었다.
“…저, 미안하다. 홍삼은 내 거 가져가.”
아, 그거 때문이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먹을게요.”
“그래.”
그대로 방이 평화로운 침묵에 잠기려던 찰나,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확인하던 이세진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근데 내가 열어서 한두 개 먹었거든. 새 걸 사다 놓을 테니까, 그거 가져가.”
“…? 괜찮습니다. 그냥 대충 먹죠. 뭐.”
“……휴.”
이세진이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안심보다는 민망함이나 허망함 쪽으로 들렸다.
이세진은 햄스터를 짓누르는 자신의 깁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왜 계속… 짐이 되는 거지.”
“특별히 그런 일은 없었는데요.”
“……아무튼, 이번에는 정신 차리고 할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넵.”
힐끗 고개를 돌리니, 이세진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두 눈이 아주 의지에 활활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안무 영상이라도 보나?
‘…뭐, 열정 좋지.’
본인이 의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그걸 나한테 요구하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귀마개를 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심각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세진이었다.
어쩐지 스마트폰 부여잡고 질질 짜던 장면이 겹쳤다.
‘…설마 아버지 문제 해결하겠다는 거였나.’
사이다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서야 자주 보인다만, 현실에서 가족 관련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았다.
‘뭐… 본인이 됐다는데 굳이 내가 말 얹는 건 더 웃기긴 하군.’
가족 없는 사람이 조언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하지만 이세진은 이번에도 꽤 오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 * *
며칠 뒤, 콜라보 게임 과 마지막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듣기로는, 게임 제작팀에서 트레일러를 보고 엄청나게 흥분한 나머지 자체적으로 일감을 만들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를 받아봤다.
“와, 우리랑 좀 닮게 수정해 주셨네.”
“이거 완전 저예요!”
“볼에 점이 생겼습니다….”
초기 캐릭터들의 외양에 테스타 멤버들의 외양적 특징 몇 가지를 가볍게 반영해 준 것이다.
-아니, 뭘 다 뜯어고친 건 아니고, 저희가 가진 재료 안에서 약간 고쳐봤어요~
-어때요? 완전 트레일러 생각나죠!! 특히 이세진 씨 무테안경! 그거 진짜 만장일치로 바로 수정작업 들어갔거든요!
…뭐 주로 이런 식이었다.
참고로 내 캐릭터는 쌍꺼풀이 속쌍으로 바뀌었다는데, 미안하지만… 큰 차이 모르겠다.
“후~ 재밌고 힘들구만.”
“힘내자!”
“힘냅시다!”
당장 뮤직비디오 공개가 며칠 뒤였다. 일정은 더 바빠졌지만, 쏟아지는 일감에도 ‘잘되는 느낌’은 확실히 중독적이었다.
덕분에 테스타는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다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세진 역시 포함됐다.
어쩐지 후련한 얼굴인 이세진은 제법 편한 얼굴로 류청우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놈 다리 다친 것도 잘 낫는 모양이고, 이대로 컴백까지 순항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사건은 회사에서 나가는 길에 터졌다.
“이세진!! 너 이리 와, 어?!”
“……!”
회사 뒷문 쪽 로비 앞에 안면 있는 중년 남성이 앉아 있다가, 이세진을 보고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당연히 이세진의 아버지였다.
이세진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X발.’
다행히, 당장 매니저 둘이 가로막았다.
“아버님, 이러시면 안 되죠!”
“자자, 진정하시고!”
“놔봐! 요즘 것들은 X발 예의가 없고! 어! 사람을 핍박하고!!”
이세진의 아버지는 덩치 있는 매니저에게 막히자 주춤거리면서도, 끝까지 손가락질을 하면서 끌려갔다.
“너 가만 안 둬, 어? 이 천벌 받을 불효자 새끼야!”
“…….”
소란스러웠던 로비는 곧 이세진의 아버지가 끌려나가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잠시 뒤 더 소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04화
“형, 괜찮아요?”
“세진아, 너 발목 상태 좀 보자.”
“…….”
이세진은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발목을 보더니, 결국 이를 악물고 바지를 걷어서 상태를 확인했다.
발목이 부어오르고 있었다.
‘…이거 안 좋은데.’
일단 부상은 확정이다.
“……!”
“괘, 괜찮아요! 조, 좀 붓긴 했는데…… 벼, 병원 바로 가면…….”
선아현이 발목을 살피더니 다급히 외쳤다. 무용전공자라서 어느 정도 발목 부상에 조예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 세진아, 일단 앉아봐. 매니저 형한테 연락해서 바로 응급실 가자.”
“……그래.”
이세진은 류청우의 안정적인 부축을 받으며 일단 안무실 구석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을 받고 온 매니저와 함께 병원으로 떠났다.
“가, 같이…….”
“아니!! …나 때문에 연습 지연되면 안 되잖아. 갔다 올게.”
이세진은 동행을 극구 거부하며 매니저 둘의 부축과 함께 안무 연습실을 떠났다.
“큰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요.”
“마, 많이 붓지는 않았으니까… 괘, 괜찮을 거야.”
넘어진 정도였기 때문에, 다들 큰 부상은 아닐 거라고 짐작하며 다시 연습을 재개했다.
하지만 이세진이 돌아온 것은 안무 연습 시간이 다 지난 뒤였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다.
“아~ 여기가 우리 세진이 숙소인가? 좋네!”
“…….”
“어? 자주 올게, 내가.”
“…스케줄 때문에, 거의 숙소에 없어요.”
“그래~? 그럼 이 아빠가 들어와서 관리해 주면 되겠어. 사양 안 해도 돼.”
“……괜찮아요.”
이세진은 웬 중년 남성의 부축을 받고 있었는데, 얼굴 생김새만 봐도 부자 관계로 보였다.
그런데 대화에서는 편의점 알바와 술취한 진상의 냄새가 났다.
‘……?’
“아, 우리 세진이 친구들이구만~ 나, 세진이 아빠!”
“아,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어르신은 무슨~ 나, 세진이랑도 나가면 큰형인 줄 알어.”
“하하, 동안이시네요~”
큰세진이 대화를 받으며 잘랐다. 그리고 류청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진이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제 숙소를 촬영해야 해서…….”
“아, 나 저기 조용히 앉아 있을게! 찍을 거 찍어요~”
“…….”
류청우가 약간 난감한 기색이 됐다.
나는 이세진의 표정을 확인했다.
주책맞은 부모님을 선보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나 쑥스러움이 아니라, 피로감과 수치스러움 같은 게 덕지덕지 보였다가 쑥 사라졌다.
‘…진상 맞는 것 같은데?’
큰세진이 이세진의 아버지에게 손을 저었다.
“에이~ 아버님,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 드려야죠. 이렇게 멤버 부모님을 홀대하면 되나요. 저희가 준비해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내가 좀 있다가 가겠다니까? 쟤 부축해 오느라 힘들어서 그래.”
저렇게까지 말하면 퇴치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얼른 방에 들어가서, 물건을 들고 돌아왔다.
“아버님, 고생하셨을 텐데 들어가서 편하게 드세요.”
회사에서 명절선물로 받은 홍삼 세트였다.
“…! 아이고~ 내가 이런 거 받는 사람이 아닌데. 응? 이런 거 달라고 한 소리가 아니야.”
뻔한 소리를 하면서 중년 남성이 냉큼 홍삼을 받아 갔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아들 묵는 숙소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시잖아요. 저희가 스케줄상 그럴 여건이 안 돼서 반갑고 죄송해서 드리는 겁니다.”
“그래~ 응? 1등 친구가 이 친구지? 세진이 뽑아준 친구가. 어, 아주 듬직하네. 세진아, 얼른 고맙다고 해.”
“…….”
“아, 저희 촬영 때문에 이제 매니저 형 올 시간이 돼서요. 조심히 돌아가세요.”
“…음, 그래요, 나 가볼게~ 금방 또 올 거야.”
이세진의 아버지는 힐끔힐끔 이세진을 돌아보다가,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갔다.
“…….”
이세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아, 앉아야 하는데…….”
이세진은 선아현이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손을 휘둘러서 휙 쳐냈다.
“……!”
다행히 선아현은 손을 피했다. 그리고 이세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미… 미안해!!”
“괘, 괜찮아요!”
난리군.
어쨌든 이세진은 방을 힐끔 보는 것이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 경험들을 떠올리는지 도망치는 대신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
‘…그냥 다리가 불편해서 방까지 가기 힘든 걸 수도 있다만.’
반깁스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덕분에 대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아버님이야?”
“……어.”
무거운 분위기에서 김래빈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저, 근데 매니저 형은 어디 가시고 부모님께서 오시게 된 겁니까?”
“…무슨 문제가 있다고, 급하게 가면서 연락한 것 같더라.”
본래는 차라리 다른 회사 사람에게 연락할 텐데, 나중에 들어온 두 번째 매니저가 신입이라 익숙하지 않아서 부모님께 연락드려 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살짝 무거운 분위기에서, 차유진이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발목 괜찮아요?”
“…! 마, 맞아요, 발목!”
“회복까지 얼마나 소요된다고 하십니까?”
“……별일 아니랬어. 일이 주만 조심하면 된다고.”
“흠, 그런 것치고는 고정을 제대로 시켜두셨는데.”
“일부러 좀 과하게 해주신 거야. …내가, 빨리 낫고 싶다고 해서.”
몇몇 멤버들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주로 미성년자다.
“형…….”
“멋져요!”
이세진은 그제야 표정이 풀렸다. 그리고 약간 쑥스러운 것처럼,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그룹에 폐가 되는 일은 없게 할게.”
“에이~”
이세진의 미소가 약간 어두워졌다.
“……그, 아버지도 못 오게 할 거고. 걱정 마.”
“…….”
참 애매했다.
‘가정사라는 게 그렇지.’
이렇게 단체로 앉은 상황에서 까보라고 요구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 오셔도 괜찮지 않습니까?”
…다만 이 자리에 김래빈이 있다는 걸 깜박했군. 저놈은 아까 흐른 묘한 분위기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김래빈의 질문에 이세진은 당황한 얼굴이 되더니, 내장을 토하는 해삼처럼 더듬더듬 사연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 이 숙소가 넓으니까, 자기도 살겠다고 버틸 수도 있어.”
“그럼 회사에 말해서 허가를 받으면…….”
“…안 돼! 손버릇도 나쁘고…… 아무튼, 같이 있어서 좋을 게 없는 인간이야.”
이세진은 대체 자기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얼른 말을 마쳤다.
“…아무튼, 내가 못 오게 할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고. 그, 그게 끝이야.”
그리고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서 뒤뚱뒤뚱 방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거실에 남은 멤버들은 멀뚱히 서로를 돌아보았다.
“…….”
“흠, 뭐… 발목도 괜찮은 것 같고, 저희도 이만 자러 갈까요?”
“일단은 그러자.”
큰세진의 정리에 다들 미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진아~ 넷플러스 보지 말고 자라.”
“싫어요…….”
거실에서 넷플러스를 틀던 차유진은 류청우의 말에 우울하게 TV를 끄더니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음.”
넷플러스라. 얼마 전에 이세진이 침대에 머리 박고 울던 게 떠올랐다.
‘그거 넷플러스가 아니라… 설마 아버지 때문인가.’
……웬만하면 이 문제는 아니었으면 좋겠군.
해결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이세진의 종이같은 멘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반깁스한 다리를 힘겹게 햄스터 바디필로우 위로 올려두던 이세진과 눈이 마주쳤다.
“…….”
“…….”
이세진이 민망했는지 쓱 시선을 피했다.
‘못 본 척해주자.’
나는 스마트폰을 보는 척하며 침대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오히려 이세진이 말을 걸었다.
“…저, 미안하다. 홍삼은 내 거 가져가.”
아, 그거 때문이었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잘 먹을게요.”
“그래.”
그대로 방이 평화로운 침묵에 잠기려던 찰나, 뭔가를 부스럭거리며 확인하던 이세진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 근데 내가 열어서 한두 개 먹었거든. 새 걸 사다 놓을 테니까, 그거 가져가.”
“…? 괜찮습니다. 그냥 대충 먹죠. 뭐.”
“……휴.”
이세진이 길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안심보다는 민망함이나 허망함 쪽으로 들렸다.
이세진은 햄스터를 짓누르는 자신의 깁스를 보며 중얼거렸다.
“왜 계속… 짐이 되는 거지.”
“특별히 그런 일은 없었는데요.”
“……아무튼, 이번에는 정신 차리고 할 테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넵.”
힐끗 고개를 돌리니, 이세진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두 눈이 아주 의지에 활활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안무 영상이라도 보나?
‘…뭐, 열정 좋지.’
본인이 의욕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그걸 나한테 요구하지만 않으면 된다.
나는 스마트폰을 끄고 귀마개를 꼈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은 심각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세진이었다.
어쩐지 스마트폰 부여잡고 질질 짜던 장면이 겹쳤다.
‘…설마 아버지 문제 해결하겠다는 거였나.’
사이다 찾는 인터넷 게시판에서야 자주 보인다만, 현실에서 가족 관련 문제가 그렇게 쉽게 해결될 것 같진 않았다.
‘뭐… 본인이 됐다는데 굳이 내가 말 얹는 건 더 웃기긴 하군.’
가족 없는 사람이 조언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그냥 잠이나 자기로 했다.
하지만 이세진은 이번에도 꽤 오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 * *
며칠 뒤, 콜라보 게임 과 마지막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듣기로는, 게임 제작팀에서 트레일러를 보고 엄청나게 흥분한 나머지 자체적으로 일감을 만들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를 받아봤다.
“와, 우리랑 좀 닮게 수정해 주셨네.”
“이거 완전 저예요!”
“볼에 점이 생겼습니다….”
초기 캐릭터들의 외양에 테스타 멤버들의 외양적 특징 몇 가지를 가볍게 반영해 준 것이다.
-아니, 뭘 다 뜯어고친 건 아니고, 저희가 가진 재료 안에서 약간 고쳐봤어요~
-어때요? 완전 트레일러 생각나죠!! 특히 이세진 씨 무테안경! 그거 진짜 만장일치로 바로 수정작업 들어갔거든요!
…뭐 주로 이런 식이었다.
참고로 내 캐릭터는 쌍꺼풀이 속쌍으로 바뀌었다는데, 미안하지만… 큰 차이 모르겠다.
“후~ 재밌고 힘들구만.”
“힘내자!”
“힘냅시다!”
당장 뮤직비디오 공개가 며칠 뒤였다. 일정은 더 바빠졌지만, 쏟아지는 일감에도 ‘잘되는 느낌’은 확실히 중독적이었다.
덕분에 테스타는 이놈 저놈 할 것 없이 다 즐거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세진 역시 포함됐다.
어쩐지 후련한 얼굴인 이세진은 제법 편한 얼굴로 류청우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놈 다리 다친 것도 잘 낫는 모양이고, 이대로 컴백까지 순항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사건은 회사에서 나가는 길에 터졌다.
“이세진!! 너 이리 와, 어?!”
“……!”
회사 뒷문 쪽 로비 앞에 안면 있는 중년 남성이 앉아 있다가, 이세진을 보고 벌떡 일어났던 것이다.
당연히 이세진의 아버지였다.
이세진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X발.’
다행히, 당장 매니저 둘이 가로막았다.
“아버님, 이러시면 안 되죠!”
“자자, 진정하시고!”
“놔봐! 요즘 것들은 X발 예의가 없고! 어! 사람을 핍박하고!!”
이세진의 아버지는 덩치 있는 매니저에게 막히자 주춤거리면서도, 끝까지 손가락질을 하면서 끌려갔다.
“너 가만 안 둬, 어? 이 천벌 받을 불효자 새끼야!”
“…….”
소란스러웠던 로비는 곧 이세진의 아버지가 끌려나가면서 잠잠해졌다.
그러나 잠시 뒤 더 소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